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턴트 -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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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콩고, 마운틴 고릴라, 콜탄, 탄탈 콘덴서.
 
  뜨거운 햇살이 구름에 가린 이른 아침에 어머니와 집 근처 뒷산에 올랐다. 어머니는 두 번째 봉우리에 다녀온다고 하셔서, 첫 번째 봉우리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핸드폰과 집 열쇠도 어머니가 지니고 있었기에, 내려다보이는 오밀조밀 모여있는 아파트와 집들과 숲으로 둘러싸인 맞은 편 산들을 바라보며 기다렸다. 맑은 공기를 마시는 일도, 구름이 사라지고 햇살이 강한 하루가 느껴질 때쯤 올라오는 등산객에게 시간을 물었다. 왕복 40분 거리인데, 한 시간을 기다렸음을 알게 되자, 집으로 먼저 내려왔다.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한, 핸드폰 없이는 하루도 견디지 못하는 현대사회에 살고 있다. '시간이 돈이다'란 글귀가 삶을 지배한다. '언제 잘리지 모르는 구조조정'과 선택되지 못하면 안된다는 불안이 만연한 사회에서 견디고 있다. 평생 한 번 땅을 밟을지도 모르는 콩고와 마운틴 고릴라, 콜탄과 탄탈 콘덴서는 책을 읽기 전에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다이아몬드와 너무 많은 자원이 있지만 힘이 없어 선진국과 다국적 기업에 의해 황폐화되어가는 아프리카 대륙에 관한 이야기만 떠올랐지만, 나와 관계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핸드폰과 컴퓨터 등의 전자기기를 사용하고 있다면, 탄탈 콘덴서의 사용에서 자유롭지 못한다. 탄탈 콘덴서의 탈탈은 콜탄이라는 물질에서 만들어지고, 콜탄을 채취하는 일은 매우 쉽다. 콜탄은 민주 콩고 공화국의 반군들이 점령하며 선진국에서 자원을 파는 대신에 사람들을 강간하고 살인하는 무기와 바꾼다. 내가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동안,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내전으로 인해, 사람들이 끝없이 죽어가고 있다. 소설을 통해, 지구 반대편의 현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다. 타인의 삶을 구조조정하는 살인 시나리오를 쓰는 컨설턴트의 이야기를 읽으며 세계경제의 모순과 직면했다.
 
 
#  『아내가 결혼했다』가 떠오르다.
 
  축구와 중혼이라는 거리가 먼 두 소재로 일부일처제와 결혼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아내가 결혼했다』 를 기억한다. 거리가 먼 두 소재를 긴밀하게 이어낸 작품을 또 만나는 일은 즐겁다. 타인의 삶을 비간접적으로 간여하는 죽음의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와 아프리카 대륙의 콩고에서 죽어가는 사람들과 킬러의 문화사적 이야기가 촘촘하게 잘 이어졌다.
 
  페이퍼 컴페니에서 회사의 지시를 받고, 의뢰인이 정한 고객의 살인 시나리오를 쓰는 작가가 마주하는 사랑과 도피, 선택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두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현실과 마주한다. '더 많은 돈'에 끌리는 삶과 '어쩔 수 없잖아'라는 자기합리화라는 말을 통해, 현대사회를 이끌어가는 삶의 방식과 대면하게 된다. 진정한 구조는 결코 조정되지는 않는다. 사라지는 건 늘 그 구조의 구성원들 뿐이다라는 말이 머리속에 계속 남아있다. 언제든 버려질 수 있는 상황에 떨며, 누구를 위해 일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과 마주한다.
 
 
#  웃으며 시작했다가, 고민에 빠지게 하는 소설.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 삶을 돌아보게 하는 소설은 알차다. 독특한 일을 하는 화이트 칼라 킬러의 삶을 들여다보다, 세계의 시각에서 지구의 경제상황과 마주치게 하는 소설이다. 웃으며 시작했다, 마지막에는 지금 잘 살고 있는걸까하고 돌아보게 하는 소설이다. 노동의 흔적이 없는 고운 자신의 딸의 손을 보며, 피비린내에 겨운 행복을 느끼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았다. 축구공을 만드는 아프리카 어린아이의 손과 제 1세계의 풍부한 삶의 질을 위해 어린 나이에도 일을 하는 커피농장의 어린아이의 거친 손도 떠올랐다. 그리고 많이들 하는 변명, 어쩔 수 없잖아라는 변명도 떠올랐다.
 
  난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갈수록, 생각도 깊어진다.
 
 
  "그래서? 내가 핸드폰 바꾼게 잘못됐다는 거야?" 
 
  백미러로 찡그린 그의 표정이 보였다. 나는 당황스러웠다.
 
  "아니, 그게 아니야. 그냥 이 상황을 말해주고 싶었어. 뭔가 말도 안 되잖아, 이런 건. 어떤 생각인지 그저 상식적인 의견을 듣고 싶어."
 
  "의견은 무슨, 얼어 죽을. 그 나라 사람들이 그렇게 사는 건 그쪽 사정이고, 어쩔 수 없는 거잖아. 지들이 총질하고 죽는 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야."
 
  그건 그들의 사정일 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그게 상식이었다.
 
  "나라고 핸드폰 바꾸고 싶겠어? 하루 종일 회사에서 시달리면 미칠 거 같아. 뭐라도 질러야 숨통이 트인다고. 그리고 할부 갚아야 하지, 아주 족쇄라고, 쳇바퀴야. 나도좋아서 이딴 거 지르는 거 아니야. 로또라도 당첨되면 모르겠다. 여유가 되면 콩고 사람들을 도와주고 하겠지만 당장은 나 먹고 살기도 죽겠어. 넌 컨설팅해서 떼돈을 버니까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내 모가지 간수도 힘들다고. 콩고 놈들은 바나나나 따먹으로고 그래. 걔들은 카드 값은 안 갚아도 될 거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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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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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나은 삶이 보이지 않는다. 밑바닥 인생이다.
 
 
  마흔 여덟, 20억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를 망친 오감독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팔고, 팔순 고령인 어머니의 집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52살에 전과 오범의 변태성욕자, 인간망종인 별명이 오함마인 형 오한모가 살고 있다. 치열한 영역 다툼 끝에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오감독에게 갑자기 못보던 열 여섯 소녀가 나타난다. 술집에서 돈을 버는 여동생 미연은, 남편 몰래 바람피다 걸려서 이혼당하고, 할머니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거기에 싸가지 없는 말이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거침없는 영혼, 열여섯 민경도 집으로 들어왔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방 구석에 평균 나이 48세의 다섯식구가 모여서 밑바닥의 삶을 살아간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가족들에게 볕들 날이 올까?
 
 
#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의 좌충우돌 사건들 속에 풍덩 빠지다.
 
 
   - 와, 씨발. 졸라 웃겨.
 
   - 그럼 너는 내가 네 삼촌이라는 거 아니?
 
   - 아저씨, 내 이름 알아요?
 
   - 조카 이름도 모르는 삼촌이 세상에 어디 있어요?
 
 
  더 미래가 나아보이지 않는 고령의 삼남매에게도 여러가지 일들이 얽히면서 묘하게 일이 풀려간다. 상식적인 사람의 눈에는 그리 나아보이지 않는 삶이지만, '막장' 드라마라 불리는 출생의 비밀과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가 폭로되어도, 왠지 이 캐릭터들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넘치는 구라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바꿨다고 할까. 캐릭터의 힘이 살아 숨쉬는 작품이다.
 
 
#  더 나아지지 않아도, 괜찮아.
 
 
  우울하고 찌질해 보이는 삶들이 놀란만큼의 해피엔딩도 그렇다고 사회의 부조리를 폭로하며 사라져가는 슬픈 결말이 아닌 점이 좋았다. 밑바닥의 삶, 더 나아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세 남매와 어머니 곁에는 그다지 멋져 보이지 않는 삶도 인정하고, 함께 있음을 기뻐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들의 삶은 그 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흘러간다.
 
  큰 돈을 벌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추앙 받을 수 있는 멋진 직장이나 명예를 얻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또 하루를 살면서 충분히 만족하며 지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라고 할까. 양극화 시대가 점점 심해질수록, 고령화와 사회적 약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삶의 길은 어둡고, 힘겹고, 빛이 보이지 않는 길이 놓일거라 생각한다. 어둠의 끝에서도 자신을 이해해주는 누군가와 함께 걷는다면, 그 삶의 여정이 우울하고 비참하지 않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따스한 봄날, 예쁘게 만발하는 꽃들을 보며,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봄이다. 소설이 풀어내는 대상들을 생각하면 어둡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외면하고 싶어진다. 작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 한국사회가 얼마나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있는지 확인하게 된다.
 
  좋은 책은 누군가의 삶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는 책이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그 기준에 만족하다고 확정하지 못하지만, 지금도 살아가고 있는 밝지 않은 곳에 머무는 이들이 따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생각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읽을 가치가 있는 소설이라 생각한다. 진흙 속에 피어나는 연꽃같은 책이라고 할까. 진흙탕에 빠지는 일이 감내할 수 있는 독자의 삶의 폭을 넓혀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로 독자를 즐겁게 해 줄까?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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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시체들의 연애
어맨더 필리파치 지음, 이주연 옮김 / 작가정신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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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료한 일상을 견디기 위해, 스토킹을 시작하다.
 
 
  무기력만큼 생의 의지를 꺽는 일이 있을까? 오늘이 어제보다 더 나아질거라는 욕망이 사라졌음을 깨달았을 때, 인간은 희망을 잃는다. 뛰어난 미모에 현대미술 갤러리 대표인 린은 대머리에 키작은 남자 앨런이 스토킹을 하는데도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 도리어, 생기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부러워한다.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는 마음에 빠진 그녀는 비서 패트리샤의 권유로 누군가를 스토킹하기로 결심한다. 그녀가 선택한 사람은 검사인 롤랑이다. 그는 청산가리가 든 로켓목걸이를 늘 목에걸고 있는 좋은 대학에 운동도 잘하는 멋진 남자이지만, 사이코처럼 쉽게 살인을 저지른다. 앨런은 린을 스토커하고, 린은 롤랑을 스토커하고, 그들 주변에 사건이 벌어지면서, 그들의 스토킹관계는 반대방향으로 바뀌기도 한다. 세 남녀의 좌충우돌한 자신들만의 로맨스를 읽다보면, 웃음과 함께, 현대 사회의 풍경이 떠오르는데....
 
 
#  욕망에 중독된 현대의 풍경을 그리다.
 
 
  재미있는 소설이다. 린, 앨런, 롤랑, 그리고 정신과의사에서 홈리스로 변한 레이, 린의 친구 주디, 앨런의 여자친구였던 제시카와 루스 역시, 각자 자신들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사랑’이라는 로망을 가지고, 각자 나름대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조금은 과장된 그들의 행동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신들만의 사랑에 대한 논리가 얼마나 무의미하고 허술한지 웃다보면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뭔가 매력적인 모습에 반해, 쫓아다니는 모습과 타인과 자신을 가르는 자신만의 논리 등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는 풍경을 그대로 드러낸다.
 
  스토커, 약물 중독, 술 중독, 섹스 중독, 노출 중독 등 현실사회에서 쉽게 용인되기 힘든 인물들이 벌이는 에피소드들이 무겁지 않게 다가온다. 결핍이 심해지면, 그것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게 되고, 그 강박이 지독되게 되면 중독에 빠지게 된다. 돈과 쾌락이 많은 걸 해결해주는 시대에, 눈뜨고 살기 위해, 다양하게 미쳐있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은 현대사회가 그만큼 병들어 있다는 풍경을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했다.
 
 
#  재미있게 웃고 난 후...
 
 
  극단의 끝까지 달려보는 소설이라고 할까. 현실사회에서 일어나기 힘든 일을 상상의 캐릭터들이 하나씩 부딪치면서 끝까지 간 후의 결과를 대신 겪게 하는 소설이다. 사랑에 빠지는 경우도 제각각이지만, 사랑의 끌림을 정리하는 방법도 다들 제각각인 사람들, 옆에서 볼 때 보았던 연애의 풍경과 등장인물들이 겪는 자신들만의 논리의 변화를 지켜보는 일은 소설을 읽는 일을 즐겁게 한다.
 
 
  극단적인 사건들이 혐오감이나 충격으로 느껴지지 않게 잘 짜여진 소설이다. 곱씹어볼만한 글도 있다.
 
 
   "있잖아, 산다는 게 항상 최선의 일만 벌어지는 건 아니잖아. 최선은 아니라도 그냥 만족할 만한 수준만 돼도 좋은 거야. 꼭 애인이 아니라도 그냥 친구들하고 지내도 되지. 그것도 그렇게 나쁜 인생은 아니야."
 
   앨런이 린의 말에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지었으므로 린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난 일생일대의 위대한 사랑을 만나는 게 아무한테나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나도 물론 그런 사람을 만나고야 싶지. 하지만 못 만날 수도 있는 거야. 그리고 너도 못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지. 하지만 연애나 뜨거운 로맨스가 아니더라도, 우정이라든지 우릴 지지해주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만큼 좋은 거라고 생각해. 아니면 다른 분야에서 열정을 갖게 될 수도 있고. 너하고 루스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너한테는 레이나 나같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의지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잖아."

 
 
   순조롭게 흘러가다가, 독자의 예상을 깬 다른 이야기를 반전이라고 한다. 반전의 요소가 가득한 소설이다. 하나의 반전이 나올때마다, 그들이 빚어내는 사건들에 웃다보면 어느새 이야기는 끝나있다. 칙릿 계열의 가볍고 톡톡튀며 잘 짜여진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에게 어울리는 소설이다. 미국의 다양한 개성의 특성을 이해하는 이가 더 즐겁게 읽을거라 생각한다. 일정 나이가 되면, 사회의 관습에서 벗어나기 힘든 한국사회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가득한 소설이다. 경험할 수 없는 일은 더 매혹적으로 보인다. 매혹의 향이 가득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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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램
닉 혼비 지음, 박경희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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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하지 않았던 일이 벌어졌을 때,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세상 일이 늘 마음과 같지 않다. 원하지 않더라도, 뭔가에 끌린 것처럼 일을 저지른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중요한 건, 사건이 아니라, 사건 이후 문제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이다. 스케이드 보드의 한 획을 그은 토니 호크의 자서전을 읽은 후, 그의 포스터를 방에 붙여놓고 대화하는 샘은 스케이드 보드를 좋아하는 열 여섯 소년이다. 남친과 헤어진 모델을 지망하는 예쁘장한 여자친구  앨리시아와 한 번의 사건을 겪은 그는, 아이의 예비아빠가 된다. 게다가 열 여섯 차이나는 엄마는 아이를 가져, 같은 나이에 동생과 아들을 만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샘은 모든 상황이 두렵고 도망가고 싶을 뿐이다. 과거에서 미래로, 뛰어넘는 상황에 처한 그는 과거를 바꿀 기회를 얻기도 하고,  미래의 모습을 미리 발견하기도 한다. 시간을 넘나들며, 조금씩 성장해간다.


#  덜 자란 남자가 성장하기까지...
 
   좌충우돌, 책임감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풋풋한 어린 아이가 임신이라는 사건에 부딪쳐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나는 소설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스케이트 밖에 모르는 어린아이가, 어떻게 조금씩 성장해 가는지, 커다란 사건이나, 큰 변화를 주지 않고, 과거와 미래라는 시점을 이동하는 것으로 통해, 자연스럽게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경험하지 못한 일을 직면하게 되면,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시간이 지난 후 과거를 돌아보면, 다 할 수 있는 일이라 여유롭게 생각하게 된다. 기저귀를 갈고, 여자친구님의 부모님의 원망, 여자친구의 푸념, 남편 역할까지, 아직 어리기에 학교도 다녀야 하는데, 다 힘들어 보이고, 어려워 보인다. 결국 샘은 힘들다는 현실을 인정하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을 정도로 성숙해진다.
 

#  할 일도 많고, 싸울 일도 많지만 나는 해낼 수 있다.
 
 
  영국의  '청소년 임신'에 관한 상황을 알 수 있는 소설이다. 하룻밤의 실수로 애를 갖는 사람이 적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견디기 힘든 상황 때문에, 청소년 임신의 80퍼센트는 아기는 아빠와 연락이 끊긴다고 한다. 직업을 갖기도 어렵고, 더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하는 청소년 임신의 현실과, 아빠가 되는 과정으로 더 성숙해지는 샘의 모습을 함께 볼 수 있는 소설이다.
 
  『오빠가 돌아왔다』와 『고령화 가족』등 전통적인 가정상이 아닌, 가정의 모습을 그린 소설이다. 사회에서 무난하다 생각하는 나이대에 취업하고, 아이를 갖고, 아빠가 되지 않는 길을 선택을 했다해도, 자신의 결과를 인정하고, 포기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는 이의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선택을 하는 이들에게 관대하지 못한 내재된 사회의 틀도 함께 엿보게 된다.
 
  아빠가 되기 전, 많은 남자들은 주인공 샘과 처지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현명하게 하루 하루를 선택하기 보다, 우연이 만들어진 결과에 이끌려 산다고 할까. 하지만, 아빠가 되는 순간의 책임감을 지고 살기에, 가장이 대단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이를 굶길 수 없을테니까, 책임감을 느끼는 순간, 아이는 아빠가, 어른이 된다.
 
  가벼운 소재가 아닌 소설을 웃으며 읽을 수 있는 건, 닉 혼비의 문체 덕분이라 생각한다. 툭 다 힘들다고 외치며 다가오는 글을 읽다보면, 세상의 많은 힘겨운 일들은 발생해서 힘든 게 아니라, 힘들다고 생각을 미리 했기에, 힘들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렵지 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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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들 플라워
김선우 지음 / 예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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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친화적인 외국인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촛불집회.
  
 
  2008년 '광우병' 수입 소고기 수입에 관한 논란으로 서울의 시청 광장에 촛불이 올라왔다. 시위를 원천적으로 막는 법률때문에 시작된 촛불문화제는 6월 21일 추가협상 타결까지,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한동안 사회의 이슈였다.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이 '삽시간에' 사라져 버린 현상에 대해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고, 한 번 꺼진 촛불은 현재까지 다시 타오르지 않았다. 촛불 시위의 현장에 있었던 시인은 '촛불'을 소재로 하여 이야기를 만들었고, 2년 전 물대포와 명박산성, 폭력, 불안, 투쟁, 배후론 등 다양한 목소리가 담겨있던 촛불에 참여했던 사건을 돌아보게 한다.
 
 
#  '촛불'의 풍경을 되돌아보다.
  
 
   캐나다에서 자연친화적인 오지에서 어머니와 할머니, 아버지 역할을 무리없이 해내는 동성애자 조안 아줌마와 함께 자란 지오는 15살 성년이 되자, 한국을 여행하기로 결정한다. 7살 때 기억을 잠시 잃었던 지오는 그때 자신의 기억을 떠올려서 자서전을 썼고, 조안 아줌마는 책으로 만들어준다. 꿈속에서 자신과 반대쪽인, 오른쪽 엉덩이에 점이 있는 남자아이가 나타난 꿈을 꾼 지오는 그 아이를 만나기 위해 한국으로 오기로 한다. 지오는 카우치 서퍼로 희영과 인연을 맺게 된다. 희영은 사과라는 유기견으로 인연을 맺게 된 아마추어 영화감독 연우와 거침없이 말하는 강남녀 수아와 함께 지오와 파티를 한다. 연우와 희영과 수아는 촛불을 들고 촛불문화제에 참여하고, 지오는 반쪽 아이를 찾기 위해 예쁜 인형과 카드를 만들어 촛불 광장에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찾는다.

 

  지오는 같은 또래의 학생들인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면서 민기, 태연 등과 친해지게 된다. 거리에 나왔던 광분하던 소를 껴안고 웅얼거리다, 할머니 숙자씨는 쓰러지게 되고, 연우와 지오는 할머니를 구급차로 운반하는데 돕는다. 언론과 경찰에서는 할머니를 남파된 고정간첩의 의혹이 있다는 방송을 하고, 민기의 아버지는 지오의 일기장의 한 페이지를 첩보로 몰아 숙자를 간첩으로 제보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배후가 누구인지 밝혀라', 촛불 시민과 물대포와 폭력 등 촛불 현장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이 소설의 이야기의 흐름과 함께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캐나다 오지의 자연친화적인 환경과 여성의 기운이 가득한 편견없는 15세 소녀의 눈에 비친 모습을 통해, 한국이 얼마나 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어긋나 있는지, 촛불문화제 안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의견과 생각들을 이야기를 읽으며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소설이다.
 
 
#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경험은 그냥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된다. 마음의 역사에.>
 
  2008년 뜨겁게 타올랐던 촛불의 풍경은 누군가에게는 지우고 싶은 기억일 테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고, 촛불과 촛불을 이어, 혼자가 아니었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따스한 추억일 것이다. 하나의 경험은 경험에 그치지 않고, 마음의 역사에 남아, 다음에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을 때, 자신의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칠거라 생각한다.
 
   간첩으로 몰아 기사를 썼던 이지훈과 죽은 할머니의 친구였던 고물상 시인 할아버지의 대화가 기억에 남는다.
 
  "탐심. 그거 문제 맞지요. 촛불들이 날마다 증오를 퍼붓는 지금 대통령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 사람들이 모두 투표권자들이에요. 자기 눈은 못 보고 왜 남의 눈만 쳐다보면서 손가락질 합니까? 평범한 촛불 시민들이라구요? 그 사람들 속에 죄다 괴물이 한 마리씩 들어앉아 있는 겁니다. ...... 자기 사는 동네 뉴타운 만들어주겠다고 하면 덕 보는 열에 아홉은 다시 지금 대통령 찍을 겁니다. 당장 눈앞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사람한테 표 주는 거지요. 정의니, 분배니, 민주니, 이상이니, 입으로 아무리 떠들어도 아무도 안 보는 투표소 안에선 괴물이 다시 고개를 쳐드는 거라구요."
  
  "참으로 그렇소. 그러니 저마다 자기 마음부터 잘 살펴야지비. 내 마음이 실은 내 적이라오."  

  "이 보오. 기자양반. 세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오."
 
  "첫째. 반성 없이 그냥 넘어갈 수 있소. 둘째.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해 볼 수 있소. 보수 신문이든 진보 신문이든 자기갱신이 필요한 거 아임메.  ... 진보도 보수도 서로에게 선생이 될 수 있씀둥. 참여정부 시절엔 광우병 위험하다고 사사건건 비판하다가 지금 정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 절대 안전하다고 돌변해서리 정권의 나팔수 노릇 자처하는 거이 제대로 된 언론이라고 말할 수 있게씀둥? ... 국민이 달라지고 있는데 맨날 오십 년 전 빨갱이 타령을 해서야 쓰게씀둥. 그러러면 보수 신문에서 일 하는 기자들부터 변해야 함메. 신문사 사주가 변하지 않으면 기자들이 변해서 사주를 변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게씀둥. 사주의 입맛에 길들여지는 게 아니라 말입지. 신문사 다니는 당신들, 다들 많이 배운 똑똑한 사람들 아임메? 지식인들 아임메?"
 
  "그리고 마지막 방법이 입지비. 가장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니 가장 어렵겠지비.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거. 잘못된 증거였다고 인정하는 거. 조작된 거라고 인정하는 거. 거기서부터 새로 출발하는 거. 그걸 뭐라더라, 기렇디, 양심선언이라 하던데 말입지." 

 

  정권은 누군가의 쿠테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우리 모두에게 촛불처럼 작은 힘이 있다. 촛불을 잇고 이어, 큰 횃불을 만들기 전에,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일이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하나의 사건은 사건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 선택의 큰 밑거름이 된다. 방향을 정하지 못하면, 겉보이는 모습에 끌려 그대로 휘말리고 만다. 보수던지, 진보던지 자신의 방향을 정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할까. 잘되면 내가 잘 선택해서이고, 못되면, 남의 탓이라는 생각을 버리기만 하더라도 다음 선거부터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는 일이 시작될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A만 아니면 돼라는 거부권의 행사가 아닌, 내가 꿈꾸는 세상에 가장 가까운 이를 선택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헛된 공약을 이야기하거나, 특정 계층만을 위한 정책을 내세우는 이는 최소한 멀리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달콤한 언어가 부담스럽지 않게 풀어내는 시인의 섬세함이 잘 녹아있는 소설이다. 잘 짜여진 플롯을 읽다보면, 다음 세상을 자연스레 꿈꾸게 된다. 그 많던 촛불을 든 이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을까? 자신을 불사르며 빛을 밝혔던 순간을 후회하게 만드는 사회에서 잘 견디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지듯이, 시간이 지나면, 어두운 밤도 지나가고 따스한 햇살이 비출거라 믿는다. 마음 속에 촛불은 끄지 않고, 꼭 간직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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