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의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소담출판사, 2014)와 마찬가지로 고전 작가의 빠진 작품 가운데 손꼽아 기다리던 작품이 번역돼 나왔다. D. H. 로렌스의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유문화사, 2014). <무지개>(민음사, 2006)에 이어지는 속편 격 작품으로 <아들과 연인>에서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이어지는 로렌스의 문학 여정 가운데 허리에 해당하는 대표작이다.

 

 

통상 연구자들이 <사랑하는 여인들>, <연애하는 여인들>이라고 부르던 작품인데, 이제 번역본이 나왔으니 <사랑에 빠진 여인들>이라고 통일해서 부르면 되겠다. 소개는 이렇다.

<채털리 부인의 연인>으로 유명한 작가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또 다른 대표작이다.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의 문학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문학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상징적인 작품들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이 이 같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어슐라와 구드룬 자매가 보이는 페미니즘적인 시각 때문이다. 소설 속의 두 여인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기대보다는 남자에 대한 불신과 결혼에 대한 불안을 더 크게 보인다. 결혼은 어쩔 수 없이 한번쯤 거치지 않으면 안 될 경험일지도 모르고, 그나마 괜찮은 남자를 만날 확률은 거의 없다며 불안한 속내를 웃음으로 감추는 이들 자매의 사랑과 결혼 이야기는 이전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오스틴의 작품들과는 한 세기의 간격을 두고 있는데, 역시나 여성 주인공들의 사랑과 결혼에 관한 이야기이므로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이성과 감성>에서 <에마>까지...

 

 

개인적으론 지난달에 <아들과 연인>을 강의하면서 <사랑에 빠진 여인들>도 빨리 번역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피력했는데, 예상보다 빨리 번역본이 출간돼 반갑다. 기회가 닿으면 <무지개>와 같이 묶어서 강의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봐야겠다...

 

14.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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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발표된 대로 올해의 노벨문학상은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에게 돌아갔다. 정확히 60년전,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누구였을까. 바로 어니스트 헤밍웨이다. 굳이 60년 전으로 거슬러올라간 건 그의 1937년작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소담출판사, 2014)가 번역돼 나왔기 때문이다.

 

 

1926년에 나온 대표작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보다 조금 먼저 나온 <봄의 급류>를 첫 장편으로 치면 네번째 장편소설에 해당한다. 세번째 장편 <무기여 잘 있거라>로 작가적 명성을 확고히 한 시기에 기대를 모은 작품이었지만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통상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 이후 10년만에 발표한 <강건너 숲속으로>(1950)과 함께 대표적인 '실패작'으로 분류된다(헤밍웨이 전집이 아닌 선집이라면 보통 누락되는 작품이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는 당시 유행된 사회소설을 지향한 것이지만, 그가 본질적으로 사회소설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이라는 식의 평가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로선 실패작이라는 사실 때문에 오히려 헤밍웨이에 대해 많은 걸 말해주리라 기대를 갖게 하는 작품. 그래서 절판된 <가진 자와 안 가진 자>(덕성문화사, 1988)를 구하기도 했다. 이번에 나온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띠지에는 '국내 최초 출간'이라는 문구도 들어 있지만, 과거 1970년대에 나온 헤밍웨이 전집에는 <빈부>라는 제목으로, 그리고 80년대 단행본으론 <가진 자와 안 가진 자>란 제목으로 출간된 바 있으니 사실이 아니다.

 

 

덧붙여 흥미를 끄는 점은 영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1944). <소유와 무소유>란 제목으로도 출시돼 있는데, 거장 하워드 혹스가 메가폰을 잡았고 험프리 보가트와 로렌 바콜이 주연을 맡았다. 그것만으로도 화려하지만, 더 의미심장한 것은 윌리엄 포크너가 공동각본을 썼다는 점. 이미 걸작들을 써내던 시절이었지만 포크너는 자신의 소설들이 팔리지 않자 생계를 위해 헐리우드에서 시나리오를 윤색하는 일을 했었는데(주로 대사를 다듬었다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은 그의 손길이 더 많이 들어간 작품이다. 헤밍웨이의 원작이 많이 수정됐다고 하니까 그 차이를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겠다.   

 

여하튼 이런 이유들로 새 번역본을 고대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환영하는 뜻의 페이퍼를 적는 이유다...

 

14.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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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이라 시스템 점검을 하는지 도서 정보가 제대로 뜨지 않아 불편한 대로 '이주의 고전'을 골라놓는다. 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의 <해체신서>(한길사, 2014). 서양 근대해부학을 일본에, 그리고 동아시아에 처음 소개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궁금하던 차에 마침 번역돼 나온 것. 알라딘에는 아무런 책 소개가 없어서 교수신문의 리뷰(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9686)에서 일부 발췌한다.  

 

<해체신서>는 원래 독일의 쿨무스(1685~1745)가 1722년 펴낸 <해부도표>의 네덜란드어 출판본을 스기타 겐파쿠 등이 일본어(한문)로 다시 번역해 1774년에 출간한 해부서다. 쿨무스의 책은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라틴어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출간됐는데, 설명과 도판이 해부학을 이해하는 데 매우 집약적으로 배치됐기 때문에 인기를 끌 수 있었다. 이 책을 우리말로 번역한 김성수 서울대 교수(한국의학사)에 의하면, <해체신서>의 번역, 출간을 계기로 서양 근대 해부학이 동아시아에 널리 소개됐을 뿐 아니라, 특히 일본으로서는 번역을 통해 서양의 학문을 대규모로 받아들이는 한 시대의 문화적 태도, 즉 난학이라 불리는 학문적 풍토가 다져지게 됐다.

이미 전반적인 소개는 이종각의 <일본 난학의 개척자 스기타 겐파쿠>(서해문집, 2013)를 참고할 수 있다. 타이먼 스크리치의 <에도의 몸을 열다>(그린비, 2008)도 '난학과 해부학을 통해 본 18세기 일본'을 주제로 한 책. 서양 해부학의 수용을 계기로 일본 근대화의 바탕이 마련되었다면, 당시 조선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자연스레 궁금해진다. 역시나 교수신문에서 발췌한다.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의 조선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18세기 후반에 태어나 19세기 전반부를 조선에서 살았던 李圭景(1788~?)은 전60권에 이르는 백과전서적인 <五洲衍文長箋散稿>를 저술한 지식인이다. 그는 인간의 몸, 신체의 형태와 기능 그리고 작동하는 원리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면, 그는 성리학적 학문방법인 격물과 궁리의 시작은 天理가 아니라 내 몸이며, 거대담론보다 내 몸에 대해 우선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하늘이나 하늘의 법칙과 따로 떼어내 상정하지 않는 이상, 이것만으로는 근대적 학문방법과 통한다고 보기 어렵다.


옮긴이에 의하면, 무엇보다 이규경이 지녔던 명백한 한계는 그가 볼 수 있었던 서양의 서적이, 한역된 洋書인 탕약망(Adam Schall)의 <주제군징>으로 한정된다는 사실이었다. 갈레노스로 대표되는 서양 중세의 의학론을 담고 있는 <주제군징>은 이미 시간이 무척이나 지난 과거의 지식만을 제공했다. 반면,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는 의학·천문·군사 등의 기술학 관련서적을 원전으로 보고 있었으며, 네덜란드 상관에서 일하는 역관이 서양학문의 전수를 주도했다. <해체신서>야말로 서양의학서를 원전으로 접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한 주요 사례였다. 최신의 서양학문을 자국어로 번역해 수용하는 것은 당시 조선이나 중국에서는 미처 볼 수 없었던 시도였다.

여하튼 근대와 근대화의 기원에 관심을 둔 독자라면 한번쯤 씨름해봐야 하는 주제이고 책이다. 개인적인 궁금증. 근대 학문의 표본이 해부학이었다면, 소위 탈근대 학문의 모델은 무엇일까. 무엇이 근대 이후로 우리를 데려가는가. 혹은 몰고 가는가?..   

 

14. 1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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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알랭 푸르니에의 <위대한 몬느>(민음사, 2014)를 고른다. 1980년대에 문예출판사판으로는 <방황하는 청춘>이란 제목으로 나왔었는데, 원제가 <대장 몬느>라는 걸 알고는 그에 맞게 번역되기를 기대했었다.

 

 

문예출판사판은 절판된 지 오래 됐고, 그 사이에 <대장 몬느>란 제목으로 두 종의 번역본이 나왔는데, 이번에는 <위대한 몬느>란 제목으로 새 번역본이 추가된 것. 불어 원제는 'Le Grand Meaulnes'이고 1913년작이다(제목으로는 1925년에 나오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와 짝이 될 수도 있겠다). 푸르니에는 1886년생으로 1914년 1차 세계대전 때 27세의 아까운 나이로 전사했고 <위대한 몬느>는 이 '한 작품'이라고 할 대표작이 됐다. 소개는 이렇다.

단 한 편의 장편소설을 남기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떴으나 그 소설로 전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 알랭푸르니에. 유년 시절을 향한 동경, 잃어버린 삶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과 신비로움으로 가득 찬 모험, 어른이 되어도 언제나 그러한 모험을 갈망하는 청춘을 이야기하는 <위대한 몬느>가 새로운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세계 대전이라는 암울한 현실 속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꿈과 환상을 매혹적으로 그려 낸 이 작품은 전 세계 청춘들을 위로하는 해방과 자유의 세상이다.

마찬가지로 27살에 세상을 떠난 러시아 낭만주의 시인 레르몬토프도 떠올리게 하는 이력이다(레르몬토프도 시와 희곡을 제외하면 대표작으로 <우리시대의 영웅>이라는 단 한 편의 소설을 남겼다). '전 세계 청춘'에 해당하는 나이는 지난 듯싶지만, 청춘을 돌이켜보며 읽어보고픈 생각은 든다. 

 

 

역자는 <알랭 푸르니에를 찾아서>(중앙대출판부, 2010)를 펴낸 바 있는 푸르니에 전공자. 찾아보니 영어판은 <잃어버린 영지>나 <잃어버린 영역> 등의 제목으로 번역되었다.

 

 

요절한 작가라고 하니까 <육체의 악마>를 쓴 레이몽(레몽) 라디게도 떠오른다. 1903년생으로 대표작 <육체의 악마>는 그가 17세에 쓴 걸로 알려져 있다. 1923년에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으니 우리 나이로 고작 만 20세의 생이었다.

1차 세계 대전 종전 오 년 후에 출간된 레몽 라디게의 문제작. 이 작품은 열여섯 살 소년과 군인 아내의 비도덕적 사랑을 주제로 했다는 점, 이러한 이야기를 쓴 작가가 불과 열일곱 살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시 프랑스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사춘기 소년의 자기중심적인 욕망, 손에 잡히지 않는 충동, 모순되지만 솔직한 내면 심리를 섬세하고도 간결하게 묘사해 낸 라디게는 <육체의 악마>를 통해 전쟁으로 확산된 무위(無爲), 허무주의 속에 내몰린 인간의 불안정한 심리를 훌륭하게 그려 내며 프랑스 고전주의 소설을 새롭게 부활시킨 동시에 완성해 냈다고 평가받는다.

번듯한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온 건 이번에 알게 됐다. 이번 가을엔 '젊은 작가'들의 대표작들과 만나보는 것도 괜찮겠다. 무엇이 청춘이었던가를 음미해보면서...

 

14. 0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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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뜻 손에 들기는 어렵겠지만 '이주의 고전'으로 꼽을 만한 관심도서는 미국의 역사학자 월터 맥두걸의 <하늘과 땅: 우주시대의 정치사>(한국문화사, 2014)다. 학술명저번역총서의 하나로 나왔으니 일단 두 가지는 알 수 있다. 학술서라는 것과 고전적 명저라는 것.

 

 

처음 소개되는 저자임에도 처음 듣는 이름은 아닌 걸 보면 어디선가는 들어봤던 것 같다(느낌만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냉전 시대를 다룬 책들도 하나둘 사모으고 있는데, 그런 맥락에서라면 '우주시대'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다. 간략한 소개는 이렇다.

로켓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본격화되는 18세기 후반부터 우주 진출에 대한 기대와 경쟁이 한풀 꺾이는 1980년대까지를 다룬다. 그중에서도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시작된, V2 로켓을 둘러싼 미소의 쟁탈전에서 시작하여, 냉전이 도래하면서 본격화된 미소의 우주경쟁에 관심을 쏟고 있다. 미소 우주경쟁의 절정은 1957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 성공과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이라 할 수 있다. <하늘과 땅 : 우주시대의 정치사>는 이런 점을 고려하여 스푸트니크의 성공이 미국에 던진 충격과 아폴로계획의 수립 및 진행 과정을, 기밀해제된 문서를 포함한 정부 자료와 신문 자료, 외교문서, 관련 서적 등을 섭렵하여 매우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그러니까 우주시대 정치사의 핵심은 1957년부터 1969년까지 12년간의 스토리란 것. 이 기간의 역사를 다룬 러시아 쪽 책도 관심이 가는데, 적당한 책이 소개되면 좋겠다(가능성이 그다지 높아 보이진 않지만 유리 가가린의 책이 소개된 전례도 있으니까). 

 

 

원서는 일단 주문해놓았고 번역본은 조금 여유가 생길 때 구입할 요량으로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는데, 그렇게 욕심을 내고 있는 또 다른 책은 흐루쇼프(흐루시초프)의 회고록이다. <크레믈린의 음모: 흐루시초프의 영욕>(시공사, 1991)이 눈에 띄지만 절판된 지 오래 됐고, <흐루시초프 비록>이나 <흐루시초프 회고록>이란 제목으로 1970년대 초반에 나온 책들은 이제 헌책방에서도 구하기 어렵다. 최근에 읽은 쿤데라의 신작 <무의미의 축제>(민음사, 2014)에서 다시 이 회고록이 언급되고 있어서 영어판이나 러시아어판을 구하려는 욕심이 생겼다.

 

덧붙여, 아들 세르게이가 편집한 3권짜리 회고록도 2013년에 영어판이 나왔다. 분량은 믿거나 말거나 3000쪽에 육박하고. 당연히 책값도 만만찮기에 바로 주문을 넣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어떤 핑계이든 그럴 듯한 명분을 마련하거나 책값벌이를 하게 될 듯싶다. 우리말 번역으로 읽을 수 있다면 더없이 편하겠지만 이 또한 당장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니...

 

14. 09. 15.

 

P.S. 아래가 세르게이 흐루쇼프가 편집한 회고록의 러시아어판이다. 2010년에 나왔고 2072쪽 분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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