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 나막신 문학과지성 시인선 479
송찬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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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말씀 언' 변에 '절 사'가 붙어 있는 글자다.

말 속에 종교를 심어 놓아야 시가 되는 법인데,

2016년에 나온 시집이라는데,

나는 그의 머리말이 마뜩잖다.

 

자정 너머 달리는, 심야 막차 풍경 같은

고단한 풍경의 시들이...(시인의 말 중)

 

2016년 이른 봄이었으면,

사람들은 새카맣게 가슴이 타들어 갈 때였다.

세상은 그대로 '헬 조선' 이었고,

생지옥이었는데,

심야 막차 풍경 같은 시들을 읽자니 하품이 난다.

머 그렇다는 거다.

 

그시절이면,

시인들 사이에서 성추문 사건도 일었고 그런데,

그의 시들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

그저 사물로, 사물로 눈을 감고 간다.

 

아직은 춥고 어두운 계절이오.

오너라, 더딘 봄이여 여기는

서정의 박터

봄이 오면

이 말의 씨앗을 심어 보겠소

여긴 멀리 북방에서

늑대의 등을 타고 온 봄이

이야기꾼으로 그 고단한 몸을 처음 내린 곳(2월의 노래, 부분)

 

무슨 일제 강점기 육사도 아니고,

군사 독재정권기 신동엽도 아니고...

막연한 그의 시에 힘이 없다.

 

자연도 좋고

침잠도 좋지만,

세상이 지옥도일 때,

시를 가르친다는 그정도 되면,

사람냄새 구린내 그득한 똥짐 냄새 풍기는 시도 좀 썼으면 한다.

 

아쉽다.

분홍신이라는 안데르센의 판타지적 비극성 정도가

그의 연륜이 그리는 시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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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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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문학이라기엔 형상화에 실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뻔한 서술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페미니즘 담론이라는 것이

지식인 사회에서 회자되는 논문식 글들이 많아서

일반인들이 읽어내기 쉽지 않다는 결정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고,

문학적 소양이 뛰어난 작가들은 팔리는 스토리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어서,

페미니즘 이야기를 담아내는 일이 흔하지 않기도 한 것이어서,

이 정도의 책이라도 충분히 박수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표지에 분명히 <장편 소설>이라고 박아 놓았지만,

이 책은 <한국 여성의 현실>이라는 <르포>에 가깝다.


다만, 그것을 이러쿵저러쿵 떠들어 대는 것보다는,

김지영이라는 가장 평범한 한 여자 아이를 형상화하여 

여성이어서 힘겹고 불편한 상황들을 서술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많은 드라마의 <여성>은 많은 것을 가진 <남성>의 애인이 되기를 희망하는 존재들이다.

얼마 전 인기를 끌었던 <아버지가 이상해>란 프로그램의 큰딸 역할은,

똑부러진 변호사 딸이자 아내, 여성으로서의 삶을 그리고 있지만,

스토리가 더 전개되어 아이를 낳아 기르게 된다면

또 나이를 더 먹어 직장생활에서 어떤 한계를 느끼게 된다면,

팍팍한 삶의 질곡에 드라마의 재미는 없어질는지도 모르겠다.


<무궁화~>라는 드라마에서도 

아이 딸린 무궁화는 거의 육아 장면이 등장하지 않고,

2중 연애의 당사자로 등장한다.

현실감이 너무 떨어진다.


이 책을 재미 없다든지, 잘못 썼다든지 하는 타박은 온당하지 않다.

쓴 약에는 단 옷을 입혀, <당의정>으로 만들어 먹듯,

페미니즘처럼 쉽사리 접하기 힘든 이야기를 이렇게 접근하는 일은,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어떤 위치인지를 깨닫게 하는일이다.


아직도 가장 진보적이라는 정의당조차 <메갈>에 대해서 손을 들어주지 못하며,

서울 시장님도 <퀴어 축제>에 박수를보내지 못한다.


페미니즘은 지식인 여성들의 잘난 체를 넘어섰고,

현실 여성들의 삶 찾기에서 이제 말하기가 시작된 느낌이다.

세계적인 추세는 모든 <소수자>들과의 연대 의식으로서의 페미니즘이 유행인 바,

한국 드라마의 문법을 좀 버리고,

한국 여성들의 현실을 좀 일깨우고, 소수자들의 편에 서는 의식의 진보를 경험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82년생 김지영, 은 

분명 이런 세상에 대한 알람이다.


남녀 동거에 대하여 <옥탑방 고양이>가 툭, 시작을 보여주었듯,

여성들의 목소리를 귀하게 여기는 담론들이,

이렇게 흔하게 만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세상이 참 많이 바뀌었다.

하지만 그 안의 소소한 규칙이나 약속이나 습관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았다.(132)


이제 여자 아이라고 대학을 안 보내는 시대는 지났다.

그렇지만, 크게 바뀌지 않은 세상 때문에,

한국 여성은 가장 차별 받는 존재라는 결과를 낳았다.


소소한 규칙, 약속, 습관들을 바꿀 때,

세상은 바뀐다.

세상은 결국 '내가'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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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100만부 돌파 기념 양장 특별판)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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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서 돈을 빌릴 일이 있어 재직증명을 떼었더니,

어언 28년 6개월을 재직했다 한다.

그 숫자의 무게에 입이 떡 벌어진다.

 

초롱대는 아이들의 눈동자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르던 시절,

내가 어찌어찌 다짐한 것이 몇 가지 있었는데,

친절한 사람이 되고,

아이들 이름을 되도록 많이 외우고,

수업 시간에 우스개를 많이 하고 싶었다는 생각을 했고,

이십 여 년을 그렇게 살아온 시간도 많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름을 부르는 일은 숭고하다.

숭고하지 않은 이름은 없다.(279)

 

결혼하고 '여보, 당신'으로 부르는 호칭은

두 사람을 기성세대로 훌쩍 넘기는 기분이 들어 마뜩치 않았다.

나이 들어서도 서로 ~~씨로 부르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선생님이 되고

주변 사람들이 권위를 얻기 위해서

비꼬는 말, 내뱉듯 하는 말,

강하게 평가하는 말, 이런 말들을 늘 하는 것을 보고 나도 상처를 받았다.

나 역시 그런 언어를 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돌아보았다.

차가운 언어는 차가운 관계를 만들 뿐이다.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306)

 

이 책의 별을 하나 깎은 것은,

심심한 부분이 제법 많아서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도 많다.

 

두려움이란 것도 경이로운 감정이죠.

젊은 시절엔 모든 게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이들면 멀리 있는 것처럼 보여.

준비된 사람은 없어. 그러니 걱정할 필요도 없어.(269)

 

요즘 온다 리쿠의 '꿀벌과 원뢰'를 읽고 있는데,(천둥은 아무래도 마뜩잖다. 먼 뇌성...이 아련하고 좋다.

피아노...는 '약하게'라는 뜻인데, 거기 천둥이라니... 불편하다.)

천재들의 음악을 눈으로 읽으며

상상 속에서 호사를 누린다.

 

불현듯이란 말이

불 켠듯에서 유래했다는 설(202)

 

애지욕기생...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끔 한다.(110)

 

소리를 언어로 붙잡는 이야기.

독자의 상상 속에

뜨겁게 불타오르는 언어의 예술을 활활 지펴올리는 온다 리쿠의 열정이 고스란히 느껴져

장르 소설처럼 휘리릭이 안 되고,

남은 부분을 아까워하며

야금야금 읽고 있는 중인데,

뜨겁지만 놓을 수 없는 온도의 언어를 만나는 일은 참 행복하다.

 

 

 

 

 

205.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틀린 부분 : 흐붓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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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4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17-08-04 14:22   좋아요 1 | URL
어이쿠죠. ^^
지나간 시간은 참 짧아요.
남은 시간은 막막하겠지만 말입니다.

더 용감하게 살아 보려고 노력중입니다.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
곽재구 / 열림원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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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말아라 동무야

멀고먼 길

발은 부르트고

무릎은 깊게 깨어져

피멍이 들었구나

 

어이 쉬 잠들 수 있겠느냐

별들의 눈말울은 초롱초롱

바람은 초저녁부터

라일락 꽃가지를 흔들었네

 

잠들어라 동무야

사랑의 날이 올 때까지

동무야(자장가 - 귀정에게)

 

 

 

고 김귀정 열사 추모비

 

1991년 민자당 야합 후, 민자당 반대 집회가 거세지자

시위를 강경진압하다 희생시킨 귀정 열사...

 

아, 이름만 들어도 그 시대가 막막하게 다가온다.

노태우 김종필... 이 개새끼들... 김영삼, 비겁했던 위인... 그 시대가...

 

<김귀정 관련 포스트>

 

http://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6773713&memberNo=1990002&vType=VERTICAL

 

강변에서

내가 사는 작은 오막살이 집까지

이르는 숲길 사이에

어느 하루

마음먹고 나무계단 하나

만들었습니다

밟으면 삐걱이는

나무 울음소리가 산뻐꾸기 울음

소리보다 듣기 좋았습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이 계단을 밟고

내 오막살이집을 찾을 때

있겠지요

설령 그때 내게

나를 열렬히 사랑했던

신이 찾아와

, 이게 네가 그 동안 목마르게 찾았던 그 물건이야

하며 막 봇짐을 푸는 순간이라 해도

난 당신이 내 나무계단을 밟는 소리

놓치지 않고 들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신과는 상관없이

강변 숲길을 따라 달려가기 시작할 것입니다. <곽재구, 계단-연화리시편 5>

 

곽재구의 말은 다정하다.

강물처럼 잔잔하다.

 

곽재구가 타고르에 심취했던 시절이 있었나 보다.

한때 여행 자유화가 되었을 때,

타지키스탄, 사마르칸트... 그 막연한 이름들의 땅에

사람이 살고 있음을 가서 본 시대가 있었다.

그런 이십 여 년 전의 이야기들이지만,

타고르처럼 잔잔해서 현실감이 떨어지기도 한다.

가끔 김귀정같은 시를 만나면 반갑다.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고

 

깊게 사랑했던

사람 떠나간 뒤

 

젖은 눈 앞에

상처받은 세상의 끝이 보일 때

 

타고르

연화리로 와요(쓸쓸한 날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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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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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이/가'는 주격조사이지만, '은/는'은 보조사이다.

'은/는'은 한정적이고 대조적인 의미를 부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보조사 하나로,

바깥은 사람들이 덥다고 땀흘리는, 시원한 곳을 찾아 떠나는 활기가 가득한 여름이지만,

이 안쪽에는 옹송거린 추위 속에서 얼어붙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그것을 작가가 그리지 않을 수 없는 세상임을, 강조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스노볼을 쥔 느낌이었다.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

시끄럽고 왕성한 계절인, 그런.(156)

 

문득 유리 볼 속 겨울을 생각했다.

볼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182)

 

지난 세월동안, 한국에서 사는 일은 스노볼 속에서 사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전쟁 피난민(전재민)으로 사는 일이나, 빨갱이로 몰려 감옥에서 3,40년을 사는 일이나,

국가의 폭력으로 집행당한 사형이나 감옥 생활,

억울한 죽음과 국가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아 생긴 피해들,

교과서에선 4계가 아름다운 대한민국이라 노래하지만,

언제나 꽁꽁 얼어붙은 스노볼 안 사람들에겐 바깥의 여름은 생뚱맞은 것이었다.

 

세월호 유가족을 국가 권력이 억누르고, 용산 참사의 비극을 무시하고,

국가의 재산을 사유화하는데 눈이 시뻘갰던 자들의 세상에서

부익부 빈익빈의 시차는 갈수록 커져왔더랬다.

 

김애란의 '비행운'에서 보여주었던 삶의 신산한 말단이 여기서도 이어진다.

 

물먹은 풀이 내 몸에서 나오는 고름처럼 아래로 후드득 떨어졌다.

한파가 오려면 아직 멀었는데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다.

두 팔이 바들바들 떨렸다.(37)

 

입동이란 제목이 서늘하다.

입동이면 아직도 서슬푸른 한겨울이 버티고 있는 시절이다.

이 겨울을 과연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을는지...

 

아이가 죽은 집을 도배하다 만난 아이의 글자.

그것처럼 남편이 제자를 구하다 죽은 상황에서 받게 되는 제자의 누나 편지.

 

사모님, 혼자 계시다고 밥 거르지 말고 꼭 챙겨 드세요.

죄송하고, 감사합니다.(265)

 

스노볼 속의 세상에 이런 훈김을 불어 넣으려는 노력이 그의  소설이다.

소외되어 차가운 마음으로 실의에 빠진 이들의 마음을

그는 몸으로 그려 보인다.

묘사는 그런 힘이 있다.

 

목울대에 따갑고 물컹한 것이 올라왔다 내려갔다.

당신을 보낸 뒤 줄곧 궁금해한 무엇과 만난 기분이었지만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편지지 위 글자를 좇다 나도 모르게 눈가가 흐려졌다.

눈 앞에 얼룩진 문장 위로 지용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소리도 못 지르고 연신 계곡물을 들이켜며 세상을 향해 길게 손 내밀었을 그 아이의 눈이 아른댔다.(265)

 

문장에서 세월호를 만나고, 유가족을 만나고, 최근 몇 년의 내 눈물을 만난다.

 

세상에는 다른 눈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같은 시공간에 살면서 시차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어떤 때는 너무 화딱지가 난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가진 도덕이,

가져본 도덕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래.(199)

 

이런 말들이 위로가 된다.

 

어린이는 원래 힘든 거예요.

각 시기마다 무지 또는 앎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가 큰 걸 보면, 맞는 말인 것 같다.(194)

 

교회 안엔 맍은 빛이 있었다.

여러 빛 덩이가 멍물멍울 어둠 속을 떠다녔다.

이윽고 아이들은 노래했다.

아직 '맛' 경험이 적은, 죽은 동물을 덜 먹어본,

축축하고 맑은 혀로, 어떤 음은 허공에 가느다란 포물선을 그리다 고꾸라지고,

어떤 음은 누군가의 단독 비행을 좇다 기꺼이 함께 낙하하고,

모두가 막 사라진 음의 행방을 신경쓸 찰나

그 소멸을 위로하듯 여러 개의 음이 다시 풍등처럼 날아올랐다.

재이 목소리는 아주 작은 충격에도 산산이 부서질 것 같은 알전구처럼 가늘고 투명했다.

높은음을 낼 때 성대 속 필라멘트가 노란 빛을 내며 파르르 떨리는 듯 했다.(195)

 

절할 때 '가리는 손'이 있고 '가려지는 손'이 있다.

명절날이 다르고 상갓집에서의 예가 다르다.

삶은 늘 다른 것들 속에서 판단하며 진행되는 것들로 가득하다.

가끔은 '틀니나 딱딱대며 사는 늙은이들(틀딱)'의 말에 짜증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가슴을 드러낸 채 눈물을 뚝뚝흘리던 내 모습과

산바라지 하러 온 엄마가 한 달 내내 끓여준 미역국,

집안을 가득 채운 우럭 비린내도

그땐 내 젖에서도 그 냄새가 나는 듯 했다.

젖꼭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희뿌연 액체가 꼭 뼈 국물 같았다.(189)

 

여성들의 이야기에서나 나올 수 있는 문장이다.

노량진에서 '건너편'을 욕망하면서 살아본 사람들이나 이해할 수 있는 문장들도 있다.

 

도화는 잘 개어놓은 수건처럼 반듯하고 단정한 여자였다.

도화는 인내심이 강했고, 인내심이 강했기 때문에 쾌락이 뭔지 알았다.(97)

 

이수와 도화. 배나무와 복숭아꽃...

그 튼실한 남성과 화사한 여성이 시들어가는 곳,

해오라비 갯가에 깃들이는 '노량진'에는 공시생들이 김밥에 목이 메이며 살아간다.

 

도화는 자신이 속한 조직의 문법을 존중했다.

수사도, 과장도, 왜곡도 없는 사실의 문장을 신뢰했다.(90)

 

그녀는 교통방송을 진행하는 교통경찰이다.

우리는 모두 그녀처럼 자신이 속한 사회의 삶의 방식을 존중한다.

하지만, 세상이 지나치게 추운 겨울 왕국일 때,

바깥은 여름이지만, 스노볼 속 시차처럼 훈기가 느껴지지 않는 삭막한 세상일 때,

'非-행운'의 연속인 삶 속에서 지쳐버리기 십상인 게다.

 

김애란의 따스한 눈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을 것이다.

스노볼 속에서 덜덜 떠는 사람들의 마음에

한뼘만큼이라도 입김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

 

이 여름, 폭염속에서 헐떡일 때, 서늘하게 읽을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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