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 작가의 단편집 제일 앞에 실려있는 '우리들의 움직이는 성'을 읽었다. '하울의 움직이는 성' 애니매이션이 자동 연상되는 제목은 6학년 봄,자신은 '지극 평범' 그 자체라고 생각하는 현경이의 이야기다. 2학년때 전학갔던 아이 상우가 5학년 2학기때 돌아오고 지금은 한반이다. 예전의 울보꼬마는 없어지고 키도 크고 듬직하며 책도 읽는 멋진 아이가 되어있다. 그런데 상우가 '사귀자'며 문자를 보내고 엉겹결에 그러기로 했다. 둘이서만 비밀로.

 

6학년인 우리집 막내는 지난 겨울방학 이후로 키가 쑥쑥 크고 있다. 형 제대 전에 형보다 더 커버릴것만 같아서 일등병은 나라 지키느라 동생 견제하느라 바쁘다. 손과 발이 비율에 맞지 않게 커서 우스꽝 스럽기도 하지만 (하지현 샘 책 '지금 독립하는 중입니다' 에 보면 그렇게 크는거라고 나옴) 변성기 목소리로 '엄마....' 할 땐 징그럽기도, 섭섭하고 아쉽기도 하다. 아, 이 아이도 이렇게 크는구나. 그럼 그 다음엔.... 중2병과 미친 사춘기구나. 수염도 올라오고 있으니 ... 걱정과 고민이 늘어나지만 안그런척, 아이가 혼자 태블릿 기계로 유툽을 볼 때면 옆에서 슬쩍 엿보거나 나중에 검색기록을 뒤진다. 아이야, 네가 자라는 것이 당연하지만 더럽고 지저분한 걸 네 눈과 머리에 넣지 말아줘.

 

'하울의 움직이는 城'에서 하늘을 걷는 하울과 소피처럼, 그날 오후 소파 위에 나란히 앉은 현경이와 상우. 그리고 깜짝 놀랄 사건. 우리들의 움직이는 性. 엄마와 성애 언니의 참견과 눈치도 힘들고, 변해버리는 자신과 상우의 모습과 관계도 버거운데 봄날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잎 처럼, 한바탕 웃음으로 현경이는 '울보 땅꼬마' 상우를 기억해낸다. 하울이 소피의 모습을 알아봐준 것 처럼. 푸른 봄, 계속 자라나는 아이들, 그 안에 작은 꼬마를 불러낼 수 있다면 그리고 지금 훌쩍 큰 덩치와 만나게 해 준다면 다들 덜 힘들지도 모르겠다. 현경이나 상우의 고민은 해결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이 아이들 몫이다. 쑥쑥 크는 아이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8-06-12 16: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3 0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18-06-19 0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집 J양이 동생 N양이 쑥쑥 자랄때 그랬었지. 너 크려면 나보다 확 커. 어설프게 1인치 이정도 차이나지 말고. 그랬는데 결국 J 랑 N의 키차이가 딱 1인치 ㅎㅎ
이상하게 동성의 형제가 있으면 둘째가 첫째보다 큰 경우가 많더라구. 나도 그렇거든.
중2와 미친 사춘기...그분은 왜이리 자주 오시는지 흑 할말이 많아 ㅠㅠ 딸들이 얼마나 착했는지 뒤늦게 깨닫는 중

유부만두 2018-06-23 09:04   좋아요 0 | URL
하아......사춘기는 ... 네버 엔딩인가요....
이제 시작인 막둥이를 어찌 감당할지 엄두가 안 나요. ㅜ ㅜ
일단 싸우려면 체력을 길러야 합니다.
 

벌써 삼년 전.... 애니매이션 '어린왕자'를 보면서 서점에 들러 책을 샀다. 영화는 어린왕자 그 이후의 이야기, 노인이 된 비행사 옆집에 사는 소녀가 등장한다. 공부 공부 공부로 빡빡하게 시간표 대로 성공을 향해 살아가는 아이. 우연히 옆집 (미친) 할아버지와 함께 비행기를 타고 모험에 나선다. (아, 여기서 엄마니까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고요)

 

 

 

어린왕자가 들렀던 별들의 주민들은 여전한, 혹은 더 심한 어른의 모습으로 쩔어있고, 어린 왕자도 예전의 그 순수한 마음과 외모, 심지어 자신의 아이덴디티도 잊고 매일 매일 살아가고 있었다. 소녀는 그를 원래의 신분/마음/의미로 돌이킬 수 있을까. 있지, 아무렴. 영환데. 그리고 소녀도 꾿꾿하게 학원이랑 과외 시간표를 부숴버린다. 그리고, 그 이후엔? 자신을 믿고 순수함을 지키며 재미있게 사는 인생을 만들겠지.

 

 

영화 스틸컷을 이용한 책은 원작의 글을 실어 '오리지널'을 만든다. 아름다운 사진.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엄마의 눈으로 발견하는 '어린왕자'의 낭만적인 비극성. 그 책임감 없는 심미주의. 아이는 결국 자기 별로 갔을까. 반짝이는 빛, 노란 뱀. 모래 가득한 사막. 왜 비행사는 아이를 내버려두었는지. 양 굴레를 그려주겠다는 약속도 지키지 못한 비행사. 그가 야간비행을 하다 폭풍우 검은 구름 위, 저 창공에서 다시 그 빛을 만날 것을 이미 알았는지도 몰라.

 

 

책 내용과 그림을 음미하며 덮을....때, 파본인지 저자/역자 명이 거꾸로 인쇄된 면을 만났다. 아, 마지막이 중요한데 말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린왕자의 별처럼 생긴 병아리콩을 삶는다. 몸이 좀 가벼워져야 별엘 가든, 계단을 오르든 할테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권의 2부, 이제 절반쯤 읽었다. 150여쪽 읽는 게 왜이리 어려운지. 1부 '콩브레'는 화자의 과거, 현재, 꿈과 현실을 우주와 작은 방을 오가며 긴 호흡의 복잡한 문장, 아름답고 지루한 문장으로 펼치는 오밀조밀 촌동네 산책길과 사람들 이야기였다. 2부 '스완의 어떤 사랑'은 문제의 스완 부인이 출연한다. 오데뜨. 어른 프루스트 화자는 독자 옆에 앉아서 오데뜨와 스완씨가 어떻게 만나고 사랑을 키워나가는지 얘기해준다. 문장은 1부 보다 덜 느슨하고 살짝 긴장감도 돌지만 사건이 생겨서라기보다는 (두 인연이 만났으니 우주가 진동하긴 했지) 두 사람이 베르뤼랭 내외라는 격 떨어지는 인물들의 사교모임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문학이나 예술에 조예가 깊은 스완씨, 최정예 사교 모임에도 선이 닿아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하곤 한다. 의외로 그는 엉뚱한 여성에게 추파를 던진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귀족네에 드나들다가도 이별의 편지는 달랑 그댁 하녀에게만 남기는 넘. 어느 한 여인과 오래 가질 못하고, 파티에 가는 개인 마차 안에서도 문지기의 딸을 불러내 짧은 연애 시간을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시키. 불같이 사랑하고 희생하는 것도 아니고 고급 사교계에 애인을 공식화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잠시 즐기곤 금세 잊는다. 여자 없이는 못사는 벨트 위와 아래가 따로 동작하는 자. 그런 그가 어느 여인에게 호감을 갖고 프루스트의 할아버지에게 소개를 부탁한 적도, 혹은 딸의 혼처를 고민하는 양갓집에서 스완씨를 만나고자 프루스트 할아버지에게 문의를 한 적도 많다. 하지만 스완 씨의 그 조용한 난봉꾼 기질에 할아버지는 지혜롭게 중매의 자리를 피하곤 한다.

 

그러다가! 베르뤼랭 저택에서 오데뜨와 스완이 (그 이전에 서로 안면은 튼 사이였다) 급속도로 친해진다. 뻔한 과거의 그녀가 (스완씨만 모름) 스완에게 문화적 무지와 경솔을 드러내며 천진무구하게 군다. 그녀가 보디첼리의 인물을 닮았다고 여기는 스완은 친근감을 느낀다. 이 남자의 사랑법. 다행히 그는 예술이며 학식을 뽐내지 않는다. 그저 웃거나 말거나 할뿐. 맨스플래인 하지 않는 게 그의 장점. 굽신거리며 맞장구를 치지 않는 냉담함에 안주인 베르뤼랭 부인은 빈정이 상하고 스완의 뻣뻣함 속에 있을 서열 계산이 영 신경에 거슬린다. 심미안과 대화의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 이들 사교회에서 펼쳐지는 말장난이 각종 인용구들과 그 시대의 농담을 끌어오기 때문에 주석을 계속해서 찾아봐야 한다. 저질 농담, 말꼬리 잡기들이 이어지고 인물들은 얼굴이 벌게지도록 기침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웃는다....는데 나는 재미가 없다. 여기는 이십일 세기. 자, 인물들이여, 연애의 진도 속도를 높여라, 쫌.

 

어느 날 시간이 엇갈려서 (스완씨가 그 문지기 딸이랑 좀 오래 놀다 왔거든) 오데뜨를 파티장에서 놓치고 아, 스완씨는 고통을 느낀다. 파리의 카페 거리를 헤매고 헤매다 기적 같이 만난 이후, 사랑이, 특별한 관계가 시작되어버린다. 불쌍한..... 이라고 쓰려니 스완이나 오데뜨나.... 둘은 함께 밤을 보내고 또 보낸다. 스완이 다른 여인들을 정리하고 오데뜨에게 정착할지 아직 확실치 않은데, 기부니가 안좋은 베르뤼랭 부인은 오데뜨에게 다른 남자를 소개시키면서 스완을 디스하려고 든다. 오데뜨의 과거는 어떻게 탄로가 나긴 할텐데... 요약을 해보니 흥미진진하네? 계속 읽어야겠다.

 

프루스트를 읽으면서 자꾸만 드는 생각은....이 인간들은 일을 안한다. 직업이 귀족이고 브루주와, 투자로 먹고 살고 노는 부류들이다. 부럽지도 감탄할만 하지도 않다. 프루스트가 그 점에 비판의식을 가진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깐죽거리며 인물들을 우아하게 깔보고 독자는 따라가며 구경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무지한 독자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핀잔을 들을까 긴장돼 주석을 열심히 펼쳐 읽는다. 박자를 맞춰서 오호호홍 하고 웃어야 한다. 위, 마담. 매농, 므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라면서 저런 눈빛을 보내는 여우라면, 거짓말 선수 겠지.

 

이 동화는 희곡을 원작으로 했다는데, 역시 희곡으로, 그리고 연극으로 봤다면 조금 더 좋아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공항 대기실, 계속 알약을 먹으며 약상자를 끌어안고 있는 원숭이, 꾸벅꾸벅 조는 덩치 큰 팬다, 선그라스를 끼고 은근 주위를 의식하는 나이든 호랑이, 똑같이 생겨서 학식을 함께 뽐내는 양 두 마리, 불안해서 계속 가방을 뒤지는 기러기가 사흘째 오지 않는 비행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나타나는 공항 경비견, 개.

 

그리고 빨간 여우 한 마리. 누가 진실을 말하는 걸까. 친구가 되면서 진실을 말할 수는 없는걸까. 친구와 우정은 모든 과오와 불편을 뛰어넘는 최고의 가치인가? 이 이야기는 그래서, 해피엔딩인거야? 애초에 왜 사흘 동안 얌전히 있었을까? 이 바보들은? 우화인지라 각 동물이 상징하는 인간이 있겠고, 독자는 자신의 모습을, 타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씁쓸하게 웃기도 하겠지. 나...나는 ...기러기 같....

 

정신 없고 재미도 없는 이야기에 뭐, 덧붙이자면 이런 저런 분석이랄까, 감상이 있겠지만. 작가의 전작 '8시에 만나!'에서 받은 쿨한 즐거움은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혼자 사는 아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외딴 집에서 혼자 살며 나무짐도 지고 품도 팔아 하루 삯으로 서푼을 받아 외롭게 집으로 걸어가는 아이. 다른 어린이들은 가족의 사랑을, 포옹을, 떡과 간식을 먹을 때 혼자 배를 곯는다.

 

 

 

 

 

그러다 발이 없고 머리는 삐죽 난발인, 다행히 덩치는 엇비슷해 보이는 도깨비를 만난다.

 

돈을 달래. 갚을거래.

 

하지만 도깨비는 잘 까먹는대서 주저하다가, 도깨비의 해꼬지를 당할까 걱정되는 아이는, 착하고 순딩한 아이는 돈을 내준다.

 

그리고... 다음날 돈을 갚는 착한 도깨비. 이자는 없지. 단기간 무이자 대출. 그런데 잘 까먹는 도깨비는 돈 갚은 걸 잊어버리고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돈을 들고 찾아온다. 아무도 찾지 않던 아이의 외딴 집을 매일 도깨비는 찾아오고, 물욕이 없는 이 순딩이는, 그리고 돈을 나눠주거나 이 멍청한 도깨비 이야기를 소문 낼 친구도 없는 아이는 무심하게 돈을 집에 던져둔다. 물건을 사거나 자랑하지도 않고. 이 순딩이가 은근 담이 세고 기가 맑았나보다. 혼비백산 하거나 헛된 욕심을 부리려 도깨비를 속이려 들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다. 부채는 청산되었다고. 그래도 도깨비는 까먹었는지 오기를 부리는지 매일 오고, 아이의 허름한 살림살이가 눈에 밟힌다. 이것 저것 또 들고 오는데 그걸 또 까먹으니 자꾸 아이의 집에는 도깨비의 선물이 쌓인다. 그리고 도깨비는 ....

 

 

도깨비는 서푼을 들고 아이의 집에 찾아와서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무얼하고 놀았을까. 정들었겠지, 그렇게 한참 매일 만났는데. 아이가 크고, 장가 들어 자식 손주 손녀 보고 오래 살다 눈을 감을 때, 그 어린 시절의 유일한 친구를 불렀대지. 도깨비야....도깨비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