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기담 사계절 1318 문고 95
이금이 지음 / 사계절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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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담...

괴담이나 거기서 거기인 이야기들이다.

 

헐리우드 귀신 영화는 청춘남녀가 야리꾸리한 분위기일 때 귀신이 등장하는데,

한국 영화에서는 야자 마치고 집에 가는 아이들 앞에 귀신이 등장한다.

불쌍한 청춘들이다.

 

푸르른 봄날...을 뜻하는 청춘은,

풀나무에서 꽃으로 대표되는 성적인 시기여야 마땅하다.

서로 관심을 끌기에 여념이 없고,

성적인 호기심에 나날을 보내는 것이 정상적인 것 아닐까?

 

초등학생부터 학원에서 나날을 보내야 하는 불행한 아이들부터,

뭔가 제 궤도가 아닌 듯 삐그덕거리는 방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아이들까지,

이 사회에서 남녀 학생들의 청춘의 메시지는 찾기 힘들다.

 

그래서 대학을 가거나 어른이 되면,

커플이 아닌 것에 대하여 무진장 콤플렉스를 갖게 되는 반면,

결혼도 육아도 행복도 포기해야 한다는 세대를 탄생시킨 것은,

우리 기성세대들이 만든 잘못이다.

 

민주화되지 못한 세상 탓도 있지만,

급작스런 경제적 호황과 고학력자 양성에 맞물린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부동산 투기와 부정부패 정부를 가진 국민으로 살기 위해

아이들을 공부, 학교, 학원이라는 틀에 가둔 것이 이 나라의 청춘들에게 열린 세상이다.

 

수학여행 가던 배가 뒤집어지고

한차례의 구조 시도조차 없이 수장되고 말았던 청춘들 앞에서

기성세대는 많이 울었다.

해마다 100명이 넘는 자살 학생들 앞에서 청춘은 푸르지 않다.

 

이금이 선생님은 언제나 아이들의 삶에 관심을 기울인다.

애늙은이를 만드는 학원에 보내는 고찰, <나이에 관한 고찰>을 청소년이 읽는다면

자신의 나날과 겹쳐보이는 구부정한 척추측만이 비칠지 모른다.

<유니하우스>라는 게스트하우스 이야기에서는

한부모 가정과 입양이라는 복잡한 세계를 투영한다.

<검은 거울>에서는 입장을 바꿔볼 수 있는 장치를 통해

어른의 삶을 조망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며,

<1705호>는 이 세상에 만연한 고층 아파트 붐과 상호 무관심,

그래서 늘어난 실패하지 않는 자살, 투신...이라는 이야기를 섬뜩하게 들려준다.

<셔틀보이>는 휴대폰을 손에 놓지 못하는 세상의 아이들이 입을 상처와

그 아이들이 겪을 빈부격차 같은 것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천국의 아이들>에서 푸른머리 소녀와 블루라는 고양이를 통해

저세상으로 가버린 아이들을 그리워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여섯 편의 짧은 이야기들은

<괴담> 수준의 이야기들은 부분적으로 보이지만,

박민규 말마따나,

이 땅에서 사는 한, 청춘은 없다...는 것이 현실이고 보면,

청춘으로 사는 그것 자체가 <기담>이 되어버리는 거라 생각하니 마음 한켠이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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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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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홀'은 장모가 마당에 판 '구덩이'일 수도 있지만,

인간 관계의 '구멍'일 수도 있고,

영어 표기만 없었다면 홀아비, 홀어미, 홀로이 '홀~'로 읽을 수도 있겠다.

 

주인공 오기라는 교수는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 마비가 되는데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오기는 무력해졌고, 내부의 공동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는 것을 느꼈다.

그 구멍 속으로 자신이 아예 빠져버릴 것 같았다.(185)

 

이 인간관계의 구멍에서 이루어지는 장모의 복수랄까 그런 것은

치밀하지 못하다.

흥미롭게 전개되던 스토리가 구멍 속으로 빨려드는 느낌은 싱겁다.

 

인간은 그런 식의 빈구석을 가질 수밖에 없고

그것이야말로 내면의 진실일지 모른다는 얘기를 오기는 수업시간이나 강연 때 자주 써먹었다.(180)

 

한국에서 인간관계는 끈끈하게 보이다가도 절벽이 된다.

인간은 그런 고독을 필연적으로 안고 다니는 존재임을

이 사회는 좀처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결국 그 결락은 구멍이 되고, 구덩이가 되어 사람을 파멸시키기도 한다.

 

오기가 생각하기에 아내의 불행은 그것이었다.

늘 누군가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것.

언제나 그것을 중도에 포기해 버린다는 것.(87)

 

많은 사람들의 불행이 그렇다.

비교하고 엉뚱한 공상을 모델로 삼는다.

그런것이 구멍의 원인이 된다.

모두 그렇고 늘 그렇다.

 

사십 대란 모든 죄가 잘 어울리는 나이(77)

 

좀 어색한 핑계다.

 

아무리 애써도 끝내 정확할 수 없다는 것.

지도로 삶의 궤적을 살피는 일은 불가능했다.

지도 없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지만,

지도만으로 세계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에 회의가 들었다.

의미가 있기는 했다.

정확히 살필 수도 없고

선이 보이지도 않는 궤적을 누군가는 구태여 실체가 있는 공간으로 바꾸려고 애썼다는 점.

정확히 알 수 없고 하나로 분명하게 해석될 수 없으며

온갖 정치적 의도와 편의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는 세계.

그래도 지도는 실패를 통해 나아졌다.

그 점에서는 삶보다 훨씬 나았다.

삶은 실패가 쌓일 뿐, 실패를 통해 나아지지는 않으니까.(75)

 

인간에 대해 비관적인 작가다.

나는 공감하는 부분도 있지만, 인간은 무한한 가능성도 있다고 믿는다.

 

책을 읽는 일도 그렇다.

어느날 황당하게 구덩이 속에 묻힐 존재이기는 하지만,

해석과는 달리,

삶은 성공이나 실패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냄새와 온도를 가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과 인간 사이의 구덩이도 인간이 만든 것이고,

그 구덩이에 빠져 죽느냐,

구덩이를 극복하고 기대고 사느냐를 결정하는 것도 인간의 의지다.

 

재미있게 전개되긴 하지만,

지도라는 상징체계와 삶을 잘 빗대고 있기도 하지만,

삶에 대한 성찰이 좀더 스토리를 통해 빚어져 나오길 바라는 아쉬움이 남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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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문학과지성 시인선 483
김선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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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에서 가장 예쁘게 슬픈 단어는 '화비'였다.

꽃비가 떠올랐다.

 

花, 飛, 花, 飛

내 눈동자에 마지막 담는 풍경이

흩날리는 꽃 속의 당신이길 원해서

그때쯤이면 당신도 풍경이 되길 원하네(花飛, 그날이 오면)

 

잘 놀다 갔다

완전한 연소였다(花飛, 먼 후일)

 

누구나 죽는다.

그의 나이 아직 쉰도 안 되었지만,

벌써 부르는 녹턴은 깊다.

 

꽃이 떨어지듯

마지막 풍경을 대할 때,

당신이라는 풍경이 있기를 원하는 정도의 욕심,

그리고 완전 연소라는 다부진 꿈의 욕심.

조금 더 힘을 빼도 좋으리.

 

마지막까지 너희는 이 땅의 어른들을 향해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말한다

차갑게 식은 봄을 안고 잿더미가 된 가슴으로 운다

잠들지 마라, 부디 친구들과 손잡고 있어라

살아 있어라, 산 자들이 숙제를 다할 때까지(봄의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다)

 

차가운 봄 바다에 잠긴 꽃들,

사랑한다던 영상이나 문자와

국가의 억압을 통해

어른들은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떠올렸다.

그래서 겨우내 눈을 맞고 얼어가면서 주말마다 광장을 지켰다.

두려운 겨울이었다.

 

참 좋은 날이야

내가 하찮게 느껴져서

참 근사한 날이야

인간이 하찮게 느껴져서(바람의 옹이 위에 발 하나를 잃어버린 나비 한 마리로 앉아)

 

가볍다.

더 가볍고 하찮게 살아야 한다.

그런게 밤의 노래, 녹턴이다.

 

여행기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참 많소

(그것도 나쁘진 않지만)

여행기를 쇼핑하는 사람들은 더 많소

(이렇게 죽어갑니다)(om의 녹턴)

 

am과 pm도 아닌 om은

오옴~~~하는 소리이기도 하고,

제3의 시간이기도 하다.

혼자만의 시간일 수도 있다.

 

주인 없는 개, 라는 말을 들을 때 슬프다

주인이 없어서 슬픈 게 아니라

주인이 있다고 믿어져서 슬프다

 

개의 주인은 개일 뿐인 거지

개와 함께 사는 당신은 개의 친구가 될 수 있을 뿐인 거지

 

이 개의 주인이 누구냐고요?

그야 개, 아닐는지?

 

이 개가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라면

사랑을 아는 좀 멋진 절친쯤 될 수 있겠소만(견주, 라는 말)

 

김선우가 확 나이들어버린 느낌이다.

어떤 면에서 실망이고(이전의 여성성을 노래하던 패기넘치는 시인은 어디로 가고)

어떤 점에선 획득이다.

 

아마도,

죽음의 땅에서 - 강정에서, 진도 앞바다에서

너무 혼을 빼고 울 수밖에 없는 시대여서,

눈물난다...는 말보다

시를 뱉을 수 없는 불임이어서,

여성성이 사라진 녹턴의 황혼을 노래하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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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호위
조해진 지음 / 창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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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의 소설은 작지 않다.

단편 소설은 인간 삶의 단편에서 삶의 애잔한 일반성을 느끼게 하는 것인데,

조해진의 짧은 이야기들의 편린은,

인간 종이 가진 역사의 비애를 강하게 비추고 있다.

 

그런 면에서 그의 이야기는

어떤 디아스포라의 삶을 반영하는 작은 거울이다.

 

마치 먼지처럼 느껴지는 현실의 존재일 수 있는 사람들에게

<위대한 삶의 무게>를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다.

그것은 지하실에서 삶의 희망을 잃었가던 한 바이올리니스트 여성에게,

무명의 작곡가가 가끔 배달하던 악보 한 장은 그야말로 '빛의 호위'를 실감케 하는 경험이었던 것이다.

 

권은에게 반장이 준 카메라와 같은 스토리이거나,

서 군이 겪은 고난의 삶과 평행하게 달리는 음반집 딸의 이야기이거나,

삶에서는 먼지처럼 또는 기름때처럼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트라우마들이

그나마 '빛의 호위' 덕에 사람을 살게 하는지도 모른다.

 

세상은 언제나 추악한 인생들의 집합으로 이뤄져 있어 보인다.

뉴스는 언제나 더러운 인간들의 구역질나는 혐오 뉴스로 가득하다.

그렇지만, 우리가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바라보면,

그들에게서 내가 빛을 느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내게서 빛을 느낄 수도 있는 일임을

조해진은 보여준다.

 

그래서 그의 평행 세계는

전혀 관계없을 수 있는 나치 치하의 지하실과,

현대 한국의 컴컴하고 삐걱거리는 어둠을 연결하고,

그 사이에서 '위대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잇닿게 한다.

 

조해진의 글이 더 빛의 호위를 받아 멀리 빛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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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지옥일 때
이명수 지음, 고원태 그림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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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살기 힘들다.

안철수가 힐링캠프 나와서 '출산 최저, 자살 최다'라는 말을 했다.

헬조선의 현실을 보여준다.

나쁜 것의 지수는 최고 높고,

행복 지수나 이런 긍정적 지표는 늘 바닥이다.

 

어른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렇다.

그렇다고 지옥을 벗어날 수도 없다.

우리말은 어디에서도 통용되지 않고,

사실 이 나라는 섬나라다.

 

사람들이, 마음이 지옥인 거대한 난파선에서

시의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하는 광경은 상상만으로도 장엄하고 설렌다.(11)

 

이 책은 커다른 위안의 샘이다.

천천히 읽어도 좋고,

대충 읽어도 좋다.

참 좋다.

 

웃음과 울음이 같은 音이란걸 어둠과 빛이

다른 色이 아니란 걸 알고 난 뒤

내 音色이 달라졌다(생각이 달라졌다, 천양희)

 

웃음과 울음에서 음이 보이다니...

아재 개그치고는 고급이다.

고급은 멋지다.

 

사람들의 기대를 배반해야 내 삶이 편안해지는 때가 있다.(168)

 

때론 간큰 사람이 되는 것도 괜찮다.

사실 남들의 기대란 나의 기대와는 무관한 경우가 많으니깐.

 

외부노출형 엘리베이터 유리벽 너머 저켠에서 한 아가씨가

차를 놓칠세라 힘차게 달려오고 있었는데

아, 저 아가씨, 탐스러운 길다란 생머리가

온통 출렁거리고 있었는데, 이런 식의,

출렁거림의, 역동성의 아름다움이란 생전

처음이었는데, 정말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174)

 

생동감

생명력

이런 것으로 아름다움을 느끼는 날은

살고 싶은 날이다.

 

고통받는 이를 위로할 때는

논리적인 이유를 찾지 말고

침묵 가운데 함께 해야한다.

논리적인 이유를 찾는 행동은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나쁜 결과를 만든다.(187)

 

교황의 말이다.

세월호 직후, 그 지옥에서 남긴 말은 위로가 된다.

 

나비는 꽃이 쓴 글씨

꽃이 꽃에게 보내는 쪽지

나풀나풀 떨어지는 듯 떠오르는

아슬한 탈선의 필적

저 활자는 단 한줄인데

나는 번번이 놓쳐버려

처음부터 읽고 다시 읽고

나비를 정독하다, 문득

문법 밖에서 율동하는 필체

나비는 아름다운 비문임을 깨닫는다

울퉁불퉁하게 때로는 결없이

다듬다가 공중에서 지워지는 글씨

나비를 천천히 펴서 읽고 접을 때

수줍게 돋는 푸른 동사들

나비는 꽃이 읽는 글씨

육필의 경치를 기웃거릴 때

바람이 훔쳐가는 글씨(나비를 읽는 법, 박지웅, 전문)

 

세상을 읽는 법은 이렇게 답이 없다.

답,답,한 세상은

답이 없다.

 

그렇지만, 직선이 아니라도

그 나풀거림의 시어 속에서

답,답이 필요 없음을,

어차피 삶은 답이 없는 문제였음을 알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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