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이주의 저자'를 고를 때 세 명의 이름을 나란히 적곤 하는데, 이번 주에는 '이주의 고전' 역시 그렇게 적는다. 고전들이 한꺼번에 쏟아졌기에 나름대로 고안해낸 방도다.

 

 

먼저, 칸트. 백종현 교수의 단독 번역으로 출간되고 있는 '칸트 전집'의 16권으로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아카넷, 2014)이 출간됐다. 전집 번호로는 16권이지만 열번째로 출간된 책이고, 종수로는 아홉번째 책이다(<순수이성비판>이 두 권짜리다). 3대 비판서를 제외하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나 <영원한 평화> 이상으로 중요한 저작이 <실용적 관점에서의 인간학>이다. 푸코의 <칸트의 인간학에 관하여>(문학과지성사, 2012)가 다루고 있는 저작이기도 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올해 다른 번역본으로 <실용적 관점에서 본 인간학>(울산대출판부, 2014)이 재출간된 데 이어서 '정본' 번역을 자임하는 새 번역판까지 출간돼 이제 한국어로 읽어볼 만한 여건은 충분해졌다. 바로 그런 생각으로 책상 한쪽에 책들을 모아놓았다.

 

 

이어서 '신칸트학파'의 대표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 그의 대표 대작 <상징형식의 철학>(전3권) 가운데 '신화적 사유'를 다룬 2권이 출간됐다. '언어'를 주제로 한 1권이 2011년에 나왔고, '인식의 현상학'을 다룬 3권이 더 남았다. 2권은 <상징형식의 철학2>(도서출판b, 2012)으로 나온 바 있으니 두 종을 번역본을 갖게 된 셈.

 

 

카시러의 가장 유명한 저작 <인간이란 무엇인가>는 사실 <상징형식의 철학>을 영어권 독자들에게 소개하려고 간추린 책이었다. 국내 소개된 또 다른 저작 <상징 신화 문화>(아카넷, 2012)은 에세이와 강의록인데, 역시나 그가 필생에 걸쳐 다룬 주제가 어떤 것이었는지 가늠하게 해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인상적인 독자라면 그의 주저들에도 도전해봄직하다. 1,2권을 천천히 읽다보면 3권도 출간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여권운동가로서 '근대 페미니즘의 어머니'로도 불리는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의 대표작 <여권의 옹호>(연암서가, 2014)가 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한길사판은 절판됐고, 그밖에 <여성의 권리옹호>(책세상, 2011)라는 제목의 발췌본이 나와 있던 책이다. 울스턴크래프트는 1797년 진보적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과 결혼하여 그해 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고드윈을 낳고서 산욕열로 세상을 떠났는데,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바로 <프랑켄슈타인>의 저자 메리 셸리다(셸리는 그녀가 저명한 낭만주의 시인 P. B. 셸리와 결혼하면서 갖게 된 성이다).

 

 

울스턴크래프트의 생애에 관해선 자넷 토드의 <세상을 뒤바꾼 열정>(한길사, 2003)을 참고할 수 있다. '위대한 페미니스트 울스턴 크래프트의 혁명적 생애'가 부제인 방대한 분량의 전기다. 더불어 최근에 나온 박의경의 <여성의 정치사상>(책세상, 2014)은 국내서로는 울스턴크래프트의 정치사상에 관한 가장 자세한 안내서다. <여권의 옹호>(1792)는 울스턴크래프트가 33살에 발표한 책. 여성주의 고전인 만큼 페미니즘 관련서에서 빠짐없이 언급된다. 멜빈 브래그는 <세상을 바꾼 12권의 책>(랜덤하우스코리아, 2007)의 하나로 꼽기도 했다(영국인 저자가 영국인이 쓴 책들 가운데서 고른 12권이다)...

 

14. 09.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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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받은 택배 가운데 하나는 데리다의 <마르크스의 유령들>(그린비, 2014)와 더널드 서순의 대작 <사회주의 100년>(황소걸음, 2014)이다. 짝이 되는 듯싶어서 같이 주문했는데, <사회주의 100년>은 생각보다 더 두툼해서 놀랐다(게다가 하드카바라서 '벽돌' 무게다).

 

 

그린비판 <마르크스의 유령들>은 <마르크스의 유령들>(이제이북스, 2007)의 개정판이다. 절판됐다가 다시 나온 것인데, 나는 이제이북스판을 갖고 있지만(게다가 첫 번역본인 양운덕 번역의 한뜻판(1996)도 갖고 있다) "초판 번역에서 드러났던 몇 가지 오역을 수정하고 문장들을 새로 다듬어" 펴냈다고 하여 다시 구입했다. 이번 학기에도 강의차 <햄릿>을 다시 읽을 기회가 있기 때문에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음미하는 데 좋은 타이밍이 아닌가 싶다.

 

 

데리다는 이 책, 애초에 책의 근간이 된 강연을 1993년 4월에 암살당한 남아공의 크리스 하니(Chris Hani) 공산당 사무총장에게 바치고 있다. 넬슨 만델라와 더불어 아파르트헤이트(인종격리정책) 반대 투쟁의 대중적 영웅이었던 인물이다. 데리다는 헌사에서 "크리스 하니를 추모하고 이 강연을 그에게 바칠 수 있게 허락해 주기 바란다"고 적었다.

 

 

남아공 공산당의 지도자였지만 크리스 하니는 서순의 <사회주의 100년>에 등장하지 않는다. 부제대로 '20세기 서유럽좌파 정당의 흥망성쇠'를 다룬 책이어서다. 책의 존재는 재작년에 <유럽문화사1-5>(뿌리와이파리, 2012)가 출간됐을 때 알았지만 이 엄두가 나지 않는 분량의 책이 버젓이 소개될 줄은 몰랐다. 원서의 분량이 1000쪽이 넘기에. 개요는 이렇다.

제2인터내셔널이 탄생한 1889년에 시작된 20세기 서유럽 사회주의 정당들이 자본주의와 함께 민주주의와 복지를 완성하려고 어떻게 노력했는지 돌아본 책으로, 자본주의의 발전과 민족국가, 국제적인 제도, 지배 이데올로기 등 다양한 제약에 직면한 사회주의 정당들의 비교 역사를 다룬다. 정당은 사회·경제구조의 지대한 영향을 받고, 그 구조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정당의 역사는 곧 사회·경제구조의 역사다. 

20세기의 역사를 다룬 책은 여럿 되고, 서구 좌파의 역사를 일별한 책도 나와 있지만 사회주의 정당사만 통으로 다룬 책은 처음인 듯싶고, 그게 자체로 책의 의의가 된다. 에릭 홉스봄은 "역사적 분석이 담긴 주목할 만한 저작. 조만간 고전의 반열에 오를 책"이라고 평했다. 절판된 줄 알았는데, 2014년판이 다시 나오는 걸 보면 아직 '살아있는' 책이다...

 

14. 0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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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에른스트 윙거의 <강철 폭풍 속에서>(뿌리와이파리, 2014)를 고른다. <대리석 절벽 위에서>(문학과지성사, 2013)가 작년말에 나왔을 때 적은 페이퍼에서 <강철 폭풍>(1920)을 먼저 읽고 싶다고 했는데, 바로 그 책이다.

 

 

책에 대해선 아직 소개글이 올라와 있지 않다. 대신 앙드레 지드의 평에 따르면, "“이 책은 의문의 여지 없이 전쟁에 관한 최고의 책이다. 정직하고 참되고 믿음직하다.” 논란이 된 작가의 이력과 정치 성향에 대해서도 이전에 설명을 다시 참고할 수밖에 없다.

하이델베르크에서 중산층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7세에 김나지움 학생의 신분으로 프랑스 외인부대에 입대했다가 아버지의 반대로 6주 만에 집으로 돌아왔으나, 곧이어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에 종군하여 철십자 훈장과 푸르르메리트 훈장을 받았다. 독일의 패전 뒤에도 군에 머물며 전쟁의 경험을 담은 <강철 폭풍><내적 체험으로서의 전투>를 발표해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제대한 뒤에는 하노버 대학 · 라이프치히 대학 · 나폴리 대학에서 동물학과 철학을 수학했다. 그는 일생 동안 곤충에 심취했고 약 3만 마리의 곤충을 수집했는데, 곤충 가운데 여러 종에 그의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윙거는 언제나 정치적 논쟁의 중심에 서 있었는데, 그의 작품은 전쟁을 미학적으로 정당화하기도 하고 나치즘에 접근하는 등 보수 혁명자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나치당원이었던 적도 없고 나치 체제 인사나 반체제 인사를 가리지 않고 교류했다. 또한 그의 대표작 <대리석 절벽 위에서>는 나치의 정치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작품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러한 다중적인 정치적 성향으로 인해 윙거의 작품들은 전쟁 말기에는 나치에 의해, 종전 직후에는 영국 점령군에 의해 잠시 판매가 금지되었다.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을 맞아 이렇다할 책이 나오지 않는다 싶었는데, <강철 폭풍 속에서>는 책 가뭄을 얼마간 해갈시켜줄 수 있을 듯싶다. 펭귄판의 영어본도 바로 주문해야겠다...

 

14. 08. 25.

 

 

P.S. 한편, '폭풍'이란 말은 '1차 세계대전'에 대한 흔한 비유인 것 같기도 하다. 플로리안 일리스의 <1913년 세기의 여름>(문학동네, 2013)의 영어판 부제는 '폭풍 바로 전 해'이기 때문. 1차 대전 발발까지의 과정을 다룬 책으로 화제작은 크리스토퍼 클라크의 <몽유병자들>(2014)이다. 부제는 '유럽은 어떻게 1914년 전쟁으로 치닫게 되었나'이다. 번역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소개됨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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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책 얘기다. 먼저, 에드워드 벨러미의 유토피아 소설 <뒤돌아보며>(아고라, 2014)가 출간됐다. '2000년에 1887년을'이 부제. 1888년작으로 <뒤를 돌아보면서: 2000-1987>(지만지, 2011/2008)라고 먼저 번역됐던 작품. 소개는 이렇다.

 

유토피아 문학의 고전이자 미국 최초의 SF소설. 19세기에 씌어진 이 작품은 2000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여 국가가 모든 생산수단을 관리하고, 사람들은 누구나 평등하게 삶의 윤택함을 누리는 세상을 그렸다. 출간 당시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벤허> 다음으로 많이 팔린 베스트셀러였으며, 미국의 사회주의 운동과 여성 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통상 유토피아 소설은 '반유토피아 소설'이라지만 간혹 예외도 있는 셈이다(심리학자 B. F 스키너의 <월든 투>도 같이 분류될 수 있을까). 작가 벨러미는 이런 기대를 피력했다고 한다.

사상이 풍부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회의 현재 양상이 엄청난 변화의 전조라는 사실에 동의하리라 생각합니다. 이 책은 황금 시대가 우리 앞에 놓여 있지, 우리 뒤에 있지 않으며, 또 멀리 있지도 않다는 신념에서 씌어졌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분명 이 시대를 볼 것이며, 이미 성인이 된 우리 또한 신념과 노력으로 마땅히 그 시기를 누릴 자격을 얻는다면 이 시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알다시피 '황금시대' 혹은 '이상사회'는 러시아혁명을 통해서 미국보다 러시아에서 먼저 시도되었다. 하지만 실패로 끝났는데(바디우는 '모호한 재앙'이라 불렀다), 가장 결정적인 징후는 스탈린시대의 강제수용소(굴라크)였다.

 

 

굴라크를 다룬 책으로 스티븐 코언의 <돌아온 희생자들>(글항아리, 2014)도 최근에 나왔다. 앤 애플바움의 <굴락>(드림박스, 2004)이 한번 번역됐었지만 현재 절판된 상태이고 번역도 좋지 않았다. 스탈린시대와 스탈린 사후 시기에 대한 보고서로도 필독해볼 만하다.

 

 

굴라크를 다룬 책으론 솔제니친의 대작 <수용소군도>(1973)가 있다(완역됐었지만 현재는 전체의 1/6 만 다시 나온 상태). 그리고 물론 그의 데뷔작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1962)도 빼놓을 순 없다. 솔제니친 자신의 수용소 생활을 바탕으로 쓰인 소설이라 논픽션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돌아온 희생자들>이 나온 김에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14. 08.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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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베르의 <감정교육>(민음사, 2014) 새 번역본이 나왔기에 '이주의 고전'으로 꼽는다. 이로써 현재 읽을 수 있는 번역본이 네 종이 됐다. 간략한 소개로는 "플로베르가 19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프랑스 작가로 자리 매김하게 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작품"으로 "사랑을 이야기하고 근대 도시 파리를 스케치한 풍자적 역사소설이다. 낭만주의적 전통을 뒤엎고, 사실주의적 원칙 또한 무시한 채 동시대인들의 도덕의 역사를 감히 말하고자 한 작품으로, 플로베르 생전에는 냉혹한 비판을 받았으나, 사후에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다."

 

 

 

개인적으로 <감정교육>이 떠올려주는 건 프랑수아즈 사강의 <슬픔이여 안녕>이다. 사강의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 바칼로레아을 준비하던 여주인공이 따분하게 읽는 소설이 바로 <감정교육>이었기 때문이다(베르그송도 지루하다고 투덜대며 읽는다). <슬픔이여 안녕>을 읽은 건 기억에 고2 때쯤(설마 고3때?). 같은 또래의 여성 작가가 썼다고 해서 읽어보고 사강의 <어떤 미소>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까지 내처 읽은 기억이 난다. 이제 거의 30년 전 일이다.

 

 

소설의 줄거리조차 가물거리지만 그래도 기억에 남은 건 부록으로 실린 인터뷰였다. 특히 사르트르에 대한 '팬심'이 인상적이었다. 카뮈와 사르트르 가운데 자신은 단연 사르트르를 좋아한다는 것. 사강이 1935년생이니 사르트르와는 30년 터울이다. <슬픔이여 안녕>은 1954년작.

 

소담출판사에서 사강의 주요 작품이 선집 비스무리하게 나와 있지만 유독 <슬픔이여 안녕>은 빠진 모양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감정교육>이 나온 김에 30년 전으로 되돌아가는 '시간여행'의 유혹을 느낀다. 작품이 출간 60주년을 맞은 것도 독서의 이유가 될 수 있겠다. 아뿔사, 소설의 여주인공 열일곱 살 세실도 곧 여든이 되는구나!..

 

 

14. 07.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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