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 읽기에도 세대가 있다면 나는 '토마스 불핀치' 세대에 속한다. 이윤기 선생 번역본으로는 '토마스 벌핀치'. 요즘도 여러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고, 어린이용으로도 널리 읽히고 있으니 단절된 세대라고는 볼 수 없지만(나는 삼중당문고로 읽었다!), 그 사이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나온 걸 고려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볼핀치판과 이윤기판이 있다고 하면, 거기에 최근에 다시 나온 구스타프 슈바브판을 추가해볼 수 있겠다. 저자는 19세기 시인이자 교육자로서 그의 <그리스 로마 신화>가 독일뿐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판본이라고.

 

 

몰랐던 사실인데, 이 슈바브판도 국내에는 세 종의 판본이 있다. 이번에 나온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휴머니스트, 2015)는 2006년에 물병자리에서 6권짜리 나왔던 번역본을 새롭게 다듬어 펴낸 것으로 훨씬 단정하고 고급스러워졌다.

 

 

다른 판본으론 작년에 나온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느낌이있는책, 2014)가 있는데, 이 역시 3권짜리 구성이다. '신과 영웅의 시대'가 1권이고, '트로이아 전쟁'이 2권, '오뒷세우스, 아이네아스'가 3권이다. 서양 고전의 시발점이 되는 그리스 로마 신화 입문에 적절한 기준이 되어줄 듯싶다.

 

 

볼핀치 책은 어떤 번역본이 정본일까 찾아보니 아무래도 이윤기 번역본을 고를 수 밖에 없는데, <벌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창해, 2009)가 개정판까지 나와 있다. 거기에 성인용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건 혜원출판사판. 어떤 경쟁력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안 그래도 최근에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으로 구입한 책은 필립 마티작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리스 로마 신화>(뮤진트리, 2015)였다. "고대 로마사에 정통한 저자는 3,000여 년 동안 꾸준히 읽혀온 신화를 왜 읽어야 하는지, 고대 그리스나 로마인들의 인간관과 우주관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이해하기 쉽게 짧은 해설을 덧붙여 설명한다." 흔한 제목의 책이긴 한데, 저자가 <로마 공화정>(갑인공방, 2004)의 저자여서 믿음이 갔다. <로마 공화정>도 같이 구입한 책이긴 하지만, 그 정도 책을 저술한 역량이라면 믿을 만하겠다는 계산에서다.

 

그렇게 저자의 역량만 믿고서 선뜻 원서와 같이 구입한 책이 그레고리 나지의 <고대 그리스의 영웅들>(시그마북스, 2015)이다. '필멸의 인간 영웅 아킬레우스에서 아고라의 지성 소크라테스까지'가 부제인 책인데,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의 그리스 고전 문학 프랜시스 존스 석좌교수이며 비교문학 교수"이다. 가장 권위 있는 학자 가운데 한 명인 듯싶어서 '묻지마 구입'을 단행한 책.

 

 

그러고 보니 그리스 영웅전이라면 플루타르코스의 책도 비껴갈 수 없겠다. 여러 번역본이 있지만 천병희 선생이 옮긴 <그리스를 만든 영웅들>과 <로마가 만든 영웅들>(도서출판숲, 2006)이 짝이다. 학생용으로는 <그리스와 로마의 영웅들>(돋을새김, 2015)이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다. 아무려나 이런 책들은 '신화 사전'이나 '인물 사전'을 겸하는 종류이기에, 서가 한쪽에 나란히 꽂아두면 되겠다. 아주 오랜만에 '그리스 로마 신화' 판본도 업데이트하는 겸...

 

15. 0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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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복종'은 책마을 사람들이라면 기억할 만한 제목인데, 새로운 번역으로 다시 출간됐다. 처음 나온 <자발적 복종>(울력, 2004)이 독어판의 번역이라면, 이번에 나온 <자발적 복종>(생각정원, 2015)은 불어판 원전을 옮긴 것이다. 저자는 16세기 프랑스의 재판관이자 철학자였던 에티엔느 드 라 보에시(처음엔 '보에티'라고 소개됐었는데, '보에시'라고 발음되는 모양이다). 몽테뉴의 절친으로 33살에 요절하면서 모든 원고를 몽테뉴에게 넘겼지만, 몽테뉴는 <자발적 복종>만은 끝내 출간할 수 없었다. 이 '위험한 문건'을 썼을 때 보에시의 나이는 24세였다. 기회가 닿아 미리 읽고 내가 적은 추천사는 이렇다.

 

몽테뉴의 시대는 우리에게 <수상록>만 남겨준 게 아니었다. 몽테뉴가 차마 출간할 수 없었던 라 보에시의 격문 <자발적 복종>은 16세기의 정신이 여전히 우리의 친구라는 걸 말해주는 생생한 사례다.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으며 복종은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무엇이 자유를 가로막는가. 타성적 습관과 자유의 망각이다. 그리고 주입된 공포를 더할 수 있으리라. 라 보에시는 다시금 선택적 상황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자발적 복종인가, 자유인가. ‘이대로!’인가, ‘더 이상 이대로는 지속될 수 없다!’인가. 자유에 대한 두려움의 주술에서 벗어날 때다. 

 

생각난 김에 적자면, 몽테뉴와 그의 시대에 관한 가장 자세한 기록인 홋타 요시에의 <위대한 교양인 몽테뉴>(한길사, 2005)도 다시 나오면 좋겠다. 현재는 절판된 상태. 보에시와 몽테뉴의 우정에 관해서도 읽어볼 수 있을 듯한데, 나로선 이 책을 찾는 것도 당장은 일이다.

 

 

더불어, <자발적 불복종>과 짝이 될 만한 책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데, 바로 19세기 미국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소로)의 <시민의 불복종>이다. "<시민의 불복종>은 멕시코 전쟁과 노예제도에 반대해 인두세 납부를 거부한 소로우가 옥고를 치룬 후 써내려간 짧은 '감옥기'이자 인간이 자유로운 주체로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정부에 대한 자유로운 개인, 시민의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글이다."

 

16세기 프랑스인과 19세기 미국인이 던진 물음에 21세기 한국인이 답할 차례다...

 

15. 02.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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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자크 루소의 <고백>(책세상, 2015)과 존 로크의 <인간지성론>(한길사, 2015)의 새 번역본이 나왔기에 '이주의 고전'으로 고른다. 루소의 <고백>은 <고백록> 혹은 <참회록>으로도 번역돼 있다. 최소한 댓 종의 번역본은 나와 있는 책.

 

 

책세상판은 '루소전집'의 1권으로 나온 것이기에 의미가 깊다(언제쯤 완간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어떤 책인가.

혁명적 사상가 루소의 빛과 어둠을 모두 담은 적나라한 자화상. <고백 1>은 그중 첫 번째 작품으로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다. 전체 2부 12권으로 구성되었으며(1, 2부를 각각 <고백 1>, <고백 2>로 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계수리공의 아들로 태어난 1712년부터 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제안을 받아들여 영국 우턴으로 망명을 떠나기 전인 1765년까지 일어난 일들을 다루었다. 루소가 스스로 자기 삶의 주요 사건들을 기억에 의존하여, 혹은 서간 자료를 제시해가며 기록한<고백>은 그의 성격과 가치관을 형성시킨 배경과 경험, 인간관계, 주요 저작의 집필 동기와 출간 과정, 그 저작들이 당대에 불러일으킨 반향 등을 상세히 전하고 있어 루소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 역할을 한다.

거기에 더하여 <고백>은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한다>,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과 함께 자전 3부작을 구성한다.

당대 학자들과의 불화와 세간의 갖은 오해에 억울한 마음을 품고 자기 자신을 변호하고자 끊임없이 시도했던 루소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회상록 형식으로 집필한 <고백>, 여전히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심판대에 세워 가상의 대담집 형태로 쓴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 ― 대화>, 다소 평온해진 마음으로 자신을 담담히 성찰하며 쓴 일기 형태의 미완성 유고작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이렇게 세 편의 자전적 작품을 펴냈다.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는 책세상판 번역이 유일하고, 반대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은 루소의 저작 중 아마도 가장 많이 번역된 책이 아닌가 싶다(적은 분량이 중요한 이유일 듯싶다). 새 번역 <고백>이 나온 김에 자전 3부작도 연이어 읽어볼 만하다. 이 정도만 해도 꽤 만만찮은 견적이 나오겠지만...

 

 

루소보다 80년 앞서 태어나 17세기 사상가이자 철학자로 분류되는 존 로크의 대표작 <인간지성론> 번역도 의의를 인정해줄 만하다. <인간오성론>으로도 번역되던 이 책은 그간에 동서문화사판 정도가 있었을 뿐이다(데이비드 흄과 로크 같은 영국 경험론자의 'understanding' 개념을 어떻게 옮기느냐는 문제는 좀 까다로운데, '오성''이해력''지성'으로 번역되고 있다. 아직 용어상의 통일은 이루어지지 않은 듯싶다).  

존 로크는 17~18세기 영국경험론의 대표적인 철학자다. 정치·사상적으로 혼돈과 변혁의 시대인 근대 초기에 살면서 근대정신의 토대를 정초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남긴 업적은 오늘날에도 철학뿐만 아니라, 정치학·심리학·교육학·신학 등 여러 학문 분야에서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사회·정치사상은 미국의 독립선언서와 프랑스 혁명정신에 깊은 영향을 주었으며, 오늘날 자유 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했다. <인간지성론>은 로크의 대표적인 저작이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도덕성과 계시종교”에 관해 토론하던 중 과연 인간의 지성이 그런 주제를 다루는데 적합한지 의문을 느낀 로크는 이후 20여 년동안 인간지성의 문제에 천착한다. 그만큼 <인간지성론>은 로크 사상의 정수라 할 수 있다

 

 

그간에 로크의 책은 <통치론>과 <시민정부> 같은 정치철학서들이 주로 읽혀왔고, <교육론>이나 <관용론> 등이 곁들여지는 정도였다. <인간지성론>이 더해짐으로써 '로크 읽기'도 묵직해졌다...

 

15. 0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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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배송받은 책 가운데 하나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이제이북스, 2014)이다.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의 하나로, 드디어 나온 것인데, 번역은 <향연>을 옮긴 강철웅 교수가 맡았다. 뒷표지를 보니 현재 이 전집은 18권이 출간됐으니 종수로는 2/3를 훌쩍 넘겼지만 대작 <국가>와 <법률>이 미간이어서 분량으로는 아직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 특히 <국가> 번역은, 만약 나온다면 원전 번역으로는 세번째 번역판이 될 텐데 사뭇 기대가 된다(공역으로 나온다고 들었는데, 상당히 뜸을 들이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변명>이란 제목이다. 일반 독자들에겐 더 친숙한 제목이지만 박종현 교수나 천병희 교수의 원전 번역판에서 <변론>이라고 옮기면서 대략 <변론>으로 굳어져 가는 모양새였다. 그런데 정암학당 전집판에서 다시 <변명>이라고 옮김으로써 '도루묵'이 돼 버렸다. 상당수 고전학 전공자들이 포진해 있는 정암학당 쪽에서 <변명>의 손을 들어준 셈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에 대한 간략한 해명은 이렇다.

소크라테스는 단순히 고발된 혐의 내용에 반박을 가해 무죄 판결을 받아내려 '변론'하는 것이 아니라, 고발이 함축하는 바 자기 삶 전체를 향한 물음과 도전에 대해 '항변'한다. 소크라테스로 대변되는 삶의 방식, 그러니끼 철학과 철학적 삶 자체에 대한 '변명'인 셈이다.

 

<변명> 대신에 <변론>으로 옮긴 번역판들이 나오면서 관련 인문서들도 <변론>으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젠 다시 <변명>이 더 나은 제목이라고 하니(구관이 명관?) 좀 멋쩍어졌다. 당장 가장 최근에 나온 <이럴 때 소크라테스라면>(원더박스, 2014)에서도 <변론>이라고 옮기고 있는 터이다. 그렇다고 <변론>이라고 나온 번역판들도 무시할 수 없으니 <젊은 베르터의 고뇌>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경우처럼 상당 기간은 병용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싶다(<변명>의 사례를 참고하자면 우리는 언제 다시 <고뇌>를 떨치고 <슬픔>으로 되돌아갈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려나 <변명>은 플라톤의 대화편 가운데 가장 읽기 쉬우면서도 흥미로운 대화편에 속한다. 더불어 가장 많이 읽히는 대화편 가운데 하나다(솔직히 아무리 유명하다 해도 <국가>를 읽은 독자가 많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역자도 추천하고 있지만 배터니 휴즈의 <아테네의 변명>(옥당, 2012), 폴 우드러프의 <최초의 민주주의>(돌베개, 2012)와 같이 읽으면, 훨씬 더 깊이 읽을 수 있다. 사실 상세한 주석을 자랑하는 전집판 <변명> 자체가 전공자나 '깊이 읽기'를 원하는 독자를 배려한 판본이다...

 

14.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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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주 전쯤 나온 책 가운데 '이주의 고전'을 골라놓는다. 하이네의 시집 <독일. 어느 겨울동화>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합본한 <독일. 어느 겨울동화/공산당선언>(연암서가, 2014)이다. 각각 번역본들이 여러 종 나와 있지만 합본한 형태로 '시와 사상의 만남'을 부제로 달고 나오니 또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독일. 어느 겨울동화>는 창비판(1994)으로 나왔던 번역판이 다시 나온 것이며, 그 사이에 시공사판(2011)이 더해졌다. 개인적으로는 하이네 평전이 궁금했는데, 오한진 교수의 <아픔의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지학사, 2014)가 알게 모르게 나와 있었다. 그럼 하이네의 시와 마르크스의 사상은 어떻게 상통하는가.

하이네와 그의 친구 마르크스는 서로의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공산당 선언>과 <독일. 어느 겨울 동화> 둘 다 봉건 타파, 속물 부르주아 비판, 혁명의 필요성, 종교의 거부에 공감하고 있다. <독일. 어느 겨울 동화>가 독일의 봉건 영주, 물질주의에 경도된 속물 시민을 비판하고 있다면, <공산당 선언>은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위해 부르주아 계급의 타도를 외치고 있다. 그리고 “유령 하나가 유럽에 돌아다니고 있다.”는 <공산당 선언>의 유명한 첫 문장은 <독일. 어느 겨울 동화>에서 화자를 따라다니는 무시무시한 분신을 상기시킨다. 분신은 화자의 사고를 집행하는 행동의 역할을 한다. 화자의 분신은 봉건 군주에게 철퇴를 가하고, 공산주의라는 유령은 부르주아 계급을 깨뜨린다. <독일. 어느 겨울 동화>에서의 화자와 그 분신은 <공산당 선언>에서 공산주의자와 그 분신인 프롤레타리아와 같은 관계이다.

 

<공산당선언>은 대략 네댓 종의 번역본이 많이 읽히는 듯싶은데, 나도 대부분 갖고 있어서 이번에 나온 연암서가판과 비교해보고 싶기도 하다. 물론 연암서가판의 제안은 무엇보다도 하이네의 시를 배경으로 읽어달라는 것이고. 생각해보면 <한국. 어느 겨울동화>도 충분히 쓰임직하다. 일례로 독일연방헌법재판소의 전례를 등에 업고 과감하게 정당해산 판결을 내린 헌법재판소를 가진 나라가 한국이니까...

 

 

14.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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