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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5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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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방범 그 후... 또 다시 찾아온 사건의 의뢰.
  

  르포 작가인 미에하타 시게코는 9년 전, 산장에서 13명을 연쇄살인한 범인 아미카와 고이치의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입장이였다가, 살인자의 입장이였다가, 고발자의 입장에 처하는 등 힘겨운 변화를 겪고 살인자를 밝혀낸다. 기사는 썼지만, 범인도 잡았지만, 사건에 지고 말았다는 생각에, 그 후 책을 내거나 글을 쓰려는 용기를 잃고 있었다.

  르포작가에서 가정주부로 돌아갔던 그녀는, 무가지 잡지에 글 쓰는일을 시작하지만, 사건과는 인연을 끊고 있다. 죽은 아들의 신비한 능력을 의뢰하며, 그를 추억하고픈 어머니 하기타니 도시코를 만나게 된 시게코는 그녀가 가져온 아들의 그림과 그림과 연관있는 자식을 죽여 마루에 묻어놓고 16년을 버틴 부부의 사건과 대면하게 된다. 히토시, 세상을 떠난 아이가 사건이 밝혀지기 오래 전 사건을 예언했던 그림의 비밀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사건에 연루되게 되는데...

 
#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미야베 미유키의 전작, <모방범>에서는 범인과 범인을 밝히려는 르포기자의 긴장감과 마지막 범인을 밝히는 반전이, 흥미롭게 전개되었다.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결국 유족과 피해자에게는 이미 잃어버린 생명에 대한 회한으로 쓸쓸한 마음만 남을 뿐이었다. 황폐해진 마음과 사건 이후, 오랜 시간이 흘러 그 사건을 잊어버린 대중과 사건과 연루되어 변화된 삶을, 하지만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삶이 <낙원>에서 펼쳐지고 있다.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된 사건과 연루되어 모든 것이 변화했던 시게코, 그녀가 마지막에 결국 쓰지 못한 여고생, 희생자의 이야기를 쓰기를 기대했던 다른 여고생은, 여고생의 희생에 마음아파 하고, 경찰관이 되어 있었고,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는 가끔씩 악몽을 꾸며 사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마음의 상처라고 해야 할까? 깊어버린 마음의 상처를, 새로운 사건을 마주치면서, 조우하면서 그것을 극복해 나아가는 시게코의 노력을 보게 된다.  

  그와 함께, 16년 간 죽은 언니와 함께 살았다는 사실을 모른 채 지내왔던 둘째 시게코의 삶도 함께 조망된다. 결혼 했지만, 사건으로 인해 결국 이혼을 하게 된 사연과 부모에게 사실을 듣지 못한 채, 시게코가 꼭 사건의 진실을 밝혀주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사건과 관련된 아버지의 진술을 통해서, 사건의 내용은 일부는 밝혀지지만, 일부는 어둠속에 숨어 있다. 인간은 진실을 알고 싶기 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사실을 진실로 미화시키고 싶은 건 아닌지, 갑작스럽게 당하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을 겪은 인간들의 반응과 그 사건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의 스릴을 강조했던 추리소설의 고전 스타일과 달리, 미유키의 소설에서는 그 사건을 대하는 관련자와 지켜보는 대중의 마음과 그 과정에서의 참혹한 진실에 더 비중을 높이고 있다.  

  사실보다는 신빙성을 확인할 수 없는 인생에 끌려 삶의 곡절을 겪은 하기타니 도시코의 삶은 인간이 어디에 마음을 끌리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계기였다. 신통하다는 할머니의 권력에 의해 평생 집안에서 희생해야 했던 도시코의 삶, 그리고 가정을 이루고 싶었지만, 사랑했던 사람과 그의 아들과 결별해야 했던 도시코의 삶에서, 친족을 자신의 힘으로 이끌었던 컬트교주와 같은 할머니의 행동을 통해, 영향력 강하지만, 자신을 위해 타인의 희생쯤은 아랑곳하지 않은 진실보다는 미신과 작은 사실들에 큰 의미를 부여했던 어른들의, 인간의 합리화 하려는 경향을 보여준다.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고, 다들 자신이 얻은 정보와 믿고 싶은 사실들을 짜맞추어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그 이야기는 다시 당사자에게 고통을 전개해준다고 할까. 영화 <올드보이>처럼 쉽게 내 뱉은 소문에 휩쓸려, 결국 삶을 마감해야 했던 상상임신을 한 누이처럼, 관음증 환자처럼, 타인의 사건을 들여다보며 이야기하기 좋아하는 이들로 인해 피해를 보는 현상이 겹쳐 보인다.  

  사건은 밝혀졌지만, 진실은 알 수 없다. 부모에게 사랑을 갈구하고, 동생에게 쏟아지던 질투에 속상했던 아카네와 닮은 초등학교 4학년 사토 마사코가 하교길에 창살이 박혀있는 이상한 집에서 어슬렁 거리다, 창문에서 떨어진 담배갑에 쓰여진 글씨를 만난 대목이 등장한다. 죽은 아이와 비슷한 상황으로 보이는 아이가 등장하는 건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 아카네의 마음을 대변할 수 없는 현실을 알리기 위한 것인지, 다른 반전이 있는 건지, 아직은 모르겠다. 1편에서는 히토리, 사망한 아이에게 타인의 기억을 읽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시게코가 인정한 부분까지 밝혀졌다. 그의 학교생활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푸른 하늘 모임', '아동 상담소', 그리고 아카네가 죽은 이유와 그와 연관된 정보 등은 2편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범인과 사건은 다 공개되어 있고, 사건을 밝히는 과정을 보는 것이지만, 흡입력이 강하고, 사회현상에 대해 다시 고민해보게 된다. 미유키의 책이 사랑을 받는 연유는 여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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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동안의 과부]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일년 동안의 과부 2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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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시간 능숙함이 몸에 배인, 장인의 숨결이 느껴지다.
  

  루스가 집필한 <일년 동안의 과부>와 관련된 불평독자와의 에피소드와 새 작품 『나의 마지막 나쁜 남자 친구』의 집필 취재와 살인사건의 목격, 어머니가 집필한 책의 만남, 아버지의 자살, 편집장인 앨런과의 첫번째 결혼, 앨런의 죽음, 목격자를 찾는 경찰, 새로운 사랑과 엇갈린 인연, 되돌아온 해후까지 1편에서 궁금했던 내용들이 해결되고, 새로운 사건이 등장한다.

  오랜 시간 능숙함이 배인 목수의 숨결과 정성이 들어간 목제품을 본 느낌이라고 할까. 정교하게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소수의 등장인물과 그들의 이야기로 900페이지가 달하는 이야기를 풀어낸 장인의 숨결이 느껴진다. 작가와 홍등가 여인의 대화, 살인사건의 현장에서 펼쳐지는 긴박감, 소설의 제목과 그들의 인생의 닮음, 에피소드 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모습에서, 잘 만들어진 이야기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한 소년이 연상의 연인과 사랑에 빠졌다. 36년이란 긴 시간을 겪으면서도 사랑의 힘을 잃지 않고, 노인이 된 그녀에게 여전한 사랑을 느낀다. 이야기의 전체 메시지는 큰 감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어빙의 손을 거치게 되면, 그들의 긴장된 관계 속에서 에디의 사랑의 빛을 강하게 조명 받게 된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에디가 장식하지만, 더 관심이 갔던 부분은 사랑의 상처를 극복하는 방식이었다.

  사랑에 슬픔에 빠져, 슬픔을 전염되는 것이라며, 딸에게, 에디에게 그 마음을 전하고 싶지 않았던 메리언의 떠남과 그녀와 비슷한 사랑의 상처를 겪은 후, 그녀를 이해하게 되는 루스의 모습, 그리고 묘하게 메리언의 행동과 같은 행동을 하는 루스의 행동을 통해서, 인간의 내면에 작은 풍경을 본 느낌이다. 아니란 걸 알면서도 빠져들게 되는 모습과,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실수를 반복하는 모습, 그리고 나중에 후회하는 모습까지, 10퍼센트 보통이들과 다른, 개성강한 인물들이 펼쳐가는 생활을 엿보면, 평범한 일상을 사는 인간의 내면을 볼 수 있었다.

  부족하고, 모자란 점이 많지만, 결국 따뜻한 시선으로 등장인물을 묘사한 작가의 따뜻함이 전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루사가 어렸을 때 베였던 상처와 그 흔적이 36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여전히 남아있듯이, 우리 마음 속에 담긴 상처들도, 아물 순 있어도 흔적을 지울 순 없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흔적을 지우기도 힘들다.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힘은 역시, 공감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감에서 불러나온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고 할까.

  아버지의 특별한 외도, 아버지의 자살, 살인사건의 목격, 오랜 기다림의 사랑, 상실의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 등 하나만으로 소설 한 편을 쓸 수 있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들이다. 현실에서의 금기의 영역을 툭툭 견드려, 상상의 폭을 넓힌 느낌이라 할까. 무엇보다 각각의 이야기등이 유기적으로 얽혀,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진짜 현실속에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다가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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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동안의 과부] 서평단 설문 & 리뷰를 올려주세요
일년 동안의 과부 1
존 어빙 지음, 임재서 옮김 / 사피엔스21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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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을 내내 읽으면서 든 생각은 '트라우마'였다. 감당하기 힘든 마음의 '상처'를 겪었을 때, 인간은 어떻게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상상하기 힘든 일은, 그냥 일어나지 않는 게 좋다는 게 기본 신념이지만, 현실은 늘 마음먹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어린이 동화 작가이자 삽화가인 테드 콜과 작가인 부인 매리언 콜은 두 아들이 자랐을 때만 해도 남편의 외도가 있긴 했지만, 화목하게 지냈었다. 두 아들과 떠난 겨울 여행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로 인해 두 아이를 떠나보내고, 딸 아이 루스가 태어났지만, 매리언은 삶의 의욕을 이미 잃은 상태였다. 전용운전사이자 작가 조수로 16살의 에디를 고용하게 되고, 에디는 매리언의 모습을 보고 한 눈에 반하게 된다. 에디의 입장에서는 여름날 짧은 사랑과 긴 기다림일테고, 테드의 입장에서는 아내의 바람일 것이다.  

  아들을 매우 닮은 에디의 모습과 그런 에디와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루스에게 들키게 된 메리언, 메리언은 여름이 지나면서 테드와 이혼하고, 혼자 떠나버리고, 에디는 그녀와의 추억들을 자서전 스타일의 소설로 출간한다. 32년 후, 루스는 성적 자유가 충만한 친구 해나의 낙태와 여러 사건들을 활용해서 소설을 쓰고, 많은 나라에 번역되는 등 큰 인기를 얻는다. <일년 동안의 과부>라는 소설 출간기념 낭독회장에서 다시 만난 루스와 에디, 에디는 메리언과 닮은 눈동자를 지닌 그녀의 모습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루스는 아버지와 해나가 서로 바람을 피는 모습에 격분해서, 아버지와 함께 운동을 하는 스캇과 잠자리를 갖고,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기를 바라지만 이뤄지지 않는다. 아버지에게 운전연습을 배운 그녀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도중에 그 사실을 말하며 복수를 하고, 54살의 편집장인 앨런과의 사랑에 더욱 확신을 갖게 된다. 

  매리언과 에디가 한밤에 함께있는 모습을 보고, 사진속에 있는 오빠들의 모습과 에디가 닮아있는 모습에 큰 소리를 질렀다는 루스의 이야기, 처음 두 줄을 읽고, 작가가 펼쳐놓은 덫에 빠진 느낌이었다. 상상을 뛰어넘는 스토리에, 관심은 루스가 '트라우마'를 어떻게 극복하고 에디와 메리언은 어떻게 될까에 관심이 쏠려있었다. 메리언이 갑자기 떠나버리고, 36년의 시간이 건넌  뛰는 등, 이야기는 급속도로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가지만, 이야기의 흥미진진함은 떨어지지 않았다. 메리언과 테드의 갈등만 보여주고, 사건의 전말을 공개하지 않다가, 테드와 메리언이 헤어진 이후, 테드의 입을 통해, 사건의 전말을 밝히는 방식도 독특했다. 독자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방법을 잘 아는 작가라고 할까.

 

  테드의 불륜과 해나, 루스의 이야기들과 에디와의 재회 등의 사건들이 얽혀진다. 이야기는 더욱 흥미진진해지고,  퍼즐로 짜 맞춘 듯, 복선들이 절묘하게 이어지는 모습에, 작가가 타고난 이야기꾼으로 칭송받는 이유를 알게 된 느낌이다. 500페이지의 적지않은 분량이지만, 한 번 펼쳐들면, 중간에 놓기 힘들다.메리언이 에디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만져 본 것으로, 테드가 메리언이 에디에게 빠질거라는 걸 알았다던지, 싸인을 하지않는 성격과 노부인의 막무가내에 파격적인 대응을 하는 루스의 모습 등, 사소한 행동 하나가 인물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게 하는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다.  

  1편에서는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모습보다는, 루스의 행동이 메리언의 행동과 닮아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사회적으로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소설이라는 공간속에서 인물들에 이입해서 이야기에 빠져들다 보면, 인간 본연의 모습들과 사회로부터 억압받고, 자기검열에 의해 통제받고 있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도 하다. 불륜과 비도덕적인 행동에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도덕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강박에 빠져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할까. 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세부묘사가 살아있기에, 더욱 현대사회와 견주어 볼 수 있다 생각한다.

  스토리 전개와 관계없이, 작가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와 흥미로웠다. 동화책과 작가들의 소소한 일상, 그리고 작가가 어떻게 아이디어를 얻어내고, 소설을 만들어내는지에 관한 힌트가 숨어있어, 평소 궁금했던 부분을 채울 수 있기도 했다. 메리언은 언제 돌아올 것인지, 해나와 루스는 어떻게 화해를 할 것인지, 에디와 루스는 어떻게 될 것인지, 많은 궁금증이 남아있어, 2편이 기다려진다. 2편에서는 어떤 놀라운 이야기가 숨겨져 있을지, 제목인 <1년 동안의 과부>처럼, 루스가 과부가 되는 부분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추리해 보는 건 소설을 읽는 또다른 재미이다. 2편을 어서 읽고, 궁금증을 해소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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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정 없는 세상 - 제6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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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3 수능 시험이 끝난 후, 찾아오는 불안과 공허감. 
  

  고3에게 수능시험날은 어떤 의미일까? 내게는 옭아매고 있는 족쇄에서 해방되는 그 날이었으며, 한 달의 황금같은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는 시간이었다. 딱 한 달, 수능시험성적표가 학교에 돌아오는 순간부터 치열한 대학입시를 위한 눈치작전이 벌어지기에, 한 달의 자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수능이 끝나고 내가 했던 큰 일 중의 하나는 볼링을 배운 일이었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 한 달 정도, 하루에 2시간씩 친구와 함께 원없이 볼링을 쳤던 기억이 떠오른다.


  정말 공부가 미친듯이 하고 싶어서 했던 것이 아니였기에, 대학에 가면 좀 더 내가 원하는 자유를 느낄 수 있을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결과가 돌아올까 불안했던 시기이기도 했다. 무언가 선택을 해야 하지만, 내가 정말 선택해야 할 일은 쉽게 단정할 수 없는 현실에 안개속을 걷는 느낌 뿐이었다.

 

  오직 '한 번' 여자친구인 서영과 하고 싶은 준호의 '총각 딱지'떼려는 분투기를 지켜보면서,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옛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잘 알려주지도 않고, 금기에 가까워 경험하고 싶은 환상을 가득 채워놓은 '첫 경험', 많이 닫혀있고, 성적 에너지에 많은 정신을 쏟았던 고등학교 시절의 분위기와 '성에 대한 묘한 환타지'에 대한 생각으로 독자들을 쉽게 책의 공간으로 끌어들인 저자의 늪에 빠진 느낌이다.


# 좌충우돌 '준호'가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고 있자면..

  
  '첫 경험'이라는 호기심 강한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내게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준호가 '첫 경험'의 환타지에서 벗어나 자신의 꿈을 찾아가는 과정을 볼 수 있었다. 한 줄로 주제를 말하자면 방황하던 청소년기의 꿈찾기? 라고 할까. 미대에 가고 싶었지만 높은 성적에, 부모님의 바램으로 서울대 법대에 들어가지만, 준호의 외삼촌인 명호는 '아무것도 하지않는' 실업자가 된다. 어렸을 적 자신의 꿈이였던 '만화가게'를 시작하는 명호의 모습에서, 성적표를 받고 나서 친구들마다 제각기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났지만, 아무것도 할 것이 없어 '심심'의 늪에 빠진 '준호'는, 내가 너희들 보다 잘 쓰겠다 하며, 시험삼아 썼던 '야설'의 원고를 소설로 수정하는 것을 시도하며 자신의 꿈을 찾기 시작한다. 대학에 기대도 미련이 없던 그가 근사한 어른이 되기 위해 '인문학'을 공부하기로, 대학에 가기로 결심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남자는 여자를 알아야 어른이 된다'는 통념에 빠져있던 고3 시절, '첫 경험의 폭죽이 터지는 환상'에 빠져있던 준호가, 여자친구 인영을 졸라가며, 꿈을 이루려 노력하는 과정과 결국 기대감이 만들어낸 환상이다는 점을 알게되는 점은, 대학에 가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고 생각되어지지만, 막상 가보게 되면 사회생활의 진로와 자유의 폭 만큼 더 깊은 책임이 따른다는 것을 알게되는 과정과 닮아있다. 사회적인 통념이 만들어낸 신기루에 빠져 있다가는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다고 까. 

  그들에게 필요한 건, 내가 무엇을 하고 싶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고, 숙고하는 시간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할 수 있는 때를 놓치지 않고 지금 이순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타인의 기대없이 내 스스로 결정한다고 할까. 아버지가 없는 어머니 숙경씨와 함께 사는 '준호'와 열린 어머니였기에 결국 스스로 자기 길을 찾았는지도 모르겠다.
 

# 어른이 된다는 것은..
  
   
  몸 건강히 지금까지 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어머니 숙경씨의 고백에서 '부모님의 사랑'을, 박학다식 명호씨와 준호의 '성에 관한 대화'는 어설픈 성에 관한 안내서보다는 훨 나아보였다. '첫 경험'이 20살 아래여도 상관없지만, 자신이 충분한 준비가 되었을 때, 상대의 동의하에 '첫경험'을 하는 것이 가장 좋다 생각한다. 충분한 준비는 자신이 경제적으로 한 생명을 키울 수 있는 준비와 능력과 마음이 되었을 때가 아닌가 싶다. 호기심의 열정에 빠져 충분히 준비하지 않은 채, 벌어진 생명의 탄생은, 행복해야 할 가정이 아닌, 서로에게 상처와 부담을 안고 헤쳐나가게 하기 때문이다. 생활의 여유가 된다거나, 단순한 끌림이 아닌, 오래된 열정이라 확신하고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다면, 스스로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 생각한다.

  결국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의 의지로 길을 선택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주어진 모든 결정은 자신이 해야 하기에, 최악의 상황에도 담담하게 현실을 감내한다고 할까. 부모님과 친구와 선생님의 조언 역시, 조언일 뿐 결국 스스로의 결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머리속을 남아있다. 오랜시절의 꿈을 잊지않고 꿈을 이뤄낸 명호씨와 '첫경험'을 위한 분투속에 자신이 걸을 길의 방향을 잡은 준호에게 박수를 보낸다. 

  소수의 등장인물로, 거뜬히 한 편의 장편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작가의 능력이 잘 발휘된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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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는
박현욱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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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돌아보면 가슴 설레였던 학창시절의 추억, 80년대의 방식으로, 그때를 돌아보다.
 

  학교를 등교하던 시절에는, 가슴 속에는 얼른 어른이 되어서, 학교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생활하고 픈 마음 뿐이었다. 수학능력시험만 지나면, 대학에 들어가면 내 세상이야라는 생각에 빨리 어른이 되길 바랬었다. 대학생활마저 졸업하고 나니, 그때가 참 좋았었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뒤돌아보는 일들은 즐거웠던 기억은 두 배로, 생각하고 싶지 않는 시간들은 은은한 추억으로 만들어버리는 묘한 재주가 있다. 다시 그때처럼 생활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것 같은데, 예전 일이라 생각하면, 슬며시 작은 미소가 지어진다. 10년 아니, 20년이 지난 오래된 테이프를 다시 듣는 느낌은 어떤 기분일까? 오래된 테이프를 오디오에 넣고 옛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책 속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로 돌아가다.

  
  키도 왜소하고 음치에다 공부는 뒤에서 다섯번째이자, 특별히 잘하는 것이 없는 은호는 달동네처럼 높은 동네의 다락방에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집을 나가셨고, 뭘 하고 사는지 알 수 없다. 고등학교 1학년때 운동장 수돗가에서 첫 사랑인 공부 잘하고 예쁜 은수를 보면서 그의 인생은 바뀌게 된다. 그 아이를 보는 것만으로 가슴 설레고, 행복을 느꼈던 그 때, 그 아이에게 가까이 닿기 위해 그 당시 아이들이 동경하던 기타를 배우기로 결심하고 아침에 신문배달을 시작한다. 신문배달을 해서 모은 돈으로 싼 기타를 사고, 기타학원을 다니면서 자신을 응원해주는 현주를 만나게 된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고, 갑자기 늘어버린 실력에 가을 축제에서 2학년과 함께 합주를 하게 된다. 

  은수가 문예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함께 합주를 했던 선배가 문예반원이라서 문예반에 들어간 은호는 온통 은수에 조금 더 닿고픈 마음 뿐이다. 매주 그애를 볼 수 있다는 이유로 독서토론회를 기다려하고, 그 아이와 한 번 대화했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벅차해 한다. 같은 반 우등생이며 거만한 민수에게 복수해주고 싶은 마음과 문예반에서 활동하기 위해 도서관에서 책을 읽기 시작하고, 현주는 종종 은호가 있는 도서관에 와서 영화도 보고 이야기도 나눠준다. 다시 돌아온 축제에 연합 독서토론회가 열리고, 예전 현주가 알려주던 새로운 해석의 도움을 받아 민수에게 복수를 해 준다. 축제에서는 독주를 맡아 자신의 최고의 실력으로,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게 된다. 문예반에서 다시 연주를 하게 되고, 은수에게도 큰 박수를 받게 되자 용기를 얻은 은호는 은수에게 운동장에서 "은수야, 나는 네가 참 좋다"는 말로, 사랑 고백을 한다. 우린 고등학생이라며, 대학에 들어간 후에 생각하자는 은수의 말을 유보라고 여기며, 은호는 공부에 도전하기 시작한다. 

  늘 은호주위에 서성거리던 현주의 과외와 도움, 그리고 자신의 결심으로 조금씩 성적을 올려가던 은호, 일년간의 피나는 노력으로 학력고사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서울에서 두번째, 혹은 세번째로 좋다고 불리는 학교에 합격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은수에게 고백을 하고, 현주의 숨은 이야기도 듣게 되는데...

  갤러그라는 게임에 열광하고, 나이키와 죠다쉬를 갖고 싶어했던 80년대의 학창시절들을 돌아보며, 9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나의 추억과 비교해 보게 되었다. 갤러그라는 게임은 <철권 시리즈>등의 액션게임들과 스타크래프트의 온라인 게임으로, 기타 또는 그룹사운드에 열광했던 시선은 B-Boy의 현란한 무대로, 나이키의 브랜드는 여전하지만 아디다스 또는 다른 유명 브랜드는 많았던 모습과 겹쳐졌다. 시대는 달랐지만, 누군가를 좋아했던 마음과 누군가를 동경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변화시켰던 첫사랑, 아니 짝사랑의 열정도 볼 수 있었다. 어쩌면 그 모든 건 학창시절, 어렸던 마음이였기에 가능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좋아하기에 자신을 바꾸었던 은호의 열정이 대단해 보였고, 그런 열정을 "누굴 사랑하기 위해 내가 달라져야 한다면 나는 싫을 것 같아. 한 눈에 반한 사랑이란 건 스스로에게 씌워놓은 환상이야"라는 현주의 말에도 공감이 갔다. 보이지 않는 상대에게 다가서기 위해 자신을 변화시키고 노력했던 은호의 마음도, 늘 주변에 서성이며 보이지 않게 힘을 주었던 현주의 사랑방식, 시대는 흘렀고 그 방식은 또 변화된 시대에 맞게 달라지지만, 그 애틋한 마음들은 시대를 떠나 늘 우리 주변에 있는 것 같다. 

 
#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방식은 달라지지만,  인간의 마은은 늘 여전하다.
    
 
  새는 노래하는 의미도 모르면서 / 자꾸만 노래를 한다. / 새는 날아가는 곳도 모르면서 자꾸만 나아간다. <새는>이라는 제목의, 송창식의 노래이다. 은수에게 거절을 대답을 듣고, 멍하니 하늘을 보았을 때 창공을 가르며 나는 새들의 모습을 보지만, 은호는 갈곳을 잃어버리고 만다. 어찌어찌 학교에서 공부는 했지만, 정말 하고 싶은 과목을 찾지 못해 고민했던 대학입학의 과를 결정하던 내 모습과 겹쳐진다. 태어나면서 자신이 갈 곳을 정해놓고, 그 일에 매진하는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하늘의 유성의 모습이 아름다워 날기 시작했던지, 어미 새의 이끌림에 헤어지지 싫어 따라가던지, 동경하는 새를 보고 그 새와 함께 날고 싶어 날기 시작하던지, 일단 나는 법을 배우게 되면 어디로든 날 수 있게 된다. 『새는』을 읽으며, 학교라는 울타리에서 무엇을 위해 나는지도 모른 채 하늘을 나는 법을 억지로 배워야 했던 학창시절의 모습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주변에 어둠으로만 가득했을 때, 별빛의 아름다움 과 소중함을 깨닫게 되듯이, 아무것도 모른채 나는법을 배워야 했던 그 시절의 아려한 추억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80년대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그 시대 학창시절을 보낸 이에게는 아련한 추억을 그 이하의 세대에게는 사람들의 이야기속에 추억으로 남아있는 그 시절의 풍경을 생생하게 엿 볼 수 있다. 그때는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무자비한 폭력에 대응하기 힘들었지만, 2000년대의 지금은 교권이 바닥까지 떨어져 버렸다는 문화의 차이도 느낄 수 있다. 좁은 울타리, 선택의 폭이없는 생활에는 변함이 없지만, 조금씩 세상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다고 할까. 교권이 무너지고 있지만,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은 유지했던 90년대의 학창시절이 학교생활의 경계였던건 아니였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르게 각도로 바라보면, 새로운 점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손가락을 잃고 난폭하게 변해버린 아버지의 폭력과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게 되는 과정이 보이기도 하고, 이름만 알고 있던 송창식의 노래 가사에 맞춰 소설이 구성되었음을 알 수도 있다.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에 나오는 최동원의 이야기를 통해, 자이언츠의 수호신이였던 그의 활약과 일대기도 볼 수 있다. 스포츠의 삶과 소설의 이야기가 중첩되는 이야기는 다음 작품인 <아내가 결혼했다>에서 꽃을 피우게 된다.

  풋풋함과 친근함이 공존했던, 80년대의 모습과 아무리 제약을 해도, 다들 할 건 다 했구나 하는 윗세대와의 묘한 동질감도 느낄 수 있었다. 요새 아이들의 개방적인 인식 역시 그 연장선에서 이해한다면, 세대와의 교감을 느끼는 데도 도움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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