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2. 17.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사교육비 경감 특별 대책 발표문에 수능에 이비애쓰 직접 출제 발표
2004. 3월 모든 학교에 이비애쓰 시청 시설 확보를 위한 예산 낭비
2004. 4. 1. 만우절날 이비에쓰 제공 시작. 엄청난 접속으로 인한 마비를 예상했던 교육부 관계자의 예상과는 달리 접속률은 거의 없음. 이유는 학생들이 늦게 퇴근했기 때문임.
2004. 5월 어느 날. 이비애쓰 방송 내용에서도 출제할 것임을 시사하는 망언.
2004. 6월 현재 각 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텔레비전 보는 아이들을 감독하고 있음.

2004년 10월. 교육부와 평가원측의 대립. 교육부의 직접 출제 강요와 평가원의 유형이나 답안 유형등만 반영 의사의 대립.
2004년 11월 17일. 저녁 6시. 수능 종료.. 수헙생의 반응과 교육부의 평가 정반대로 나타나.

수험생이 반응 : 이비에쓰에서 반영된다고 해서 문제집을 다 풀다시피 했는데 거의 체감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1년동안 해설도 안 달린 문제집과 씨름하느라 너무 힘들었고 일요일이면 방송 보느라 피곤했는데 허탈해요.
수험생들의 반응은 90% 이상이 이비에쓰가 수능 준비에 큰 도움이 안 되었고 오히려 부담감으로 작용했다고 응답함.

평가원의 반응 : 이비에쓰에서 대폭 많은 유형을 출제하였으며, 이비에쓰를 열심히 청취한 학생이라면 풀이가 용이하였을 것입니다.

고(苦)육부 관계자 : 이번 수능의 난이도는 대체로 평이한 편이었으며, 특히 이비애쓰를 애써 본 학생들은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고육부에서는 앞으로도 이비애쓰를 활용한 학습으로 사교육비 경감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이번 수능에서 이비애쓰의 반영율은 90% 이상이었습니다.

2004. 11. 18. 전국 수능 철폐를 위한 공동 시민 연대 발족.

수철련(수능철폐시민연대) 관계자 : 이제까지 수능이 이해찬 세대의 학력 저하에 큰 공헌을 해 왔습니다. 물수능으로 변별력이 없었던 01 수능부터 불수능으로 지탄을 받아 온 '02, 영삼, 0포'의 수능에 이어 올해는 최악의 이비애쓰 사태로 인한 책임은 고육부에서 총체적으로 져야 할 것입니다. 이에 우리 수철련에서는 수능을 철폐하고 대학 입시의 자격고시화와 대학별 자율적 선발로 공교육의 정상화를 꾀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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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위해 문제집 만드는 많은 분들은 올해 이비애쓰 문제집 덕분에 폭싹 망했습니다.
불안한 엄마들은 서점에서 이비에쓰 문제집을 씨리즈로 다 사들였습니다.

학생들을 0교시 없애고 여덟시 반까지 등교시켜 봐도, 피곤해 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고육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분명히.
이비애스 출제는 과도기의 임시방편일 뿐이다.라고.

그러면, 임시방편 아닌 청사진을 보여주십시오.
올해 내년은 망쳐도 우리가 봐주겠습니다.
과연 고육부 내에 우리 교육에 대한 청사진은 들어 있는 걸까요.
이비에쓰를 시청하는 고등학교 1,2학년 여러분.
너무 강박적으로 보지 마세요.
지금의 3학년 만으로도 마루타는 충분합니다.

물론 이비애쓰의 좋은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가에 까지 반영하네 마나 하는 짓꺼리는 정말 보기 흉한 역사에 기록될만한 과오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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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4-06-11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제까지 시행착오만 하려는지..답답하기만합니다.퍼갈께요..글샘님..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서수. 0.

어느 나라에도 존재하지 않는 서수,  0번째, 제0교시.(in English, 0th? 0st? 0nd? 0rd?)

그러나 우리나라엔, 유일하게도 세계에서 단 한 나라, 대한민국에는 0교시가 있다.

살인적인 입시 경쟁을 이겨 내려면 0교시를 해야 한단다.

좀더 비싼 너로 만들어 주겠어, 니 옆에 앉아 있는 그애보다 더... 하면서 교실이데아를 부르던 서태지는 벌써 한 물 갔는데, 이 노래를 좋아하던 중딩, 고딩들은 이제 처녀 총각으로 변했는데, 아직도 우리는 아이들은 매일아침 일곱 시 삼십분까지 그 좁은 교실에 우릴 몰아 넣고, 좀더 비싼 녀석들로 변신하려고 노력중이다. 그런데도 여간해서 그놈들은 변신하지 않는다.

-1st교시를 하는데도 변신하지 않는 녀석들은 정말 성의없는 고교생이다.

학교에서 그렇게 죽자사자 가르치는데, 왜 변신하지 못하는 것일까. 등신 아냐?

이런 대한민국 특산품을 해외로 수출하는 날이 올까봐 정말 두렵다. 하루 여섯시간 수업도 지겨워할 새파란 아이들에게, 아침 일곱시 반부터 밤 열시까지 열네시간 반을 답답한 공간에 갇혀 있으라 하니, 저항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고, 안쓰럽다. 엄마보다 자주보는 담임 얼굴에 그래도 웃어주는 예쁜 아이들이 정말 안쓰럽다.

요즘은 아파트도 고층에 가리면 일조권을 찾고 난리법석들인데, 우리 아이들에겐 일조권이 없는걸까?

고딩들은 햇볕을 쬘 권리라곤 없는 걸까? 그저 200-300 룩스의 형광등 불빛 아래서 문제집만 디립다 풀어제끼면 의사가 돼서 돈을 많이 벌고, 법관이 돼서 어깨 힘 줄 수 있는 걸까.

어차피 이태백인 세상에, 청년 실업 문제가 해결의 기미는 커녕, 고학력 실업자 증후군이 만성 사회병으로 자리를 떡 잡은 이 마당에, 하위직 공무원뿐 아니라 청소부에도 박사, 석사들이 수두룩하다는 이 희한한 나라에 우리 앨리스들은 토끼를 따라 뛸까, 거북이를 따라 길까.

아니면, 영원히 나이를 먹지않는 피터팬이 되어, 자기 중심적이고 냉소적인 웃음을 지으며, 언제까지나 자라지 않는 젖니를 반짝이며 네벌랜드에서 깔깔대고 있을 것인가.

이 고딩들과 그 담당간수들에게 한 시간 여유를 주자고 0교시 폐지를 외치면, 머리좋은 꼴통들은 0-8교시를 1-9교시로 하잔다. 지들은 보충수업 안 하니깐, 목 아픈 줄도 모르고, 다리 관절염 생기는 줄도 모르고, 애들 졸다가 아예 코골고 자는 줄도 모르고, 이런저런 병 생겨 죽어나가는 것도 모른다.

네벌랜드에서 피터팬에게 저항하는 인간적인 모습의 현실적인 후크 선장은 애초에 패배가 결정된 것이라고나 했던가. 하긴, 후크 선장이 이겼다면 그 얘기 제목이 피터 팬일 까닭이 없지.

담쟁이 장미 탐스럽게 핀, 백만송이의 장미에 둘러싸인 벽돌담 고등학교의 밖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밤 늦게까지 불밝혀진 일반계 고등학교의 형광불빛을 보며 우리 나라의 미래와 교육열과 향학열과 경쟁력을 느낄 지 모르지만, 자신들의 고교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떠올릴 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미래를 짊어질 후크 선장들로 가득한 원피스의 세계가 아니라, 모험과 항해가 결투와 획득으로 이뤄지는 삶의 현장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어른이 되기 싫은 피터팬으로 가득하단 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이들에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가르쳐야 한다.

0은 서수가 아니다. 그렇다면 0교시는 논리적으로 부당한 것이다.

0교시란 있을 수도 없는 것이고, 있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가엾게도 우리 아이들은 논리도 싫고, 이론도 싫고, 철학도 싫고, 그저 한 시간 늦게 일어나고 싶은 어린애의 칭얼거림만 가질 뿐이다. 누가 그들을 영원한 탈인간의 세계, 네벌랜드의 피터 팬으로 묶어 두려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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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ylontea 2004-05-18 0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0교시는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퍼가도 되지요?)
 

오월 하늘. 그 해도 오월 하늘은 올해처럼 새파랬을까? 삶의 어둠이 빛을 보여주지 않는 어둡던 시절에, 교련복을 입고 손수건 대각선으로 말아 입을 가리고 최루 가스에 페퍼포그에 지랄탄과 콩볶는 총성에... 그리고 국군의 진압에, 공수부대의 매질과 총질에 후벼진 가슴들이 바라본 하늘이 오늘처럼 파랗기만 했을까.

최민수가 "나 지금 떨고 있니?"하고 멋진 마지막 말을 남겼지만, 그들은 떨고있으면서 떨고있냐고 묻지도 못하고 달을 바라보는 망월동에 눕고 만 것이나 아닐지.

관군이 패퇴하고 동학군이 진군하던 곳에 치안이 유지되었듯이, 빛고을의 오월에도 치안과 질서는 유지되었다는데, 과연 천명의 일본군을 모셔다 수만의 동학군은 몰살시킨 우금치의 핏물과 공수부대원의 번들거리는 총질로 학살된 수백, 수천의 시민군의 죽음은 백년 가까운 거리감이 있음에도 같은 이미지로 겹쳐짐은, 나의 생각이 언어로 되어 나오지 못하는 시니피앙이기 때문일까. 나의 사변이 차마 어떤 언어로도 발음될 수 없는 매직에 걸렸음일까.

오월은 언제나 나를 패배하게 한다. 오월의 라일락 맵싸한 향기가 시각적으로는 앞산 가득하던 아카시아 희뿌연 이미지 전경으로는 붉디 붉은 태양 아래 눈물의 이미지로 젖은 최루가스와 매캐하던 박하사탕의 추억. 눈물을 빼고는 돌아볼 수 없는 추억.

모두들 잊었는데, 다들 주가가 뛰는지 꼬라박는지에 관심이 많고, 웰빙과 피트니스와 아침형 인간과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논하는데, 왜 나는 이 오월에 자꾸 그 오월이 떠오르는 것일까.

새파랗게 젊음을 발산하는 나뭇잎들을 보면서, 싱그러운 신록의 즐거움을 떠올리지 못하고... 맹추같이도 그 오월을, 직접 경험한 것도 아닌 그 오월을 떠올리면서 햇살을 마주보면 안 될 것같은 부끄럼으로 고개 숙이는 것은... 내가 나에게 정직하지 못함일까. 아니면 정직함이 없음을 부끄러워 함일까.

답답하고 슬프고 우울하고 혈압만 오르는 오월에... 그저, 독백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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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
낙엽이 뒹군다.

차도엔
낙엽이 없다.
다만 속도만 있을 뿐.
그 속도에 낙엽은 날아가 버리거나,
눌려 부스러지고 가루가 되어버릴까.

보도엔
월요일 아침
그나마 수북이 낙엽이 쌓여 있다.
마치 자기네끼리 모여있는 듯.
보도엔 시간이 쌓이고,
속도는 없다.
어쩌다 지나가는 바쁜 발걸음도
수북이 쌓인 낙엽을 바스라뜨리진 않고,
다만 푹신하게 눌러줄 뿐.

파아란 가을 하늘에
지치도록 붉은 색소를 온몸 가득 머금고
마지막 화안한 미소를 흩뿌리다가
툭-.
나무와 마지막 작별.
작별하는 손길은
미련으로 도타와져 있건만.
가야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떠나가는 낙엽들.
그들은 시간을 알아서일까.
추운 겨울을
나무가 견딜 수 있도록,
배려하는 낙엽의 느린 시간을
우린 빠른 속도로
짓밟고 바스라지게 만들며
단지, 지나갈 뿐.

우리의 자동차가 가루로 만들며
짓누르고 가는 낙엽은,
우리가 잃어버린 양심.
우리가 찾지 못하는 여유.
우리가 잊고 사는 진심.
우리가 등돌린 애정.
그리고, 우리가 배우지 못한 배려.

그리고 말로 표현하기엔 너무 … 아스라한 …
사, 랑.

낙엽 하나 주워,
곱게 책갈피에 끼우는 마음은,
손길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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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먹으며…

옹기종기 모인 흰 쌀밥을 고맙게 씹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

훈김나는 하이얀 쌀밥처럼 다사랍고 환하게 살고 싶고
간혹 박힌 풋콩처럼 맛깔나게도 살고 싶고,
잘 무쳐진 콩나물처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고 싶고
잇몸 찌르는 탕수육처럼 단단하게도 살고 싶다.

맵싸한 고들빼기처럼 맵차게 살고 싶고
좀 모자란 듯한 야쿠르트처럼 허허웃고 살고도 싶고,
살 잘 발라지는 생선처럼 부드럽게 살고 싶고
잇새에 끼어 안타깝게 하는 참깨 같이 심술꾼으로도 살고 싶다.

한 종지로도 여럿 먹이는 간장처럼 넉넉하게 살고 싶고
푸짐하게 벌여진 소담스런 상추쌈처럼도 살고 싶고,
쓰린 속 풀어주는 동태국처럼 시원스럽게 살고 싶고
더 먹고 싶은 호박전처럼 아쉬운 이로도 남고 싶다.

밥을 씹으며,
생각을 씹으면,
불현듯
살아 있음이,
……고맙다
.(200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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