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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한 존재가 어떤 미지의 삶에 참여하고 있어서 사랑이 우리로 하여금 그 미지의 삶 속으로 뚫고 들어가게 해 줄 수 있다고 믿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이 생겨나기 위해 필요한 전부이며, 사랑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으로,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처럼 불균형한 토요일의 반복은, 우리 고요한 삶이나 폐쇄적인 사회에서 일종의 민족적인 유대감을 형성하고 대화나 농담, 제멋대로 과장하는 이야기에 좋은 주제를 제공하는, 내적이고 지역적이고 거의 시민다운 작은 사건들 중 하나였다.

정력과 상상력의 결핍 탓에 쇄신의 원동력을 자신에게서 끌어낼 수 없는 사람들은, 앞으로 올 시간이나 초인종을 울릴 우편배달부가 설령 나쁜 소식일지언정 뭔가 새로운 것을, 어떤 감동이나 고통을 가져다주었으면 하고 바라며, 또는 한가한 하프 소리처럼 행복이 침묵하게 한 감수성이 설령 난폭한 손에 그 줄이 끊어질지언정, 다시 한 번 울려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법이다. 또는 욕망이나 고통에 방해받지 않고 전념할 권리를 아주 어렵게 획득한 의지는, 비록 아주 잔혹한 사건이라고 해도 그런 급박한 사건들의 손아귀에 고삐를 맡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가 황홀감에 사로잡힐 때는 특히 아스파라거스를 마주할 때였다. 아스파라거스는 짙은 군청색과 분홍빛이 감돌아, 꼭지 부분이 벼이삭처럼 보랏빛과 하늘빛으로 어우러져 아래로 내려갈수록 밭의 흙이 아직 묻어 있는 땅 색이 아닌 무지갯빛으로 아롱거리며 그 빛깔이 조금씩 연해져 간다. 이러한 천상의 빛깔은 어떤 감미로운 존재들이 즐겨 채소로 변신해서는, 먹을 수 있는 단단한 살로 변장해, 해 뜰 무렵 여명의 색깔이나 짧은 무지갯빛 출현, 푸른빛 저녁이 사라져 가는 과정에서 그 귀중한 정수를 드러내는 듯 보였다.

한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이나 태도에는 그 인간의 깊이 감추어진 성격을 드러내는 것이 있으며, 비록 그 태도가 예전에 그가 한 말과 연결되지 않는다 해도, 죄인 자신이 고백하지 않는 증언으로 그것을 확정 지을 수는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 감각의 증언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데, 이처럼 고립되고 비일관적인 기억 앞에서 우리는 이 감각들이 혹시 환상의 희생물이 아닌지를 묻게 된다. 이렇게 해서 그러한 태도 중 가장 중요한 것들은 자주 의문으로 남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소중해진 사물 속에서 우리는 영혼이 사물에 투사한 빛을 찾아내려고 애쓰지만, 우리 생각 속에서 몇몇 관념들과 연결되어 나타났던 사물의 매력이 자연 속에서는 상실된 듯 보여,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하고 실망한다. 때때로 우리는 이런 영혼의 모든 힘을 능숙한 솜씨나 찬란함으로 전환해, 우리 밖에 존재하고 있어 우리가 결코 도달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존재들에게까지 힘을 미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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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상
페르낭 브로델 지음, 주경철 옮김 / 까치 / 199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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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모델과 관찰을 병행하는 작업을 해나가면서 내가 늘 확인하게 된 것은 정상적인, 나아가서 일상적인 교환경제[18세기에서라면 자연[natruelle]경제라고 불렀을 것이다)와 상위의 정교한 경제(18세기에서라면 인공[artificielle]경제라고 불렀을 것이다) 사이의 끈질긴 대립이다. 나는 이와 같은 구분이 명백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확신하며, 그리하여 서로 다른 층위마다 경제 주체(agent), 사람, 그들의 활동과 심성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신한다. 고전경제학에서 묘사하는 것과 같은 시장법칙들은 일정 수준에서는 분명하게 찾아볼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상층의 영역에서는 자유 경쟁이라는 모습으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이 상층의 영역은 차라리 계산과 투기의 영역이다. 여기에서는 그림자의 영역, 역광(逆光)의 영역이 시작되며, 이곳에 관한 비전(秘傳)을 물려받은 자들의 활동무대가 시작된다. 이곳은 자본주의라는 말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의 뿌리가 되는 영역인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p12


 페르낭 브로델 (Fernand Braudel, 1902~1985)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Civilisation Materielle, Economie et Capitalisme 2-1>에서 도시와 시장 그리고 화폐가 만들어낸 교환 경제로부터 최상층인  자본주의로 가는 통로를 발견한다. 이전에서 최하위 단계인 물질문명에서 '소비'를 발견한 브로델이 '생산'이 아닌 '교환(Exchange)'의 영역을 시장경제에서 발견한 근거는 무엇일까. 


 아주 초보적인 경제적인 경제라는 의미의 "물질생활(vie materielle)"과 경제생활 사이의 접촉면은 연속된 것이기보다는 시장, 가게, 상점 등의 수많은 작은 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점들은 동시에 단절점이기도 하다 : 한쪽에는 교환, 화폐 그리고 우월한 수단이 되는 집산지 - 교역 중심지, 교환소, 정기시 등 - 를 가진 경제생활이 자리잡고 있고, 다른 쪽에는 완강히 자급자족에 매달려 있는 "물질생활"이라는 비(非)경제가 자리잡고 있다. 경제는 교환가치의 영역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p11


 경제는 얼핏보면 생산과 소비라는 두 개의 거대한 영역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 같다 : 소비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완수되고 파괴되며, 생산 영역에서는 모든 것이 다시 시작된다. "사회는 끊임없이 생산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소비한다"라고 마르크스는 썼다. 정말로 지당한 진리이다. 그러나 이 두 세계 사이에 세번째의 세계가 끼어들어간다. 그것은 바로 교환의 세계이며 달리 말하자면 시장경제이다... 시장경제는 늘 균형을 고집하고 어쩌다가 그 균형에서 벗어나더라도 곧 제자리로 되돌아가는 하나의 총체를 이루고 있으면서 동시에 변화와 혁신의 영역이다. 마르크스는 이를 유통권(sphere de circulation)이라 지칭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7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에서 브로델은 '생산'이 결코 주도적인 위치에 있지 않음을 강조한다. 이는 고정자본(Fixed Capital)이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안정적으로 수익을 창출하기 전까지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생산부분에 끊임없는 비용이 투입되어야 했으며, 결코 비용을 넘어서는 수익을 창출할 수 없었다. 그 결과 당연하게도 15~18세기 경제활동의 중심은 생산이 아닌 교환이 된다. 생산부문은 언제나 유통부문의 통제 아래에 놓여 있었다.


 확실한 것은 생산 영역에서 전(前)산업적인 자본주의의 결산은 부정적이라는 것이다. 몇 가지 예외들이 있지만 자본가들 - 다양한 활동을 무차별적으로 하던 "대상인들" - 은 생산에 전적으로 참여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결코 대지에 두 발을 굳건히 뿌리박은 지주가 아니었다(p525)... 그의 참된 모습이란 시장, 거래소, 상업망, 긴 교환의 연결망 등에서 찾을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분배야말로 이익을 내는 참된 분야인 것이다.... 자기 영역[교환의 영역]이 아닌 곳에 자본주의가 침투한 것은 그 자체로 정당화가 안 된다. 단지 상업의 필요성이나 이익에 따라 그렇게 할 필요가 있을 때에만 생산에 손을 댔다. 자본주의가 생산 영역에 침입하는 것은 기계 사용이 생산의 조건들을 변화시켜서 산업도 이윤의 확대가 가능해진 영역이 된 산업혁명기에 가서야 일어난다. 이때 자본주의는 그런 것에 의해서 크게 변형되고 나아가서 확대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526   


 어느 한 사회가 매년 생산하는 전체 자본을 조자본(粗資本 ; gross capital)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중 일부는 활동적인 경제생활의 과정에서 침식되는데, 이것을 뺀 나머지 부분이 순자본(純資本 ; capital net)이 된다. 그런데 쿠즈네츠는 조자본과 순자본 사이의 차이는 현대 사회에서보다 과거 사회에서 훨씬 클 것이라고 보았다. 쿠즈네츠의 이 가설을 그야말로 핵심적인 것이며, 또 그에 관한 증거 자료들이 풍부하게 있어서 거의 확실해 보이는 내용이다. 확실한 것은 지난날의 경제는 상당한 액수의 조자본을 생산하지만 일부 분야에서 이 자본이 봄눈 녹듯이 사라져버린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그 생산의 틀이 본질적인 취약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대량의 노동으로 그 자본의 부족을 메꾸어야 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48


 고정자본이라는 개념은 근대 경제와 근대 기술에 의해서만 생산된 것이다. 이 말은, 역시 약간 과장하여 말한다면, 산업혁명은 무엇보다도 고정자본의 변화라고 하는 말과 같다. 그 자본은 이제 아주 비싼 것이 되었지만 대신 훨씬 더 지속적이고 완성도가 높은 것이며, 그 결과 생산성을 급속도로 증가시켰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50


  확실한 것은 자본가들의 선택은 산업과 상업이라는 두 단계 사이의 간격을 더욱 심화시켰을 뿐이라는 것이다. 시장을 지배하는 상업이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산업이윤은 언제나 상인들의 수취에 짓눌렸다. 이 점은 기계제조식 양품류나 레이스 산업 같은 근대적인 산업이 아무 제약 없이 곧게 성장했던 중심지들을 살펴보면 명백히 볼 수 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485


 도시와 그 안에서 발달한 시장은 교환의 중심지였다. 교환을 위해 도시 중심부에 세워진 시장, 정기시, 거래소 등에서는 어음을 활용한 지불유예가 가능했으며, 이는 당시 유동성을 증가시켰다.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금융발달에 대항하는 반(反)시장 움직임도 커져가는데 구체적으로 정기시에 대항한 창고와 보세창고의 실물거래 증가, 거래소에 대항한 은행의 등장이 이러한 움직임의 일환이다. 시장과 반시장의 대립은 이 시대 체제(system)에 균열과 팽창을 동시에 가져오면서, 시장경제는 유럽 도시의 체제가 아닌 세계체제로 확산된다.


 시장, 상점, 행상의 위에 강력한 교환의 상층 구조가 존재한다. 그것은 탁월한 수단을 가진 인물들이 장악하고 있다. 이것은 중요한 교환기구와 대규모 경제의 층위이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자본주의의 층위이다. 자본주의란 대규모 경제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날에 원거리 교역을 하는 데 핵심적인 기구는 정기시와 거래소였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01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정기시((foire)의 핵심은 역시 대상인의 활동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상업 도구를 완성시킴으로써 정기시를 대사업 중심지로 만든 것이 바로 이들이었다. 확실한 것은 정기시야말로 크레딧을 발달시켰다는 점이다... 정기시란 결국 채무들이 모여들어서 서로가 서로를 상쇄하여 봄눈 녹듯이 사라지게 만드는 곳이다. 이것이 바로 스콘트로(scontro), 즉 어음 교환(compensation)의 비밀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15 


 어음 교환으로 대표되는 신용거래의 증가는 체제의 안전성을 요구한다. 또한, 신용거래로 증가한 유동성은 점(點)으로 형성된 시장을 선(線)으로 연결하고자 하는 유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추구하려는 욕구는 자본주의만의 것이 아니다. 


 상업순환을 완수하는 것을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며, 상품 대 상품, 나아가서 상품 대 금속화폐와의 교환만으로 이룰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이 때문에 환어음을 쓸 수 밖에 없고 또 실제로 그것이 정규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원래 환어음은 결제수단이었으나, 교화가 화폐 이자를 금지하는 기독교권에서는 가장 널리 쓰이는 신용수단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이렇게 해서 결제와 신용이 긴밀하게 연결되었다(p191)... 반대거래(return)에 대한 일상적인 해결책이 되었던 환어음에서는 금융 순환의 안정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 안정성은 파트너 개개인의 신용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효과적인 연결 가능성에 달려 있었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196 


 부피가 크고 묵중한 상품과 달리 사치품은 가볍고 빛나는 존재이며 많은 소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이다. 돈은 사치품을 향해 달려가고 그 명령에 따르려고 한다. 따라서 사치품에 대해서는 초(超)수요(super-demande)가 있고 그 자체의 교역과 변덕이 작용한다. 결코 일관적이지 않은 욕망과 언제나 변화하기 쉬운 유행은 인위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필요"를 만든다. 그것은 쉽게 변화하지만 결코 그냥 사라져버리는 젓이 없으며 단지 또 다른 근거 없는 열정에 자리를 양보할 따름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246


 사치품을 통해 높은 이윤을 확보하려는 경향은 교환이 활성화된 곳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 그러한 곳에서 물자와 노동이 몰리는 것은 당연할 것이며 그 결과 해당지역의 상품가격은 전반적으로 높게 형성될 것이었다. 이들의 중심지에 위치한 시장에서는 신용거래를 통해 풍부한 유동성을 보유하고 있었고, 시장들은 교역망을 통해 연결되면서 시장경제의 세계는 선으로 팽창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선(線)을 둘러싼 면(面)에는 아직 자급자족의 경제라는 배후지가 공존하는 세계. 바로 15~18세기 교환의 시대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2층인 시장경제에 '교환'의 주제가 부여되었다는 것은 다음 단계인 자본주의에게 당연하게도 '생산'이 할당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독점이라는 체제에 기반한 생산. 이는 자본주의의 시대의 특징이 될 것이다.

 

 "높은 상품 가격은 최고의 부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는 가장 확실한 안내자이다." 오늘날에도 "최선진국"의 임금 및 물가 수준은 "발전이 지체되어 있는 국가들보다 훨씬 높다."고 레옹 뒤프리에의 이론적 고찰은 밝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왜 그렇게 차이가 나는지를 물어야 한다. 이에 대해서 구조와 조직의 우월성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면 그것은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실 우리가 살펴야 할 것이 바로 세계의 구조인 것이다... 고물가와 고임금은 18세기 영국 경제에 유리한 요소이면서 동시에 제약 요소이기도 했다. 우리는 18세기의 기계화 혁명은 정말로 경이로운 탈출구였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237


 화폐와 토지 및 노동의 가격, 모든 곡물 및 상품들의 가격이 언제나 변함없이 자유롭다. 어떤 합법적인 제약도, 그 어떤 개인 사이의 담합도 가격을 굴종시키지는 못한다. 이런 판단들의 이면에는 누구에 의해서도 조정되지 않는 시장이 경제 전체의 모터 역할을 하는 장치라는 암묵적인 전제가 깔려 있다. 이 주장에 의하면 유럽의 성장 내지 세계의 성장은 다름 아닌 시장경제의 성장이고, 이것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과 점점 더 많은 근거리 및 원거리 무역이 시장이라는 합리적인 질서내에 이끌려 들어가는 것을 말하며, 이 전체가 세계의 단일성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14


 교역이 수요와 공급을 동시에 자극하고, 생산의 방향을 지시해주며, 광대한 지역을 경제적으로 특화해주고, 또 바로 그 때문에 이 지역들은 자신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교역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한마디로 교역은 여러 경제들을 엮어주는 것이다. 교역은 고리이며 경첩이다. 구매인과 판매인 사이에는 가격이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이다. 그러나 아무리 활동적인 경제라 해도 상당히 넒은 지역이 시장의 움직임과 거의 무관한 채로 남아 있었다... 자체조절적이고 경제 전체를 지배하며 합리화시키는 시장, 이것이 경제 성장의 역사의 핵심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15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에서 보여주는 교환의 세계에서 우리는 15~18세기의 생산의 한계와 함께 교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이 시기에 부족한 생산 능력은 더 많은 부(富)를 추구하려는 인간의 욕망을 따를 수 없었다. 생산 대신 교환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욕망은 금융제도를 발달시켰고, 교역을 활성화시켰으며 이로부터 활성화된 운동은 체제를 분열시키고, 분열된 체제는 세계로 확장된다. 아직까지도 자본주의는 나타나지 않았지만, 동유럽의 재판농노제와 아메리카 대륙의 플랜테이션은 농업부문에서의 노동집약적인 생산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직까지는 불안정한 고정자본이 과학기술로 인해 안정화되면 이제 노동집약적 산업은 자본집약적인 산업으로 대체될 것이다. 비록 브로델은 본문에서 언급하지 않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이데올로기 슬로건은 '인권', '해방'이 될 것이다. 이러한 '자유주의'사상도 아직 등장하지 않았지만, '자유주의'가 '자본주의'와 결합되리라는 점을 확인하며, 다음 권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나는 갤브레이스와 레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그들과의 차이가 있다면 내가 "경제(economie)" - 또는 시장경제 - 라고 부른 것과 "자본주의(capitalism)"라고 부른 것 사이의 영역차이가 새로운 모습이 아니라 중세 이래 유럽에서 언제나 지속되던 상수(常數)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산업화 이전 시기의 모델에 세번째의 영역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 그것은 비(非)경제라는 제일 아래층이다. 경제는 이곳을 부식토로 삼아 뿌리를 내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 전체를 장악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 최하층은 거대하다. 이 위에 시장경제의 영역이 수평적으로 여러 다양한 시장과 연결을 늘려간다. 이곳에는 어느 정도의 자동성(automatisme)이 있어서 수요와 공급과 가격을 연결해준다. 마지막으로 이 시장경제라는 층의 옆에, 차라리 그 위에, 반(反)시장(contre-marche)의 영역이 있다. 이곳은 가장 약삭빠르고 가장 강력한 자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바로 이곳이 자본주의의 영역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23


  자본주의를 위치시키는 영역은 두 개가 있다. 그 하나는 자본주의가 장악하여 편하게 거주하고 있는 곳이며, 또 하나는 자본주의가 옆길에서 새어들어올 뿐이고 지배적이지도 못한 곳이다. 19세기에 산업혁명이 일어난 후 자본주의가 산업 생산을 장악하여 거대한 이윤을 확보하기 전까지는, 자본주의는 유통의 영역에서만 제자리를 찾았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26


 원칙적으로 시장에 대한 엄격한 통제를 하는 것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이것은 다시 말하면 경쟁을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다. 결국 통제와 경쟁을 동시에 억압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영국의 사거래 시장(private market)과 같은 "자유(libre)" 시장일 것이다. _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 교환의 세계 1>, p320


아무리 초보적인 시장이라고 하더라도 그곳은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곳이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얻는 선택된 곳이다. 만일 이런 것들이 없다면 통상적인 의미의 경제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고 단지 자급자족, 혹은 비(非)경제 속에 "갇힌(embedded)" 생활만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시장은 해방이며, 개방이며, 또 다른 세계로의 접근이다. 그것은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다. 인간의 활동과 인간이 교환하는 잉여는 조금씩 조금씩 이 좁은 틈을 통과해간다. 그 구멍은 점차 커지고 또 많아지며, 그러다가 이 과정의 마지막에 가면 사회가 "시장이 일반화된 사회(societe a marche generalise)"로 된다. - P20

직접적인 것이든 간접적인 것이든 시장과, 다양한 형태의 교환은 끊임없이 경제를 뒤흔들어놓는다. 가장 정태적인 경제라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다. 시장은 경제를 교란시킨다고도 할 수 있고, 경제를 활성화시킨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모든 것이 시장을 거쳐가게 된다. 토지와 산업의 산물만이 아니라 토지 재산, 화폐 그리고 인간의 노력인 노동이 시장을 거쳐간다. - P55

서양의 발전의 핵심을 두 가지 들라면 첫째, 상부에서 여러 도구가 발달한 것이고 둘째, 18세기에 여러 수단과 방법이 증가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는 어땠을까? 유럽과 가장 거리가 먼 경우는 중국으로서 이곳에서는 제국의 행정이 경제의 계서화를 가로막았다. 단지 효율성 있게 돌아가는 것은 하층의 읍 및 도시의 상점과 시장뿐이었다. 유럽과 가장 유사한 경우는 이슬람 권과 일본이다. 물론 우리는 세계적인 차원의 비교사를 다시 시도해보아야 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주거나 아니면 적어도 정확하게 문제를 제기하도록 해줄 것이다. - P184

교역은 세계를 포괄한다. 교차로마다 그리고 연결점마다, 정주 상인이든 행상인이든, 언제나 상인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상인의 역할은 그가 어떤 위치에 서 있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19세기 이전의 대상인들이 대부분 여러 활동을 동시에 하는 것은 단지 신중함 때문이었을까? 혹은 그의 수중에 닿는 여러 흐름을 동시에 전부 이용해야만 했던 것일까? 어쨌든 하나의 영역만을 고집했다가는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다면성(polyvalence)"은 교역량이 충분치 못하다는 외부적 요인에 기인한 것이다... 상업망이라는 것은 상업순환의 여러 지점들에 분포되어 있는 대리인들(agents)이 연결되어 이루어져 있다. 상업은 이런 연락지점 들 사이의 협력과 연결을 통해서 살아간다. 반대로 이런 연락지점들은 이 일에 이해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들이 성공을 거두면 거의 저절로 증가한다 - P201

전(前)산업화 시대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자들은 한 가지 점에 대해서는 서로 일치를 보인다 : 공급(offer)은 아주 작은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공급은 탄력성이 모자라기 때문에 모든 수요에 대해서 빠르게 대응할 수 없었다. 이 시대 경제의 핵심은 농업활동이다. 일반적으로 농업생산은 [빠른 발전이 이루어지기 힘든] 타성(惰性)의 영역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명백한 진보가 이루어진 영역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공업이고 다른 하나는 상업이다 - P249

결론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이 고전적인 문제인 발틱 해 무역은 그 자체로서 완결된 유통체계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품과 현찰과 크레딧이 유통되는 다자간 무역체제였다. 그중 크레딧의 유통로는 끊임없이 확대되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라이프치히, 브레슬라우, 포즈나니뿐만 아니라 뉘른베르크, 프랑크푸르트 그리고 어쩌면 더 나아가서 이스탄불과 베네치아까지 여행해야 한다. 발틱 해 지역이라는 경제 전체는 흑해와 아드리아 해에까지 확대하여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여튼 발틱 해 지역의 교역과 동유럽 경제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다. - P301

(95퍼센트에 이르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민소득의 75퍼센트만을 가지고 살게 되므로, 이것을 정확히 계산해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인당 평균소득 수준 이하로 살았던 것이 된다. 특권층에 의한 착취는 이들을 명백한 궁핍 상태로 몰아갔다. 간단히 말해서 저축은 사회의 특권층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사회는 비록 일인당 국민소득 수준이 낮더라도 저축이 가능했고 실제로 저축이 이루어졌다. 사회적 굴레는 저축에 불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축을 장려한 것이다. 이 계산에서 두 개의 핵심적인 변수가 있다 : 인구 수와 그들의 생활수준이 그것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한 것은 1750년 이전에 유럽의 자본생산율은 아주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는 점이다. - P347

대부분의 전(前)산업은 수공업과 선대제라는 기초단위가 무수히 많은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분산된 조직들 위로 보다 자본주의에 가까운 매뉴팩처(manufacture)와 공장(fabrique)이 솟아올라 있다. 이 두 단어는 서로 혼용되고 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마르크스를 따라서, 매뉴팩처는 수작업을 하는 - 특히 직물업에서 - 수공업 방식의 노동력이 집중해 있는 곳을 지칭하고, 공장은 광산, 야금업, 조선소에서 이미 사용하고 있던 바와 같은 시설과 기계를 사용하는 곳을 지칭하는 것으로 구분했다. - P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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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5-05 02: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우리집에 장식용으로 꽂혀 있는 책. ㅠㅠ 겨울호랑이님 발췌문으로 대략의 내용만 짐작하네요. ㅎㅎ

겨울호랑이 2022-05-05 07:58   좋아요 1 | URL
^^:) 부족하나마 제 리뷰로 바람돌이님의 독서에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커피소년 2022-05-05 1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나는 님이 정말 부럽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5-05 13:26   좋아요 1 | URL
^^:)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사람 사는 것이 다 비슷하지 않겠습니까... 저마다 좋은 일과 나쁜 일들 갖고 있겠지요...
 

단어를 망각하는 이 두 가지 전형적인 사례 간의 불일치와 내적 친화성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망각의 두 번째 메커니즘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억압당하는 사람에게서 생겨나는 내적 모순에 의한 사고의 교란이다.

이름이 망각되는 메커니즘(혹은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이름이 기억에서 달아나 일시적으로 망각되는 메커니즘)은 그 시점에서 의식되지 않는 일련의 낯선 생각들에 의해 의도했던 이름의 재생이 방해를 받는 것이다. 방해받는 이름과 방해하는 콤플렉스 사이에는 처음부터 하나의 연관이 있거나, 아니면 피상적인(외적인) 연상들에 의해 인위적으로 보이는 그런 연관이 생겨나게 된다.

일반적으로 이름 망각은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대별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그 이름이 불쾌한 일과 연관되어 있을 때이고, 또 하나는 그 이름이 그런 결과를 초래한 또 다른 이름과 연관되어 있을 때이다. 따라서 이름의 재생이 방해받는 것은 이름 그 자체에 의한 것이거나, 그것과 밀접하든 소원하든 간에 어떤 식으로든 연관을 갖는 관계에 의한 것이다.

나의 유일한 관심사는 실수 행위에 의해 생겨나는 고유 명사의 망각과 덮개-기억 형성 사이의 유사성이다.
얼핏 보면 이 두 현상 사이에는 유사성보다 차이점들이 훨씬 뚜렷하다. 전자의 현상은 고유 명사와 관계를 갖는 반면, 후자의 현상은 현실이나 상상 속에서 체험된 인상 전체와 관계한다. 전자에서 우리는 기억 기능의 명백한 실패를 보게 되는 반면, 후자에서는 우리에게 낯설게 여겨지는 기억 작용을 보게 된다.

이상의 범주들에서 혼동, 왜곡, 융합 등이 한 단어의 발음과 관계하든 철자와 관계하든, 아니면 의도와 문장의 부분을 구성하는 단어 전체와 관계하든 그것은 중요한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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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이 내게는 마을 나머지 부분과는 전혀 다른 그 어떤 것으로 생각되었다. 성당은 말하자면 4차원 공간을 차지하는 건물로 4차원이란 바로 시간의 차원이다. 수세기에 걸쳐 이 기둥에서 저 기둥으로, 이 제단에서 저 제단으로, 단지 몇 미터의 거리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시대들을 통해 마침내 승리자가 된 내부를 펼쳐 보였다.

우리가 콩브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오랜 산책이라도 나갈 때면 좁았던 길이 갑자기 광대한 평원으로 탁 트이면서 여기저기 쪼개진 숲으로 막힌 지평선이 보였는데, 그 위로 생틸래르 종탑의 뾰족한 끝이 홀로 삐죽 나와 있었다. 종탑 끝이 얼마나 가늘고 얼마나 선명한 분홍빛이었는지, 오직 자연으로 이루어진 이 풍경, 이 화폭에 누군가가 예술의 작은 흔적, 단 하나의 인간적인 표시를 남겨 놓으려고 손톱으로 하늘에 줄을 그어 놓은 것 같았다.

그 무렵, 나는 연극과 사랑에 빠져 있었다. 일종의 정신적인 사랑으로, 부모님은 그때까지 내가 극장에 가는 걸 허락해 주지 않으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곳에서 맛본다고 생각하는 즐거움을 아주 부정확하게 상상했는데, 관객들이 각각 보는 장면이 나머지 다른 관객들이 보는 많은 장면과 같은데도, 마치 저마다 입체경을 들여다보듯 자기만을 위한 무대를 바라본다고 믿었다.

상징화된 사상이란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에, 이 상징이 단순한 상징으로서가 아닌 실제로 느끼거나 물질적으로 다루어진 하나의 현실로서 표현되어, 이것이 이 작품의 의미에 보다 정확하고 충실한 그 어떤 것을 부여하며, 작품의 교육적인 면에도 구체적이고 강렬한 그 무엇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밖에서 한 물체를 보아도, 그 물체를 보고 있는 의식이 나와 그 물체 사이에 놓이거나 그 물체를 가느다란 정신적인 가두리로 둘러싸고 있어, 나는 결코 직접적으로 그 질료에 가닿을 수 없었다. 그 질료는 말하자면 내가 물체와 접촉하기도 전에 증발해 버렸다.

우리가 실제 인물의 기쁨이나 불운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모두 이런 기쁨이나 이런 불운에 대한 이미지의 매개를 통해서만 생겨나는 것이다. 초기 소설가들의 독창성은, 우리의 감동을 자아내는 장치 중 이미지가 유일하게 본질적인 요소여서 단지 실제 인물을 제거하는 단순한 작업만으로도 결정적인 완성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는 데에 있다.

소설가의 독창적인 착상은 정신으로서는 뚫고 들어갈 수 없는 부분을 같은 양의 비물질적인 부분으로, 다시 말하면 우리 정신이 동화할 수 있는 부분으로 바꾸어 놓을 생각을 했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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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라는 게 사람의 의식을 크게 지배하죠. 공간에 대한 느낌을 주고, 도시 공간을 점령하기도 하니까요. 시각적 이미지가 주는 효과는 대단한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의 상황이 다른 산업화된 국가들과 같으면서도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확연히 다른 점 하나는, 불안정할뿐더러 엄청나게 사람들의 혼을 빼는 노동환경이에요. 한국과 경제 수준이 비슷한 사회 가운데 그만큼 노동 착취가 고강도·장시간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찾기 힘듭니다. 게다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가량이 비정규직이고, 정규직이라 하더라도 직장의 ‘갑질’에 노출되어 있어 혹사당하죠. 이런 상황이 피착취자를 굉장히 지치고 피곤하게 하며 불안·공포·만성피로·화병을 키웁니다. 그런데 다른 산업화된 국가와 달리 한국은 이 부분을 심리치료 같은 방식이 아니라 종교적 방식으로 대응하죠. 피곤한 노동자들이 교회나 사찰을 안식처로 삼아 잠깐이나마 현실을 도피하고 재충전하는 거예요.

굉장히 많은 집회에 참여하면서 ‘미팅’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 미팅은 대개 끼리끼리 이루어져요. 특정 지역에 속한 사람들, 자산 상태도 양호하고 교육 수준과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은 사람들은 교회에서도 그들끼리 사적 모임을 만들죠. 문화도 비슷하고 교류할 때 비용 분담도 용이하고, 이질적인 사람 때문에 신경 쓸 일도 없고요. 이렇게 계층화 현상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 교회가 되어버렸고, 이것이 한국 개신교의 중요한 특징인 듯합니다.

대한민국에도 종교 간 갈등이 있기는 합니다. 속 깊이 들여다보면 불교와 개신교의 사이가 좋지 않은데, 다만 봉합은 되죠. 봉합되는 이유 중 하나는 국가입니다. 막강하고 전지전능한 국가를 불교든 개신교든 전폭적으로 수용하고 있죠. 또 불교든 개신교든 기업 모델을 취하고 있어서 서로 배웁니다. 예를 들어 봉은사에서 대형교회에 사절단을 보내 경영 모델을 시찰하기도 했어요. 큰 사찰이 큰 교회를 벤치마킹하기도 하고 교회도 사찰의 움직임을 눈여겨보죠. 경쟁을 하기는 하지만 본격적인 갈등이 없는 이유는 한마디로 사업 모델이 종교 간에 서로 그다지 다르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가 1901년에 쓴 글에 조선 대중은 서양처럼 경계가 명료한 종교에 배타적으로 귀속하는 것이 아니라 유교·불교·샤머니즘 등 여러 종교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점이 드러납니다.18 이후 많은 선교사들이 존스의 탁견에 공감했지요. 그리고 미국 북감리회에서 파송된 또다른 선교사인 헐버트(Homer B. Hulbert)는 조선인들의 심성에 종교성이 혼합되어 있을 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적대적 감정도 없다는 점을 지적했어요.

사실 근대 종교학적 해석은 종교개혁의 산물이에요. 종교개혁 직후 프로테스탄트와 가톨릭은 일종의 땅뺏기 싸움을 벌였어요. 어느 땅의 영주가 프로테스탄트든 가톨릭이든 하나를 선택하면 그 땅의 모든 사람은 영주의 선택에 귀속되어야 했죠. 이런 조치는 루터교와 가톨릭 간에 맺어진 아우크스부르크협약에 의해 이루어졌어요. 이후 여러 프로테스탄트 종파들이 각각 정치세력을 등에 업고 비슷한 협약을 맺었죠. 그 과정에서 서양근대의 ‘네이션스테이트’(nation state, 민족국가)가 형성되었지요. 즉 종교개혁 이후 종교들 간의 경계가 만들어지는 과정과 국경이 형성되는 과정이 결합되면서 근대의 정치적·종교적 질서가 구축된 것입니다.

근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이분법적입니다. 현실은 악이고, 근본적 진리가 관철되었던 그 세계는 절대선이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근본주의는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상상을 통해 현실을 견디게 하는 종교적 담론체계라고 할 수 있어요.

한국에 나타난 근본주의는 이와 조금 다릅니다. 한국은 세속적 성공을 향해 달리게 하는 신앙이 근본주의적 진리와 교묘하게 부합해요. 가령 ‘부자가 되고, 건강해지며, 영적으로 구원받는 것이 하나다’라고 하는 조용기의 3박자 구원론은 지극히 세속적이죠. 현실을 도피하게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을 자기 식으로 재해석하고 그것이 근본 진리와 부합한다고 믿는 거예요. 변형된 근본주의라 할 수 있는데, 변형되었다는 것은 연속성과 차이가 함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한편으로 조용기주의는 번영신학과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번영신학은 성공한 미국 중상위층의 욕망을 신앙화한 데 반해, 조용기주의는 밑바닥 대중을 욕망하는 주체로 해석했어요. 다만 조용기는 교회를 개척한 서대문구(오늘날 은평구) 대조동 달동네에서 서대문로터리로, 그리고 여의도로 교회당을 옮겨갔고, 그 과정에서 점점 욕망의 주체가 계층적으로 상승해갔죠. 그런 점에서 조용기주의는 점점 번영신학과 비슷해지고요.

개신교는 남한사회의 국시(國是)에 가까운 도덕주의적 이념을 제시하여 강조하고, 반공투쟁 상황에서는 반공의 기치를 독촉할 수 있는 일종의 신흥 ‘근대판 성리학’이 잠시 되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민주화 이후에는 여러모로 바뀌었고요.

산업화시대의 한국 개신교는 반공적이고 맹신적인 친미주의를 드러냈습니다. ‘종미(從美)’라고 부르는 편이 어울릴 정도로요. 하지만 그때까지 개신교는 한국 시민사회에서 그다지 문제시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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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ta4 2022-05-04 03: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밤에, 어제 어느 유튜브에 현근택 변호사가 나왔는데, 제주 주민들은 지금도 교회(개신교)에 대해 배타적이라고 하더군요. 좀 아팠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5-04 06:0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개인적으로 4.3 당시 서북청년단이 영락교회 출신 중심이었다는 점과 함께 조금 더 올라간 시기를 다룬 <이재수의 난>을 보면서 천주교를 포함한 기독교에 대해 제주도민들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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