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만을 듣는 새벽에 - 김갑수의 음악과 사랑 이야기
김갑수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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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세상은 우연의 연속인가.

그의 수필집을 읽다가, 다음 날 아침 출근하는데, 갑자기 라디오에서 텔레만의 트럼펫 협주곡을 들려주었다. 지금까지 존재하던 세계를 내가 인식하고 있지 못했는데, 어느 날 보니 그 자리에 그렇게도 견고하게 서 있던 존재. 이런 걸 느낄 때, 세상의 넓음과 독서의 이유를 생각한다.

텔레만을 읽고, 다음 날 바로 들려주신 하느님께 감사할 일이다. 세상은 늘 그자리에 서 있건만, 우리 눈에 보이는 건 얼마나 작으냐. 내 눈은 얼마나 좁으며, 내 귀는 얼마나 얕으냐. 세상의 이 넓은 음역을 듣지 못하는 나의 무능한 귀로도 세상을 만날 수 있게 책을 벗삼아 주신 님께 감사할 일이다.

김갑수의 음악 이야기를 만나고 싶었는데, 그의 앰프와 스피커에 대한 집착 이야기를 만나면 좀 시들해서 훌훌 넘기고, 그의 짠한 연애담이 나오면, 괜히 같이 짠해지고 했다. 역시 그의 삶보다 그의 음악 이야기가 맛이 난다.

삶에 좌절해보지 않은 자가 누가 있으랴. 저 이보다 못한 나를 늘 불평하고 나보다 못난 사람들에게 오는 행운에 늘 샘내는 어리석은 인간에게, 빌게이츠는 가르쳐준다. 세상은 공평한 것이 아니다. 세상은 늘 불공평하다고...

김갑수가 소리를 사랑할 수 있는 걸 부러워했다. 그렇게 깊은 사랑이 있으니 어떤 시련인들 그를 좌절시키랴. 내겐 뭐가 있나. 나는 정말 무얼 사랑하나. 난 책을 사랑한다. 음악도 좀 좋아한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좀 좋아하고, 혼자 있는 시간도 즐길 줄 안다. 영화를 보면 즐겁고, 시디를 사는 것도 재미있다. 자고나면 초라해지고, 자고나면 잊혀져 버릴 존재일지라도, 늘 재미있다고 생각하며 살 일이다. 텔레만을 듣는 새벽에 난 깨어있지 못할지라도, 그에게 한 수 배웠다.

삶은 살만하지 않은 거라도, 재미를 느끼며 살 수 있는 거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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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의 문학과 사상
김지용 지음 / 한양대학교출판부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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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르네상스가 있었다면, 언제일까.

고전이 있어야 르네상스가 있을 것인데, 유학을 살리려는 것이라기 보다는, 박지원의 문학은 유학을 죽이자는 것이었다. 조선 초기부터 중기까지 풍미했던 주기론과 주리론, 이기일원론, 이원론이 가진 관념철학의 시대는 전쟁 앞에서 무력했다.

조선이 후기를 갖게 된 것은 어쩌면 비극적인 미학이라 하겠다. 우리 역사책의 조선 후기는 한국적 상황의 르네상스를 떠올리게 한다. 그 정점에 선 인물로 나는 박지원과 정약용을 꼽는다.

학삐리 사회에서 물론 정약용이 더욱 높은 위치에 있겠지만, 박지원의 글들이 보여주는 입담과 시야는 오늘날, 스스로 좌파이기를 고집하는 진중권의 오딧세이아와 유사한 면모를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박지원의 출중함은, 그 시대엔 그런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진중권은 충분히 기득권을 가진 세력에 맞부딪을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다. 그러나 박지원은 결코 녹록치 않은 시대에 살아왔다.

그의 글들을 읽으면, 그 시대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품고 스트레스성 심계항진과 고혈압으로 인한 뇌경색으로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는지 의아할 따름이다.

나는 박지원을 읽을 때마다 그의 폭포같은 정신에 오싹할 따름이다. 깨어있으라!는 일갈을 듣는듣해서.

나태한 나 자신을 깨우치는 연암 선생의 글은, 우리가 그렇게도 국어 교과서에서 많이 읽었던 '민족 문화의 전통과 계승'에 나왔던 중국에 예속되지 않았던 글이고, 전연 새로운 글이다.

나는 앞으로 살아가는 날동안, 모르긴 몰라도 일 년에 한 권씩 연암을 읽을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 길이 될 것 같은 예감으로...

이 책에 별 하나를 준 것은, 연암의 글에 대한 모음 이상 작가의 해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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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마와 아니무스 분석심리학의 탐구 2
이부영 지음 / 한길사 / 200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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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특히 여학생들은 심리학에 대해서 상당한 관심을 갖는다. 나도 인간의 심리와 무의식에 대해서 많이 알려고 노력한 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심리에 대해서 안다고 자부할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리학은 인간의 심리를 알아 맞추는 술법이 아니라, 과학적인 경향성을 파악하는 거란 걸 말이다.

개인적으로 프로이트보다 융을 좋아한다. 프로이트는 너무 남성적이기 때문이다. 내 속의 아니마가 프로이트를 거부하는 거란다. 내 속의 무의식, 아니마는 융처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걸 좋아하지, 프로이트처럼 상징적이고 주술적인 결론은 수용하기 힘들어한다.

한때 우리 나라에도 젊은 지성은 불가시리같은 권력에 맞부딪혀 부서지는 것이 미덕이던 때가 있었다. 난 그 시절에 대학을 다닌 것을 아직도 불행이라 생각한다. 난 대학 시절 오직 하나의 생각밖에 없었다. 빨리 졸업해버리고 말았으면 좋겠다는. 그 당시의 저항 논리를 부정했던 것이 아니라, 난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던 인간인 것이다. 박봉성 만화에 나오는 강타같은 야인보다는, 맹수의 눈빛을 번득이며 자신의 적의 급소를 노리는 들짐승보다는, 따스한 햇살과 점진적인 합리의 성숙을 갈망하는 아니마가 내 속에 잠자고 있음을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난 사극을 싫어한다. 사극의 주인공들은 풍운의 시대를 억세게 이겨낸 인물들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눈물 찔찔 짜는 멜로물은 가끔 어깨 너머라도 보는 편이다.

자신(셀프)을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안다. 그러나 내 청년 시절, 스스로 머저리가 아닐까? 괴로워했던 한 시대를 떠올리면, 광적인 세계가 만드는 광적인 인간상의 시대를 벗어난 지금은 어느 정도 자신에 대해 더듬어 보는 것이 정신 건강상 좋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그다지 잘 쓴 책은 아니다.
일반인이 읽기에는 문체가 딱딱하고, 그리고 개념 정리가 요목화되지 않고 잡다하게 분산적이다. 전문적 서적 치고는 논리적이지 못한 글이다. 어떤 교수의 강의 중에 융을 들으면서, 프로이트에 대한 저항의식을 극복해보고자 이 책을 샀건만, 읽는 동안 좀 괴로웠다고 할 수 있다. 내 수준에 안 맞아서.

그렇지만, 나의 내면을 좀 다른 각도에서, 다른 용어로 보게 되었다는 건, 상당한 수확이었다. 결국 살아가면서, 스트레스적인 상황에 직면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상황을 어떻게하면 현명하고 지혜롭게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누구나의 관심사일 것이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스트레스의 상황을 강박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넘어갈 수 있는 받침에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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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 뭔가 다른 선생님들의 가슴 찡한 실화들
에스더 라이트 엮음, 유시주 옮김 / 푸른나무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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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절반쯤 읽으면서 이상하단 생각이 자꾸 들었다. 어디선가 본듯한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서... 데자부(기시현상)인가 하다가, 어느 순간 번개가 지나갔다. 찌-리릿-- 출판년도를 보니 2000년. 3년 전에 내가 읽어 보고 너무 좋아서 혼자만 갖고 있기 아쉬워 아들 녀석 담임선생님께 선물한 적 있던 바로 그 책이었다. 3년 전에 그리도 감명 깊게 읽었다던 그 책을 다시 밑줄 치며 읽는 맛도 깊었다. 정말 교사가 아니라면 공감하기 어려운 말들이 가슴에 새겨진다. 서늘한 샘터에 고인 샘물을 연상시키는 예쁜 이야기들.

십여년도 더 전에 읽은 중국 소설, '텐진의 아이들'에서 기억에 남는 '사랑과 인내'의 교육은 여기서도 강조된다. '교사가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면 하느님이 여러분을 신뢰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바란다'는 저자의 무리한 부탁도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서늘한 이야기 모음.

'독서 노트'

교직은 단순히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존재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교사가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신뢰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길 바란다. 교사라는 직업이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의 연속

한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수업계획서나 커리큘럼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 가르침은 인내, 열정, 그리고 사랑을 필요로 한다.

어떤 운동이나 과제를 배우고 해결하기 위해 애쓰다 보면, 그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순간이 온다. 교육이란 그러한 순간들을 하나로 엮는 것, 그 모든 순간들을 한데 엮어 한 걸음 또 나아가는 것이다.

아이들은 애정과 열의 , 인내에 목말라 하고 있었다. 너희들은 똑똑하고 훌륭한 아이들이며 너희들을 맡게 되어서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우리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가르침은 때로는 전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또 엉뚱한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교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처리할 때 나 스스로의 행동과 잘못을 돌이켜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교실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교사들은 종종 학생들의 의무와 책임만을 따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경험은 모든 아이들은 배울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실제로 배운다는 나의 교육철학을 더욱 확고하게 해 주었다. 고맙게도 그 경험에 힘입어 나는 한 아이를 도울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는 자세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배움이라는 기계 장치를 가동시킬 수 있는 단추는 언제나 거기 있다. 우리들 교사들은 그것을 찾아 내서 부드럽게 눌러 주기만 하면 된다.

전혀 다른 인식 방법 - 사물을 바라보는 전혀 새로운 방법- 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우리는 모름지기 그 모든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교사라면, 언제든지 배울 자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 교사들은 과연 어린이들에게 감화를 주고 있는가. 그렇다 우리는 그렇게 하고 있다. 우리가 가르치는 과목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아서가 아니다. 아이들을 보살핌으로써, 우리가 얼마나 어린이들의 성공과 미래를 위해 마음을 쏟고 있는지를 아이들에게 보여 줌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낙담하고 절망한 상태에 놓여 있는 아이들이 아직도 많다. 그런 아이들에게는 훌륭한 삶이란 자신이 처한 개인적 현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딴 세상일 뿐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가르치는 일은 겸허한 것이며, 도전을 무릅쓰는 정신, 책임감 그리고 고유한 특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가르친다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좋은 방법이다. 과정 자체를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자기 자신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왕궁을 지키는 문지기가 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비웃음 받는 자리에 앉아 있는 것보다 문지기가 되는 편이 훨씬 낫다고 단언할 수 있다.

가장 최근까지 하느님과 함께 살았던 사람들 속에 있다는 것은 특권이요 영예이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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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3 11: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메모의 기술 - 머리보다 손이 먼저 움직이는 (양장본)
사카토 켄지 지음, 고은진 옮김 / 해바라기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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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교과서에 '메모광'이란 수필이 실린 적이 있었다. 그 단원의 제목은 '수필의 개성'이었다. 지은이 이하윤씨는 메모지를 사랑하는 옛날 사람이다. 종이와 필기구가 발달한 현대에 살았다면 훨씬 덜 고통스러웠으리라. 요즘은 포스트 잇과 전자 메모지, 휴대폰 메모도 사용 가능하니 말이다. 그의 메모는 괴벽이라 볼 수도 있지만, 일상 생활에서 해야 할 일을 포스트 잇에 적어 컴퓨터 모니터 같은 데 잔뜩 적어 두고 순위를 정해 빨리 할 일과 느긋하게 할 일을 즐길 줄 아는 것도 현대인의 삶의 지혜가 되리라.

그의 잡문 중에서 동의하는 바가 있었다. 현대인은 '정보과부하증'에 시달리므로 '두뇌의 활성화'를 위해 기록하자는 거다. 기록하고 잊어라. '잊기 위한 메모'라는 역발상이 신선하다. 그러나, 나는 메모하지 않는 날을 꿈꾼다. 아무리 아날로직한 메모라 하더라도 뭔가 할 일이 잔뜩 쌓여서는 창의적인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잡무와 피곤에 찌들린 일상에서는 일의 선후를 가려야 하고, 어정쩡한 상태에 머문 일들이 내 뇌리에 떠다니고 있기 때문에 내 뇌는 메모에 의존해야 하지만, 내 뇌수가 가장 창의적인 상태일 때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맘껏 읽으며 아이들과 나눌 이야기를 상상할 자유인이 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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