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뒤랭 씨 부부는 스완 씨가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자신들의 의견에 덮어놓고 찬성하지도 않고 은근 귀족과 고관대작들과 친한데다 그걸 떠벌리지도 않는다. 그의 속내를 알 수  없다고, 무화과도 포도도 아닌 사람이라고 흉본다. 주석을 따르면 '말린 무화과 열매와 건포도를 지칭하는 표현인데 정체가 의심스러운 사람을 가르킨다'고 한다. 말린 두 과일을 빵에 넣어먹으면 얼마나 맛있게요. 정체가 의심스러운 게 아니라 달콤한 사람입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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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6-19 0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에 있는 음식의 정체가 궁금하군요

유부만두 2018-06-19 10:02   좋아요 0 | URL
건포도와 말린 무화과, 호두 등이 들어있는 통밀빵이에요. 다이어트 하려고 패스츄리 대신 샀는데....너무 맛있어서 마구 먹어버렸어요. 스완씨 달콤한 사람, 이러면서.
 

일찍 잠에서 깨버려서 억울하기도 하지만 다시 잠들기도 아깝고 힘들어서 책을 읽었다. 아침에는 전날 읽었던 책 보다는 단편을 찾아 읽는편인데 벌써 6월, 벌써 17일, 나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어. 맑은 하늘에 일상이 어색한 기분이 드는 아침,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같이 생뚱맞은 이야기를 읽는다.  

 

'마죽'에는 마흔 훌쩍 넘고 낡은 옷 두 벌로 연명하는 말단 '오위'가 나온다. 이름도 없이 그저 빨간 코에 굽은 등으로 묘사되는 이 사내는 온갖 멸시와 조롱에도 바깥으로 분노를 표현하기 보다는 조용히 자책하고 도망가는 편을 택한다. 참다참다 한 마디, '안돼겠구먼, 자네들' 에는 비애와 서글픔이 배어나온다. 다만 그 '박해에 울상짓는 인간'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 사람이 없을 뿐. 그에게 작은 소망, 혹은 집착이라면 '마죽' (저자의 시대에서도 백여년 전의 미식이라고...하지만 동의하지는 않는듯)을 실컷 먹는 것. 부유한 집의 사위인 도시히토라는 사내가 그의 소망을 들어주겠다며 술김에 약속하고 오위를 얼러 숲을 지나 자기 집으로 데려간다. 숲에선 여우를 만나 자신의 도착을 알리라 호령도 하는 도시히토. 모든 면에서 오위와는 정반대의 인물. 집에 도착해선 마를 마당 가득 쌓아두고 큰 솥 가득 마죽을 쑤게 한다. 큰 은그릇에 넘칠듯 담긴 마죽에 질려버린 오위. 감당할 수가 없는 그의 집착은 사라진다. 그 많은 마죽을 억지로 먹이는 고문이 이어질까, 걱정할 찰나 다시 나타난 어젯밤의 그 여우!

 

'묘한 이야기'에도 시공간을 뛰어넘는 전령이 나온다. 이번에는 빨간 모자를 쓴 사나이. 지에코라는 젊은 새댁은 비오는 날 한사코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겠다며 친정집을 나선다. 그녀의 남편은 1차대전 참전으로 유럽에 나가있는 상태. 지에코가 기차역에 도착해 바라보는 역 창문 밖은 착시인지 바닷가 풍경이 펼쳐진다. 인사를 건네는 낯선 빨간 모자의 사나이 (짐꾼이나 노동자의 복장인듯)가 남편의 상태를 알아오겠다면서 사라진다. 섬뜩한 느낌에 지에코는 그후로 빨간 모자만 보면 소스라치게 되는데. 남편이 귀국 후 더욱 이상한 이야기를 듣곤 남편과 함께 근무지로 이사한다. 그녀의 행동의 배후에 숨겨져있던 계획이 설명되는 마지막 부분이 귀엽기도 했지만 '자네가 조선에 갔을 때' 라는 구절을 읽으면서 쎄한 기분이 들었다.

 

식구들은 아직 잠에 빠져있는 일요일 아침, 늦잠을 자는 식구들이 야속하기도 부럽기도 하다. 현실은 여기, 지금은 유월. 자꾸만 마음이 도망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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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8-06-17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당할 수가 없는 그의 집착은 사라진다..요 문장에 자꾸 시선이 갑니다. 라쇼몬을 읽은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 책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버렸어요. 다시 읽고 싶네요. 유부만두 님의 글을 읽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유부만두 2018-06-18 09:54   좋아요 0 | URL
오위가 마죽을 기다리고 또 그 순간을 두려워하는 장면은 꽤 섬세해요. 아마 다시 읽으시면 예전 감상을 강하게 느끼실지도 모르겠네요. 조금씩 천천히 떼어 읽고 있는데 재미도 있고 음산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어요.
 

막내에게 추월당했다. 나보다 먼저 어슐러 르 귄 소설을 읽다니. 얕보고 훈수 두었던 일을 반성한다. 르귄의 동화라니 고양이, 한 마리도 아니고 네 마리에게 (그리고 한 마리 더) 날개를 달아놓다니. 이런 판타스틱한 이야기가!

 

그런데! 판타지를 향한 내 기대를 꺾듯이 이 날고양이들은 의외로 현실세계에서 산다.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이라고는 고양이들 등에 달린 날개뿐. 도시의 쓰레기통 옆에서 태어나 길고양이로 사는 고달픔, 엄마의 다정함, 그리고 적대적인 다른 동물들과 인간들 모두 현실세계에서 나왔다. 여느 고양이처럼 날개 없는 제인 부인 고양이는 훨훨 날아서 힘든 도시 생활을 벗어나는 '태몽'을 꾼 후에 날개를 단 네 아이 고양이를 낳았다. 철새가 아비라는 둥, 시덥잖은 이웃들의 농을 무시하고 살뜰하게 아기들을 키운 엄마 제인 부인. 아기들에게 이제 멀리 떠나라고, 독립하라고, 도시를 벗어나 살라고 말한다. 어설픈 날개짓과 통통한 몸의 네 마리 고양이들은 도시를 건너고 공장 지대를 지나 숲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숲이라고 마냥 고양이들을 환영할 리는 없다. 고양이들을 거부하고 공격하는 이들이 있다. 다행히 '다정한 손'을 만나서 발라당 누워버리는 행복을 찾는 고양이들. 그러다 엄마가 보고 싶어져서 도시로 가는데 ...

 

네 마리의 날고양이들 외에도 검은 날고양이 제인과 혼자 잘난 집고양이 알렉산더도 나온다. 고양이 시선을 어린이 독자들이 감당할 만한 긴장과 흥미 수준을 지키며 그려내고 있다. 어린 제인이 겪는 트라우마와 후반부 모험담이 꽤 흥미롭지만 현실세계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인간은 괴물이기도 천사이기도 하고 날고양이들은 게으를만큼 '안락'에 쉽게 정착해 버리지만 이야기 흐름은 세련되게 독자를 이끈다. 모험은 그치지 않는다. 하지만 편안함과 가족의 사랑을 희생할 필요는 없다. 안전한 모험담, 고양이가 함께 한다, 야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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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18-06-16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다 읽어보고 싶어지는군요! ㅎㅎ

유부만두 2018-06-16 13:12   좋아요 0 | URL
귀엽고 재미 있는 모험담입니다. 저희집 아이는 다양성 포용이라는 주제 숙제로 읽었는데 재미가 주제를 이겨버림;;

psyche 2018-06-19 0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catwings! 전에 한인 학부모회에서 북클럽 만들때 추천도서로 골랐던 책이었는데. 반갑네~

유부만두 2018-06-23 09:01   좋아요 0 | URL
언니도 알고 계신 책이네요. 전 이번에 르귄이 동화도 쓴 걸 처음 알았죠.
대가는 동화도 잘 쓴다! 감탄했어요. (라지만 어른용 소설도 사두기만 했...)
 

나성에 가면~ 편지를 보내세요~ 뚜리뚜바~

이 노래를 아신다면, 그대는 이미 구세대! ^^
하지만 그 구세대의 쿰쿰한 냄새를 버리고 싶다면,
바로 이 베이징 레터를 읽으시라! 

뻥도, 세상에 이런 뻥을!
것도 깜빡 속아 넘어가게 만드는 생생한 디테일에
기하급수적, 아니 구구단 곱배기로 늘어가는 스케일!
거기에 절대 빠지지 않는 라~브 스토리!

오시라, 개봉 이미 하셨음!
쇼핑광이시라면, 한정 판매?!!! ^^

... 절대 실망시키지 않는 해피 엔딩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단, 이 책을 덮을 때 쯤,
거창한 뻥을 하나 터뜨리고 싶은 부작용이 생깁니다.
주윗분들은 조심하셔야할 듯!

2010.4.

 

팔 년 전에 남겨두었던 짧은 메모를 꺼내어 올려본다. 큰아들 면회 다녀오고 막내랑 공룡 영화 보고 나니 하루 해가 다 갔다. 사전투표를 한 것은 나의 선견지명이었네.

 

어제 만난 '별마당'은 별세상. 많은 사람들이 책을, 진짜 책을 들여다 보고 있다니! 다음주에 열릴 도서전엔 매년 안간다, 하면서 간 것 처럼 또 가서 팔 아프게 이것저것 사모으겠지. 도서전에서 쌓아놓고 정가로 파시는 책들은 개정판이 아닌 것도 섞여있어서 조심해야 하는데, 일단 나는 책 더미에 둘러싸이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지갑을 열어버림. 책이여 오라, 이런 마음이라.

 

지금 바로 여기, 라는 생생함으로 sns에 올리는 사진과 메모들. 마음만 먹으면 다른 장소에서 전혀 다른 상황에서 꾸밀 수도 있겠지. 바로 '베이징 레터' 처럼. 어제의 나는 코엑스 별다방에 들러 사진을 찍었다. 진짜? 지금 나는 우리 집 컴 앞에 앉아있는데.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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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6-14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코엑스에서 찍으셨다 생각하는 일인!

라로 2018-06-14 15:36   좋아요 0 | URL
참! 넋이라도 있고 없고,,,보니까 저 시조를 자주 읊는 제 남편아저씨가 생각나네요.ㅎㅎㅎ
이번 여행에도 뜬금이 있든지 없든지 읊더라고요.ㅎㅎㅎㅎㅎㅎㅎㅎ

그나저나 저 책 읽고 싶어욥!!!!ㅠㅠ

유부만두 2018-06-15 10:05   좋아요 0 | URL
‘단심가‘를 외우신다니 절개가 굳으신 분이시군요. ^^

코엑스에 갔었지요!. 딩동댕.
별광장은 정말 대단한데....뭐랄까, 책이 더 멀게 느껴지는 것 같고 어색하고 그랬어요. 하지만 사람마다 각자 다른 방식으로 책을 즐기는 거겠죠? ^^

저 책 재미있습니다. 독일작가 소설이니 영어 번역판도 있을거같아요.

목나무 2018-06-14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성에 가면~~~ 계속 노래부르고 있는 일인! ㅎㅎ
저도 간만에 도서전엘 가볼까 하는데...... 과연 그날의 귀차니즘을 어케 해결할지가 미지수네요. ㅋㅋ

유부만두 2018-06-15 10:07   좋아요 0 | URL
해목씨도 내 또래인가 봉가.
벌써 다음주말이네! 난 안가려고...... (정말임)

psyche 2018-06-19 0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마당 꼭 가야지!

유부만두 2018-06-23 09:02   좋아요 0 | URL
별마당 ..... 가실 때 콜 미 프리즈.
 

'야성의 외침'을 아주 오래전에 읽었는데, 화자가 개였던 점이 기억에 남는다. 착하고 순하게 꼬리를 흔드는 개가 아니라 채찍을 맞고 얼음 위를 지치며 야성을 품은 개.

 

잭 런던의 단편집에서 '삶의 법칙'을 골라 읽었다. 선거 휴일 아침, 인간의 복잡한 삶을 생각한다. 이게 다 뭐람. 어차피 살다 가는 인생. 북아메리카 원주민 코스쿠시도 그렇게 생각한다. 차가운 날, 매서운 바람을 가죽을 뒤집어 쓰고 모닥불 앞에 앉아서 고스란히 맞고 있다. 아들과 손자 손녀들은 천막을 접고 짐을 꾸려 썰매에 동여맨다. 그리고 개들에게 채찍을 휘두른다. 아들이 온기어린 손을 코스쿠시의 머리에 얹으며 이별을 고한다. 그들 방식의 장례. 곁에는 손녀가 준비해준 장작더미. 마지막 잎새가 되는 장작더미와 함께 얼음 위에서 코스쿠시는 커다란 삶의 법칙을 따라야한다.

 

이젠 앞도 보이지 않는 눈은 이미 역사 속으로 앞서 가고, 어린시절 발자욱을 따라가며 보았던 늙은 사슴과 늑대떼의 사투를 기억에 펼쳐놓는다. 두어번 쓰러지고 반격하고 다시 내달린 사슴. 발굽으로 강하게 떨궈낸 늑대를 짓밟은 사슴. 사슴의 발 자국과 눈 위에 남은 자취 위에서 생생하게 떠올리는 삶의 의지. 눈 위에 번진 피. 생생한 기억만큼 지금 코스쿠시도 목숨줄을 붙잡고 한 번 더 싸울텐가. 싸우면 달라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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