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윈의 대표작 두 권의 제목을 차례로 적은 것은 예기치 않게도 <종의 기원>(한길사, 2014) 새 번역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과학계에서 인정하는 '정본' 번역본이 나오길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에 준하는 판본이 될지 궁금하다. 역자는 <인간의 유래>(한길사, 2006)를 먼저 옮긴 바 있는 김관선 교수다. 덧붙이자면 마크 리들리의 <HOW TO READ 다윈>(웅진지식하우스, 2007) 번역자이기도 하다. 새 번역본의 의의는 어떤 것인가.

 

<종의 기원>은 다윈 생전에 모두 여섯 개의 판이 출간되었다. 대부분의 연구서는 판을 거듭할수록 새로운 내용이 첨가되거나 이전 내용에 수정이 가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종의 기원>은 당시 워낙 논란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에 다윈은 판을 거듭하면서 자신의 견해를 조금 더 부드럽게 표현하려고 했고, 일부 내용은 삭제했다. 한길사에서 다윈의 <인간의 유래>를 번역 출간하기도 한 역자 김관선(페어리디킨슨 대학교 강사· 생물학)은 <종의 기원>의 초판본이 다윈의 의견을 가장 잘 반영한 것으로 보고 이를 한길그레이트북스 133권 <종의 기원>으로 펴냈다. 또 과학적 전문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읽고 정확히 이해하도록 최대한 잘 읽히는 우리말 번역본을 내놓으려 노력했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완역본은 송철용 교수가 옮긴 동서문화사판 <종의 기원> 정도다(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버전의 표지로 출간됐다). 그리고 가이드북으로는 재닛 브라운의 <종의 기원 이펙트>(세종서적, 2012)와 박성관의 <종의 기원, 생명의 다양성과 인간 소멸의 자연학>(그린비, 2010), 그리고 청소년용으로는 심원의 <청소년을 위한 종의 기원>(두리미디어, 2010), 윤소영이 풀어쓴 <종의 기원>(사계절, 2004) 등을 참고할 수 있다.

 

사실 자연과학의 고전은 인문고전과는 달리, 한 문장 한 문장 꼼꼼히 따져가며 읽어야 하는 건 아니다. 전체적인 대의를 간취했다면, 나머지 대목에선 편안하게 책장을 넘겨도 좋은 것. 장서용의 의미가 크다는 것이다. 더 바란다면 다윈에 관한 이차문헌에서 인용할 만한 번역본이 나왔기를 기대한다...

 

14.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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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아프리카문학 대표작들을 고른다. 벤 오크리의 <굶주린 길>(문학과지성사, 2014)이 출간되어서인데, 1959년생인 벤 오크리는 나이지리아 중부 민나 출생이고 나이지리아 정부 장학생으로 영국의 대학에서 공부한 후 BBC에서 프리랜서로 일한 경력을 갖고 있다. 대표작이 1991년에 발표하여 부커상을 수상한 <굶주린 길>이다. 어떤 작품인가.

 

벤 오크리는 독립을 전후로 한 격동기의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났다. 치누아 아체베, 윌레 소앙카와 같은 아프리카 문학 1세대 작가들이 아프리카의 식민지 현실과 독립에의 열망을 문학에 담아냈다면 벤 오크리는 독립 이후 아프리카의 현실에 주목한다. 어린 시절 겪은 비아프라 내전과 이어지는 숱한 종족 갈등과 쿠데타는 벤 오크리에게 정신적 상흔으로 남았으며, 그는 이 어두운 역사를 수많은 작품에 담아냈다. 소설 <굶주린 길>도 그 연장선에 있다. 리얼리즘의 한계를 느낀 벤 오크리는 현실과 초현실을 오가는 혼령 아이를 설정해, 혼란의 시기에 자신이 직접 본 살아 숨 쉬는 일반인들의 역사, 그 역사를 온몸에 새긴 인물들을 묘사하며, 마치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오고 가는 혼령 아이처럼 끊임없이 변화하는 모국 나이지리아를 그려냈다.

 

동시대 아프리카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점에서는 1세대 작가로 올해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됐던 응구기 와 시응오도 같이 떠올릴 만하다. 펭귄판 <울지마라, 아이야>(1964)에 벤 오크리가 서문을 붙이고 있어서 연관짓게 된 것인데, 1938년생인 응구기의 대표작은 1967년작인 <한 톨의 밀알>(들녘, 2014)이다(번역본은 여러 번 재출간됐다). 어떤 작품인가.

월레 소잉카, 치누아 아체베, 나딘 고디머, 존 쿳시 등과 더불어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응구기 와 시옹오. 응구기가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한 작품으로, 작가의 작품세계가 전환기를 맞이했음을 알려주는 소설이다. 이 소설은 형식, 내용, 문체 등 모든 면에서 그의 최고작으로 손꼽힌다. 외부 세력에 의한 공동체의 붕괴가 가져다준 비극과, 그 공동체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지난한 과정에서 사람들의 심리와 행위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때문에 로렌스의 서정성과 콘라드의 비극성을 잘 조화시켜 놓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요컨대, 아프리카문학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 두 작가의 대표작을 꺼내놓을 수 있겠다. 제목도 비슷하게 연상되기에 기억도 쉽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아프리카문학의 강의에서 다룬다면 필수 커리 두 편은 정해진 셈이다...

 

14.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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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미학을 다룬 책들이 눈에 띄어서 같이 묶어놓는다. 리쩌허우의 <미의 역정>(글항아리, 2014)과 이상우의 <중국 미학의 근대>(아카넷, 2014). 리쩌허의 책은 동문선판(1991)이 아직 절판되지 않았지만 새 번역본이 나왔다. 재계약을 했을 터이니 동문선판은 종간된 걸로 보인다.

 

 

어디에 꽂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문선판을 갖고 있는 터라 새 번역본의 구입은 보류한 상태인데, 그래도 번역에 차이가 있다면 구입하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중국 사상 연구로 유명한 리쩌허우의 미학서로는 <화하미학>(동문선, 1999)도 번역돼 있다.

 

 

<중국 미학의 근대>는 "미학이라는 서구의 학문을 처음 동양에 소개한 선구자들의 사상을 되짚어봄으로써 ‘동양 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려는 책이다. 다른 한편으론 "<동양미학론>에서 ‘경계’라는 키워드로 동양 미학의 독창적 이론을 제시한 지은이가 그 범주를 ‘근대’에 한정해 연구한 결과물"이다. 곧 <동양미학론>의 속편이란 뜻이다.

 

'동양미학'으로 시야를 확장하면, 읽어볼 만한 관련서들이 여럿 눈에 띄는데(기회가 될 때 한데 모아서 읽어봐야겠다) 토마스 먼로 같은 서양 학자의 <동양미학>(열화당, 2002)도 있고, 장파나 이마미치 도모노부 같은 동양 학자들의 책도 있다(이에 대해서는 '서양근대미학과 중국미학사' 같은 페이퍼에서 다룬 바 있어서 여기서는 생략한다). 흠, 더 기회가 닿는다면 중국이나 대만의 박물관에도 한번 가봐야겠다...

 

14.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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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북플 이용자는 알겠지만 추천마법사 외에 북플 추천이란 게 있다. 그냥 불쑥 이런 책에 관심 있을 거 같으니 한번 살펴보라고 들이미는데, <성재 봉기종 선생의 대학강해>(전학출판사, 2014) 추천이 며칠새 두 번이나 들어왔다. 이게 관심을 표명할 때까지 계속 추천하는 것인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추천시스템에 대해 약간 의혹도 생겼다. 성재 봉기종 선생이 누군지도 모르고, <대학>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 기억도 없기 때문이다. 읽은 걸로 치면 학부 1학년 때 과제물로 <대학>과 <중용>을 읽은 거 같은데, 좀 과장해서 30년 전 일이다. 최근에 나온 남회근 <대학강의>(부키, 2014)라면 또 모를까.

 

 

저작선이 출간되고 있는 남회근(1918-2012)은 유불도 강의로 유명한 대만의 학자다(불교 수행자이기도 했다). 아직 저작선판으로는 나오지 않았는데, 나는 이전 번역판으로 나온 <논어 강의>를 좀 읽은 기억이 있다. <대학강의>에서 표나게 내세운 건 '원본 <대학>' 강연이라는 점. '원본' 얘기가 나오는 건 유가에서 사서를 편찬하면서 원본에 손을 댔기 때문이다.

송유宋儒인 주희는 <예기>속의 대학과 중용을 따로 떼어내어, 순서를 바꾸고 내용을 덧붙여 제왕의 학문으로 탈바꿈시켰다. 그 후 천여 년 가까이 '원본' <대학>은 사라지고 주희의 '장구본'이 정통으로 군림하였다. 선현의 논리를 제멋대로 해석하여 과거 시험의 표준이 되었고 후인들의 사고를 옭죄었으며 이후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 책은 유가와 도가가 나누어지지 않았던 도통道統의 시대, 담백하고 논리정연하고 정채로운 '원본' <대학>을 강의한다. <대학>은 내면의 학문 수양을 통해 이치를 밝히고 본성을 실현하여 그것으로가까운 사람들, 나아가 세상을 이롭게 함을 드러낸 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평소(혹은 예전에) 읽은 <대학>과는 다른 <대학>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전공자들이야 이미 사정을 알고 있겠지만 일반 독자로선 흥미를 가질 만하다. 게다가 얇은 분량의 경전에 대한 두툼한 풀이여서 강연자의 솜씨도 여실히 드러나지 않을까 한다.

 

 

국내에서는 내노라 하는 학자들의 강의가 더 있을 텐데, 떠오르는 건 김용옥, 김충열, 대산(김석진)의 강의다. 일일이 다 구입할 것까진 없고 가까운 도서관에 (혹 비치돼 있다면) 날 잡아서 몇 권을 나란히 펴놓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봄직하다. 며칠만 투자하면 '대학'의 문리가 트이지 않겠는가, 싶다. 내가 그러고 싶지만, 당장은 여유가 없군. 독서계에서 가장 부러운 건 백수 독학자들이다. 그들이야말로 독서 여유의 지존인지라...

 

14. 1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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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에서 책세상판 전집을 바탕으로 카뮈의 <이방인>과 <페스트>에 대해서 강의를 했다. 이런 종류의 고전이야 여러 번역본이 나와도 언제나 환영인데(물론 <데미안>이나 <동물농장> 같은 작품의 새 번역본은 사양하고픈 심정이지만), 마침 <이방인>과 <페스트>의 새 번역본이 출간됐다.

 

 

먼저 <이방인>(홍익출판사, 2014)의 경우엔 유기환 교수의 번역으로 새로 나왔다. 살림지식총서의 <알베르 카뮈>(살림, 2004) 저자이고, 오래 전에 <반항인>(청하, 1993)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이휘영 교수의 '원조' 번역본, 김화영 교수의 '대표' 번역본과 나란히 놓을 만하다.

 

 

<이방인>에 대해선 한 불문학 전공자가 최수철 작가가 옮긴 <이방인>(시공사, 2012)을 추천한 적이 있는데, 대략 3종 정도를 대조해서 읽으면 작품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을 듯싶다. 열린책들판의 <이방인>과 문학동네판 <이인> 등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페스트>(열린책들, 2014)도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출간되어 이휘영 교수나 김화영 교수 번역본에 겹쳐서 읽을 수 있게 됐다. 생각만큼 번역본이 많지 않은 터라 반갑게 느껴진다. 몇몇 대목은 번역을 비교해보고픈 마음도 있어서 바로 주문할 참이다. 인생은 다시 살 수 없지만,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은 여기에도 해당될 수 있으리라...

 

1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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