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여성 작가와 시인의 작품이 나란히 번역돼 나왔다. 영국 작가 도리스 레싱(1919-2013)의 중편집 <그랜드마더스>(예담, 2016)와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23-2012)의 <충분하다>(문학과지성사, 2016). 생몰연대를 적고 보니 거의 같은 시대를 살았다.

 

 

먼저 레싱의 만년작 <그랜드마더스>(2003). "표제작 '그랜드마더스'를 포함하여 모두 네 편의 중편소설이 담겨 있다. 강렬한 현실 인식과 타고난 반골 기질로 계층과 세대, 인종과 성(性), 개인과 가족과 사회 문제를 가장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레싱은 이 이야기들을 통해 달콤한 사랑과 쌉싸름한 인생의 아이러니를 포착했다."

 

레싱은 인터뷰에서 "이 책을 집필하는 동안 이야기를 쓰는 기쁨에 흠뻑 빠졌다"고 하면서 "이 책의 순수한 스토리텔링은 이전 작품과 비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다. 레싱의 인터뷰로는 <그랜드마더스> 이전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작가란 무엇인가2>에 실린 것도 참고할 수 있다. '레싱 입문' 격으로 읽어볼 만하다.  

 

 

레싱의 작품으로는 <풀잎은 노래한다>와 <다섯째 아이>를 강의에서 다룬 바 있다. <마사 퀘스트>와 조만간 다시 번역돼 나온다는 대표작 <황금노트북>도 언젠가는 다뤄보고 싶다.  

 

 

최근 20년간 노벨상 수상 시인들 가운데는 드물게도 국내에서 계속 읽히는 듯싶은 시인이 96년 수상자인 쉼보르스카인데(국내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고 이미 생전에 세계적인 찬사를 얻은 시인이다), 이번에 나온 <충분하다>는 유고시집이다. <끝과 시작>(문학과지성사, 2007)과 함께 대표 시집으로 자리하겠다.

"존재의 본질을 향한 '열린 시선'을 고수하며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에서 삶의 비범한 지혜를 캐내는 '시단(詩壇)의 모차르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199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했고, 한국에서도 시선집 <끝과 시작>으로 약 10년 동안 많은 사랑을 받은 폴란드의 국민 작가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유고 시집. 한국어판 <충분하다>는 쉼보르스카가 생전에 출간한 마지막 시집 <여기>와 사후에 출간된 <충분하다> 전체를 묶은 책이다."

 

영역 시집도 번역본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날 수 없지만, 산문집과 함께 구해보고 싶다. 쉼보르스카의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은 <아버지의 가방>(문학동네, 2009)에 수록돼 있다...

 

16. 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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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에 나가지 않아서 날씨가 어떤지도 모르겠지만 방에서 느끼기엔 여전히 겨울이다. 방바닥이 차서 양말을 신고 오전에 덥석 집어든 파리 리뷰 인터뷰집 <작가란 무엇인가>에서 수전 손택 인터뷰를 좀더 보다가 책상 가까이에 있는 은은한 표지에 눈길이 갔다. 고형렬 시인의 '연어 이야기', <은빛 물고기>(최측의농간, 2016)다.

 

 

통상 '연어 이야기'라면 안도현 시인의 <연어>를 떠올리게 되지만, 고형렬 시인의 연어 이야기도 숨어 있었다, 는 걸 알았다. 최측의농간판으로('최측의농간'이란 출판사명의 뜻은 오리무중이다) 나온 게 세번째다. 알라딘에서도 아직 표지를 구경할 수 있는데, 1999년에 한울판으로 처음 나왔고, 2003년에는 바다출판사판으로 나왔다 절판된 것이 이번에 다시 나왔다.  

"우리에게 장자의 시인으로 잘 알려진 고형렬 시인은 장장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어에 관한 이 장엄한 기록을 완성했다. 그는 느린 호흡으로 연어의 삶을 추적하여 연어의 삶의 과정을 밀도 높게 탐구했지만 그것에만 그치지는 않았다. 그는 단순한 탐구를 넘어 연어와 연어의 일생과 연어의 일생을 가능케 하는 자연, 그 자연에 보시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연어의 최후, 그 모든 스스로 그러함의 고리가 얼마나 잔혹하면서도 숭고한지 기록하였고 그의 기록은 오랜 시간 동안 깎이고 스러지다 살려지는 과정을 통해 높은 수준의 경지에 도달하여 우리 곁에 도착했다."

이 '도착'에 대해서 작가 김훈이 붙인 추천사는 이렇다.  

"저절로 되어지는 것들은 무섭다. 한줄기 조국 하천의 모성은 태평양을 건너간 내 자식들을 기어이 불러들여서 그 물냄새 속에서 죽고 또 태어나게 한다. 연어들은 그 하천의 모성에 투항하고 귀순한다. 과학의 지식을 녹여내고 또 넘어서서, 운명에 투항함으로써 운명을 완성하는 업業의 두려움과 아름다움, 그 허무와 환희를 말할 때 고형렬의 글은 비통한 아름다움에 도달한다."

 

'연어 이야기'의 원조라면 아무래도 안도현 시인이라고 해야겠다. 기록적인 베스트셀러 <연어>(문학동네, 1996)가 먼저 나왔으니까. 지금은 <연어 이야기>(문학동네, 2010)까지 더 얹어서 한국문학전집에도 안도현의 동화로 포함되었다. <연어, 연어 이야기>(문학동네, 2014). 이러다 안도현 시인은 시인보다 <연어>의 작가로 기억되는 게 아닌가 싶다.

 

안도현의 연어 이야기가 동화라면 고형렬의 연어 이야기는 에세이다. 장르상의 차이가 독자들의 반응과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연어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책이다 싶어서 같이 묶는다. 나는 다시 손택의 인터뷰로 넘어가야겠다...

 

16. 0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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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의 독자들에겐 뒤늦은(혹은 때이른) 크리스마스선물 같은 책이 출간되었다(발렌타인 선물이라고 해야 할까). 친딸 카트린 카뮈의 <나눔의 세계: 알베르 카뮈의 여정>(문학동네, 2016)이다. "이 책은 작가이자 고뇌하는 한 인간이었던 알베르 카뮈의 사상이 발전해가며 구체화되는 양상을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카트린 카뮈는 이 책에서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작품활동을 해온 알베르 카뮈의 족적을 더듬으며, 아버지의 창작활동에 영감을 준 원천들을 되짚어본다." 말하자면 딸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사부곡 같은 책이다.

 

 

아마도 같은 책을 옮긴 것으로 추정되는데, 영어판은 <알베르 카뮈: 고독과 연대>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카뮈가 사랑하고 그에게 문학적 영감을 제공한 세계 여러 곳의 풍광, 여행 당시를 기록한 사진, 육필 원고, 서한 등 풍성한 시각 자료뿐만 아니라, 함께 수록된 소설, 에세이, 시평, 연설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통해 독자들은 ‘세계인’ 알베르 카뮈의 삶과 그의 정치적.예술적 신념, 더 나아가 그의 작품세계의 정수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책으로 된 '카뮈 문학관'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독서용이라기보다는 기념용이라고 해야겠고.

 

 

그런 기념품적인 책들이 몇 권 더 있다. 그래픽 노블이나 일러스트판 작품들. <이방인>이나 <최초의 인간> 등이 그런 형태로도 나와 있다. 이미 한번 읽은 독자들을 겨냥한 책들이다.

 

 

한편, 작가로서뿐만 아니라 지식인으로서 카뮈의 여정에 대해 관심 있다면 로버트 자레츠키의 <카뮈, 침묵하지 않는 삶>(필로소픽, 2015)을 참고할 수 있다. 국내 전공자의 책으로는 이기언 교수의 <지성인 알베르 카뮈>(울력, 2015)가 있다. 카뮈의 삶과 문학은 연대기적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더불어 카뮈의 문학적 상상력에 대한 연구로는 김화영 교수의 박사학위논문이기도 한 <문학 상상력의 연구>(문학동네, 1998)도 읽을 거리다. 연구논문은 많이 씌여졌을 텐데, 막상 단행본으로 읽을 만한 책은 아주 드물다는 데 다시 한번 놀란다...

 

16. 0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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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책과삶(186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지난 연말에서 첫 완역본이 나온 루 월리스의 <벤허>(시공사, 2015)에 대한 글을 청탁받고 쓴 것이다. 오늘 신문을 받아 같은 지면에 실린 편집자의 글을 읽어보니 <벤허>가 다시 영화로 만들어져 올 8월에 개봉 예정이라고 하며 그에 맞추어 작가의 손녀가 손질한 개정판도 나온다고 한다. 공들인 번역본이 미리 나오게 된 배경이구나 싶다. 아무튼 서평 때문에 영화 <벤허>도 이번에 다시 보았다. 8월에 개봉된다는 새 영화도 기대된다.  

 

 

책과삶(16년 3월호)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공식의 '복수'

 

사실부터 고백하자면 <벤허>에 대한 나의 기억은 윌리엄 와일러의 영화 속 몇 장면이 전부다. 아마도 어릴 적에 TV에서 보았던 듯한데, 벤허가 갤리선의 노예로 노를 젓는 모습과 전차 경주에서 필사적인 경합 끝에 승리를 거두는 장면만이 <벤허>의 이미지로 남아 있다. 어떻게 해서 노예가 되었는지, 그리고 전차 경주가 끝난 뒤에는 어떤 이야기가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백지상태였던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벤허’가 주인공의 이름이라는 것도 특별히 의식하지 못했다. 하물며 루 월리스의 원작소설을 영화로 옮긴 작품이라는 사실을 어찌 알았으랴.


하지만 <벤허: 그리스도 이야기>의 완역본이 지난해 말에야 나왔으니 나를 포함한 우리의 ‘상식적’ 무지는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다. 설사 영화의 원작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간에는 읽어볼 여건이 안 되었다는 얘기니까. 여하튼 <벤허>는 아주 뒤늦게 우리에게 왔다. 그것도 미더운 번역자의 손을 거쳐서 탄탄한 모양새의 책으로. 더 나아가 ‘우리가 읽기 전에는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말하자면, <벤허>는 이제야 비로소 실재하는 책이 되었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말이다.


<벤허>를 손에 들면서 먼저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먼저 1880년작이라는 사실. 즉 19세기 소설이다. 아카데미상 기록을 갈아치운 1959년 영화의 원작이라고 해서 막연히 그맘때 나온 작품이겠거니 했지만 뜻밖에도 상당히 오래 전 작품이었다. 게다가 ‘미국 대중소설의 금자탑’으로 마거릿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6)가 출간되기 전까지 미국문학사상 최대 베스트셀러였다고 하니 한 번 더 놀란 표정을 지어야 한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그리스도 이야기’가 부제라는 사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을 벤허의 이야기와 병치하고 있는 영화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놀랄 일은 아닌데, 여하튼 나처럼 막연히 ‘벤허 이야기’로만 생각해온 독자에게는 부제가 특이하게 여겨진다.


제목과 부제를 유의해서 읽자면, 작가 월리스는 벤허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회적으로 그리스도 이야기를 다루고자 한 게 아닌가 싶다(교황 레오13세에게 축성까지 받은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최고의 ‘그리스도교 소설’로 꼽힌다). 그럼에도 사실 그리스도가 이 소설에 등장하는 장면은 상당히 적은 편이다. 비록 소설의 시작과 끝이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대부분의 분량은 예루살렘의 유대인 귀족 유다 벤허의 인생 이야기에 할애돼 있다. 당연하게도 이 두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이 작품 읽기의 관건이다. 자연스레 벤허와 그리스도가 만나는 장면이 주목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데, 작가는 단 두 장면만을 배치해놓았다.


먼저 부유한 귀족 벤허가 신임 총독의 거리 행군을 구경하다가 지붕의 기왓장을 떨어뜨리는 실수를 저지르는 바람에 체포돼 이송되던 중 나사렛 마을에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장면. 갈증에 고통 받던 그에게 비슷한 나이의 한 젊은이가 우물에서 길어온 물병을 건넨다. “유다는 물병에 입을 대고 단숨에 물을 들이켰다. 그동안 젊은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유다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다와 예수는 그렇게 처음 만나고 헤어진다. 벤허가 예수를 다시 만나는 것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을 목전에 둔 때이다. 벤허는 막대기에 매단 해면을 포도주에 축여서 이 ‘나사렛 사람’의 입술에 갖다 댄다. 예수는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사이에 놓여야 하는 것은 그의 행적과 말씀이다. 그것을 <벤허>는 특이하게도 벤허의 복수 이야기로 대체했다(복수란 주제는 영화 <벤허>에서 주연을 맡은 찰턴 헤스턴의 눈빛과 함께 더 강렬하게 그려진다). 로마인 메살라의 친구이기도 했지만 벤허는 억울한 죄명을 뒤집어쓰고 재산을 모두 강탈당한 뒤 갤리선의 노예가 된다. 어머니와 누이동생은 지하 감옥에 갇힌다. 복수의 일념으로 그는 지옥 같은 생활을 버텨내고 우연한 기회에 로마인 사령관의 목숨을 구한 덕분에 그의 양자가 된다. 절치부심하던 그가 전차 경기에서 원수인 메살라의 전차를 박살내 마침내 복수하는 것은 영화의 하이라이트이면서 소설에서도 핵심 장면이다(영화에서와 달리 소설에서 교묘한 술수를 쓰는 것은 메살라가 아니라 벤허다). 가족과의 재회와 그리스도교 귀의는 이러한 복수 이후에 이루어진다.


그리스도가 세상을 떠난 뒤 벤허는 자신의 많은 재산을 교회에 기부하고 지하 교회의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그리스도교는 그 넓은 지하 교회에서 로마 황제의 지상 권력을 능가하는 영원한 힘을 이루어냈다.”는 것이 소설의 대미다. 그리스도의 가장 큰 가르침은 사랑이지만, <벤허>는 그 사랑의 전제조건으로 복수를 배치했다. 월리스가 발명해낸 그리스도교의 새로운 공식이자 <벤허>의 성공 비결처럼 여겨진다. 

 

16. 0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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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는 '이주의 저자'를 건너뛰고, 대신 임시방편으로 '이주의 작가'를 두 명 고른다. 이번주에야 이름을 알게 된 작가라서 나에겐 '이주의 작가'다. 1964년 아일랜드 태생의 조지프 오닐과 1985년생으로 2013년 최연소 맨부커상 수상자가 된 엘리너 캐턴, 두 사람이다. 엘리너 캐턴은 마침 수상작 <루미너리스>(다산책방, 2016)가 이번주에 번역돼 나왔으므로 안면을 터둘 만하다. 반면 오닐은 2008년의 화제작 <네덜란드>(올, 2009)가 진즉 소개됐다가 그대로 묻힌 상태다. 나는 최근에 모린 코리건의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책세상, 2016)를 읽다가 이름을 발견하고 비로소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대판 <위대한 개츠비> 소설 가운데 최고다"라는 게 코리건의 평이다. 실제로 평판이 아주 좋은 작품. "2009년 펜포크너 수상작이자 '뉴욕타임스' 선정 2008년 10대 소설, 아마존 선정 2008년 최고의 책인 <네덜란드>는 작가 조지프 오닐이 7년에 걸쳐 완성한 작품이다. 9.11 이후의 뉴욕을 배경으로 네덜란드 출신 애널리스트 한스와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의 이민자 척의 상실과 회복의 이야기를 그린다."

 

 

그럼에도 한국 독자들과 인연이 없었던 것은 번역상에 문제가 있거나 '네덜란드 출신 애널리스트 한스와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의 이민자 척'의 이야기라는 설정이 흥미를 끌지 못해서인 듯하다. 짐작엔 후자일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데, 트리니다드토바고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나이폴의 작품도 거의 읽히지 않기 때문이다(곧 작품성과 무관하게 이 지역 이야기는 대중성이 없다는 것).    

 

그런 면으로 보면 엘리너 캐턴의 <루미너리스>도 전망이 밝아보이지 않는다. '19세기 소설의 살아 있는 패러디'라는 평을 들은 이 소설의 배경이 1860년대 뉴질랜드이기 때문이다.

"1866년, 크게 한몫 잡겠다는 생각으로 금을 찾아 뉴질랜드에 도착한 남자, 무디. 그날 저녁, 그는 황량한 금광 마을 호키티카의 허름한 호텔 흡연실에서 자신도 모르게 12명의 남자로 구성된 비밀 모임에 끼어들게 된다. 실종된 젊은 갑부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창녀, 외딴 오두막에서 살해된 부랑자의 집에서 발견된 어마어마한 양의 금. 삶에서 밀려나 세상의 끝으로 모여든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던 무디는 어느새 인간의 운명과 황금이 별자리처럼 얽혀드는 미스터리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간다. 12개의 별자리를 닮은 12명의 남자와 12개의 진실. 삶의 마지막 희망을 비추는 찰나의 빛과 그 소멸의 이야기."

 

그리고 덧붙이자면 역대 부커상 수상작들의 국내 '흥행성적'이 별로 좋지 않다.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거의 유일한 예외로 보이는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268쪽에 불과한 반면 <루미너리스>는 원저 자체가 832쪽 분량이고, 번역본은 1,2권 합계 1200쪽이 넘는다. <루미너리스>도 <네덜란드>와 비슷한 짝이 될까봐 염려된다는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발벗고 나설 일은 아니다. 다만 영어권의 화제작 두 편인 만큼 읽어봄직하겠다는 것, 그래서 나부터도 번역본과 원서를 모두 구입하려고 한다는 것(<네덜란드>는 이미 구입했다).

 

 

그나저나 영어권 최고 작가의 반열에 든 85년생이면 정말 젊군. 아직 젊음 자체가 한마디 하는 나이 아닌가...

 

16. 0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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