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의 지혜 - 한 세기를 살아온 인생 철학자, 알리스 할머니가 들려주는 희망의 선율
캐롤라인 스토신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인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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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우슈비츠라는 절망의 상황에서 살아남기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피아니스트 알리스 할머니는 그 절망의 구덩이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고 한다.

아우슈비츠에서도 음악회를 열었던 사람들을... 과연 문화인이라 부를 수 있을까?

 

사람들을 독가스실로 보내던 중,

한 사람을 살려주며 하는 말.

 

아니, 이 사람은 아니야. 첼리스트거든.(235)

 

알리스 할머니는 2차 대전 후, 이스라엘로 간다.

그들의 고난을 생각하면, 그들의 이스라엘 건국에 대한 자부심을 비웃을 수만은 없지만..

그 땅에 살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을 몰아내고 건국한 나라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바로 쳐다보기 어렵다.

 

그들은 조국을 탄생시키기 위해 정치와 전쟁에서 평등하게 일했다.

알리스는 이스라엘인들이 그녀를 이해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거장이든 아니든 예술가들을 존경했고, 지성과 음악 위에 그들의 나라를 세웠다. 알리스는 고마웠다.

그래서 음악가와 교사로 축적한 모든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서,

장차의 세대와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확장하는 일을 돕겠다고 맹세했다.(198)

 

음악을 향한 알리스의 열정은 뜨겁고 한결같다.

그의 목소리는 지혜롭다.

 

지혜는 교묘한 대답들을 아는 게 아니라,

두려움없이 질문에 맞서는 것이다.(203)

 

해가 갈수록... 이런 것을 크게 느낀다.

교묘하게 순간을 재치있게 넘기는 일보다,

진심으로 근원적인 질문에 맞서는 두려움없는 자세의 든든함.

 

가르치는 것은 사랑이고, 교사는 가르치는 것을 사랑해야 한다.(220)

 

그가 피아노를 가르치면서 늘 되뇌는 구절이다.

 

어느 분야의 교사에게나 다 통용되는 점.

일을 사랑하는 것, 연습을 사랑하는 것, 또는 부엌이 번쩍번쩍하도록 청소하는 것을 사랑하는 것...

이런 걸 심어주는 것.

배움의 과정을 사랑하는 것.

이루고 싶은 승리 때문이 아니라, 그 일 자체가 좋아서 일을 즐기는 것.(224)

 

새 학교에 오니, 아이들에게 주당 2시간씩 예술 교육 시간이 있다.

내가 관리해야 할 아이들은 플루트반 아이들인데,

그 시간에 나도 같이 플루트를 배우려고 생각중이다.

용기를 조금 내야할 필요가 있었는데... (아이들은 이미 잘 부는 애들이 많다.)

알리스 할머니의 말이 도움이 되었다.

 

너무 늙어서 호기심을 갖고 배우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그래요. 여전히 가르칠 수도 있죠.

호기심, 타인에 대한 관심, 무엇보다 음악에 대한 관심이 있어요. 이게 삶이죠.(169)

 

아우슈비츠 시절.

그들에게 음악은 예술이나 여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삶의 모두였다.

 

우리에게 음악은 음식이었어요.

영혼을 울리는 것을 갖고 있으면 음식은 필요치 않아요.

음악은 생명이었어요.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고, 포기할 수도 없었고, 포기하려 하지도 않았어요.(145)

 

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들어둘 만 하다.

 

존경심은 사랑으로 이어져요.

결혼 생활에서 로맨틱한 사랑보다 훨씬 중요한 게 존경심이지요.(111)

 

로맨틱한 사랑. 로망스.. 일본어 로망의 음차인 낭만(浪漫)은

날마다 애틋한 감정을 이어갈 수는 없는 것임을 들려준다.

존경심... 뭔가 자기가 배울 만한 점이 있는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은,

보고 배울만한 점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 힘들다는 말과도 통하리라.

 

로망~으로만 가득찬 사랑이,

결혼 이후엔 지옥으로 변하는 이유는... 이런 지혜를 배우지 못하고,

오로지 결혼을 목적으로 하여 달려드는 지혜없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플루트를 가르치는 강사를 보고 있으니,

한 시간은 애들 수준에 맞게 개인 레슨을 한다고 하고, 한 시간은 전체 조율을 한다고 한다.

일률적인 수업을 하는 나와는 달라서, 낯설기도 하고, 배울 점도 있어 보인다.

 

난 사람들을 한 무리로 보고 판단하지 않아요.

모든 남녀에게는 사연이 있어요.

내 관심은 개개인의 최고 장점을 알아 가는 것이죠.(41)

 

낱낱의 사람의 최고 장점을 찾는 교사.

훌륭한 제자가 태어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은 늘 폭력과 전쟁 등으로 화염에 휩싸여 있다.

거기 대한 알리스의 대응은 그의 지혜를 대변한다.

 

이것이 폭력에 대한 우리의 답변이에요.

우리는 그 어느때보다 더 아름답게 더 절박하게, 더 열정적으로 음악을 만들 거예요.(21)

 

음악은 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꽃으로도 때려선 안될 정도로 소중하다.

음악으로 아우슈비츠를 건너온 인생의 이야기를 들으면,

검은 터널같은 암흑도 끝에는 빛이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짧지만 귀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참 밝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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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3-03-23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학교로 가셨군요. 플루트를 배우시면 멋질 것 같은데요.
예술 교육 시간이 있다니, 참 좋은 학교 같아요.
저는 어릴 적 피아노를 배웠는데(그래서 친구들 결혼식 때 웨딩마치를 쳐 줬어요.) 치지 않은지 한참 되었어요.
요즘 팔운동 삼아 드럼을 배우고 싶어서 동네 가까운 데가 있나 하고 인터넷으로 찾아 보았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이 우리 삶을 새롭게 탄생시킬 것이라고 믿어요. ^^
 
저스트 키즈 -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 젊은 날의 자화상
패티 스미스 지음, 박소울 옮김 / 아트북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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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공기란 것이 있다.

지금 시대의 공기가 젊은이들을 취업과 하우스푸어 베이비푸어의 고뇌 속으로 몰아넣듯,

한 시대의 공기에서 맡아지던 '자유와 사랑'의 달콤함...

그 달콤함을 날것 그대로 기록한 책이 이 책이다.

 

훌륭한 예술가들의 예술 창작 과정을 기록한 책은 많지만,

정말 '그냥 애들일 뿐'인 시절의 불안감과 날마다 이어지는 흥분에 휩싸인 미래에 대한 불안과 희망이

교차하며 직조하는 이야기는 달콤함보다는 날것 그대로의 싱싱함에 자못 몸서리쳐지기도 한다.

 

The air was filled with sweetness

incredible and bright

 

대기는 신기하고 환한 달콤함으로 가득하고...

 

존 레논이 오노 요코를 두고,

주위엔 예쁜 여자들이 항상 많았지만 '예술적 온도'가 맞는 여자는 오노 요코, 단 한사람이었다~

고 했다고 한다.

 

스무 살의 어린 예술가들이 서로에게 끌리는 과정,

열 다섯 살의 어린 나이에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입양시키고,

서점에서 랭보의 시집을 훔치는 이야기에서 시작하는 이 책은,

달콤하지만은 않지만,

자유로움으로 대기가 가득차있던 시절의 반짝임으로 가득하다.

 

그날 이후로 우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늘 함께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고, 그저 서로가 원하는 바를 알고 있었을 뿐이다.(61)

 

반짝거리는 행복을 겪는 순간을 누구나 느낄 수 있지만,

그걸 문자로 캡처해서 기억에 남겨두기는 쉽지 않다.

영원한 감정은 없지만,

서로 정말 잘 통하는 두 사람이라면,

두고두고 서로의 만남에 감사하며 살 일이다.

그들 역시 그랬다.

 

로버트는 말한다.

"네가 보기 전까진 완성된 게 아니야."

자기 작품이 완성되는 일은, 그 작품을 보여주기 위한 패티 스미스가 봐주어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이야기.

별것 아닌 이야기지만, 이 말을 들은 패티 스미스의 심장 속에는,

영원히 잊지 못할 한 마디로 남아있을 것이다.

 

"아무도 우리처럼 될 순 없어, 패티."

 

사랑하는 두 사람은 언제나 '그 사람'만이 단독자이며 개별자이다.

그렇지만, 이 젊은 연인은 '그냥 애들' 취급받던 시절,

가난했고 불안했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서로에게 '존재의 이유'가 되어주는 이야기는 반짝거린다.

사람이 반짝거리는 것은, 바라보는 사람의 눈에서 블링블링한 불꽃이 튀어서 그런 것 아닐까 싶을 정도다.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걸까? 우린 뭐가 될까?

철없는 우리가 자신을 향해 항상 던지는 질문들이었다.

그리고 철없는 대답 또한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로 가고 있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되었다.(110)

 

서로에게로 가는 사랑, 우리 스스로가 되는 사랑.

그것은 그들의 마음이 세태에 물들지 않고, 도덕에 오염되지 않고,

오직 순수한 삶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했기에 가능한 것이었지 싶다.

그들에게 명품백이나 값비싼 선물보다 더 의미있는 것은,

바로 '상대'라는 존재였으므로..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 같은 소소한 선물들을 선물했다.

땋은 머리로 만든 십자가, 중고 장신구, 리본과 가죽으로 장식된 밸런타인 엽서를 선물하고,

편지를 써두거나 작은 케이크를 사오곤 했다. (192)

 

사랑하는 이에겐 아무리 작은 기념품이라도 선물이 된다.

작은 쪽지에 남긴 글씨 몇 자도 소중하다.

그러나, 그들의 선물은 패티에겐 '헤집어놓은 상처를 막아보려 애쓰는, 마치 무너져 가는 벽을 다시 세우려고 구멍을 메우는 것처럼' 안타까운 것이었던 모양이다. 마음 아프다.

 

게이가 아니면서 생활을 위해서 남창 일을 하다 에이즈로 죽어가는 로버트 메이플소프.

 

 

 

그들은 헤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로버트는 웃으며 말한다.

 

문만 열면 항상 내가 있을 거야.(193)

 

그래. 몸은 멀어도 마음만은...

그런 사랑도 있는 것이다.

 

Separate ways Together

다른 길을 가면서도 함께...

 

예술가와 모델로서 우리가 발견한 비법은 간단하다.

상대를 믿고, 자신을 믿는 것.(250)

 

그렇다.

담배를 끊는 비법 같은 건 세상에 없다.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되는 것.

사랑하는 비법 역시 없다. 그저 상대를 오롯이 믿고 따르는 수밖에...

 

사람은 누군가와 늘상 마주친다.

그렇지만, 몸과 몸이 마주친다고 인연은 아니다.

두 사람의 마주침이 만남이 되고,

그 인연을 일생일대의 기회로 고맙게 여기는 사람만이, 그 인연을 누릴 수 있다.

 

결국, 사랑은 자기 마음이 결정하는 셈이다.

이런저런 이해타산을 앞세워, 사랑하는 사람과 이해득실의 줄다리기를 할 때,

이미 자기 마음에는 사랑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냥 아이들~일 뿐인

이 젊고 뜨거운 예술가들의 삶에서

순수한 열정을, 날것 그대로의 사랑을 배울 수 있다면,

이 어설퍼보이는 삶의 이야기들이 지극히 사랑스러울 수도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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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그리는 남자 - 마흔한 살, 나는 이렇게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다마무라 도요오 지음, 송태욱 엮음 / 뮤진트리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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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간염으로 활동을 접고 요양을 하게 된다.

남아 도는 시간에 당황하다가 소일거리로 집어든 것이,

중학생 시절에 활동하던 미술부의 연장.

 

마흔 한 살이 되어서 그린 그림이므로,

스스로 아마추어의 그림임을 강하게 피력한다.

 

아마추어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그림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내놓을 수 없다.(238)

 

그렇지만 개인전을 열고, 사람들이 자기 그림을 다 사가 버리는 경험을 하고는 애석해 한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그림에 있어서 그 작품은 '유일무이함'이 담긴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애써 복제해도 똑같은 작품은 있을 수 없는 것.

 

작은 아틀리에에서 이런 식으로 평온한 그림을 그리다 죽어가는 인생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243)

 

뭐, 어떤 인생은 좋고 나쁠 것은 없지만,

나름 행복한 길을 찾은 그가 부럽다.

 

신인 화가를 격려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잠자코 그의 그림 한 점을 사주는 일이다.(188)

 

우리 학교 미술샘이 얼마 전 개인전을 열었다.

가난한 환경에서 지독하게 혼자만의 길을 걸어오신 분이라는데,

작품이 간결하면서 아름다운 신선함을 담고 있었다.

한 점 샀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한다.

 

매일 아침 그림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그의 삶을 눈여겨 봐 두었다.

 

아침 햇살에는 특별한 힘이 있다.

그때까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이 없었으므로 몰랐는데,

이른 아침 동쪽 하늘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고 한참 동안 하늘에 가득한 빛에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상쾌함이 있다.

오후의 지친 빛의 알갱이와는 딴 세상 것처럼 다르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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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눈물을 닦다 - 위로하는 그림 읽기, 치유하는 삶 읽기
조이한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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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름이 재밌다.

조이한, 조이한... ㅋ~ joy-한... 요렇게 들려서 이쁘다.

 

그대에게 가고 싶다

                              안 도 현

 

해 뜨는 아침에는

나도 맑은 사람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보고 싶은 마음 때문에

밤새 퍼부어대던 눈발이 그치고

오늘은 하늘도 맨 처음인 듯 열리는 날

나도 금방 헹구어낸 햇살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창가에 오랜만에 볕이 들거든

긴 밤 어둠 속에서 캄캄하게 띄워 보낸

내 그리움으로 여겨 다오

사랑에 빠진 사람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그리움 하나로 무장무장

가슴이 타는 사람 아니냐

 

진정 내가 그대를 생각하는 만큼

새날이 밝아오고

진정 내가 그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만큼

이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마침내 그대와 내가

하나되어 우리라고 이름 부를 수 있는

그날이 온다면

봄이 올 때까지는 저 들에 쌓인 눈이

우리를 덮어줄 따뜻한 이불이라는 것도

나는 잊지 않으리

 

사랑이란

또 다른 길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고

그리고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

지치고 상처입고 구멍난 삶을 데리고

그대에게 가고 싶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야 할 신천지

우리가 더불어 세워야 할 나라

사시사철 푸른 풀밭으로 불러다오

나도 한 마리 튼튼하고 착한 양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안도현의 시를 인용하면서 제시한 그림 한 장.

 

 

이 그림을 보고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

저 사다리를 타고 오르고 싶은 꿈을 생각할 수 있고, 풍크툼~

누군가는 자기만 오르고 사다리를 차버리는 생각을 할 수도 있고, 풍크툼~

누군가에게 한없이 뻗어있는 마음을 떠올리며 빙긋이 웃을 수도 있다. 풍크툼~

이렇게 제각기 다른 생각을 갖게 되는 경험을 풍크툼~이라고 한단다.

 

이 작품도 재미있다.

 

 

둘이 닮은 게 아니라, 같아도 너~무 같애서...

너와 나가 구별되기 힘든 인연을 만난다면 느낌이 어떨까?

째깍째깍 심장이 움직이는 소리까지 꼭 같아서

행복감에 젖어있는 듯한 이 두 시계의 이름은... '완벽한 연인'이다.

그러나 완벽한 연인, 역시 언젠가는 조금 엇나갈 것이고, 누군가는 먼저 멎을 운명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완벽을 행복으로 여기며 사는 삶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일 게다.

오지 않은 미래를 미리 당겨 걱정하는 병,

이런 걸 인간의 '지식'이라 부른다.

 

 

의자, 너마저...

의자가 의자를 딛고 올라가, 밧줄에 목을 매고, 의자를 걷어찼다.

자살에 대하여 이렇게 강한 상징을 보여준 작품도 드물다.

<사물들의 자살>이란 제목의 이 작품은...

한국 사회의 자살 풍경의 살풍경을 대변하고 있다.

사람의 모습보다, 더 눈물겹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작품은 로댕의 '신의 손'이다.

신의 손에서 빚어지고 있는 인간들의 모습은 거친 석고가 빚어내는 매끈한 면들의 생성중인 모습은,

평면과 입체의 중간과정을 보고있는 것 같다.

 

삶이란 이름으로 존재가 세상에 '내던져짐'으로써, 인간은 필연적으로 불안과 아픔, 슬픔, 두려움을 갖게 된다.

인간은 아무리 격렬하게 살았대도, 미미한 흔적만 남을 뿐임에,

<사랑>하는 이에게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은 오히려 처절하다.

 

<사랑하는 이>는 자기 모습을 아름답게 비춰주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 책의 저자 'joy-한'은 심리학 전공자이다.

그래서 그의 관심은 오롯이 예술에 가 닿기 보다는,

예술에 투영된 인간의 '심리'에 더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그 심리적 투영이 빚어내는 모습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고,

그것을 바르트의 용어로 '풍크툼'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에곤 실레의 '해바라기'에서 가장 깊은 심리적 본질과 조우했다는 조이한의 이야기에도 고개가 끄덕여 진다.

 

이 책의 주제는 '인생' 정도일 거다.

그 인생의 '눈물'을 닦아주는,

눈물이 마구 솟구쳐 어쩔줄 모르는 상황에서 낯모르는 이가 건네준 손수건의 친절과 위로 만큼이나,

그의 그림 이야기는 웅숭깊다.

 

그림 한 장으로 어찌 치유를 논하겠는가마는,

그림은 '그리움'을 화폭에 옮긴 것이라지마는,

그의 그림 이야기를 따라 읽다 보면,

필연코 삶의 어느 지점에서 부딪쳤던 '사랑'의 반짝이던 눈물의 기억과 조우하게 된다.

모든 삶의 아련한 추억은 '사랑' 그 속에 담겨있는 것이니...

 

사랑으로 잠 못드는 이들이라면, 그 깊은 마음 속을 들여다보기 힘들어 허전해 한다면,

일단 조이한의 설명을 길잡이 삼아 미술관을 돌아볼 일이다.

 

모든 사랑은 '오해'이자 '상상력'의 발현인 바에야...

모든 사랑은 '첫사랑'이고,

모든 사랑은 '순수한 사랑'이니까,

그 사랑으로 인하여 흘렸던 눈물 한 방울쯤, 조이한이 건네주는 친절한 위로의 손수건으로 훔쳐볼 수도 있을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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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5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2-11-15 11:34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
 
그림에도 불구하고 - 글쟁이 다섯과 그림쟁이 다섯의 만남, 그 순간의 그림들
이원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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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감각 중에서 시각이 뇌에 전달하는 것이 가장 많다고 한다.

그렇다고 꼭 시각이 세상을 바로 바라보게 하는 것만도 아니다.

착시에 의하여 엉뚱한 정보를 전달하기도 하니까...

 

멋진 장면을 만났을 때, '우와, 그림같다' 고 표현하는 역설을 보면,

우리는 착각을 해도 단단히 하는 존재들이 아닌가...

 

이 책에 등장하는 그림들은 일반적으로 만날 수 있는 '회화'와는 좀 다른 면을 보여준다.

 

윤종석의 그림에는 마치 오브제로 붙여놓은 듯한 옷 그림이 가득하다.

그런데, 그 옷을 지그시 바라보고 있노라면, 총도 보이고, 개도 보이고, 악어도 보인다.

좀더 바라보고 있으면, 그 옷의 꽃무늬가 눈에 들어온다.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은 그림인가? 옷인가? 아니면 사물(총, 개, 악어)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길우의 구멍뚫어 그린 그림은 또 어떤가?

한지에 인두로 세밀하게 구멍을 뚫어 형상을 표현하고 있는데,

그 형상들은 혼자서 존재하지 않고, 겹쳐지면서 외치는 소리를 들려준다.

남과 여가 겹쳐지기도 하고, 동양과 서양이 겹쳐지기도 한다.

웃음과 울음이, 흔들림과 정지함이 뒤섞여 겹쳐 보이기도 한다.

당신이 보는 것이, 과연 거기 그대로 존재한다고 믿는가? 이렇게 묻는 듯 하다.

 

이상선의 '아해'들고 '꽃들'이 놓여진 화폭은 순수하다.

그 순수를 감싸고 있는 세상은 시궁창 위에 놓인 맨홀을 둘러싸고,

금세라도 거기서 올라오는 악취를 이야기하듯, 그렇게 뒤틀린 빛이지만,

꽃의 한들거리며 날아다니는 모습과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은,

과연 세상의 모습은 추악한 것일까, 순수한 것일까...를 한번쯤은 반추하게 만든다.

 

변웅필의 '무모 無毛'한 도전은 자화상으로 일관한다.

사람의 얼굴을 매일 그린다면 변화가 없을 듯 하지만,

그는 온갖 장난을 통해, 사람이 존재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발견하려는 듯 집요하다.

 

정재호의 도시는... 인격을 상실해가는 시대의 모습을 그리려 애쓴다.

도시는 상실한 인격의 유일신이다.(207)

그러나 도시 역시 인격이 살아가는 곳이므로, 인간의 냄새를 맡기 위해 그는 그린다.

그리면 그릴수록... 도시에서 '작은 쓰임마저 사물이 대신'함을 발견하고,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도시에서 사물의 발견은 위대하다. 인간 외에 생각하고 보고 느끼는 다른 존재를 만나게 된 기분이 들게 한다. 이는 마치 좀비와 마주한 것 같이 아주 섬뜩한 일이다.(213)

 

시인, 소설가들이 이 작가들과 인터뷰하는 것을 읽는 일은 재밌다.

예술가들의 일상은 우리와 다르다.

정해진 시간에 주어진 틀에 따라 살 수 없다.

먹고 싶음 먹고, 자고싶음 잔다. 창작하고 싶으면... 먹지도 자지도 않는다.

결혼 역시 그렇다. 정재호의 연애 이야기...

 

아무튼 전요, 결혼을 안 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저하고 안 해서 못한 거예요.

스타일로 보면 저라는 남자는 연애하기에는 괜찮고,

결혼하기에는 탐탁치 않은 스타일인 것 같아요.(190)

 

그럴 수밖에... 하는데, 윤종석은 더 심하다. ㅋ~

 

윤 : 아내랑은 작품 얘기도 안 해요. 섞여 버리니까...

      작업실은 장흥이고 집은 대전이예요. 주말 부부로 살아요.

이 : 불편하지는 않아요? 주말에만 만나고 떨어져 지내면?

윤 : 작업하는 데는 훨씬 더 좋아요. (41)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듯, 작업하는 데는 더 좋단다. 그것도 '훨씬~'

이런 사람들이 평범한 가정 생활을 하는 듯 아침이면 출근해서 밤이면 돌아와 자는,

이런 삶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지... 몹시 궁금해졌다.

 

이상선의 이야기는 귀엽다.

 

난 사랑에 잘 빠져요.

한 번에 여럿이 아니라 하나,

그게 사람이 됐든 사물이 됐든 장소가 됐든,

그게 가슴앓이가 되죠. 그런 것 때문에 실연을 정말 많이 당해요.

예를 들어 이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소위 말하는 술집 작부들에게 사랑에 빠질 때도 있어요.

그림 그리는 자아랑 실제의 내가 다르다고, 술먹고 노는 나를 보면 사람들이 저런 그림을 그린단 말이지, 이래요. (135)

 

결국, 사랑은... 사람의 이야기이고, 삶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

예술가들이라고 그 사랑이 다른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노라면, 다른 형태의 사랑을 추구할 수밖에 없을 때도 있는 것이고,

그런 다양한 형태의 사랑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열린 사회에 가깝게 가지 싶다.

 

변웅필은 어땠을까?

 

변은 사랑을 믿었다. 사랑으로 상처를 받은 적 있기 때문이다.

변은 사랑을 믿지 않았다. 사랑으로 상처를 준 적 있기 대문이다.

변은 간간 사랑을 오독했고 변은 오래오래 사랑으로 고독했다.

처음 사랑일 때 변은 어땠나.

사랑해!

너 없이는 못 살겠다는 굳센 의지의 느낌표였을 것이다.

과정 속의 사랑일 때 변은 어땠나?

사랑해......

너 없이도 살 수 있겠다는,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의 말줄임표였을 것이다.

마지막 사랑일 때 변은 어땠나.

사랑해?

너 있어서 곧 죽어도 못 살겠다는 억하심정으로 억지꼬투리를 꿰고 보는 물음표였을 것이다.

변에게 묻는다. 이제 와서 사랑이 무엇이냐고. 변은 말한다.

사랑은 '너'가 아니라 오래도록 '당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끝없는 존중이라고.

변에게 묻는다. 지금 사랑하고 있느냐고.

변은 거울 앞으로 가까이 다가선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러우면서도 은밀하며 섬세한 키스를 선보인다.

사랑은 '나' 이며 오래도록 '나'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끝없는 이기라고.(162)

 

김민정식 어투가 짙게 느껴지는 이런 부분만을 찾아 읽는 나도 참 웃긴다.

그리고 오래도록 이 문장을 이렇게 뜯어 고치고 싶은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사람은,

느낌표로, 말줄임표로, 물음표로... 나를 느끼고, 심사숙고하며 바라보고, 궁금해하는 것도 좋지만,

쉼표처럼... 나를 통해 마음의 쉼을 얻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랑은 '나' 이며 오래도록 '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끝없는 이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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