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에 만나!
울리히 흄 지음, 유혜자 옮김, 요르그 뮬러 그림 / 현암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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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 '8시에 만나'는 아무런 줄거리나 인물 소개 없이, 그저 '읽으세요' 라는 말로 추천 받았다. 표지를 보고 우정을 말하는 그림책인가보다, 했더니 글이 제법 들어있는 동화책이다. 사이사이 삽화도 꽤 멋지다. 쿨 시크 하며 가식 없는 펭귄들과 비둘기가 나온다. 그리고 그분! 두둥.

 

시작은 펭귄들이 사는 곳, 얼음과 눈만 있는 곳, 심심하고 차갑고, 펭귄 몸에서 나는 비린내만 있는 풍기는 곳. 그곳에 펭귄 ...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 그리고 그들은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는데....아, 잠깐만, 이거 무슨 '소피의 세계'처럼 재미없는 걸 재미있는 척, 쉬운 척 하는 동화 탈을 쓴 교과서 같은 거야? 라고 배신감을 느낄 찰라, 아니요?! 하고 나의 손목을 잡는 캐릭터들. 왜 이러십니까. 왜 그리 섣부른 판단으로 인생 절대최고뽕인 재미를 놓치시는 거죠. 당신 그렇게 가볍고 급한 사람인가요? 톨스토이와 프루스트를 읽고 있는 사람이 이럴 수는 없쟈나요.

 

계속 읽으면 된다. 철학을 펭귄 만큼이나 혹은 비둘기 만큼이나, 그리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먼 과거의 그 인간 만큼이나 깨달음을 그리고 위로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책 뒤쪽 즈음에 나올 어떤 교훈을 바라고 읽거나 아이에게 읽힌다면, 너무 촌스럽고 꽉 막힌 독서 자세일테니 꿀밤을 때려주겠다. 두 대. 그저 편안하게 8시에 만나면 된다, 마음에 걸리는 누군가나 무엇이 있다면 바로 챙기는 편이 낫고, 약속 시간 8시를 놓쳐도 그 자리에 함께 뛰어가는 게 낫다. 여행 가방은 큰 게 좋고, 비상식량은 챙겨야 한다. 열심히 일해서 스뜨레스가 쌓인 상대는 일단 칭찬을 해주면서 달래야할테고, ... 치즈 케이크 생각이 난다면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서 빵집으로 가면 된다.

 

줄거리나 설정 이야기는 아끼겠습니다. 책 소개글도 읽지 마세요. 그냥 책을 만나세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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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5-25 1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읽으라는 말씀이시죠? ^^
이런 강추 정말 좋아요! ㅎㅎ

유부만두 2018-05-26 06:23   좋아요 0 | URL
강추 드렸으니 읽으시고 아! 하는 깨달음과 흐뭇한 마음을 함께 나눕시다....
(어쩐지 전도하는 것만 같고요)

moonnight 2018-05-25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궁금해요. 초딩 조카아이들과 함께 읽고 싶네요^^

유부만두 2018-05-26 06:24   좋아요 0 | URL
그냥 아무 사전 정보 없이 읽으세요. 가볍게 툭툭 펭귄들을 따라 걷고 춤추시면 됩니다. ^^

희망찬샘 2018-05-25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심히 일해서 스뜨레스 쌓인 일인입니다. ㅜㅜ
고함쟁이 엄마 그림이 딱 떠오르네요. 펭귄이라 그런걸까요? 하면서 책 찾아보러 이동해 봅니다.

희망찬샘 2018-05-25 19:28   좋아요 0 | URL
아무 관계가 없음을 확인!

유부만두 2018-05-26 06:26   좋아요 0 | URL
아, 쌤 너무 일이 많으셨나요? 이 이야기에선 비둘기 같이요?
천천히 책을 읽으시면서 차라도 한 잔? 아니, 치즈 케익이 더 나을까요?
(쌤, 부산 초량동에 초량카페 좋아서 전 두 번 갔었어요. 거기서 보는 경치도 멋지고요. 거긴 과일샌드위치가 맛있죠.)

희망찬샘 2018-05-26 09:16   좋아요 0 | URL
초량카페 입력합니다. 요즘 여기저기 예쁜 까페 가득이지요?
 

이제야, 겨우, 1권의 1부를 다 읽었다. 전 7권 중 1권 '스완 댁 쪽으로' 에서 1부 콩브레는 300쪽이었다. 하루면 다 읽을줄 알았지. 하지만 문장이 지지리도 긴데다 넘치는 비유가 원 대상 주어를 집어 삼켜서 몇번이나 다시 읽어야 했다. 지금 내가 읽은 것은 뭐여? 콩브레 마을 풍경과 사람들 일상이 아니라 그 너머, 그 이전, 그리고 그 이후에까지 펼쳐져 있다. 그게 프루스트의 맴이었을거야. 욕심도 많지.

 

1부의 시작, 한밤중에 잠이 깨서 자신이 있는 방이 어디인지 알아보지 못하고 잠시 헤맨다. 시대와 장소가 겹치고 흩어지다가 그 옛날 어린시절 (이라고 해도 초등 고학년 나이일듯)의 콩브레의 방, 엄마가 굿나잇 뽀뽀를 안해줘서 서글펐던 기억이 아련히 피어오른다. 아, 무서운 아버지, 애닲은 엄마의 포옹. 그리고 엄마가 읽어주시던 조르주 상드의 책. 할머니의 약간 튀는 행동과 말. 할머니의 시누이인 대고모님과 할머니의 자매들의 (자신들은 계산에 계산을 거듭해서 예의로 포장을 했건만) 눈에 보이는 오만도 기억난다. 침대에서만 생활하시던 숙모님, 그리고 마들렌느. 아닌척 그런척 손짓과 눈빛으로 사람들 사이의 거리와 서열이 드러났다. 귀족과 부르주아, 그리고 서민들. 그들의 휴가 기간의 나른한 행태, 하지만 덮여있던 과거와 파리 혹은 다른 도시의 인연들이 그리는 오묘한 빛깔의 인간관계. 무엇보다 이웃 므슈 스완. 그의 '격에 맞지 않는' 결혼 덕에 그의 고급 사교 생활은 의도적으로 만만해 보이지만 소년 프루스트는 애써 그의 문화력을 닮고만 싶다.

 

밥먹고 하는 일은 독서와 휴식, 하녀 놀리기, 그리고 산책. 길가와 울타리에 피고 지는 꽃, 그 사이에 숨어있다 튀어오르는 아이, 그리고 작은 새. 소년의 맘 속에서 꿈틀대는 갈망. 갈증. 그리움. ...'그녀'를 향한 이 마음은 뜨겁기만 한데 차마 내놓질 못했다네. 넓적다리에서 나온다는 그녀는 어디, 누구인가? 대작가와 친하다는 스완씨 딸인줄 알았는데 정말 그 게르망뜨 부인인겁니까. 콩브레의 주인, 성의 주인, 이 마을의 역사를 깔고 앉은 높으신 부인. 그 부인의 '현실적' 외모에도 상상의 메이크업을 얹어놓아 자신의 꿈과 이상을, 그리고 (그녀도 나를 사랑할거야) 망상을 키우는 프루스트. 그녀 만큼 나도 높아지고 싶은거야? 응 그런거야. 그런데 그 고매한 사랑은 어떤걸까.

 

훌륭한 작가가 되겠다던 소년은 청년기에도 콩브레의 음악선생 집 창문 밖에서 '의도치 않고' 다시 한 번, 그 집안을 훔쳐본다. 불쌍한 음악선생의 사후, 그 딸의 동성연인과의 '패륜적 언사'를 청년 프루스트가, 그리고 장년 프루스트가 이래저래 묘사하고 평하고 있다. 진정한 쾌락을 모르니 저러는 것이다. 나는 다 알고 있지. 하지만 훔쳐보고 따라다니는 행위는 별별 묘사와 비유, 변명을 갖다 대도 부끄러운 짓이다. 프루스트도 민망해서 서둘러 '쾌락'과 '패륜'에대해 평하는 문단을 줄인다. 어쩌면 그가 들여다 본 것은 자신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근근히 살던 음악선생, 잊혀질 만만한 작곡 소품들, 예쁘지 않은 딸, 그녀에게 아버지 험담을 거리낌 없이 해대며 웃는 연인. 다부지게 펜을 쥐고 적어내려갔겠지. 나는 달라, 이 모든 추억과 마음과 '아름다움'은 남아야해. 게르망뜨 부인은 전설로 남을거야. 나른한 서술들 중에 그의 아름다움과 역사에 대한 집착은 단단하게 뭉쳐서 자꾸 눈과 목에 걸린다. 그래봤자 이젠 누가 프루스트를 읽겠어.

 

프루스트는 한밤중의 침실에서 사랑과 꽃, 콩브레와 마들렌느와 종탑의 아름다움까지 의식의 흐름을 따라 갔으나, 결국 동네길로 접어들고 어린시절의 침실로 돌아와 엄마의 포옹을 바라며 불안에 떠는 소년이 된다. 콩브레를 휘젓고 다닌 그 밤이 지나고, 아침 햇살이 창문을 지나 침실 벽에 흰 줄을 그어대면... 맑은 정신의 '어른' 프루스트가 모든 것을 툴툴 털고 일어나 저 멀리 여명과 함께 도망가는 콩브레의 인상들을 쳐다본다. 이제 하룻밤의 이야기가 끝났을 뿐이다. 계속 읽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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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5-24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럼요!! 계속 읽어야 합니다!!!
고작 하룻밤 이야기만 읽고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ㅋㅋㅋ

유부만두 2018-05-25 08:46   좋아요 0 | URL
계속 읽겠습니다! 그런데 1권의 1부가 의외로 오래 기운을 뺐고요. ㅎㅎㅎ
 

최기봉, 이라는 적당히 촌스럽고 적당히 친근한 이름의 아저씨 선생님, 어느날 15년 전의 이름 모를 제자로 부터 도장 셋트 선물을 받는다. 하나는 칭찬, 하나는 울보 도장. (막내는 읽다가 '나쁜 어린이표'가 생각난다고 했고 나는 '지우개똥 쪼물이' 생각이 났다. 평가 시스템에 압박 받는 아이들) 평상시 학생들 이름도 특성도, 몇번 주의를 줬는지도 신경쓰지 않는 최 선생님은 옛제자로 부터 선물을 받아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아이들 관리를 해보려 하지만.... 아이들 반응은 영 변변치 않고 벌청소 당번은 늘상 두식이 (현식이와 형식이)와 공주리다. 특히 말없고 멍하니 있다가 벌받는 아이, 주리는 청소와 걸레 빨기가 선수급이다. 아이의 생활이 환하고 즐겁지 않겠지. 하지만 최 선생님은 아직 아이들 가정환경 파악은 커녕 아이들 이름도 못 외운다. 평소 아이들과 동료 교사들에게도 관심도 없고 곁도 주지 않는 사람....이 전교에 유명세를 떨치게 되는데 바로 칭찬 도장, 엄지 척에 이름 석자 새겨진 도장의 빨간 흔적이 학교 곳곳에 나타나기 때문. 범인을 잡으려 애쓰는 선생님의 모습이 안타깝고 우습기도 하다가 두식이들과 학교 박기사 아저씨, 옆반 유 선생님, 그리고 주리의 사연이 하나씩 둘씩 펼쳐지고 서로를 눈맞춰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분위기는 바뀐다. 아이들과 선생님들 사이는 조금씩 가까워 지고, 비밀의 옛 제자로부터 두 번째 편지가 온다. (삽화에 민형식, 이라 표시되는 오류가 있다)

 

모두가 사연과 상처를 품고 산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덤덤하게 옛 상처에 딱지가 앉은채로 커서 타성에 젖은 선생님들, 그들이 용기 내서 자신의 속 마음을 열고 아이들을 향해 손을 내민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에게서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발견하고 어른의 아픈 사연을 아이들에게 털어놓는다는 게 많이 불안해보인다. 선생님들 만큼이나 사연 있고 힘들게 사는 아이들은 학교에서 선생님들 때문에 더 힘들었는데... 이제와서 어른이 이렇게 (적어도 최 선생님은 40대 후반이 지난 나이 일터) 열두살 정도의 아이에게 '원칙'보다는 '이해'와 '용서'를 강요하는 것이 바른 방법일까. 최기봉은 찾았지만 공주리는? 무표정과 멍한 눈빛의 주리가 수줍게라도 '고맙습니다'를 말할 때, 그 아이가 받는 상은 '청소상' 이었다.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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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다 지나고, 봄도 도망가는 날에 읽기에는 너무 구슬픈 책이다. 이백쪽이 채 안되는 짧은 이야기와 사십쪽에 달하는 자상한 해설이 묶여 있는 이 책을 기대감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맞닥뜨리게 되는 것은 이미 오십대의 말없는 그 사나이, 이선 프롬이다. 그에게 겨울은 기구한 인생 만큼이나 겹겹이 그를 둘러싼 세월의 감옥이다. 그의 연애 이야기를 비극적 사랑이라고 불러주고 싶지만 그 결말이 더없이 춥고 스산하다. 

 

다행히 시인이었던 저자 이디스 워턴은 이 감옥에도 여기 저기 찬란하고, 하지만 냉담하고 잔인한 겨울의 이미지를 깔아 놓았다. 그덕에 진부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랑이야기가 (드라마'사랑과 전쟁'이 생각났다면, 내가 너무 통속적인걸까?) 그나마 잔잔한 생기를 띠었다. 

 

흥미롭게도 이 비극에서 탈선남 이선은 '죄의식'을 동반한 고민을 하지 않는다. 애인과 도망갈 궁리를 하면서 혼자 남겨질 지나를 약간 걱정은 하지만 곧, 자기가 남을 챙겨줄 처지도 못된다는 것에 절망한다. 그에게는 기독교적인 죄의식은 아예 없다. 신이 자신을 어떻게 벌하실까 하는 것으로 고민하지 않는다. '교회'는 피크닉을 열거나 '댄스파티'(물론 건전한)의 장소로만 언급될 뿐이고, 이선은 그 행사들에도 적극적으로 참가하지 않고 밖에서 들여다 보기만 한다. 다행히 교회윤리는 그의 감옥이 아니다. 남들이 어떻게 볼까 하는 것도 관심 밖이다. 그가 제일 저어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처 받는 일 뿐이다. 그의 자존심도 윤리적 명예가 아니라 경제적 궁핍함을 들켜 돌려 받게 될 동정어린 눈길에 전전긍긍하는 것이다.

 

진짜 무서운 감옥은 연상의 마누라 지나다. 이 여자는 깊은 주름, 툭 불거진 광대뼈, 그리고 납작한 가슴으로 만들어진 할머니로 묘사된다. 눈보라가 일어서 도시의 활기와 격리되고, 금전적인 편리와도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이선에게 부인은 진짜 감옥이다.

 

이런 저런 감옥들 속에서, 젊은 이선은 이십대 후반임에도 더 용기내서 일을 '저지르지' 못한다. 서부행 운임 10불이 문제가 아니다. 매티와 이선이 서로의 갈등과 욕망 (이 단어는 이 소설에는 안 어울린다. 이선은 차라리 너무 선비 타입이다.)을 확인하는 순간, 절망적인 가난한 급속 연인들은 아, 차라리, 우리 죽자!로 결론을 내버린다. 하지만, 이 극단적인 선택도 이선이 아니라 매티가 내린 것이다.

 

인생은 너무 슬프다. 이렇게 어쩔줄 모르던 이선은 영감이 되어 버렸고, 그의 옆에는 두 가지 버전의 지나만 남는다. 그의 감옥은 벽이 더 높아지고 더 두터워 졌다. 

 

철저하게 할머니(아마 이선은 마녀라고 부르고 싶었을거다) 취급을 당하고 자기의 온갖 병에 싸여 있던 지나도 결국 감옥 같은 시골의 칠년여의 결혼 생활을 푸념하고 있었다. 하지만,그녀는 그녀 대로의 결단을 내렸고 매티를 내 보낸다. 그리고 사고후, 용감하게 매티를 거두어 준다. 그녀가 복수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복수를 당하는 것일까. 한치의 애정도 없이 작가의 펜아래에서 냉혈인으로 그려지는 지나는 해설을 쓴 김욱동 교수 말을 빌자면 작가의 이해심없던 남편의 분신일 수도 있겠다. 

 

김교수는 불행한 이선이 작가를 대변하고 있다고 봤지만, 나는 차라리 이선의 사고를 이야기해주는 헤일부인이 작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깡촌 스탁필드에서, 그나마 교육받고, 그나마 좀 있게 사는 헤일부인은 책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나' 화자에게 이야기의 처음을 (그 비밀스러움에 대한 호기심), 또 결말을 (진짜 이야기를 확인시켜주는) 책임지고 있다. 헤일 부인은 "고색창연한 저택에 걸맞게 희미하게나마 어느 정도 세련함을 지키고 있었"(15)고, "다른 사람들보다 우연히 감수성이 좀더 섬세하다는 것과 교육을 좀더 많이 받았다는 사실"(16)로 마을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사람이다. 이런 부인이 어떻게 매티와 허물없는 친구가되었는지는 의문이다. 아무리 통념을 깨는 작가라 하더라도 이디스 워턴은 소설 속에서 이선이라는 촌부 속에, 혹은 그의 연인 매티 속에, 바로 동화되기는 싫었나보다. 좀 클래식한 감정의 묘사 (고양이를 통한 지나의 존재감이나, 사물을 통한 떨림을 전하는 식) 만큼이나 이런 안전장치가 19세기와 지금 나의 시간 차이를 느끼게 해준다. 요즘 작가들은 이런 점에선 더 용감하지 않은가. 그래서, 19세기의 여류 소설가, 이혼의 경력과 퓰리처상 수상 이라는 여러 수식어들이 이 소설을 읽는데에 크게 도움은  되지않았다.

 

말없고 돈없고 결단력 까지 없던 이선과 냉정하고 늙은 부인 지나, 또 너무나 발랄하고 대책없는 매티. 그들의 이 슬픈 사랑 이야기, 또 인생과 운명이야기는 그렇지만 참 낯익다. 어쩔 것인가. 어느 날, 삶에 치여 힘들 때, 가까이서 싱그러운 젊음의 웃음을 던져주는 그녀가 (혹은 그가) 다가 온다면.  내옆의 늙은 그 할망구(혹은 할아범)과는 너무나 다른 그 사람이 손을 내민다면, 나도 다시 살아 볼 수 있을 것만 같은데. 하지만, 사는게 그렇게 쉬운게 아니라고, 이디스 워턴은 담담히 보여준다. 그 싱그러운 미소도 결국 나를 잡아 끄는 족쇄일 뿐이라고.

2009.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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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네 집에 놀러가서 수다 떨며 놀다가 만화책 두 권을 빌려들고 왔다. (어쩐지 중학생 같지만 어제의 일)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작가의 전작. 카마쿠라 마을의 겹치는 인물들이 반가웠다. 아픈 마음과 상처로 집과 학교 밖을 나도는 고등학생들. 그들의 엇갈리는 사랑과 오해. 그리고 아름다운 바다와 미친 만월.

 

모든 아픈 사연은 집 안에서 시작하는 걸까. 고등학생인 그들이 그리워하던 초등 시절과 분노의 중학 시절... 세상 다 살아버린 표정과 덩치의 고등학생 이야기, 어디까지가 사랑인가 고민하고, 선을 긋고, 분명하게 표현하고, '성장'하기를 바라본다.

 

기대만큼 키스 장면이 많지 않아서 실망. (어쩐지 중학생 같지만 오늘의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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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5-21 0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집 가서 수다떨다가 만화책 빌려오는 중학생 같은 일 하고싶다!

유부만두 2018-05-21 09:45   좋아요 0 | URL
ㅎㅎㅎ 과자 먹으면서 다리 쭉 펴고 앉아서 이런저런, 특히 책 이야기 했지요. 마음은 언제나 중학생?! ㅎㅎ

단발머리 2018-05-21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결같은 마음을 나눌수 있는 중학생 친구님이 부러워요~~
두 분 오래오래 행복하시길요^^

유부만두 2018-05-21 09:45   좋아요 0 | URL
서로 이젠 나이는 세지 않는 친구죠.
오래 예쁜 사랑 하겠습니다. ^^

목나무 2018-05-21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키스 장면 적어서 실망하셔쪄요? ㅋㅋ
바닷마을 다이어리의 캐릭터 중 하나의 과거 이야기라고 해서 저도 궁금하던 만화인데. . . . 키스 장면 쪼매 나온다니 패쑤. . ㅋㅋ

유부만두 2018-05-21 09:47   좋아요 0 | URL
매쪽 쪽쪽 일줄 알았던 내가 음란한건가? .... 여러 식의 사랑이야기가 나오다가 후반엔 좀 멀리 나간 에피소드가 나와. 그 서퍼, 바닷마을 둘째의 젊은 애인이야기. 바닷마을에선 좀 다듬었더라. 예전 작품이라 그런지 인물 묘사나 대사가 투박하긴 했지만 ... 그래도 궁금했던 작품을 만나서 좋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