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의 여인이 되고 싶을 때 - 조제핀
서양 문명은 산수 중심의 동양화와 달리 인물 중심의 회화를 발달시켰습니다. 그래서 여성을 그린 그림이 많고 그렇게 그려진 여성들 가운데는 우리에게 깊은 인상과 환영을 남긴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나폴레옹 황제의 부인이었던 조제핀도 그런 여성 가운데 한 사람이지요. 그녀의 모습을 보노라면 도대체 그녀의 무엇이 나폴레옹 같은 영웅을 사로잡았고 또 뭇사람들의 뇌리에 그녀를 그렇게 매력적인 여성으로 남게 했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렇게 뭇 남자들을, 영웅 중의 영웅을 사로잡는 여성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그런 삶은 과연 어떤 삶일까요? 한편으로는 진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키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경계심을 불러일으키는 삶, 그런 삶이 바로 이런 이들의 삶이 아닐까 싶습니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났을 때 내 머리 속은 온통 당신 생각뿐이었소. 당신의 모습, 그리고 어젯밤의 멋진 기억은 내 모든 감각을 들뜨게 만들었소. 세상에 둘도 없는 아름다운 조제핀이여, 당신은 나의 마음에 실로 이상한 마법을 걸었소.”
나폴레옹의 이 편지 글에서 알 수 있듯 조제핀 드 보아르네는 뛰어난 사랑의 전략가였습니다. 나폴레옹이 세상을 하직하며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조제핀!”이었다는 데서 알 수 있듯 그는 남자의 마음을 그 뿌리까지 훔칠 줄 아는 수완가였지요. 그녀를 향한 나폴레옹의 열정은 무엇보다 조제핀이라는 이름 자체에서 가장 밝은 색채로 빛나는데, 조제핀의 원 이름 마리-조제프-로즈 타셰 드 보아르네의 조제프를 여성형인 조제핀으로 고쳐 부른 게 나폴레옹이었다고 합니다.(그 전에는 주로 로즈라는 애칭으로 불렸습니다) 바로 그 이름으로 영원히 사람들의 머리 속에 남아 있으니 ‘사랑의 여왕’으로서 조제핀의 위상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에피소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조제핀은 1763년 가난한 귀족 조제프 타셰 드 라 파제리의 맏딸로 태어났습니다. 열 여섯이 되던 해인 1779년 알렉상드르 비콩트 드 보아르네라는 젊고 부유한 육군 장교와 결혼했습니다. 젊은 날의 이 멋진 출발은 그러나 조제핀에게 행복의 시작이 아니었습니다. 그 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여성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에 대해 심각한 도전을 받은 시기이자 생존을 위해 사랑의 전략가로 거듭나는 투쟁의 시기였습니다.
조제핀은 알렉상드르에게 예쁜 딸 둘을 안겨 주었습니다. 하지만 허영심이 강한 알렉상드르는 시간이 흐를수록 조제핀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특히 섬 출신의 촌티 나는 매너와 부족한 교양은 알렉상드르에게 극심한 혐오감을 주었지요. 그래서 알렉상드르는 베르사유궁전에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를 알현할 때도 아내인 조제핀을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철저한 무시와 무관심으로 조제핀의 마음에 시퍼런 멍을 들여놓았지요.
1785년부터 남편과 별거에 들어간 조제핀은 이후 절치부심한 듯 파리 상류층의 관습을 열심히 익혔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군에 가담했던 남편이 자코뱅 파의 공포정치 와중에 1794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그녀 또한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러나,같은 해 테미도르의 반동이 일어나 감옥에서 풀려 나오면서 사교계의 중심인물로 급부상합니다.
조제핀이 나폴레옹을 만나게 된 것은 바로 이 무렵이었습니다. 승승장구하던 야심만만한 젊은 장교와 더 이상 촌뜨기가 아닌 사교계의 여왕은 첫눈에 서로를 알아봤습니다. 첫 만남 당시 나폴레옹의 나이는 26세, 조제핀은 33세였지요. 조제핀은 그 동안 익힌 사교계의 테크닉을 활용해 밀고 당기기를 거듭함으로써 나폴레옹의 애간장을 다 녹여놓았습니다. 사실 당시 그녀로 인해 애간장을 태운 사람은 나폴레옹뿐이 아니었지요. 혁명 와중에 단두대로 보내질 뻔했던 경험을 통해 조제핀은 자신의 행복과 생존을 보장해줄 강력한 힘을 필요로 했고, 그로 인해 여러 유능한 남자들과의 사이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런 과정 끝에 나폴레옹의 부인이 된 조제핀은 나폴레옹이 황제로 등극하자 이제 그와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나폴레옹에게 다시 결혼식을 올리자고 설득했습니다. 과거의 예식은 종교의식이 아니었으니 이번에 종교의식을 필함으로써 자신들의 사랑을 교회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논리였지요. 1804년 12월 1일 두 사람의 결혼식 다음날 나폴레옹은 대관식을 가졌습니다. 조제핀은 이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탄탄한 권력의 반석에 오른 듯했습니다. 하지만 조제핀의 무절제한 생활과 나폴레옹에게 아들을 안겨주지 못한 ‘흠결’은 끝내 그녀의 족쇄가 되었지요. 1810년 나폴레옹은 결혼 예식상의 사소한 종교적 미비점을 근거로 조제핀과의 결혼을 무효화했습니다.
말메종 성으로 내쫓긴 조제핀은 나폴레옹의 돈으로 계속 화려한 삶을 이어가다가 나폴레옹 퇴위 뒤 얼마 안 돼(1814년) 쓸쓸하게 죽음을 맞았습니다.
피에르 폴 프뤼동이 그린 <황후 조제핀>은 역사책에서 조제핀을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그림입니다. 아직 황후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제핀이 한적하고 쓸쓸한 정원을 배경으로 우아하게 앉아 있습니다. 무언가 깊은 상념에 잠겨 있는 듯한데, 벌써 나폴레옹과의 이별의 전조를 느껴서일까요, 얼굴에는 우수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습니다. 일단 조제핀이 늘씬하고도 매력적인 님프처럼 그려져 있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 성적 매력과 황후로서의 영광, 비극의 색채가 어우러져 묘한 매력을 발산합니다.
배경의 짙고 육중한 나무들은 말없이 둘러서서 이런 조제핀을, 조제핀의 추억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아기를 지키는 어머니처럼 조제핀을 다독이며 푸근히 감싸안아 줍니다. 설령 지나온 삶의 궤적 속에 이런저런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 모든 것이 용서될 만큼 조제핀은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그림 속 말메종의 숲은 말하는 듯합니다.
이 한적한 숲에서 사색을 하면서 조제핀은 과연 자신의 삶을 어떤 시각으로 돌아보았을까요? 충분히 만족스럽고 행복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그렇게 얻고 지키려 했던 부와 권세가 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까요? 조제핀과 대화를 나눴던 저 나무들은 조제핀의 진정한 속마음을 잘 알고 있겠지요.
이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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