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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시대는 끝났다 -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 4인의 도발적 젠더 논쟁
해나 로진 외 지음, 노지양 옮김 / 모던아카이브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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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전에 동일한 출판사인 모던 아카이브에서 나온 사피엔스의 미래를 읽었다. 제법 재밌었으며 이 책역시 비슷한 형태로 주제만 달리한 것 같아 꽤 기대가 됐다. 제목부터 상당히 자극적이지 않은가. 같은 종족의 절반을 부정하는 주장이라니. 하지만 책은 생각만큼 재밌진 않았다. 솔직히. 사피엔스의 미래가 알랭드 보통같은 인물과 스티븐 핑커 같은 인물로 나뉘어 첨예하게 진짜 당장이라도 싸울 것 처럼 대립했다면 '남자의 시대는 끝났다'는 이게 약했다. 일단 찬반 패널이 모두 여자인것 부터가 좀 그랬다. 자신들의 시대가 끝났다는데 남자가 나왔어야 하는거 아닌가! 남자는 사회자가 고작이다.

 물론 그게 출판사의 잘못은 아닐 것이다. 멍크 디베이트라는 토론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니 말이다. 네 명의 인물 토론 인물중 모두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스트다보니 첨예한 입장차이는 적은 편이었지만 가장 견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은 커밀 팔리아였다.

 팔리아는 페미니즘이 현대 과학과 생물학의 성과를 부정하는 행태를 비판한다. 이것은 오히려 페미니즘을 뒷걸음치고 고리타분하게 만드는 것이며 페미니즘은 현대 과학과 생물학이 내놓은 남여 차이에 대한 결과와 성향의 차이를 인정하고 새롭게 나가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필요하다면 자연의 힘을 거슬러야겠지만 자연의 힘과 자연자체를 부정할수 없다는 팔리아의 말은 과학이 보여주는 성의 물질적 정신적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현대사회에 있어 그것이 차별로 작용하는 것은 배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잘 드러내는 말인 것 같다. 학업에 집중하는 성향이 여성이 앞선다고 해서 남성을 배제하고 여성만을 공부시킬 수는 없으며 남성의 운동능력이 여성에 앞선다고 해서 여성들을 스포츠에서 배제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한쪽 성이 어느 부분에 있어 더 나은 성향을 지니곤 있다지만 그 부분에서 부족한 다른 성이 그러한 능력이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기도 하다. 마치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의 비율처럼 자연은 한 쪽성에 특정분야에 더 많은 비중을 두면서도 적은 비중으로 그 반대쪽 성에 그 분야에 적은 비중을 두어 만일에 대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남자같은 여자와 여자같은 남자가 적지만 있는 것은 이때문일 것이다. 

 커밀 팔리아는 페미니스트라면 무척 조심할 부분일 듯한 예쁜 여자에 대한 동경도 과감하게 인정한다. 그리고 심지어 부러워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많은 여성들은 스스로를 남자에 비해 적지않게 치장하는데 상당한 시간과 돈을 쓰면서도 이것이 자신들 간의 성 경쟁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팔리아는 그것은 분명 성경쟁이며 이러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 페미니즘에 해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성 경쟁은 어찌 보면 목표대상인 남자의 무지한 인지수준을 넘어서기까지해 남자들은 여성의 외적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는 반면 경쟁자인 상대 여성은 이를 귀신같이 포착한다. 

 팔리아의 의견 외에도 책에는 남여의 관계에 있어 생각할 부분이 여러곳 있었다. 우선 남여 평등시대가 서구 유럽사회와 북미의 선진국가를 중심으로 상당히 진척되었음에도 여전히 사회의 최상위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남성이 압도적이라는 점이다. 이를 근거로 여성이 열등하다고 말하는 것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런 사회들 조차도 아직 여성에게 완전히 평등하게 기회와 문을 열었다고 보기엔 그 사회들의 여러 수치가 이를 인정해주지 않는다. 또한 적절한 비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보다 훨씬 더 빨리 법적으론 평등권을 획득한 흑인들 역시 유럽및 북미사회에서 백인들과 동등한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던 무게추를 돌리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함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남성보다 보다 민주적이고 수평적이며 개방적인 사고에 어울리는 여성들이 이런 성향이 더 요구되는 미래 사회에 더 많은 기회를 얻고 전진할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간혹 조직의 최고 위치에는 싸이코 패스같은 성향의 사람이 적합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관계형 뇌를 갖고 이에 따라 관계와 배려를 중시하는 여성의 성향으로 볼때 최고의 위치가 이런 성향을 계속 요구한다면 좀더 시간이 지난다해도 여전히 최고의 위치에 있는 여성의 수는 부족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런 자리라면 여성 스스로가 거부하지 않을지. 아니면 여성이 중심이 되는 사회라면 이런 다소 남성적인 위계적 조직 자체를 지금으로선 조금 상상하기 어려운 형태로 바꾸어나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미래 사회에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으며 남여 차이는 선악의 관계와도 밀접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신장으로 요즘 사회에서는 악에 집중하고 이를 해결하는데 상당히 역량을 집중하고 있지만 사실 개인적으로 생물에게는 악보다는 선이 오히려 희귀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악과 선은 상당히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적어도 지구상의 생물중 인간은 이를 말하고 느끼고 분노하고 기뻐하고 있다.

 즉, 인간에게는 선악을 판별하는 기준이 있는 셈인데 나는 이 선악개념은 다른 것을 얻어오는 과정에서 인간이 느끼고 판별한다고 생각한다. 지위든 물질적인 것이든 성이든 그것을 얻어오는 과정에서 폭력성과 지나친 이기심, 과도한 추구가 있다면 사람은 이를 악으로 느낀다. 하지만 그것을 얻는 과정이 비교적 비폭력적인 편이고 배려와 과정에서 나누는 협력이 있으며, 적당함이 있다면 이는 선으로 느끼는 것이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정의하는 것과는 달리 어찌보면 악이 보다 정의의 중심이고 그 반대행위가 선이되는 셈이다. 즉, 선이 악의 그림자인 셈이다. 인간이 자신 외의 다른 존재가 무언가를 얻어오는 행위에 대해 선과 악이라는 가치판단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악이거나 선일 경우 자신의 생명과 소속집단의 생존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또한 생명체는 필연적으로 결핍된 존재인만큼 다른 존재로부터 무언가를 가져와야 하므로 이와 같은 선악판단은 상당히 본능적이고 필연적인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동물에 비해 다른 존재로부터 의존성이 덜한 식물이나 무생물에 인간이 선악판단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이기도 하다. 

 사실 다른 존재로부터 무언가를 얻어오는 과정은 지구상의 다른 모든생물도 결핍된 존재이므로 피할수 없는 만큼 인간의 선악가치판단에 어느 정도 상응하는 반응이나 감정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물들보다 고도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래도 인간이 상당히 당연시 되는 악에 비해 어떻게 보면 보다 효율적으로 다른 존재로부터 무언가를 얻고 의지할 수있는 협력이라는 이타성을 향해 진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동물들의 사회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상당한 스트레스는 주겠지만) 우두머리 침팬지의 다른 영아 침팬지 살해나 암컷들의 독식은 실제 인간사회에서는 상상할수 없는 압박과 비난을 받기에 실현 불가능하다. 

 선과 악을 말하려다 보니 말이 길어지긴 했지만 원래 하고 싶었던말은 인간의 성에 국한되 선악 판별을 하자면 남성이 맡은 부분이 인간존재 전체가 짊어져야할 악의 부분을 보다 많이 짊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 종내에서 열량을 얻기 위해 남자가 주로 담당한 것은 다른 동물에 대한 사냥이며 이는 상당한 폭력성을 요구한다. 또한 다른 성을 차지하기 위한 종내 성경쟁이나 이를 위한 지위획득을 위한 경쟁에서 남성이 보이는 과도함과 독점, 비협력성은 상당하다. 반면 여성은 열량획득을 위해 주로 식물을 채집했고, 성경쟁이나 지위경쟁 역시 남성의 그것에 비하면 치열함이 덜하고 훨씬 덜 비폭력적이며 자신들간의 관계 구축이 육아나 남자들이 비운 집을 지키기에 유리했다. 주로 악을 담당해온 남성의 이런 성향은 그 필요성이 직접적으론 줄고 비교적 평화적인 다른 형태로 줄어든 오늘날의 사회에서도 총기난사라던가, 싸이코 패스의 잔혹한 범죄 등의 형태로 출구를 찾지 못하고 발현되기도 한다. 물론 소수의 여성 역시 남성의 이런 부분을 갖고 비슷한 행태를 보이기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긴 하다. 

 인디언들은 자신들의 친구를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자라고 칭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남성은 인간이 어쩔수 없이 지어야할 악을 등에 지고 가야만 하는 존재들이 아닐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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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바꾸는 영어


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운명을 바꾸는 영어>강연회 성공적 개최, 화제의 책!






***

<운명을 바꾸는 영어> 

서평단을 모집합니다.

***




많은 참여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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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명의 한국사 X파일
김진명 지음, 박상철 그림 / 새움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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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짜 가볍게 볼수 있는 역사만화. 글은 김진명이 썼다. 쉽게 볼 수 있고 2시간 이내에 다 볼 수 있지만 내용이 가볍지는 않다. 얼마나 믿어야 할지에 대해 판단이 쉽게 서진 않지만 일단 주요한 역사사건에 대해서 그간 루머로 취급되거나 인정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 직접 발로 뛰고 생각하며 밝혀낸 부분을 다루었다.

 주제는 다음과 같다.

1. 대한민국의 국호의 중심에 있는 '한'자에 대한 기원

2. 광개토태왕비의 임나일본부설

3. 명성황후의 죽음

4. 박정희 죽음의 진실

5. 김정은의 실체

6. 함흥차사의 실체

7. 한자의 기원


주제1에서는 한민족이라고 부르는 우리 국호 중심에 자리한 한의 기원에 대해 살핀다. 한의 기원은 주로 삼한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대학에서 한 역사 교수님은 한은 남한 중심이므로 남한에서 국호로 사용하고 조선은 북한 중심이므로 북한은 조선을 국호로 쓴다고 하셨다. 이런면에서 북한에서는 한국인을 한민족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드물것 같다. 없을수도 있다.

 어쨌든 김진명은 이 '한'의 근원을 중국문헌에서 찾고 이 '한'은 과거 전국시대 소국이었던 한나라가 아니라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그 이전 시대에 주나라의 왕을 한의 후가 방문했었다는데서 기록이 있는데 그곳에서 한의 기원을 찾는다. 한후는 나라가 망한 후, 한반도쪽으로 이주했다는 것이 책의 주장. 그렇다면 한민족의 한의 기원은 삼한이 아닌 중국의 주나라 시절 존재했던 '한'에서 찾아야한다는 셈이다.


주제2에서는 광개토태왕비에 일본이 식민지 경영을 위한 정당화로 가상의 임나를 만들고 태왕비의 중요한 부분의 두글자에 이를 채워넣는 형이었다. 과거 태왕비를 일본군이 조작했다는 설이 있었는데 저자는 이것이 신빙성이 없다고 본다. 과거 중국한자가 땅에 오랜세월 묻혀있던 태왕비가 거센비로 지표에 드러나자 이를 자세히 연구하기 위해 뒤덮힌 이끼를 불로 태우는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과정에서 태왕비가 많이 훼손되었는데 이를 염려하여 태우기전 글자하나하나를 필사했는데 이를 저본이라 한다. 이 저본이 중국한자의 기록에 남아 있어, 이를 확인하니 두 글자중 첫자가 동이었다. 이것이 사실이면 주어는 백제가 되어 임나가 백제와 신라를 정벌하여 속국으로 삼았다고 아닌 백제가 신라를 정벌하여 속국으로 삼았다가 되고 이것이 역사적 상황에 부합한다.


주제3에서는 명성황후의 시해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한 미우라 공사를 감시하던 일본관료가 본국에 보낸 편지를 찾아낸다. 여기서 시해과정에 살아있는 상태에서 황후를 국부검사했다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를 통해 황후의 살해과정에 시간이나 성폭행에 상응하는 행위가 있었음을 추론한다.


주제4에서는 박정희 죽음의 실체다. 의혹이 가득한 이 죽음에서 김재규가 사실 미국과 내통하고 있었음이 아닌가를 의심하고 있으며 미군의 철수상황에 대해 핵으로 대응하고자 했던 박정희를 미국의 추인하에 김재규가 제거한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주제5에서는 젊고 어림에도 상당한 잔혹성과 권력장악력을 보이는 김정은에 대한 의심이다. 어린 나이이고 기반이 없는채 갑작스레 후계자로 지목되 승계한 김정은의 리더십이 이 정도일리 없다고 저자는 보고 있다. 김정은은 든든한 지원세력인 고모부 장성택을 무자비하게 제거하였는데 이는 장성택을 제거하고자하는 북한내 행정지도부 세력이 김정은을 위협해 이루어 진것이고 그로 인해 지금의 북한 정권은 사실살 행정지도부에 이해 운영되고 김정은은 바지 사장 정도로 본다. 과거 왕조시절 쿠데타 세력들이 실권을 장악하면서도 명분으로 인해 왕은 쉽사리 갈아치우지 않고 조종만 하는 형국과 비슷한 셈이다.


주제6은 가장 재밌었다. 들어본적이 없는 주장이어서인데, 함흥차사가 사실 이성계의 분노표시가 아닌 이방원에 의한 유폐였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외롭고 힘이 필요한 이성계가 자신의 중신이었던 신하들을 죽일리 만무했었다는데어 의심을 가졌으며 역사상 함흥차사에서 죽임을 당했다는 중신의 기록이 없다는 점등을 들어 함흥차사를 사실상의 귀양조치로 보고 있다.


주제7은 한자를 만든 주제가 동이족이라는 주장이다. 은허에서의 갑골문 발굴과 동시에 유골 발굴도 이루어졌는데 당시 유골의 매장방식이 동이족의 것이었다. 이에 한자와 은나라 문명의 주체가 동이족이라는 주장이다. 후에 한족인 주에 의해 은이 멸망하고 동이족은 본거지인 요하문명권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자의 발명주체는 동이족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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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고양이가 내게로 왔다 낮은산 키큰나무 14
김중미 지음 / 낮은산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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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물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나 이외에 다른 것을 챙기는데 무관심하고, 다른 것에 감정적으로 잘 의지하지 않는 성격이라 그런 것 같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게으르다. 종교에서 자유로울수 있고, 동물도 키울수 없는 결정적 이유다.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들의 발달상 이유로 선생님께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을 권유하셨다. 진짜 싫어서 엄청 고민이 되었다. 그래도 아들을 위한건데......귀차니즘을 뛰어넘을만한 동인이었다. 마침 직장 동료들이 적잖이 개를 많이 키우고 있어 물어봤다. 나같은 사람이 감당할 일이 맞는지.

 마냥 즐겁게만 키우는줄 알았는데 다들 의외로 고충이 많았다. 돈은 사람새끼 키우는 것과 거의 매한가지로 든다. 많은 노력이 든다. 애초에 시작을 한하는게 낫다 등등. 결정적으로 날 돌려세운 한마디는 이거였다. "애는 10년 키우면 집 나가지만, 개는 그대로 집에 있다." 아....... 강력했다. 그길로 애완견 입양은 포기했다. 이것도 이거지만 집을 일년에 몇달간 비우는일도 잦아 난감하기도 했다.

 이 책에는 나와는 상당히 반대의 사람들이 나온다. 이들은 모두 크게 결핍되었다. 정서적으로. 그래서인지 애완동물 특히, 고양이를 무척 사랑하고 아낀다. 주인공 고양이는 총 3마리가 나온다. 모리, 크레마, 마루다. 모리는 눈치챘다시피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따온 제목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주인집의 아내가 좋아하는 소설이라 그리 붙였다 한다.

 고양이들의 삶은 기구하다. 모리는 곧 재개발 되는 시장에서 1살이 채 안된채 독립하여 출산을 하고, 어지러운 틈바구니 속에 새끼들을 모두 잃어 버렸다. 그리고 아사직전에 발견되어 입양된다. 크레마는 글자그대로 커피색이라 크레마인데, 주인아주머니와 딸을 괴롭히는 주인아저씨에게 맞서다 실명하고 죽을 고비를 넘겼다가 입양된다. 원래 이름은 나비였다. 마루는 사람과 무려 8년을 살았다. 그리고 다른 고양이들을 모른다. 즉, 야성이 거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 주인이 가난했다. 월세방에서 나오고 고시원까지 밀려나자 어쩔수 없이 마루를 내보낸다. 즉, 고양이들도 크게 상처받으며 자란 결핍된 존재들인 것이다.

 주인들의 삶도 고양이 못지 않다. 사실상 사람 주인공인 연우는 엄마가 죽었다. 사회복지사였던 엄마는 격무끝에 심장마비로 죽었으며 쓰러진지 무려 30분 만에 발견되었다. 연우의 아버지는 아내를 죽인 국가를 상대로 업무상순직처리를 받기 위해 애쓰지만 실패한다. 그리고 연우의 아버지는 가족없이 힘들게 자라서인지 애완동물을 보고는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모리, 크레마, 마루는 차례로 연우집에 살게 된다.  

 소설에는 사회적 아픔도 자리한다. 앞서 말한 연우네 집은 사회복지사들의 열악한 업무환경을 지적하고, 크레마의 본래 주인은 잘 나가는 중국집을 하다 재개발이 시작되고 이를 반대하다 가정이 파탄난다. 그리고 마루이 주인은 돈이 없어 대학을 무려 6년째 다니고 있고 월세보증금마져 모조리 까먹어 고시원으로 밀려나는 지금 시대의 아픈 젊은이다.

 이처럼 사람과 고양이들은 모두 서로 결핍된 존재이기에 서로를 찾는다. 그리고 상처를 치유해나간다. 과정은 물론 쉽지 않다. 상처 치유의 마지막은 소설 말미에 입양된 고양이 레오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레오 역시 버려진 고양이지만 어려서부터 연우집에 세고양이와 자라난 끝에 사랑받으며 구김없이 자라난다. 사람과 고양이들 모두 어려서부터 그리고 성장과정이 그러했다면 모두 레오같았을 것이다.

 책에는 그런 장면과 생각을 이처럼 묘사했다.

"매사에 당당하고 자유로운 레오를 보면 아무 조건 없이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존중하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된다."

 "그들은 나를 떠난 누군가의 자리를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다시 사랑할 새로운 존재, 다시 맺어야 할 새로운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이 장면들이 소설의 주제이다. 사람은 오랜시간 동물과 함께 해왔다. 처음에 학자들은 사람들이 동물을 애완용으로 키우는 것을 일종의 사치로 생각했고, 최초의 동물과 함께하는 것은 철저히 가축화를 통한 실용적 목적으로 봤었다. 하지만 생활의 여유가 없는 원시사회에서도 동물이 사람과 함께하는 형태의 유골들이 발견되고 이러한 생각은 뒤집어 졌다. 서로 결핍된 존재들을 오랜 시간동안 서로를 채워주며 살아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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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08 0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물, 특히 개가 사람의 표정만 보고도 감정 상태를 알아채는 신비한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닷슈 2017-06-08 08: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놀라운데요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사람동물간 그런관계가 만들어지진않았겠죠
 
여자의 하루에 관한 거의 모든 심리학 - 정신과 의사에게 말하기엔 너무 사소한 일상심리 이야기
선안남 지음 / 웅진윙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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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들의 심리를 다룬 책은 참 많다. 하지만 남자의 심리를 다룬 책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다. 이 책역시 일상에서 일어나는 여자들의 여러 심리를 재밌게 다룬 책이다. 글쓴이만의 독특한 시각과 심리를 설명하는 나름의 이유가 재밌다. 심리들이 일상과 관련있고, 하루의 특정시간대 주로 일어나는 것들을 나누어 다루다보니 더 독특한 면이 있다. 그리고 각장마다 간단히 에피소드와 관련한 심리학 용어를 설명하기도 한다.

 다 재미있게 읽고나니 머릿속에 두 가지 큰 질문이 남았다.

 

 첫번째는 왜 여자들은 겉모습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일까

 두번째는 왜 여자들은 다른사람에 많은 신경을 쓰는 것일까 이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룬 모든 에피소드들은 위 두가지 질문에서 모두 벗어나지 못한다. 위 두 질문에 대한 그때그때의 감성과 글쓴이의 매력적인 해석 및 비유가 이 책이란 생각이다.

 

 우선 여자들의 겉모습에 대한 많은 노력에 대해서다.

여자들이 겉모습에 들이는 노력은 사실 남자들의 상상을 아득히 초월한다.  책에 의하면 여성들이 평균적으로 화장을 하는데 들이는 시간이 평생 2년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세끼를 꼬박 먹는 사람의 평생 식사기간과 비슷한 정도인데, 아무리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7-8년이 길다해도 이는 상당한 시간투자가 아닐 수 없다. 거기에 각종 악세사리와 여러 의류들, 소장품들을 고르는 시간과 돈을 생각한다면 겉모습에 대한 금액과 시간규모는 더욱 아득해질수 있다.

 이처럼 여성들이 겉모습에 많은 시간과 금액을 투자하는 이유는 우선 성경쟁과 관련지을 수 있다. 입술색을 더욱 붉게 해주는 립스틱, 얼굴을 어려보이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여러 화장법,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긴 머리, 키와 몸매를 돋보이게 하는 하이힐, 몸매를 드러나게 하는 여러가지 옷들은 남성의 성적 본능을 더욱 자극시키는 것들이다. 이런 노력을 통해 더 나은 성파트너를 얻을 수 있다면 이런 노력은 충분한 보상이 있는 것들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들의 겉모습에 대한  노력이 남성을 성적으로 자극시키는 부분과 상당히 일치한다는 점에서 성경쟁을 위한 것이라는 견해는 가장 강력한 동인이라고 생각된다.  

 다음은 여성간의 경쟁 혹은 여성의 아름다움에  대한 성향때문이다. 사실 남여평등시대에 많은 여성들은 위와 같은 견해에 불편함을 느끼는 편이며 자신들의 겉모습에 대한 노력은 개성의 발현이고, 남성이 아닌 자신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스포츠 머리를 한 여성이나 엄청난 근육질의 여성등 남성들이 보편적으로 성적 본능을 느끼기 어려울 만한 겉모습에 많은 노력을 들여 만들어내는 여성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이런 경우는 보편적인 경우를 벗어난 남성성을 많이 가진 소수의 여성들이라고 볼수 있어 매우 특수한 예이다.

 하지만 이런 특수한 경우외에도 여성들의 겉모습에 대한 노력중 남성의 성적 본능을 끌지 않을 만한 것들이 충분히 있다. 가령 보석이나 꽃처럼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고 이와 비슷하고 겉모습을 가꾸려는 노력들이 그런한 것들이다. 이런 형태의 겉모습은 사실 남성에게 이렇다할 성적어필을 하지 못한다. 여성들은 색에있어서도 핑크색등 밝은 계열의 색을 선호하고 겉치장에 이용하지만 그러한 색들이 반드시 남성에게 성적자극이 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이런것들은 밝은 계열의 원색을 선호하는 여성의 눈의 진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되며 상당히 많은 것들이 그러한 부분의 변용이라고 보는 편이다. 이에 발달한 인류문화는 이 변용을 더욱 부채질 했을 것이다.

  또한 이런 형태의 겉모습에 대한 여성간의 경쟁은 성경쟁이라기 보다는 자연히 여성들 자신간의 경쟁을 띈다. 여성간에서도 이러한 형태로 경쟁에서 우위에 서는 것은 반드시 성경쟁이 아니더라도 여러면에서 유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여성간의 경쟁이 반드시 성적경쟁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 과연 남성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에서도 여성들의 겉모습에 대한 노력이 지금과 같을지 궁금하다. 전혀 없거나 아니면 순수하게 여성간의 경쟁으로 남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로 가지 않을런지.

 

 두번째는 왜 여자들은 다른 사람을 많이 신경쓰는가이다. 이는 여성이 관계지향적인 뇌를 가져서라고 볼수 있다. 여성들은 오랜 기간 육아를 하고 가정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말을 전혀하지 못하는 어린 유아를 돌봐야 했고, 집단 내에서 같이 생활하는 여성들과 수렵 및 여러 상호작용을 해야 했다. 때문에 자연스레 남성보다 상대방의 감정을 파악하고 공감하는 관계지향적 뇌를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하였다. 수렵을 위해 식물 및 열매 구분을 뚜렷히 하기 위해 여성의 눈이 원색에 보다 민감하게 진화하고, 고작 하루 7-8천 단어를 말하는 남자에 비해 1만2천 단어 이상을 말할만큼 언어적 의사소통에 능하게 진화한 것도 모두 이때문이다.

 때문에 여자들은 다른 사람을 많이 신경을 쓸수밖에 없다. 관계지향적 뇌를 가졌기에 글자그대로 관계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에 대한 민감성, 여러 사람의 동의를 반드시 구하고자 하는 성향, 인정을 받고 자하는 성향, 서로를 챙기고 보듬고자 하는 성향들은 현대에 그래도 남아 여성이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많이 신경쓰고 의존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여성들은 정기적으로 반드시 친구를 만나며, 매우 긴시간을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인정을 받고 자 분투하며, 상당히 시기도 하고 질투도하며 싸운다. 또한 긴시간을 고민을 함께하고 그럴경우 대부분 같이 울어주며, 친구의 생일은 반드시 챙긴다. 또한 중요한 결정을 하는 경우 같이 고민하고 친구의 인정을 받기를 원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겉모습을 위해 평생 부단히 노력하고, 다른 사람을 신경쓰기만 하는 여자들은 무척 주체적으로 보이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여자만 그럴까. 남자도 마찬가지다. 가볍게 친구와 스쿼시를 즐기던 두 절친 남자들에게 둘이 모두 아는 여자가 갑자기 나타나 두사람의 경기를 본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까? 프랜들리 하던 게임은 전쟁을 방불케 변하며 미소역시 사라진다. 웃기는 것은 이 경우 여자의 미모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이며 그 여자에 대해 둘다 이성적 관심이 없었다고 해도 일은 그렇게 진행된다는 점이다. 거기다가 남자가 성경쟁을 위해 들이는 노력은 또 얼마나 무시무시 한가. 집에 비싼 자동차에, 좋은 직장까지 어찌보면 여성의 그것보다 스케일이 더욱 어마어마하며 고통스럽기 그지 없다.

 거기다가 남자는 관계지향적인 여성과 다르게 체계형뇌를 갖고 있어 위계질서에 민감하다. 때문에 조직을 위해 죽기도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가끔하기도 하며 그러면서도 서로간에 의지하지 않으며 힘들면 오히려 자신만의 동굴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남자들에게도 어떤 주체성을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둘다 상당히 타자지향적이다.

 

 그렇다고 남자나 여자나 주체적이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결핍된 행성에서 결핍된 존재인 동물로 진화하여 거기에 서로 의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와 문화를 구성한 인간이 애초에 완전히 주체적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우리의 주체성은 애초에 타자지향적인 것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닐런지. 물론 타자지향에는 적당히라는 것이 있어야 할테고 자신과 사회 우주에 대한 꾸준한 생각이 있어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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