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카페의 노래 열림원 이삭줍기 12
카슨 매컬러스 지음, 장영희 옮김 / 열림원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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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쓸쓸하고 황량한 거리에 한줄기 바람이 스쳐간다. 거리의 한 쪽에는 고풍스럽지만 낡아 무너질 듯한 집이 한 채 서 있다. 그 집 주위에 둘러진 담은 애달프기 그지없다. 바람에 날려가는 종이조각이 서글프게 사각거리는 노을지는 거리. 우울해질 수 밖에 없는 저녁 무렵. 어디선가 슬픈 재즈 선율이라도 흐를라치면 절로 눈물이 흘러 자신을 잃어버리기 좋은 시간. 이 책을 읽고 떠오른 느낌이다.

누구나 사랑을 한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건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사랑은 그 자체이다. 다만 그 방법에 있어서 사람마다 다를 뿐. 카슨은 사랑을 하는 것과 받는 것으로 나누어 결국은 내부에 가두어둘 감정으로 전환시켜 버렸다. 사랑, 사랑, 사랑... 그 누가 사랑하는 이를 비난할 것인가. 어떤 이가 사랑받는 이를 어리석게 생각할 것인가. 결국 사랑을 평가할 수 있는 이는 자기 자신 혹은 신 뿐인거다.

아주 이상하고 기이한 사람도 누군가의 마음에 사랑을 불지를 수 있다. 선한 사람이 폭력적이면서도 천한 사랑을 자극할 수 있고, 의미없는 말만 지껄이는 미치광이도 누군가의 영혼 속에 부드럽고 순수한 목가를 깨울지도 모른다.

사랑은 신비하면서도 이상하다. 어떤 행위도 용납된다. 그 사람의 등만 바라본대도 행복하기만 하다. 알아주길 바라면서도 모르길 원한다. 사랑은... 모순덩어리다. 그래도 사람은 사랑을 한다. 왜 사랑을 하는걸까. 행복하기 위해서?

사랑엔 이유가 없다. 그냥 사랑할 뿐이다. 마빈 메이시가 6척 장신의 건장한 미스 아밀리아를 사랑한 것처럼. 미스 아밀리아가 곱추인 라이먼을 사랑한 것처럼. 라이먼이 악당이 된 마빈 메이시를 사랑한 것처럼. 그리고 모든 사랑이 행복한 건 아니다. 결국은 슬픔과 고독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그러니 기이하다. 사람은 뻔히 파국을 맞이할 것을 알면서도 사랑을 한다. 그건 영혼의 이끌림이다.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월하빙인이 묶어두었다는 붉은 실이든, 에로스의 화살이든 어떤 이유를 갖다붙여서라도 운명적인 사랑, 천생연분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사랑이 끝나고 나면, 그것은 쓸쓸한 추억이 된다. 그리고 사랑을 경험한 이는 사랑이 없는 삶이 끔찍한 고독을 동반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만다.

까페 안에 재즈가 흐른다. 애환이 녹아있는 처절한 음이 흘러나오면 누군가는 눈물을 흘리고, 누군가는 흘려듣는다. 누군가는 아는체를 하고 누군가는 조용히 듣기만 한다. 지나간 옛사랑을 반추하기라도 하듯 재즈는 느릿하게 흘러간다. 시간은 흐르고 조명은 더더욱 어두워진다. 까페는 북적거리다가도 점점 조용해진다. 마침내 마지막 손님이 문을 열고 나선다. 흐릿하게 아침해가 뜰 준비를 한다. 재즈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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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란도트
카를로 고치 지음, 푸치니 오페라, 김두흠 편역 / 달궁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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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목숨을 걸고 이야기를 해야만 하는 세혜라자드와 목숨을 걸고 수수께끼를 풀어야만 하는 칼라프. 둘은 하나의 사랑을 위해, 잃어버린 자신의 자유를 위해, 얻어야만 하는 무언가를 위해 스스로 그 상황에 뛰어들었다. 샤 리야르 왕과 투란도트. 그 둘은 반대로 뒤집힌 닮은 꼴이다. 왕비의 부정으로 여성을 불신하게 되어 급기야는 하룻밤을 지낸 여자들 모두를 처형하는 샤 리야르. 비참하게 능욕당한 후 죽음을 택했던 로우링 공주의 망령에 씌여 지독한 남성혐오증으로 자신에게 청혼하는 남자들을 수수께끼를 구실로 모조리 죽여버리는 투란도트. 천일야화와 가장 닮은 이야기인 투란도트. 어쩌면 세혜라자드는 이 이야기를 통해 넌지시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내비친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대변인인 칼라프를 내세워.

샤 리야르나 투란도트, 이 둘은 너무나 끔찍하고 잔인한 인물이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내세워 자신이 혐오하는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건 지극히 비상식적이면서 완전히 비인간적이다. 그런 왕이나 공주가 통치하는 제국이 결코 평안할 수는 없는 법. 그리고 끊임없는 피흘림에 사람들은 지쳐가기 마련이다. 그 중심에 서 있는 이들 역시 더더욱 안정과 평화로부터 멀어지게 되고 그리하여 더 많은 피를 요구하게 된다. 불행히도 그런 그들은 더 이상 스스로의 힘으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된다.

그런 그들에게 희망의 빛을 뻗친 건 용기있는 세혜라자드와 칼라프 두 사람이었다. 아버지 재상을 구하고, 나라의 여자들을 구하고, 그리고 미쳐버린 왕을 구하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고자 했던 세혜라자드와 한 여자를 향한 지극한 사랑과 그 여자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공포에 대한 연민으로 투란도트를 구하고자 했던, 그리하여 자신도 행복해지고, 나라도 구하고자 했던 칼라프. 두 사람은 결국 성공한다.

천하루의 밤 동안 이어졌던 이야기와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 그리고 용기. 잔인하기만 했던 샤 리야르와 투란도트는 자신들을 구속하고 있던 피의 굴레로부터, 이성에 대한 혐오로부터 벗어난다. 증오와 의심이 진정한 사랑과 진실한 양심에 굴복한 것이다.

비뚤어진 사고를 가진 사람이 권력을 잡는다는 건 이렇게나 무서운 일이다. 죄없는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일 수 있는 무소불위의 권력부터 작은 공동체 위에서 휘두르는 권력까지 권력을 가진 이들은 부단히 깨끗하고 바른 양심과 건전하고 올바른 사고를 유지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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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05-04-15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재밌게 봤어요~ 좀 억지스럽기도 했지만...^^;;
 
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바바라 G. 워커 지음, 박혜란 옮김 / 뜨인돌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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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페미니즘이 뭔지 자세히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 책이 페미니즘 동화라길래 집어들어 읽었을 뿐이었다. 자세히는 몰라도 주위에서 말하는 것 정도는 알고 공감은 하니까. 조금 지루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건 페미니즘을 넘어서 인간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책이라는 생각도 했다. 누구나 행복하고 싶고, 누구나 평화롭고 싶고, 누구나 주체적으로 살고 싶고, 누구나 우정을 나누고 싶어한다. 그건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느끼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단순히 여자들이 만들어가는, 혹은 남녀평등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혹은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해, 어긋나고 왜곡되어 버린 동화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위해, 자라나는 모든 아이들을 위해,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기 위해 동화를 바로잡는 것이다.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미'는 절대적인 가치이다. 아름다움은 남성이 심어놓은 강제적인 가치관이며, 여자들은 아름다워야 한다는 헛된 망상일 뿐이다. 게다가 '마녀'라고 불리는 계모 역시, 중세 기독교가 들어서기 이전에는 대지의 여신을 모시는 혹은 다른 여신을 모시는 여사제이자 남성이 두려워하는 신분이었다. 그것이 동화 속에서 왜곡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동화를 살펴보면, 남성에 의해서 왜곡되고 어긋나게 되고 모순적인 내용들이 무수히 보인다. 놀랍게도 색깔 하나하나에도 여성적 가치, 남성적 가치를 부여하여 분홍색을 천시한다. 빨간색은 부정적인 색깔이 되고, 하얀색은 숭배의 대상이 되며, 검은색은 마녀를 상징한다. 사실, 하얀색은 처녀를, 빨간색은 어머니를, 검은색은 할머니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것이 어째서 저렇게 변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출산과 관련하여 생명의 탄생에 대해 경외감을 느낀 남성들이 처녀를 제외한 여성을 두려워하며 경시하게 된 듯 하다. 그리하여 어머니인 빨간색은 부정적으로, 오랜 세월 살아 온 지혜로운 할머니인 검은색은 마녀로 취급하게 된 것이다. 반대로 남성의 경우는 청년이든, 아버지이든, 할아버지이든 모두 긍정적인 가치를 내포하고 있다. 과연 그것이 옳은가.

이 책은 많은 동화들을 고쳐서 내 놓았다. 짧지만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동화를 볼 때의 시각을 가르쳐 주기도 한 책이다. 언제쯤 여성적 가치, 남성적 가치를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이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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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4-15 1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색깔에 가치를 부여한다는 것은 뜻밖인데요. 책 제목을 몇번 들어보기는 했는데 리뷰 본건 이번이 첨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

꼬마요정 2005-04-15 1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비숍님~ 반갑습니다. ^^*
저도 책 제목은 계속 듣다가 이번에 읽게 되었거든요. 읽은 게 도움이 되어서 괜찮다는 생각을 했지요. 알게 모르게 내재되어 있는 어떤 이분법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해 준 책이었답니다.^^
 
호텔 선인장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사사키 아츠코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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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직장인 중 대부분이 스트레스를 받는 가장 큰 요인이 대인관계라는 것. 어떤 이유보다도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타인을 만나면서 관계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 가장 힘이 든다고 한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누군가와 끊임없이 의사소통하며 함께 어우려져 가면서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평범하기 그지없는 삶을 사는 우리들이 사실은 인간관계라는 무시무시한 행위를 늘 동반한다는 건 아이러니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인간관계 자체가 특수한 듯 하지만,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도 조금은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너무 힘이 들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니까.

이 책에서는 그런 인간관계의 일상적인 측면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호텔 선인장이라는 공간에서 이웃으로 지낸다.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숫자 2와 오이, 모자는 친구가 된다. 어떤 이해관계도 없는 순수한 우정을 나누는 그런 이웃사촌 말이다. 그들은 사이좋게 오이의 방에 앉아 각기 다른 음료수를 음미하며, 각기 다른 추억을 간직하며, 각기 다른 생각을 하지만 함께 있다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어떤 시련이나 갈등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찾아온다고 해도 그것은 개인의 문제일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찾아온 큰 시련은 이 책의 끝을 이야기한다. 호텔 선인장이라는, 그들을 이어주는 공간인 그곳이 사라진다는 것. 사람은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다시 만나고.... 수없이 되풀이되는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소중함을 찾는다는 건 어려운 일이겠지. 이 책에서는 그들의 재회를 그리고 있지는 않지만, 설사 다시 만나진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똑같겠지. 그리고 그런 일상성이 조금은 우울하기도 하다. 변하지 않는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지루하기도 하니까.

되풀이되는 일상 속의 에피소드. 이 책은 그렇게 이루어져 있다. 사이사이 나오는 삽화는 처연하기도 했지만, 내용과 너무 잘 어우러져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끊임없이 나오는 계단과 문을 통해 나는 또다시 인간관계를 떠올려본다. 평범한 사람들, 평범한 친구, 평범한 관계.... '평범함'이라는 게 얼마나 일상적이면서도 소중한가라는 생각도 해 본다. 그리고.... 책을 덮으면서 모든 것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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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치의 마지막 연인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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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다시는 이 작가의 책을 찾지 않을지도 모른다. 큰 맘 먹고 골라잡은 일본 작가의 소설. 나는 또 한번 문화의 차이를 절실하게 느꼈다, 나와는 맞지 않은.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에 감정의 덮개를 씌워 중요한 사건인양 나열하는 방식, 이 세상에 오로지 나 혼자만 존재하는 듯한 사고, 읽는 내내 덮고 싶게 만드는 그런 구조. 끊임없이 튀어나오는 쉼표와 뒤집힌 어순. 그런 것들의 연속이 어떤 감정을 표현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얼핏 모순을 느끼고 어렴풋이 혼란을 느끼고 마지막에는 체념할 뿐.

소나기 후 무지개가 뜨듯 갑작스럽지만 당연하게 찾아온 사랑은 이별이란 녀석에게 쫓기듯 사라진다. 2년 남짓, 하치와 마오는 그렇게 감정의 격랑 속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헤어진다. 그리고 하치는 저 머나먼 명상의 세계로 사라지고 마오는 하치의 마지막 연인이라는 어떤 의무감을 가슴에 묻은 채 무채색의 세상에서 현란한 색감이 묻어나는 세상으로 걸음을 내딛는다. 오로지 하치를 통해서 생의 나아갈 바를 정한 마오. 유년기의 소녀를 어른으로 만들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하치는 어쩌면 소녀들이 겪는 사춘기 시절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다. 논리나 이성보다는 기분과 휘몰아치는 감정에 의존하는 소녀들의 사춘기 시절을. 그리고 허물을 벗은 나방처럼 훌쩍 커 버린 소녀는 지나간 그 시절을,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때를 추억하며 앞으로 나아가겠지. 마오가 하치를 레테의 강에 소중하게 담궈버릴 것처럼. 그래서 마오의 마지막 연인이 아닌 하치의 마지막 연인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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