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통신 2004 - 3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D-200, Mission Impossible!

마흔 명의 숙녀들, 안녕.
일주일만에 다시 편지를 쓴다. 중간고사들은 잘 쳤겠지? 3학년 들어 첫 결과물이 이제 완성되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점수도 있을게고, 잘 한 과목도 있겠지만, 아무튼 이제 시험은 지나갔다.
우리 앞에 남은 것은 D-200의 숫자와 대학 진학이라는 과제를 잘 조합해서 졸업식날 즐겁게 참석하는 것이다.

시험을 마치고 홀가분하게 오늘 하루 정도 쉬기 바란다. 푹 자고, 안 졸리면 친구와 영화라도 한 편 보고, 수다라도 떨자. 단, 오늘 하루만. 그리고 200일 주(酒), 뭐 그런 건 마시지 말자. 내일부텀은 다시 공부해야 하잖아.

200일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설계도를 그려 보자는 것이 오늘의 주제다.

앞으로 중요한 일정은 25일 모의고사와 6월 2일 평가원 모의고사가 있다. 그 두 시험은 너희 3학년 노력의 결과물이 이제 막 나올 때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이전의 시험은 2학년 실력이라 보면 되고, 이제부터는 너희가 책임져야 할 점수들이다.

<제1기, 국영수 다지기 30일 코스>
남은 30일은 언어, (수학), 영어를 최선을 다해서 매달려 보기 바란다. 사회는 수업 시간에나 열심히 들어라.
언어는 매일 한 시간 이상 자기가 진도를 나가는 문제집을 풀 것. 그리고 문제를 풀 때는 시간을 정해놓고 60분에 35문제 정도 속도를 내서 풀 것. 옆에 있는 이 책이 괜찮더군. 조금 어려운 수준인 것 같더라. 언어는 정말 꾸준히 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 결국 올해 입시에서 가장 중요한 점수는 언어영역 점수일 것이다.
수학을 칠 친구들은 매일 감각을 잃지 않도록 하고, 일 주일에 한 번정도 스스로 모의고사를 쳐서 자기가 약한 단원을 집중적으로 공부하자.
영어는 일단 듣기를 잡아야 된다. 아침에 잘 듣고(듣기 있는 날은 절대 늦지 말자.), 다음 모의고사에서는 인문반 여섯 반 중에서 1등을 해 보자. 한 사람이 한 문제씩만 더 맞추면 1등이 될 거다. 독해를 꾸준히 하되, 단어가 부족한 사람은 단어 외우기보다 문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서 단어를 문맥 속에서 추리하는 연습이 필요하단다.
이 기간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누차 말한 '주말을 잡아라'이다.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 그리고 어린이 날, 석가탄신일, 개교기념일 등 공휴일만 잘 활용해도 한 등급 올리는 건 떼어놓은 당상이다. 주말에 공부하지 않고 책상에 '열공'하고 적는 녀석은 욕심쟁이다. 열공은 주말에 하는 것이다. 하고 보면 효과는 확실하다.

6월 2일 평가원 시험 마치고 나면 다음 20여일 정도는 기말고사 준비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이번 중간고사에서 실패한 과목의 원인을 분석해서 기말고사에는 실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듣기평가 준비는 물론이고, 범위가 엄청나게 넓은 과목들(국어, 영어 등)을 미리미리 공부해 두어야 할 것이다. 시험에 날 것이 뻔한데, 다 보지도 못하고 시험을 망치는 어리석음은 비가 올 걸 알면서도 우산을 안 가져가서 홈빡 젖는 거나 마찬가지다. 각주구검(刻舟求劍)의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 칼이 빠지면 지금 바로 물에 뛰어들어 건져야 한다. 전에 개구리 법칙을 이야기했을 것이다. 개구리 법칙을 한자 성어로 한 것이 각주구검.

<제2기, 사탐 완전정복 40일 코스>
그러고 나면 이제 140일 전이다. 기말고사를 마쳤으니 여름방학이 남았다. 너희 수능 준비의 완성은 여름방학으로 끝나게 된다. 그럼 2학기는? 좀 있다 얘기하자.
기말고사 마치고 나면 40일 작전을 펴야 한다. 40일 동안 국영수는 이전과 같게 꾸준히 하되, 이 기간의 핵심은 사탐이다. 자기가 선택한 과목을 이 때 정리한다. 가장 좋은 교재는 교육방송 교재다. 꼭 봐야 한다. 네 권의 교육방송 교재를 40일 동안 볼까요? 천만의 말씀. 한 과목을 3일 정도에 마칠 수 있어야 한다. 여름 방학때는 2시부터 5시까지 자습이니까, 학교에서 세 시간 열심히 하고 집에서도 두 세시간 투자하면, 3일이면 한 과목 본다. 그러면 주말을 잘 활용해서 2주 정도면 사탐을 한 번 독파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말이 쉽지, 사실은 뼈를 깎는 노력이 없이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린 해야 한다. 아무리 임파서블한 미션이라도. 우리는 프로니까. 이 작전의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 째 과목을 오래 끌면 안 된다. 첫 단추는 무조건 가장 쉬운 것, 자신있는 과목으로 3일만에 꼭 떼자. 두 번째는 가장 어려운 과목. 3-4일만에 하고. 그리고는 다시 네 권의 문제집을 산다. 12일 정도면 네 권 볼 수 있다. 여름 방학 중에 '수능 100일 전'을 만날 것이다. 그 때까지 사탐을 세 번 독파하는 게 너희에게 주는 Mission이다.

이제 100일 전, 2학기 중간고사를 20여일 완벽하게 준비하자. 이제 시험이 재미있어 질 것이다. 설마? 프로는 중독이 되고 나면 즐기게 된다. 게임의 법칙을 꿰고 있는 프로는 즐길 줄 안다. 너희는 지금 방황 중이 아니라, 퀘스트 수행 중임을 깨달아라.

<제3기, 모의고사 제1기>
중간고사 마치고 나면 80일 전. 10일간 모의고사를 실시한다. 스스로 치는 모의고사. 월요일은 국어와 수학, 화요일은 영어와 사탐을 스스로 시간을 재면서 시험 친다. 여름 방학 때 보던 교재가 많이 남았다고 미련을 갖지 말라. 미련을 갖는 건 미련할 짓이다. 각 과목의 모의고사집(모의고사 한 권에 5회 정도 수록)을 사서 이틀에 한 번 꼴로 시험을 치라. 열흘이면 다섯 번의 자체 모의고사를 치를 수 있다. 그리고 나서 9월 16일 평가원 시험을 치게 될 것이다. 9월 모의고사 표준점수와 등급에는 이제 책임을 져야한다. 재수생도 모두 치르고, 실업계도 거진 참여하는 실제 수능과 모집단이 거의 같게 된다. 이 시험을 마치고 우는 친구는 수능 다음날 울 것이고, 웃을 수 있는 친구는 수능을 기다리게 된다.

<제4기, 모의고사 제2기>
그 다음은 기말고사 준비로 한 20일. 기말고사 마치고 나면 수능 40일 전이다.
이 40일에는 사실 실력을 쌓을 수 없다. 이젠 쌓아올릴 게 아니라, 인테리어를 할 때이다. 이 때까지도 쌓으려고 하면 마무리에 실패한다. 마지막 정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수능 치고 나야 실감할 거다. 40일 동안 할 일은 다시 모의고사 치는 일이다. 이틀에 한 번 꼴로 모의고사를 치면 10회 이상 치를 수 있다. 모의고사 제1기와 다른 점은 이 때는 월 언수, 화 영사 이렇게 칠게 아니라, 자기가 부족한 과목을 집중 배치하는 것이다. 월요일은 언어 2회, 화요일은 영어와 사탐, 수요일은 언어와 사탐(결국 언어는 세 번, 사탐은 두 번, 영어는 한 번 보게 되는 학생의 예)을 보는 식으로 약한 과목의 모의 고사를 계속 치면서 감각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수능이 마치면, 허전하다. 선생님이랑 친구들이랑 손잡고 여기저기 놀러다니다가 점수 나오면 원서만 쓰면 된다.

앞으로도 한 시기가 지날 때마다 편지를 받게 될 거다. 제발 선생님의 편지를 여러 번 읽지만 말고, 마음에 새겨 도움을 받는 친구들이 여러 명이면 좋겠다. 고3은 상담도 중요한데 너희 공부하는 시간을 빼앗기도 미안하고 하니, 앞으로는 내 편지를 받으면 너희도 마음을 정리해서 주말이나 휴일에 선생님에게 답장을 보내주면 좋겠다. (shy3042@hanmail.net) 답장을 읽어보고 필요하면 상담을 하든지 하자.

자, 오늘부터 국영수 다지기 30일 코스를 시작한다. 계획을 잘 짜고, 잘 실천해서, 필승의 노력으로 30일 코스를 완주하고 평가원 시험에서 훌륭한 결과를 기대한다.

햇살이 따가운 5월의 첫 날, 예쁜이들을 정말 사랑하는 담임선생님이 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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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4-06-11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동생도 올해 고3인데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추천하고 퍼가겠습니다^^
 

담임 통신 2004 - 2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프로가 되자

마흔 명의 숙녀들, 안녕.
엄마보다 더 자주 만나는 담임선생님이다.
이제 너희를 만난 지 벌써 두 달이 지나가고 있다. 여섯 달만 더 너희랑 뒹굴면 수능이다. 정말 세월 빠르지?

두 달을 너희 쳐다보면서 느낀 걸 몇 가지 말하고 싶다.
너희는 처음 만나는 고3이겠지만, 선생님은 너희 같은 아이들을 해마다 만나고 떠나 보내는 게 일이다 보니, 너희한테 요구하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다.

오늘 할 말은 프로가 되라는 것이다.
아마추어가 프로의 반대라는 정도는 알고 있을 거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뭘까? 프로는 돈을 위해 일하고, 아마추어는 취미나 흥미로 하는 것? 글쎄. 그럴 수도 있지만, 난 너희를 보면서 고1,2까지는 아마추어고 고3은 프로가 되어야 한다고 주문하고 싶다. 물론 이 종이를 소중하게 가슴에 새기는 친구는 너희 중 5% 미만일 거란 사실을 난 알지만, 내겐 그 5%의 학생이 정말 소중한 제자란다.
삼십 년 지나서 선생님의 그 때 편지를 읽고 제가 이렇게 살았어요 하는 제자가 5% 아니라 1%만 있어도 난 행복한 선생님이라 생각하니깐...

고3은 프로다. 그럼 프로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첫째, 아마추어는 늘 변명을 할 수 있다. 경기에 지든 이기든, 결과에는 연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그게 제일이라는 둥, 결과보다는 과정을 중시한다는 둥, 승부보다는 참여에 의미를 둔다는 둥, 정당한 방법으로 싸워서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등의 변명이 아마추어리즘을 아름답게 만든다. 그러나, 프로에겐 변명이란 있을 수 없다. 경기에 이기면 잘 한 것이고, 지면 잘못한 것이다. 과정없는 결과는 없지만, 반드시 결과를 이뤄내야한다. 그게 프로다. 참여하는 데 의미를 두는 프로는 없다. 프로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든 이겨야 한다. 그게 프로다.

둘째, 프로는 자기 관리에 철저하다. 자기 관리 없는 승리는 기약할 수 없으니까. 난 권상우를 보고 '나도 저런 몸매를 가져봤으면…' 하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는 프로니까. 내가 만일 영화배우라면 나도 석 달 안에 저런 몸매 가질 수 있다. 물론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르겠지만, 프로라면 목표를 정해서 어떠한 고통도 감수해 나가는 것이 정석이다. 나를 더욱 가치있는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라면, 프로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셋째, 프로는 시간을 초월한다. 사람은 여섯 시간 내지 일곱 시간을 자야 한다고 일반적으로 말하고, 하루 세 끼를 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아마추어는 그걸 잘 지키면서 생활한다. 평소에 몸을 가꾸고, 운동을 꾸준히 한다. 그러나 프로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단기간에 체중 조절에 나선다. 필요하다면 하루 한 시간 잘 수 있어야 프로다.

마지막, 프로에겐 꿈이 있다. 꿈이 없다면 그건 프로가 될 수 없다. 자기 분야의 최고가 되는 것이 프로의 꿈인데, 꿈이 없다면 높이 날고 싶단 생각도 없을 게고 늘 망설임으로 주저하는 삶을 살게 된다. 유승준의 비전이란 노래 중에 이런 대목이 있잖아.

높이 날고 싶다면 작은 망설임은 걷어 차버려. 끝없는 미지를 향해 내디뎌야 해! 새롭게 시작되는 오늘에 누구도 나를 대신 살아 줄 수는 없는거야 … 네 삶을 사는 것이 아냐 뜻이 없다면... 메뉴얼대로 살아만 간다면 과연 꿈꿀 수 있을까? 다시 태어난다 해도 자신이고 싶은 그런 모습의 그삶을 위하여 발을 내디뎌! 그 아무도 알 수 없는 내일로...

쉽게 아프다고 하고, 집에 보내달라고 하는 너희를 보면, 아직 아마추어라고 생각한다. 아마추어는 아프면 쉬지만, 프로는 아프지 않는다. 프로에겐 의지가 있으니깐. '의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어도, 의지 없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너희 교실 오른 쪽엔 늘 이 말이 너희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자꾸 비관적인 생각이 들고 힘이 빠지고 '난 왜 안될까.', '이러다 정말 안 되는 거 아닐까?' 이런 비관적 생각이 들더라도, 의지로 <낙관>하자꾸나.

너희 옆엔 선생님이 있고, 서른 아홉명의 친구들이 있고, 가족들의 기대가 있으니까.

그리고 정말 예쁜 너희에겐, 아직 열아홉이란 젊은 나이가 훈장처럼 지키고 있고, 아직 일곱 달이란 여유가 있고, 아직도 깨끗한 백지의 3학년의 생활기록부가 남아있으니까. 생활기록부에 까만 글씨로 하나 하나 성적이 들어가면 너희가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느는 반면 가능성은 줄어든다는 걸 생각하기 바란다.

이제 중간고사 며칠 안 남았지만, 중간 고사 기간을 맞아서 몇 가지 부탁하자.
첫째, 교실을 독서실로 만들자. 큰 소리를 내지 말고, 늘 서로에게 따뜻한 사람이 되자. 다른 반 친구들은 되도록 밖에서 만나자. 그리고 깨끗하게 사용하고.
둘째, 자기 시간을 자기가 잘 사용하자. 등교 시간, 영어듣기 시간, 수업 시간에 완전학습하기, 점심시간에 자거나 공부하기, 틈틈이 단어 책상에 써 보고, 낙서하기. 발음 좋은 친구가 떠드는 영어 듣기. 무엇보다 시험공부 다 하기 전엔 안 자기.

마흔 명의 숙녀들과 생활하는 나날이 즐거움인
 담임선생님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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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통신 2004 - 1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게임의 법칙을 알면 게임이 즐겁다

마흔 명의 숙녀들, 안녕.
새 학년도의 담임을 맡은 정영섭 선생님이다. 입시 준비에 긴장감이 가득할 우리 교실에 들어서서 내가 잔소리를 늘어놓기도 어려울 거 같아서 몇 자 미리 적었다.
12년의 고등학교 시절을 마무리해야할 가장 중요한 1년을 우린 같은 배에 올랐다. 미리 바란다면, 내년 졸업식에 모두 즐거운 얼굴로 행복한 졸업을 맞기 바란다. 너희와 반가움을 나눌 시간조차도 아껴야 할 지금, 선생님이 붙인 제목이 좀 희한하지? '게임의 법칙을 알면 게임이 즐겁다.' 1년간 너희 고3 생활을 힘들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게임이라고 여겨 즐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한 제목이다.

우선, '게임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인터넷 게임을 하나 생각해 보자.
게임의 법칙 하나. 모든 게임은 시작할 때 레벨 1에서 시작한다. 내가 레벨 1에서 버벅거릴 때 높은 지력과 마법을 쓰는 사람도 원래는 1이었던 거다.
게임의 법칙 둘. 모든 게임은 공정하지도, 공평하지도 않다. 어떤 때는 한 시간 투자하면 한 레벨을 올릴 수 있지만, 어떤 때는 두 시간 투자해도 별로 소득이 없을 때도 있고, 누구는 좋은 아이템을 잘 얻는데, 난 아닐 수도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전혀 공평하지 않다. 인정하면 맘 편하다.
게임의 법칙 셋. 게임은 레벨이 오를수록 어려워진다. 레벨 2로 오르기 위해서는 아주 허약한 몬스터 십여 마리만 처치하면 된다. 레벨 3으로 오를 때는 이십여 마리…. 레벨 10정도 되면 100여 마리. 여기까진 재미있고 쉽다. 하루만에 오를 수도 있다. 그러다가 레벨이 20이 넘어서면 하루에 1레벨 올리기도 어렵다. 3,40 레벨 정도 되면 한 레벨 올리기가 정말 어렵다. 이 때쯤 많은 사람들은 게임을 그만두고 다른 게임을 찾는다. 아니면 남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서 새 아이디를 만들거나.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은, 레벨이 오를수록 게임은 어려워진다는 것. 인식해라.
게임의 법칙 넷. 게임을 하다보면 캐릭터가 반드시 죽는 때가 있다. 그 이유는 너무 어려운 상대를 찾아가서 무리하게 득점을 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포기하는 사람은 없다. 죽지 않으려면 적절한 상대를 찾아 꾸준히 득점하는 것이 요령이다.
게임의 법칙 다섯. 누구나 절대적인 시간을 투자하면 '신의 경지'에 오를 수 있다. 예외는 없다. 게임의 법칙 두 번째에서 게임은 공평하지 않다고 했지만, 게임은 마지막까지 참고 진행하기만 한다면 누구나 그 기쁨을 나눌 수 있다.

자, 이 쯤 해 두자. 내가 첫날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언지 눈치 챘을테니깐.
1. 너희는 모두 비슷한 머릴 갖고 태어났다.
2. 그러나 너희의 가정 환경과 지적 조건, 사회 환경 등은 공평하지 않아서 지금 많은 차이를 보인다.
3. 학년이 오르고, 시간이 흐를수록 공부는 어렵게 마련이다. 그렇다는 걸 알면 스트레스가 적다.
4. 누구에게나 슬럼프는 온다. 헤매지 말고, 다시 시작하자.
5. 꾸준히 노력한 자에게 행복한 결과가 온다.
고3 생활을 힘들다고만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1,2학년 때 재미있게 생활했듯이 3학년 생활도 충분히 즐겁다. 차분히 준비해 나간다면. '너'의 옆엔 다른 서른 아홉의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으니깐.

다음엔, '개구리 법칙'을 이야기하고 몇 가지 잔소릴 하자.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집어넣으면 깜짝 놀라서 죽을 힘을 다해 <팔짝> 뛰쳐나온다. 그러나, 개구리를 미지근한 물에 넣고 서서히 가열하면 개구리는 따뜻함을 즐기다 그만 익어서 뒤집어지고 만다. <나쁜 습관>은 이와 같이 서서히 우리에게 다가와서 우리를 '희-떡-' 뒤집어지게 만들고 만다는 거다. 나쁜 습관은 깜짝 놀라서, 과감히 '확' 버리자. 도둑들도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집중>하고, 서로 <협력>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잠을 설쳐대는데, 우리처럼 가치있는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다면 정말 몹쓸 일이다.

잔소리 몇 가지.
첫째, 재수하지 말고 올해 대학 가려면, 남은 8개월 정말 열심히 해라.
둘째,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라. 아침에 정해진 시각까지 입실하고, 영어듣기 시간에 절대 딴 짓 하지 말고, 수업 시간에 졸거나 건방지게 다른 과목 공부하지 말고, 자율학습 충실히 하고, 열 시에 귀가해라. 학원에, 독서실에 목숨거는 녀석 치고 좋은 대학 간 놈 없다.
셋째, 자신감을 가져라. 늘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오늘 하루를 잘 보내면 미래는 밝다는 생각을 갖기 바란다. 스스로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오늘을 망치게 되고, 미래를 그르치는 길로 간다.
넷째, 나는 '오늘'밖에 살 수 없다. 지나간 과거에 대해 후회하지 말 것이며, 다가올 미래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 지어다. 과거와 미래는 후회하고 걱정해도 너희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오늘' 열심히 산 자만이 소득이 있다.
다섯째, 상담은 수능 치고 나서 해라. 친구에게 상담 많이 하는 사람은 그것이 다 공부하기 싫은 '핑계'임을 깨달아라. 정말 상담할 일이 있으면 선생님에게 오너라. 기름이 떨어질 때 들르는 주유소라고 생각하고 부담없이 찾아오기 바란다.
여섯째, '자신의 꿈'을 사랑하자. 지금의 내 성적과 가정 환경과 경제적 형편을 모두 고려하다보면 보석같은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말고, 지금의 내 성적이 충분히 좋고, 경제적으로 상당히 넉넉하다면 무얼 하고 싶은지. 깊이 생각해 보거라. 그리고 그걸 하거라. 꿈을 갖는다는 건, 바로 이거다. 그것을 하기만 하면 된다.
마지막, 이 종이 버리지 마라. 선생님이 필요하다고 생각될 때마다 한 장씩 나눠주는 잔소리를 쓰지만 달게 받아들이는 예쁜이들이 되면 고맙겠다.

정말 좋은 학급을 맡아서 고마웠다고 졸업식장에서 인사하고 싶구나.
너희를 만난 첫 날에 새 담임선생님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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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의 일이다.
여름방학 과제로 독후감을 걷었다.
독후감을 읽는 것은 상당한 인내를 필요로 한다.
그래도 예전엔 아이들 글에서 사람의 냄새가 나고, "그래, 이 아이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하는 이해의 가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하도 급속도로 변하고, 아이들도 우리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라나다 보니, 이제 독후감을 읽는다는 것이 괴로움을 넘어 무의미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아이들의 독후감을 읽으면서, 계속 "이 아이는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게 아닐까?"하는 의구심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이해의 가교]가 아닌 [오해의 출발]이 되는 셈이다.
더군다나 아이들의 솜씨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는 상을 줄 아이인지, 아니면, <진실>을 밝혀 내어 상을 주어서는 안 되는 아이인지를 가리는 것도 참으로 난처하고 어려운 일이다.
우리 학교 학생들 중에서 "나는 우리 집 장녀로써…"한 남학생도 있었고, "나는 경기과학고등학교를 다니면서…"하는 학생도 있었다. 인터넷에서 주운 글을 읽지도 않고 인쇄해서 냈다는 말이다.

독후감에 대한 몇 가지 생각을 간추려 본다.
첫째로, 독후감은 줄거리 요약이 아니다. 줄거리 90%, 감상 10%인 글은 독서 '감상'문이 아닌 독서 '줄거리'문이 되는 셈이다.
예를 들면, 하근찬의 '수난 이대'를 읽었다면, 줄거리는 '이 소설은 일제 강점기와 6·25라는 민족의 수난사를 부자 2대에 걸쳐 그린(형상화한) 소설' 정도면 충분하다.
둘째, 소설의 3요소(주제, 구성, 문체)와 소설 구성의 3요소(인물, 사건, 배경)을 찾는 과정을 적으면 훌륭한 독후감이 된다.
작가의 중심 생각(주제)을 따라 여행하고, 작가의 말투(문체)에서 풍기는 맛을 즐기며, 소설의 여러 요소들이 얽어져 이뤄내는 갈등의 수풀(구성)을 헤치다보면, 어떤 시대의 특정한 사회상 속에서(배경) 주인공과 대립되는 인물들(인물)이 겪는 다양한 인생 경험(사건)도 간접 체험하게 되는 상상 속의 여행이 곧 독서요, 그 상상 여행의 기록이 독서감상문이 된다.
셋째, 독후감은 책의 행간(行間)을 읽어내는 활동이다.
작가의 드러나지 않은 서술 의도를 찾으며 읽는 것은 즐거운 지혜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도 하다. 보통 우리보다 인생의 선배인 작가가 얼핏얼핏 보여주는 메시지는 우리를 '생각하는 갈대'로 만들어 준다. 주마등(走馬燈)같이 스쳐 지나는 삶에서 인생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독서의 즐거움은 적극적인 읽어내기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감상문(感想文)이란 이 선배들의 화제를 사고하는 과정을 기록한 글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 특히 문학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지나간 시간의 역사를 살아온 선배들과 나누는 한담(閑談)이고 대화(對話)이며 토론(討論)이다.

그런데 우리 학생들의 독후감을 읽다보면, 두드러진 특징이 보인다.
남학생과 여학생의 독후감의 차이는 남성과 여성의 성향 차이에서 오는 듯한데, 남학생들이 문제 해결형인데 비해 여학생들은 정서 공감형인 경향이 짙다.
남학생들의 독후감이 시대 속에서 옳거나 그른 인물들의 판단에 중점이 있다면, 여학생들의 글에서는 작중 인물에 대한 공감적 정서나 반감을 드러내는 일이 흔하다. 그래서 남학생들의 글이 딱딱하고 무미건조하기 쉬운 반면, 여학생들의 글은 말랑말랑하고 섬세한 감정이 잘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남학생과 여학생의 독후감을 섞어 읽다보면 공통점도 있는데, 바로 '자기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독후감은 자기 감상이 주가 되어야 하는 글이므로, 작중 인물과 사건 전개에 대한 정서의 공감과 문제의 해결이 [내 생각]이란 내용에 녹아 전개되어야 한다.

또 독후감은 좋은 논술문을 쓰기 위한 기초가 되기도 한다.
논술이란 자기 생각을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을 적어가는 것이다.
그러자면 어디에선가 생각의 꼬투리(실마리)를 찾아내야 하는데, 독후감은 생각의 시작점을 찾아 풀어낼 수 있는 좋은 논술의 기초자료임을 잊지 말고,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유명 대학의 논술 문제들은 대부분, 어느 정도의 글을 읽고, 거기 대한 자기 생각을 논술하라는 식으로 - 이를테면, 짧은 글을 읽은 독후감을 쓰라는 형식인 경우가 많음을 상기해 봄직하지 않은가.
앞으로 입시에서 중요한 관건이 될 구술·심층면접에서도 전공 분야와 관련된 학생의 독서 경험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들어가게 될 것이다. 긴 방학을 이용하여 나의 진로와 관련된 책 한 권쯤 읽을 계획을 세우고, 미리 머리 속에서 스스로 면접을 보도록 준비시키는 방법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친구와 얘기를 나누거나 나보다 좀 독서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과 독서 토론을 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고.

아이들의 독후감 쓰기에 더욱 적극적인 개입과 지도가 필요할 때임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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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가적 화자(流行歌的 話者)]와 시대 흐름
   - 노래 가사를 통한 세상 보기

올림픽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여성 궁사들의 저력이 돋보인다.
결승전은 볼수록 재미있는 장면들인데, 그 원인을 혹자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집중력의 승리라고도 혹자는 한국 사회 아줌마의 뚝심의 발현이라고도 한다. 아무튼 대단한 [여성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예전엔 기다림의 미학, 순종과 한(恨)의 정서를 여성적이라 표현해 왔고, 우리 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는 아직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
시대의 흐름을 가장 잘 담고 있는 유행가의 가사를 통하여 세상의 변화를 조금이나마 같이 생각해 보고자 함이 이 글의 목적이다.

시에서 [시적 화자]는 매우 중요하다. 시는 [나(서정적 자아)의 독백] 형태로 이루어지므로 시적 화자의 처지를 고려함은 시를 이해하는 핵심인 것이다.
최근 발표되는 노래들의 화자를 편의상 [유행가적 화자]라 부르고, 그 특징과 남성, 여성 화자의 가사 내용을 몇 가지 대비해 그 특질을 살펴보려 한다.

우선, [유행가적 화자]가 [시적 화자]와 다른 점을 대조해 보면, [시적 화자]의 언어에 비해 훨씬 직설적이란 것이다.
이런 노래가 있다.
{I just wanna be loved, someone like you, Driving me crazy.}
난 너처럼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 날 미치게 만들만큼. 대략 이런 뜻인데, 이 [유행가적 화자]의 어법은 얼마나 직설적인가. 김소월이 '산유화'에서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있네.]라고 하면서 나의 고독과 소외감을 우회적으로 나타낸 데 비한다면, [유행가적 화자]는 훨씬 직설적 어법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너를 볼 수 있을까, 이렇게 너의 집앞에 오고 만거야}
사랑은 행복하고 가슴뛰게 하는 호르몬도 내보내지만, 가슴 찢어지는 이별도 경험하게 한다.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했던가. 만나면 헤어지기가 정해져 있다고. 이별의 아픔을, 슬픔을 승화시켜 아름답게 기억하려 했던 지난 노래들에 비해 이 노래의 제목은 사뭇 충격적이다. 이별의 슬픔을 <사랑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숨가쁜 심장 박동과 같은 리듬감을 타고 흐르는 {그대여, 왜 망설이나요∼}(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은 한 번 들어보세요.)라는 노래에서 한(恨)의 정서, 기다림의 정서가 얼마나 직설적으로 바뀌었는지 확인해 볼 일이다.

또 하나, 요즘 노래들에서 두드러진 점은 여성 화자의 강세이다.
이정현의 3음보격 가사를 들어보라.
{ 이세상에 많고많은 여잘대신해/ 한마디만 하고싶어 새겨들어봐./
사랑이란 이름으로 장난치지마/ 너 역시 사랑땜에 울수도 있어/ (와우)}
마지막의 비명소리는 여태까지 음악에서 듣지 못한 섬찟한 경고로 들을 수 있다.
이런 노래도 있다.
{너 나를 쉽게 봤어, 그렇지 않니?} 상당히 도전적인 말투이다.
{끝낸다면 내가 끝내, 기억해.}
여성이 수동적이던 자세를 버리고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유행가적 화자]로 우뚝 서는 순간이다.
이런 노래도 있다.
{내가 먼저 이런 얘길 한다면/ 언제나 남자들은 부담스러워하지.
너 역시 그렇다면 어쩔 수 없어/ 넌 사랑받을 자격도 없는 거니까.}

이런 반면 남성들의 노래에서는 한결같은 수동성, 피동성이 감지된다.
god의 노래에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라는 게 있다. 뭘 기억할까?
{떠난 게 후회될 땐, 언제라도 내품으로 돌아와도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거다.
{다시 내게 올 수 없겠니, 너 없는 세상 어디에서도 견딜 수 없는 날 위해.}
D.O.C의 노래에서 그렇게 용감하고 씩씩하게 남성적인 어조로 두 팔을 마구 휘저으며 역동적으로 'bounce with me, bounce with me' 하고 외치지만 노래의 내용은
{달려가겠어 훨훨날아 가겠어. 널 안아 주겠어 내 모든 걸 주겠어. I want you. I need you. I'll run to you}란 것이다. 네가 부르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한(恨?)이 절절하지 않은가.
내용이 좀 어색하면 영어로 잘 알아듣지 못하게, {낯설게 할} 뿐이다.
컨츄리 꼬꼬에 가면 남성적 왜소함의 극치를 만난다.
{오 가니, 오 가니, 오 가니, 왜 가이∼(여기도 들어봐야 안다.)}
지난 시대는 남성성(男性性)의 시대였다. 전쟁, 힘, 돈…. 오로지 남을 누르기.
그러나 이제 여성성(女性性)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포용성, 평화, 환경, 그리고 통일. 함께 살기.

물론 몇 가지 예를 들었을 뿐이지만, 여기서 벗어나는 예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
이런 글을 써 본 이유는, {뭐든지 좀 깊이 생각하자}는 것이다. 노래를 들어도 생각하며 듣고, 책을 읽어도 생각하면서 읽자는 의도 외의 어떤 불순함도 없다.
세상은 그저 피동적으로 살아지는 삶이어서는 안되지 않을까. 내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삶이라야 [나의 인생]이 되지 않을까. 그러자면 내 방식의 세상 읽기가 필요한 것이다.
너무 교과서밖에 모르는 범생이(부정적 의미의)로 살면서 닫힌 사고, 갇힌 사고를 해서는 안되고, 세상을 향해 마음과 눈을 열어야 됨을 역설하는 노래로 끝을 낸다.
{간듯했던 네게 수퍼초울트라 펀치.
반듯했던 네게 수퍼초울트라 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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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가을에 아이들에게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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