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뻬 씨의 우정 여행 - 파리의 정신과 의사 열림원 꾸뻬 씨의 치유 여행 시리즈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이은정 옮김, 발레리 해밀 그림 / 열림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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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저자 최고의 책이다. 행복여행, 인생여행도 좋지만 정신과 의사의 입장에서 본 우정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우정에 대해서 소설 한 권으로 쓴 책이라서 독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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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보경심 세트 - 전3권
동화 지음, 전정은 옮김 / 파란썸(파란미디어)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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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로맨스가 잘 버무려진 소설이다. 술술 읽히는 맛에 단숨에 읽어버린 책. 청소년들이 읽어도, 어른이 읽어도 누구나 감동하지 않을까. 주인공에 동화되어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다른 중국 역사소설도 읽고 싶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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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 씨의 우정 여행 - 파리의 정신과 의사 열림원 꾸뻬 씨의 치유 여행 시리즈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이은정 옮김, 발레리 해밀 그림 / 열림원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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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뻬씨의 우정여행-친구는 또 다른 나!!

 

우정에 대해 한 번쯤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인생에 있어서 친구의 필요성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처럼 우정을 방대하고 깊이 있게 정리해 본 이가 있을까.

이 책은 우정에 관한 소설이지만, 에세이 같기도 하고 철학서 같기도 하다. 우정이 무엇인지, 진정한 친구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풀어가는 모습이 소설의 형식을 빌렸지만 사뭇 진지하다. 아슬아슬한 로맨스도 있고 쫓고 쫓기는 자들의 두뇌싸움 같은 추리도 있고 여행을 하면서 느낀 아시아의 다양한 민족, 문화, 사람들에 대한 감상도 있다. 물론 산과 강이 아름다운 서울 이야기와 시큼하고 걸쭉한 막걸리 이야기도 양념처럼 살짝 나온다.

 

이 소설의 작가인 프랑수아 를로르는 정신과 의사이다. 정신과 의사로서의 자신의 실제 임상경험과 개인적인 고민들을 주인공인 정신과 의사 꾸뻬를 통해 투영하고 있다. 현대인들의 우정에 대한 고민들을 누구보다 많이 접했을 그이기에 '우정에 대한 관찰 22가지' 는 깊은 공감을 준다. 더불어 책 속에는 위대한 스승 아리스토텔레스와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생각들도 비교분석해 놓아서 고전을 읽는 듯 한 느낌도 준다. 책의 중간 중간에 실린 발레리 해밀의 그림들은 부드럽고 따뜻한 즐거움을 주어서 색다르다.

 

친구 에두아르가 금융 사고를 치면서 거액의 돈을 가지고 종적이 묘연해지자 꾸뻬는 일상을 접고 아시아의 밀림 숲에 숨은 친구를 찾아가는 모험을 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오래된 친구를 만나기도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기도 하면서 미처 깨닫지 못한 친구관계들을 정리해 보게 된다. 우정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가지고 긴 여행을 하는 꾸뻬는 우정에 대한 견해를 정리하고 수정해가기도 한다. 우정을 행복의 근원이라 믿는 꾸뻬는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정 속에서 휴식과 평안을 누리고 마음의 병을 치유하기를 바라고 있다.

 

관찰 1. 우정은 (심리적인) 건강이다.

관찰 2. 친구를 위해서라면 자기 것을 희생하거나 위험을 감수할 수 있다.

관찰 3. 친구란 만나면 즐거운 사람이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상호적이어야 한다.

관찰 4. 우리는 친구가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들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긴다.

관찰 5. 친구란 그들의 삶의 방식을 찬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관찰 6. 오래된 친구는 원시림의 나무처럼 귀하게 여겨야 한다.

관찰 7. 친구란 나를 위해 걱정하는 사람이다.

관찰 8. 친구란 비밀을 털어 놓을 수 있는 존재다.

관찰 9. 친구란 내가 불행할 때 함께 슬퍼하고 내가 행복할 때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다.

관찰 10. 진정한 우정이란 사랑 때문에 저버릴 수 없는 것이다.

 

관찰 11. 친구란 우리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다.

관찰 12. 질투만 계속 된다면 친구라고 할 수 없다.

관찰 13. 친구가 되면 괴로움 뿐 아니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어 한다.

관찰 14. 남자들은 같이 무언가 하는 걸 좋아하고 여자들은 자기들끼리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관찰 15. 모험을 함께 하면 우정이 돈독해 진다.

관찰 16. 오래된 친구는 우리 인생의 뜨개질 속의 털실 한 줄이다.

관찰 17. 친구는 우리가 지나치게 나쁜 길로 가는 것을 막아주는 사람이다.

관찰 18. 친구란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관찰 19. 친구란 감사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다.

관찰 20. 친구란 든든한 위로가 되는 사람이다.

관찰 21. 친구란 언제나 함께 웃을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사람이다.

관찰 22. 우정은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상호적으로 호의를 베풀며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하면서 점점 커져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정을 필요에 의한 우정, 여흥을 위한 우정, 선한 우정, 이 세 가지로 나누면서 진정한 우정은 선한 우정뿐이라고 했다. 우정의 최상의 형태는 사심 없이 선행을 베풀 수 있는 사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친구는 또 다른 나'이며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나는 늘 생각해 왔다. 그러나 진정한 친구를 간절히 원하면서도 이토록 길고도 깊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음에 놀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오랜 시간동안 친구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가까이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친구는 공감과 이해를 많이 나눌 수 있어서 소중하고, 멀리 있지만 오래된 친구는 소중한 추억을 함께 했기에 귀중하다. 사소한 모임 속에서 단체로 만나는 친구들은 각각의 장점들이 있어서 서로에게 의지가 되어서 좋다. 나는 그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친구인가를 곱씹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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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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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나도 그래요. 라며 끼어들게 만드는 이야기.

 

 

이 책을 통해 윤성희 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올해의 예술상을 받은 작가의 이력에 내심 기대를 하면서 책을 펼치는데 만만치 않은 이야기 솜씨에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이 책의 내용은 콜라처럼 톡 쏘는 달콤한 맛은 아니어도 막걸리같이 거칠고 구수하며 알싸한 맛을 지닌 이웃에 있을 법한 이야기들이다.

 

 

 

 

 

거봐, 사람 사는 건 다 똑같잖아.(108쪽)

 

평범한 일상 속에 들풀처럼 일어나 꽃을 피우고 열매 맺은 이야기, 비바람에 쓰러져 꽃대 꺾인 이야기, 그러다 봄이 되면 새로 돋고 움트는 자연처럼 다시 순환하는 끝없는 이야기들이 책 속에는 가득하다. 결코 남의 이야기 같지 않은, 구경하는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공감 가는 이야기들이다.

누군가를 지켜보거나 훔쳐보는 일은 흥미롭기도 하고 내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 때면 때때로 묘한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우린 소설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남의 이야기로 수다를 떠나 보다.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구경꾼이 되기도 하고 구경거리가 되기도 하나 보다.

그래. 사람 사는 건 어디에나 다 똑같지. 지구 어디에선가 나처럼 살거나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일부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묘한 호기심과 안도감이 든다.

우린 시선을 받거나 시선을 주거나 하면서 늘 그런 관계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소소한 나의 일상이 남에게 일어나기도 하고 공감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소설 속의 3대 가족의 일상을 쭉 구경하다보니 불쑥불쑥 내 이야기가 하고 싶기도 하다. 나도 그래요 라든가, 그럴 땐 이렇게 해보시지 라든가, 인간이 참 용기 있네요 라든가, 허공에 대고 지껄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며 입 꼬리가 올라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나의 참견 본능을 일깨운 소설이다.

물론 나는 3대가족으로 살아 본 적이 없다. 우연히 도로를 달리다가 재수 없이 사고가 나거나 옥상에서 떨어지는 사람에 맞아 황당하게 죽은 가족도 없고 신문기사 하나 달랑 들고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냅다 비행기를 타고 기사의 주인공을 찾아가는 무모함도 없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을 다하며 살지도 않거니와 하고 싶은 대로 용기 있게 나서지도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래요. 라며 끼어들고 싶어진다.

 

주인공가족들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큰삼촌, 작은 삼촌, 고모, 나, 따로 사시는 외할머니까지 요즈음 보기 힘든 대가족이다. 이들은 하나같이 호기심이 많고 주관이 뚜렷하다. 궁금하면 물어 볼 수 있는 용기, 일상을 접고 과감히 떠날 용기를 지니고 있어서 때론 아슬아슬하기도 하고 때론 유쾌, 상쾌, 통쾌한 스릴을 느끼게 하기도 하며 사소한 말 한마디로 배꼽잡고 웃게 만들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거짓말을 술술 해대는 조금은 엉뚱한 가족들이다. 그러면서도 우리 이웃에 사는 누군가의 모습, 아니 나의 모습과 겹쳐질 때가 있어서 나도 그래요 라고 속삭이게 만든다.

사고나 죽음을 대하는 이들 가족들의 자세는 슬픔 속에서도 의연하다. 사는 건 어디나 다 똑같고 명대로 살다 가는 거니까 억울할 것도 없다는 듯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발버둥 쳐봤자 거기가 거기임을 체득한 것일까? 주어진 대로, 세월 가는 대로, 엮이는 대로 사는 인생임을, 특별한 듯 특별하지 않은 인생임을 통달한 가족들 같다.

 

큰 삼촌은 처음으로 한 가족여행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그 병원의 옥상에서 떨어지는 여자에 깔려 죽는다. 그 사고 이후로 할머니는 식탁에 큰 삼촌의 밥그릇을 여전히 차린다. 기억하면 살아있는 듯 느껴지기 때문일까. 식구들은 큰 삼촌의 물건들을 나눠 가지며 추억한다. 할아버지는 강간범과 싸우다가 의식을 잃고 병원에 입원한다. 그 소식이 뉴스에 나가고 많은 사람들의 격려를 받지만 결국은 깨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간다. 큰 삼촌의 죽음 이후로 아버지는 회사에 사표를 낸다. 부모님은 신문기사에 난 주인공을 찾아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신문에 실린 기사는 생활고에 비관한 미혼모가 삼층 건물에서 뛰어 내렸고 때마침 그 아래를 지나던 남자를 덮쳤는데도 둘 다 살았다는 내용이었다. 이 후 몇 번의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는 그때 찍은 사진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을 엮어 책을 출간하게 되고 전국사인회를 가지기도 한다. 삼십 년 동안 혼자 돌로 집을 짓고 있는 남자를 찾아 갔다가 그 돌무더기가 무너지는 바람에 깔려 죽는 부모님. 식구의 수가 점점 줄어가는 이야기에는 일상 속의 코믹함과 불행이, 기적과 우연이 교차하며 일어난다. 운명인지 우연인지, 행과 불행이 겹쳐서 일어나기도 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중요한 순간에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게 과연 몇 가지가 될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겉으로 말하는 나와 속으로 말하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한다.

그러게 집 떠나면 고생인 걸요. 앞만 보지 마요. 때론 옆도, 뒤도, 하늘도, 땅도 쳐다보며 살아야 해요. 사고는 예고가 없답니다. 평소의 행동패턴이 사고를 유발한다고 그러잖아요. 성추행 당하던 소녀를 지키려던 할아버지의 용기는 멋져요. 성추행이나 성 폭행 범은 엄벌로 다스려야 해요. 그런데 첨성대 같은 집은 왜 지어요. 에스키모처럼 돔형으로 짓든지 장군총처럼 짓지. 돌 사이에 시멘트로 접착하시지 않고. 오초 본드 그거 좋아요. 튼튼한 집이 되려면 안전점검은 필수죠. 여러분 세상구경 많이 하고 싶으면 외할머니처럼 족발 집을 해 봐요.

할머니, 저는 삼식 세끼가 주는 즐거움에 살아요. 간식은 물론 티타임도 기다려지죠. 물론 요리하는 즐거움도 있고요. 가족들이 먹는 모습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걸요. 아직 그 연세까지 살아보지 않아서 일까요?

이렇게 수런수런 거리는 나의 모습이 내 진짜 모습인가 보다.

작가의 맛깔 나는 이야기 솜씨에 빨려들 듯 참견하고 있는 나를 보며 속이 후련해짐을 느낀다.

작가만의 유머감각에 헤헤거리며 웃음을 흘리기도 하고 슬픈 죽음 앞에 애달파 하기도 한다. 어느 날 중요한 순간에 고민스런 일이 생긴다면 한 번 더 읽어 보고 싶은 책이다.

 

 

 

 

 

* 인상 깊은 구절*

독자들을 만나면서 부모님은 여행을 하는 동안 보았던 기적 같은 일들이 실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는 먼 곳에만 있지 않았다.(236쪽)

 

음식 솜씨 없는 할머니는 하루에 세끼를 먹어야 하는 인간이 징그럽다고 생각했다. (8쪽)

 

내게 부채질을 하면서 할머니는 속삭였다. '누가 뭐래도 니 맘대로 살아야 한다.'(36쪽)

 

네가 여기 있는 걸 니 엄마가 아이? 알면 여행이고 모르면 가출이야.(......) 며칠만 더 이러고 있다가 집에 갈 거예요. 집에 돌아갈 걸 알고 있으면 여행이에요.(......) 가출이면 아침밥을 사주려고 했는데 여행이니 네가 알아서 사 먹어라. 외할머니는 소녀의 침낭에 묻은 모래를 털어 주면서 말했다. (67쪽)

 

나중에 커서 밑줄 그은 부분을 다시 읽어 보렴. 그러면 네가 얼마나 자랐는지 알 수 있을 거야.(93쪽)

 

어쩌면 괜찮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181쪽)

 

 

어머니는 해외토픽에 나오는 황당한 죽음을 보면서 웃긴 죽음이라는 것이 실은 얼마나 슬픈 일인지를 늘 생각했다. 슬픈 죽음이란 거의 비슷비슷한 사연을 담고 있다. 하지만 웃긴 죽음이란 모두 제각각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그 이야기는 돌고 돌게 될 것이다.(249-250쪽)

 

어머니가 어깨에 멍이 들 정도로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지구를 헤맬 동안 외할머니는 주방 간이의자에 앉아서 어머니가 보았던 이야기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189쪽)

전학생은 꽃다발을 사가지고 문병을 왔다. 어울리지 않게 이게 무슨 짓이냐. 내 말에 전학생이 일 년에 한 번씩은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해야 심심하지 않는 법이라고 말을 했다. (3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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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는 잠들지 않는다
임종욱 지음 / 북인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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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

 

-김만중의 예술혼과 그의 선견지명에 놀라다

 

 

요즈음 고전과 옛 문학에 끌려서인지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 라는 소설이 김만중의 유배생활 3년을 그렸다는 사실만으로도 호기심은 끌렸고 설렘은 가득했다. 그런데 왜 남해는 잠들지 않는다는 걸까? 아직도 끝나지 않은 추리소설인가? 후편이 계속 나오는 건가? 표지의 제목도 '잠들지않는다'에서 띄워 쓰기를 하지 않았는데 등등 온갖 미스터리한 상상을 하며 책장을 넘기게 되었다.

이 소설은 김만중이 남해로 유배를 온 시점부터 그가 노도에서 생을 마치기까지를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서포만필을 자료로 하여 작가적인 상상력으로 요리해서 맛있게 먹기 좋게 버무려 놓았다. 그래서 김만중과 함께 유배된 심정으로, 사대부이자 유력 정치가의 쇠락한 마음으로, 누구에게라도 속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없는 죄인의 심정으로 이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유배인의 심정, 정치적 세력에 내몰린 억울함이 무엇인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구운몽, 사씨남정기, 서포만필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쉽게 다가왔고 실제 작품들도 읽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도 가지게 되었다.

인간사 일장춘몽을 느끼게 하는 구운몽은 불법을 전하는 육관대사의 제자 성진의 이야기다. 성진은 대사의 심부름을 가다 용왕이 보낸 팔선녀의 미모에 빠져 불법에 회의를 품다가 지옥으로 추방된다. 이후에 성진은 양처사의 아들로 이승에서 다시 태어나 우여곡절 끝에 팔선녀와 다시 재회하고 부귀영화를 누리지만 역대 영웅들의 황폐한 무덤을 보고 인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다시 불도를 닦는데 깨어보니 모두 한낱 꿈이었다는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는 풍채 좋고 언변에 막힘이 없는 사나이 양설규의 색락과 풍악, 불도를 즐기는 모습들을 몽환이라는 이야기로 쓰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패관잡기를 즐기는 어머니를 위해, 좀 더 쉽게 백성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언문소설을 다듬고 완성하게 되는 과정이 담겨 있다. 누가 봐도 구운몽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게 한다.

사씨남정기는 중국 명나라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데 자식을 낳지 못하는 사대부집안 정실인 사 씨가 간사하기 짝이 없는 교 씨라는 첩을 들이면서 온갖 고생과 억울한 일을 당하지만 훗날 첩의 악행이 드러나 첩은 처형되고 사 씨는 다시 남편과 백년해로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 소설에서는 장 선달 댁 며느리 이소정의 정숙함과 그의 첩 채란의 간계와 모략, 충직한 종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데 긴박함과 긴장감을 끌어 올려 마치 추리소설 같은 느낌이다. 사씨남정기는 희빈 장 씨의 세도를 빗대고 당시의 정치현실을 비판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즉 장희빈의 치마폭에서 놀아 난 숙종에게 깨우침을 주기 위한 글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김만중이 생을 달리한 이후에 소설의 내용처럼 장희빈은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되어 결과적으로 그의 목숨을 건 충언과 예언이 맞아 떨어진 셈이다. 권선징악의 교훈이 역사 속에서 소설처럼 펼쳐지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소설 속에서 김만중은 평소에는 눈여겨 볼 틈이 없었던 시골 민초들의 마음과 아낙네들의 고달픈 하루, 서민들의 힘겨운 목소리를 어느 때보다 가까이서 직접 보고 듣고 느끼면서 생각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 현장에서 본 조선 민초들의 삶이 좀 더 정겹고 좀 더 애틋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인생무상을 절감했을 그가 헛헛하고 갑갑한 마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유일한 소일거리는 부인과 주고받는 편지와 글쓰기임을, 그로 인해 위로를 받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아마 실제로도 그렇지 않았을까 싶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만약 김만중에게 세 번의 유배 즉, 강원도 금성, 평안도 선천, 남해 노도에서의 유배가 없었다면, 그래서 계속 집권세력으로 정치의 중요위치에 있었다면 구운몽, 사씨남정기 같은 유배문학을 남겼을까? 였다. 국문학사에 한글소설문학의 선구자라는 거대한 발자국을 남길 수 있었을까? 아마도 정치에 집중하느라 문학에는 그리 신경 쓸 수 없는 환경이었을 테고 한문을 출중하게 구사하던 그였기에 열정적인 정치가였기에 자신이 속한 당파의 이념을 관철시키기 위해 전력을 다한 그였기에 어려웠을 것이다.

유배로 인해 몸은 비록 자유롭지 못했지만 생각은 자유롭게 훨훨 날 수 있었고 정신은 살아 펄떡 일 수 있었으리. 유배지를 떠돌며 생각해 낸 것들이 미완성인 채로 남아 있다가 노도에서 운명을 직감한 듯 생각들을 정리해서 작품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으리라. 떨어져 있는 홀어머니를 생각하는 효성과 우리말, 우리글을 살리고자 하는 마음과 기존 사대부들과 정계에 일침을 가하고자 함이 절절해서 문학으로 결실을 맺었으리라. 그리하여 구비문학이 한문학보다 진실성이 우월하다는 그의 주장과 한글로 써야 진정한 국문학이라던 그의 이론을 펼칠 수 있었으리. 그리하여 마침내 그의 생각을 세상 사람들이 편히 읽을 수 있는 언문소설로 완성하기에 이르렀을 것이다. 정계를 떠나서야 시간적 여유가 많아 졌기에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하며 사고를 재정립하고 당시의 주류인 주자학에도 얽매이지 않는 이론도 펼칠 수 있으리라. 그의 소설에서 불교적인 용어와 도교적인 것과 유교적인 것이 융합된 형태로 나타남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이고 진보적이라고 볼 수 있다. 양반들이 언문이라고 무시하던 한글로 글을 썼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용기인가.

김만중의 마지막 유배지 남해 노도. 배를 젓는 노를 많이 만들었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 노도. 강화도 뱃길의 선상에서 태어나 노도에서 생을 마감한 그는 배, 바다와의 만남이 운명적이었나 보다.

몇 해 전 봄에 남해를 다녀왔다. 금산 보리암에 오르기도 하고 죽방멸치들을 보며 신기해했던, 풍부한 횟감에 입은 즐거웠던, 구불구불 뱀 같던 해안 도로들의 이색적인 풍광들을 두 눈 가득, 따뜻한 인심들을 가슴 가득 담아 온 적이 있다. 그 곳이 김만중의 유배지였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고 후세들의 무심함에 송구스런 마음이 든다. 고등학교시절 교실에서 배운 것은 한글소설 구운몽의 국문학사적 가치와 김만중의 저서, 유배문학의 가치 등이었다고 어렴풋한 기억들이 있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 책과 참고서도 귀하던 시절이었으니까. 늦게나마 관심을 가질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제목처럼 남해는 잠들지 않고 김만중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야 한다는 뜻 일게다.

이런 류의 소설이 나와 줘서 청소년들이 더 쉽고 가깝게 고전문학을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단지 아쉬운 점은 옛 말, 옛 언어들, 옛 내용들이라서 학생들이 알기에는 어렵거나 생소한 단어와 낯선 용어들이 많지 않았을까.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페이지 아래쪽에 한 두 개씩이라도 어려운 말의 뜻풀이가 친절하게 있다면 국어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옛 문화와 풍습을 익히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김만중의 성격과 기개를 엿볼 수 있는 책 속의 글로 마무리하고 싶다.

‘부드러움이 능사는 아니다.’

‘세상에 나가 무슨 일이든 이루려면 단정한 품행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이 생기는 법이 다. 배짱과 단호함을 강조하는 것은 그의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때로는 공부에도 행동에도 선을 넘을 줄 아는 강단이 필요하다.‘

‘공자의 말에 물획하라. 이 말은 자신의 능력에 미리 선을 긋지 말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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