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 안도현의 시작법詩作法
안도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시는 그저 방치해둘 수밖에 없는 일이오.(84)

 

조지훈의 한 마디란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

방치해둔 듯 숙성의 기간을 가져야 깊은 시가 나온다는 말이다.

 

좋은 시를 쓰는 일은

좋은 시를 읽는 일과 밀접하다.

 

안도현은 백석에 대한 애정과 '표절'(ㅋ 그의 시집 제목은 백석에게서 얻은 것이라고 스스로 밝혔다.)은 널리 알려졌거니와,

백석 시에 대한 독서에서 시에 대한 마인드가 길러지리라는 것도 충분히 좋다.

 

나는 백석의 '사슴'을 참 좋아한다.

그중에 특히 '노루'가 좋다.

 

노루

                      백석

 

장진(長津)땅이 지붕넘에 넘석하는거리다

자구나무 같은것도 있다

기장감주에 기장찻떡이 흖한데다

이거리에 산곬사람이 노두새끼를 다리고 왔다

 

산곬사람은 막베등거리 막베잠방둥에를 입고

누루새끼를 닮었다

노루새끼등을쓸며

터앞에 당콩순을 다먹었다하고

설흔닷냥 값을불은다

노두새끼는 다문다문 힌점이 백이고 배안의털을 너슬너슬벗고

산곬사람을 닮었다

 

산곬사람의 손을 핥으며

약자에쓴다는 흥정소리를 듣는 듯이

새깜안눈에 하이얀 것이 가랑가랑한다

 

 

김종삼의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도 참 좋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시가 뭐냐고
나는 시인이 못됨으로 잘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무교동과 종로와 명동과 남산과
서울역 앞을 걸었다.
저물녘 남대문 시장 안에서
빈대떡을 먹을 때 생각나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이
엄청난 고생되어도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알파이고
고귀한 인류이고
영원한 광명이고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김종삼)

 

누구나 시를 가르친다 하면,

이 책에 있는 범주를 넘어서기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또 시를 쓰려는 사람이

이 책 정도로 만족할 수는 없을 것이기도 하다.

 

안도현을 만나면 안도현을 죽여야 하므로...
그의 시강의를 읽다 보면...

과연 연탄재를 보면서 뜨겁지 못한 자신을 성찰했던 시인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다.

 

김수영의 '고궁을 나오면서'를 읽으면서,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있다 절정 위에는 서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이런 대목을 읽는데 설명이 요령부득이다.

어느날 고궁~은 투철하게 사고하지 못하는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 소시민성에 대하여 스스로 성찰하고 반성하는 시이다.

 

그런데...

 

시인은 이렇게 절정에서 조금쯤 옆으로 비껴서 있어야 하는 자이다.(76)

 

이런 설명 앞에서 나는 자못 그가 의심스럽다.

시를 설명할 깜냥이 되는 자인지...

 

 

고쳐야 할 곳...

 

12. 귀에 못이 박히도록... 못이 박이도록...이 맞다.

 

103. '명란'과 '창란'... 명란은 맞지만, '창난'이 맞다.

 

189.  神, 理, 氣, 味, 格, 律, 聲, 色... 뒤의 두 가지를 빼먹었다. 추사의 문체 종류는 8가지라고 해놓고 6가지만 적었다.

 

200. 땅을 가진 뒤에 부동산을 짓겠다는... 부동산을 짓는다고? ㅋ 건물이겠지.

 

220. 퇴고의 한자는 推敲에서 온 말이다. 한 군데는 '堆(언덕 퇴)' 자로 잘못 기록되어 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벌레 강씨 2016-04-11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어지는 책이군요. 시인의 이야기가 궁금하긴 합니다.

글샘 2016-04-11 18:34   좋아요 1 | URL
네. 나쁘지 않은 책입니다.
시 작법에 대한 책이야 다 거기서 거기지 싶습니다.
좋은 시를 많이 소개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림문답 - 시대의 이상과 운명에 답한 조선의 자화상
이종수 지음 / 생각정원 / 201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건국의 꿈을 그리던 안견의 붓에서 시작된 조선의 그림

치열한 이념의 시대를 기록한 무명 화원의 손을 거쳐,

진지하게 자아를 성찰한 윤두서의 독백으로 이어지고,

진경의 산위에서 일상의 풍경을 그려낸 김홍도의 절정을 넘어,

아름다움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미감을 이야기한 조희룡을 지난 후

근대와 전통의 갈림길, 조선의 꿈을 되돌아보던 장승업의 회고.(에필로그)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서

수업의 형식이 많이 바뀌게 된다.

 

작품을 분석하고, 주제를 알려주는 일은 문제집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작품의 배경을 이야기로 들려주거나,

시어의 쓰임이 이치에 닿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강조되는 삶의 의지 같은 것들을 들려줄 수 있게 된다.

 

조선의 역사도, 그림도 이 책에서는 이야기가 된다.

그것이 연륜이 쌓이면서 붙는 실력이 아닐까 한다.

 

세조의 동생 안평대군과 몽유도원도.

이런 것을 역사로 읽으면 무슨 재미일 것인가.

마치 드라마를 보듯, 안평대군과 안견의 실상이 오롯이 살아오르게 적는 글이

시대 속에서 그런 그림이 가진 의미를 감상하는 힘이 돋아나게 한다.

 

작가가 더 많은 작품들에 공을 들여 품을 팔아주면 좋겠다.

한 시대를 요약한 정신을 그림에서 읽어내는 일.

헛되다면 헛된 일이지만,

김홍도의 밝은달 떠오른 성긴 숲의 모습에서,

우리 살아가는 모습의 피폐함과 만월의 그윽함을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책. 드물 것이다.

 

 

 

 

56. 계유정란... 계유년에 '어지러운 난'을 '평안하게 평정'했다는 세조를 칭찬하는 말이다. <계유정난>이 옳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다, 너를 - 화가가 사랑한 모델
이주헌 지음 / 아트북스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이야 사진이 있지만,

예전에는 모델을 앞에 세워두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날이면 날마다 포즈를 취해주는 모델과 화가가 정들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니...

 

옷을 입지 않은 신들의 모델을 선 여인들부터,

모델리아니의 여섯시 오분 전의 대상.

고야의 마하들과, 클림트의 여인들...

이야기는 끝도 없다.

 

 

클림트, 유디트

 

클림트, 키스

 

고야, 마하

 

 

모네, 카미유와 장

 

밀레이, 성 아그네스 전야

 

모네를 비롯해 근대의 여러 화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갈등 - 사랑하는 모델과 결혼하지 못하는...

일정한 교육과정을 거쳐야 하는 화가는 아무래도 중산층 출신이 많은 반면

타인에게 벌거벗은 몸을 내보이는 여성 모델은 서민 출신이 많았던 탓이 크다.

오랜 세월 작품을 같이 제작하다 보면

신분을 초월해 서로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쌓이지만

가족이나 친구들은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147)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들로 이 책의 모델들과 화가들의 인생은 평탄한 경우가 드물었다.

그런 만큼 읽을 거리도 많다.

 

사람을 그린다는 것은 우주를 그리는 것이다.

사람은 단순한 사물이 아니다.

정신과 영혼을 지닌 광대한 우주다.

사람을 그린다는 것은, 그러므로 하나의 우주를 화포 위에 펼치는 것이다.(서문)

 

특히 서양화에서는 인간 표현이 중심이었다.

 

동양에서는 문인 산수화를 회화의 꽃으로 여겼다면,

서양에서는 역사화와 인물화를 최고의 장르로 여겼다.

인간과 인간의 드라마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였다.(6)

 

이 책은 <화가와 모델>이라는 기존이 책을 손보아 출간한 것이란다.

리바이벌이라지만, 화가들의 이야기는 재미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미감 - 지친 나를 일으키는 행복에너지
이주은.이준 지음 / 예경 / 201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주은이 글을 쓰고, 드문드문 이준이라는 셰프가 나와서 이야기를 거드는 식의 책.

아름다움을 느끼는 감각은

반드시 그림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지만,

이 책에는 많은 소설 이야기, 영화 이야기들이 독자들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 가득 들어 있고,

그 틈틈이 그림 이야기도 곁들여 있다.

아, 당연히 음식 이야기도 함께 한다.

 

그래서 어쩌자는 거지?

이런 생각도 들지만,

뭐, 사는 일은... 어쩌자고 사는 게 아니므로...

그냥, 좋은 것들을

좋은 이야기들을, 영화 이야기들을, 좋은 그림을... 맛있는 음식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펼칠 만 하다.

 

영화 '카모메 식당'에서 나온 이야기.

 

행복한 사람이란,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지 않을 뿐.

꿈꿀 수 없을 만큼 지쳤을 땐, 맛있는 걸 든든하게 먹자.(67)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는 일이 얼마나 흔한가.

한국에서는 더더군다나.

그건, 가족 내에서도 그렇고, 직장에서도 그렇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하지 않을 자유를 보장받는 밀폐된 아파트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 '바베트의 만찬' 이야기 중,

 

그녀는 자신이 가진 것을 다 쏟아부으면 다른 사람에게 완벽한 감독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가난하지 않아요. 저는 위대한 예술가니까요. 제겐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죠."(204)

 

몹시 힘들어서

침대에 푹 엎드려서 잠들고 싶을 때,

그냥은 아니고, 와인이라도 한 잔 하고 암막을치고 하루는 푹 자고 싶을 때,

읽으면 위안이 되고 친구가 될 이야기들과 그림들을 원한다면,

'미감'을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느낀다는 것 - 채운 선생님의 예술 이야기 너머학교 열린교실 5
채운 지음, 정지혜 그림 / 너머학교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름다움을 느낀다는 것.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라는 개념을 들면서

예술에 대한 감흥 역시 세대를 거쳐 물려받게 되는 것이라 했다.

 

느낌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시공간 속에서 만들어 집니다.

그냥 느낀다고 느껴지는 게 아니라는 말이지요.(44)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니던 7,80년대에는 서양 중심의 느낌이 주류였다.

미술도, 음악도, 예술 전반이 서양의 독무대였다.

미국 중심의 서양이 문학 권장도서 목록에도 수두룩했다.

 

물은 어떤 맛인가?

아무런 맛이 없다.

그러나 목마른 자가 물을 마시면,

천하의 그 어떤 맛난 것도 이보다 더하지 않으리라.

지금 그대는 목마르지 않다.

그러니 저 물의 맛을 모를 수밖에.(박제가, 47)

 

그리하여 내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에는 민중 예술이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금세 포스트 모더니즘이란 정체불명의 괴물이 등장하여,

자본의 시대로 접어든다.

 

느끼는 것은 고독을 넘어가는 행위입니다.

혼자서는 느낄 수도 통할 수도 없으니까요.

느끼는 것은 다른 것과 만나고 다른 것을 통과해 가는 것.(52)

 

시간, 공간, 인간...

이 개념들에 '사이 간'을 넣은 것은 절묘하다.

그 사이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느낌이다.

사람 사이의 느낌, 장소에 깃들인 느낌, 어떤 시간대에 얽힌 느낌.

 

그러나 그 느낌은 한결같지 않다.

관점이 달라서다.

'응답하라 1988'의 절묘한 스토리 라인의 재미에 푹 빠지면서도,

왠지... 우리의 1988이 그렇게 아름다웠던가?를 반문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관점이 달라서이다.

 

우리는 뭔가를 바라볼 때 어떤 시점, 혹은 관점을 갖게 됩니다.(58)

 

가장 적절한 관점은 모든 인간 사이에 따라 다른 것이다.

그것을 보려면 두 개의 눈으로는 부족하다.

 

관세음 보살은 말 그대로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살펴보는 보살입니다.

모든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을 잘 살피고 어루만져 주는 보살입니다.(67)

 

이 책은 예술 공부에 대한 책이다.

느낌이라는 것이 얼마나 얽매여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하고,

느낌이 얼마나 해방되기 힘든 것이고, 관계 사이에서 자리매김되는 것인지를 쉽게 읽어준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한 폭의 그림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해 살아가는

하나가 달라지면 전체가 달라지고 마는 그런 그림(95)

 

예술가들은 느끼기에 더 민감하다.

 

민감하단 건 차이를, 오로지 그것만의 '그것임'을 느끼는 것.(112)

 

칸트에 와서 '물 자체'와 '감각적 경험'을 구분한다.

우리가 느낀다는 것은 '물 자체'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시공간에서 주어진 감각적 경험을 통하여 갖게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어떤 예술가가 위대하다고 하는 것은 화려한 테크닉을 구사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와 그걸 표현하는 방식에서 진심이 느껴지기 때문이죠.(127)

 

평범한 태도, 통념적으로 휩쓸리는 태도와 달리,

예술가들은 자신의 태도를 정립하게 된다.

그래서 잔재주로 이름을 얻어 시류에 영합하는 예술가를 보면, 저속하고 비루해 보인다.

 

달라이 라마는 말합니다.

타인과 공감하는 능력이야말로 쓸데없는 두려움과 불안을 없애고 행복감을 준다고요.

자신에게 잠재되어 있는 자비심을 끄집어 내서 타인들과 교감하라고요.

여러분의 존재 자체가 이미 感-動 입니다.(146)

 

소질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공감하는 능력이 없는 예술가들의 작품은 독자를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시대의 아픔을 감싸안고 같이 눈물 흘리는 작품들이야말로,

심장에 꽂힌 가시처럼 아프게 느껴질지라도, 오래 교감하게 될 것이다.

 

논어에서 문질빈빈이라고 했다.

바탕이 모양새보다 크면 투박하고,

표현이 바탕보다 뛰어나면 번드르르하니,

표현과 바탕이 반짝이며 조응한 연후라야 군자다.

어느 하나도 버리기 힘든 것이지만,

이 시대에 표현이 번드르르하고 본바탕에 공감이 부족한 책팔이들이 있어

새삼 논어의 한 구절을 음미하게 된다.

 

子曰 質勝文則野요 文勝質則史니 文質彬彬然後君子니라(논어, 옹야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