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오전이 후딱 지나가버렸는데, 점심을 먹기 전에 '이주의 고전'을 고른다. '이주의 고전'이라고는 하지만 '오늘의 고전'이라는 카테고리도 가능할 만큼 많은 책들이 나오고 있다. 책에 파묻히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정한 목표는 3할대 '타율'을 유지하는 것이다. 10권의 책이 나오면 적어도 3권 정도는 이 코너에서 다루는 것. 혹은 3권 중의 1권 정도는 언급하는 게 목표다. 그런 기준으로 오늘 고른 책은 '스위스의 괴테'로 불리는 고트프리트 켈러의 <젤트빌라 사람들>(창비, 2014)이다.

 

 

 

<젤트빌라 사람들>은 노벨레(중편) 모음집으로 모두 10편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전에 나온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열림원, 2002)과 <옷이 날개>(고대출판부, 2008)도 이 모음집에 속한 작품들이다. 얼마전에 인터텟 헌책방에서 <마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구했는데, 이번에 나온 <젤트빌라 사람들>에 수록돼 있다. 그래도 역자가 다른지라 '중복'은 아니다. <옷이 날개>는 <젤트빌라 사람들>에 실린 <옷이 사람을 만든다>와 같은 작품일 걸로 추정된다.

 

 

아쉬운 것은 전체 10편 가운데 4편만 번역된 것. 역자도 마찬가지 소회여서 "완역하지 못하고 유감스럽게도 1부와 2부에서 각각 2편씩만 골라 서언과 함께 번역한 점에 대해서는 번역자로서 미안함과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고 적었다. 고로 역자의 뜻은 아니었던 듯싶다.

 

 

 

켈러의 대표작은 <초록의 하인리히>(한길사, 2009)다. 독일어권 교양소설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데, 번역본이 나오기 전에는 통상 <녹의의 하인리히>란 제목으로 알려졌던 작품이다('녹색 옷을 입은 하인리히'란 뜻). 소개는 이렇다.

 

한 젊은이의 성장과정을 그린 이 소설은 괴테의 교양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의 전통선상에 있다. 반면 작품의 기본구조가 일인칭 서술자에 의한 연대기 회상의 형식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은 전기적(자서전적) 소설의 특징을 내포하고 있다. ‘초록의 하인리히’라는 별명은 절약가였던 어머니가 아들의 옷을 전부 죽은 아버지의 유품인 초록색 옷을 고쳐 만들어주었기 때문에 주인공 하인리히가 늘 초록색 옷을 입고 다닌 데서 생겨난 것이다.  

<초록의 하인리히>는 개인적으로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는 작품이다. 언젠가 독일 교양소설을 강의에서 다룰 기회가 있다면 몰아서 읽어볼 계획만 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적어두면, 무언의 압력은 되리라. 참고로, 벤야민의 비평집 <서사 기억 비평의 자리>(길, 2012)에는 15쪽 가량의 '고트프리트 켈러'론이 들어 있다...

 

14.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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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여성 작가 조라 닐 허스턴의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문예출판사, 2014)를 '이주의 고전'으로 고른다. 대산문학총서로도 2001년에 나온 바 있어서 두 종의 번역본을 갖게 됐고, 그 정도면 경험상 읽어봐도 좋다(번역본들은 서로 보완해주는 면이 있기에). 작품은 1937년작.

 

 

 

작가의 이름은 생소한데, 미국에서도 1970년대에 와서야 재조명된 경우라 한다. 흑인 여성문학 선구자로서 자리매김되고. 이렇게 소개된다.  

미국 흑인 여성 문학의 선구자라 인정받는 조라 닐 허스턴의 대표작이다. 조라 닐 허스턴은 1920년대에 작품 활동을 시작해서 여러 편의 소설을 발표했지만 묘비도 없는 묘지에 묻혔다가 1970년대에 이르러 앨리스 워커 등이 이끄는 흑인 페미니즘의 부상과 더불어 미국의 여러 대학에 흑인 문화 강좌가 개설되면서 그 작품성을 재조명받게 된다. 이 작품은 재니라는 흑인 여주인공이 각기 다른 세 남자와 세 번의 결혼을 겪으면서 한 명의 독립적인 자아로서 자신만의 여성성과 목소리를 찾아가는 긴 과정을 그리고 있다.

<컬러 퍼플>의 저자 앨리스 워커는 이 작품에 대해 "내게 이 책보다 중요한 책은 없다"고 단언했다.

 

 

 

말이 나온 김에 찾아보니 <컬러 퍼플>은 절판된 상태다(제목이 <더 컬러 퍼플>은 뭔가?). 스필버그의 영화로도 유명한 작품이고 베스트셀러이기까지 했는데,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달까.

 

 

 

다른 작품은 몇 권 더 소개돼 있는 상태. 흑인여성 작가로서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던 토니 모리슨의 경우는 어떤지 이 참에 찾아봤다.

 

 

상당히 많은 연구서가 나와 있는 작가이지만, 작품은 이미 상당수가 절판됐다. <타르 베이비><러브><솔로몬의 노래> 정도가 남아 있고, <가장 푸른 눈><술라><빌러비드><재즈> 등은 모두 절판된 상태. 몇 작품 정도는 다시 나왔으면 싶다. 작가의 명성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는...

 

14. 0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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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혜강 최한기의 <운화측험>(한길사, 2014)을 고른다. '운화'라는 말은 접해보았지만 <운화측험>은 처음 듣는다. 관련서를 읽어본 적이 있으니 책명을 보긴 보았을 테지만 기억에는 남지 않은 모양이다. 소개는 이렇다.

 

 

운화측험(雲化測驗)이란 운화를 관측·측정하여 검증한다는 뜻으로, 자연 속에 존재하는 기의 운동과 변화를 관측·측정하여 증험함을 일컫는다. 조선 후기 철학자 최한기가 이탈리아 선교사인 알폰소 바뇨니의 저서 <공제격치>를 비판하고 수용하면서 저술된 것이다. <공제격치>를 접한 최한기가 <운화측험>에서 비판의 대상으로 삼은 것은 자연에 대한 4원소의 불합리한 기계적인 적용과 지구 우주중심설과 정지설, 비합리적인 과학이론, 그리고 신학적 목적론 등이다. 이로써 최한기는 서양의 종교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과학에도 불합리한 점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다. 그래서 동아시아 전통학문인 주자성리학과 서양의 기독교를 비판·극복하고 새로운 보편적인 학문을 세우고자 하였는데, 그것이 그의 만년에 완성한 기학(氣學)이다. <운화측험>은 이러한 기학의 세계관을 이루는 자연철학적 저술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만년 저작 <기학>이 주로 철학적 내용을 담고 있다면, 이 책은 그 철학의 존재론적 기반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순서상 알폰소 바뇨니의 <공제격치>(1633)가 먼저 나와주어야 할 것인데, 다행스럽게도 역자가 그 일을 이미 해놓았다. <공제격치>(한길사, 2012)를 먼저 번역하고 <운화측험>을 마저 옮긴 것이다. 역자의 성실한 학문적 태도가 인상적이다(역자는 혜강의 주요 저작 중 <기측제의>도 옮겼다). 

 

 

 

다산 정약용과 함께 조선 후기 학문을 대표하는 혜강 최한기의 그의 기학에 대해서 처음 접한 건 김용옥의 <독기학설>(통나무, 2009/2004)을 통해서였다. 이후에 나온 <혜강 최한기와 유교>(통나무, 2004), 손병욱 역주의 <기학>(통나무, 2004)에까지 손이 갔으나 대략 어림만 할 뿐 독파하진 못했다. 

 

 

그러다 국문학자 박희병 교수의 <운화와 근대>(돌베개, 2003) 덕분에 최한기를 다시 상기하게 됐다. 2003년이 혜강의 탄생 200주년 되는 해였고, "이 책은 혜강의 탄신 200주년을 맞이하여 최한기의 사회사상과 정치학을 중심으로 사상사적 음미를 시도한 책"이었다. 이 두 저자의 이름 옆에 이제 이종란 박사의 이름도 적어두어야겠다. 성균관대학에서 최한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전공자인데, <최한기의 운화와 윤리>(문사철, 2008)이란 연구서를 갖고 있다(아마도 학위논문을 보완해서 펴낸 듯싶다).

 

 

 

최한기에 입문하려는 독자라면 <독기학설>이나 <정약용 & 최한기>(김영사, 2007) 등으로 워밍업을 하고서 <운화측험>과 <기학>의 세계로 넘어가면 좋을 듯싶다. 나부터도 그런 독서계획을 꾸려본다. 혜강에 관한 연구서는 몇 권 더 나와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는 다산과 연암을 다룬 고미숙의 라이벌 평전 <두 개의 별 두 개의 지도>(북드라망, 2013)처럼, 다산과 혜강의 철학을 비교하는 좀더 묵직한 책도 기대해본다...

 

14. 0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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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나온 시리즈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건 '워크룸프레스'란 출판사에 새로 시작한 문학총서 '제안들'이다. 프란츠 카프카의 <꿈>과 조르주 바타유의 <불가능>이 모두 눈길을 끌지만 개인적으로는 토머스 드 퀸시(1785-1859)의 <예술분과로서의 살인>이 '발견'이었다.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이 고백>(시공사, 2010)이 나왔을 때 알게 된 책이고 궁금해하던 터였다. 아편쟁이도 모자라서 살인까지?

 

 

 

저자는 19세기 전반기를 살았던 영국의 가난한 문필가다. 치통 때문인지 위장병 때문인지 1804년부터 아편을 복용하기 시작했다가 인생의 절반을 중독자로 보내게 된다. 1821년에 '자전적 스케치'로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을 잡지에 발표하고 이듬해 단행본으로 출간한다. 이 책이 보들레르에게 큰 영향을 준 걸로 돼 있는데, 보들레르는 이 <고백>과 그 속편 격인 <심연에서의 탄식>(1845)에 상세한 주석을 달아 프랑스어로 번역했으며, 이에 영감을 얻어 <인공낙원>을 쓰기도 했다 한다(우리에겐 소개돼 있지 않으니 그림의 책이지만). <고백>과 <탄식> 사이에 발표한 <예술분과로서의 살인>(1827)은 어떤 책인가.

 

 

1811년 12월, 영국 런던 심장부 이스트엔드에서 희대의 연쇄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선원이었던 존 윌리엄스가 벌인 두 건의 살인은 개인이 아닌 서민 일가족을 몰살하는 지경이었다. 그가 일말의 배짱만 부리지 않았다면 두 건 모두 완전 범죄에 속했을 것이었다. 그러나 두 번째 범죄 직후 호기롭게 제 숙소로 향한 이의 결말은 자살이었다. 수감된 직후, 존 윌리엄스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당대의 영국 문필가 토머스 드 퀸시는 이 존 윌리엄스 연쇄살인 사건에서 특별한 미덕을 발견했다. 그리고 자신의 탁월한 발견에 대한 몇 편의 글을 잡지에 기고했다. 드 퀸시의 매혹적인 에세이 <예술 분과로서의 살인>은 이렇게 생명을 얻었다.

 

 

보들레르 전집이 근간인 걸로 아는데, <인공낙원>도 빨리 소개되면 좋겠다. 프랑스 시인, 작가들의 해시시(인도산 대마) 체험담을 묶은 <해시시 클럽>(싸이북스, 2005)이 출간된 바 있지만 일찌감치 절판된 상태다... 

 

 

14. 0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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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나온 책을 자주 검색해보는 이라면 솔로몬 노섭의 <노예 12년>(1853)이 갑자기 눈에 띈다고 느꼈을 법하다. 나 같은 경우다. 지난달에 번역본 한 종이 나오더니 이달에는 두 종이 더 나온다. 어떤 책인가.

 

 

솔로몬 노섭이 쓴 <노예 12년>은 뉴욕 주에서 자유민으로 태어났으나 남북전쟁 전에 납치를 당한 뒤 노예로 팔려가 루이지애나 주에서 12년간 노예로 붙잡혀 있던 한 흑인 남성의 회고록이다. 19세기 중엽 미국 워싱턴 D.C. 노예 시장의 실상, 미국 남부 농장을 무대로 펼쳐지는 노예 노동의 구체적 현실,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잔인한 살인과 폭력, 굶주림과 탈출 등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고발했다.

물론 이번에 갑자기 번역본이 쏟아져나온 건 그런 '고발' 때문이 아니다. 알고 보니 <슬럼독 밀리어네어> 제작팀이 영화화해서 이달에 개봉한다고(펭귄클래식은 아예 영화 포스터를 표지에 썼다).

 

 

어떤 경로이든 책과 접할 수 있다면 문제 삼을 건 아니라고 보지만, 영화화될 때만 대중적 관심이 환기된다는 건 우리시대의 특징이라고 해야겠다. 그냥은 안 되는 것이다.

 

 

솔로몬 노섭은 12년간의 노예생활에서 돌아와서는 노예제 페지 운동가로 활동했다고 하며 1853년 <노예 12년>을 출간했을 때는 이례적으로 3만 부 이상 판매되는 기록을 세웠다 한다. "노예 제도의 참상을 고발하는 연설과 강연을 활발히 하던 중 행방불명되었다. 사망 연도는 1863-1875년 사이로 추정되며, 사망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노예 12년>이 나오기 직전에 해리엣 비처 스토의 <톰아저씨의 오두막>(1852)이 출간돼 미국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다. 잘 알려진 일화대로, "1862년 남북전쟁이 한창이었을 당시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에 스토 부인을 초청하여 '당신이 이 위대한 전쟁을 시작하게 만든 책을 쓴 작은 여인이군요!'라고 찬사를 표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전하듯, <톰 아저씨의 오두막>은 노예제도에 대한 뜨거운 찬반 논쟁을 일으키며 미국 역사를 뒤바꾼 소설로 기억된다."

 

 

 

비교하자면, <노예 12년>은 실제 체험을 담은 수기라는 데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런 수기로는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책도 소개돼 있다. 번역본은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삶에 관한 이야기>(지만지, 2001)와 <노예의 노래>(모티브, 2003)으로 나왔다(후자는 절판). 거기에 보태자면 '어느 흑인 노예 소녀의 자서전'으로 해리엇 제이콥스의 <린다 브렌트 이야기>(뿌리와이파리, 2011)도 같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저자가 린다 브렌트라는 가명으로 1861년에 출간한 책.

미국 흑인 노예 여성이 쓴 최초의 자서전. 노예 여성들이 겪는 성적 착취와 학대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미국문학사의 고전으로 평가받은 작품이다. <미국 노예,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인생 이야기>와 함께 '노예 서사'라는 장르의 출발점이 된 작품으로, 한국어판에는 저자의 진위 논란을 잠재운 저자의 친필 편지 15통과 동생 존 제이콥스가 쓴 '노예제의 진짜 얼굴'을 함께 수록했다. 

 

 

곧 개봉된다면 영화 관람과 함께 이런 책들도 일독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다...

 

14. 02. 08.

 

 

 

P.S. 개인적으로는 러시아 농노제와 미국 노예제를 비교한 책들에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몇년 전 사바 푸를렙스키(1800-1868)의 수기를 옮긴 <러시아인의 삶, 농노의 수기로 읽다>(민속원, 2011)를 구입해놓고 아직 손을 들지 못하고 있다. 솔로몬 노섭이나 프레더릭 더글러스의 책과 비교해서 읽어봄직하다(더 나아가 조선의 노비도 포함시킬 수 있겠다). 관련서로 피터 콜친의 <예속된 노동: 미국 노예와 러시아 농도>(1990) 같은 책이 번역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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