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이세정.이현상.김창규.박혜민.문병주] 대학생 정모(21)씨는 50만~60만원 하는 유명 수입 브랜드의 지갑을 사기 위해 얼마 전 친구들과 계를 만들었다. 정씨는 돈을 모으기 위해 이번 여름방학 때 패스트푸드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다. 정씨는 "지갑을 꼭 사고 싶지만 용돈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아르바이트 등으로 돈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팔리는 유명 수입 브랜드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것은 그만큼 수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명품 열풍은 일부 부유 계층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대학생 등 보통 사람에게까지 퍼져 있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소비자학과)는 "명품을 좋아하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지만 한국이 더욱 심한 편"이라며 "비싸기 때문에 명품을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가=고품질'인식=외국 브랜드는 한국에 진출할 때 다른 나라보다 더 비싸게 가격을 매기는 '고가 전략'을 쓰고 있다. 한 유명 해외 브랜드 수입업체 관계자는 "고가 전략이 안 먹히면 상품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지만 한국에서는 아직도 고가 전략이 통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환율이 떨어져도 유명 해외 브랜드 제품의 가격은 내려가지 않는다.
심지어 국내 업체가 프랑스 등 외국의 생산 공장을 인수해 제품을 생산한 뒤 '
메이드 인 프랑스'라고 표시해 국내에 수입, 판매하는 방식까지 등장했다고 업계 관계자는 전한다. 한국에서 잘 팔리려면 '해외 명품'으로 인식되는 게 제일 쉽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한 의류업체 대표는 "한국의 명품 가격이 다른 나라보다 비싼 것은 수요는 넘치는데 공급은 독점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백화점 중심 유통구조도 한몫=
신세계백화점 본점에는 식품까지 포함해 1000여 개의 브랜드가 들어서 있다. 이 가운데 해외 브랜드는 258개. 브랜드 네 개당 한 개꼴이다. 1년여 전만 해도 이 백화점의 해외 브랜드는 50개 안팎이었다.
백화점이 해외 브랜드를 선호하는 것은 수익 면에서 손해 볼 일이 없으면서도 점포 이미지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백화점은 입점한 업체가 올린 매출에서 18~35%를 수수료 형식으로 받아 수익을 올린다. 사실상 '점포 임대업'이다. 백화점이 직접 상품을 구입한 뒤 이를 판매하는 미국 백화점과는 다르다.
따라서 한국의 백화점은 유명 브랜드를 입점시켜도 재고를 떠안을 위험이 없다. 수입업체가 그 부담을 떠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수입업체는 높은 임대료 외에 재고 위험까지 고려해 가격을 높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 수입업체들은 여러 단계의 할인행사까지 거쳐도 수입상품의 30% 정도는 재고로 남는다고 주장한다. 한 수입업체 관계자는 "재고 부담 때문에 수입업체의 마진은 8~10%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유명 브랜드의 '노 세일' 전략=유명 수입 브랜드는 '노 세일' '정가 판매'를 고수한다. 1년에 두 차례씩 있는 정기 세일을 제외하고 할인 판매를 거의 하지 않는다. 브랜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래서 유명 브랜드의 재고 처리는 은밀하게 이뤄진다. 공식적인 할인 행사 대신 아는 사람들만 대상으로 하는 '패밀리 세일'을 선호한다. 단골 고객들에게만 초대장을 돌려 호텔이나 사무실 등에서 50~80% 정도 할인된 가격에 재고를 처리한다. 이런 패밀리 세일을 통해 팔리는 물량이 많으면 50%, 적어도 20% 정도라고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명품 시장' 2조5000억 ~ 3조원 규모
볼펜.만년필.가방.시계 등 명품 액세서리의 국내 가격은 일본이나 미국.유럽보다 10~20%가량 비싸다. 수입업체들은 한국의 시장 규모가 일본이나 다른 나라에 비해 작다 보니 구매력이 떨어져 수입 가격 자체가 비싸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수입 브랜드의 소비자가격이 수입 원가(CIF)의 3~3.5배에 이르는 것은 수입업체의 고가 마케팅 때문이라고 한 수입업체 관계자는 전했다. 마케팅과 재고 처리 비용 등을 고려하더라도 실제 소비자가격이 이보다 훨씬 높게 책정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수입 의류를 포함해 '명품'으로 불리는 수입 브랜드 시장은 약 2조5000억~3조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 중 백화점 유통과 면세점 유통이 각각 1조원 규모를 차지하고 나머지는 병행수입(본사와 정식 수입 계약을 하지 않은 일반 수입상이 현지 도매점이나 할인점에서 사들여 국내에서 판매하는 방식)으로 들어온다. 전문가들은 시장 규모가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전문가들은 세금을 높이는 식의 규제로는 명품 소비를 줄이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값만 올리면서 해당 제품의 가치를 더 키워주게 된다는 것이다. 그보다는
소비자 교육을 통해 합리적 소비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득이 늘면 자연스레 '무조건 명품' 선호도 줄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건국대 소비자정보학과 박선영 교수는 "1인당 GNP 3만 달러 시대가 되면 브랜드보다 제품의 실제 가치를 먼저 따지는 합리적 소비가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에서 문을 연 명품 전문
아웃렛도 명품 값을 낮추는 데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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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이라니... 비싼 외제 소비재일 뿐인 것들을...
명품은 명인이 만든 제품에나 붙여줄 이름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