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물론 쇼펜하우어의 주저 <의자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을유문화사, 2009)를 가리킨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겨울에 완독해볼 철학서로 염두에 두고 지난주부터 행방을 찾고 있다(책들이 여러 곳에 보관돼 있는 탓에 발품과 추리력이 모두 동원되어야 한다).

 

 

갑자기 염세주의에 끌려서는 아니고, 최근에 가이드북이 될 만한 책이 여러 권 출간되었기 때문이다. 실상 을유문화사판 새 번역본이 나오기 전까지는 도전하기도 만만찮았던 책이다. '데.칸.쇼'라고 하여 데카르트, 칸트와 함께 (일본과 한국에서) 서양철학의 대명사였던 철학자가 쇼펜하우어이지만, 이 방대한 주저를 무턱대고 손에 드는 건 무모한 도전에 가까웠다.

 

 

'가이드북'이란 말로 염두에 둔 건 최근에 나온 로버트 윅스의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입문>(서광사, 2014), 이동용의 <쇼펜하우어, 돌이 별이 되는 철학>(동녘, 2014), 그리고 김진의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읽기>(세창출판사, 2013) 등이다. 경험상 이 정도 장비면 아무리 험한 봉우리라도 도전해볼 만하다.

 

 

그리고 원저는 독어로 쓰인 까닭에 직접 읽을 수가 없어서 영역본을 이번에 대신 구입했다(두툼한 책 두 권이다). 오늘 배송된다는 메일을 받고서 생각이 나서 적는 페이퍼이다.

 

 

한편,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이외에 더 소개된 쇼펜하우어의 책으로는 <쇼펜하우어의 행복론과 인생론>(을유문화사, 2013), <자연에서의 의지에 관하여>(아카넷, 2012), <충족이유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나남, 2010) 등이 있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독서가 순탄하게 진행되면 마저 구비해놓을 참이다...

 

14.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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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씀을 하려는 건 아니고,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의 소설 <모든 인간은 죽는다>(삼인, 2014)가 번역돼 나왔기에 적는 페이퍼이다. 보부아르의 많은 소설이 일찍이 소개됐다가 대부분 절판된 상태인데, <모든 인간은 죽는다>(1946)도 마찬가지다. 찾아보니 학원사판이 1985년에 나왔었다. 내 기억도 학원사판이고. 어떤 소설인가.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의 세 번째 소설. 영원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과, 좌절을 거듭하는 인간의 이상주의를 치열하게 묘사하면서, 유한한 생명의 의미를 묻고, 쳇바퀴처럼 반복되면서도 아주 느리게 전진하는 역사를 되비치는 소설이다. 작가는 '죽음'이라는 문제를 전면에 내세워,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삶, 우리의 삶, 대대로 목숨을 이어온 인류 역사의 의미를 격랑처럼 펼쳐 보인다.

고등학교 때 사르트르와 카뮈까지는 읽었지만 보부아르에는 손을 대지 못했고 덕분에 놓친 책들 가운데 하나가 <모든 인간은 죽는다>이다. 가장 아쉬운 건 1954년 콩쿠르상 수상작인 <레망다랭>(삼성출판사, 1983)이고. 다시 출간되길 꽤 오래 기다렸지만 감감 무소식이다(도서관을 이용하면 물론 구해볼 수는 있다).

 

 

<제2의 성>(1949)이 대표작으로 돼 있지만 보부아르는 소설 외에 자서전, 연애편지 등 많은 저작을 남겼으며 상당수가 국내에 번역됐었다. 하지만 현재 소설로는 <타인의 피>(1945), <편안한 죽음>(1964), <위기의 여자>(1967) 등이 남아 있는 듯. 첫 소설 <초대받은 여자>(1943)도 지금은 읽어볼 준비가 돼 있지만(고등학생 때는 관심이 없었기에), 마땅한 판본이 없다. 생각해보면 7편의 소설 가운데 5편은 번역돼 있었던 셈이다(혹 더 나와 있었을지도). 요컨대 <초대받은 여자>와 <레망다랭>이 다시 번역돼 나오길 기대한다.

 

독서도 '수구초심'인지 젊을 때 읽었던 책이나 놓친 책들로 자주 눈길이 간다. 새로운 저자들은 우리를 들뜨게 하고, 오래된 저자들은 우리를 편안하게 한다. 가끔은 밀린 일들을 더 미뤄두고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고픈 휴일 오전도 있는 법이다...

 

14. 1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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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권의 대표적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와 게오르크 트라클(1887-1914)의 시집이 출간되었기에 '이주의 고전'으로 골라놓는다. 먼저 대표작의 제목으로 나온 릴케의 시선집 <두이노의 비가>(열린책들, 2014).

 

 

<두이노의 비가>는 댓 종의 번역본이 나왔었지만 현재 구할 수 있는 걸로는 이번에 나온 열린책들판과 책세상판이 유일한 듯싶다. 때문에 두 판본이 한국어로 읽을 수 있는 '릴케 시'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스러운 건 릴케의 주요한 시들을 망라하고 있다는 점(하긴 책세상판은 '릴케 전집'이다).  

 

1899년부터 1922년까지 발표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집 여덟 권(<기도 시집>, <형상 시집>, <신 시집>, <후기 시집>, <진혼가>, <마리아의 생애>, <오르페우스에게 바치는 소네트>, <두이노의 비가>)에 수록된 시 중 170편에 이르는 작품을 선정한 시 선집이다. 생전 다작가였던 릴케가 세상에 남기고 간 시적 대업을 한 권의 책을 통해 만나 볼 수 있다.

대조해서 읽어본다면, 릴케 시의 진의에 좀더 접근할 수 있을지 모른다. 열린책들판의 역자 손재준 교수는 원로 독문학자로 현재 고대 명예교수이며 게오르크 트라클의 <귀향자의 노래>도 번역서로 갖고 있다. 책세상판의 역자의 김재혁 교수와는 사제지간이 아닌가 싶다.

 

 

지난봄에는 릴케 초기 시선집으로 <릴케 시집>(문예출판사, 2014)이 출간됐었는데, 이 역시 책세상판 전집과 같이 읽어볼 수 있겠다.

 

 

릴케 가이드 북으로는 볼프강 레프만의 전기 <릴케>(책세상, 1997)과 조금 전문적일 수 있지만 김재혁 교수의 연구서 <복면을 한 운명>(고려대출판부, 2014)을 참고할 수 있다. 한국 시인들과의 비교문학적 연구로는 같은 저자의 <릴케와 한국의 시인들>(고려대출판부, 2006)도 나와 있다. 릴케에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나 <말테의 수기>부터 손에 드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기회가 닿으면 언젠가 <말테의 수기>도 강의에서 다뤄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릴케와 러시아'도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인데, 영어와 러시아어로 몇 권의 책이 나와 있다. 기억에 릴케는 러시아를 세번쯤 방문했고 레르몬토프 등의 러시아 시를 독어로 옮긴 바 있다. 파스테르나크도 릴케와 인연이 있는 시인이다.

 

 

오스트리아의 대표 시인 트라클의 시선집도 이번에 출간됐다. <꿈속의 제바스치안>(울력, 2014). 첫 번역은 아니지만 다른 판본들은 거의 존재감이 없었기에 이번 시집은 기대가 된다. 1차 세계대전 중에 약물과용으로 27세에 요절한 건 이번에 알았는데, 짧은 생을 마친 걸로는 레르몬토프와 비슷하다. "개인적으로 겪은 고통과 전쟁의 경험을 작품에 표현해, 퇴락과 죽음을 노래한 오스트리아 최고의 애가() 작가가 되었다"는 소개다.

 

 

이번 늦가을엔 트라클과 만나보아도 좋겠다...

 

14. 11.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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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에 책이 나왔고 이름도 똑같이 '피에르'여서 두 사람을 묶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와 철학자 피에르 마슈레. 또 다른 공통점은 이번에 나온 두 사람의 책이 재번역본이라는 점. 덧붙여 둘다 나로선 상당히 오랜만에 접하는 책이라는 점. 

 

 

부르디외의 <언어와 상징권력>은 불어판과 영어판이 오고간 텍스트이다. 불어판(1982)이 먼저 나왔지만 영어판(1991)이 나오면서 몇 편의 글이 더 포함되었고, 나중에 이 영어판을 토대로 새로 편집된 불어판(2001)이 나왔다(그래서 영어판의 해제가 불어판에도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 영어판의 번역이 국내에서는 <상징폭력과 문화재생산>(새물결, 1995)란 제목으로 거의 20년전에 출간됐었다. 대학원생 시절이던 그맘때 나도 영어판과 같이 펴놓고 몇 대목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번역에 문제가 많았던 모양이다(사실 당시에 부르디외 번역서들도 상당수는 읽기가 어려웠다. 부르디외 해설자가 '구별짓기'란 말을 '탁월화'로 옮기던 시절이었다).

 

이번에 나온 <언어와 상징권력>의 역자는 이렇게 적었다. "이 번역서는 독특한 (자의적인) 구성과 인상적인 옮긴이 서문, 그리고 기념비적인 오역을 통해, 한국에서 부르디외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식으로 수용되기 시작했는지 생생히 보여준다." 그래서 중복번역임에도 불구하고 "더 정확하고 읽기 쉬운 번역과 조금 더 친절한 역주로써, '부르디외를 재발견'할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기 때문이다"는 번역의 동기를 밝혀놓았다. 어차피 구 번역은 이제 존재하지도 않는 책이므로 오늘의 독자에게는 그냥 '발견'이라고 해야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마치 처음 읽는 듯한 표정으로 <언어와 상징권력>을 대하면 되겠다.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전공의 대학원생이라면 도전해봄직하다. 

 

 

이어서 <헤겔 또는 스피노자>(그린비, 2010)의 저자 피에르 마슈레의 <문학생산의 이론을 위하여>(그린비, 2014)도 아주 오랜만에 다시 번역돼 나온 책이다. 구 번역본이 <문학생산이론을 위하여>(백의, 1994)이다. 당시 책을 접할 때 마슈레는 철학자가 아니라 문학이론가의 이름으로 각인되었는데, 스피노자 철학의 권위자라는 건 나중에야 추가된 이미지이다(마슈레는 알튀세르의 제자로 발리바르, 랑시에르와 함께 알튀세르 사단의 삼총사였다). 80년대 후반 문학이론의 쟁점이던 '반영이론과 생산이론'에서 주요한 참조점이었기 때문에 나도 영어판까지 구해서 읽어보던 기억이 난다. 레닌의 톨스토이 비평 같은 장도 들어 있었기에 읽지 않을 도리가 없었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인상은 발자크를 읽어야겠다는 것 정도. 책의 번역자가 발자크 전공자였던 것은 그래서 이해할 만한 일이었지만, 듣기에 이 번역서 또한 기념비적 오역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니까 형식상으론 두 권 모두 재번역이고 '재발견'의 대상이긴 하지만, 그건 나 같은 중년의 독자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이고, 지금 세대의 독자가 굳이 '기념비적 오역'들까지 들춰가며 읽을 필요는 없겠다. 깔끔하게 새로 번역된 판본으로 읽으면 될 테니까. 다만 다루고 있는 문제들이 가졌던 시의성은 좀 반감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요즘 누가 반영이론이니 생산이론이니 하는 말을 입에 올리겠는가. 그러니 '발견'은 때로 '발굴'과 구별하기 어렵다. 인생 짧지만, 바로 그렇게 짧기 때문에 20년이란 시간은 짧지만도 않은 시간이다...

 

14.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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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인류학자 마셜 살린스의 대표작 <석기시대 경제학>(한울, 2014)이 번역돼 나왔다. 올봄에 <역사의 섬들>(뿌리와이파리, 2014)이 출간됐을 때도 번역되어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적은 바 있는데, 소망이 실현된 셈이라고 할까(다만 다소 비싸게 실현된 게 흠이다. 대개 많이 나가지 않을 경우 책값이 비싸게 매겨지는데, 이 책은 영어 원서도 비싼 편이다).

 

 

어떤 책인가. 핵심적인 아이디어와 현재적 의의에 대해 출판사에서는 이렇게 짚는다.

저자인 마셜 살린스는 수렵채집 경제가 ‘생계경제’를 대표한다고 보는 경제학의 전통적인 사고방식, 즉 문명과 야만의 이분법적 사유에서 벗어나 수렵채집 사회야말로 원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였음을 증명하고 본래의 모습을 복원하려 한다. 이 책은 경제인류학의 고전적 쟁점과 풍부하고 흥미로운 민족지 자료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인류학, 고고학,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경제사, 사학 전공자들의 교재나 연구서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신고전파 주류 경제학에 대한 인류학적 비판을 현재의 맥락으로 호출하면, 당대 금융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신화를 폭로하고 좀 더 인간 중심적인 경제 철학과 대안적인 세계관을 모색하는 데 의미심장한 지적 토대가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두 가지 의의가 있겠다는 것. 하나는 석기시대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통념을 교정해준다는 의의이고,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신화를 폭로하고 대안적 세계관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게 다른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주의 고전'으로 꼽을 만하다...

 

14.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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