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민속춤을 추는 여자. 다만 그녀의 얼굴은 섬의 원주민 보다는 본토 사람에 가까워서 섬사람들에게도 관광객들에게도 호기심 혹은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녀의 이름은 애슐리.

 

아무런 정보 없이 작가 이름으로만 주문하고 받아본 책은 얇고 작고 그림이 많다. 하루키의 버스데이걸, 생각 났고요. 이 책도 읽어가면서 장소가 어딜까, 외국어와 우리말의 자리바꿈을 의식하다보면 천명관의 '유쾌한 하녀 마리사'도 떠오릅니다.

 

본토와 섬 사이에 공식으로 존재하는 경제, 사회 구별과 차별. 그걸로 먹고 사는 사람들. 그 안전한 구별 혹은 가짜 전통을 흔드는 것 처럼 보이는 존재 애슐리, 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무런 저항도 혹은 변화도 꾀하지 않는다. 다만 하루 하루를 살아갈 뿐. 커다란 재앙으로 망가진 본토 그리고 그곳 사람들이 몰려오는 섬의 변화. 그 후의 추이는 평범한 영화를 한 편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하다. 문단으로 찬 페이지들 사이사이에 만나는 한예롤의 그림은 잠시 이 평이한 이야기를 애슐리의 이야기로 감싸안는다. 마지막, 애슐리의 행동이 진짜 소설의 시작이다. 그 소설은 평이하지 않고 아픈 곳을 헤집는다. 오늘도 섬은 덥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콜리어리 초등학교의 일주일을 4학년 어린이 두갈의 눈을 통해서 그려내는 동화다. 두갈의 베스트 프랜드는 두미사니, 함께 '두두 브라더스'를 이루며 지루한 수학, 사회 수업시간을 견딘다. 매일 매일이 모험이기도 도전이기도 한 초등학교 생활. 학습을 개그로, 운동을 올림픽으로 바꾸는 능력자 아이들. 반아이들의 특징을 잡아서 한명 한명에게 관심을 쏟는 두갈. 대장'질'을 하는 아이는 없고 다들 한마디씩, 두마디씩 말과 생각을 보태고 쌓는 학급. 교장 선생님은 감동에 겨우면 눈물을 쏟고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의 발표를 막는 대신 웃으며 들어준다.

 

소설가가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이라고 해서 두건을 쓴 토미가 전학왔을 때 부터 피부색에 대해 생각했다. 삽화에는 어둡고 밝은 피부색의 아이들이 나오지만 내용에는 '인종'이 언급되지 않는다. 전학, 이라는 커다란 변화를 겪은 아이의 긴장, 새학교 아이들의 과한 관심, 그리고 적대감과 폭력을 저자는 부드럽고 참을성 있게 그려낸다. 그리고 모두가 궁금한 두건의 이유와 그 뒤에 감춰진 토미의 얼굴, 그리고 마음.

 

'전학'을 키워드로 검색해보니 800권이 넘는 책이 나오고 거의 어린이 책이다. 몸이 바짝 얼어서 스무 명 넘는 낯선 아이들을 맞서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순간, 얼굴을 가려버리고 싶었을 토미를 이해한다. 아이들의 작전과 결말은 예상대로여서 살짝 실망은 했지만 착한 이야기를 읽어 마음이 따뜻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표지로는 번역 동화책 같이 보이지만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이다. 네 가지 동화 단편들이 실려있는데 각각의 이야기마다 '걱정'이 특기고 버릇인 어린이들이 나온다. 


'등뒤에 고양이', 바로 표지의 여자 어린이는 통통한 몸과 둥근 얼굴을 갖고 태어났다. 여동생과 비교되는 외모에 자존감도 낮고 툭하면 주눅이 든다. 어느 날 '귀엽다' 라는 낯선 칭찬을 듣자 자기 뒤에 귀여운 고양이가 '유령같이' 따라 붙었다고 여기고 혼비백산. 하지만 곰곰 따져보면서 어쩌면 그 칭찬은 자신을 향할지도 모른다고 결론 내린다. 느린 이야기 흐름에 (아이는 달음질 치는 중이지만) 어색한 느낌이 들지만 여자 어린이들이 '외모 코르셋'이 얼마나 일찍, 또 강하게 작용하는지 생각하면 갑작스럽고 희미한 결말이 아쉽다. (옥의 티랄까, '진흙쿠키'를 먹는 아이들은 아프리카가 아니라 아이티에 산다)


'두근두근 걱정대장'을 읽으니 전에 본 보험사 광고의 걱정인형이 생각났다. 그런데 이 걱정인형은 사람의 걱정을 대신 해주기는 커녕, 자기 걱정이 넘쳐서 도리어 사람을 정신없게 만든다. 소이는 걱정인형을 달래주고 따져보면서 평소의 걱정, 혹은 작은 포비아들을 조금씩 해결해버렸다. 이 이야기의 어른들은 '나아지라'고 계속 말하고 '해결법'을 보내며 소이의 걱정'병'을 치료하고 없애버릴 대상으로 취급하면서도 정작 아이의 괴로움은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이정도로 불안하다면 (동화책이지만 묘사되는 증상은 꽤 심각해보인다. 아이가 걱정에 치여서 학교 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병원에서 상담을 받아보게 해야하지 않을까. 아이가 혼자 자신을 치료하게 내버려 두기 때문에 소이가 (외국에서 선물 보내는 이모도 있지만) 많이 외로워 보인다. 


'소원을 들어주는 상자'는 흔하고 쉽고 착한 단편이다. 그래도 준영이의 속마음 '아니야, 아직 기회는 남았어' 하는 현실부정이 귀엽기만하다. 그런데 그 상자는 정말 소원을 들어주는 걸까. 아이고 그 상자 나 한번 갖고 싶네.


'포도나무가 될지도 몰라' 역시 기시감이 드는 동화다. 나도 어릴적에 씨앗을 삼켜서 뱃속에서 수박이 자랄까봐 겁이 났었다. 그뿐인가 속옷에 개미가 들어가서 알을 깐다는 괴담은 여자애들이 악몽을 꿀 정도였는데. 그정도로 고민을 해서 나미가 아픈걸까. 나미는 열이 펄펄 나서 정신이 아득해지고 엄마는 '내가 잘못했어'라며 자책을 한다. 계산원으로 근무한다는 나미 엄마는 그날따라 퇴근이 늦었는데. 동화책의 엄마들은 바쁘고 (거의 다 마트의 계산원으로 근무하거나 분식집을 한다. 왜 동화책 엄마들의 직장은 이리 한정적일까) 지치고 계속 미안해야한다. 또 아이들은 방과후엔 이런 저런 학원에 다닌다. 학원과 게임을 빼면 어린이들의 일상을 묘사하기 힘든가보다. 


화요일 아침에 말이 많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패티네 가족은 더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지구를 떠나 새로운 별로 이주한다. 몇 년에 걸치는 우주선 여행, 서글프고 긴장되는 피난길과 고요한 새로운 땅. 하지만 SF소설의 디테일한 과학 기술 언급 보다는 '미지의 대상'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집중하고 있다. 개인당 한 권씩 가져가는 책으로 많은 이들은 '로빈슨 크루소우'을 챙겼는데 주인공 어린이 패티는 초록색 커버의 아름다운 책을 골랐다. 그리고 이야기는 그 초록책을 향해서 펼쳐진다.

 

화성에서 혼자 감자를 키우던 마크 와트니는 공기, 물, 가족 없이 고군분투했는데 새로운 별, '샤인'은 이주민들을 깨끗한 공기와 물로 반기는 듯하다. 하지만 단단하고 날카롭게 사람들을 내치는 생활환경. 과연 그들은 어떻게 적응해야할까. 이제는 돌아갈 지구도, 우주선의 연료도 없는데. 박물관의 청동기 철기 시대 유물들이 생각난다. 농사가 성공하면 계급이 생길텐데 패티 아빠의 야망은 '샤인'에서 빛을 볼까. (이제는 '법칙'이 없다, 고 말한 책임자 아저씨의 말이 얼마나 불안한지. 파리대왕은 사양합니다) 다른 생명체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되어야 할까. 혹시 인간제물을 바치는 의식으로 변하지는 않을까. 영국 작가의 이주민 역사 이야기는 자꾸만 미국대륙을 생각나게 하는데 인류 역사의 흐름을 되풀이하게 될까 불안한 것은 셰익스피어와 '호메로스'에 집착하는 패티의 아빠 덕분이다.

 

아름다운 풀빛, 밝게 빛나는 녹색 랜턴을 매단 집들. 새로운 별, 샤인은 힘찬 새마을 운동 본부 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의 이기심이 조금씩 삐걱거리는 중에 이야기는 불안하게 끝맺는다. 그나마 용기있고 순수한 아이들이 희망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8-05-28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로운 인류의 시작이네요. 흥미로울것 같아요. 셰익스피어와 호메로스라면 새 인류도 서구 유럽 중심일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요~~ 궁금증을 부르는 초록책^^

유부만두 2018-05-28 10:08   좋아요 0 | URL
네. 유럽 중심이 눈에 보여요.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30년대에 태어난 나이지긋한 영국 작가분이시라 ‘전통‘을 중시하는 분위기죠.
원주민/이주민 대비가 자꾸 생각나게 하지만 그 갈등은 의외로 ‘일단 덮어둔다‘는 해법을 취하고요. 어른들 사이에도 협동 보다는 거래를 중시하기 때문에 불안한 분위기에요. 그런데 아이들은 밝고 모험심이 강하죠. 애들 덕에 먹고 사는 이야기에요. ^^ 초록책은...뭘까요오?

psyche 2018-05-29 0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패티가 가져간 초록책은 과연 무엇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유부만두 2018-05-29 10:01   좋아요 0 | URL
엄청 교과서 같은 결말이고요, 베리 유러피언 멘탈리티를 볼 수 있어요.
그래도 애들이 이뻐서 좋아요.
 

 두 말 안해도 안다. 뽀뽀의 힘은 세다. 엄마의 뽀뽀를 간절히 바라고 바라던 소년 프루스트는 자라서 몇천쪽의 소설을 썼다. 뽀뽀해서 벌떡 일어난 백설 공주나 잠자는 숲속의 공주 말고 '아빠'도 있다. 아이의 뽀뽀에 힘을 내서 휴일, 피곤으로 늘어진 몸에 불끈 홍삼의 힘이 (응?) 흐른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쟈나요!

 

표제작 뽀뽀의 힘, 말고도 '할머니의 짝젖'이 마음에 쿵 돌을 던진다. 그리고 암으로 투병하시는 할머니 위문을 가서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아이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는 생생하게 생명을 일깨운다. 시는 순하고 선하고 맑고 깨끗하면서 힘이 있다. 생의 이면, 죽음과 노환을 옆에 가지런히 두면서 더럽고 못난 취급을 하지 않는다. 아이는 자라고 노인은 서서히 쪼그라든다. 그리고 새로운 아기가 태어나고 강아지처럼 핥으며 세상을 배우며 뽈뽈 기어다닌다.

 

시집의 마지막은 '줄탁동시'. 함께 서로 도우며 세상에 나오는 어린이와 어른의 관계를 보여준다. 시인과 독자, 그리고 성스럽게 모시기만 하지 않고 함께 즐기고 키우고 '잡아먹기도' 할 수 있는 언어. 언어의 뽀뽀, 시는 힘이 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나무 2018-05-26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뽀뽀받고 싶은 글!!! ^___^

유부만두 2018-05-27 07:32   좋아요 0 | URL
힘있는 뽀뽀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