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공기나 물 같은 매체를 통해 귀에 전달되는 진동으로 정의된다. 우주는 진공 상태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진동할 분자가 없으며 당연히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항공우주국에서 녹음한 행성과 위성의 소리는 실제 ‘소리’가 아니다. 태양풍과 행성 자기권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낸 진동이 전기 신호로 변형된 후 증폭되어 스피커에서 소리가 되어 나온 것이다. (피타고라스의 ‘천체의 음악’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이 비논리적인 유사성을 어떻게든 사실일 것으로 밀어붙이는 행위는 좌종 치료법이 그저 요행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뒷받침할 뿐이다.

게이너는 심신의 통합이 과학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될 것이라고 예견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과학은 몸과 마음을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다. 단지 마음이 뇌의 기능이라고 여길 뿐이다. 게이너는 의식이 비국소적이며 시공간적으로 무한한 궁극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이 보여주는 증거는 다르다. 과학에서 의식은 뇌세포가 죽으면 중단되는, 뇌세포 각각의 부수 현상이라고 여겨진다.

물론 우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우리가 어떻게 느끼고 행동하는지에 영향을 준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충분히 긍정적이지 않다는 점이 아니다. 그보다는 긍정심리학의 어리석은 약속을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더 문제다.

지난 몇 년간 나는 긍정적인 사고라는 말을 지긋지긋하게 들었다. 물론 인생을 대하는 전반적인 태도로는 나쁘지 않지만, 그런 사고방식이 우리 인생에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면 한심하게도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다. 캐럴 웨이드Carole Wade와 함께 심리학 입문 교재를 수년간 꾸준히 개정하다 보니, 긍정심리학의 이점을 주장하던 기존 연구가 새로운 연구 결과에 밀려 차츰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우리 교재 최신판에는 긍정심리학의 거대한 실체는 온데간데없고 희미한 그림자만 남았다고 해야 할 지경이다.

낙관주의의 장점을 살리려면 ‘회의적 낙관주의’가 필요하다. ‘난 정말 잘났어! 모든 게 잘될 거야!’를 굳이 날마다 스무 번씩 복창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걸로 얻을 수 있는 건 당신을 딱하다는 듯 바라보는 주위 사람의 시선이 전부다. 아무리 낙관주의자라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서는 안 되며, 자기 앞가림은 제대로 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거나 나쁜 일이 벌어지면 팔짱만 끼고 있지 말고 해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요컨대 낙관주의는 행동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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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 세계의 시간 -하
페르낭 브로델 지음 / 까치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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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가격 움직임을 상승시키거나 중단시키고 또 하락시키는 콩종크튀르는 영국에만 유일한 시간이 아니라 "세계의 시간"이다. 이 시간은 부분적으로 영국에서 형성되고 런던이 그 가운데 핵심적인 진앙지라는 것은 가능한 정도를 넘어서 확실한 일이지만, 동시에 전세계가 이 콩종크튀르를 만들고 변형시켰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므로 콩종크튀르는 영국만의 것이 아니다. 그 결과는 아주 분명하다. 가격의 반향이 느껴지는 구역은 전세계이며 다만 영국이 그 중심지를 이루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영국의 콩종크튀르는 부분적으로 외생적이며 영국 밖에서, 특히 가까운 유럽 지역에서 일어나는 일이 영국의 역사에 관한 증거가 될 수 있다. 유럽과 영국은 같은 콩종크튀르를 따르고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영국과 유럽이 같은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은 아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840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5)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 3-2>에서 비로소 3권 전체 제목인 '세계의 시간'의 의미가 밝혀진다. 영국 그리니치 천문대(Royal Observatory Greenwich)기준으로 하는 표준시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핵심부 - 주변부'로 구성된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영국은 핵심부 중에서도 중심부(core of the core)를 차지한다. 그렇다면, 영국은 어떻게 자본주의 시간의 중심점에 서게 되었을까? 이에 대한 이야기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에서 다루어지며, 동시에 전체 3권의 이야기가 마무리된다. 전체 결론에 대해서는 별도의 페이퍼로 다루는 것으로 미루고, 여기서는 18세기 자본주의의 중심지 영국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브로델은 본문 앞 부분에서 18세기 영국의 패권이 확정되기 전후 시점에서 세계 경제의 모습들을 살펴보고 있다. 유럽에 많은 귀금속과 사탕수수 등 농작물을 제공하는 식민지 라틴 아메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자원을 이용하기 위해 강제로 인력이 유출당해야 했던 아프리카는 중심부와 직접적 연관을 가질 수 밖에 없었고, 동유럽의 강국 러시아는 광활한 영토를 충분히 통제할 수 없었기에 주변부에 머물 수 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과연 세계 모든 지역에서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구문명은 압도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던가?


 아메리카의 사회와 경제는 구대륙 모델의 재생이며 동시에 변형이었다(p591)... 아메리카 전체는 다양한 사회와 경제의 병존 또는 누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층에는 어떻게 부르든 간에 상관은 없지만 반쯤 폐쇄적인 경제가 있고 그 위에 반쯤 열려 있는 경제가 존재하며 마지막으로 상층에는 광산, 플랜테이션 그리고 아마도 목축업을 하는 일부 조직과 상업조직이 존재한다. 자본주의는 기껏해야 제일 마지막의 상업층에만 해당된다(p595)... 사실 모든 사업가들은 아메리카 전체에 마치 위로부터 그물을 덮어씌운 것처럼 지배하고 있는 유럽 세계-경제의 연결층에 속해 있다. 이들은 민족자본주의 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중심부로부터 조종되는 세계적 체제의 틀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596


 결론은 분명하다 : 러시아라는 거인은 변경지역에서까지 확고하게 지배하지는 못했다. 북경, 이스탄불, 에스파한, 라이프치히, 리보프, 뤼베크, 암스테르담, 런던 등지에서 러시아의 교역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조정되었다. 러시아 상인들이 기를 펴고 활동한 것은 러시아 내부의 시장들, 러시아 영토 내의 여러 곳에 퍼져 있는 정기시들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들은 상트 페쩨르부르크나 아르항겔스크에서 외국 상품을 수입한 다음 이것을 가지고 멀리 이르쿠츠크 너머에서까지 교환화폐처럼 사용함으로써 복수를 한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644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에서 우리는 교환의 세계, 시장경제의 층위에서는 서양의 절대우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오히려, 중국, 인도 등의 상품에 의해 많은 양의 은(銀)이 유출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자본의 축적은 동양에서 더 많이 이루어졌으며, 15세기 레콩기스타(Reconquista)가 완료되기 전까지 기독교들을 지중해에서 대서양과 북해방면으로 몰아붙이던 이슬람 제국주의는 근대 서양 제국주의보다 무력면에서 결코 뒤지는 수준은 아니었다.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 이전까지는.


 우리는 이집트에서부터 일본에 이르기까지 자본가, 상업자금 융자인, 대상인 그리고 대리인, 중개인, 외환 거래업자, 은행가와 같은 실무 집행인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교환의 도구, 가능성, 혹은 안전성 등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 상인들 집단 중 누구도 서유럽의 상인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유럽의 지중해, 북해, 대서양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다양성과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 해상교역의 망"이 등장했고 갈수록 더 명확해졌다. "인도 내 무역"은 유럽 인들이 도착하기 오래 전에 이미 자리잡고 있었다. 왜냐하면 상호 보충적인 상품들이 서로 유인하고 균형을 이루기 때문이다. 이것들은 극동의 바다에서도 유럽의 바다에서와 유사한 상품순환의 끝없는 움직임을 활성화시켰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677


 이슬람 제국주의와 서유럽 제국주의는 심층적으로 동질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 두 개의 공격적이고 노예주의적인 문명에 대해서 감시를 게을리하고 취약성을 드러내고 있는 블랙 아프리카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물론 블랙 아프리카의 변두리 지역에 모습을 드러낸 침략자들은 아주 매력적인 상품들을 가지고 왔다. 이것은 사람들의 욕심을 자극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를 팔았다. 그리고 여기에 전문화한 상인들이 많이 있어서 이들이 사람들을 속여 노예상인들에게 넘겨버렸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604


 세계의 시간 분기점은 산업혁명(産業革命)이다. 18세기 중반부터 일어난 이 혁명은 세계 각지에 점(點)으로 진출해있던 서양 세력들을 선(線)으로 연결시켜 면(面)의 지배를 가능케했다. 그리고 이로부터 생겨난 새로운 체제는 이전의 모든 질서를 대체해버리며 영국 중심의 세계체제를 확정짓게 된다. 이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의 나머지 내용은 이를 설명하는 것으로 채워진다.


 폴 베로크의 계산결과가 말하고 있는 것은 유럽이 도처에서 놀라운 방식으로 승리를 거두고 있으나 쿡, 라 페루즈, 부갱빌 등이 거대한 태평양을 탐험하고 있던 1800년경에 유럽은 오늘날과는 달리, 세계의 다른 나라들의 기록들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는 입장은 결코 아니었다는 점이다(p741)... 유럽과 나머지 세계의 상대적인 위치에 대해서 1800년 이전과 산업혁명 이후로 나누어보는 것에 대해서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평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아마도 기술진보보다는 사회적, 경제적 구조의 요인 때문에) 선두의 영국을 필두로 한 유럽만이 홀로 기계혁명을 주도할 수 있었다는 것에는 거의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혁명은 발전 그 자체만을 위한 도구 정도가 아니었다. 이것은 지배의 도구이며 국제적 경쟁을 파괴하는 도구였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742


 브로델은 산업혁명을 혁명(革命)과 같은 단기적 현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산업혁명은 콩종크튀르(conjoncture)라는 장기지속의 시간대에서 서서히 일어난 변화들이 맞물려 일어난 사건의 결과다. 콘트라티에프 파동(Kondratiev wave)에 따라 움직이는 세계경제의 구조적 변화는 13세기부터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혁명의 전조는 이전부터 나타났었다. 그렇지만, '인구증가 -> 분업 발달 -> 생산성의 증대 -> 교역의 확대 -> 식량 수요 확대 -> 인구증가'로 이어지는 구도는 여러 이유로 끊어지며 지속성정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오직 '영국'에서 영국만의 배경을 통해 효과적으로 연결되었음을 브로델은 본문에서 보여준다. 


 18세기 말 영국에서 있었던 모든 혁신과 불연속도 과거, 현재 그리고 다음 시기라는 "역사적 연속(contunuum historique)" 안에 위치해 있었다. 이 연속 안에는 불연속과 단절이 그동안 이야기했던 것과 같은 유일무이하고 결정적이라는 성격을 상실한다. 산업혁명은 적어도 두 측면에 걸친 것이다. 짧은 시간의 연쇄 속에서 이루어지는 명백한 격변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서의 산업혁명이 하나이고, 장기지속적이고 누진적이며 신중하고 조용한, 그리하여 흔히는 거의 알아볼 수도 없는 과정이 또다른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746


  "17세기의 위기"는 영국에서는 시골 지역의 성숙과 맞물렸다. 왜 느리고 불균등하게 일어난 이런 시골에서의 변화는 장래의 산업혁명에 이중으로 유익한 것이었다. 우선 이것은 고수확의 농업을 정착시킴으로써 곡물을 수출하지만 않는다면 1750년대 이후 나타난 급격한 인구 증가를 지탱해줄 수 있었다. 또, 이것은 빈한한 지역에 소기업가들과 함께, 수공업 작업에 어느 정도 익숙한 프롤레타리아들, 즉 "고분고분하고 잘 훈련된" 노동자들을 증가시켜서 18세기 말에 도시에서 대산업들이 발달해 나왔을 때 필요한 인력을 미리 준비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773


 생물학적으로 (영국의 인구가) 크게 팽창한 것은 시골의 사정이 나아지고 도시가 성장했으며 산업 중심지들이 기록적인 속도로 팽창했기 때문이다. 산업화는 영국의 인구 증가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모든 구체적인 연구들은 이 인상을 확인해준다. 17~30세의 인구집단을 살펴보면 1800년에 산업지역인 랭커셔에서는 40퍼센트의 인구가 결혼해 있는 데 비해 농촌지역에서는 19퍼센트만이 결혼해 있었다. 그러므로 산업 분야에서의 고용은 조혼을 촉진시킨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구증가의 가속요인이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779


 물론,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요인들이 모두 영국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영국에서 만들어진 요인들은 없었다고 브로델은 단정한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자본주의라 부르는 성격들이 종합되는 것은 오직 영국에서만 가능했고, 이러한 요인들을 활용해서 영국은 산업과 상업 그리고 금융이라는 삼위일체(三位一體)의 중심지로 설 수 밖에 없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산업혁명에서도 그렇지만, 다른 모든 심층적인 역사적 문제들에서도 단기적인 것, 사건과 같은 것이 우선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은 느리게 진행된다. 코크스를 이용한 제련, 직조의 기계화, 진정한 농업혁명, 진정한 증기기관, 진정한 철도..... 산업혁명은 끊임없이 탄생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탄생해서 움직여가기 위해서는 여러 차례의 파괴, 정비 그리고 "재구조화(restructuration)"가 필요하다. 그 어떤 것도 빠르게 만들어지지는 않았다. 사실 표면적으로는 터무니없이 지체된 세기인 17세기 동안 앙시앵 레짐은 기반이 허물어지고 쓰러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전통적인 농업구조와 토지소유가 파괴되었다. 길드 제의 해체가 이루어졌는데 이것은 대화재가 일어난 1666년 이후 런던에서도 볼 수 있는 일이었다. 항해조례도 갱신되었다. 보호와 방어라는 중상주의적인 정책들을 만드는 마지막 조치들이 연이어 나왔다. 이 모든 것들이 움직여 나가서 영국은 "매일같이 면모를 일신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809


 내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오래된 모험이다. 산업혁명이 시작되었을 때 그 뒤에는 폭넓은 과거의 경험이 있었으며 그것은 반드시 상업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19세기 초반의 영국에서도 자본의 여러 다양한 고전적인 형태를 띠고서 여전히 활기에 휩싸여 있었다. 농업자본은 1830년에만 해도 영국의 부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산업자본은 아주 천천히 성장하다가 곧 급속한 성장을 시작했다. 상업자본은 아주 오래된 성격의 것으로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지만 대신 전세계의 차원으로 확대되어서 식민주의를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금융자본이 있는데 이것은 런던의 시티(City)가 세계적인 우월성을 가지기 이전에도 존재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830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3개 층위의 마지막 자본주의와 산업혁명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이로써 물질문명, 교환의 세계(시장경제), 세계의 시간(자본주의)의 3개 층위에 대한 설명이 끝나는데, 브로델은 이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마무리 짓는 페이퍼에서 다루도록 하자...


 18세기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광범위한 지상층(1층)의 영역이 존재하는데 최근의 경제학자들의 추산에 의하면 오늘날 가장 산업화된 국가에서도 이런 층이 전체 경제활동의 30-40퍼센트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와 같은 영역은 시장과 국가통제의 바깥에 놓여 있는 밀수, 재화와 서비스의 물물교환, "암거래 노동", 가구의 활동 등을 합친 것이다. "삼분할(tripartition)" 체제, 여러 층을 가진 경제라는 개념은 과거에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한 모델이며 다양한 관찰의 틀이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지상층을 고려하지 않은 통계는 불완전한 분석일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의 상층에서 하층까지 모두 아우르는 자본주의 "체제(systeme)"라고 하는 관점은 여러 면에서 수정되어야만 한다. 그와 반대로 자본주의와 그 아래층인 비(非)자본주의 사이에 생동하는 변증법이 작동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3-2>, p867

영국은 국내 물가와 인건비가 너무 오른 나머지 프랑스 및 네덜란드와의 경쟁을 이기지 못했다. 영국은 더 이상 유럽 내에서 이익을 취하지 못하고 오히려 후퇴했으나 대신 나머지 전세계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이 승리에 대해서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우리는 크게 보아서 영국이 자국의 상업을 어떻게 "한계화(marginaliser)"했는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대개 무력을 통한 승리였다. 1793-1795년에 있었던 유럽 내의 전쟁이 영국에게 도움을 주었다. 이 전쟁을 통해서 영국은 세계를 장악할 수밖에 없게 된 반면 네덜란드와 프랑스는 오히려 세계쟁탈전에서 축출당했다. - P797

영국이 지배권을 행사하는 세계-경제 내에서 자신의 보호구역과도 같은 "주변부"국가들에 근거하여 교역을 수행함으로써 얻는 이점은 명백하다. 국내 물가가 너무 높아진 것은 생산수단의 변화를 초래했을 뿐 아니라 원재료 역시 가격이 낮은 지역에서 구매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영국의 교역이 세계 최일급의 선단에 힘입어 원거리라는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조선업, 의장업, 해상모험에 대한 투자 혹은 보험업 등 항해 분야에서 영국만큼 분업이 발달해 있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 P797

아메리카의 은이 아시아에 도달하는 경로는 세 가지였다 : 첫번째는 레반트와 페르시아 만을 통한 경로로서, 인도의 역사가들은 17~18세기에도 은이 자기 나라로 들어오는 데에 이 경로가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 두번째 것은 희망봉 항로이고, 세번째 것은 마닐라 갤리온 선의 경로였다. 일본이라는 아주 독특한 경우를 예외로 하면 극동지방에서 유통되는 거의 모든 은은 유럽에서 들어온 것, 다시 말해서 아메리카에서 들어온 것이었다. - P683

영국의 정복 이전에 유럽의 지배는 다른 몸체에 붙어 사는 기생충처럼 점과 같은 지배였다. 지배지역은 점들과 같았다. 달리 말하면 극소의 공간에 불과했다(p689)... 그렇지만 유럽은 아시아에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심어놓은 것이 사실이지만 이것은 서양의 가장 발달한 자본주의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소수는 비록 "내적으로 취약한 성층구조"를 이루고 있는 데 그치지만 그래도 이것은 아시아의 대중과 조우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극동의 교역과 교환을 지배하고 있는 상업 엘리트들과도 조우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도에서 유럽의 침투에 대하여 길을 터 준 것도 이런 지방 엘리트들이었다(p690)... 결국 18세기 말 이전부터 영국이 인도 무역의 85~90퍼센트의 독점을 누리게 된 과정이 이렇게 해서 시작되었다. - P691

오늘날 제3세계에서 겪고 있는 병목현상들은 경제발전의 효과를 상쇄해버리는 인구증가, 숙련노동력의 부족, 국내적으로는 일반 공산품에 대한 수요가 적기 때문에 사치품이나 혹은 수출용품의 생산 분야에서만 산업화가 이루어지는 경향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장애요인으로서 "농업의 장벽"을 들 수 있다. 농업 분야는 구태의연하고 대개 자급자족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식량의 공급이 부족하고 비탄력적이다. 그리하여 임금노동자층이 증가하면 자연히 나타나게 마련인 식량소비의 증가분을 완전히 충족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심지어는 농촌 내의 잉여 인구에 대한 식량의 공급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도시로 실업자 프롤레타리아를 방출하고, 마지막으로 워낙 가난하기 때문에 초보적인 공산품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지도 못하는 것이다. - P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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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이후에 자신의 이론을 보완하여 1915년에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했으며 여기서 그는 특정한 상황에서는 정보를 빛보다 빠르게 전달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함을 인정했다. 예를 들면 대량의 에너지를 사용하여 시공간을 연속적으로 잡아 늘이는 것이 가능하다.

아인슈타인과 네이선 로젠Nathan Rosen은 이른바 ‘아인슈타인-로젠 다리Einstein-Rosen bridge’라는 시간과 공간의 지름길을 만들어 두 우주를 연결할 수 있다고 추측한 적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어떤 천체든지 그 자신의 ‘사건의 지평선event horizonb’보다 작게 수축되면 웜홀이 만들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와 같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의 현재 역량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쉽게 풀이하자면, 가난하고, 건강보험이 없고,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아픈 환자는 CTCA가 자랑하는 생존율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는 자신의 자랑거리를 떠벌리고는 바로 아니라고 부인하는 꼴이다

CTCA는 이윤과 마케팅에 비정상적으로 집착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명망 있는 암센터조차 이제 곧 매년 1,800억 달러 규모에 이를 레드 오션 시장에서 서비스를 묶어서 강매하는 유혹에 굴복하고 말았다.

고선량 양성자치료가 "현재 가장 진보한 암 치료법"이라거나 부작용의 "가능성이 가장 적은" 치료법이라고 암시적으로 비유하면서도 비교 대상은 적시하지 않는다. 모호한 주장은 예상대로 ‘~할 수 있는’, ‘~일지도 모르는’ 등의 조동사나 수동태에 기대고 있다

결국 병원이 자신이 제공하는 치료 서비스에 대해 환자에게 경고하는 동시에 광고하는, 희한한 광경이 연출된다. 슬론 케터링 통합의학센터는 25년 넘게 ‘전 세계에서 연구하고 발표하며 강연하는 대체 치료법’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병원은 환자에게 "대체치료법은 입증된 바가 없고, 비용이 많이 들며, 해로울 가능성이 있습니다."라고 경고한다.

보완대체의학은 보험이 없거나 보험이 충분하지 않은 환자에게 더 큰 위협을 가한다. 오바마케어의 시대에도 3천3백만 명의 미국인이 의료보험에 들지 못했다. 의료비용은 여전히 미국에서 개인파산의 주요 원인이다. 끔찍한 환경에서 명석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주류의학에서 벗어난 값싼 대체의학의 유혹은 저항하기 힘들다. 합법적인 병원이 보완대체의학을 제공하기 시작한다면, 이는 부끄러운 산업을 암암리에 사주하는 것과 다름없게 된다.

과학자에게는 두 가지 역할이 주어진다. 바로, 생명을 연구하는 것과 그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 나는 둘 중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압도하기를 원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하지만 과학에 헌신하다 보면 그런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다. 생을 연구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에게는 충실하지 못한 생 말이다

내가 아는 대수학으로 정확한 예측과 분석 능력을 갖춘 분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정말 짜릿했다. 이것은 수학, 그리고 그 쌍둥이인 과학이 갖는 아름다움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과학을 통해서라면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전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배울 수 있다. 물론 거기에 필요한 집중력을 발휘하고, 시간을 투자할 의지가 있다는 전제 아래서 말이다. 과학적 방법론은 ‘자기기만self-deception’을 엄격하게 배제한다. 과학에서는 모든 것이 명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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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소위 자유세계라는 말은 1917년 이전에 그랬던 것처럼 전세계를 포괄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주의권 국가들에서의 극적인 실험 결과, 자본주의는 지구상의 대단히 광범한 지역으로부터 사라졌다. 따라서 오늘날의 세계는 연속성과 동시에 불연속성을 보이며 이 모순은 이제 내가 차례로 살펴볼 여러 문제들의 지평에 자리잡게 된다. 장기지속 구조로서의 자본주의, 사회적 복합체의 한 부분로서의 자본주의, 생존이냐 아니냐의 기로에 있는 자본주의 (그러나 만일 자본주의가 사라진다면 그와 동시에 우리 사회의 불평등도 함께 사라질 것인가? 아마도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긴 연구의 핵심적인 증거가 되는 것으로서 시장경제와 구분되는 영역으로서의 자본주의 등이 우리가 살펴볼 문제들이다. - P853

다른 한편, 19-20세기의 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또는 경쟁적인 자본주의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든 간에 독점 (monopole)은 자신의 권리를 잃지 않았다. 독점은 단지 다른 형태를 띠고 나타났을 뿐이다. 그것은트러스트(trust)와 지주회사(holding)로부터 1960년대에 해외지사의 수가 세 배로 늘어난 유명한 미국의 다국적 기업(multinational firm)에 이르기까지 여러 형태들을 가지고 있다.  - P855

요컨대 오늘날에든 과거에든 자본주의의 중요한 특권은 선택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 특권은 사회 내에서의 지배적인 위치, 대자본, 차입의 능력, 정보망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강력한 소수집단 구성원들(비록 그들이 경쟁 때문에 분열되어 있다고 해도)간에 일련의 법칙과 인적 관계를 만드는 연결망 같은 것들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P855

자본주의를 단순히 "경제체제"로만 상정한다면 그것은 그 어느것보다도 큰 실수이다. 실제로 자본주의는 사회질서를 근간으로 하여 살아가며, 또 적대적이든 우호적이든 국가라는 그 거추장스러운 존재와 (거의)동격의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늘 그래왔던 현상이다. 동시에 자본주의는 사회적 건조물을 견고하게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모든 문화적 원조를 이용한다. 왜냐하면 문화는 아무리 불평등하게 향유되고 있고 또 모순적인 흐름들이 관류하는 실체라고 해도 결국은 기존 질서의 유지에 최상의 공헌을 하기 때문이다. - P857

이곳은 각 단위들이 서로 충돌하면서 동시에 서로 의지하는 진정으로 "경쟁적인" 세계였다. 그러나 소비자들이원하는 모든 것들을 시내에서 만들고 저장하고 그리하여 얼마든지 제공했던 수천 개의 소기업들이 축출되어버리자 뉴욕 시는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이 세계를 파괴하고 대체하여 시 바깥의 거대한 생산단위에 유리하도록 만든 것은 대기업들이었다. 뉴욕 시의 오래된 옛날 기업이 이곳의 학교에 빵을 만들어 공급하던 것이 이제는 뉴저지 주에서 만들어져들어온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나라의 핵심부에서도 경쟁적이었던 경제가 어떻게 변모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 P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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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온난화에 대한 증거(빙하코어에서 볼 수 있는)의 요점은 우리가 식물이나 바다가 감당할 수 있는 정도를 크게 초과하여 너무 많은 이산화탄소를 방출함으로써 자연의 미묘한 균형을 파괴했다는 사실이다.

가장 결정적인 증거는 지난 몇 년 동안에 나타났다. 온실효과를 모사하는 기후모델에 따르면 성층권(고도 10 킬로미터 이상의 상층 대기권)이 냉각되고 대류권(고도 10 킬로미터 미만의 하층 대기권)은 온도가 상승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는 우주 탐사선이 측정한 결과와 정확히 일치한다. 결국 우리는 다른 모든 용의자(앞에서 언급된)를 배제할 수 있다. 태양열은 1940년 이래로 증가가 아니라 감소해왔으며, 우주선, 메탄, 화산가스, 기타 그 어떤 잠재적 원인의 증가도 없었다. 문제를 직시하라. 인간이 문제다.

마지막으로 지구 온난화에 대한 논쟁이 과학적이라기보다 순전히 정치적인 논쟁임을 말해주는 강력한 증거로 창조론자들과 기후 변화 부정론자들의 회원 명부가 상당 부분 겹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은 지구 온난화의 과학적 진실에 의문을 제기하는 거의 유일한 국가다. 2006년과 2007년에 33개국의 3만3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이들 국민의 90%가 기후 변화를 심각한 문제로 간주하고 있었으며,37 80%는 인간이 기후 변화의 원인임을 인식하고 있었다.38 창조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과학적 진실을 수용함에 있어서 세계의 다수 국가들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공기 부피의 약 99%를 차지하는 질소와 산소는 기본적으로 적외선 복사를 투과시킨다. 그러나 온실가스는 적외선 복사를 흡수한 후 여러 방향으로 방출한다. 온실가스가 없었다면 적외선 복사는 지표면으로 재흡수 되지 않고 모두 우주 공간으로 빠져나갔을 것이다.

이들 쟁점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보면 이들이 과학적 증거를 거부하는 듯 보이지만 전반적으로 대중은 과학 연구를 존중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조사 대상의 84퍼센트는 과학이 인간사회에 유익한 지식을 제공했다고 믿는다.

지구 온난화는 결국 공공보건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모기 같은 감염원의 지리적 분포가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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