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샘의 유럽 기행

 

교육청의 예산으로 유럽을 돌아보게 되는 좋은 기회였다. 영국,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모두 네 나라를 구박십일일동안 여행하였다. 오랜만에 푹 쉬면서 맘껏 이런저런 혼자의 생각을 할 기회가 주어져 정말 행복했다. 그 생각의 편린들을 몇 달 후면 놓치게 되기 쉬워 간단하게나마 기록으로 남긴다.

 

제1일. 해를 따라 서쪽으로

2004년 8월 10일 부산의 김해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서 내려 다시 인천공항으로 가는 리무진을 타고 인천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한 것이 오후 두 시. 지금의 내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다. 두 번의 기내식을 먹어 배는 더부룩하고, 시속 1000킬로미터로 날아도 해를 따라잡지 못한 대한항공은 이제 석양을 보며 날고 있다. 바다보다 낮은 나라 네덜란드의 구획진 논밭과 짙푸른 흑해를 날개 아래 드리운 하늘 위. 늘씬해 보이는 날개는 자세히 보면 수많은 나사들로 조립되어 있다. 비행기 날개 조립 나사공 이야기를 떠올린다. 너무 머리가 좋으면 꾀를 부려서 나중에 박는 나사는 불량이 되고 결국 사고를 부른다고, 해서 늘 아이큐 70의 사람을 나사공으로 뽑는다던... 제잘난 맛에 살던 내 어리석음이 구름처럼 흩어진다. 양력의 원리를 이용해서 뜨고 난다는 비행의 원리는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 큰 쇳덩이가 떠서 난다는 사실만도 놀라울 따름이다. 그것도 시속 천킬로미터라니... 마이클 무어의 '이봐, 내 나라를 돌려줘.'를 읽다. 지루한 열 시간을 재미있게 만들어준 무어에게 땡큐. 2004년 10월의 부시2를 위해 그는 투쟁의 깃발을 든다. 멍청한 백인들의 아집을 폭로하고, 진정한 자유주의 국가를 외치는 그의 목소리는 우렁찬 양심인듯 하면서도 왠지 소외되어 보인다. 무서운 범죄자가 지배하는 나라. 그리고 국민들의 대다수가 자유주의자인 나라. 그러나 지도자가 없는 나라, 미국의 모습은 세계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구름으로 무섭고 두려움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다.

영국의 런던 히드로(Heathrow) 국제공항에 내린 것이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 한시, 현지 시각은 9시간 뒤지만 썸머 타임을 적용해서 여덟시간 뒤가 된다. 도착한 시각은 오후 다섯시 경. 인천에서 찌는 듯한 더위를 등지고 왔는데 런던의 날씨는 선선한 전형적 초가을 날씨였다. 동심원 구조로 된(중심이 1 zone, 다음이 2 zone...) 런던의 첫 인상은 숲이 우거진 평원이었다. 산이 보이지 않는 잉글랜드 지역의 평야와 잘 가꾼 나무들, 오래된 나무들... 그런 것이 부러웠다. 영국은 특이하게 차량이 좌측통행하는 나라다. 그래서 횡단보도 건너기가 신경쓰인다. 하지만, 금세 적응되었다. 그 이유는 차가 뜸하면 무단횡단 해도 되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이 차보다 우선이라는 생각. 재미있는 것은 차선을 자로 잰듯이 반듯하게 그리고, 글씨도 각지게 고딕체로 쓴 우리 도로표지와는 다르게, 삐뚤삐뚤하게 차선을 긋고 글씨를 썼다는 것이다. 달라서 재미있는 것도 있고, 낯선 것도 있다. 시차가 적응이 안 되어 새벽 세 시 정도 되어 자다. 첫날은 서른 두 시간을 산 셈이다. 9000보 걷다.

 

제2일. 전통의 도시 런던

잠을 설치고 다섯시 반에 일어났다. 런던 엑셀지구 노보텔에서 자고 그 앞의 빅토리아 도크위의 삐걱거리는 다리를 건너 캐닝타운(통조림 공장이 많아서 canning town.) 주택가로 조깅을 나가다. 조그만 공원을 잠궜다가 여섯시 십분에 열었다. 여기도 잠그지 않으면 관리가 안 되는 모양이다. 공원 안의 놀이터가 예뻤다. 작은 공원이지만 오래된 나무들 사이로 발길에 채이는 아침 이슬들, 그리고 향긋한 풀내음을 맡으며 다니는 것은 외국 여행의 또 한 재미였다. 이번 여행을 앞두고 결심한 것이 일정상의 여행은 그 나라의 과거를 보는 역사기행이기 쉽지만, 나는 매일 아침 한 시간 정도 숙소 주변을 돌아 보며 그 사람들의 사는 현재의 모습을 보고 오리라던 것이었기 때문에... 매일 달렸다. 우리가  카드에서 자주 만나던 집앞과 창가의 제라늄, 장미, 이름도 모를 숱한 예쁜 꽃들... 이름이 없어도 그대로 예쁜 그 존재들을 보면서, 팍팍한 우리 삶을 돌아보았다. 우리도 오십년 전에는 집안팎과 세상이 온통 풀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식민지와 전쟁이 남긴 폐허와 복구 뒤의 아스팔트, 시멘트 건물들의 팍팍한 모습이란...

영국대사관에 있는 문화원을 방문하기로 되어 우리팀은 단독으로 지하철로 이동하였는데, 자동판매기에서 티켓도 끊지 못하는 우리를 켄싱턴 공대에 다닌다는 제닝스라는 친절한 학생이 표를 끊어주고, 우리를 갈아타는 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런던 지하철을 튜브라고 하는데, 정말 좁고 냄새나는 심히 견디기 어려운 공간이었다. 우연히 앞에 선 아가씨가 등에 문신 새긴 것을 봤는데, 災(재앙재)자를 새겨 신기해했다. 알고는 달고다니지 못할 글자인데... 지하철에서 나오는데 티켓이 걸렸다. 곤란해하는 일행을 본 띵띵한 역무원이 웃으면서 'jump'하는 것이었다. 뛰어넘으라니... 잠시 후 웃으며 그 역무원은 카드를 대서 통로를 열어 주다. 대사관 가는 길을 몰라 곤란해하다가 다시 그 띵띵한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친절하게 안내판으로 가서 찾아주었다. 우연이었을까. 친절한 영국인 두 명을 만난 것은.

빅토리아 거리를 따라서 대사관을 찾았다. 하루만인데도 태극기와 우리나라말이 그리도 반가웠다. 이화성 문화원장님께서 영국의 교육제도를 자세히 말씀해 주셨다. 골자는 자생적 교육이 발달하였고, 지방자치제의 효율성이 학교에도 침투되어 있다는 것. 공교육이 부실하기는 하지만, 신뢰감을 잃지는 않고 있다는 것. 기반이 다르므로 우리와는 다른 것을 인정하고 우리 교육을 발달시켜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주5일제 개념은 공휴일이 요일개념이고, 휴가도 종교적 유대와 동일성이 기반이 된 것이므로 우리처럼 음력과 날짜를 정하는 공휴일과는 다르다는 것. 환담을 나누다가 대사관 앞의 알버트라는 전통 영국식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다. 물도 돈 내고 사먹는 나라. 아, 벌써 우리 나라가 그리웠다. 음식은 비싸고 배만 불렀다. 맛은... 느끼(유목민족의 습성때문인지 맛내고 조리하는 것은 꽝이다)- 재미있는 점은 종업원들이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우리나라 같으면 중간에 바꾸거나 취소를 하면 주인 눈치를 보기 마련인데, 'no problem!' 하면서 눈치보지 않고 즐겁게 일하는 영국인들을 보며, 역시 영국은 노동자가 즐거운 나라란 생각이 든다.

원장님과 헤어지고 교환교수로 윔블던에 머무시는 교원대 함수곤 교수님과 사모님을 만나다. 런던까지 와서 관광을 못하고 교육 토론만 하는 것 아닌가 하고 내심 불만이었는데, 함교수님은 그런 내 속내를 눈치채셨는지 가이드를 자청하시며 런던의 구석구석을 짧은 시간에 구경시켜 주셨다. Buckingham 궁의 근위병 교대식은 못 보았지만, 그 통로인 몰(moll), 근위병들의 숙소를 지나, 세인트 스미드 파크를 지나 영국 국회의사당 건물에 도착, 빅벤 구경하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아프리카에도 식민지 정책을 폈으므로 흑인들도 많이 보이고... 험한 일 하는 데는 흑인들이 많다. 마음껏 돌아다니며 사람 구경은 실컷 했다. 살색도 많이 봤다. 다들 내 놓고 돌아다니니 아니 볼 수 없었다. 돌아다니다가 화장실을 만나면 무조건 들어갔다. 런던에는 거의 유료화장실이므로 가이드가 가라면 무조건 가라는 것이다. 화장실 소변기가 따로 없고, 물 흐르는 시설만 된 소박한 것이 맘에 들었다. 찰스황태자와 다이애나 비가 결혼했다는 웨스트 민스터 사원(Abbey)을 보고, 타워가든 파크의 조용한 잔디밭을 지나 로댕의 깔레의 사람들이란 유명한 조각상을 보고, 템즈강변에서 바람쐬다. 골든 주빌레 브리지(환갑이라나)를 건너 워털루브리지(비비안리가 나오는 영화 애수의 배경이 된 다리, 영화의 원제도 워털루 브리지) 지나 트라팔가 광장 가는 길에 템즈 강변에서 십여명의 예술가들이 퍼포먼스를 벌이는 것을 구경했다. 온 몸에 색을 칠하고 주위의 시선을 모으는 그들의 모습은 어지간한 런던 여행으로는 맛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런던의 어지간한 곳에서는 늘 보이는 런던 아이(London eye), 빠리는 에펠탑으로 돈 벌고, 런던은 런던 아이로 돈번다는 관람차. 줄이 한없이 길었다. 그렇게 프랑스와 견원지간이라면서도, 필요한 기술은 옮겨다 쓴다는 합리주의자들. 넬슨 제독의 동상을 뒤로 하고 국립 미술관으로 가서 터너, 루벤스 등의 그림을 감상하다. 식사는 차이나타운의 일식집에서 간단하게 먹다. 차이나 거리의 國泰民安 넉자가 영국인들의 사고와 상반되며 금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들의 민안국태의 정신과. 함교수님은 우리 교육의 문제를 영국에 빗대어 18세가 되어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도 자녀에게 의존하는 사회적 의식이 공교육으로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고 진단하셨다. 사회적 분위기가 자식에게 과다한 기대를 하지 않고 독립시키는 것만이 한국 교육의 해법이지, 국가적 차원의 접근은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 임방크먼트역에서 긍정적이고 소탈하고 친절하고 늘 젊으신 함교수님과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숙소로 돌아오다. 안내원에게 어디서 갈아타냐고 묻기까지는 완벽했는데, 히어링이 도대체 안 되는 것이었다. 영어 공부 하려면 똑바로 해야된다는 깨달음. 그리고 하이드 파크, 대영박물관, 타워브리지는 다음을 기약하고 밤비내리는 런던의 마지막 밤에 엽서를 두 장 쓰고 골아떨어지다. 33000보 걷다. 아우, 다리야~~~.

 

제3일, 도버 해협을 건너 빠리로

6시 10분 전 기상하다. 아침을 샌드위치로 간단히 요기하고 전쟁을 떠나는 모든 장병들이 모인다는 워털루 역에서 8시 12분발 Eurostar를 타다. 11시 47분 빠리의 Gare de Nord(북역) 도착.(1시간 시차 적용으로 2시간 반 승차). 식사 후 베르사이유 왕궁을 보다. 입구의 가로수 조경, 루이 14세와 16세의 이야기가 얽힌 방들, 프레스코 벽화와 아름다운 기하학적 정원의 조경, 연못과 조각상들의 아름다움. 도저히 사진으로는 담을 수 없어 눈으로 마음에 깊이 들이마시다. 궁전 입장에 단체는 더 비싸다는, 개인 관람객을 고려한 재미있는 발상. 궁전 입장할 때부터 멀리서 축포처럼 들리던 천둥 소리는 정원(궁전에서 내다볼 때 그 아름답던 기하학적 문야의 정원을 보려면 돈을 따로 내야하지만 정말 옆에서 본 정원은 별거 없었다. 영악한 빠리)을 구경할 즈음, 급기야 포병 출신 나폴레옹의 축포답게 거센 소나기를 드리웠다. 궁궐 통로 컴컴한 곳에 각색의 인종들이 모여 냄새를 풍기며 비를 긋는 중에도 달콤한 입맞춤을 나누는 그들의 개인주의는 도저히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경지였다. 버스를 타고 기욤의 시로 유명한 미라보다리를 지나 다이애나 비의 죽음이 있던 지하도를 지나 빠리의 무지개를 보며 centre de Ponpedu(뽕삐두 문화 센터)를 견학하다. 푸른색의 환기관, 녹색의 수도관, 황색의 전기배관, 적색의 통로를 건물 외관으로 노출한 사고의 전환이 특이했지만, 화장실이 좁고 냄새가 많이 나는 것은 그들의 음식 문화가 물기가 적은 그것이기 때문일까 하는 의문과 함께 우리와 많이 달라서 불편한 점이었다. 퐁네프의 연인들로 유명한 제9호교(pont neuf)를 지나며 가난하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버려야 했던 프랑스 영화가 떠오르기도 했다. 버스가 고장 나서 지하철로 유로식당이란 한식당으로 이동하다. 빠리의 지하철은 우리나라 것과 비슷하다. 우리가 그걸 사왔으니깐. 홀리데이 인 호텔 주변을 한 바퀴 돌다. 역시 멋진 조깅코스와 산책로가 닦여 있다. 이 길을 달리지 못했다면, 피곤해서 골아떨어지고 일어나기도 힘들었으리라. 16000보 걷다.

 

제4일, 빠리의 정신, 프랑스의 혼

Paris의 중심 시떼섬의 노트르담 성당을 관람하다. 영혼의 무게를 다는 조각상과 순교자 생드니의 조각이 인상적이다. 생드니 지방은 98년 월드컵의 결승전이 열린 스타디움이 있다는데 8만명 수용의 규모에 절반이 천만원짜리 암표로 채워졌단다. 아, 지리적 조건의 유리함이여. 우리나라 월드컵에는 비행기 탈 시간이 없어서라도 구경오기 어려웠던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성당 안을 돌며 스테인드 글라스의 아름다움을 보다. 초를 켜는데 작은 것은 2유로, 좀 큰 것은 5유로다.(믿음의 척도는 헌금의 액수다.) 자본의 각박함. 소르본느 대학을 간략히 보고, 국립 도서관을 보다. 그 넓은 공간에 책을 세운듯한 건축물, 채광을 위한 커텐용 나무, 중간의 친환경적 나무숲... Bibliotheque nationale de France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화장실의 소변기였다. 소변기에 똥파리를 그려서 '한 걸음 앞으로...', 'one step ahead...',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닙니다.' 같은 구차한 문구들을 일거에 처리한 기발한 상상력. 오줌으로 똥파리를 맞추다보면 튀어나갈 염려 없음. 역시 Paris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파리였던 셈이다. 빠리는 하수도가 발달해 있기로 유명하다. 공화국 광장의 마리앤느 동상을 보고 또 먹는다. 자주도 먹고 많이도 먹는다. 빠리의 독특한 점은 차선이 좁은데 체증이 없다는 것이다. 지금이 바캉스 기간이기도 하지만, 주차위반을 하면 135유로(190만원)의 벌금을 낸다니... 주정차 위반 안 할 밖에... 그리고 이 사람들은 아직 이메일보다는 우편이 많이 쓰인다는 것이다. La poste를 써붙인 노란 우체국차들이 상당히 자주 보인다. 그래서 그런지 모바일 폰을 얼굴에 착 붙이고 다니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은 영국, 빠리에서는 볼래야 볼 수가 없다. 걸으면서 전화를 해야할 정도로 애정결핍은 아닌 삶이라 그럴까. 우리나라의 휴대 전화 문화는 연구 대상이다.

오후에는 몽마르뜨(순교자의 언덕)의 성심성당(여기는 10유로짜리 초도 있었다)을 돌아보고 화가의 거리를 둘러보았다. 로마의 포석으로 포장된 도로를 따라 날마다 두 번씩 물청소를 한다는 2200킬로미터의 하수도를 가진 빠리의 깨끗한 도로를 보며 샹젤리제(낙원의 들판) 거리를 지나 콩코드 광장을 한 바퀴 돌다. 이 광장에서 1400명의 목이 잘린다. 루이16세, 마리앙트와네트, 로베스 피에르, 그리고 단두대를 만든 기요틴까지. 그래서 이 광장을 피의 광장이라고 부른다. 이집트 람세스 2세때의 오벨리스크를 도적질 해다 이 광장에 박아 놓다.

나폴레옹의 60번의 승전을 기념한다는 그 유명한 샹젤리제 거리의 개선문을 보다. 50m 높이, 폭 45m의 건축물은 보기에도 웅장하고 아름답다. 개선문은 파리 구시가지의 중심으로 모두 방사상의 12개의 방향으로 길이 뻗어있다. 대단한 도시 계획이다. 불과 십년도 안 된 해운대 신시가지의 길들이 난개발로 엉망진창인 걸 생각하면, 엄청난 미래를 생각하는 안목이라 할 만하다. 파리의 그 유명한 하수도는 하루에도 두 번 한다는 물청소를 감당한다. 빅토르 휘고의 자베르 경감이 장발장을 쫓던 그 하수도...

루이16세에게 성을 빼앗겼다던 후께(Fouguet)는 유명한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전하고 있는 샹젤리제 거리를 지나며 프랑스 삼색기처럼 적색과 청색으로만 이루어진 간판들이 인상적이었다. 잘 팔리지만 하나씩만 판매한다는 루이비통 가게도 재미있는 풍속도였다. 파리의 구시가지의 중심이 개선문이라면, 신도시의 중심이 라데팡스이다. 1층은 녹지와 건물이고 지하 1층으로 도로가, 지하2층으로 지하철이, 지하 3층은 고속 지하철이, 지하 4층은 고속 도로가 뚫려 있다는 신개념의 도시. 개선문과 일직선상에 놓인 신개선문은 우리 일행은 기가 팍 죽어 조용하게 했다. 미학적이고 실용적인 건물들, 그 기준은 현대적 디자인 감각인 것을 보면,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있는가를 반성하게하는 건물들이었다.

파리의 서른 일곱개 다리 중 가장 아름답다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와 나폴레옹 무덤을 보고 그랑 빨레(Grande palace, 대궁전)와 쁘띠 빨레(Petit palace, 소궁전), 드골 동상을 지나 한국인 식당(Bon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입을 다시고 Eiffel탑을 관람하다. 철거를 생각하고 지었다는 철골구조물이 백년 뒤의 파리를 상징할 줄은 몰랐다지만, 우리의 엑스포 공원은 오래 우려먹을 목적으로 지었지만 철거를 고려해야할 상황인 건 정말 마음 아픈 일이란 자괴감으로 시원한 파리의 경치도 그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세느강 유람선을 타면서 프랑스 말, 영어, 독일어, 이태리어 등등의 끝에 우리말이 나오는 걸 듣고, 우리 관광객의 얼마나 많은지를 새삼 실감했다. 하긴, 유람선 선착장엔 우리말 팜플렛도 구비되어 있다.

유람선을 타고 도는 동안 구경한 파리의 다리들은 세느강을 세계문화유산으로 기록하게할 만 했다. 한강 철교들의 강파른 각도의 견고해 보임과 비교한다면 넉넉한 돌기둥들은 아홉 시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한강 다리들을 안쓰럽게 보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밤 늦게 파리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Moulan Rouge(물랭 루즈, 빨간 풍차, 이 풍차를 보면서 개선문이 서있는 열두거리를 떠올렸다.)를 구경가다. 값은 100유로(140,000원). 남들 가는 데 돈 아깝다고 안 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 따라갔다가 좀 후회했다. 우선 종일 걸은 피로가 몰려들어 밤 열한 시 반부터 시작하는 쇼는 우리를 지치게 만들었고, 삼십분은 족히 서 있었을 긴 줄은 정신을 쏙 빼 놓았다. 자리는 좁고 불편한데 극장 내부도 구질구질해 보이고... 드디어 쇼가 시작되었는데, 무희들이 간혹 가슴을 드러내 놓고 춤을 추기도 하지만, 음악은 빠리 사랑이고, 주제는 에로티시즘을 가장한 내셔널리즘이었다. 샴페인은 맛있었고 춤보다는 서커스가 멋있었다. 18612보 걷다.

 

제5일. 아듀 빠리

오전에 루브르 박물관을 구경하다. 자유로운 관람 시간을 주었으면 좋았을 것을... 모나리자도 보고 여러 화가들의 그림을 관람하며 설명도 들었지만 기억에 남지 않는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루브르에 베르메르의 그림 코너가 있는데 그걸 보지 못한 것이다. 영어 블로슈와 일어판은 있는데 우리말은 없었다. 그 커다란 루브르 박물관의 화장실은 정말 좁고 불편하다. 이 사람들은 화장실이 그렇게 필요없나? 하긴 빠리에서나 런던에서 화장실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거의 없었다. 거기 화장실이 있으므로 의무적으로 갔던 기억 뿐.

리용 역(Gare de Lyon)에서 말로만 듣던 TGV를 타고 스위스로 갔다. 오후 2시 38분 출발 6시 11분 Geneve CFF역 도착. 그 넓은 유럽 대평원을 지나며 양떼를 구경하며 하마 도착하려나 하던 제네바는 정말 멀었다. 나중에 지도로 확인해 보니 제네바는 스위스 서쪽 끝의 도시였다. 제네바는 프랑스어 문화권이며, 스위스는 아직 유로를 쓰지 않는다. 지폐를 받긴 하는데 동전은 모두 프랑뿐이다. 그랑쁘리 호텔에서 짐을 풀고 시간이 남아 Le Reman(레만호) 호반에서 C1소주를 마시다. 몽블랑 다리 옆의 145m 대분수가 인상적이다. 투명하게 맑은 강물은 빙하 녹은 물이라 차가워보이는데, 바닥이 훤히 비칠 정도로 깨끗하고, 숱한 백조와 오리떼는 여유로이 헤엄치고 있었다. 18000보 걷다.

 

제6일. 광복절 아침의 제네바

6시에 기상해서 레만 호수까지 달리다. 방파제에서 일출을 감상했다. 일출의 멋은 역시 해뜨기 전의 설레임과 기다림. 동명일기를 읽으면서 해뜨는 부분이 뒷부분의 장엄한 일부분에 불과한 이유를 늘 궁금해 했거늘, 오늘에서야 그 이유를 느낀다. 해뜨기를 기다리는 동안의 여유로움과 사색의 시간은 일출의 순간에 느끼는 장엄한 감격과는 또다른 하나의 소품이었다. 한여름이건만 고도가 높아 그런지 아침공기가 싸늘하다. 하늘의 비행기들은 궤적을 남기는 것이 인상적인 제네바. 해가 솟아오르며 긋는 물기둥은 내 마음을 충분히 누그럽게 해 주었다.

아침을 먹고 인근의 초등학교를 방문하다(Ecole primier francois). 학교같지도 않은 작은 건물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중심지답게 칼뱅(Kalvins), 쯔빙글리(Ziwingly)들이 등장하고, 우린 삐아제 영감님의 흉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루소의 생가를 지나 유엔의 각종 기구들을 버스 안에서 일별했다. 멀리 보이는 몽블랑(Mont Blanc)은 오늘따라 선명했는데, 몽블랑을 제네바에서 1박 하며 보는 것은 정말 행운이란다. 그만큼 이동네 날씨가 안 좋다는 건데, 몽블랑을 보는 사람은 1년간 운이 좋단다. 유엔 사무국 앞의 Broken chair는 지뢰로 다리를 잃은 아이들을 생각하며 시위용으로 놓은 조형물인데, 이 평화로운 아침에 마음아픈 상처를 떠올리게 한다. 잔디 공원에서의 따가운 햇살은 이곳 사람들이 햇살만 보면 옷을 벗어 제끼고 일광욕을 하는 이유를 느낄 만 했다. 버스를 타고 융프라우를 오르기 위해 인터라켄(Interlaken, Thunersee와 Brienzersee 호수 사이라는 뜻)으로 이동하다. 이곳은 독일어권이다. Jungfrau(처녀)부터가 독일어권임을 알게 한다. 이곳도 유로를 쓰지 않고 CHF(체하 프랑, 헬베티아족의 연합이란 뜻으로 스위스의 국가 명칭은 꽁페드데쑝 헬베티아의 약자를 써서 CH를 쓴다고)를 쓴다. 민우와 아내의 옷을 하나씩 사고, 숙소에서 마지막 남은 쏘주를 동을 내다. 26,000보

 

제7일. 처녀봉 융프라우요흐 등정. 그리고 아우피더젠...

일찍 기상해서 일정이 시작되어 달리진 못하고 조금 걸었다. 산록의 경사가 가팔라 그런지 작은 시냇물도 우렁찬 소릴 낸다. 주변부의 풀들은 우리의 그것과 흡사하다. 융프라우의 아우쯤 되는 융프라우요흐를 오르다. 이곳은 유럽의 지붕이라는 알프스. 융프라우는 4158m이고, 우리가 오른 융프라우요흐는 3454m 높이의 산이다. 우리가 묵은 그린덴발트 동네를 버스로 출발해 로이터부룬넨 역에서 인클라인 기차라는 톱니 달린 협궤기차를 타고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다시 기차를 갈아 타고 정상까지 오르다. 엊저녁에 보던 아이거산의 북벽과는 또다른 빙하덩이들을 보며 오르는 눈맛이 시원하다. 빌헬름텔에 나오던 가난한 스위스가 악조건의 국토를 호조건으로 바꾼 인간 승리의 현장을 돌아보는 우리에게 수수하고 진솔해 보이는 가이드는 그들의 노력하는 모습의 아름다움을 예찬했다. 그 고생끝에 이루어진 세계 제일 부국이라는 결과는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가난을 감내해야하는 현실을 가르쳐 주었다. 해발 2061m의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협궤기차로 그룬트 역으로 돌아오다. 알프스 산록의 숱한 들꽃들. 높이 자라지도 못하면서 가멸차게 솟아오르는 그 힘들은 이 산을 왜 오르는지, 충분히 감격하게 해 주었다.

오래오래 달려 이탈리아로... 버스로 국경을 넘기는 처음이라, 국경에서의 검색 경험을 기다렸으나, 버스는 무사통과. 우리 관광객들이 워낙 많아서 별 문제가 없는 것이리라. 자기들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것일테니깐.

밀라노로 들어서면서 가장 놀라운 장면은 건물에 한 낙서들이다. 낙서를 그대로 두고 사는 사람들. 대단하다. 또 한 사람. 우리가 이태리에 온 것을 열렬히 환영했던 여자가 있었다. 첫날 우린 그 여인을 수십번 만났다. 중요한 두 곳만 가린 인티미씨미의 여인. 오늘은 6,000보 걷다.

 

제8일, 로마 입성.

밀라노를 달릴 때는, 안토니오 그람시 거리를 보고 싶었다. 마침 우리 숙소인 크라운 호텔에서 멀지 않다고 나와 있어 찾아 봤지만, 그람시 거리는 만나지 못했다. 불구의 몸으로 전면전과 국지전 이론을 편 헤게모니 이론의 창시자, 그람시. 우리 반 급훈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를 떠올리며 낙서의 도시 밀라노를 달리다.

밀라노는 패션으로 유명한 도시다. 명품가로 유명한 스카라 극장과 7번째로 크다는 그로테스크한 대성당. 그리고 성을 하나 구경하고 피렌체로 달리다. 도미니끄라는 기사 녀석은 젊은 녀석인데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기만하다.

영어로는 플로렌스라고 한다는 피렌체(Fiolenza)는 내륙이라 그런지 찜통더위였다. 피렌체에서는 십자가 대성당과 그 유명한 정과 열정 사이의 주무대, 두오모 대성당이 인상적이었다. 피렌체의 특징은 낙서를 많이 지웠다는 점이다. 처음엔 낙서가 없어서 낯설었는데 가까이 가 보니 다 지워버린 것이다. 사기꾼같은 가이드 녀석의 불친절과 무식한 안내를 받아가며 하는 여행은 인내심을 길러주는 좋은 점과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여 수명이 단축된다는 나쁜 점이 공존한다. 오늘은 종일 여덟 시간을 버스를 탔다. 오전 나절은 밀라노에서 피렌체로, 오후는 다시 로마로... 역시 이탈리아는 긴 나라였다. 그런데 고속 도로를 달리며 줄곧 한 생각이 우리 고속 도로와 풍경이 비슷하다는 거였다. 나중에 그 날라리 가이드 녀석(이름은 기억하지만 밝히지 않겠음)의 이야기로는 우리 고속 도로가 이태리 기술이란다. 워낙 신용이 안 가는 녀석이라 믿기 어려웠지만, 아무튼 차창으로 날아드는 풍광은 정말 우리 나라의 그것 그대로였다. 야트막한 산지들이 줄곧 따라오는 도로의 정취를 얼마만에 맛본 것인가. 런던 평야와 유럽 대평원의 무미건조함, 그리고 갑자기 다가왔던 스위스의 고산기후. 다만 우리에겐 사과나무와 복숭아나무가 따르는 길이라면 이태리의 그것은 올리브 나무와 포도밭 일색이고, 건초 말아놓은 두루말이들이 인상적이란 것 정도. 저녁 나절에 로마로 입성했다. 로마의 첫 인상은 역시, 낙서의 도시. 밀라노에서 익숙했던 낙서는 피렌체에서 지워졌다가 로마에서 살아났다. 그리고 피렌체와 로마까지 따라와 우릴 반겨준 그 여인 인티미씨미. 오랜만에 순두부, 상추, 불고기를 맛본 비원은 맛있는 식당이었다. 수백년은 된 듯한 수도원 건물을 개조했다는 도무스 마리애 호텔에서 여장을 풀다. 17,200보.

 

제9일. 시오노 나나미의 연인, 로마를 만나다.

드디어 만보기가 고장나다. 너무 써먹었나보다. 도무스 마리애 호텔의 주변은 멋진 공원이 있다. 다시 로마에 가면 이 호텔에서 묵고 싶은 곳이다. 공원을 몇 바퀴 돌았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에 풀잎 가득 맺힌 이슬에서 우러나오는 훈향. 공원 구석엔 마약쟁이들이 버린 듯한 주사기들이 나뒹굴고 있었지만, 공원의 잔디들은 정말 인상적이다.

시오노 나나미, 그녀의 연인 로마를 만나다. 그녀는 로마인들의 무엇에 반해 로마에 그렇게 목매다는 것일까. 사진으로나 보던 콜롯세움을 직접 보니 별 감흥은 없었다. 마치 우리가 아무 것도 없는 황룡사터의 주춧돌들을 볼 때 느끼는 그런 황량감. 사진으로 본 웅장함은 그 건물에서 우러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콜롯세움 옆의 무너진 집터들을 지나면서 내 눈 앞에는 일곱 언덕의 로마인들이 웃고 지나가는 시뮬레이션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골목들을 잠시라도 걷는 행위는 수천 년 전의 늑대의 젖으로 자란 로물루스, 로무스들의 아들 딸들과 만나는 일이었고, 네로와 카이사르를 알현하는 공간이었다. 로마에 오니 시간의 개념이 혼돈스러웠다. 이 공간에서 만보기가 고장난 것은 우연이 아니리라. 고대의 목욕터를 보고 그 정교한 대리석으로 만든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에 다시 로마인들의 환영이 내 옆을 지나다녔다. 벤허의 전차경주장 시르쿠스 막시무스, 베네치아 광장(무쏠리니의 연설로 유명한)과 스페인 광장의 카푸치노. 소매치기 많다는 이태리에선 경찰이 많아서 그런지 소매치기 소동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치안이 잘 되어있다는 제네바에서 우리 일행 중 한 분이, 파키스탄 계 비슷한 소년 세 명에게 지갑을 뺏겼다가 내놔, 임마를 외치며 되찾은 이야기가 오래 회자되었다.

만보기 수치로 18,000보 걷다. 실제로는 30,000보 가량.

저녁때 스페인 광장(이 광장 계단은 로마의 휴일로 아주 유명해졌다.)에서 산 포도주 두 병으로 여행을 마무리하는 모임을 갖다.

 

제10일. 로마의 예술사

발목이 조금 시큰거리고 짐도 싸느라 조깅을 쉬다.

바티칸 박물관 관람을 위한 줄은 길고도 멀었다. 박물관의 조각상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특히 트로이 목마의 입성을 반대하던 예언자 라오콘 상의 꿈틀거리는 입체감이란... 성바오로 대성당 관람. 바티칸 시티는 별도의 국가로 관리되는 신기한 공간이다. 우리 나라의 소도쯤 되던 신성한 공간으로 보였다. 대성당 안의 최후의 심판과 천지 창조를 구경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많은 사람들이 성당을 가득 메웠다. 변화에는 후각이 가장 먼저 적응한다던가. 처음 런던에서 튜브를 탔을 때나, 베르사이유 궁전에서 맡았던 노린내가 이제 그 좁은 공간에 그 많은 사람과 앉았어도 전혀 나지 않는다. 세계적인 프레스코화와 같은 공간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푸근하던 대성당을 나와, 천재 미켈란젤로의 위업을 곱씹다. 근위병이 입은 옷도 그가 디자인한 것이라니... 대천재를 무시해서는 안되는데, 평준화 일색으로만 가는 관주도의 우리 교육을 생각하면 암연히 수수로운 마음이다. 사기꾼 같은 녀석의 가게를 들렀다가, 판테온을 관람하다. 천장에 구멍이 뻥 뚫인 신비로운 건축물. 피에타가 쉬고있는 집. 상승하는 기류 덕에 소나기가 내려도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는 그 웅장한 신들의 터에서 잠시 쉬는 동안 이마에 상처를 입은 마약 중독자로 보이는 집시가 담배를 구걸하러 다니다가 우리 일행이 주었더니, 사우스 코리아 오케이, 노쓰 코리아 배드를 연발하는 걸 보고 씁쓸한 기분이었다. 나보나 광장의 분수들을 보며 이태리에서 먹어봐야한다는 젤라띠를 먹다. 노천 까페의 광장 나보나 광장은 로마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광장이란다. 햇살이 따가워도 그늘만 찾아들면 서늘한 지중해성 기후에서 그들이 찾은 생활의 지혜가 이런 노천 까페들을 만들었으리라. 그리고 마지막 관광지는 뒤돌아서서 동전을 던진다는 트레비 분수. 서양의 분수들이 수직으로 솟구치는 역행의 의미를 가졌다면, 트레비 분수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낭만적인 분수다. 동전 하나를 던지면 로마에 다시 오게 되고, 둘을 던지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이 이어지고, 셋을 던지면 만나고싶지 않은 사람과 헤어질 수 있다는 재미있는 말을 듣고, 난 시오노 나나미와 인티미씨미를 만나러 다시 오기 위해 영국돈 1페니를 던졌다. 그리고 로마 공항으로 출발. 로마 공항에서 땀을 뻘뻘흘리며 면세를 받으러 다닌 기억은 이번 여행의 최대 위기였다. 자칫하면 국제 미아가 될 뻔했던 로마 공항의 식은땀나는 추억.

 

9박 11일의 마지막. 아듀 인티미씨미!

돌아오는 대한 항공에 오르니 우리 아가씨들이 반가운 낯으로 맞는다. 집에 다 온 기분이다. 인티미씨미는 그렇게 우리와 헤어졌다.(인티미씨미는 이태리에서 수백번을 만난 속옷 광고다.) 비행기에서 기내식을 먹고 소로우의 월든을 읽으며 잠이 들었다. 저녁 여덟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열한시간을 날았다. 로마 시간으로 아침 일곱시면, 우리 시간으로 오후 두 시. 출발하던 날 여덟 시간을 벌었으니, (빠리에서 한 시간 까먹고) 돌아올 때는 일곱 시간을 까먹어야 하는 걸. 솜뭉치 같은 몸뚱이를 끌고 꿈과 같은 열하루를 마감하며 집으로...

 

길고도 짧았던 이번 여행의 제일의 친구는 역시 내 운동화였다. 런던에서, 빠리에서, 알프스의 제네바와 그린델발트, 그리고 이태리의 밀라노, 로마에서 내 발과 함께 달려 준 헤드 운동화는 오래 되어 엄지발가락이 삐져나오려고도 했지만, 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여유로운 시간들로 내 내면을 가득 채워주었다. 그리고 유럽 여행을 통해서 꼭 읽고 싶었던 책들, 보고 싶었던 영화들, 다시 정신없는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진 못하지만, 먼 나라 이웃나라의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스위스 편과 열 권 읽고 쉬고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들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숱한 건축물들과 조각품들, 프레스코화들을 두고두고 잊기 어려울 것이다. 우연찮은 기회에 국비를 들여 여행하게 된 고마움을 녹여 내일부터는 아이들에게 더 훌륭한 세계인이 되도록 안내하는 미래인이 되어야겠다. 부러워하기만 해서는 그들만큼 될 수 없다. 우리 안에서 우리의 것으로 우리를 채우는 길 뿐.

난 내 두번째 외국 여행을 기록으로 남긴다. 첫번째는 아내와 아들과 동행했으니 아들에게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도 되었지만, 이번엔 아들 녀석이 좀 더 자라면 읽히고픈 유일한 욕심에 간단하나마 정리해서 남기는 것이다. 언젠가 민우가 이 글을 읽고 시야도 넓히고 아빠의 사랑도 느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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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9-0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융프라우...부럽습니다.우리나라 사람들은 융프라우에 집착을 많이 한다죠. 아마 어릴적 달력 사진으로 보았던 환상적인 이미지 때문에...무엇보다 루브르에 가신것이 가장 부럽습니다. 화장실이 좀 나쁘면 어떻습니까. 루브르인데...^^ 풍성한 여행이셨던 것 같아 좋군요.
 

담임통신 2004-5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

장미보다 탐스런 숙녀들에게...

선생님의 다섯 번째 잔소리.
이제 잔소리 듣는 것도 익숙해 질 때가 되었겠지?
잔소리와 쓴소리를 달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성공한다. 이 말은 누가 남긴 명언이냐면, 선생님이 한 소리다.
제목을 한 번 읽어 보렴. 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
너희는 태어난 지 열 여덟해 가량 되었다. 자라면서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안 좋은 일은 꼭 내게 일어난단 말이야.' 이러면서 자신을 머피의 법칙의 주인공으로 여긴 적이 있을 것이다. 수학에서 통계적으로 따질 때, 머피의 법칙은 당연한 거라고 한다. 열 군데의 계산대 중에서 내가 선 줄이 가장 잘 빠질 확률은 10%, 반면에 내가 선 줄이 다른 줄보다 느릴 확률은 90%지.
우리 교실에서도 마흔 명의 숙녀들이 앉아 있으니, 영어를 가장 잘 하는 학생도 1명이란다. 내가 우리 반에서 영어를 가장 잘할 확률은 1/40*100=2.5%다. 그럼 내가 영어를 가장 잘하는 경우가 아닌 확률은 97.5%인거지.
너희가 무얼 바라보며 살고 있는지, 어떤 생각들을 하며 나날을 살고 있는지, 선생님은 참 궁금하다. 그렇다고 너희들과 매일 면담을 하고 수다를 떨 수도 없는 일이고.
우리 반 친구들 중, 운이 좋은 사람은 그 가능성을 선생님이 발견하고 도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그럴 확률은 아주 낮은 거란다.
선생님은 1년에 수십 명의 제자를 맡고 있지만, 국어 선생님으로는 수백 명의 제자를 가르치지만, 선생님이 발견할 수 잇는 빛나는 친구들은 기껏해야 1% 정도밖에 안 되는 거지.
너희가 살아오는 18년 동안 '너희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을 이미 만났을 수도 있고, 아직 못 만났을 수도 있고, 부모님이 그 분들일 수도 있다. 내가 그런 사람일 수도 있고.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을 믿어준 사람을 만나고 못 만나고의 차이가 아니라, <너희 안에는 아무리 어두운 속이라도 반드시 빛나는 부분 1%가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부터 이 말을 품에 품고 살아라. 깨어나서 잠들 때까지. 내 안의 빛나는 1%. 그게 무엇인지를 스스로 발견할 수도 있고, 누가 일깨워줄 수도 있단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남들이 일깨워주는 계기를 성공적으로 받아들이는 건 아니다. 혹은 받아들이더라도, 훗날 기억할지도 모르고, 계속 내 안의 빛나는 1%를 생각하며 살다가, 누군가가 너희의 1%를 건드리는 순간이 오거든 깨닫기만 하면 된다. '아, 나의 빛나는 1%가 바로 이것이었구나!' - 이런 순간을 '행운이 온다'고 말한다.

기말고사 준비로 날마다 힘들겠지만, 모두 웃으며 힘내자. 우리 반 친구들은 다들 잘 웃어서 좋다. 오늘 체육 선생님도 우리 반 활발하다고 칭찬을 하시더구나.(욕이었나?) 스트레스 풀 땐 확실히 풀고, 공부할 땐 정말 정신 번쩍 차리고 하는 친구들이 되자. 기말고사 준비 철저히 하기 바란다. 시험 범위를 재빨리 세 번 읽겠다는 각오로. 어두운 99% 말고, 빛나는 1%를 늘 생각하렴.

이성으로 비관하기 쉬운 유월 열엿새, 담임선생님이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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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4-09-03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글샘님네 반 학생이 되고 싶어요.장미보다 아름답지 않다해도..^^

글샘 2004-09-06 0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우님, 우리 반 애들한테 제가 아름답다고 하진 않았답니다. 탐스럽다고 했지요. 우리반 애들이 한 덩치 하거든요. 정말 탐스런... 장미들이랍니다. ^^;;.
 

담임 통신 2004 - 7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D-100일, 서두르지 말고, 쉬지도 말고


백일주를 마신다는 아이들도 있지만, 정작 입시 준비에 바쁠 너희들에게 백일주란 저 건너 동네 이야기가 되어야 겠지. 드디어 수능 달력이 하루 한 장 씩 넘어갈 그 날이 왔다.

요즘 너희 속내를 이렇게 들여다 보면, 참으로 안쓰럽기 그지없다. 지난 주에 두 친구가 수시 1 합격한 이후로, 모두들 수시 2에 관심들을 가지고 있는데, 내게 맞는 대학이 어딘지 잘 모르겠고, 대학 홈페이지들에 들어가 본들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고, 마음은 복잡한데 머리는 책을 벗어나서 다른데로 튀어 다니고... 날마다 책과 씨름하고 있는 하루 하루가 힘겨우리라. 몇몇 친구는 공부가 힘드니깐 몸이 슬슬 나빠지고, 열심히 하려고 밤 늦게까지 공부했더니,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기 싫고, 하루씩 빠지게 되고...


이제 방학도 절반 가량 지났다. 남은 방학의 계획을 잘 세워서 자기 페이스를 맞추기 바란다. 이제 백일 남은 동안 우리가 할 일은 내게 맞는 공부를 하자는 것이다. 수학을 접은 친구들은 국어, 영어에 최선을 다하기 바란다. 그리고 사탐을 네 과목 다 할 필요 없는 친구는 이제 두 과목이라도 확정해서 목숨 걸고 매진해 볼 때다. (사탐 지정 과목은 교실 뒤편 배치표를 참고하면 되겠다.)

그런데, 이쯤 해서 궁금한 게 있을 것이다. 나의 수시나 정시에 맞는 대학이 어디일까 하는 것. 내가 점쟁이가 아닌 이상 누구누구는 어느 대학 합격! 하고 일러 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지난 대성 모의고사 결과로 교실 뒤편에 붙인 배치표를 기준으로 자기 모의고사 성적으로 적절한 대학의 수준을 찾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수시는 그 대학보다 조금 높은 대학을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자기 점수로 부경대 하위학과가 지원 가능하다면, 수시에는 상위학과 정도로 상향지원하면 될 것이다.

본격적인 상담은 개학하고 나서 하자. 선생님이 다음 주 화요일부터 열흘 동안 출장을 가게 돼서 학교를 비우게 된다. 어차피 수시 2학기 책자와 nesin.co.kr의 자료들이 업데이트 되어야 본격적인 탐색이 쉬워질 것이니깐, 조금 기다리기 바란다. 불안해하면서 이학교 저학교 홈페이지나 뒤지지 말고, 자기 공부에 최선을 다해 주면 좋겠다. 너희가 안절부절하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 불안해 한다고 바뀔 것은 없는 법.

그리고, 전에 준 내신 백분율을 맹신하지 말기 바란다. 학교에 따라서 A양이 전교 석차가 100등이 될 수도 있고, 200등이 될 수도 있단다. 그 애가 음미체를 아주 잘 받았는데 어떤 학교는 국영수사과만 보는 경우도 있거든. 그렇게 되면 석차가 확 뒤바뀐다는 이야기지.


지금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국영(수) 꾸준히 하기, 사탐 2-4과목 집중 정복하기, 그리고 중간고사 준비하기이다. 100일 동안 할 일이 많다. 가장 큰 것은 중간, 기말고사, 수시 2 지원하기, 빠른 곳은 면접보기, 수능원서 쓰기 등. 시간은 잘 갈 것이고, 공부는 잘 안 될 것이다. 이 때 마음에 새겨야 하는 말.


Without haste, without rest.(서두르지 말고, 쉬지도 말고)


남은 서른 일곱 송이의 숙녀들도 조만간 합격의 기쁨을 누릴 것을 의심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d-100일, 너희가 옆에 있어도 너희가 그리운 담임선생님이 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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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2004-08-10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ㅡ 이런 샘이 제게 계셨다면...
고교생활은 한층 더 아름다웠을텐데....
멋집니다...!!!!!!
합격의 기쁨을 누릴 것을 의심하지 말고. 맞아요. 기쁨. 기쁨은 의심을 싫어해요 흑흑.

파란여우 2004-08-10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은 왜 늦게 태어나신겁니까?..하늘도 무심하셔라...

sunnyside 2004-08-11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글을 읽으니 과거 수험생 시절의 압박이 몰려 오는 것 같아 잠시 아찔했었는걸요. ^^ 그래도 이렇게 차분히 설명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면 그 막막함이 한층 덜했을 것 같아요.

글샘 2004-09-03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님/ 제가 있어도 우리 반 아이들의 고교 생활은 충분히 상처투성이랍니다. ㅜ.ㅠ;;; 기쁨은 의심을 싫어한단 말은 제가 적어놓고 보아도 명언입니다. 허허. 우리 반 아이들 서른 여섯(넷은 1학기 수시 합격했습니다.) 모두 합격의 기쁨을 누리기를 오늘도 빕니다. 님도 같이 빌어주시길...(초면에 과한 부탁을.) 근데, 멍은 왜 드셨나요?
여우님/ 제가 늦게 태어난 건, ... 부모님 탓이라지요. 하느님 탓이기도 하구요. ^^''
써니님/ 제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이런 정도라 아이들에게 미안하지만, 간혹 가뭄에 콩이 날까 말까 아이들 중에 희망을 얻는 애들이 있답니다. 반갑습니다.
 

담임 통신 2004 - 6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생 명 수

더위와 시험과 스트레스에 지쳐보이는 숙녀들에게…
우리가 '3-5'란 공동의 배를 타고 항해한지도 벌써 넉달 반이나 되었다. 입시 달력은 무심하게도 툭툭 떨어져 이제 125일이란 숫자를 내보이고 있고.
잠깐, 한숨 짓지 말기 바란다. 125일이라면 게으른 사람도, 作心三日로 고민하는 사람도 충분히 집중할 수 있는 기간이니깐.
오늘 내가 할 이야기는……. 당연히 여름방학을 잘 보내야 한다는 잔소리다.
너희가 여름 방학에 해야할 일은 크게 두 가지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첫째, 규칙적으로 생활해서 계획을 최대한 실현하라는 것.
둘째, 네 미래를 자세히 살피라는 것이다.

자, 12년의 학창 시절의 마지막 방학이다. 알찬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계획을 세울 때는 우선 Outline을 잡아야 한다. 예를 들면, 도치의 방학 계획이 언, 수, 외를 매일 2시간 정도 하고 사탐을 완성하는 것이라 치자.
그렇다면 우선, 7월 15일 ∼ 8월 25일(약 40일)까지 달력을 그린다.
그 다음 언수외부터 배치한다. 문학 1권, 비문학 1권, 수리 1권, 영어 1권, 총 4권의 문제집을 40일만에 다 푸는 게 첫 번째 과제.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시간은 하루에 두세시간 정도.
다음은 사탐의 네 과목을 깔아야겠지. 도치의 선택 과목이 국사, 한국지리, 근현대사, 정치라면, 제일 자신있는 과목을 우선 정복한다. 처음 목표는 낮을수록 좋으니깐. 도치가 제일 좋아하는 정치'♡'를 1순위, 다음은 한국지리, 국사와 근현대사는 어려워@.@∼∼∼. 계획을 세우자. 1과목에 공부할 책은 세 권이 목표.(총 12권)
처음엔 1과목에 4일 잡는다.(기간 엄수) 4일 * 4과목 = 16일 @.@
다음엔 1과목에 3일 잡는다.    3일 * 4과목 = 12일 -.-;;
마지막 1과목에 2일 잡는다.    2일 * 4과목 =  8일 ㅜ.ㅠ;;;;;
     total   36일
그리고 계획표에 적어라.

(참고, 혹시 국사 공부가 어려운 사람은 '독학 국사'란 책이 유명하다. 2권인데 한 번 사서 죽 읽으면 계통이 훨씬 잘 설 것이다.)
사탐 공부하는 시간은 하루 5시간(학교에서 5-6시, 독서실에서 8-12시).

         잔소리 1. 여름 방학 보충 수업에 늦지마라. 늦게 오는 사람에게 저주를 내릴 것이다.
잔소리 2. 사탐 중 자기가 시험 안 치는 과목도 충실히 들어라. 중간 고사에 들어간다. 근현대사 안 치는 사람도 그 점수는 대입 지원에 필요하다.
마지막 잔소리. 오후에는 가능한 한 교실에서 자습하자. 자습에 방해가 되는 사람이 있다면 선생님에게 얘기해라. 쫒아보내겠다. 우리는 지금 각자의 목표를 향해달리는 중이니, 태클은 용서할 수 없다.

둘째, 네 안의 빛나는 1%를 찾아라. 9월이 되면 수시 2학기 원서 접수가 곧 있다. 자기 수준에 맞는 대학과 학과를 미리 찾아 놓기 바란다. 아주 가끔은 1시간 정도 시간을 정해 놓고 인터넷을 통해서 내가 갈 학과와 전형들을 찾아서 '찜'해두어야 2학기 수시에 상담이 가능하다.
이와 같이 도치의 여름 방학은 팍팍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이계획이 실현 불가능하다고는 말하지 마라. 도치는 할 수 있다.

너희의 게임은 이제 한창 중반전을 지나고 있다. 게임의 결과를 판정할 날이 다가오면 올수록 심리적 부담감은 커질 것이지만, 게임의 법칙을 아는 사람은 좌절하거나 패배하지 않는다. 게임의 목적은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니깐. 미지근한 물에 데어죽는 개구리가 되지 말기 바란다. 지금 힘차게 나의 뒷다리를 박차는 개구리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프로가 되어 남 핑계 대지말고 스스로를 가꾸는 보람찬 여름이 되길 바란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내 비유로써 말할지니,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고 하셨다. 하물며 인간인 선생님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너희에게 '담임 통신 6호'를 쓰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귀가 있는 숙녀들은 알아듣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내 지친 너희에게 '生命水'같은 주옥같은 문장들로 복된 편지를 쓰려 했지만, 결국 '생명수'를 얻는 우물은 '목마른 자의 몫'으로 남고 말았다.

이제 우리 머지않아 열매맺는 가을을 향하여 묵묵히 걸어갈 때이다.
(대학을)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 마흔 송이의 숙녀들이 모두 멋진 대학생이 된 내년 여름에 선생님이 씨언-한 맥주 한 잔 살 수 있도록 기회를 다오.

공포(04)의 해 여름방학식날, 너희의 능력을 믿는 담임선생님이 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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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통신 2004 - 4호      양운고등학교 3학년 5반

스승의 날에 부쳐

마흔 명의 숙녀들에게...
이제 숙녀란 말에도 좀 익숙해 졌겠구나.
빨리 지나간다는 오월이 벌써 15일이나 되었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라, 너희가 하루 홀가분하게 지낼 것 생각하니 나도 마음이 즐겁다.
요즘은 사람 사이의 정이 없다는 둥, 세상은 삭막하다는 둥 해도, 우리  교실을 보면 늘 즐겁고 재미있는 일들로 가득하다. 맨날 3학년실에서 떡 얻어 먹던 아이들이 떡을 해 와서, 요즘 며칠은 선생님들 허리가 날로 굵어지고 있단다. 선생님들이 너희 떡 먹으면서 5반 아이들은 정이 많다고 칭찬도 하셨단다. 우리 반 보면 좋은 점이 참 많다. 우선 아이들이 패거리를 짓지 않고 두루두루 친한 거 같아서 가장 좋고, 청소 시간에 누구 하나 눈치보지 않고 열심히 해서 좋다. 지난 번 북녘 룡천 사고 돕기 성금을 걷을 때에도, 난 처음에 아이들이 무관심하면 어쩌나 하고 속으로 걱정하고 있었다만 액수가 189,740원이나 되는 걸 보고 다른 선생님들도 깜짝 놀랐단다.

오늘은 스승의 날이니 만큼, 스승님 말씀을 경청하기 바란다.
우리 나라의 '先生님'은 서양처럼 teach - er(영어, 가르치는 사람), ler - er(독일어)처럼 가르치는 사람에 한정하지 않는 호칭이다. 단순히 가르치는 것을 넘어서 '먼저 났기' 때문에 선생님이 된 거다. 너희보다 먼저 나신 선생님들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바란다. 그게 공부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겠지?
이제 날도 서서히 더워지고 몸도 나른해 질 시기다. 보통 오월을 잘못 넘기면 마음이 해이해지기 제일 좋은 때란다. 저도 모르게 한 달을 허송세월하고 나면 마음의 정리를 하게 되지. '아무大'로 가기로.
이제 평가원 시험도 이 주 정도 남았다. 앞으로 절대로 아프지 마라. 배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일교차가 크니깐 감기도 쉽게 걸리고 하는데,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은 배가 아프지 않도록 조심해서 먹고,  허리가 아프면 미리 복대같은 걸 준비하고, 감기가 잘 드는 사람은 미리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아프고 열나면 뇌세포가 팍팍 죽는단다. 그리고 조만간 등교 시간도 조금 늦출 것을 학교에서 협의하고 있으니 잘 때 푹 자고, 정신 번쩍 차려서 공부하면 좋겠다.
스승의 날을 빙자한 선생님의 부탁 하나. 월요일부터 좌석을 바꾸기로 하자. 그런데 지난 번처럼 친한 친구랑 앉지 말기 바란다. 아무래도 친한 친구랑 앉다 보면 한 마디라도 더 떠들게 되잖아.
두 번째 부탁, 시간을 좀 정확히 지키자. 아침에 일곱 시 반. 아침조회 아홉 시, 수업 시작 시간, 자습 시작 시간을 잘 지켜 주기 바란다. 체크하는데 빈 자리가 보이면 선생님의 마음이 아파온다.
너희가 자기 소개서에 적은 그대로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게 되기 바란다. 선생님은 너희의 진로 탐색과 진학을 도와주는 사람이지,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은 없다. 너희의 내신 성적과 수능 성적을 토대로 최대한 진학을 잘 하도록 도와주는 게 선생님 몫이고, 너희는 내신 성적과 수능 성적을 잘 얻어오는 게 너희 몫이다. 나중에 주례 설 때를 대비해서라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6월 2일 시험까지 졸지 말고 열심히!
담쟁이 장미가 탐스럽게도 핀 오월, 담임선생님이 쓴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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