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이란 우리 믿음이 존재하는 세계로는 들어오지 못하며, 사실은 믿음을 낳게 한 적이 없지만 파괴하지도 않는다. 사실은 믿음을 끊임없이 거부할 수는 있어도, 믿음을 약화하지는 못한다.

한 여인이 나타났으면 하는 욕망이 자연의 매력에 뭔가 더 열광적인 것을 덧붙여 주었다면, 반대로 자연의 매력은 여인의 매력이라는 지나치게 한정된 매력을 더 풍부하게 해 주었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곧 여인의 아름다움이었고, 그녀의 입맞춤이 지평선의 영혼과 루생빌 마을의 영혼, 내가 그해 읽은 책들의 영혼을 내게 넘겨줄 것만 같았다. 내 상상력은 관능적인 것과 접촉하면서 힘을 얻었고, 관능적인 것은 내 상상력의 모든 영역으로 확산되어 내 욕망은 이제 끝이 없었다

완전한 악인의 악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천적이어서 그 자신과 잘 구별되지 않는다. 그리고 미덕이나 고인에 대한 기억, 자식으로서의 부모에 대한 사랑을 찬미하지 않는 이상 그것들을 모독하는 데서 오는 불경한 기쁨도 느끼지 못하는 법이다

그들이 잠시 관능적인 쾌락에 탐닉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것도 사실은 잠시나마 그들의 소심하고도 다정한 영혼으로부터 탈출했다는 환상에 빠지려고, 악인의 껍질을 쓰고 공범자와 함께 쾌락의 비인간적인 세계로 들어가려고 한 것이다.

그 정신은 악덕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악덕이란 것이 그녀가 평소에 지켜야 하는 수많은 의무적인 예의범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하는 그런 정신이었다. 쾌락이라는 관념을 부여하고 쾌락을 매혹적으로 보이게 한 것은 악이 아니었다. 오히려 쾌락은 그녀에게 해로운 듯했다.

마치 어떤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두 원반처럼, 그 관념과 이미지를 일치하는 데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자주 꿈꾸어 왔던 게르망트 부인이 내 외부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내가 보고 있는 지금, 내 상상력에는 더 큰 힘이 가해졌고, 이 상상력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과 접촉하는 순간 잠시 마비되었다가 곧 반응하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했다면 두 종탑은 영원히 나무들이나 지붕, 향기, 소리에 합류해 버렸을 것이다. 그것들이 내게 주는 모호한 기쁨 덕분에 다른 것들과 구별되어 왔는데, 나는 그 기쁨 자체에 대해서는 한 번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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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엔도 슈사쿠 지음, 김승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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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나의 신앙 입문
엔도 슈사쿠 지음, 맹영선 옮김 / 성바오로출판사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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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법- 행복한 삶을 위해 나와 친해지기
엔도 슈사쿠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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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독약
엔도 슈사쿠 지음, 박유미 옮김 / 창비 / 201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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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 부근에서 다시 읽고 싶은 명작 6
엔도 슈사쿠 지음, 이석봉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11년 4월
평점 :
품절


 기적을 일으키지 못한 예수는 초가을에 갈릴래아 호숫가 마을에서 쫓겨났다. 차가운 안개비가 내리는 날, 예수와 제자들은 5개월 전 그토록 환영했던 자들이 욕설과 돌팔매질을 해대는 수모를 받으며 그곳을 떠났다(p56)... 이듬해 5월, 안드레아는 아무 쓸모 없던 그 사나이가 제자들한테서도 버림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57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의 <사해 부근에서>안의 예수는 무능력하다. 기적을 행하지 못하는 예수.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했지만, 고향 뿐 아니라 자신이 가는 곳마다 쫓겨나는 인간 예수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기만 하다. 슈사쿠의 예수는 기적을 행하며 그들을 비참한 현실에서 한 번에 끌어올려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직접 비참한 현실로 내려가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존재다.


 "왜 대답을 못하나? 성전과 야훼께 바치는 희생제사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가?" "슬퍼하고 고통받는 이를 위해 울어주는 것, 죽어가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위로하는 것, 자신의 비참함을 받아들이는 것, 그런 것들이 다윗 성전이나 과월절의 제사보다 더 소중하오. 성전에서 제사를 바치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소." 예수는 피로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들었소? 이자는 성전과 제사를 모욕했소. 의회도 그것을 알게 될 것이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99


 "하느님에게 성전이 무엇이란 말인가? 당신들이 경멸하는 창녀들이 하룻밤 자신의 비참함을 울며 지새웠다면 하느님은 이 성전보다 그 한 방울의 눈물을 택하실 것이다. 하느님은 성전을 바라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인간을 바라신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109


 빛나는 승리나 예언의 성취가 아닌 사랑과 인간을 말하는 순진한 목수 예수. 그가 행한 기적이라 기록된 것들은 성경학자들에 의해 많은 부분이 각색된 신화(神話)였음이 작품 속 학자 도다(戶田)에 의해 말하여지고, 이러한 사실은 열심한 신자 도다를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이곳에 성경학을 공부하러 온 한 사나이가 있었네. 그는 예수의 생애도 모습도 성경에 쓰인 그대로라고 믿고 있었지, 그런데 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성경에 묘사된 예수의 생애도 말씀도 사실이기보다 원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신격화하여 지어낸 사실이란 걸 알게 되었다네. 그는 후세의 신앙이 만들어 낸 성경의 예수상像을 정중하게 옆으로 밀어놓았네"(p71)...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우리는 인생의 마무리를 서서히 시작할 나이에 이르렀지만 도다도 나도 손에 거머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73


 현재의 도다뿐 아니라 역사 속의 유대 민중과 혁명당 그리고 사두가이, 바리사이 등 정치 세력 모두에게 예수는 메시아가 아닌 무기력한 희생양뿐이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예수의 모습은 마치 우리 나라 민화  '아기장수' 처럼 후대의 창작에 불과하다는 <사해 부근에서>. 작품에서는 예수의 모습이 제자 알패오, 대사제 안나스, 총독 빌라도, 쑥 파는 사나이, 백인대장의 시선에서 저마다의 시선으로 비춰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가 아는 '그리스도 왕'의 모습은 없다. 다만, <성경> 속의 말씀이 슈사쿠의 예수를 뒷받침할 뿐이다.


 불행은 해마다, 때로는 계절마다 형태를 바꾸어 찾아왔다. 그들은 이렇게 찾아오는 불행에 항거하기보다 지나가 버릴 때까지 수굿이 기다리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호수에서 잡히는 물고기와 양 몇 마리밖에는 생활 방도가 없는 그들은 비참과 가난이 없는 인생이란 생각할 수도 없었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38


 갈릴래아의 무지한 민중 사이에는 그가 메시아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이 소문의 근원지는 혁명당이었다. 늘 기회를 노리던 그들은 그 소문의 목수를 앞잡이로 내세워 또 한 차례 반란을 일으키려는 속셈이었다. 무지한 이들은 그가 나병을 고쳐주고, 죽은 이를 살리는 기적을 행했다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지만 알고 보면 목수는 기적을 행한 적이 없었다(p161)... 순박한 민중이 이런 희생자에게 얼마나 잔인해지는가를 나는 오랫동안 보아왔다. 카야파는 오직 민중의 잔인한 마음을 부추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바라빠는 깨끗이 잊고 그들에게 맡겨진 새 장난감에 열중하게 될 것이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162


 <사해 부근에서> 화자인 '나'는 과거와 현재의 교차 속에서 예수의 의미를 찾는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 he Wonderful Wizard of Oz >에서 도로시가 찾던 대마법사 오즈의 실체가 실은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처럼, 역사 속에 남겨진 예수의 족적은 너무도 희미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마저도 서로 다른 전승에 의해 찾아보기 힘들게 된 상황에서 화자는 예수의 실체를 찾아 힘든 걸음을 내딛는다.


 '그들은 징조와 기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우울한 취기를 느끼면서 확실하지 않은 기억으로 예수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 나한테는 징조와 기적을 보지 않고 믿는 마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나는 징조와 기적이 필요한 속물이며 나약한 인간이다.... "나는 기적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갈릴래아 사람들이 예수에게 기대했던 것이 기적뿐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곤 한다네. 갈릴래아 사람들은 예수한테서 사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현실적인 기적을 더 바라고 있었던 거지. 절름발이를 고쳐 달라, 열병에 걸린 아이를 살려 달라, 눈먼 사람을 보게 해 달라.... 그 밖의 것은 예수에게 요구하지 않았다는 말이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246


 기적을 요구하는 세대에게 보여줄 기적은 없다며 침묵하는 예수. <사해 부근에서>는 <마태오 복음><마르코 복음>과 <루카 복음>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미묘하게 대조시킨다. 그리고, 발견하는 부활의 의미. 엔도 슈사쿠가 찾아낸 예수의 의미, 사랑의 의미를 우리는 <사해 부근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그의 다른 작품 <침묵>을 다시 들여다 본다면 로드리고 신부의 물음에 대한 침묵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지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침묵> <사해 부근에서>의 페이퍼로 넘기자...


 그는 계속 침묵하고 있었다. 완강한 그 침묵은 나(대사제 안나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그 침묵은 처음부터 나의 호기심과 수다스러운 말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p174)...  "그대는... 마지막에 저 비탄의 시편 구절을 외치게 될 거네.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말이네." "아닙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느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겨드립니다.' 라고. 이 모든 걸 곧 알게 될 것입니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175


 '당신은 무력했고 그 무력함 때문에 나자렛에서 쫓겨났으며, 갈릴래아 여러 마을에서도 박대를 받으셨습니다. 당신은 무력했기에 예루살렘 사람들한테서 매도당하고 잡히셨으며, 무력한 당신 몸에서 짜낸 고통의 기쁨으로 많은 사람의 슬픔을 씻으려 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 직전에 오른쪽 죄수에게 언제나 그대 옆에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당신 부활의 의미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표시일지도 모릅니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384

그는 갈릴래아를 찾아온 예언자들처럼 큰 소리로 외치거나 요란한 행동을 하지 않았따. 그는 아네모네로 뒤덮인 호숫가나 양이 풀을 뜯는 구릉의 흰 바위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했는데, 아이들이 뒤에서 매달려도 꾸짖는 일이 없었다... 예수는 하느님도 쓸쓸하시다고 했다. 하느님은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구하듯 인간의 사랑을 바라신다고 했다. 하느님은 예언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험준한 산속이나 황야에 숨어 계신 것이 아니라 불행한 자가 흘리는 눈물과 버림받은 여인의 고통 중에 함께 계시다고 했다. - P45

몸이 회복되자 그는 그분을 따르는 남녀 무리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알패오도 시몬처럼 그분의 슬픈 눈빛을 알게 되었다. 그분이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병자가 알패오처럼 치유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잃은 아이와, 남편과 사별한 부인이 왜 고쳐주지 못하느냐고 불평을 쏟자 그분의 눈에 괴로운 빛이 어렸다. 그날 밤 제자들이 깊이 잠들었을 때 예수는 구릉에서 돌아왔다. - P95

허리에 가죽띠를 졸라매고 메뚜기와 들꿀만을 먹었다는 예언자들, 나는 이 황야에서 사람을 불러 모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그들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라고 성경에 쓰인 대로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을 믿기 위해 이 황량한 풍경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신의 분노를 느끼기 위해서는 하늘을 쳐다보고 하얗게 부서지는 태양을 보는 것으로 족했을 테니까(p141)... "신의 분노와 경외심만으로 살았던 무리 가운데 예수는 무엇을 희구했을까?" 무심코 중얼거리자 도다는 다시 야유하는 것처럼 대답했다. "자네가 방금 말한 대로 인간에 대한 정다움이겠지. 그는 황야에서 자라난 신앙과 율법이 만들어 낸 신의 이미지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일세. 그는 신이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분노하고 벌하는 신밖에는 알 수 없었지." "그가 요한의 무리를 떠난 것도 그 때문인가?" - P142

완전히 납빛으로 변한 황야를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성경에서 본 예수와 악마의 대화는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야기 속에서 악마는 예수에게 힘을 드러내 보이라고 몰아세웠다. 돌을 빵으로 바꾸는 힘을 보여라, 높은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힘을 보여라 하고. 예수는 완강하게 고개를 내저였을 뿐인다. 그 이야기는 도다의 말마따라 황야의 무리가 예수를 무능력자로 낙인찍은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 P144

백인대장이 지금까지 보아온 병사들의 죽음은 훨씬 빠른 속도로 난폭한 모양을 하고 닥쳐왔다. 형장에 끌려온 죄수들도 십자가 위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몸을 뒤틀고 비명과 저주의 말을 외쳐대면서 죽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죽음의 얼굴은 아니었다. 공포에 질린 인간이 그것을 속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백인대장은 알지 못했다. 진정한 죽음은 지금 이 사나이가 받아들이는 것처럼 완만하게, 길고 고통스럽게 오는 것이었다. ‘이런 죽음은 싫다.‘ 이미 여러 번 전쟁터에 나갔던 그였지만 그때 경험한 죽음의 공포보다 훨씬 다른 두려움과 불안이 그를 엄습해 왔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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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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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흥집회의 초점은 병 치료에 있었어요. 사람들은 자기를 괴롭히는 질병에서 벗어나고 싶은 필요가 충천해 있는데, 그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정상적인 시스템은 부재하니 대중신비가들이 그 자리를 채운 거죠. 대개 개신교 계통의 대중신비가들이 집회에서 성공했던 것 같아요.

부흥집회의 성격이 대단히 혼합주의적이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서북지역에서 시작했던 근본주의 신앙은 토착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는데, 1950년대 중반 무렵부터 맹위를 떨친 대중신비주의 신앙은 근본주의적 신앙 요소를 지닌 동시에 혼합주의적인 성향도 내포하고 있었어요.

교회를 만들지 않고 전국을 순회하며 부흥회를 이끌었던 나운몽과는 달리 조용기는 자기 부흥운동의 센터를 구축했고, 그곳을 거점 삼아 팽창을 거듭함으로써 권력화된 종교성을 발전시켰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결합한 혼합주의적 신앙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운몽의 계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영혼의 구원에, 몸의 구원(건강)과 물질의 구원(풍요)을 결합한 ‘1+2’의 복음. 그것이 조용기의 저 유명한 ‘3박자 구원론’이에요.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동시에 결합한 기복적 신앙 양식이죠. 그리고 이런 현상은 1970~80년대 한국 개신교 신앙의 한 전형으로 발전했어요.

서북주의자들이 ‘파괴적 증오의 정치’를 통해 부상했다면, 조용기로 표상되는 부흥사들은 ‘생산적 증오의 전략’을 구사했다고 할 수 있어요. 적에 대한 증오를 성공에 대한 욕구의 자양분으로 전환한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생산적 증오의 전략에서 유용한 도구가 혼합주의였어요. 사람들이 가진 모든 종교심을 활용하고 그것을 기독교적 종교성으로 덮어버리는 거죠.

실패한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성패와도 관련된 거예요. 이 사람들도 똑같이 한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이거든요. 1920년대 말에 나치즘과 파시즘이 등장한 게 이 사람들의 선택이었던 거죠.

박정희정권의 새마을운동이란 일종의 간증의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정을 홍보하거나 국가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일을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이 했는데, 카리스마적 1인 통치자를 중심으로 농촌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이었죠.

최태민은 기독교를 가지고 설명하기보다는 권력을 가지고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태민은 1970년대 초부터 유사 종교인 영세교를 이끌다가, 그 유사 종교로는 박근혜를 세우고 자원을 동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싶어서 1975년 목사로 옷을 갈아입어요. 그러면서 십자군 논리를 차용하죠. 최태민은 구국십자군을 만들었을 때 자기 스스로 총장을 맡았고, 단장을 강신명(姜信明) 목사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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