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반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창비청소년문학 78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다.(245)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한 아이가 있다.

아몬드같이 생긴 뇌 속의 편도체가 정상발달되지 않은 탓이라 한다.

그런데...

느끼는 인간들 역시 진짜가 아닌 삶을 살아간다.

남들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자기와 정치적 입장이 좀 다르다고 하여,

세월호를 어묵에 빗대는 짐승같은 것들도 있다.

 

사람들은 원래 남과 다른 걸 배기지 못하거든.(21)

 

이 소설은 알렉시티미아(감정표현 불능증)를 가진 한 소년의 이야기다.

장애아에 대한 이야기면서,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관한 이야기다.

 

구할 수 없는 인간이란 없다.

구하려는 노력을 그만두는 사람들이 있을 뿐.(127)

 

아이들을 늘 접하는 교사들 중에서도

아이들의 일탈에 유독 가혹한 사람들이 있다.

툭하면 잘라버리려고 촉각을 세우는 사람들...

 

좋아하는 걸 말할 때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눈을 빛낸다(186)

 

인간의 감정은 다양하다.

그리고 인간은 다른 이의 감정에 민감하지도 않으면서

다른 이를 이렇다 저렇다 재단하기 좋아한다.

 

이 소설은 그런 비관적인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의지를 가지려는 시도다.

구하려는 노력을 시도하는 사람이다.

크지 않은 아몬드만한 노력이라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찬샘 2018-05-11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다고 추천하니 남편이 책내용이 너무 가혹하다며 싫다하다가 끝까지 읽고는 이 책의 메시지를 찾았노라며 뒤적뒤적 읽어줍니다. 그리고 평가가 긍정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내용이 글샘님 글 첫머리에 있네요. 부산원북원도서를 도서관에 네 권 들여놓고 얼마나 뿌듯하던지요! 지나가다 반가운 맘 들어 인사 드립니다.

글샘 2018-05-12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재미있기보다는
인생의 의미를, 교육한다는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이죠.
오랜만에 원북도서가 맘에 듭니다.
우리학교도 사서샘이 센스있게 3권 사셨더군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문학동네 시인선 32
박준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찬비는 자란 물이끼를 더 자라게 하고 얻어 입은 외투의

색을 흰 속옷에 묻히기도 했다'라고 그 사람의 자서전에

쓰고 나서 '아픈 내가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

었다'는 문장을 내 일기장에 이어 적었다

 

우리는 그러지 못했지만 모든 글의 만남은 언제나 아름다

워야 한다는 마음이었다(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중)

 

남의 자서전을 쓴 경험이 묻어 있다.

철저히 남인데, 그 경험은 전이된다.

 

가슴 벅차고 설레는 주말이었다.

몇몇 치졸한 자들의 옹졸한 잡소리는 다들 비웃고 말 정도의 무게였다.

 

 

 

푸른 빛으로 ㅁ 을 그린 구절은 '서로 사맛디'이며

붉은 빛으로 ㄱ 을 그린 구절은 '맹가노니'였으니

남북의 음양의 태극을 상징하고 문재인과 김정은의 이니셜이기도 한 구절을 합해 읽으면

서로 통하게 만들자~는 의미가 되었으니, 이런 것이 창의적 메타포가 아닐까...

 

찬비로 흰 속옷을 적시던 시절을 지나

이제 당신들의 이름으로 며칠은 든든하겠다는 생각을 한다.

행복한 나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초언니
서명숙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85년에 대학을 들어간 내게, 세상은 도깨비판이었다.

세상은 그대로건만 84년까지의 눈과 85년부터의 눈은 정반대를 보게 되었다.

뉴스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들을 듣고 보며, 찾고 지향한다.

 

이 책은 박정희의 긴급조치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기록이다.

청춘의 빛나는 시간들은

감옥과 포승줄로 녹슬어갔다.

결국 식탐만 남은 영초언니를 읽으면서 세상의 팍팍함에 치를 떨게 된다.

 

독신으로 살아라

똑똑하고 잘 배운 여자는 좋은 직업을 가지게 되니 굳이 결혼할 필요가 없다.

남자에게 의지하지 말아라.(41)

 

이런 어머니에게서 자랐지만,

미욱한 결혼을 하고 이혼도 한다.

삶이란 의지보다 큰 어떤 기운으로 살아지는 것일 때도 많다.

 

2016년 겨울,

최순실이라는 그 여자가 민주주의를 중얼거린 시기,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라는 영화 제목을 떠올린 촛불의 바다를 건너왔다.

 

아직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만, 변화의 물결은 세상을 휩쓸고 미래로 흐른다.

1주일 후면 남북 정상회담을 하게 되고,

휴전 협정을 평화 협정으로 바꿀지도 모른다.

일본과 해저 터널로 기찻길을 놓게될지도 모르고,

우리는 더이상 섬나라가 아닌 세상을 살 수도 있다.

 

영초언니들이 살았던

캄캄한 어둠은 조금씩 밝아오고 있다.

다행이다. 촛불로 밝힌 밤들이

환한 태양을 기다리는 새벽이 되어 다행이다.

아직 어둠 속에서 번득이는 세력은 강고하다.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라던

이육사의 탄식이 오버랩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 꿈 산지니시인선 4
조향미 지음 / 산지니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이 마음에 남는다.

사는 일,

한낱 꿈이런가...

 

그이가 아팠나보다.

하긴 나보다 나이 좀 더 많으니, 이제 노인의 몸이다.

 

마음이 쭈글쭈글해졌으면

나른하게 납작하게 시들어갔으면

꽃잎은 이우는데 낙엽도 지는데

시들지 않은 마음은 하염없이

뻗쳐오르고 시퍼레지고 벌게지며

이렇게 푸드덕거리며 기세등등할까

그만 고운 먼지에 싸여

하야니 핏기를 잃고

쭈글쭈글 주름이 잡혀서

더 이상 출렁대지 않고 들끓지 않고

조그맣고 동그랗게 여위어져서

소리도 없이 툭 떨어졌으면(이 가을, 전문)

 

가을은 나이듦의 유추고,

말라감은 자연스러움의 소치다.

인정해야하는데, 중력을 거스르는 화장품 광고는 너무 요란하다.

 

내 손가락은

우주의 나뭇가지다

모락모락 끊기지 않는 이 생각도

신이 피워올린 연기다(한 몸, 부분)

 

나의 오늘은

남은 날들 중 가장 젊은 날이다.

오늘 나의 신비로운 몸을 묵상한다.

 

너 정말 안 되겠구나

나도 이제 손들었다

쇠도 아닌 사람에게 노인도 아닌 아이에게

독화살로 쏘아보낸 말들

그 무명의 불경

사막에 와서 참담히 무릎 꿇는다

쉿,

외경을 배운다(쉿! 부분)

 

고비사막에서 낡은 차가 섰을 때

승객들은 물었다. 당연하게도.

갈 수 있냐고, 고물이라고...

그때, 서른다섯, 기사 아내 보드마르의 말,

차에도 귀 있어요...

 

혁신학교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둘러앉는 일

다함께 둘러앉을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것이

혁신과 행복의 첫걸음이었습니다

수업도 모둠 수업

회의도 원탁 회의

 

학교 텃밭에 둘러앉아 삽겹살을 구웠고

밥집 술집에 둘러앉아

웃고 떠들며 논쟁하고 고민했습니다.

교사들 둘러앉은 자리 기승전결은 언제나 아이들

엎드린 아이 홀로인 아이 외면하는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한명의 아이도 배움에서 소외시키지 않을까

 

시고 떫은 날들도 많았으나

어김없이 수요일은 돌아오고

둘러앉았으므로

서로의 눈빛 읽고 마음 열어 갑니다

홀로 꿈꾸고

오래 좌절해본 사람은 압니다

무엇도 혼자 이룰 수 없다는 것

낮과 밤처럼 달라 보이는 너와 나도

함께 이어져 있음을 서로에게 스며들 수 있음을

백짓장도 맞들면 낫고

한 사람의 백걸음보다 백사람의 한걸음이나

둘러앉아 행복을 배웁니다

둘러앉은 가장자리 밝고 따뜻합니다(둘러앉는 일, 부분)

 

학교에서 나이드는 일은

톱니바퀴가 되어

그저 모두 도는 리듬에 맞춰 도는 일...

 

일주일은 금세 가고,

그러노라면 한 달이 가서 중간고사, 또 기말고사, 그리고 방학

또 중간고사, 기말고사, 학예전과 방학, 진급과 졸업...

 

나도 이러기를 올해로 30년차다.

생각하지 않고 이야기나누지 않고

파편으로 사노라면

삶이 너무 팍팍하다.

 

그처럼 봄꿈을 꾸며 살아야 할 노릇인데...

이렇게라도 일깨워주는 시집이 있어 감사하다.

 

89. 생때... 생떼로 써야 맞다.  뿌리가 흙에 심긴채 있는 잔디를 떼라고 부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사모하는 일에 무슨 끝이 있나요 문학동네 시인선 101
문태준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새봄이 앞에 있으니 좋다.
한파를 겪은 생명들에게 그러하듯이.
시가 누군가에게 가서 질문하고 또 구하는 일이 있다면
새벽의 신성과 벽 같은 고독과 높은 기다림과 꽃의 입맞춤과
자애의 넓음과 내일의 약속을 나누는 일이 아닐까 한다.
우리에게 올 봄도 함께 나누었으면 한다.
다시 첫 마음으로 돌아가서
세계가 연주하는 소리를 듣는다.
아니, 세계는 노동한다.(작가의 말)

 

비님이 오신다.

오랜만에 오시어

메말라 터진 대지를 위무해 주시니

좋다.

참 좋다.

 

대지는 '앓고 난 후에

말간 죽을 받은' 아이처럼

침없이 웃으며 비님을 받는다.

 

비님은

'흰 미죽(糜粥)을 떠먹일 때의 그 음성으로'

차갑게 굳은 아스팔트를 적신다.

누군가의 서럽던 눈물도

누군가의 욕망의 액즙도

또 누군가의 수고로운 땀방울에도

아... 그리고 높은 곳에서 속절없이 떨어져

비인간이 된 누군가의 핏자국도

 

어루만져 주시는

비님이 내리신다.

위로나 적선의 속내도 없이

비님은 오신다.

 

 

흘러오는 내처럼

긴 예문(괴석, 부분)

 

그의 시는 고요한 응시로 변화하고 있다.

침잠한 기도 속으로

하염없이 들어간다.

 

뜨겁기보다는 뭉근한 언어로 가득하다.

뜨겁게 좋지는 않지만

뭉근한 온기도 좋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