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오는 아프리카>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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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아프리카
권리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아프리카에 눈이 온다면..
처음 이 책을 보았을 때, 작지만 두께가 있는 예쁜 겉모양보다 제목이 눈에 박혔다. 삭막한 내 마음은 외쳤다. 환경오염이 극에 달했구나.. 아프리카에 눈이 오다니.
읽는 내내 눈 오는 아프리카란 단어가 떠나질 않았다. 이처럼 아름답지만 잔인할 수 있을까. 펼쳐진 황톳빛 대지에 하얀 눈이 쌓이는 광경은 -그것도 아프리카에!- 나를 설레게 했다. 점박이 노란 표범이 하얀 눈밭 사이에 있다거나, 코끼리가 눈옷을 입고 있는 장면은 환상과도 같았다. 하지만 아프리카에 눈이 온다면 그곳에 사는 생명들은 죽어가겠지. 그들에게 닥친 시련 중 가장 고통스럽게.
부산에 사는 유명한 화가 야마 고을주의 외아들 유석은 19살이다. 그는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방황하다 외국으로 떠난다. 아무 준비 없이 떠난 여행이 11개월이나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만, 그는 그렇게 버텼다. 유럽을 거쳐 남미로, 아프리카로, 인도로. 그가 들른 나라들은 하나같이 유명하면서도 다른 색깔을 지녔다. 그의 여행 친구인 쇼타와 유석은 서로가 가진 목적을 위해 그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마치 사춘기 소년이 숱한 방황을 거쳐 어른이 되는 것처럼 그렇게 그들은 여행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행동을 한다. 실제 작가가 다니면서 실시간으로 쓴 글이라 그런지 섬세하고도 자세한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 무척이나 가고 싶을 정도로.
야마 고을주의 하나뿐인 초상화를 찾는다거나, 위작 경매나, 얽혀있는 음모들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 소설은 그런 장치들을 넣어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든 것 뿐, 진짜는 유석과 쇼타의 성장에 있다. 감정만이 앞서던 유석이 서서히 감정을 갈무리하는 법을 배우고, 착하지만 이기적이던 쇼타가 남을 위하여 사는 삶을 살아보려고 하면서 그들은 여행을 떠나던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성장한다. 11개월의 여행은 그냥 여행이 아니라 성장하는 시간이었던 거다.
여행이라는 몸피를 빌어 이들의 성장을 그리면서 작가는 예술에 대한 많은 생각들을 쏟아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의 입을 빌어 예술을 이야기하는 장면들은 멋있었다. 우리나라 미술 교육에 크나큰 희생양이 된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그렇구나를 중얼거리게 했으니. 언어의 차이는 무시하기를.
각 장마다 그려져 있는 지도도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 장 지도의 KOREA로 가는 화살표를 보며 이제 사춘기 소년의 여행은 끝났지만, 성장한 유석의 새로운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표시로 보여 시원섭섭했다.
파랑새 이야기를 보면 결국 파랑새는 자기 집에 있었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세계에 속해 어리기만 하던 유석은 자신을 해방시켜 줄 파랑새를 원했고, 1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여행을 하면서 그가 찾은 해답은 집에 있었다. 어머니. 살짝 붕 뜬 듯했지만,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니까. 요철로를 뛰어다니던 어린아이는 이제 길을 찾아 가버렸다. 성장의 대가일까. 유석은 어린아이의 생각을 벗고 어른의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어설프지만, 시간은 그를 완전한 어른으로 만들려고 할 것이다. 유석은.. 철없던 어린아이가 아닌 순수함이 가득한 환상의 어린아이를 곁에 두려고 노력하겠지. 그게 예술가의 본질이라고 했던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352일간의 여정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