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로 간 예술가들 -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산촌 생활자 이야기
박원식 지음, 주민욱 사진 / 창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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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속박이다.

자본의 삶에 속박되어 이 회탁의 거리에서 슬렁거리며 헤엄치는 어항 속의 금붕어 같은 신세고,

먹고 살아야 한다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엄한 서슬에 눌려 산다.

 

 

깨달음이란?

어려운 질문이에요. 그러나 굉장히 쉬운 얘깁니다.

깨달은 자는 더 이상 무엇에 이끌려 사는 게 아니라,

내 맘대로 자연스럽게 살아갑니다.

스승이나 제도에 걸리지 않고,

자신을 맘대로 가지고 놀아요.

내게는 그림의 세계가 바로 그 노는 세계입니다.(289)

 

자연스럽게 사는 일,

자유...

조르바가 원하는 삶은 그런 것이었던가.

예술가만큼 자유를 원하는 이들도 힘들 것이다.

 

요즘 지방도시 곳곳에 가면 '프로방스 빛 축제'라는 플래카드를 볼 수 있다.

'엑상 프로방스'는 프랑스 남부지역인데, 뭐 시골인 셈이다.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북부의 공업도시들에 비하여 전원의 대명사인 듯.

그러니 프로방스에는 캄캄한 암흑이 지배하고 있는 것이 자연스러운데,

온갖 나무에 조잡한 전구들을 달아 두고 빛 축제라고 돈을 받는다.

 

번잡하고 돈을 끊임없이 요구하는 욕망의 도시를 벗어난 예술가들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그들이 사는 환경을 멋진 사진으로 담지 못한 것은 좀 아쉽지만,

간혹 만나고 싶은 얼굴을 만나는 일은 담백한 기쁨을 주기도 하고,

만다라의 김성동처럼 견디는 눈동자를 만나면 찡~하기도 하다.

 

내 나이 일흔 다섯,

충분히 늙었어요.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산다는 거, 별것 아니더군요.

결국은 욕심을 줄이는 일에 달렸어요.

자연을 섬세하게 관조할 수 있다면, 욕망을 순하게 이끄는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날뛰는 욕심을 어느 정도 줄여나갈 수 있을 겁니다.(94)

 

쉰 고개를 넘자 늙음에 대해 마음이 쓰인다.

박범신의 '은교'를 속세에서 노인과 청소년의 섹스 파동으로 몰아간 것은 좀 웃기지만,

난 그 소설을 박범신의 최고봉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늙어가는 사람의 마음을 가장 잘 그린 소설.

그런데 그런 말을 하는 그를 만나 좋았다.

 

좋은 음악이란?

자기만의 얘기를 담는 게 좋은 음악 아닐까?

상투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가고,

그 속에서 사소한 일상이나 풍경에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거나 다르게 보는 것,

이게 음악이고 글이고 미술.(51)

 

결국 어디서나 등장한다.

자신만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것은 남들이 끄달리는 욕망과 다른 무언가를 찾는 것.

 

어쩌면,

완벽하다 생각한 순간 그것으로 끝일지도 모르죠.(77)

 

도공은 완벽을 믿지 않는다.

삶에도 완벽은 없다.

날마다 흔들리면서 건너는 출렁다리 같은 것이 하루하루다.

 

남들 눈엔 유유자적으로 보이는 삶도,

누구나 그렇듯이 알고 보면 그 안에 격렬함과 숨막히는 불안이 서려있기 십상이다.

문제는 내가 나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다.(186)

 

자신의 재목을 잘 파악해야 한다.

무조건 달리는 것도 대수가 아니고,

스스로를 재우치는 것도 길이 아니다.

자신의 격렬한 불안을 이해하고 푸는 방식을 찾는 것이 능력인 셈.

 

소나무는 불량 목재...라는 관점은 새롭다.

소나무밖에 없었으니 소나무를 썼을 뿐이죠.

소나무 자체가 값싼 나무에 속해요.

침엽수 특유의 한계를 자명하게 드러내죠.

최고의 목재는 북미산 활엽수, 즉 호두나무, 참나무, 물푸레나무 등.

불행히도 한국의 기후풍토 속에서 활엽수는 거목으로 자라질 못해요.(247)

 

아, 사람도 그렇지 않은가 생각하면 가슴이 짠해온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한국의 정치판 안에 가져다 두면

그 썩은 가신들의 속에서 피가 말라 가듯이...

한국의 대학에서 똘똘 뭉친 집단의 힘을 느끼면 외부자는 견디기 힘들듯이...

거목으로 자라기 힘든 토양이라는 것은...

 

청춘이란 대체로 쫓기는 운세를 달고 산다.

불안한 미래에

소동과 불화로 점철되는 사회에,

억압된 꿈에 짓눌리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범이 무섭다고만 할 수 있나.

범이 쫓아오지 않는 삶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241)

 

미대를 나와 화가를 하다가 목수로 변신한 사람도 있다.

불안한 청춘은 나이가 먹어도 마찬가지.

동안을 선호하고,

아줌마 아저씨 몸매를 버리고 몸짱이 되길 원하는 게 세태다.

찌는 듯한 여름도, 이렇게 하루 아침에 가을이 되거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라.

웃는 표정이 많이 남아 있다면 그대는 세상에 보시를 한 것이다.(55)

 

이 책에서 시골로 들어간 이들은,

현실에서 패배한 자들일 수도 있다.

루저 외톨이 상처뿐인 머저리~~

그렇지만, 그들의 삶이 실패한 것이 아닌 것은 그들이 시골에서 꿋꿋하게 삶으로써 보여주고 있다.

 

흔히들 '있는 그대로'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보통은 나의 기대와 상처, 바람을 싣고 상대를 바라보죠.

자연엔 그런 게 없어요.

묵묵한 수굿함이라고나 할가.

그게 자연의 미덕이죠.

자연을 배우며 가볍게 살고 싶어요.(41)

 

어리숙함이 싫던 시대도 있었다.

좀 반들거리고 싶던 나이도 있었다.

이젠 알겠다.

묵묵한 수굿함, 좀 어리숙한 촌티가 매력일 수도 있다는 것이.

화사한 웃음도 행복을 주지만,

웃음에 낯익지 못한 비죽한 서산 마애불의 미소도 한 세상인 것을.

 

시골을 예찬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삶에는 비교처럼 무의미한 게 없다.

이 책에서 비교하지 않고 사는 삶,

그게 자유임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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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를 위한 서양미술사 1 - 미술관에 가기 전, 교과서에 나오는 화가 이야기 10대를 위한 서양미술사 1
노성두 지음 / 다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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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미술 수업은 어떻게 되는지 잘 모르겠으나,

인터넷도 없던 시절의 미술은, 교과서가 아주 중요했다.

미술책에서 들었던 이름들은

나의 한계가 되었다.

 

그런데 또 그 작가들의 그림이 중심이기도 한 모양이다.

이 책엔 내가 좋아하는 브뤼헐이나 아르침볼도를 잘 설명하고 있어 좋다.

1권은 르네상스까지이고, 2권은 낭만의 시대 이후인데

화가를 중심으로

필요한 경우에는 신화를 설명하고,

어떤 경우에는 화가의 전기적 요소를 간결하게 넣어 주어 읽기 쉽다.

 

베르니니의 다프네는 그 발목을 한번 만져보고 싶고,

고야의 양산은 소녀의 볼을 한번 꼬집어 주고 싶다.

그만큼 생생한 미술들이다.

 

 

베르니니의 '플루토의 페르세포네' 같은 작품은 한번 직접 보고 싶다.

 

http://blog.naver.com/tripharm/220573536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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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서양음악 순례
서경식 지음, 한승동 옮김 / 창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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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음악은 다르면서도 비슷하다.

미술이 한눈에 시각적인 압도를 경험할 수 있는 반면,

음악은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하다.

물론 미술 작품도 꼼꼼하게 살펴보고 이야기를 듣노라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겠지만,

서양음악은 특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이야기와 경험이 필요하다.

 

서경식이 외로울 때 그림을 보러 떠나는 일은 혼자서도 가능했지만,

이런 음악 여행은 아내 F가 있어서 가능했을 것이다.

 

특활 시간에 옆교실 도서실에 실내악반을 배치해 두었더니

요즘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 No.2를 매주 듣는 호사를 누린다.

그의 삶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 음악을 들을 때마다

쿵작작 쿵작작 하는 가벼운 왈츠 리듬 위로 장중하게 흐르는 비감을 들을 수 있다.

무거운 가슴으로 살아가는 이의 삶의 의지가 들리는 것이다.

 

서경식에게 윤이상은 또다른 쇼스타코비치일지 모른다.

 

저 어둡고 서글프고 험난햇던 세월에

윤이상 선생은 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음악을 작곡하고 있었던 것이다.(196)

 

아내와 함께 세계 여러 곳의 음악제를 보러다니는 사람으로서,

한국의 클래식에 대하여 아쉬움을 남긴다.

한국의 '문화'를 중국에서 굳이 '한때의 흐름'이라는 '한류'로 폄하하는지...

돌아볼 일이다.

 

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한국인인 듯한 사람을 발견한 적은 거의 없었다.

클래식음악이 일부 엘리뜨층의 즐거움,

중장년층의 향수의 대상,

성공 스토리만 꿈꾸는 사람들의 지위상승 수단 등의 차원에 머물고 있다면 유감스런 일이다.

한국사람들도 좀더 자신의 감성을 개방해서 더욱 자유롭게 음악에 관해 이야기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322)

 

이전 가카의 시대에 음미체를 줄이고 국영수를 늘리도록 고무줄 교육과정을 만들기도 했더랬다.

한심한 일이다.

거꾸로 가는 일.

 

서경식의 의식 세계는 즐거운 음의 여행에서도 억압된다.

 

나는 음의 세계와 색의 세계를 즐기는 곳에 있어서는 안 된다.

내가 몸을 두어야 할 곳은 예컨대 한국의 감옥이 그렇겠지만,

음도 색도 없이 치열한 투쟁만이 있는 그런 세계인 것이다.

처절할 정도로 고독했다.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엿보고 말았기 때문이다.(87)

 

음악의 세계로 들어가면 차원이 달라진다.

현실을 잊게 만들기도 하고, 현실에서 유리시키기도 한다.

 

내 마음이 부르주아적 생활을 동경하는지,

음악 그 자체를 동경하는지 나 자신도 잘 몰랐다.

전자는 결연히 부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후자를 부정할 수는 없었다.(62)

 

나의 대학 시절에도 '음악감상실'은 뜨거운 집회의 현장에서 불과 몇 미터 밖이었다.

대학 광장의 집회 소리가 울려퍼지는 따가운 햇살에서 불과 몇 걸음만 옮기면,

컴컴한 학생회관 1층의 홀에서는 바흐가 흐르고 있었는데,

편안하게 바흐를 들었던 기억이 별로 없다.

 

개개인의 인생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일찍 그 운명이 결정돼버리는 게 아닐까.

그 갈림길은 뭐니뭐니 해도 먼저 음악이나 미술 등에 대한 기호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53)

 

클래식보다는 민중가요가 우세하던 시기.

어린 시절 라디오에서 듣던 노래라고는

기껏 일본식 뽕짝이거나 팝송 같은 것들이던 나에게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음악을 들으면서도 이렇게 많은 생각을 엮는다는 일은,

지식인의 삶에서 허투루 놓치는 소재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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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6-06-21 1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는 만큼 들리는 것이 맞겠지요. 그러나 많이 들으면서 한 번 더 찾아서 들으면 아는 것도 조금씩 많아지더라구요. 클래식 음악 감상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봅니다. 문제는 실천 의지가 아닐까.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지요.
 
모든 게 노래
김중혁 지음 / 마음산책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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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한다면 오산이다.

그는 '악기들의 도서관'이란 책을 냈던 적이 있는 소설가이므로.

 

하긴,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재즈가 좋아서 카페도 했다지 않는가.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장석남, 수묵 정원 중, 번짐)

 

음악은 그림과 다름이 아니거늘...

 

이 책에서 재미있는 구절은, 음악에서 '스킵'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인상적이었으나, 이 책은 스킵으로 읽었다. ^^

 

빨리빨리 듣고, 필요없는 건 걸러내고,

그렇게 음악을 듣는 게 효율적인 것인 줄 알았다.

세상에, 음악이란 단어와 효율이란 단어는 얼마나 먼가.

13분짜리 곡을 듣다가 12분쯤에 온몸에 찌릿한 전기를 느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킵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 알 것이다.(32)

 

요즘 복면가왕에 등장한 '음악대장'을 들어도 그렇다.

나가수에 나올때는 소리만 지르는 줄 알았는데,

얼굴을 가려 놓으니, 소리가 들린다.

 

음악이란 것은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고 들으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또 외국에 나가면 이어폰을 끼지 않는다는데, 그것도 그럴 법 하다.

 

외국의 도시를 다닐 때에는

눈과 귀, 코를 모두 열어두어야 하기 때문에

낯선 도시의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아야 하기때문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을 시간이 없다.(144)

 

그렇지만 또 자전거를 타면서 음악을 듣기도 한단다. 헐~이다.

 

자전거를 타며서 음악을 들으면 위험하다.

사고를 당할 뻔한 적도 있다.

그러나 한편 자전거 타면서 들었던 음악들이 얼마나 짜릿했던가도 생각난다.

자전거의 속도와 음악의 속도가 합해져

나를 하늘로 붕 띄워 올리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속도와 나와 음악만 남아있던 그 순간...(27)

 

김중혁의 글맛이란...

글쎄, 그닥 당기지 않는

그러나 가끔 목마를 때 마시면 좋은 탄산음료같다고나 할까...

 

'안다미로'는 '담은 것이 그릇에 넘치도록 많이'라는 순우리말.(170)

 

안다미로라는 가수가 있단다.

'온새미로'라는 부사어도 있다. 토막내지 않고 통째로~라는 뜻이다.

'더이상 안 담아질 정도로 가득' 있으면 안담이로...고,

'통새미로' 자르지 않은 것을 '온새미로'라고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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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언제나 광속 - 시 한 수, 그림 한 장
김주대 지음 / 현암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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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불 때

꽃은 너무도 불안하여 그만 예뻐져 버렸다(이유)

 

이 책은 독특하다.

수묵화들이 강렬하다.

재주보다는 생각이 승한데

사고의 전환도 새롭다.

 

달의 지평선에

지구가 뜨면

어느 날

나는 거기 있을 것이다(꿈)

 

그림 공부하는 사람들이

참고로 보면 좋을 아이디어들이 가득하다.

 

입안으로 들어가 허공에 붙은 말을

상처를 감싸며 자란다

시간의 묽은 막이 둥글게 쌓이고

허공이 아물어 무게를 가질 때

크고 아름다운 말은 낮고 은은히 온다(진주)

 

 

어디 먼 곳을 바람만 밟고 다니나

바람 속에는 그대 발자국 소리

저녁마다 한짐이네

높이 목숨 걸고 매일 떠나는 그대

언제나 제자리 우네

소리가 눈물처럼 매달리는 저녁마다

까치발을 하고 귀를 대면

허공의 길을 타고 그대는

달그랑달그랑 오네 오시네(풍경)

 

 풍경으로 가득찬 풍경...

글씨와 세상이 따로가 아니다.

 

 

누구도 귀기울여주지 않을 때

누구나 마지막엔 하늘에 대고

온몸으로 외치지 않겠나

그런 생각을 해본다(하늘에 고함)

 

정치가 올바로 이끌어지지 않을 때,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된다.

 

붓의 선들이 어눌하면서도

강렬한 이미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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