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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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이/가'는 주격조사이지만, '은/는'은 보조사이다.

'은/는'은 한정적이고 대조적인 의미를 부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보조사 하나로,

바깥은 사람들이 덥다고 땀흘리는,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나는 활기가 가득한 여름이지만,

이 안쪽에는 옹송거린 추위 속에서 얼어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작가가 그리지 않을 수 없는 세상임을, 강조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스노볼을 쥔 느낌이었다.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156)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182)

 

지난 세월동안, 한국에서 사는 일은 스노볼 속에서 사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쟁 피난민(전재민)으로 사는 일이나,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서 3,40년을 사는 일이나,

국가의 폭력으로 집행당한 사형이나 감옥 생활,

억울한 죽음과 국가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아 생긴 피해들,

교과서에선 4계가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 노래하지만,

언제나 꽁꽁 얼어붙은 스노볼 안 사람들에겐 바깥의 여름은 생뚱맞은 것이었다.

 

세월호 유가족을 국가 권력이 억누르고, 용산 참사의 비극을 무시하고,

국가의 재산을 사유화하는데 눈이 시뻘갰던 자들의 세상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시차는 갈수록 커져왔더랬다.

 

김애란의 '비행운'에서 보여주었던 삶의 신산한 말단이 여기서도 이어진다.

 

물먹은 풀이 내 몸에서 나오는 고름처럼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한파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37)

 

입동이란 제목이 서늘하다.

입동이면 아직도 서슬푸른 한겨울이 버티고 있는 시절이다.

이 겨울을 과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는지...

 

아이가 죽은 집을 도배하다 만난 아이의 글자.

그것처럼 남편이 제자를 구하다 죽은 상황에서 받게 되는 제자의 누나 편지.

 

사모님, 혼자 계시다고 밥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드세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265)

 

스노볼 속의 세상에 이런 훈김을 불어 넣으려는 노력이 그의  소설이다.

소외되어 차가운 마음으로 실의에 빠진 이들의 마음을

그는 몸으로 그려 보인다.

묘사는 그런 힘이 있다.

 

목울대에 따갑고 물컹한 것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당신을 보낸 뒤 줄곧 궁금해한 무엇과 만난 기분이었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편지지 위 글자를 좇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흐려졌다.

눈 앞에 얼룩진 문장 위로 지용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소리도 못 지르고 연신 계곡물을 들이켜며 세상을 향해 길게 손 내밀었을 그 아이의 눈이 아른댔다.(265)

 

문장에서 세월호를 만나고, 유가족을 만나고, 최근 몇 년의 내 눈물을 만난다.

 

세상에는 다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같은 시공간에 살면서 시차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어떤 때는 너무 화딱지가 난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가진 도덕이,

가져본 도덕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래.(199)

 

이런 말들이 위로가 된다.

 

어린이는 원래 힘든 거예요.

각 시기마다 무지 또는 앎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가 큰 걸 보면, 맞는 말인 것 같다.(194)

 

교회 안엔 맍은 빛이 있었다.

여러 빛 덩이가 멍물멍울 어둠 속을 떠다녔다.

이윽고 아이들은 노래했다.

아직 '맛' 경험이 적은, 죽은 동물을 덜 먹어본,

축축하고 맑은 혀로, 어떤 음은 허공에 가느다란 포물선을 그리다 고꾸라지고,

어떤 음은 누군가의 단독 비행을 좇다 기꺼이 함께 낙하하고,

모두가 막 사라진 음의 행방을 신경쓸 찰나

그 소멸을 위로하듯 여러 개의 음이 다시 풍등처럼 날아올랐다.

재이 목소리는 아주 작은 충격에도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알전구처럼 가늘고 투명했다.

높은음을 낼 때 성대 속 필라멘트가 노란 빛을 내며 파르르 떨리는 듯 했다.(195)

 

절할 때 '가리는 손'이 있고 '가려지는 손'이 있다.

명절날이 다르고 상갓집에서의 예가 다르다.

삶은 늘 다른 것들 속에서 판단하며 진행되는 것들로 가득하다.

가끔은 '틀니나 딱딱대며 사는 늙은이들(틀딱)'의 말에 짜증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가슴을 드러낸 채 눈물을 뚝뚝흘리던 내 모습과

산바라지 하러 온 엄마가 한 달 내내 끓여준 미역국,

집안을 가득 채운 우럭 비린내도

그땐 내 젖에서도 그 냄새가 나는 듯 했다.

젖꼭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희뿌연 액체가 꼭 뼈 국물 같았다.(189)

 

여성들의 이야기에서나 나올 수 있는 문장이다.

노량진에서 '건너편'을 욕망하면서 살아본 사람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도 있다.

 

도화는 잘 개어놓은 수건처럼 반듯하고 단정한 여자였다.

도화는 인내심이 강했고, 인내심이 강했기 때문에 쾌락이 뭔지 알았다.(97)

 

이수와 도화. 배나무와 복숭아꽃...

그 튼실한 남성과 화사한 여성이 시들어가는 곳,

해오라비 갯가에 깃들이는 '노량진'에는 공시생들이 김밥에 목이 메이며 살아간다.

 

도화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문법을 존중했다.

수사도, 과장도, 왜곡도 없는 사실의 문장을 신뢰했다.(90)

 

그녀는 교통방송을 진행하는 교통경찰이다.

우리는 모두 그녀처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

하지만, 세상이 지나치게 추운 겨울 왕국일 때,

바깥은 여름이지만, 스노볼 속 시차처럼 훈기가 느껴지지 않는 삭막한 세상일 때,

'非-행운'의 연속인 삶 속에서 지쳐버리기 십상인 게다.

 

김애란의 따스한 눈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스노볼 속에서 덜덜 떠는 사람들의 마음에

한뼘만큼이라도 입김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

 

이 여름, 폭염속에서 헐떡일 때, 서늘하게 읽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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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자리 - 나무로 자라는 방법 아침달무늬 1
유희경 지음 / 아침달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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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곳에서도 반짝이는 것이라니 파도가 덮어 흔들리는 빛이라

니 지금을 숨기는 어두운 속내라니 내게는 그보다 더한 것이 생

기지 않는다 지워지기보다 사라지는 당신, 나무는 가벼이 침몰하

지 않는다는 것을 긴 침묵을 위해 물결로 이끼로 전설로 덮여간

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기꺼이 내가 가라앉는 까닭, 거기에 혹

은 그러기에 남아 조금씩 자리를 움직이는 (보물)

 

읽다가,

혹시 서울예전 ? 이런 느낌이 들어서

왜 그런 느낌이 들었는지,

그런 느낌이 어떤 느낌인지도 모르면서,

표지를 보면서 뭔가 있는건가? 하는 생각을 한다.

 

시는 언어인데,

무슨 의미인가를 읽지 못하겠는 언어가

나에게 와닿지 않을 때...

 

당신의 자리 - 라는 제목의 시들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 알지 못할 때,

 

시란... 참 무엇인가 싶다.

 

길게 묶은 편집의 시집에서

시를 90도 돌려 편집한 것은

색달랐다.

 

왜 그렇게 했는지를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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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 408
안미옥 지음 / 창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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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좋은 시란 건 없겠지만,

나에게 좋은 시는 언어가 구체성을 띠고 마음에 감겨드는 것들이다.

한용운의 시들이 그렇고, 신경림의 시편들이 그렇다.

윤동주의 많은 시들이 그렇고, 장석남의 몇몇 시가 그렇다.

 

안미옥의 '온'은 제목에서부터 뭔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온전하다의 '온'인지,

따스한 온기의 '온'인지,

하나도 빠지지 않은 통째로의 '온새미로'의 '온'인지,

아니면, 이미 와버린 '온'인지를 알 수 없는데,

시를 읽어도 그 형상은 구체화되지 않는다.

 

나는 재미없는 것만 기억한다

끝나는 것을 끝까지 본다(나의 문)

 

너는 무서워하면서 끝까지 걸어가는 사람.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생일 편지)

 

시인이 좀더 구체를 획득하면 좋겠다.

'찢긴 것' '썩은 나무토막', '검은 연기', '비틀리고 뒤집히고' 같은 시어들은

시어이기보다는 형용사다.

시어는 그림을 통해 마음을 전달하는 게 좋아 보인다.

 

끔찍하구나

이게 전부 마음의 일이라니(시집)

 

그 마음의 일을 묘사하고

생생하게 독자에게 꽂는 자가 시인이다.

끔찍하다고 말하기보다는

그 끔찍할 수밖에 없던 세상을

광화문에서 울부짖던 노란 점퍼들과

아스팔트에서 노숙하던 국회의원을 그렸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 시집이 당신에게도 조금의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는 모든 곳으로 오는 시를 생각한다.

모든 곳에, 백가지의 모습으로.(시인의 말)

 

지난 겨울 모두들 용기를 내서

추위를 이겨냈다.

아직도 멀었으나, 이제 빛이 비친다.

시도 좀더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

 

사람들에겐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다

 

무수히 많은

노란 리듬 때문(램프)

 

노란 리본을 떠올리기는 쉽다.

 

물에 번지는 이름

살아 있자고 했다(아이에게)

 

시 제목도, 시도 아직이란 생각이 든다.

그건 세월호라는 호명이 아직도 진행중이기 때문일 것이고,

무수히 많은 노란 리본들은 아직도

왜 기레기들이 구조에 열을 올린다고 거짓말을 일삼았는지,

왜 십여 명 희생에 머물 것을 삼백 명을 수장했는지,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의 시들에게 읽히는 노란 리듬의 편린들은

그래서 막막하게 터지는 한숨이기보다는,

얼룽얼룽대는 아지랭이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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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F/B1 일층, 지하 일층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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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대한 환상적 탐구, 개인적으로 ‘냇가로 나와‘ 같은 작품을 좋아한다. ‘바질‘이나 ‘1층/지하1층‘의 상상력도 멋지다. 좀 긴 호흡으로 냇가로 나와의 하마까와 같은 인물을 풍자적으로 형상화하는데 더 집중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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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가 돌아왔다 - 2판 김영하 컬렉션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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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소설집이 배송되는 동안

도서관 서가에 가보니 예전에 읽었던 이 책이 날 부른다.

 

김영하를 제법 몇 권 읽었지만,

내 기준으로 압권은 '오빠가 돌아왔다'다.

이유는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인물들의 형상화라 말하겠다.

 

김영하의 사람들은 좀 흐릿하다.

작가거나 편집자거나 감독이거나가 많고,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처럼 존재감이 강하지 않다.

그리고 제목들도 철지난 유행가 가사의 한 소절처럼 강렬하지 않다.

 

그런데, 천명관이나 성석제의 말맛처럼,

사람을 그리는가 하면

말맛에 휩쓸려 따라가게 되고,

소설을 맛깔나게 읽을라치면

또 개성적인 인물이 또렷하게 살아나는

단편 한 편을 읽었을 뿐인데

오래오래 들어온 라디오 연속극의 인물들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드는 작품,

오빠가 돌아왔다.

 

옆에 못생긴 여자애 하나를 달고서였다.

화장을 했지만 어린 티를 완전히 감출 수는 없었다.(43)

 

오빠는 아빠를 치고,

아빠는 오빠를 고발하고,

대화는 주로 욕설로 시작해서 비속어로 끝나며,

말과 말 사이가 긴장으로 가득하다.

 

2002년 발표된 작품인데,

이런 쫄깃한 작품들이 좀 더 들어있다면... 하고 바라는 건 과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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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7-06-0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 전에 집에서 책 정리를 하면서
이 책을 본 것 같은데 정작 읽은 것
같지는 않네요.

최근 예능 프로그램에 작가분이 나오신
것 같은데, 신간 발매와 더불어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