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의 2부, 이제 절반쯤 읽었다. 150여쪽 읽는 게 왜이리 어려운지. 1부 '콩브레'는 화자의 과거, 현재, 꿈과 현실을 우주와 작은 방을 오가며 긴 호흡의 복잡한 문장, 아름답고 지루한 문장으로 펼치는 오밀조밀 촌동네 산책길과 사람들 이야기였다. 2부 '스완의 어떤 사랑'은 문제의 스완 부인이 출연한다. 오데뜨. 어른 프루스트 화자는 독자 옆에 앉아서 오데뜨와 스완씨가 어떻게 만나고 사랑을 키워나가는지 얘기해준다. 문장은 1부 보다 덜 느슨하고 살짝 긴장감도 돌지만 사건이 생겨서라기보다는 (두 인연이 만났으니 우주가 진동하긴 했지) 두 사람이 베르뤼랭 내외라는 격 떨어지는 인물들의 사교모임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문학이나 예술에 조예가 깊은 스완씨, 최정예 사교 모임에도 선이 닿아 '대통령'과 저녁 식사를 하곤 한다. 의외로 그는 엉뚱한 여성에게 추파를 던진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귀족네에 드나들다가도 이별의 편지는 달랑 그댁 하녀에게만 남기는 넘. 어느 한 여인과 오래 가질 못하고, 파티에 가는 개인 마차 안에서도 문지기의 딸을 불러내 짧은 연애 시간을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시키. 불같이 사랑하고 희생하는 것도 아니고 고급 사교계에 애인을 공식화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잠시 즐기곤 금세 잊는다. 여자 없이는 못사는 벨트 위와 아래가 따로 동작하는 자. 그런 그가 어느 여인에게 호감을 갖고 프루스트의 할아버지에게 소개를 부탁한 적도, 혹은 딸의 혼처를 고민하는 양갓집에서 스완씨를 만나고자 프루스트 할아버지에게 문의를 한 적도 많다. 하지만 스완 씨의 그 조용한 난봉꾼 기질에 할아버지는 지혜롭게 중매의 자리를 피하곤 한다.

 

그러다가! 베르뤼랭 저택에서 오데뜨와 스완이 (그 이전에 서로 안면은 튼 사이였다) 급속도로 친해진다. 뻔한 과거의 그녀가 (스완씨만 모름) 스완에게 문화적 무지와 경솔을 드러내며 천진무구하게 군다. 그녀가 보디첼리의 인물을 닮았다고 여기는 스완은 친근감을 느낀다. 이 남자의 사랑법. 다행히 그는 예술이며 학식을 뽐내지 않는다. 그저 웃거나 말거나 할뿐. 맨스플래인 하지 않는 게 그의 장점. 굽신거리며 맞장구를 치지 않는 냉담함에 안주인 베르뤼랭 부인은 빈정이 상하고 스완의 뻣뻣함 속에 있을 서열 계산이 영 신경에 거슬린다. 심미안과 대화의 수준이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 이들 사교회에서 펼쳐지는 말장난이 각종 인용구들과 그 시대의 농담을 끌어오기 때문에 주석을 계속해서 찾아봐야 한다. 저질 농담, 말꼬리 잡기들이 이어지고 인물들은 얼굴이 벌게지도록 기침을 하고 숨이 막히도록 웃는다....는데 나는 재미가 없다. 여기는 이십일 세기. 자, 인물들이여, 연애의 진도 속도를 높여라, 쫌.

 

어느 날 시간이 엇갈려서 (스완씨가 그 문지기 딸이랑 좀 오래 놀다 왔거든) 오데뜨를 파티장에서 놓치고 아, 스완씨는 고통을 느낀다. 파리의 카페 거리를 헤매고 헤매다 기적 같이 만난 이후, 사랑이, 특별한 관계가 시작되어버린다. 불쌍한..... 이라고 쓰려니 스완이나 오데뜨나.... 둘은 함께 밤을 보내고 또 보낸다. 스완이 다른 여인들을 정리하고 오데뜨에게 정착할지 아직 확실치 않은데, 기부니가 안좋은 베르뤼랭 부인은 오데뜨에게 다른 남자를 소개시키면서 스완을 디스하려고 든다. 오데뜨의 과거는 어떻게 탄로가 나긴 할텐데... 요약을 해보니 흥미진진하네? 계속 읽어야겠다.

 

프루스트를 읽으면서 자꾸만 드는 생각은....이 인간들은 일을 안한다. 직업이 귀족이고 브루주와, 투자로 먹고 살고 노는 부류들이다. 부럽지도 감탄할만 하지도 않다. 프루스트가 그 점에 비판의식을 가진 것도 아니다. 다만 그는 깐죽거리며 인물들을 우아하게 깔보고 독자는 따라가며 구경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무지한 독자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핀잔을 들을까 긴장돼 주석을 열심히 펼쳐 읽는다. 박자를 맞춰서 오호호홍 하고 웃어야 한다. 위, 마담. 매농, 므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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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서 저런 눈빛을 보내는 여우라면, 거짓말 선수 겠지.

 

이 동화는 희곡을 원작으로 했다는데, 역시 희곡으로, 그리고 연극으로 봤다면 조금 더 좋아했겠다, 라는 생각이 든다.

 

공항 대기실, 계속 알약을 먹으며 약상자를 끌어안고 있는 원숭이, 꾸벅꾸벅 조는 덩치 큰 팬다, 선그라스를 끼고 은근 주위를 의식하는 나이든 호랑이, 똑같이 생겨서 학식을 함께 뽐내는 양 두 마리, 불안해서 계속 가방을 뒤지는 기러기가 사흘째 오지 않는 비행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나타나는 공항 경비견, 개.

 

그리고 빨간 여우 한 마리. 누가 진실을 말하는 걸까. 친구가 되면서 진실을 말할 수는 없는걸까. 친구와 우정은 모든 과오와 불편을 뛰어넘는 최고의 가치인가? 이 이야기는 그래서, 해피엔딩인거야? 애초에 왜 사흘 동안 얌전히 있었을까? 이 바보들은? 우화인지라 각 동물이 상징하는 인간이 있겠고, 독자는 자신의 모습을, 타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씁쓸하게 웃기도 하겠지. 나...나는 ...기러기 같....

 

정신 없고 재미도 없는 이야기에 뭐, 덧붙이자면 이런 저런 분석이랄까, 감상이 있겠지만. 작가의 전작 '8시에 만나!'에서 받은 쿨한 즐거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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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사는 아이,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외딴 집에서 혼자 살며 나무짐도 지고 품도 팔아 하루 삯으로 서푼을 받아 외롭게 집으로 걸어가는 아이. 다른 어린이들은 가족의 사랑을, 포옹을, 떡과 간식을 먹을 때 혼자 배를 곯는다.

 

 

 

 

 

그러다 발이 없고 머리는 삐죽 난발인, 다행히 덩치는 엇비슷해 보이는 도깨비를 만난다.

 

돈을 달래. 갚을거래.

 

하지만 도깨비는 잘 까먹는대서 주저하다가, 도깨비의 해꼬지를 당할까 걱정되는 아이는, 착하고 순딩한 아이는 돈을 내준다.

 

그리고... 다음날 돈을 갚는 착한 도깨비. 이자는 없지. 단기간 무이자 대출. 그런데 잘 까먹는 도깨비는 돈 갚은 걸 잊어버리고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돈을 들고 찾아온다. 아무도 찾지 않던 아이의 외딴 집을 매일 도깨비는 찾아오고, 물욕이 없는 이 순딩이는, 그리고 돈을 나눠주거나 이 멍청한 도깨비 이야기를 소문 낼 친구도 없는 아이는 무심하게 돈을 집에 던져둔다. 물건을 사거나 자랑하지도 않고. 이 순딩이가 은근 담이 세고 기가 맑았나보다. 혼비백산 하거나 헛된 욕심을 부리려 도깨비를 속이려 들지 않고 솔직하게 말한다. 부채는 청산되었다고. 그래도 도깨비는 까먹었는지 오기를 부리는지 매일 오고, 아이의 허름한 살림살이가 눈에 밟힌다. 이것 저것 또 들고 오는데 그걸 또 까먹으니 자꾸 아이의 집에는 도깨비의 선물이 쌓인다. 그리고 도깨비는 ....

 

 

도깨비는 서푼을 들고 아이의 집에 찾아와서 둘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무얼하고 놀았을까. 정들었겠지, 그렇게 한참 매일 만났는데. 아이가 크고, 장가 들어 자식 손주 손녀 보고 오래 살다 눈을 감을 때, 그 어린 시절의 유일한 친구를 불렀대지. 도깨비야....도깨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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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벗은 남 프랑스의 산악지대에 1910년부터 수십 년 간 혼자 나무를 심은 사람이 있었다. 작가 장 지오노가 만난 그 소박하고 겸손하며 조용한 사람의 이야기를 우화 형식으로 엮은 그림책. 부드럽지만 강렬한 프레데릭 바크의 그림과 함께 강한 울림을 준다.

 

산속에서 양을 치며 혼자 강아지와 함께 사는 노인(오십오세), 정갈하고 튼튼하게 지은 집에서 깨끗한 모습으로 묵묵히 매일매일을 산다. 그가 꼼꼼하게 골라낸 백 알의 도토리. 매일 백 개씩, 삼 년 이면 십만 개의 씨앗을 심고, 그중 몇 만개의 씨앗을 보고, 묘목을 가꾸며, 결국은 '천연숲'을 이룬다. 그는 그 공을 내세우는 대신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가 나무 심기를 계속 이어간다. 야생 동물보다 거칠고 서로 시기하며 으르렁 거리던 사람들은 점차 너그럽게 변한다. 숲과 함께 샘이 살아나고, 산동물과 사람들이 모여들어 생명이 넘치는 땅이 된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의 헌신과 많은이들이 못보고 지나치고 간섭을 하지 않은 덕이다. 이 노인의 비극적인 가족사, 이야기 마무리의 종교적 채색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푸근해진다. 길을 내지 않고 숲을 만든 사람이라니.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웃통벗고 소리치며 닭 잡아먹는 대신, 자연을 만들고 뒤로 조용히 물러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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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6-07 1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십오세,,,에 노인;;;;;;;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울어야 하는 건가요???)

유부만두 2018-06-07 15:16   좋아요 0 | URL
전 울면서 읽었고요, 다행히 노인이 팔십을 훨씬 넘게 장수해서 위로받았습니다.

psyche 2018-06-11 08:46   좋아요 0 | URL
나도 오십오세에 노인이라는 말에 헉하면서 눈이 흔들렸는데...ㅜㅜ
 

파비앙처럼 비행중 사라진 파일럿, 생 택쥐베리의 '야간비행 Vol de nuit'를 뒤늦게 읽었다. '어린왕자' 생각도 났고, 어린왕자를 좋아하는 친구도 생각났다.

 

 하늘에서 돌풍과 사투를 벌이는 파비앙, 그리고 지상에서 만오천 킬로미터를 무선으로 관리하는 리비에르, 두 사람이 하늘과 지상에서 고민하고 싸우며 '전진하는' 이야기다. 관리자 리비에르는 노동자의 안전이나 복지, 무엇보다 그들의 생명 위에 '일'과 '의무'를 놓는다. 앞으로 전진하고, 일의 '강제성'으로 인간이 존엄성을 갖는다고 믿는 워커홀릭 나쁜 상사. 그의 신념은 비행사고 이후에도 꺾이지 않고 밤하늘에 비행기를 띄운다. 젊은 파일럿은 냉소를 지으면 '훗, 리비에르는 내가 겁먹은 줄 알잖아' 라고 혼잣말을 한다. 그 상사에 그 부하. 생명을 내놓고 위험을 감내하는 사람들. 그들의 멋찜은 천재지변에 맞서서 지상에서나 하늘에서 싸우는, 밤하늘의 거친 바다를 헤쳐나가는 뱃사람들로, 격전이 펼쳐지는 적지로 돌격하는 군인으로 그려진다. 죽음으로 완성되는 젊은 병사들, 지상에서 쓸쓸하게, 하지만 고집스레 전진 명령을 내리는 리비에르, '전쟁과 평화'의 장군 쿠투조프는 울기라도 했지....

 

새신랑 소식을 찾아서 사무실로 찾아오는 파비앙의 부인. 그녀의 애닲은 마음은 아무도 위로하지 못한다. 육주 동안 익혀온 신랑의 비행 리듬과 하늘의 길을 이제 그녀는 잊어야한다. 긴장하며 천천히 읽어도 짧고 아름다운 소설은 금세 끝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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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6-05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영어책도 불어책도 술술 읽으시는 유부만두님! 곧 일어책도 읽겠죠? 부러웡

유부만두 2018-06-06 08:27   좋아요 0 | URL
술술은 못읽고요 ;;;; 사전 끼고 읽습니다.
일어책은 ...글쎄요

라로 2018-06-05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부러워요!! 모든 술술술 잘 읽고 잘 하는 유부만두님!!!

유부만두 2018-06-06 08:28   좋아요 0 | URL
아, 라로님....그게요....이걸 제가 대학때부터 공부한 건데 ...
직장 잡고 했어야 한건데 ... ㅜ ㅜ

다락방 2018-06-05 17: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져요! 😍

유부만두 2018-06-06 08:29   좋아요 0 | URL
공들인게 아까워서 아직도 못 놓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