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과 경쟁은 오랜 생존원리다. 인간사회와 문명은 양 요소를 모두 갖고 있으며 시대나 상황에 따라 강조하는 부분이 달라진다. 하지만 다윈의 진화론 이후 협력보다는 적자생존의 논리로 경쟁이 보다 우선시되어왔다. 이는 기업의 구조조정, 자유시장의 맹신, 정부무용론, 다인구 집단의 소인구 집단에 대한 열등 평가 근거, 그리고 그 평가가 일으키는 참혹한 학살과 차별에 대한 근거로 사용되어 왔다. 

 하지만 다윈은 자연에서 친절과 협력을 끊임없이 관찰해내었고 이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다윈은 자상한 구성우너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고 말했다. 즉, 협력은 적응력을 높이는 행위라는 것이다. 공격성은 생존에 유리한 면도 있지만 불리한 면도 상당하다. 우선 항상 싸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비용이 높다. 행위 자체도 비용이 높을 뿐더러 이기든 지든 개체는 죽거나 부상당할수 있다. 여기에 항시 나를 노리는 타개체로 인해 사회적 스트레스가 크고, 이로 인한 에너지의 고갈과 면역력의 약화를 불러온다.   

 때문에 다정함은 집단생활을 하는 많은 생물들에게 상당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실제 다정함을 바탕으로 서로 협력하는 종은 자연계에서 상당히 많이 관찰되며 우리 인간도 예외가 이나다. 이처럼 협력은 생존의 핵심이다. 

 협력의 역사는 어쩌면 경쟁만큼 오래되었을지 모른다. 지구상 동식물 세포의 미토콘드리아와 엽록소는 협력의 가장 오랜 증거다. 우리 몸의 미생물 군집, 개화식물과 곤충, 그리고 거대 개미군이보여주는 양태들은 모두 협력의 위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 이 협력은 인간이 공존했던 다른 사람종을 제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을지 모른다. 인간은 최소 4종 이상의 다른 사람종과 공존했다. 그중 가장 강력한 사람종이 네안데르 탈이다. 이들은 인간보다 두뇌가 더 컸으며 근육질이었고 생존력이 강했으며 도구를 다루고 서로를 돌보기도 했으며 동굴벽화를 그리고 언어를 아마도 사용했을 빙하기의 지배자였다. 하지만 네안데르탈은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사냥방식때문에 중간포식자의 역할을 넘어서진 못했다.

 이들과 비슷한 위치이던 인간은 5만년전 역전을 시작했다. 인간은 네안데르탈의 나무창을 강력한 투창기로 발전시켰는데 시속 160km 속도에 사거리가 1km나되는 무기였다. 이를 통해 위험하고 크고 강력한 동물들을 안전하게 사냥할수 있었고 마침내 최상위포식자로 등극하게 된다. 2만5천년전이 되자 인간은 마침내 대세가 되었는데 책은 그 이유로 초강력 인지기능인 협력적 의사소통인 친화력이 나타났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이 친화력을 바탕으로 인간은 전혀 모르는 인간과도 하나의 목표를 위하여 협동이 가능하게 되었다. 친화력은 타인과 마음을 연결하고 지식의 세대물림을 가능하게 한다. 복잡한 언어 발달의 배경이자 모든 형태의 문화와 학습의 기반이 되며 뛰어난 기술의 발명을 가져온다. 

 책은 이 친화력을 인간종이 스스로 자기 가축화를 통해 실현하여 획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이 형질이 획득되려면 당연히 더 친화적인 사람 개체가 후손을 얻는데 더욱 성공적이었어야만 한다. 또한 이 친화력의 전제조건은 상당히 고강도의 자제력이다. 한 실험에서 여성들에게 제법 무시무시한 환경에서 놀람 반응을 일으킨 후, 그 반응의 정도에 따라 게임을 해서 승자가 패자에게 벌칙을 주느냐 마느냐의 결과를 살폈다. 자제력과 관련하여 놀람에 격한 반응을 보인 집단 일수록 공감반응의 부위가 덜 활성화 되었으며 놀람에 약한 반응을 보인 집단 일수록 공감 반응이 높게 나타났다. 이는 매우 당연한 결과인데 고도의 자제력은 상대방에 대한 관용과 이해라는 친화력을 발휘하는데 전제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상대방에 대해 친화적이기 위해서는 낯선 믿을 수 없는 타인에 대한 공포과 경계심을 억누르는게 필요하다. 또한 그와 관계를 맺음에 있어 눈앞의 단기적 이익을 탐하지 않고 참아내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이 같은 능력이 없다면 낯선 타인 개체와의 관계는 당연히 망가질수밖에 없다. 즉, 친화력을 위해서는 일정 정도의 자제력이 필수전제조건이 되는 셈이다. 

 자제력은 뇌에서 전전두엽피질이 담당한다. 이 부분의 뇌의 경영관리부로 도박을 하라고 꼬드기는 측좌핵과 무모한 위험을 감수하게 하는 편도체의 활성화를 제어한다. 실제 투명원통막 먹이 실험에서는 뇌가 작은 동물일수록 자제력이 떨어졌으며 뇌가 큰 동물일수록 높은 자제력을 보였다. 하지만 뇌가 크다고 해서 모두 우수한 것은 아니다. 실제 인간은 뇌자체도 상당히 큰 편이지만 동물중 네 번째 정도의 뇌 크기를 가졌고, 신체 뇌 비율에서도 의외로 다섯 번째다. 크기 뿐만 아니라 효율도 중요하다는 이야기인데 뇌가 커질수록 신경세포수는 많아지나 그 밀도가 감소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하지만 영장류는 이 신경세포를 더욱 과다하게 증가시키는 쪽으로 진화하여 이 문제를 해결했다. 영장류의 다른 비슷한 뇌 크기를 가진 동물에 비해 신경세포가 6배나 된다. 그리고 인간은 그 영장류보다 2-3배 더 큰 뇌를 갖는다. 자제력을 발휘하기에 좋은 조건인 셈이다.

 이렇게 고도의 자제력을 갖춘 상태에서 인간의 친화력이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보통 동물은 자기가축화를 통해 신체의 변형을 보인다. 러시아의 여우 가축화 실험에서 여우들은 가축화하며 탈색이 되고 머리는 작아졌으며 주둥이가 짧아지고, 송곳니가 작아지며 꼬리는 위로 말리고 뼈대가 가늘어지며, 펄럭이는 귀를 갖고 사시사철 짝짓기를 하는 형태로 변화가 일어났다. 호르몬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보통 여우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코 스테로이드가 생후 2-4개월 사이 증가해 생후 8개월이면 성체가 된다. 하지만 가축화한 여우는 코르티코 스테로이드의 증가기간이 지연되어 진화할 수록 그 수치가 크게 떨어졌다. 즉, 포식성과 방어적 호전성이 감소한 것이다. 반면 세로토닌은 무려 5배나 증가했다. 

 인간도 해부학적 변화가 일어났다. 두개골 분석 결과 인간이 친화력을 획득해 대세가 된 시점으로 판단되는 플라이스토세(3만 8천년-1만년전)에서는 눈썹활 높이가 이전보다 무려 40%나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테스토스테론은 얼굴 길이와 눈썹활의 돌출 정도를 조절하는데 이 호르몬이 사춘기에 만이 분비될수록 눈썹활이 두드러지고 얼굴이 길어진다. 그리고 테스토스테론은 남성호르몬으로 호전성과 공격성을 나타내는 호르몬이다. 즉, 이 시기 공격성의 호르몬이 줄어들고 해부학적 변화가 나타난 것으로 현대수렵채집인 농경민에 이를 수록 더욱 인간의 얼굴은 동안으로 변화했다. 또한 인간은 네안데르탈에 비해 검지 약지 비율이 가장 여성적이다. 검지 약지 비율 역시 테스토스테론의 영향을 받는 것으로 약지 비율이 클수록 남성적이고 공격적이며 약지 비율이 클수록 관대하고 친화적이다. 인간의 뇌의 크기 역시 지난 2만년에 걸쳐 5%가 줄어들었으며 여기엔 세로토닌이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세로토닌은 뇌의 크기를 줄이기 때문이다. 이 결과 네안데르 탈의 두개골은 미식축구공 모양인데 반해 현생 인류는 지금 같은 풍선형의 구형의 머리를 갖게 되었다.영장류중 유일한 하얀 공막도 친화성 진화의 해부학적 증거다. 오직 인간만이 눈을 통해 서로의 감정과 의견을 주고 받을 수 있다. 인간의 뇌에는 눈을 볼때의 반응만을 담당하는 신경세포가 존재하며 이 기능은 생후 초기부터 발달해 고작 4개월만 되어도 상대의 눈을 보고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인간의 동반자 개 역시 인간에게 본격적으로 길들여지기 전 자기가축화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여우실험 결과 가축화를 위해서는 적어도 10세대 이상이 필요하다. 하지만 늑대는 매우 크고 위협적이며 호전적인 동물로 인간만의 힘으로 가축화가 일어나기는 힘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늑대의 개로의 가축화는 늑대 자신의 자기가축화와 인간에 의한 자기가축화가 같이 일어나며 생성된 것으로 보인다. 우선 수렵채집인이 먹고 버린 음식물 쓰레기와 배변이 시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는 늑대에게도 매우 매력적인 것으로 지금도 개는 배변을 섭취하는 것에 관심이 많다. 특히나 인간은 요리를 하는 동물로 그 배변과 음식물 쓰레기는 맛과 영양이 야생의 것에 비해 매우 우수하다. 인간에 대한 공포심을 억누를수 있는 비교적 친화적인 개체들이 인간의 부락에 자주 어슬렁 거렸을 것이고 이런 행위들을 할 수 있는 친화적 개체간에 교배가 자연히 이뤄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세대가 거듭되어 이들이 더욱 친화적이 되고 거둘수 있을 만한 시점에 인간에게 길들여져 본격적인 가축화의 길을 걷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여우, 개, 인간처럼 자기 가축화하여 형질변화가 일어나는데는 신경능서세포의 역할이 크다. 신경능선세포는 모든 척추동물의 배아에 잠깐 나타난다. 이후 이 세포들은 신경관 표피에서 떨어져나가 독립세포집단을 형성한다. 여기서 뇌와 척수가 형성된다. 신경능선세포는 줄기세포로 다양한 분화가 가능하며 이동 능력이 있어 목적에 따라 전신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신경능선 세포는 부신 수질 발달에 관여하는데 부신수질은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는데 부신수질을 작게함면 분비를 줄여 공격성과 두려움을 완화할수 있다. 신경능선세포는 귀를 움직이는 이개연골, 주둥이, 뼈, 치아, 피부에 관여한다. 즉, 가축화로 드러나는 모든 형질에 관여가 가능한 것이다. 

 결국 인간은 뇌의 발달로 획득한 고도의 자제력을 바탕으로 친화력까지 얻어 높은 인구밀도와 하나의 목표를 위한 집단을 형성하게 되고, 이를 통해 문화와 학습, 기술의 지수적 증가가 이뤄져 지구의 지배자가 될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친화력에는 적잖은 부작용도 있다. 바로 타집단에 대한 강한 공격성이다. 인간은 어찌보면 지구상에서 가장 관대하면서도 가장 잔인한 동물이다. 인간의 사회적 범주 진화에는 옥시토신 호르몬이 관여하는데 옥시토신은 세로토닌을 활성화하고 공감능력을 높인다. 하지만 역으로 공격성도 증가시키는데 바로 자신과 가족, 내집단을 위협하는 타인에 대한 것이다. 실제 갖 아기곰을 낳은 엄마곰은 옥시토신 분비가 매우 왕성하다. 그는 자신의 아기에겐 한없이 관대하고 사랑이 넘치지만 접근해오는 칩임자에겐 그 어느때보다 위험하다. 바로 옥시토신때문이다. 

 인간의 마음이론은 발달하며 친화성을 만들어내었지만 동시에 이 특별한 능력을 둔화시키는 능력도 같이 만들어낸것으로 보인다. 타인을 비인격, 비인간화하는 능력이다. 옥시토신을 흡입한 한 민족 집단은 다른 민족집단 구성원이 드러내는 얼굴의 공포나 고통에 대한 공감이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고질적으로 민족갈등이 있는 지역에서 성장한 청소년들의 경우에도 높은 옥시토신 수치를 보이며 상대 민족 집단에 대해 거의 공감하지 않았다. 

 크레일리는 연구에서 미국인이 다른 민족 집단에 대해 얼마나 사람으로 느끼는지를 수치화하였는데 미국인들은 유럽인은 100 일본인은 98 중국인과 한국인은 90대 중반으로 본 반면 무슬림은느 90정도로 파악했다. 또한 사회지배성향이 높은 대안 우파는 페미니스트와 언론인, 민주당 지지자를 영장류에 가까운 수준으로 평가했다. 백인과, 아시아인, 흑인, 라틴 그룹 모두 미국내에서 무슬림을 가장 비인간화했다. 서로를 증오하는 백인과 흑인은 서로를 비인간화하였는데 이를 보복성 비인간화라 한다. 

 책은 이런 비인간화에 대한 몇 가지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선 교육공간이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초반 교육에서의 흑백분리를 철폐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한 철폐이후 소수의 흑인들은 백인 학생들에게 무시받거나 차별받았다. 그들을 같은 그룹으로 편성하여 서로 의지하게 하는 직소모형의 수업을 도입하고나서야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처럼 잘 설계한 교육공간은 서로 다른 사람들이 우호적인 접촉을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데 이상적인 공간이 된다. 의외로 군대 같은 공간도 미국에서는 인종적 편견을 감소시키는데 긍정적 역할을 하였다.

 평화적 시위도 좋은 방법이다. 1900년이래로 정권교체 시도에서 평화시위의 성공률은 무력 시위에 비해 2배나 된다. 더욱 인상적인 것은 폭력에 의한 국가정권 교체는 그 체제가 다시 붕괴할 가능성이 무려 4배나 되었다는 것이다. 폭력 시위는 성공해도 다시 폭력적 징후를 불러왔으며 평화시위는 성공하면 대개 민주적 체제를 성립해 다시 내전으로 치닫는 경우가 드물었다. 여기에 평화적 시위는 공개적이고 다수가 참여하는 반면 폭력적 시위는 당연히 은폐되고 소수가 참여하며 많은 반감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도시의 공감을 잘 짜는 것도 방법이다. 가장 바람직한 도시의 모습은 다양한 국가와 민족, 인종, 성정체성이 섞인 활기 넘치는 공동체를 이루는 공간이다. 이런 도시를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바라볼수 있는 12층 이하의 건물로 도시를 구성하는 것이 좋다. 이런 공간에서 서로간의 교류를 통해 다양성이 생겨나고 이는 교류를 더욱 활성화시켜 혁신과 경제성장을 일으키고 사회적 관용을 상승시킨다. 반면 고층건물로 이뤄진 도시는 서로간의 접촉을 차단한다. 적대적 건축은 경사진 창턱, 날카로운 쇠붙이, 경계석등으로 구성되어 타인과의 접촉을 차단하여 적대성을 높인다.  

 책은 서두에서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예를 든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원들은 서로 친했다고 한다. 그들은 같은 동네인 워싱턴에 거주하며 아이들을 같은 학교에 보내고 테니스등 비슷한 취미생활을 공유했다. 의회에서 불같이 토론하고서도 같이 술을 마시고 공감하며 교류했다. 때문에 미국은 치열한 양당제임에도 당시까지 사회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치적 시도가 이뤄질수 있었다. 하지만 공화당이 지속적으로 열세에 놓이자 깅리치란 자가 등장한다. 그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민주당 의원을 증오할 것을 요청했고 그러지 않으면 배신자 취급을 했다. 또한 공화당 의원들을 지역으로 이주시켜 지역을 살피게하여 민주당 의원들과의 교류를 차단했다. 이에 민주당도 맞불을 놓아 이후의 모습은 지금의 강대강 국면이다. 우리 정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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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시작한 민주주의는 좌파와 우파로 나뉘어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 좌파와 우파는 제대로된 민주국가라면 어디에나 있으며 다만 그 나라의 상황에 따라 스펙트럼이 전체적으로 좌나 우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 오랜 사민주의 역사를 가진 북유럽 국가 및 서유럽국가라면 스펙트럼이 좌로 가있을 것이고 미국이나 일본은 우에 치우쳐져 있으며 한국은 그들보다도 더 우에 기울어져 있다. 

 이런 좌파와 우파는 사회문화적으로 형성된 것 같지만 실은 진화론적으로 형성된 것으로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진화상 형성된 인간의 협력형태가 민주주의에 정치적 형태로 반영된 것이라는 뜻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처럼 집단을 이루고 살며 그로 인해 같은 종의 다른 개체들과 협력 혹은 경쟁을 하며 살아간다. 둘은 서로 다르지만 매우 중첩적이기도 하다. 다른 집단 및 개인과 경쟁하기 위해 협력을 하기도 하며 모두와 극단적으로 경쟁하는 형태는 좀 처럼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협력도 다른 개체와 평등한 수평적 협력이 있을 수 있고, 한 개인이나 소수에 많은이들이 종속되어 착취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수직적 협력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이중 경쟁은 우파와 협력은 좌파와 주로 관련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책 '나는 진보엔에 왜 보수의 말에 끌리는가'는 진보와 보수의 특성과 한 개인이 어떻게 해서 진보적 성향, 혹은 보수적 성향을 갖게 되는지 설명한다. 이 책에 의하면 보수는 엄격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사람에 갖는 성향이다. 아버지는 가정의 수장으로 합법적 권위를 가지며 권위에 대한 도전을 허락치 않는 존재다. 어머니는 아버지와 수평적 존재라기보다는 아버지위 권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는 존재에 불과하다. 아버지에게 이런 수직적 권위가 부여되는 것은 바깥 세계가 너무나도 위험한 악으로 가득찬 경쟁적 세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버지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식들이 이런 세계에서 경쟁하여 승리자가 될만한 역량을 갖도록 도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절제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강한 상벌을 한다. 즉, 보수의 세계관은 다른 사람들과의 협력보다는 경쟁을 크게 강조하며 여기에 승리자가 되어야 하는 가치관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진보는 자애로운 부모의 양육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갖는 성향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자애롭게 베풀고 개인적 책임과 사회적 책임 모두를 강조한다. 부모는 특정성공의 강조나 승리보다는 개인적 탁월함을 강조하며 이를 위해 자녀 스스로 꿈을 좇도록 위임한다. 타인과의 관계도 경쟁보다는 협동을 중시하고 타인에게 감정이입하고 그들을 이해하여 타인의 눈으로 세계를 보게 한다. 즉, 다른 사람과의 경쟁보다는 협동을 중시하는 세계관인 셈이다. 

 유시민의 '나의 한국현대사'에서는 좌파와 우파를 좀 더 한국적 상황에서 살펴본다. 유시민은 우파를 산업화 세력으로 규정하고 좌파는 민주화 세력으로 규정한다. 사실 우파는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민주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법과 질서를 강조하지만 한국의 우파는 외세에 기대었고, 산업화와 독재를 위해 민족주의를 이용했기에 산업화 세력이란 표현이 걸맞다. 반면 좌파는 이에 반대하여 사회적 약자를 챙기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우파가 챙기지 못한 자국의 민족 이익을 우선하였기에 민주화 세력이란 용어로 표현될수 밖에 없었다. 

 책 '대한민국의 설계자들'에는 한국이 외세에 의해 독립되지 않고 분단되지 않았다면 집권하여 나라를 운영하였을 만한 정통 우파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열거한다. 이들은 구한말 조선왕조로부터 외면받아 외래 문물에 많은 영향을 받았던 서북면 출신이고 구한말엔 실학, 개화기엔 기독교와 서구문물을 가장 먼저 전래받았던 사람들이다. 여기에 한국전쟁 이전부터 북한 공산주의로부터 공격을 받아 전쟁이전부터 철저한 반공정신을 가졌던 사람들이다. 이들은 제대로된 우파사상을 가졌지만 외세에 의존적인 한국 독재세력의 선택을 받지 못함으로써 정통적 우파로 자리잡지 못한다. 그리고 이것이 한국의 정치적 상황이 매우 우로 치우치게 되고, 그로 인해 좌파가 우파가 했을 역할을 해야하는 촌극이 빚어지는 상황을 연출한 계기이기도 하다.

 책 '좌우파 사전'은 좌파와 우파의 특성을 살리고 한국의 좌파와 우파가 여러 사회적 현안에 대해서 어떤 위치를 취하고 있는지에 대해 살핀 책이다. 무려 10년전 책이라 우파가 한나라당에 좌파가 민주당, 국민참여당, 민주노동당으로 등장하며 대통령도 이명박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여기서 저자들이 지적하는 좌파와 우파의 특성들은 지금과 놀랍게 일치한다. 이들이 한치도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단 좌파와 우파라는 용어는 프랑스 대혁명시기 제헌의회에서 출현하였다. 순전한 우연에 의해서 국회의장이 보기에 급진파과 왼편에 보수파가 우에 앉았을 뿐인데 이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급진파를 좌파, 보수파를 우파로 방향성 있는 용어로 칭하게 되었다. 우파는 초기 민주주의 보다는 왕정에 기대는 사람들이었고 신분제 유지와 기독교회의 교권확립을 목표로 했다. 반면 좌파는 전제정치에 반대하고 시민의 권리를 확립하고 다원제 입법부, 선출에 의한 사법부 구성, 입법부의 우위, 1인1표의 참정권등 보다 민주주의를 중시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왕정이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어느정도 당연시 되면서 양쪽의 중심축은 이동한다. 우파는 전통의 유지와 질서, 권위의 보존, 민족주의를 중시하게 되었고 좌파는 노동자 계층 남성의 선거권 확보 등 사회적 약자 계층으로의 민주주의 확산에 신경쓰게 되었다. 여기에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가 태동하면서 우파는 기존 입장에 재산권 옹호와 경제적 자유신장을 핵심 강령으로 삼게 되었고 좌파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는 사회주의적 입장을 띄게 되었고 사회적 차별, 극단적 빈부격차,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요청하게 되었다. 본래 좌파의 가치였던 자유주의는 민주주의가 자리 잡음에 따라 우파의 가치로 자리잡았는데 우파의 자유주의는 분화하여 보수적인 일각은 극단적으로 우경화하였다. 권위와 질서를 강조하고 민족조의를 절대화하였는데 그래서 나타난 것이 독일과 일본의 극우 파시즘이나 군국주의다. 

 미국에서는 좌파가 자유주의를 지칭한다. 미국에서는 좌파가 평등주의를 앞세워 사유재산권의 철폐나 제한을 주장하지 않는다. 이는 미국이 건국초기부터 자산을 소유한 소생산자들의 평등주의에서 유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사유재산권이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으로 매우 신성시 되고 이를 비판하는 좌파는 쉽게 뿌리를 내릴 수 없었다. 때문에 미국은 세계적 기준에서 매우 정치가 우편향되어 있으며 상당히 급진적 좌파여도 사회적 자유주의를 강조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은 이보다 더 우편향화되어 있는데 이는 한국전쟁과 전쟁 이전엔 갈등으로 남한지역에서 좌파가 사실상 소멸한 것과 관련한다. 한국의 민주당은 친일지주와 민족주의 우파가 묘하게 결합한 한민당에서 유래했다. 그 결과 현재의 한국 민주당은 세계적으로 보면 좌파라고 칭하기가 무색하게 우파에 가까운 성향을 갖게 되었는데 실제 민주당에는 보수주의자에서 사회적 자유주의자 수준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한국 우파에 의해 좌파 혹은 공산주의적 세력으로 까지 불리지만 실질적으론 민족주의 우파에 가까운 정체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민의 힘은 우파세력으로 과거 독재시절에 비해서는 극우적 성향이 약화되었으니 일관되게 우파 보수주의를 표방한다.

 현대 좌파와 우파는 여러 면에서 중복되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데 구별기준이 있다.

- 좌파는 평등의 지속적 확대를 주장하는 반면 우파는 불평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고 옹호한다.

 좌파는 모든 선천적 불평등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고 이를 사회적으로 교정하려 한다. 하지만 우파는 이를 피할수 없는 것으로 보며 어떻게 보면 개인의 경쟁과 노력에 의한 산물로 보아 정당화하기도 한다. 


- 좌파는 직접 민주주의를 옹호하고 우파는 간접민주주의를 옹호한다.

- 좌파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해야 사회공동체의 이익이 증대한다고 보지만 우파는 개인의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보자하고 사회공동체의 이익이 증대한다고 본다. 좌파는 정치, 사회적으로도 개인의 자유와 자율성을 옹호하지만 우파는 기존의 위계-전통-권위를 옹호한다. 우파는 위계화한 사회질서를 옹호하고 해당 공동체의 전통을 고수하고자 한다. 도덕적 권위를 내세워 좌파가 좋아하는 문화적 혁신도 경계한다. 최상위 공동체로 국가의 가치를 강조하며 개인의 존재가치도 질서-전통-권위 속에서만 인정한다.


- 좌파는 사회구성원간의 연대를 강조하나 우파는 통합을 강조한다. 연대는 기본적으로 당사자간의 수평성과 탈중심성을 의미하나 통합은 수직성과 중심성을 강조한다. 


- 좌파는 사회질서의 변화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나 우파는 사회질서의 자연적-필연적 성격을 믿고 변화에 부정적이다. 

 이처럼 좌파와 우파는 상당한 성향차이를 보이지만 결국은 경쟁과 협력 중 어느것을 더 중시하느냐 그리고 경쟁의 결과 발생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 평등적 태도를 취하느냐 불평등적 태도를 취하느냐 마지막으로 현 질서에 대해 옹호 또는 개선에 초점을 두느냐로 갈린다고 볼수 있다. 우파의 기본입장은 경쟁적 입장을 토대로 한다. 개인간의 불평등은 사회의 질서와 규칙에 의거하여 서로 공정하게 경쟁한 결과로 발생한 것이기에 이는 안타깝지만 정당하고 마땅한 것이다. 때문에 부유층과 상류층은 그들을 적극 돕고 기부하며 자선하며 이는 그들의 의무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사회적 약자를 대등한 존재로 보지 않는다. 이런 불평등은 공정한 규칙에 의한 노력과 경쟁의 결과이기에 정부가 함부로 이를 수정하려는 것은 정의에 반하는 행동이며 오히려 사회적 약자와 부자의 역량을 떨어뜨려 사회적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가 된다. 

 반면 좌파는 협력을 기본 토대로 불평등은 사회적으로 공정한 것이 아니며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공정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한다. 연대의 대상으로 사회적 약자를 대등하게 바라보며 이들의 실패가 사회구조에 의한 공정하지 못한 행위로 발생한 것인만큼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교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행해야만 사회의 공동이익이 발전할 것으로 생각한다.  

 다음으로 좌우파 사전에서 다루는 몇몇 사안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입장을 정리해보겠다.


1. 법치주의

 한국에서 법치주의는 독재정권에 의한 무법천지시절 좌파가 주장하던 가치였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법치주의는 좌파보다는 우파가 강조하는 부분이 되었다. 우파는 툭하면 여러 사안에 대해서 법과 질서에 의해서....라는 말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 우파는 민주화 이후 사회 여러 계층이 자신들의 억눌렸던 권리 보장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려는 여러 의도를 큰 사회 위협으로 파악한다. 때문에 그들은 이를 억누르기 위해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이에 충실할때 국익이 최대화 한다고 본다. 민주화 이후 최종심판관으로서 사법부가 내리는 판결을 존중하며 우파의 이런 인식에는 기본적으로 다수 대중의 비합리성과 이에 영합하는 좌파 정치 엘리트에 대한 불안 및 비판의식이 자리한다. 우파는 법을 강조하면서도 시장주의에 순응하여 재벌이나 자본의 불법행위를 저지르는 경우에 대해서는 그것의 불법성보다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더 중시한다. 한국에서 재벌총수의 불법행위마다 사법부가 솜방망이 처벌을 하며 그들의 사회적, 경제적 영향력을 운운하는 이유다. 

 반면 좌파는 약자가 권리를 침해받고 있을 때 침묵하던 법이 견디다 못한 약자가 그것을 세상에 알리고 바로 잡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 순간에 뒤늦게 작용하여 약자만을 처벌한다고 본다. 법은 기본적으로 사회 질서 유지가 아닌 약자의 자유를 확대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는게 그들의 생각이며 기본적으로 법이 자유로운 동의가 아닌 기득권자의 편의에 따라 자의적 적용이라고 파악한다. 그래서 법질서에 대한 저항권을 중시하며 정부가 자의적으로 시민을 지배하려할때 저항할수 있는 합법도 불법도 아닌 제3의 공간을 중시한다. 좌파는 사법부 역시 민중이 그곳의 최종결정자가 되어야 한다고 보기에 배심원제나 사법관료의 선출을 중시한다. 


2. 대북관

 우파는 대북관계가 적대적인 국가 관계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안보가 제일의 가치이며 상대방을 힘으로 눌러 순응시키려 한다. 그래서 북한의 군사력을 위협적으로 여기며 북핵의 해결이 관계 개선을 위한 최우선의 전제조건이 된다. 반면 좌파는 북한을 적대관계라기보다는 같은 민족으로 생각한다. 북핵도 남에 대한 위협이라기 보다는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체제를 보장 받기 위한 시도라 보며 그렇기에 북핵이라는 위협과는 별도로 개성공업지구, 금강산 관광도의 상호협력이 가능하다. 


3. 경제정책

우파는 일반적으로 규제 완화를 추구한다. 규제완화를 통해 기업의 비용이 줄어들고 적자생존의 원리에 따라 강한 기업이 약한 기업을 축출하여 사회적 효율을 제고한다고 본다. 우파는 민영화도 지지하는데 자본의 활동영역을 확대시켜 수익이 나는 부분을 민간의 획득하여 효율을 놓인다는 것이다. 우파는 시장개방에도 적극적이다. 다만 그 개방의 범위가 자본에게 이익이 되는 범위내에서만이다. 좌파는 자본에 대한 민주주의적 견제라는 점에서 규제를 지지한다. 민영화에 대해서도 소극적이며 시장개방에 대해서도 마차가지다. 이는 양자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데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우파는 세금에 있어서도 낮은 세율을 선호한다. 세금 인하가 개인의 근로의욕과 기업의 투자 욕구를 고취키기 때문이다. 우파는 그래서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도 반대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지출을 주로 반대하지만 정부가 자본을 위해 지출하는 것에는 찬성한다. 좌파는 재정지출을 확대하고 조세를 더 거두어 들여 공공서비스를 증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감세는 복지재원을 압박하여 사회적 약자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므로 이에 반대한다. 

 우파는 고용정책에 있어서도 고용유연화를 선호한다. 정규직에 대한 과도한 보호가 노동시장을 왜곡하여 비정규직을 과도하게 사용되는데 오히려 원인을 제공한다고 본다. 좌파는 정규직이 정상적 근로형태고 비정규직의 고용은 이를 정당화할만한 사유가 있을때만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한다고 본다. 

 우파는 소득불평등에 대해서는 이를 인정하나 경제 성장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성장과 분배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도 자유화나 개방에 기초하여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여 그로 인한 낙수효과로 성장과실이 전체적으로 확대하여 소득불평등은 완화할 것으로 본다. 좌파는 소득분배 불평등에 초점을 두며 이를 방치하면 장기적 경제성장이 침체할 것으로 본다. 평등한 분배를 단기적으로는 내수의 확대, 중장기적으로는 교육과 투자의 증대로 생산성을 향상시켜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여 경제성장의 밑거름이 된다는게 좌파의 관점이다. 


4. 교육

우파의 기본 관점은 교육에 시장원리를 적극 도입하여 격렬한 경쟁을 유도해야 경쟁력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대학등록금 자율화, 대학의 수익사업 허용, 기여입학제, 고교등급제, 학교별 학업성취도 공개, 고교평준화 폐지 및 특목고 자율형사립고의 확대, 우열반 허용, 국제중 설립이 그들이 지지하는 구체적 정책들이다. 현 고교 평준화 정책은 능력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것으로 지역간 고교간 학업성취도가 다른 현실에서 우수한 학생이 피해를 보는 제도다. 평준화가 폐지되어도 성취도가 낮은 학생의 피해는 없다고 보며 학교성적 공개, 우열반 편성등을 통해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은 오히려 그 수준에 맞는 교육기회를 제공할수 있어 혜택을 줄수 있다고 주장한다.

 좌파에게 공교육은 시장 원리에서 보호해야하는 것이다. 경쟁을 통한 승자패자구분이 아닌 개개인의 다양한 잠재력을 개발하는 것이 교육의 기본 목표다. 시장 원리에 입각하면 교육은 승자독식의 게임이 되므로 공정한 경쟁을 위한 최소한의 출발선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교육의 본질은 학생의 현재능력 평가에 따른 선발이 아닌 개개인의 잠재능력을 키우는 것이며 교육을 복지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5. 수도권 집중현상

우파에게 수도권 규제는 지방 분산이 아니라 자본의 소멸이나 국내 자본의 해외 유출로 이어지는 행위다. 이는 국내 고용시장 악화와 내수시장 침체로 귀결되며 수도권의 생산이 활발해지면 지방생산이 증가하여 지방경제가 활성화하고 지방의 일자리도 늘어난다고 본다. 좌파에게 수도권 집중은 망국적 현상이다. 이미 수도권은 과밀로 인한 비용증가가 집적에 의한 비용하락과 생산성 증가를 넘어섰다. 즉, 과밀에 대한 이득보다 손실이 더 큰 시점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거기에 수도권 집중은 불공정하기 까지 하다. 이는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해서 각 지역들이 공정하게 경쟁한 결과가 아니라 정치권력이 희소한 자원을 수도권을 중심으로 배분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이는 지방소재 대학과 기업, 지역민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가져왔기에 해소되어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6.생태주의

우파는 생태 위기의 징후들을 개별적으로 분리하고 이들 하나하나를 개별적으로 해결할수 있다고 본다. 즉, 온난화, 산성비, 대기오염등을 개별 문제로 파악하고 개별해결책을 제시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분리된 문제들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극복이 가능하다고 본다. 그리고 생태위기는 인간의 성장에 장애로 작용하는 것이므로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바라보며 자본주의 질서를 생태위기를 극복하는 작동원리로 파악한다. 생태위기에 관해서는 좌파도 사실 인간중심적인데 양자 모두 성장주의 및 산업주의를 공유하고 과학기술로 인한 자연정복이라는 계몽주의적 사고를 공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태주의에 관해서는 녹색담론이 우파에 맞선다. 녹색담론은 인간사회의 자연적 한계를 인정한다. 그리고 근대 서구의 과학주의적 세계관에 비판적이며 근대과학기술 및 계몽주의적 기획에 비판적이다. 그리고 자율적인 공동체와 결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7. 범죄

우파는 범죄에 있어 합리적 인간을 전제한다. 범죄로 얻는 이익 및 쾌락이 그로 인한 손실보다 크다면 사람은 범죄를 저지른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우파는 손실을 크게 하기 위해 엄격한 형벌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 경찰과 검찰의 인력 확충, CCTV등 검거율을 높이는 장치의 도입 등을 통해 처벌을 피할수 없다는 인식을 넓히려고 한다. 좌파는 범죄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라고 보며 주로 불평등이 범죄를 만드는 요인이라고 본다. 여기에 사법체계는 계급 계층에 따라 불평등하게 작용한다고 본다. 상층계층의 절도는 전문적이어서 발견도 어렵고 설사 발견되어도 그 범죄의 피해에 비해 처벌이 약하다. 하지만 하층계층의 절도는 일차원적이어서 발견되 쉽고 그 피해에 반해 처벌수위가 높다. 그래서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불평등을 완화하고 소외된 이들을 살펴야 한다고 본다. 


8. 소수자 인권

우파에게 동성애는 생물의 근본인 이성애를 부정함으로써 사회의 수많은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인 빈민은 자선의 대상이지만 성적 소수자는 세상 질서의 파괴자이므로 부정의 대상이 된다. 반면 좌파는 성소수자의 욕구와 정체성이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으므로 사회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본다. 

 우파는 다른 소수자인권에 대해서는 직접 부정하기보다는 경제력을 키운 후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보수적 입장에서 소수자를 우대하는 것은 오히려 공정하게 경쟁하고자 하는 다른이들에 대한 역차별이라고 본다. 이는 우파가 개인주의적 인권을 옹호하기 때문인데 그들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발전시키고 다른 개인이나 국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고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할 권리가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수자에게 특별한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평등과 보편성이라는 인권의 근본원리에서 벗어나는 행위가 된다. 

 좌파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보이지 않는 인간으로 배제되고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는다고 본다. 그래서 차별을 보상하고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적극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보고 이를 위해 할당제나 가산점등의 제도를 도입한다. 좌파는 개인주의적 인권은 사회적 강자의 지배와 약자들의 종속을 은폐하려는 거짓된 보편주의라고 본다. 


9. 친일협력행위

 우파는 친일 협력에 대해 그것이 시대적으로 불가피한 행동이란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친일 중 악질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오히려 민족의 실력을 키우기 위한 선각자로 보아야 한다고 한다. 실제로 해방 후 많은 친일 세력들이 건국과 발전에 이바지했다. 그들은 후 세대에 태어나 친일을 강요받지 않은 수 있는 상황에 놓였던 자들이 그 이유만으로 친일 세력을 단죄할 자격이 있는지 묻는다. 그래서 친일을 개인의 악이라기보다는 시대적 불행으로 취급한다.

 하지만 좌파에게 있어 개인의 친일은 역시 중요한 문제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면 그런 선택을 강제한 식민지배라는 구조를 외면하게 된다. 하지만 시대적 상황로만 돌리기엔 상당히 적극적으로 친일을 시도한 자들이 있으며 이들이 훗날 진정한 민족세력을 탄압하고 독재정권과 결탁하여 나라를 흐린 것은 상당한 문제라고 본다. 특히, 건국의 공으로 인해 이들의 해가 역사적으로 기록되고 제대로 단죄받지 못한 것 역시 문제라고 본다.


 정리하면 우파는 진화상 생존의 원리로 경쟁을 강조하는 부분이 정치사회적 작동원리로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쟁을 강조하기에 그 경쟁의 토대가 되는 공정한 질서를 강조하며 이에 입각한 결과를 매우 중시한다. 그리고 사회질서를 흔드는 여러 행위는 이러한 공정한 경쟁을 방해하는 행위이기에 부정적으로 여긴다. 권력자 및 부유층은 이러한 공정한 경쟁의 승자로 그 역량과 노력이 뛰어났기에 이런 권력을 얻은 것이다. 때문에 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자유를 주는 것이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며 정부가 규제를 하거나 증세를 하는 행위는 이를 저해하는 옳지 못한 행위다. 패자들은 공정한 경쟁에서 이탈한 자들로 승자들의 자선과 보살핌의 대상이되며 승자가 자신의 역량을 자유롭게 발휘하는 환경이 조성될수록 그들에 의한 떡고물이 이들에게도 떨어져 불평등이 개선되게 된다. 

 좌파는 진화상 생존의 원리로 협력을 강조하며 이것이 정치사회적으로 발현된 집단이다. 사회에 법이나 경제적, 정치사회적 측면에서 구조적인 불평등이 자리하며 이로 인해 공정하지 못한 규칙과 구조속에서 승자와 패자가 형성된다. 때문에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이런 불평등을 해소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정부 및 권력기관이 권력자들의 사유재산과 자유를 규제할 필요가 있으며 증세와 각종 정책등을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를 개선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만 사회가 활력을 갖고 잠재적 성장률을 높여나갈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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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9일엔 대선이 있었고 알다시피 윤석렬이 승리했다. 표차는 겨우 0.7%정도로 역대 가장 적은 박빙의 승부였다. 방송3사의 디시전 K는 통상 5%면 당선 유력. 20%면 당선 확실을 예측하는데, 이번 경우 개표가 거의 80%에 이르러서야 간신히 당선 유력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만큼 이긴 측엔 정말 짜릿하면서도 위기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승리였고 패자 쪽에게는 무척이나 아쉬움이 남는 뼈저린 패배였다. 보수계열은 징역 20년짜리 실패한 대통령을 연속 두 번이나 내세우는 실정을 저질렀음에도 5년만에 정권을 되찾아왔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1. 민주당이 진 이유

 가. 정체성이 애매하다.

 사실 나는 보수쪽에 비해 민주당이 늘 정체성이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는 한국의 정치적 상황 때문인 것 같은데 야당으로써 보수와 대결할때는 진보적인 시각과 사회적 약자를 많이 고려하며 정치개혁도 늘 염두에 두지만 정작 여권이 될 경우 좀처럼 이를 실행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곤 한다. 실제 민주당은 좌파로 여겨지지만 그 안에는 언제든 보수로 넘어갈수 있는 인사와 중도, 그리고 일부 좌파로 구성되어있다. 그리고 한국은 정치 스펙트럼이 세계적으로 볼 때 우편향 되어 있어 실제 한국의 민주당은 진보라기보다는 중도우파나 잘해봐야 중도좌파정도로 분류된다. 사실 스펙트럼상 좌파는 정의당 계열이다. 

 이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정권에 모두 해당이 되며 특히나 이번엔 지난 보수 정권 10년으로 쌓인 게 많았던 터라 이런 부분에서의 강한 해소가 필요했다. 하지만 비정규직의 상황, 사회적 약자의 권리 해결, 정치개혁등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했으며 이는 실제 민주당이 이런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닌가라는 강한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다. 정의당이 유독 이번 정권에서 민주당에 반감을 갖고 나왔던 것은 이런 것에 대한 실천의지에 강한 의심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 결과 대선토론과정 내내 정의당 대선 후보는 대척점에 있는 보수후보보다 오히려 민주당쪽 후보를 더 많이 공격했다. 이렇게 된데는 비례대표사건이 무엇보다 더 컸었다고 본다


 나. 청년을 빼았겼다.

 2000년대 초반 보수진영은 처음으로 정권을 빼앗기고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20-30대 젊은 층에서 큰 폭의 패배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당시 그들은 젊은층의 지지를 되찾지 못하면 결국 당이 사라질 것으로 파악했다. 나이든 사람은 결국 늙어서 사라지고 젊은 층이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기에 매우 당연한 예측이었다.(물론 실제론 그렇지 않다. 사람은 나이들면 보수화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보수계열은 정말 오랜만에 젊은 층에서 사실상 승리를 거두었다. 이전처럼 젊은 층에서 지지를 얻었다면 승리는 진보쪽이었을 것이다. 여기엔 이준석 대표가 시작한 젠더갈라치기가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렇다할 국회의원자리 하나 없이 방송계를 떠돌며 이리저리 전전하던 이준석은 사실 여러차례 남여논쟁에 패널로 등장한 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남성의 입장을 강하게 대변하곤 했는데 이 때문큼은 진보성향의 남성조차도 이준석을 지지하는 모습을 볼 수 있곤 했다.

 아마 여기서 힌트를 얻지 않았는가 싶다. 그는 남여차별이 구조적으로 존재하는 나라에서 성차별해소를 위한 시도를 역차별로 몰아갔고 이 틈새공략이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 덕에 그는 최연소 당대표가 될 수 있었고, 아마 국회의원 자리도 쉽게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 젊은 남성들은 성차별을 쉽사리 경험하지 못한다. 어려서부터 그렇고 남여평등적 교육 및 집안환경에서 자라왔을 가능성이 크며 대학진학이나 취업에서 여성보다 이득을 경험했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하지만 그들은 군대라는 큰 차별을 경험해야하며 사회에 존재하는 유리천장이라는 것은 사회상층정도로 진입해야만 느낄수 있는 것들이다. 아직 그들은 그럴만한 나이도 경험도 갖고 있지 못하기에 차별을 시정하기 위한 현정권의 노력이 강하게 역차별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들을 어루만졌어야만 했다.

 

 다. 반면 여성의 집결은 너무 늦었다.

 매우 불리한 구도속에서 그래도 박빙의 패배를 거둘수 있었던 것은 막판 젊은 여성의 표심집결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의견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주일 정도만 선거가 늦춰졌어도 결과는 알수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너무 늦은 아쉬움은 여성들에게 이재명에 대한 강한 향수와 애착현상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이미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격이다. 

 하지만 여성의 늦은 결집은 역시 결국 민주당의 탓이다. 남성 입장에선 민주당은 여성친화적 정권으로 느껴지지만 실제 여성들에겐 그렇지 않았다고 본다. 박원순, 오거돈, 안희정으로 이어지는 핵심 여권 인사들의 성추행 사건들 그리고 그 후속 조치들은 여성들에게 강한 반감을 가져왔을 것이며 민주당에 대한 의심을 하게 했을 것이다. 

 때문에 여성들은 보수진영이 초반부터 강하게 반여성적으로 움직였음에도 집권이 가능한 현실적 대안세력에게로 빠르게 결집하지 못했다. 일부 민주당, 일부 정의당, 일부 국민의 당 쪽으로 흩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안철수의 단일화, 그리고 패배를 막기 위해 막판에서야 어쩔수 없이 민주당 쪽으로 움직인게 아닌가 싶다. 좀 더 정략적으로 빠르게 판단하고 민주장 쪽에 힘을 싫어 초반부터 지지율을 대등하게 끌어올려주었다면 다른 결과를 도출할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라. 대통령의 답답한 인사

 문재인 대통령은 상당히 온화한 성품으로 원칙주의자로 보인다. 민주당 계열 대통령이 그렇듯 강한 리더쉽보다는 수평적이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고자 노력했다. 이는 옳은 방향이지만 이번 정권 내내 민심을 이반시킨 여러 인사를 고집하는 패착을 나았다고 본다. 우선 조국이다. 개인적으로 조국을 옹호하고 그가 저지른 여러 흠에 비해 개혁반대세력에 의해 테러에 가까운 피해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수진영과 보수언론은 한국인이 가장 민감한 입시사건으로 조국에 치명상을 입혔다. 그 박근혜 마져 무너뜨린 것은 최순실의 다른 엄청난 비리가 아닌 그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입학 사건이었다는 것을 감안했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 정략적으로 대통령의 빠른 판단이 필요했다고 본다.

 인사를 고집한 패착은 국토부장관 김현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수언론과 야당의 공세가 옳건 그르건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실패로 국민들에게 여겨져왔고 폭등하는 집값에 악화하는 여론에 대해 뭔가 조치가 필요했다. 김현미 장관의 경우 필요 이상으로 오랜 임기를 보장했고 사실 그 대가로 얻어낸 것도 없었다. 

 윤석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추미애 윤석렬 갈등이 불거진 시점부터 빠르게 대통령이 둘을 동시 해임하는 결과로 문제를 마무리 했어야 한다. 필요이상으로 임기를 오래 보장하며 윤석렬을 키웠고 그 결과는 정권을 빼앗기는 것이었다. 

 물론 대통령의 입장은 이해가 가는 측면이 많다. 원칙을 지키고 싶었고 절차적 민주주의를 보장하고 반대하는 사람이라도 그것을 보장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 하고 싶었던 탈원전, 검찰개혁은 이루지 못했고 결과는 참담하다. 무척이나 아쉬운 측면이 아니랄수 없다.


마. 부동산 폭등

 한국의 부동산은 정권과 역방향으로 흘러왔다. 역사적으로 우파는 시장주의자들이기에 부동산에 대한 규제를 가급적 풀고 상승을 유도하는 정책을 많이 사용한다. 반면 좌파는 평등주의자들이기 불로소독이자 계급적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부동산에 대해 강한 규제와 세금을 부여하곤 한다. 하지만 부동산가격은 이런 정부정책에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세계적 흐름을 탄다. 미국이 양적 완화를 한 2000년대 초중반 부동산은 크게 올랐고, 경기가 쇠퇴한 2010년대 중반은 하락했으며 다시 양적완화를 크게 시도한 2010년대 후반에서 2020년대 초반 크게 올랐다.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경우 상승기엔 김대중 노무현이 하락기엔 이명박 박근혜가 다시 상승기엔 문재인이 다시 오고 있는 하락기엔 윤석렬이 대권을 잡았다. 때문에 부동산은 결국 정부의 정책탓을 하기엔 어려운 면이 있다. 그져 애써 물살에 따라 크게 움직이는 방향키를 애써 반대방향으로 잡는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의지와 방향성에서 모두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시장에 강한 규제 신호를 주고, 부동산에 대해 공적인 역할을 많이 강조하며 더불어 과감하게 공급을 하고자하는 시도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것으로 본다. 이는 가장 큰 패착으로 사실상 정권이 넘어가는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바. 한국의 고령화

 언급한 것처럼 20년전 한국의 보수진영은 젊은 층의 이탈을 가장 큰 문제로 여기고 강한 위기감을 느꼈다. 노인을 결국 나이들어 사라지고 그 자리를 꾸준히 공급되는 청년층이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진영은 당시 진보성향을 가진 젊은이들이 많아지면 이들이 나이 들어서도 자신들을 지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보수화되기 때문이다. 이는 노인도 청년처럼 공급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 2000년대 초반 김대중 노무현에게 표를 던진 40대들은 지금 60대가 되었고 이들은 강력하게 보수를 지지한다. 이는 과거 보수정권이 예측하고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초고령화하는 한국사회의 유권자층이 앞으로 보수에 유리하게 흐를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 젊은 연령층은 그 수가 적고 이념적으로 진보적인 성향이 약화하고 있으며 반면 보수성향을 가진 노인층은 다수의 인구가 향후 수십년간 꾸준히 공급될 예정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이것이 아주 큰 영향력을 미치진 않았지만 앞으로 두고 봐야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모든 악재로 인한 강한 정권 교체여론에도 불구하고 민주진영은 약간의 차이로 패배했다. 물론 여기엔 전문가들이 언급한 것처럼 정치초보이고 그에 걸맞게 무수한 실수를 저지른 윤석렬에 비해 도덕적으로 흠결이 많았지만 실력있어 보이는 이재명쪽이 인물에서 크게 앞섰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번에도 보수와 진보는 총집결하여 사실상의 양자대결을 펼쳤는데 박근혜 문재인 때는 진보가 총집결했음에도 과반을 넘지 못하고 패배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정의당의 표를 진보로 받아들인다면 진보가 얻은 총 지지는 과반을 살짝 넘게된다. 어찌보면 진보진영이 패배했음에도 역사상 처음으로 과반의 득표를 얻은 첫번째 선거가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한국사회가 보수가 매우 유리한 구도에서 서서히 진보가 유리한 구도로 변화하는 과정에 있는 것이란 생각이다. 때문에 패배했음에도 이번 선거는 진보쪽에 의미있는 선거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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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인구는 거의 80억에 도달했고 가까운 시일내에 100억 돌파도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문제는 지구가 이 모든 걸 부양할 만큼 그리 크지 않고 인간은 개체수가 본래 가장 적어야할 최상위 포식자라는 점이다. 이런 무리한 부양을 위해 인간은 현재 태양이 매일 제공하는 에너지를 사용할 능력이 부족하자 과거 지구가 축적한 에너지인 화석에너지를 이용했고 자연순환 이상의 질소고정을 하여 식량을 증대했다. 그리고 나머지 동물군과 식물군의 서식지를 파괴하고 여기에 식량작물과 가축들을 배치하여 지구상의 생물에너지 대부분을 자신의 식량에너지로 삼고 있다. 현재 지구상의 동물군의 무게는 인간자체와 인간에게 에너지를 직접 제공하는 가축이 99%를 차지한다. 나머지는 수만 많고 적은 개체수를 간신히 유지하며 에너지와 자원을 인간에게 모두 빼앗기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형태의 식량증대 방법은 지구 환경과 식량이 되는 동물에 엄청난 고통을 가하는 윤리적 문제를 가져왔다. 책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자연순환에서 농경순환 그리고 산업화와 화석에너지를 식량으로 변환하는 산업화된 순환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한다. 그리고 책 '값싼 음식의 실제가격'은 우리가 실제 먹는 수많은 식물, 동물음식이 사실 화석연료와 보조금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것이 환경에 가하는 부담과 보조금으로 인한 가격이므로 실제로는 엄청나게 비싼 가격을 초래하는 것임을 밝힌다. 규격화되지 않았거나 약간의 손상이 있기에 상품화되지 않고 버려지는 음식도 엄청나다. 그리고 반대쪽에서는 그것이 없어 굶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에서는 69년을 기점으로 인간이 개체수가 늘어나고 풍요로워지면서 반대로 얼마나 지구가 끔찍해졌는지를 수치로 담담하게 제시한다. '고기로 태어나서'를 한국의 책으로 작가 자신이 닭, 돼지, 소, 양계, 식용개를 다루는 축산업계에 직접 취업하며 겪은 동물들의 끔찍한 삶을 가감없이 드러낸책이며, 피터싱어의 '동물 해방'은 공리주의에 입각하여 쾌락과 동물을 충분히 겪는 동물의 이익도 도덕적으로 고려해야함을 주장하는 책이다. 

 이 책들은 매우 설득력이 있으며 독자로 하여금 강한 문제의식을 갖고 하고 환경과 윤리적 문제에 대한 영감을 준다. 하지만 해결은 매우 어렵다. 상당수의 인간이 자신의 잡식동물로서의 본능을 포기하고 채식으로 돌아서거나 아니면 감당이 가능할 정도로 인구의 수를 줄여야 한다. 그러나 이중 어느 것도 인간의 본능에 부합하지 않는다. 인간은 열량이 높은 육류를 선호하고 갈망하며, 환경이 좋아져 경제성장이 되면 충분히 번식하고자 하는 욕망을 갖는다. 때문에 육식의 포기는 실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실제로도 그래왔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발달로 등장한 세포배양육은 이런 모든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가능성을 갖고 있다. 세포배양육은 글자 그대고 동물의 세포를 배양하여 식용이 가능한 고기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 기술은 10년정도 전에 실체를 조금씩 드러냈지만 당시만 해도 무척 비쌌다. 세포배양육이 모습을 드러냈을때 치킨 너겟단가가 500g당 무려 120만 달러였다. 그야말로 요리사가 살 떨며 조리할만한 가격이었는데 2019년엔 그 가격이 500g당 1000달러 선으로 크게 내려갔다. 치킨 너겟 개당 가격 50달러 수준인 셈이다. 아직은 치킨 너겟 한 개당 한화 5-6만원 수준으로 비싼 수준이지만 가격이 감당할 만한 수준으로 내려가는 것은 시간 문제이며 재생에너지의 가격이 화석에너지의 가격보다 싸진 것처럼 배양육의 가격이 재래식 축산육의 가격보다 내려가는 날도 가까운 시일내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언급한 것처럼 세포배양육은 재래식 축산업이 야기하는 환경파괴의 문제와 동물에 대한 윤리적 문제 두 가지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 현재 축산업은 전 세계가 배출하는 온실가스량의 무려 14%를 배출한다. 그리고 이는 축산업계의 반발로 제법 보수적으로 추정한 수치다. 이 온실가스의 총량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량과 선박, 기차, 비행기에서 내뿜는 온실가스의 배출량을 상회한다. 재래식 축산업은 인간이 배출하는 온실 가스중 이산화 탄소의 9%, 메탄의 37%, 아산화 질소의 65%를 차지한다. 재래식 축산업중 온실가스 배출에 가장 크게 기여하는 것은 소다. 이는 소개 네 개의 위를 통해 음식을 발효하기 때문이고 그 과정에서 메탄가스가 대량으로 발생하기 때문이다. 소는 메탄가스 배출기계나 다름이 없는데 500kg의 소가 무려 100kg의 메탄가스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재래식 축산업은 가성비가 매우 떨어진다는 약점도 지닌다. 소고기 450g을 얻기 위해서는 사료가 2.7kg이 필요하며 돼지고기 500g을 위해서는 사료 1.6kg, 닭고기 500g을 위해서는 사료 900g 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사료는 굶주리는 가난한 나라의 사람이 식량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즉, 현재의 축산업은 부유한 국가 시민의 입맛을 충족시키기 위해 가난한 국가사람들을 부양하지 않는 것에 식량체계에 기반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재래식 축산업은 식량 뿐만 아니라 상당한 양의 토지와 물을 소모한다. 매우 밀도 높은 공장식 축산업이긴 하지만 그래도 지구상의 가축수가 엄청난 만큼 상당한 양의 토지와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래식 축산업은 그 대상인 가축에게 엄청난 고통을 가져온다. 생물은 자신의 생존과 번식을 위해 태어나며 그를 위한 본능과 그것이 충족될 때 갖는 기쁨이 있다. 하지만 공장식 축산업은 그 모든 것을 박탈한다. 소는 더이상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풀을 뜯을 수 없으며 돼지는 흙목욕을 하지 못하며 심지어 뒤를 돌아보지도 못할만큼 좁은 공간에 갇혀 그 스트레스로 다른 돼지의 꼬리를 물어뜯는다. 닭은 발톱으로 땅을 긁을 수 없으며 날개짓조차 하지 못한다. 이들 모두는 인간을 위해 새끼와 자신의 고기, 우유나, 달걀 등을 착취당하며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음을 맞게된다. 이는 상당한 윤리적 문제를 일으켰다. 물론 식물이 아닌 동물의 하나로서 인간은 지구상의 다른 생명을 자신의 에너지원으로 바꾸어 생명을 유지할수 밖에 없으며 이는 다른 동물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이는 윤리의 영역이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인간의 축산행위가 윤리의 영역이 되는 것은 인간은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생존을 유지할수 있는 다른 방안과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인간은 채식을 통해서도 충분한 단백질과 다른 영양분을 얻을 수 있으며 육식을 포기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광범위한 극도의 고통을 주는 형태를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세포배양육은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한다. 세포배양육이 재래식 축산업을 대체할 경우 같은 고기를 생산하는데 에너지의 45%, 온실가스 배출의 96% 토지사용이 99% 물 사용량이 96% 감소할 것으로 예측된다. 무척이나 인상적인 수치다. 또한 고기를 만들어내는데 동물의 본능의 박탈과 고통의 증가, 죽음이 없기에 윤리적 문제도 제기되지 않는다. 

 여기에 몇 가지 장점이 더 있다. 제공되는 고기가 매우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라는 것이다. 자연상태이건 축산업이건 동물은 외부환경에 노출되며 이로 인해 기생이 발생하거나 세균에 고기가 오염된다. 우리는 도축 및 유통과정에서의 위생강화와 조리과정에서 충분한 열을 통해 고기를 요리함으로써 이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하지만 완전하지는 않으며 이로 인해 가끔 식중독등의 사건이 발생한다. 하지만 세포배양육은 무균환경에서 배양되기에 유통과정에서의 관리만 잘 이뤄지면 매우 안전한 고기가 공급된다. 공장식 축산업에서 알게모르게 들어가게 되는 환경호르몬이나 항생제등의 문제에서도 자유롭다. 

 세포배양육이 제공할만한 또 다른 장점은 식량 위기의 극복이다. 기존 축산업은 상당한 식량자원과 수자원을 소모한다. 때문에 지금처럼 계속 인구가 늘어나고 기후위기가 닥칠 경우 충분한 인구 부양력을 가질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공장식 밀집 사육으로 인한 잦은 질병의 발생도 문제다. 또한 근본적으로 기존의 축산업은 수많은 기술발전에도 불구하고 해당 지역의 기후에 크게 의존한다. 실제로 세계적 축산 국가는 미국이나, 호주, 유럽, 아시아 지역 등 동물사육에 적합한 온대기후지역이다. 건조지역이나 한대, 열대지역에서 채산성있는 축산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공장이나 다름 없는 실내 건물에서의 세포 배양은 이런 나라도 기술만 충분하다면 세계적 축산국으로 변모시킬수 있다. 

 세포배양육은 기술적으로 3가지 요소를 갖는다. 세포, 배양액, 바이오 리액터다. 세포는 동물의 세포로 보통 동물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생체검사를 통해 얻는다. 배양육 업계는 최근 여러 종의 동물세포를 보관하고 있는 기관이나 업체로부터 안정적으로 세포를 공급받고 있기도 하다. 세포배양은 기본적으로 세포분열을 통해 고기를 얻는데 문제는 세포가 자연상태에서 보통 50회만 분열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충분한 단백질과 항산화제 보충 배양액을 이용하면 이 횟수를 10회정도 더 늘릴 수 있으며 좀 더 증식하는 특정 종류의 동물 세포군의 세포 사용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고 있다. 

 배양액은 현재 각 회사마다 비밀로 붙이고 있는 부분이다. 동물의 세포는 당연히 다르기에 소, 돼재, 오리, 닭의 세포에 적합한 배양액은 각각 다르다. 특히, 조류의 세포보다는 포유류의 세포가 더 민감하기에 고도의 기술을 적용한 배양액이 필요하다. 초기 배양액은 소의 태아 혈청을 사용했지만 가격이 4컵 정도에 1150달러정도로 매우 비싸다. 지금은 기술개발로 배양액의 가격이 업체마다 다르긴 하지만 리터당 1-5달러 정도로 저렴해졌다. 600리터 정도의 배양액이면 닭 1500마리 정도의 고기 생산이 가능하다.

 바이오리액터는 배양액 안에서 세포가 헤엄치며 자라는데 필요한 환경을 구현한 기계장치다. 바이오 리액터는 산소와 영양분이 고르게 분포하도록 휘젓는 제트기류를 꾸준히 발생시키며 그 강도가 세포의 성장을 방해하지는 않을 정도로 적당히 조정된다. 바이오리액터는 일정 온도와 PH를 유지하며 산소의 농도와 영양도의 농도를 꾸준히 감지하며 관리한다. 

 세포배양육은 이런 가능성을 갖고 있지만 넘어야 할 한계도 존재한다. 우선 기술적 개선이다. 현재 세포 배양육은 근육조직을 배양한 것이다. 하지만 재래식 축산업은 이 근육과 지방이 적절히 혼합된 것이다. 그리고 사실상 고기의 맛과 풍미는 지방이 좌우한다. 사실 지방이 없다면 소나, 돼지, 닭, 오리의 맛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때문에 고기로서의 경쟁력은 지방이 좌우한다고 볼 수 있는데 아직 배양육은 근육조직과는 다르게 지방세포부분에서는 연구가 미흡하다.

 다른 장벽은 사회적 편견과 재래식 축산업계의 반발이다. 재래식 축산업계는 세포 배양육이 가격경쟁력과 품질경쟁력을 갖출 경우 그 어떤 카드도 갖고 있지 못하게 된다. 윤리적 문제와 환경파괴라는 치명적 문제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들은 각국의 정부에 강한 압박과 로비를 가하고 있으며 세포배양육을 고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저자는 축산업이 발달한 미국에서 이런 강한 압박을 겪었는데 상대적로 환경파괴 문제에 민감한 유럽이나 식량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아시아에서는 큰 환대를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의 고기에 대한 전통적 생각도 넘어야할 문제다. 세포배양육이라는 명칭 자체는 그 고기가 갖는 친환경성과 안전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고기처럼 여겨져 강한 거부감을 갖게 한다. 특히, 세포배양육을 장기섭취했을 경우 인체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지에 대한 연구도 전무한 것이 사실이다. 

 재밌는 가능성은 세포배양육이 특정 종교의 계율로 인한 음식문화를 바꿀 가능성도 있다는 점이다.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돼지 고기를 금기시하며 힌두교에서는 소를 금기시한다. 전통 유대 율법에 기반한 코셔시장 규모는 연간 240억달러수준이며, 무슬림 율법 식단인 할랄은 시장 규모가 무려 1조6천억 달러에 달한다. 이 종교들의 계율에선 돼지고기를 금기시한다. 하지만 세포배양육을 통해 만들어진 돼지 고기 역시 기존의 돼지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들의 종교지도자들이 이것을 허용한다면 그야말로 수천년만에 이들의 식생활에 지각변동이 생겨날 것이다. 살생을 금지하는 불교에서도 고기의 허용을 금지한다. 생명을 죽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을 죽이지 않는 세포배양육을 불교의 승려가 거부할 이유는 마땅지 않다. 이 부분에서도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언젠가 가까운 미래에 인간은 세포 배양육으로 만든 다양한 고기를 즐기며 과거 동물을 잔인하게 도축하고 무리하게 개체수를 불려 지구 환경을 파괴했던 야만스러운 시절을 과거의 일로만 회상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축산업의 농장이 차지했던 자리는 숲으로 돌아가 자신의 에너지를 빼앗겼던 다른 생물들이 다시 차지하게 될 것이며 생겨난 숲은 탄소를 흡수해 지구온난화를 조금이나마 막아줄 것이다. 비건이라는 선의로 시작된 좋은 용어도 사라지게 될 것이고 오직 건강상의 이유로만 채식을 즐기는 소수의 사람만 남게 될 것이다. 그런날이 머지 않아 올것으로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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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버 2022-02-22 14: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포배양육에 대해서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는데 새로운 사실을 많이 알아 갑니다. 특히 지방세포부분에서 연구가 미흡해서 재래식 축산업의 고기와 맛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어서 빨리 기술이 발달할 날이 오면 좋겠네요!

닷슈 2022-02-22 21:20   좋아요 1 | URL
저도 그날이 빨리 오길 기다립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그렇기에 주변의 인간과 협력 및 경쟁을 한다. 주변 협력자들 중에는 자신과 유전자를 100%공유하는 일란성 쌍둥이에서 절반을 공유하는 부모와 형제자매, 그리고 일부를 공유하는 인척들이 있다. 그리고 유전자를 거의 공유하진 않지만 나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주는 친구들이나 믿을만한 협력자들, 그리고 같은 문화권의 부족 구성원들도 있으며 이들은 나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을 준다. 반면 나의 생존과 번식에 방해를 주는 경쟁자들은 성적 경쟁자들이나 생존을 위한 자원을 갖고 다투거나 사기 및 공격적 행동을 보이는 인간들, 우리 부족과 적대적 성향을 띠는 경쟁부족 구성원들이다. 

 이렇게 주변의 사람이 나의 생존과 번식에 협력적이냐 경쟁적이냐에 따라 인간은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에게 가중치를 부여하게 된다. 민주사회에서 태어난 우리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고 배우고 그리해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인간은 태생적으로 모든 주변인을 평등하게 대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인간은 사람에 대한 자신의 가중치의 정도를 공감이라는 감정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개인의 유전전 근인도, 그리고 같은 사회문화권 구성원, 개인적 친밀도나 그 사람의 협력도, 혹은 사회의 쓸모 있는 구성원으로서 그 사람의 위치나 외모, 성별, 나이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사람은 매일 일어나는 사건 사고 속에서 피해자의 조건이 어떠하느냐에 따라 그가 보이는 공감정도는 현저히 달라진다. 때문에 공감이란 수단이 도덕성의 조건으로 그리 좋지 못함을 책 공감의 배신은 보여준다.


 






 공감에 대한 차이는 재난 영화를 봐도 쉽게 볼수 있는데 재난 영화에는 많은 공식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빌런인데 모두가 생명상실의 위기 상황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모두를 위기에 몰아넣거나 구조순서를 가로채려고 시도하는 그런 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빌런들은 이상하게도 대부분 성별은 남성이며 나이는 대개 젊거나 중년층이고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은 경우가 많다. 영화 해운대에서 난리치다 구조대원을 죽음으로 이끈 젊은 재벌, 부산행에서 주인공들을 막아버린 아마 적당한 기업 중역으로 보이는 안경 쓴 아저씨, 2012에서의 러시아 재벌, 샌안드레아스의 역시 재벌, 영화 엑시트에서의 지배인, 타이타닉에서의 로즈의 약혼자등이 그렇다. 아마 좀더 찾아보면 이보다 훨씬 많은 것이지만 아마 빌런의 유형은 상당히 비슷할 것이다. 

 위기상황에서 유독 남성, 그것도 젊거나 중년이면서 사회경제적 지위가 비교적 높은 이들이 이런 진상을 부리는데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선 이들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각자도생의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완력을 쓰기 좋은 위치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아무래도 여성이나 노년, 어린 아이들에 비해 힘이 강하니 스스로 살고자 난리치기 적합하다. 더구나 사회경제적 위치가 높은 사람은 그 상황에서 그것을 자신의 생존을 위해 사용할수 있다면 적극적으로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아무래도 가장 공감 받지 못하는 존재로 위기 상황에서 가장 낮은 가중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트롤리 딜레마란 윤리학 사고 실험이 있다. 양편 중 한 쪽을 반드시 죽일 수 밖에 없을 때 선택을 하게 하는 실험인데 크게 사람의 수나, 그 사람이 나 자신 혹은 얼마나 나와 관련이 있는지, 나이는 어떤지, 성별은 어떤지가 조건으로 주어진다. 사람마다 다르긴 하지만 이 상황에서 보통의 사람들은 적은 수의 사람보다는 더 많은 사람을, 남자 보다는 여자를, 그리고 어린 아이를, 노인보다는 젋은이를, 뚱뚱하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보다는 보통으로 보이는 사람을 더 살리려는 경향이 있다. 재난영화의 각자도생의 상황은 어찌보면 트롤리의 딜레마 상황과 가장 유사하다. 그렇기에 중년 혹은 젊은 남성은 자신이 가장 가중치가 낮음을 스스로 깨닫고 난리치는 것이 아닐까. 그저 가만히 있다가는 자신의 구조순서나 탈출순서가 마지막이 될것이 자명하고 그것은 자신의 생존율을 급격히 낮추기 때문이다. 실제로 타이타닉호 침몰사고에서 남성승객은 20%, 여성승객은 74%, 어린이는 50%가 생존했다. 남성이 의도적으로 구조에서 배제되었거나 혹은 스스로 양보했음을 추측하게 하는 대목이다. 

 사실 각자도생의 상황에서 어느 정도 젊은 남성의 가중치가 가장 낮음은 다소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원시사회에서 젊은 남성은 소규모 집단에서 완력이 강해 집단의 전투력이나 생존력을 높이는데 가장 기여할만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꾸로 각자 살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여성이나 아이, 노인, 혹은 같은 다른 남성에게 자신들의 생존을 가장 위협하는 존재이며 동정이 가장 가지 않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가중치가 낮은 것일까? 

 

 하여튼 개인은 그럴지언정 헌법이나 여러 법들에서 선언적으로 우리 사회, 혹은 세계 모든 구성원은 평등하다고 외치는 국가나 사회, 세계마저도 사실 사람마다 현저한 가중치를 두고 있다면 어떨까. 우리는 이를 매우 쉽게 접할수 있는데 가령 같은 죄를 저지르고도 사람의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형량이 매우 다르며 심지어 기소조차 되지 않는 경우, 혹은 같은 20년형을 받고 복역을 하더라도 누구는 만기를 채워야 나올수 있지만 누군가는 특별한 형태로 4-5년만에 나오기도 하는 그런 경우를 봐도 그렇다. 

 그리고 이런 사회가 개개인에게 부여하는 가중치는 생명가격표라는 이름으로 가장 적나라하게 등장한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생명 가격표는 글자그대로 생명에 가격을 붙이는 것인데 재난이나 테러, 사건사고로 사람이 생명을 잃는 경우 유족에게 부여되는 보상금이나 배상금이 바로 그것이다. 같은 사고로 사망한 경우라도 누구는 1억 누구는 10억의 배상금을 받는다. 이것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산정하는가에 대한 내용이다. 

 한 개인의 생명가격을 산정하는 방식으로 널리 사용되는 방법은 비용편익 분석이 있다. 비용편익분석은 순현재가치의 최대치를 지닌 대안을 가려내는것으로 흔히 선택된 규제안이 가져올 비용과 편익에 대한 고려를 할때 사용된다. 가령 에너지 전환을 위해 한국에서 시대착오적으로 신규로 건설하고 있는 화력발전소를 모두 폐기한다면 상당한 고정비용과 해당 기업에 대한 배상금이 투입될 것이다. 하지만 이것에 미세먼지와 탄소 발생량을 줄여 국민 건강과 환경에 기여하고, 한국의 대외이미지를 개선시킨다면 이것이 편익이 된다.

 이 비용편인 분석엔 많은 문제가 있는데 다음과 같다. 우선 통계적 생명가치를 중요한 투입변수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통계적 생명가치는 생명 하나당 공정하게 주어지는 생명가치인데 이게 높으냐 낮느냐에 따라 생명가격표가 현저히 달라지게 된다. 미국의 경우 통계적 생명가치는 10만 달러정도로 높게 책정되어 있는데 이는 미국의 기대소득치는 넘는 수준이다. 때문에 미국의 경우 인명 상실에 대한 보상금액이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한국은 생명상실에 대한 보상금이 매우 낮은데 이는 아마도 정부 당국에서 통상적으로 통용되는 통계적 생명가치가 낮기 때문이 아닌가로 추정된다. 

 비용편익분석의 또 다른 문제는 통계적 생명가치가 실제 위험이 증가하는 현재가 아닌 사망이 발생하는 미래를 의미하는데 사용된다는 점이다. 화력발전소를 그대로 존치시켜 발생하는 현재의 손해보다는 그로 인해 사람이 사망하는 이후를 계산하기에 현재적 쓸모가 적다는 것이다. 다른 문제는 할인이다. 미래의 사망에 대한 손해를 계산하고 미래의 것이기에 경제적 개념으로 물가상승률에 대한 할인이 적응된다. 물가가 매년 10%오르면 현재의 10만원은 7년후면 5만원의 가치에 불과하다. 때문에 할인을 적용하면 미래 세대의 생명이 현세대의 그것보다 현저히 가치가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정량화하기 어려운 요소를 간과하는 면이 있다. 화력발전소의 경우 혜택을 보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라 지구상의 동식물도 이득을 본다. 하지만 이런 것은 편익내역에 대개 포함되지 않으며 포함하려고 해도 산정하기가 매우 어렵다. 하지만 발전소의 폐쇠는 바로 견적이 정확히 나온다. 또한 공정성이 고려되지 않는다. 대개 피해를 입는 계층은 사회적 약자나 서민일텐데 발전소 관련자는 보다 재벌이다. 공정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이런 비용편익을 분석하는 집단들 역시 이들과 엮여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비용편익 분석이 생명의 가격을 특정 사업에 대한 사회적 규제안에 다한 편익과 비용차원에서 접근한다면 사람의 사망에 대한 보상금은 보다 직접적인 생명가격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을 죽게 만든 사람은 민사 형사상 책임을 지게된다. 형사는 징벌적으로 죄에대한 형벌이고 민사는 사람을 죽게 한 것에 대한 보상이다. 민사에서 보상금액은 실제비용과 기회비용으로 나뉘는데 실제비용은 장례비용등을 포함해서 희생자의 죽음을 처리하는데 드는 비용이며 기회비용은 희생자가 살아있었을 경우 기대할수 있었던 소득이나. 봉사등이다. 이 기회비용이 사람의 나이나 성별, 직업에 따라 매우 달라질수 있기에 개개인의 생명가격표는 매우 달라지게 된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이 보상금액의 산정에 생명자체에 대한 가치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미국의 많은 법이 생명자체에 상실에 대한 보상은 규정하고 있지 않으며 희생자등 남아있는 사람에 대한 문제만을 고려한다. 어찌보면 법은 철저히 산자만을 위한 것이란게 여기서도 드러난다. 아무리 극악무도한 범죄자의 경우도 그가 자살하거나 사망하면 사건은 그냥 종결되어버리고 피해를 구제받지 못한 희생자만 남게되는 경우와 매우 비슷하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점 때문에 자주 희생자가 사망한 경우보다 사망하지 않고 큰 부상을 입은 경우 보상금이 더 커지는 일이 생기곤 한다. 미국에서는 피해를 입은 사람이 원래대로 생활할수 있게끔 지원하고 보상하는 것이 개념이기에 큰 부상을 입어 평생재활을 해야하는 경우 보상금이 사망보다 더 커진다. 매우 역설적인 경우다. 

 이런 식의 보상금 규정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바로 직업이 없는 아동이나 특정 직업이 없는 가정주부의 경우 보상금이 터무니 없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이 경우 가정주부는 그가 기대소득은 없지만 가정에 기여하는 서비스나 봉사의 정도를 크게 잡거나 아이의 경우 유가족의 정신적 충격과 상실에 대한 고통을 고려하는 비경제적 손해배상을 크게 잡아 실질적 보상금을 높이는 형태로 진행되기도 한다. 

 이처럼 저자는 책 생명가격표를 통해 법적인 평등으로 포장된 우리의 삶이 실제로는 사회적 가중치를 부여받아 적나라하게 돈으로 책정되는 현실과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과정은 매우 일상적이며 의외로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지만 상당히 기업과 권력있는 사람들 편향적일 수 있으며 투명성과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생명가격표, 즉 사회적 가중치가 낮게 책정된 사람들은 그 생명의 가치가 낮게 책정되었기에 마구잡이로 취급당하고 존중받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한국의 경우 위험한 건설현장이나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생명가격표는 매우 낮게 책정되어 있다. 때문에 기업주들은 그들이 죽어도 경제적으로 형사적으로 그리 큰 손해를 보지 않기에 이들을 마구 잡이로 소모한다. 그 결과가 매일 6-7명이 죽어나가는 한국의 산업현장이다. 기업은 이윤극대화가 목적이기에 사업비용과 사람의 생명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아 늘 수익을 극대화하려고 한다. 실제 역사상 수많은 담배회사들이 이것이 건강에 치명적 문제를 일으킴을 알고 있음에도 이를 오래도록 숨겨왔으며 많은 위험한 화학물질을 배출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도 이 제품이 노동자와 소비자에게 얼마나 많은 해악을 안기는지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은폐했다. 

 때문에 사회적으로  개인의 통계적 생명가치를 높게 책정하는게 필요해보인다. 한국은 이것이 낮기 때문에 보상금이 터무니 없이 적으며 형사적으로도 형벌이 매우 낮다. 그래서 기업이 지금처럼 할수 있는 것인데 형사처벌 수위를 높이고 보상금을 상당히 크게 한다면 지금같은 행태를 부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개인의 생명가격표에서 모두가 다르기에 개인의 직업이나 기대소득에 따른 가중치는 어느 정도 반영하더라도 모든 사람에 상대적으로 높은 소득을 받을 수 있는 통계적 생명가치를 높게한다는 평등정도는 갖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어느정도 선언적 평등을 실현할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리고 법상에서도 생명자체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필요해보인다. 사망보다 부상의 배상금이 더 큰 것은 여러모로 역설적이다. 현실이 이렇기에 어설프게 사고를 내느니 확실히 사고내서 교통사고 사망자를 죽이는게 더 낫다라는 우스게 소리가 심각하게 돌아다니는게 아닌가.

 그리고 개인의 생명가격표를 책정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하고 독립된 기관에서 이를 수행하는 것도 필요해보인다. 한국의 많은 규제기관은 노동부건 환경부건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마치 기업부처럼 행동하는 경향성을 많이 보인다. 때문에 이런 생명가격을 책정하는 독립기관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사람하나하나의 생명가격표는 다르더라도 그것이 충분히 높아 모두가 어느 정도는 평등하고 귀하다는 생각을 가질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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