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서 계속 우리 딸들을 생각한다. 이제 내일이 아니라 오늘 아침으로 다가온 시험.-.-;;;

달려라 가쇼. 땡그란 동그라미 얼굴도 잘 그리는 모범생 가쇼. 선생님이 준 모범상장이 온 집안의 가보가 되었겠지? 선생님이 올해 가장 잘 만난 제자 중 하나인 만큼, 가쇼는 지난 모의고사만큼만 받아 오렴. 씩씩한 마음과 꾸준한 자세가, 가쇼의 장난이 아닌 점수를 예고한다.

예쁜 얼굴에 간혹 터프한 연기 대상 후보, 영자. 연기할 때 보면 금세 새새덕거리고 장난치다가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멀쩡한 맹인 연기를 보여주었지. 영자의 연기를 돋보이게 해 줄 좋은 대학을 골라 가자꾸나. 최선을 다하고, 영자의 총명한 머리를 확실히 보여주길...

우리반 반장님, 스위트미네. 감수성이 예민해서 쉽게 흔들리기도 하지만, 독하게 마음먹으면 해내고야 마는 네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 바란다. 3학년 와서 쑥쑥 나와주지 않던 모의고사 점순 다 잊고, 오직 하나만 기억하자. 실전에 강한 것이 나의 주특기다.!!!

곱상한 소녀파, 공부쟁이 양지. 큰 소리로 웃는 것도 별로 못 봤을 정도로 고개 숙이고 땀흘린 보람이 오늘이면 나타날 거야. 양지가 흘린 땀들은 벌써 공기중에 가득 찼단다. 오늘 시험 무지무지 잘 보고, 양지가 헷갈려서 찍는 건 전부 정답이길... 음지는 가고, 양지의 시대가 온다.

정말 열심히 일 년을 살아온 혜란. 속상해서 울기도 많이 했지만, 혜란이의 눈물과 노력은 헛되어 사라진 것이 아니란다. 혜란이의 세포 하나 하나에 살아서 앞으로 살아가는 힘이 될 거라고 믿는다. 그리고 하느님은 스스로 도운 혜란이를 가상히 여겨 꼭 도와주실 것이다.

엽기 선생님의 엽기 제자, 뻥, 봉애. 긴장하지 않기가 주특기인 뻥애는 3학년 내내 가장 탁월한 끈기를 보여준 친구였다. 선생님이 작년에 병문안 간 걸 기억해서라도 반드시 좋은 성적 얻어오기 바란다. 뻥애네 노래방에 우리 반 단체로 가려면, 꼭 좋은 점수 받아와야 해!!

이미 대학에 갔지만 돈이 아까워서 수능을 쳐보겠다는 하이바. 칠지 안 칠지는 모르지만, 이미 입학이 확정된 만큼, 성숙한 삶을 살아가는 기회가 되었길 바래.

딴 딴따단. 딴 딴따단. 손잡고 결혼행진곡을 부르며 다니는 불륜(?)의 사제지간, 햇님. 햇님이가 좋은 대학 못 가면 선생님이 마음 아플거야. 튼튼한 몸과 마음에 걸맞게 좋은 성적을 얻어 오길 바란다. 시험만 잘 쳐 오면 햇님이 소원대로 100번도 더 놀아줄게.

배달의 민족, 배달의 기수, 사자머리 임쏘. '수능은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게 아니다.'는 명언처럼 수능보다 인생이 중요함을 아는 간뎅이로, 수능 정도야 간단하게 좋은 성적 얻어오기 바란다. 최고 약점인 영어를 찍는대로 다 맞추는 기염을 토하길... 영어 잘하는 애 옆에 앉아서 듣기라도 잘 베끼길...ㅜㅠ;;(이상한 선생님의 기도)

사슴같은 눈을 한, 사슴같이 기다란 새다리 유리. 요즘 친구들과 좀 틀어져서 힘들었을 것이다. 비록 유학 준비로 바쁘더라도, 그리고 수능 성적이 별 필요 없더라도 최선을 다해보기 바래. 한예종 시험도 잘 준비하고...

우리 반에서 글씨가 제일 예뻐서 복도에서 단어장을 주워도 글씨체만 보고도 찾아줄 수 있는 깔끔이 혜림공주. 늘 웃고 너그럽게 마음쓰는 따쓰함이 수능 성적도 따뜻하게 데워서 올려 주길... 친구들이 대학 합격하면 같이 눈물 흘리며 기뻐하던 아름다운 마음에 하느님도 감동하실듯...

이과반에서 문과로 옮겨서 사회탐구가 조금 낯설었을 혜림이. 사관생도가 잘 어울릴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시험엔 운이 없었지. 그래도 요즘 성적이 날로 오르고 있으니, 이 추세라면 어떤 점수가 나올지 선생님도 예측이 어려운 친구. 기대해 보겠어.

인어공주 같은 머리에 인어공주만큼 눈물 많은 근영이. 수시 2학기에 면접도 잘 봤으니, 긴장하지 말고 차근차근 풀고 오기 바래. 친구들이 합격해서 울어주었던 것처럼, 이번엔 근영이가 합격해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좋은 점수 얻어 오시라.

자, 다음 마지막 열 명의 딸들에겐, 잠시 후에 기도를... 너무 한꺼번에 빌면, 하느님도 천지신명도 오늘 밤엔 암기 사항이 너무 많으실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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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달 반 동안 심한 멀미를 하며 같이 항해해 온 서른 다섯 딸들아. 다섯 명의 딸들은 이미 항구에 안착해서 너희를 기다리고 있고... 이제 내일이면 너희가 1년간 준비해 온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게 될 것이다.

여덟시간 정도 남았구나. 너희의 배를 지휘한 선장으로서, 너희를 바라보면 많은 회한을 삼킬 수밖에 없다. 늘 그렇지만, 지나놓고 후회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려니 한다.

배멀미가 특히 심했던 녀석들도 내일만은 좀 편안히 시험치르길 간절히 바란다. 시험치기 전날, 너희에게 무슨 말이든 해 주고 싶었지만, 너희에게 무슨 말이 격려가 되겠느냐. 무슨 말이 귀에 들어 오겠느냐. 어차피 흔들리는 배 안에서 배의 움직임과 함께 몸과 마음을 뒤흔드는 전쟁같은 항해임에랴.

수능만 마치면... 하는 생각 많이 해 보았으리라. 어떤 앙케이트에서 시험을 마치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푹 쉬는 것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은 걸 보았다. 푹 쉬어라. 쉬어야 하리라.

그러나, 내 딸들아, 더 중요한 것은 수능이란 건, 아주 작은 항구의 하나일 뿐, 그것이 우리 항해의 목표는 아니란 걸 인식해 주기 바란다. 너희가 고등학교 3년을 흔들리는 뱃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내일 저녁 항구에 도착해서 뭍에 잠시 내리면 육지 멀미도 심할 것이다. 배를 오래 타다보면, 육지에서 멀미를 한다. 허탈하고 허전하고, 무엇을 위해 이 젊은 날들을 헤매었던지... 눈물도 흐를지 모른다.

이제 여덟시간 뒤면 차근차근 시험지가 너희에게로 간다. 아직 너희들 중 스무 명은 잠자리에서 뒤채이고 누웠으리라. 다른 날은 몰라도, 오늘은 선생님 말대로 열 시엔 이불 속에 누웠겠지. 그리고 조금 피곤해도 낮잠자지 않고 공부했으리라. 그렇다고 쉽게 잠들지 않고, 자다깨고 몇 번 뒤척이다보면 다섯 시가 오고, 여섯 시가 오겠지.

너희 서른 다섯 이름을 생각하면 나도 오늘은 잠을 쉽사리 이룰 수 있을 것 같지 않구나.

체구에 어울리지 않는 귀엽고 곰살맞은 율동이 어울리는 샛별공주, 그 앙징맞은 표정과 익살에 알맞게 귀여운 그림들도 잘 그리던 공주님. 시험 잘 봐서 캐릭터디자인 계통의 학과로 진학하길 바란다. 하이바와 또치 그림은 잊을 수 없는 캐릭터다.

그리고 우리 반에 드문 소녀표, 노부랭이. 누군가는 메기라고 놀리지만, 늘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라 시험도 잘 치고 올 거다. 디자인 공부하랴, 시험준비하랴 바빴는데, 이제 그림만 그리면 좋겠다. 김밥은 여전히 많이 사먹어야 하겠지만.

부잣집 맏며느리감(너희들은 싫어할 말이지만) 스타일의 미희, 차분하고 믿음직스러운, 촐싹거리지 않는 든든함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게 할 것이다. 심리학 계통 공부도 좋겠고, 미희라면 공무원시험이나 고시 준비도 잘 할 거라고 생각한다. 날개를 얻기 바란다.

내가 늘 예쁘다는 어트랙터, 끌개 두뽀. 두고 보면 선생님이 끌개라고 한 이유를 알 날이 올 거다. 두뽀는 사람을 끄는 매력이 있다. 조금 게으른 적도 있었지만, 요즘 긴장해서 한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바란다. 오답노트 만든 것이 모두 출제되기를...

늘 말이 없이, 얼굴과 노트가 가장 가까운 거리를 유지하는 민정이. 처음에는 자는 줄 알고 깨운 적도 많았지. 든든한 미희와 함께 최선을 다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거라고 믿는다. 민정이는 당연히 좋은 결과를 얻어오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3학년 와서 상당히 성숙(?)한 듯한 수바. 일본어를 차근차근 공부할 수 있으려면 좋은 대학에 가야 하겠지. 수능을 통해서 좋은 대학으로 진학하는 계기가 되도록 좋은 성적 얻어오길 빈다. 선생님이 햇님이의 질투를 극복하고 태워준 덕을 갚으려면 잘 치는 길이 수다.

본성과 다르게 부끄런 웃음을 웃는 수영이. 늘 웃는 모습처럼 긴장할 것 하나도 없이 좋은 성적 얻어오기 바란다. 차근차근 풀 수 있을 것이다. 잘 치고 와서 원하던 한양대에도 합격하는 영광을 누리기 바란다. 네가 바라는 점수만큼 좋은 결과 있기를...

강직하고 감성적인 미녀, 이은공주.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하느님은 우리가 이겨낼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 수능정도의 시련은 가뿐하게 이겨낼 지혜는 이은공주가 충분히 가지고 있을 것이다. 막판의 독서실 실력을 실제 점수로 이은 공주가 되길 바란다.

조용하다가도 간혹 터프한 두식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공부한 것이 좋은 결과를 얻게 할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공부는 그리 힘들지만은 않았지? 친구들 모두모두 기원하고 있는 좋은 점수 얻을 수 있도록, 차분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길...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문희. 언제나 멀뚱한 얼굴로 '응'하면서 재미난 표정을 하던 그 여유로움과, 칠판에 붙어 있는 어떤 분필 가루도 한 획의 지우개의 압박으로 퇴치하던 팔힘을 과시하여 튼튼한 점수를 얻어 오길 바랄게. 잘 치고 체크무늬 스카프 엎어쓰고 푹 자렴.

우리 반에 드문 또하나의 소녀표, 박수. 요즘 눈이 퉁퉁 붓도록 열심히 하는 만큼 모의고사 성적은 안올라서 기운이 떨어져 보였는데, 내일만은 박수의 평소 모습을 되찾아서 의욕적으로 문제와 싸워 승리해 돌아오기 바란다. 즐거운 뻥애의 삐삐머리가 되기 위해서...

새침데기 쌍둥이 재희. 마음도 몸도 따라주지 않아서 마지막엔 조금 힘들었지? 수시 2학기도 아직 불투명한 상태고 말야. 까짓거, 수능대박으로 재연이랑 같이 즐거운 대학 생활을 누릴 수 있잖아. 정시에도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깐, 시험 잘 치고 오길 바랄게.

요즘 공부 스트레스를 먹는 걸로 풀었는지, 얼굴이 달뎅이가 된 토끼님. 3학년 들어 꾸준히 오르는 성적이 이번 수능에선 깜짝 놀랄 정도로 깡충깡충 뛰어 오르면 좋겠다. 점수가 좋아야 미술도 더 잘 되지 않겠니? 뒷다리에 힘을 바짝 주고, 높이 한 번 뛰어 올라 보렴.

아, 14번 토끼까지 빌다보니 시간이 꽤 됐군. 가쇼군부텀은 좀있다 다시 빌게. 모두 GOOD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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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통신 2004 - 9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세 잎 클로버와 네 잎 클로버

 

사랑스런 숙녀들에게….

이제 불과 삼십 이일 남았군. 누구는 빨리 갔으면 하고 바랄테고, 누구는 시간이 좀 더디 갔으면 하겠지. 그러나 누구에게나 시간은 같게 주어져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선생님이 해 줄 이야기는 뭔지 짐작할 수 있으리라. 잔소리도 자주 듣다보면 단수가 높아져서 척하면 알아들을 터이니.


밤 늦게 퇴근하는 길에 라디오에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네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운’이란 건 누구나 안다. 그러면,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뭘까? 세 잎 클로버의 꽃말은 ‘행복’이라 하더구나. 세상에 눈만 뜨면 지천으로 깔린 것이 세 잎 클로버인데 반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쳐다봐도 찾기 힘든 것이 네 잎 클로버임을 생각한다면 이 꽃말의 의미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건강한 것, 내가 명랑하게 학교다닐 수 있는 것, 내가 양운고등학교 다니는 것, 오늘도 무사히 이 교실에 있는 것. 이런 행복한 것들을 우린 늘 잊고 산다는 거지. 그리고는, 왜 나에게는 행운이 오지 않는지, 네 잎 클로버를 찾을 수 없는지 불평하며 살기 쉽다는 거야.


오늘은 수능을 대비해 영어 문장 좀 읽어볼까? 난 직업은 국어선생님이지만, 외국어를 읽으면서 느껴지는 마음의 잔잔한 움직임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외국어도 마음 놓고 쓴다. 잘하지 못해도 사랑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


Well, today is the first day of the rest of your life.

이제 하루 하루가 수능으로 다가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불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흔들리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살 수 있는 것은 언제나 오늘일 수밖에 없어. 오늘은 우리 생의 남은 날들의 첫 번째 날이다. 수능까지 남은 삼십 여일의 첫 번째 날인 오늘을 어떻게 보낼거냐. 눈물로 보낼 순 없지. 우린 백혈병 걸린 면역이 약해가는 아이도 아니고, 남자 친구에게 어떻게 내 맘을 전할까 맘 졸이는 열다섯 소녀도 아닌, 한 달 뒤면 시험장에 서야 할 수험생임이 냉엄한 현실이야.


Well, you know, it doesn't look that bad.

그런데, 모의고사를 보면 성적이 자꾸 곤두박질 치곤 해서 자신감이 떨어진다고? 글쎄, 네 성적표를 잘 비교해 봐. 그렇게 나빠 보이지만은 않는걸.


It isn't money or brain. It's confidence. And what creats confidence is three things; being prepared, having experience, and never giving up.

지금 너희에게 필요한 것은 돈도 아니고, 머리도 아니야. 그건 오직 자신감이다. 그리고 자신감에는 세 가지가 필요해. 준비, 경험, 그리고 포기하지 않기. 그간 우리가 해 온 준비와 경험, 이것들은 조금 부족했다 치더라도 너무 후회하진 말자. 그건 이미 지나간 일이야. 지나간 과거는 잊어주세요.(라이언 킹의 티몬의 대사) 하쿠나 마타타.(다 잘 될 거야.) 그리고 남은 하나, 네벌 기빙 업!(발음 죽이는데) 수능 치는 날,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잘 될 거라는 믿음과 함께, 지난 번에 말한 대로, Without haste, without rest. 불안하거나 초조해하지 말고, 꾸준히 준비해 나가자꾸나. 시험 치기 전날 벼락치기는 효과가 없다고들 하지만, 그건 모르는 소리고, 시험 전날 만든 컨닝 페이퍼는 천금의 효과가 있단다. 컨닝페이퍼 작성에 주력할 것.


Remember, we all do the same things... we work, we eat, we cry, we make love... What makes you different is how you do it.

기억하렴,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일들을 하며 살아간단다. 일하고, 먹고, 울고, 사랑하고…. 하지만, 다른 하나는 그 많은 일들에 어떻게 임하느냐 하는 거야. 삶의 자세랄까.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임하는 게 좋다는 건 말 안해도 알 나이지?


You are more important to yourself than you think you are.

  잘 살아야 하는 이유.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자신에게 중요한 존재기 때문이지.


It is hard to see the future with tears in your eyes.

인디언 체로키 족의 추장이 남긴 말이야. 눈물에 젖은 눈으로는 미래를 볼 수 없다. 한 발짝도 내딛기 힘들다고 생각할 때가 있겠지만, 챔피언은 그런 순간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는 걸 기억하기 바란다.


It's essential that you don't let anybody define who you are,

you have to define yourself.

어느 누구도 나를 이렇다 저렇다 규정짓지 못한다. 나는 오직 나 자신만이 규정지을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잎새의 다음 마지막 구절을 읽으면서, 화가 베어먼의 숭고한 작업을 떠올리며 글을 맺는다. 건강해라.

  Look out the window, dear, at the last ivy leaf on the wall. Didn't you wonder why it never fluttered or moved when the wind blew? Ah, darling, it's Behrman's masterpiece - he painted it there the night that the last leaf fell.


바람이 날로 싸늘해지는 늦가을, 담임선생님이 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2학기 일정 안내

10/20 듣기평가, 10/27(수), 11/2(화), 11/9(화) 모의고사, 11/17 대학수학능력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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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생활을 회고하며 쓴 학생의 글.
상당히 학교의 본질에 접근해 있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느끼는 것을 적기까지는 얼마나 갈등했을까. 그러나 그 갈등의 해결책이 없었던 것이겠지... 난 이런 아이들 앞에 서기가 점점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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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삼 년간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꽤 성숙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그것은 결코 학교에서의 가르침이라든가 소위 사회화 기능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솔직히 학교는 정말 싫었다. 그래, 그 싫은 곳에서 3년간을 견디어 온 내 자신이 자랑스럽고 그 기간 동안 '초연함'을 얻었다.
학교에서는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할 수 없다. 대신 쓸 데 없는 말을 많이 지껄여야 되고 억지로 웃어야 한다. 착하게, 원만하게, 조용하게. 그런 것들로 완전 무장이 되어 있다가 교문을 나서는 순간 벗어버리면 참 편리했겠지만, 어쩐지 견딜 수 없는 얇은 가면은 갈라지더니 파편이 돼서 나를 여기저기 흠집을 내놓기 시작했다.
1학년 때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부모님께서 이해해 주실 거라 믿었다. '예술가는 이해해 줄꺼야.'라는 당치도 않은 발칙한 생각이었다. 2학년 때 역시 학교 내 사람들이 모두 머리에 흐물흐물한 덩어리를 달고 다니는 게 보였다. 3학년.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수능 잘 쳐서 대학을 가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 학교는 수능 공부를 위한 장소였다.
물론 3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뭔가 유쾌한 일이 있었겠지만, 그다지 떠올리지 않아도 될만한 것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머리를 쥐어짜내서 생각해낸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솔직히 지난 3년간 나는 많은 것들을 보았고 배웠고 생각하고 읽었고 놀랄만큼 자랐지만, 나의 '자람'과 학교와는 그다지 연관이 없다는 사실이 한편으론 안타깝다.
그렇지만 나를 좋아해 준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감사한다. 간혹 가다 좋은 사람들을 발견하는 건 시시한 학교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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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덕화 2004-10-09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춘기라는 시기가 그런것 같아요. 무엇엔가 대해서 아는척 하고 싶고, 냉소적인 척 하고 싶고, 나는 남들과 다른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는데 그들 속에 섞여 사는 것 같은........
아이들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해요. 아무리 남과 다른척 해도 그 아이의 진심은 "사랑받고 싶다"의 다른 표현임을.
정말 뛰어난 아이도, 뒤떨어진 아이도 모두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지만,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어떻게 받아야 할지 교사인 우리 자신들도, 아이들도 잘 모르고 살아가죠.
시시한 학교에 다녀야 하는 건, 아이에게도 교사에게도 불행이죠. 하지만, 세상을 바꾸긴 어렵죠. 마음을 바꾸는게 더 쉽다는 것을 이 아이가 빨리 깨달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글샘 2004-10-09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달라보이는 아이는 사랑이 필요한 거죠. 저는 사랑은 표현하지 않아도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기침은 감출 수 없다니까요. 학교가 무기력하고, 심심한데, 그리고 학교에는 너무 권위적인 인간들이 득시글거리는데, 아이들이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최소한 권위적인 인간이 되지 않으려고 애써야죠. 아이들이 마음을 바꾸는 게 쉽다는 걸 배우는 곳이 교육하는 곳이어서는 안 될텐데요... 걱정입니다.
 

 담임 통신 2004 - 8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Last Spurt!


서른 여섯 명의 숙녀들에게...

숫자가 하나하나 줄어들고 있다. 두 달 남짓 남은 숫자도 이제 68을 가리키고 있고, 우리 꽃송이들도 서른 여섯 남았을 뿐...

요즘 선생님은 잠을 잘 못 이룬다. 전에 비해 훨씬 피곤해서 누우면 곯아떨어질 것도 같은데 오히려 누우면 이생각 저생각 하다 잠을 설친다. 너희는 나보다 훨씬 더 뒤척이리라.


이제 장거리 달리기가 종반으로 접어든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라스트 스퍼트>이다. 죽을 힘을 다해 뛰어 보는 것이다. 그것이 정말 그 사람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제까지 너희 페이스를 유지하며 뛰어왔다면, 이제 전심전력을 다할 때이다. 그런데, 문제는 힘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거다. 장거리 달리기 선수가 힘을 비축하기는 정말 어려우니깐, 이제부터는 의지로 이겨내야 한다.

다음 주면 마지막 평가원 시험이 있다. 지금 많은 친구들이 수시 2학기에 지원해서 마음이 싱숭생숭 할 것으로 느껴진다. 자, 이렇게 하자. 수시 2학기에 지원한 학생들은 지금, 이순간, 싹 잊기 바란다. 너희에게 주어진 목표는 다음 주 평가원 시험이다.


“이제까지 받은 성적 중 가장 좋은 성적만 얻어 오기 바란다.”


이 말은 수능 전날 너희에게 해 주려고 아껴 놓았던 말인데, 두 달 미리 쓰자. 이번 평가원 시험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그리고 수능을 대비한 컨닝페이퍼도 꾸준히 만들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수능 치는 날 아침에 요긴하게 쓰일 컨닝페이퍼를 아직도 만들지 않은 친구들은, 마지막 충고이다. 시작해라.

앞으로 부산대, 동아대, 경성대, 동서대 등 부산지역 수시 지원이 남았다. 면담은 오로지 선생님과만 하기 바란다. 친구들과 진로상담한다는 핑계로 노는 것은, 신종 놀이라고 보면 된다. 수험생이 해운대 백사장에서 퍼질러 낭만을 즐길 수 없으니 새로 개발한 것이 ‘진로 고민 놀이’인 셈이다.

앞만보고 달려가라. 고민은 선생님이 나누어 줄 것이다.

정말 잘 할 수 있을까… 이제까지 해 온 것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는 건 아닐까… 내가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은 절대로 하지 마라. 그런 생각이 떠오르면 화장실 가서 노래라도 부르고, 영어 단어라도 주저리주저리 읊을 일이다. 비관적인 생각은 전혀 너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늘 하던 말,


과거에 대한 죄책감을 버려라.

미래에 대한 불안감도 버려라.

이젠 선생님 말만 믿어라. 점쟁이 말 믿지 말고.

어느 순간, 손바닥을 벌리면 보석으로 변할 조약돌들을 아직도 주워올 수 있다. 선생님의 말을 의심하지 말고 조약돌을 주워오기 바란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며 몸을 유연하게 만들기 바란다.

불안해지거나, 걱정이 되면, 조용히 눈을 감고, 웃어라.


숨을 들이쉬고(In), 내쉬고(Out)

깊게(Deep), 천천히(Slow)

조용히(Calm), 편안하게(Ease)

웃으면서(Smile), 놓아버리렴(Release)

지금 이순간(Present moment), 위대한 순간(Wonderful moment)


이 주문을 외우며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연습이 수능시험 치는 날 약발이 받을 것이다. 수능은 너희만 치르는 것이 아니다. 너희 선배들도, 어머니 아버지들도, 선생님도 다 쳐 온 것이다. 그리고 옆집의 멍청해 보이는 오빠도 치를 수 있었던 ‘별거 아닌’ 시험에 지나지 않는다. 그건 월드컵도 아니고, 올림픽도 아니다. 이적지 쳐 오던 모의고사같은 것일 뿐이니까, 너무 긴장할 거 없다.

난 늘 불안할 때면, 나보다 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생각한다. 저 사람도 해 냈는데 내가 못 할 이유가 없지. 정말 건방진 생각이지만, 효험은 상상 외로 크다. 그리고 나쁜 결과가 떠오를 때면, 무시한다.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뭘. 나쁜 결과가 나온다고 해서 내 인생이 꽝이 되는 건 아니잖아.

이렇게 편안하게 생각하면 불안감도 줄어들고, 집중력도 키울 수 있다.

단 한번의 시험으로 너희를 평가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쁠 수도 있지만, 너희의 지적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받고, 적절한 대학에 진학해서 즐겁게 공부할 수 있다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번에 지영이와 세령이가 한 날 같이 합격의 기쁨을 나누었을 때처럼, 너희 모두에게 합격의 기쁨이 돌아갈 것이다.

이제 감기 조심하기 바라고, 감정 조절 잘 하기 바란다.

아파서 손해보고, 속상해서 손해보는 일은 2학기 내내 없었으면 한다.

그리고 지금 자리가 앉은 지 오래 되었으니, 마지막으로 한 번 바꾸자. 날짜는 월요일 아침.

너희 모두 활짝 웃게될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자.


찬 바람이 부는 가을에, 담임선생님이 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2학기 일정 안내

9/16 평가원 시험, 9/22 듣기평가, 9/30-10/4 기말고사, 10/13 서울교육청 모의고사

10/20 듣기평가, 10/22 모의고사, 11/2 모의고사, 11/9 모의고사, 11/17 대학수학능력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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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벌식자판 2004-09-13 2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들 마음은 다 똑같은 것이겠지요. ^^;
올 한해 좋은 결과가 있으셨으면 합니다.

심상이최고야 2004-09-13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학년 아이들에게는 이런 편지를 쓰는군요!! 1학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선생님의 힘찬 기운이 아이들에게 전해져서 좋은 일들이 있을것 같습니다^^

글샘 2004-09-13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벌식 자판님/ 아, 저긴 옛 부산엠비씨 사옥인데... 부산대교에서 찍은 사진 아닌가요? 아이들이 힘들어하는데 도와줄 길 없어 써 보는 편지랍니다. 이런 글을 나눠주면, 조금은 힘을 내거든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심상이 최고야님/ 선생님이 힘차야 되는데, 사실 요즘은 에너지가 고갈되고 있습니다. 수시 2학기 상담에... 수능원서 접수하고... 그렇지만, 선생님이 힘차야 학생들도 즐거운 건 만고 불변의 진리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 행복해야 학생들이 행복하다...^^

세벌식자판 2004-09-14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부산에서 생활하시나봐요...
영도 다리 위에서 찍은 사진인데... ^^;

그나저나 교육정책이 쉴틈 없이 바뀌어서 큰일입니다.
무슨 입시 정책이 이렇게 자주 바뀌는지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