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처럼 사람 혼을 쏙 빼는 물건이 또 있을까. 손안에서 떠나지 않고 작은 소리와 떨림으로 새 소식을 알리고 내가 이불 속에서도 다른이와 이야기와 소리, 노래, 영상을 주고 받게 해주고, 때론 나 아닌 척 내 속을 짹짹 거리게 만들어주고, 게임도 있고, 또..... 그런데 시침 뚝, 나는 어른이니까, 아이가 혼을 빼고 헐렁헐렁 핸드폰에다 시간을 쏟아붓는 건 막아야한다.

 

지우가 만난 핸드폰은 주인없는 새 물건에 리본까지 달려있었다. 어찌어찌하다 가방에 넣어 집에 가져왔지만 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폰으로 연결된 친구는 '그거 가져. 네거 해. 대신 나랑 놀아.' 라며 지우를 밤마다 불러낸다. 아, 이거 위험합니다. 실제 몸이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뿐 채팅으로 아이를 꼬드기는 정체모른 사람 만큼이나 위험해 보인다. 그런데 상대는 사람? 지우는 도깨비불이 이끄는 네비를 따라 '신도'를 걷고 벽을 통과하여 도깨비 집으로 간다. 얘가 겁도 없지.

 

캐빈, 아니 (도)깨비와 만나서 도깨비 폰에 별별 희한하고 요상한 앱도 받아내리고 재미있게 놀고 뚝딱 숙제도 해치우지만 조금씩 몸이 힘들어지고 평생 약정의 비밀도 알게 된다. 얻는 게 있으면 내어주는 게 반드시 있기 마련. 도깨집 집의 윤 진사는 지우에게 정말 지키고 있어야할 것에 대해 넌지시 일러준다. 물리치려던 상대, 도깨비와 일리 있는 협조를 하게 되는 결말도 흥미롭다. 진짜 싸우고 경계해야하는 상대는 누구인지 생각하게 했다. 또한 지우는 원래 심지가 곧은 아이였다, 라는 말의 힘이 크다. 자기 자신을 믿고 반칙을 끊고 혼자 서려고 애쓰는 지우. 하지만 지우와 도깨비들과의 관계에 집중 하느라 학교 친구와 부모의 모습이 평면적으로 그려지고 뒷전으로 밀려나서 아쉽다.

 

도깨비에 얽힌 옛이야기들과 전설, 그리고 민간 설화들과 핸드폰 사용의 결합으로 풀어가는 이야기가 재미있다. 중후반에 이르도록 도깨비폰에 얽힌 이야기가 펼쳐져서 재미는 있지만 '너무 놀기만 하는데' 하는 마음으로 불안해진다. 아, 어디까지 가는거야? 이렇게 달콤하기만 할 리가 없는데? 그때 지우가 곤란에 부닥치고 덜컹거린다. 그런데 그 갈등에 '목숨'이 걸렸다니 이야기의 무게가 갑작스럽게 버겁다. 저승, 혹은 도깨비, 이야기 속 딴 세상이 우리의 21세기 생활로 넘어오는 동화가 많다. 고양이 가장, 노잣돈 프로젝트, 귀서각. 등. 점점 더 저세상 존재들이 우리 쪽으로 넘어오는 것만 같다. 경계가 무너지니 이야기 거리가 많고 재미있고 서로의 짝꿍 할 것들을 빗대어 교훈도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그 경계가, 목숨이고 죽음인데 이리 '재미'만 있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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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멘 음악대가 밴드 브레멘으로 돌아왔다. 시대와 장소가 바뀌었지만 여전히 버림받고 고통 받아서 인간에게 적대감을 가진 동물들. 실험실에서 그 고통을 당하고 눈까지 멀었지만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갈등하는 강아지는 안타깝지 그지없다. 말, 닭, 개, 고양이는 '우리도 브레멘 음악대 처럼' 하자, 며 힘을 합치기로 하고 인간들이 모인것을 보고 겁을 주려고 하지만...아, 이 인간들은 너무 친절하고 그들의 정체를 알아봐준다. 그들도 밴드를 하고, 세상에 '루저'들의 목소리를 내지르고 있었거든. 이들 인간과 동물은 힘을 합치고, 목소리와 몸짓을 합쳐 밴드를 키운다. 해피 엔딩! 쓸모 없는 것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낸다. 우린 괜찮다고, 참견과 동정 따윈 치우라고, 우린 계속 꿈꾸고 잘 살아갈거니까 애정과 진심으로 바라만 보라고. ....

 

급 화해일까. 아니면 동물들끼리는 소리를 내기 힘들테니 인간이 필요하다는 걸까. 재미있는 그림과 셀프 홍보 (유설화 작가의 작품들 '슈퍼 거북' 과 '으리으리한 개집' 이 언급된다)가 귀엽기도 하지만 이야기 초반의 비판정신이 사라지고 급한 협동 모드로 바뀌어서 당황했다. 인간은 적...아니었어? 밴드의 인간들도 사연이 있었겠지만...그래도 발단/전재/위기/절정/결말...에서 절정이 쏙 빠지니 어째 이야기 책을 읽고도 속은 기분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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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상상, 과학과 전설, 돌연변이와 생명을 뒤섞고 만화를 읽는 기분이 들게하는 단편집. 이게 뭐야, 하지만 어느새 설득당하는 칼비노 우주. 유치한데 멋지다면 이런걸까.

 

이제는 멸종되어서 사라진 '공룡들'. 그 중 하나가 숨어서 생명을 부지하다가 긴 부리와 꼬리를 어색하게 휘저으며 지구의 '새 주민'들 무리를 만난다. 새 주민들은 낯선 공룡이 공룡인줄 몰라본다. 그들에겐 공룡에 대한 전설과 증언들 (대부분 틀린것들)만 남아있다. 새 주민들과 다른 외모의 공룡은 '못난이'라 불리며 날품을 팔며 그들 사이에 섞여 산다. 하지만 의사소통의 차이는 '양치류 꽃'이라는 상대와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데 발목을 잡는다. 그의 정체는 의심도 받지만, 그의 강한 신체와 엇박자 나는 몸짓은 의도와는 다른 식으로 받아들여진다. 가끔씩 새 주민들이 말하는 '야 공룡아' 라는 표현에 움찔 놀라는 공룡. 실재가 언어에 먹혀버렸다.

 

공룡이 쳐들어오는 상황도 진짜를 본 적이 없는 새 주민들의 착각이고 공룡의 뼈와 잔재가 발견되어도 그들에겐 별 의미가 없다. 그들이 원하는 공룡은 언어와 이야기, 그리고 상상과 꿈 속에서 강한 침략자 혹은 유혹자, 그도 아니면 덤덤한 배경으로 등장하고 사라졌다. 공룡은 멸종되었구나. 공룡의 흔적을 알아본 진짜 공룡은 떠돌이 무리 속의 공룡과 새 주민의 혼혈 여인과 하룻밤을 보내고 자신의 핏줄을 지상에 남기고 ... 자신은 .... ( 마지막 세 문장은 정말 벙찌는 상황이지만 정답같은 결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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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입대와 함께 호기롭게 시작한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 그새 큰아이는 일병으로 진급했다. 국방부 시계는 거침없이 가고 있다. 1권의 1부 콩브레도 다 못 읽었는데. 그 유명한 홍차, 아니 보리수차에 적신 마들렌느 부분에 감격하고 따라 먹기만 하고 덮었었지.

 

별난 숙모님의 별난 습관들, 그리고 꽁브레의 별난 손님들과 더 별난 식구들 이야기가 이어진다. 숙모님은 병세가 짙어서 (호기심은 왕성한 채) 창문으로 동네 사람들의 행색이나 움직임을 파악하고 규칙적인 정보원(이랄까....동네 소문을 전해주는 과부)을 매주 불러들여 수다도 나누며 훈수와 약간의 용돈을 건넨다. 하지만 이 용돈을 적당한 놀람과 황송함으로 받아야만 한다는 그녀 나름의, 그리고 부르주와 계층의 자만심이 새로운 규칙을 만들고 있으며 이에 거들어 하녀 프랑수와즈는 혹여 그 아첨꾼이, 절대 자신보다 나을리 없고 자신보다 아랫것인 그녀가, 자신보다 더한 (그리고 절대 그럴만한 일도 하지않은채) 돈을 뺏는게 아닐까 염려한다.

 

아, 이것봐. 프루스트 쫌 읽었다고 금세 문장은 꼬이고 늘어나고 무슨 말을 적어도 비꼬는 게 되어버리네. 하긴 비꼬고 꽤뚫어본다며 으스대는 문장과 내용은 이어진다.

 

예의를 지키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지만, 그 속내는 감추어야겠는 사람들의 전전긍긍. 사회계층을 단호하게 가르고 유태인 집안 사람을 앞에 두고 놀리는 노래를 흥얼거리는 할아버지. 귀족에게 비굴하지 않으려 애쓴다며 손님들 집안을 따지는 대고모. 아들 친구의 경망스러운, 혹은 너무 솔직한 답변에 '걔랑 놀지마'라고 곧바로 말하는 부모. 예쁘지 않은 소녀의 '순수함'을 넓은 어깨와 '남자 같은' 얼굴로 묘사하는 화자. 그 소녀의 아버지는 딸의 넓은 어깨를 감추려 쇼올을 들고 다니고 손님 오기 직전에 음악가 집안 인테리어 설정에 분주한 '나혼자 작곡가' 어르신. 잠결에 공포 어린 얼굴을 무방비로 드러내는 숙모님. 바쁜 부활절 주간에 임시로 고용된 어린 부엌데기. 그녀를 츳, 하는 태도로, 아니 지오토의 그림에 비유하는 화자. 임신하고 막달이 다 되도록 일하느라 퉁퉁 붓고 꺼칠한 얼굴의 부엌데기 그녀를 우아하게 그림을 떠올려 묘사하는 팔자편한 문필가님.

 

 

그가 몰래 (의도한 바가 아니라는 상황 설명이 너절하게 이어지며) 목격하는 사람들의 예의 아래 감춰진 분주한 손짓들. 하지만 프루스트는 그 위선 (아니, 무해해 보이는 이 행동들을 위선이라고 부르지도 자각하지도 않는다)을 꼬집고 비난하기보다는 미소 지으며, 아, 우린 이렇게 여러겹의 옷을 입었다오, 그 시절엔 말이지, 라며 하는데, 아, 이걸 읽고 있는 나는 뭐랄까, 그래 내 아들 전역만 해봐라... 하는 심정이었으나.... 저녁 미사후 일부러 경사진 비탈 쪽으로 밤산책을 고집하는 아버지, 길눈 어두운 어머니에게 으쓱대는 것도 잠시, 저쪽으로 보이는 집 대문. 프루스트는 저절로, 오래된 정원을 향해 '땅바닥이 나를 위해 걸었다' 라고 적는다. '습관이 나를 자기의 품에 안고 내가 아기인 양 나의 침대로 옮겨 놓았다.' 그래, 이러니 내가 책읽기를 끊을 수가 없구나. 프루스트와 나를 이어주는 가늘고 긴 끈, 하지만 질긴 이 끈, 문장에 빠져들어 읽는 독서 습관의 끈. 문장은 왜이리 아름답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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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5-16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펭귄 것으로 읽고 있어요? 2권으로 절판된 특별판 ㅜㅜ
아~~ 내게 이 소설을 읽고싶다는 의지를 꺾어놓은 그 특별판. . ㅋㅋ
언니의 완독을 응원합니다!!! ^^/

유부만두 2018-05-16 15:11   좋아요 0 | URL
펭귄으로 모으기 시작해서 ... 나도 분하지만 어쩔 수 없지. ㅜ ㅜ

약속을 (누구랑?) 했으니 이번 기회에 나도 완독을 하려고.
어쩐지 프루스트는 강제성이 있어야 읽게되는 거 같아.
그런데 문장이 꽤 아름답고....이 변태스러운 화자의 독서 사랑에는 나도 공감이 되고 그래. ㅎㅎ
 

고래가 바다 위로 뛰어오르는 이유. 심오한 비유일 책 제목이 책 내용과 인물로는 잘 설명되지 않는다. 나만 못 알아먹은건가.

 

생생한 인물과 박진감 넘치는 자전거 추격전으로 시작부터 흥미진진했다. 과하게 친절한 설명 대신 암시를 하거나 필요한 설정들을 미리 뿌려 놓기도 한다. 복선. 아이들은 선악의 분리 대신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러나 세련된 것 처럼 보였던 이야기는 중반부터 늘어지면서 여기 저기 깔린 의미들을 연결시키기에 버겁다. 주변 인물들은 어쩐지 의도적이고 자전거는 진즉에 사라졌다. 학교의 주먹왕, 갑작스런 사건과 떠나버린 친구, 이민 간 자식들을 감싸는 이발소 노인, 서점에 대한 고집을 부리는 책방 노인, 가족과 친구 사이의 선을 긋는 사람들, 천연덕스레 남학생을 좇아다니는 말괄량이 옆집 여학생, 강원도, 바다, 지하실, 말많아 사고와 설명을 도맡아 하는 아이,.... 익숙한 설정에 익숙한 갈등과 관계들이 보인다. 하지만 유치한 어린이 활극으로 빠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마지막엔 처연히 날아가는 나비와...아, 맞다, 고래.

 

연재되었던 소설일까, 각 챕터들은 그 안에서는 긴장을 불러오기도하지만 전체를 끌고가는 힘은 보이지 않는다. 화자 원섭과 푸름이 사이의 문제, 각자가 달리 바라보는 우정은 무엇이었을까. 진정성이 있으니 표현이 서툴러도 이해하시라...는 말은 아무것도 해결해 주지 못하는데. 가족들 사이의 끈끈함 혹은 지겨움을 희화하지 않고, 엄마들 모습이 억척스런 빠마에 학원 타령, 혹은 쇼핑 타령이 아니고 덤덤해서 괜찮았지만 그만큼 '가족' 대신'친구' 관계를 더 들여다 보는 것 같다.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 만드는 관계. 선택적으로 잊거나 잊힐 수 있는 관계. 어느정도 거리와 예의가 필요한 관계. 그러다가 ... 오래된 친구 관계에 금메달을 걸어주며 결말은 뻔하게 정리된다. 노인들은 다른 자리로 떠났고 원섭의 형 한섭은 여전히 싸늘하게 존재감이 없고, 아이들은 얼렁뚱땅 화해를 해버렸다. 이리 저리 복잡한 마음의 원섭. 고래가 뛰는 이유는 여전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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