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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존 그레이 지음, 김경숙 옮김 / 동녘라이프(친구미디어) / 2002년 12월
평점 :
절판
난 이 책을 읽고싶지 않았다.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의 차이점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 뻔하기 때문이고, 가장 큰 이유는 너무 울궈먹기 판이 많이 나왔다는 이유에서이다.
어제도 이 책을 읽으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 아들이 서점에서 책을 다 읽기를 기다리며, 그림책을 하나 주워 들고 한참을 읽었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움직이기도 싫은데 읽을 것이 없었다. 목전의 서가에 유태인의 교육철학 등등이 있었는데 이 책이 꽂혀있기에 별 생각 없이 뽑아 들었다가 내친김에 끝까지 읽고 말았다. 다 읽고 난 소감은... 음... 역시다. 이 글의 작가는 남자다. 그것도 애정결핍을 많이 겪어본 남자다. 그렇지 않고서는 화성에서 온 남자는 이성적이고, 금성에서 온 여자는 감성적이라는 편파적인 주장을 이토록 이분적으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공감가는 부분도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남자들이 문제를 안고 동굴로 들어가려 하고, 혼자서 끌어안고 술을 마시고 다닐 때, 여자들은 전화통을 붙들고 수다를 떤다. 이런 현상적인 면은 그가 날카로운 시각을 갖고 있다는 면을 보여주긴 한다.
정작 나의 불만은, 그가 남자들을 화성에서 온 냉철한 이성적 존재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미의 여신 비너스처럼 따스하고 감성적인 존재라는 것이고. 남성과 여성이 다른 면이 있기도 하지만, 아니마와 아니무스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남성도 여성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고, 여성도 남성적인 이성을 가질 수 있다. 너무 차이점만을 부각시키는 것은 영업사원이 익혀야 할 미덕이기는 하지만, 인간을 이해하는 데는 버려야 할 덕목이라 생각한다.
여성은 관심을 끌려하고, 이해받기 원하며, 존중받고 싶어하고, 헌신하고 싶어하며, 공감받기 원하고, 재확인하고 싶어한다. 이에 반해 남성은 신뢰를 중시하며, 인정받고 싶어하고, 감사받기 원하며, 찬미되길 추구하고, 찬성에 기뻐하고 격려에 힘이 생긴단다. 그럼, 남성은 관심이 없어도 무관하고, 이해받지 않아도 되나? 존중받을 필요 없고, 헌신하는 남자 없다? 공감은 필요없고, 재확인하는 건 여자같이 쫀쫀한 짓이다? 그 반대도 난 불만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딴지를 거는 것은, 그를 오해해서가 아니라, 그의 이분적인 사고 방식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근거로 하고 있다기 보다는, 상대에 대한 오해를 불러올까 우려해서이다. 인간은 쉽게 해석할 수 없는 복합적 존재이다. 어떤 속성을 가진 사람이라 하더라도, 금세 다른 면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다. 기본적인 속성을 바꾸긴 어렵다고 하더라도, 남자는 여자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환원론적 입장을 펼치는 것은 이론적으로는 쌈빡할 지 몰라도, 남녀관계에는 별로 도움이 될는지 의문이다.
그의 책에서 이런 말을 보면, 그의 이분법적 논리 전개가 그의 생각의 일부분임을 이야기하는 듯하기도 하다. "감정은 빙산과 같다. 우리는 대가 아주 작은 조각만을 인식하지만, 나머지 거대한 부분은 물 속에 잠겨 있다."고. 남자의 모습과 여자의 모습은 겉으로 보기에 달라 보인다. 행동 양식도 달라 보이고, 말투도 상당히 달라 보인다. 그러나, 그 인간의 거대한 부분은 잠겨있어 알기 어렵다.
그의 책이 도움이 되는 유일한 경우는, 대화는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지만, 언쟁은 인간관계를 파괴하기 때문에,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 서로 조화를 이루기 위해 어울리는 경우에만 이런 이론들은 필요하다는 것을 명심하고 난 뒤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