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라스 강의에서 <롤 베 스타인의 환희>와 <부영사>를 읽으며 ‘안마리 스트레테르‘와 만난다. ‘정신 나간 여자‘였던 어머니와 달리 실제로 소녀 뒤라스의 이상형이었던 여자다(총독부 행정관의 아내).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뒤라스문학의 출발점이다...

한편의 아름다운 시가 의미의 무거움을 모면해서 아름다운 시가 되듯이, 뒤라스의 여성 인물들도 그들이 하는 일과 상관없이 의미를 부여받는다. 안마리 스트레테르가 사춘기의 마르그리트를 매혹할 수있었던 건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의외성은 정신분석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우리가 아는바 여자아이들은 대개, 특히 사춘기에는 미래를 꿈꾸게 해주는 ‘이상형‘으로서의 한 여성과 정신적으로 동행한다. 어머니보다 젊을 경우가 많은 이 이상형을 통해 여자아이는 어머니라는 한 모범으로부터 어떤 의미로 분리될 수 있다. 자매일 경우 마리즈 바양과 함께 쓴 책에서 고찰했듯이 언니가 종종 이 역할을 한다. 혹은 친척 여성이나 선생님이 이 역할을 맡아 아이가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면서 최초의 모범으로부터 떨어져 나오도록 도와준다. 우리는 이렇게 여성 간의 연대를 통해 뒤라스의 표현대로 "가족이라는 지옥"에서 벗어난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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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휴가에도 이번주 강의책들을 챙겨왔으니 사실 백퍼센트 휴가는 아니다. 그나마 휴가책으로 가방에 더 넣은 책이 김훈의 산문집 <허송세월>이다. 금요일에 책장을 열고 처음 몇 쪽을 읽었고 오랜만에 김훈 산문과 만나는 느낌을 맛보았다. 오래전 <풍경과 상처>(1994)를 읽었을 때의 느낌. 30년의 세월이 많은 걸 바꾸어놓았는데, 나이 쉰도 되기 전의 김훈은 어느새 여든을 가까이에 둔 김훈으로 바뀌었다(‘헛되다‘는 말이 수사가 아니라 실감이 되는 나이랄까). 그래도 여전한 건 여전하다. 아주 멀지 않은 날, 나도 허송세월로 바빠지리라...

나는 오후에 두어 시간쯤 햇볕을 쪼이면서 늘그막의 세월을 보낸다. 해는 내 노년의 상대다. 젊었을 때 나는 몸에 햇볕이 닿아도 이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고, 나와 해 사이의 공간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지나간 시간의 햇볕은 돌이킬 수 없고 내일의 햇볕은 당길 수 없으니 지금의 햇볕을 쪼일 수밖에 없는데, 햇볕에는 지나감도 없고 다가옴도 없어서 햇볕은 늘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 온다. 햇볕은 신생하는 현재의 빛이고 지금 이 자리의 볕이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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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개 언어를 구사해 ‘언어 천재‘로 불리는 일본 학자의 책이다. 한 차례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저자의 강의에 바탕을 둔(강의는 놀랍게도 1940년대 후반에 진행되었다) 책이어서 러시아문학 강의의 교재로도 유용하다. 아래 인용문에서 이반 카라마조프는 드미트리 카라마조프로 교정되어야 한다. 저자의 착오인지 역자의 오역인지 모르겠다...


이반 카라마조프는 "인간의 영혼은 정말로 광활하다. 정말이지 엄청나게 광활하다. 가능하다면 살짝 작게 만들고 싶을 정도다!"라고 말했다. 이건 지성이나 이성만으로 해석할 수준의 것이 아니다. 이들 영혼에는 우주의 바람이 깃들어 있으며 이 엄청난 모순덩어리는 디오니소스적 성격을 보인다. 그렇기에 디오니소스의 불가사의한 외침을 가슴으로 직접 느껴본 사람만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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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준비차 쿤데라의 에세이 <커튼>(2005)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내게는 2008년만에 나온 단행본판과 2012년에 나온 전집판이 있다(이번에 다시 구입한 건 2022년에 나온 2판 11쇄. 하지만 오자, 오역이 전혀 수정되지 않았으니 판이나 쇄의 의미가 없다). ‘아침의 자유, 저녁의 자유‘ 장(청춘의 피카소 얘기로 시작해서 말년의 베토벤 얘기로 끝난다)에서 마지막 단락에 밑줄을 긋는다...

베토벤의 마지막 십년 역시, 빈에게서, 빈의 음악가들과 귀족들에게서 더 기대할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된다. 그들은 베토벤을 숭배하지만 더 이상 그의 음악을 듣지 않는다. 게다가 베토벤 역시, 설사 귀머거리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들에게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예술의 정점에 있다. 그의 소나타와 사중주는 다른 어떤 것과도 닮지 않았다. 그 구성의 복잡성으로 인해 고전주의와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낭만주의의 가벼운 자연스러움에 가깝지도 않다. 음악의 발전에 있어서 그는 누구도 따라오지 않은 방향을 취한 것이다. 수하도 계승자도 없는 그의 작품, 저녁의 자유의 작품은 기적이며 섬이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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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신비에 싸인 사건>은 지난해 <어둠 속의 사건>으로 번역된 소설이다. 츠바이크는 이 소설을 읽고 조제프 푸셰에 대한 전기를 쓴다. <어둠 속의 사건>의 독자라면 자연스레 츠바이크의 책에도 손이 갈 수밖에 없다...

발자크에게 푸셰는 ‘둘도 없는 천재‘이자 ‘나폴레옹이 거느렸던 장관들 중 유일하게 제구실을 한 장관‘이며 그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머리가 좋은 사람‘이다. 발자크는 다른 글에서 이렇게 쓴다. "어떤 사람은 보이는 표면 아래에 항상 아주 깊은 심층을 지니고 있어서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순간에 다른 사람들은 그 의중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푸세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도덕군자들에게는 매도의 대상인 인물이 이토록 철저히 다른 평가를 받다니 놀랍지 않은가! 발자크는 소설 <신비에 싸인 사건Une ténébreuse Affaire>에서 "음습하고 심층적이며 비범한 인물이 하나 있는데 그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고 운을 떼고는 이 인물에게 별도로 한 페이지를 할애하고 있다. - P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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