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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미국 작가 제임스 에이지(1909-1955)의 <가족의 죽음>(테오리아, 2015)을 고른다. 1957년, 작가 사후에 출간된 유작이며 1958년 퓰리처상 수상작이다. 상당히 뒤늦게 소개되는 작품인데, '타임'지가 선정한 100대 영문소설에도 포함된 작품이라고 하니까 우리에게 생소한 게 오히려 이상하게 여겨진다. 작가나 작품이나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나만 과문한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작품인가.

 

제임스 에이지가 자신의 아버지를 위해 소설로 쓴 자전적 추도사이다. 에이지의 아버지는 그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다. 그 트라우마적인 사건을 이야기의 뼈대로 삼은 이 책은 한 가족에게 찾아 온 예기치 않은 비극을 가족 구성원 하나하나가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견뎌내는가를 그려 낸 작품이다.

 

작가 제임스 에이지는 영화비평이나 르포르타주 등 다방면으로 활동한 경력이 있는데, 별명이 '문단의 제임스 딘'이었다고 한다(반항의 아이콘?). 작가에 대한 소개는 로버트 콜스의 <하버드 문학 강의>(이순, 2012)에서 읽을 수 있다. <마이클 더다의 고전 읽기의 즐거움>(을유문화사, 2009)에도 제임스 에이지의 <유명한 사람들을 칭송합시다>(혹은 <이제 훌륭한 사람들을 찬양하자>)에 대한 평이 실려 있다. 아마도 제임스 에이지의 대표작 두 편이 아닌가 싶다. 

 

 

이미지를 찾아봤는데, '문단의 제임스 딘'이란 별명이 허황하지만은 않다. 눈매에 반항과 슬픔이 깃들어 있기 때문에. 흠, 이런 표정의 작가라면 작품도 읽고 싶어지는군...

 

15. 0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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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점에서 책을 가장 많이 도둑맞는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책이 하나 더 나왔다. 만년의 일기를 엮은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모멘토, 2015). 그간에 '부코스키'란 이름으로 소개됐는데, 이번 책은 '찰스 부카우스키의 말년 일기'라고 돼 있다. 부코스키면 어떻고 부카우스키면 어떤가, 싶은데, 결과적으론 번거로워졌다. 이런 건 누스바움이냐 너스바움이냐 하는 것처럼 소모적이다. 

 

 

<우체국>과 <여자들>(열린책들, 2012) 이후에(<팩토텀>은 그 전에 출간됐고) 좀 뜸하다가 나온 책인데, 부코스키가 어떤 작가인지 여실히 보여준다.

하드보일드류의 압축된 문체로 술과 도박의 삶, 섹스와 폭력, 세상의 부조리와 어리석음 따위를 가차 없이 그려낸 전설적 작가 찰스 부카우스키(1920~94)가 죽음의 문턱에서 쓴 일기 형식의 에세이집이다. 50년간 애용했던 타이프라이터를 매킨토시 컴퓨터로 바꾸고 그는 죽기 직전까지 글쓰기에 대해, 경마의 효용에 관해, 돈과 인간에 대해, 죽음에 관해, 젠체하는 문인들의 행태와 정체에 대해 성찰했다. 부카우스키의 모든 시와 소설이 자전적이라고는 하지만, 그의 내밀한 생각과 느낌들을 이 일기만큼 오롯이 드러낸 글은 없었다. 그 기록에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의 선구자인 로버트 크럼이 그림을 달았다. 이 책은 두 전설의 공동 작업이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고상한 말년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고 할까.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경마장에 가서 죽치고 있는 자신에 대해 부코스키는 이렇게 말한다. 

난 경마장에 매일 간다. 매일 거기 나타나는 사람은 직원들 빼곤 나밖에 없다. 내게 무슨 병이 있는 모양이다. 사로얀은 경마에 죄다 꼬라박았고, 판테는 포커에, 도스토옙스키는 룰렛에 죄다 꼬라박았다.(...) 난 돈을 좀 더 소중히 여긴다. 거의 평생토록 돈이 너무 없었다. 공원 벤치가 어떤지 집주인의 문 두드리는 소리가 어떤지 난 안다. 돈 문제는 딱 두 가지다. 너무 많거나 너무 없거나.(11쪽)

이런 경력과 심사를 가진 작가에게서 좋은 소리가 나올 리는 만무하다. "작가 치고 다른 작가 작품 좋아하는 사람 별로 없어. 좋아할 경우가 딱 하나 있긴 하지. 그 작가가 막 죽었거나 죽은 지 한참 됐을 경우." 정도의 독설은 예상하고 들어가야 한다. 제목으로 뽑은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는 이런 내력을 갖고 있다.

난 죽음을 왼쪽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때때로 꺼내서 말을 건다. "이봐, 자기, 어찌 지내? 언제 날 데리러 올 거야? 준비하고 있을게."

이 정도면 무더위를 좀 식혀줄 만한 '쿨' 아닌가.

 

 

 

그런 용도로는 <아사디 지로의 처음이자 마지막 인생 상담>(파란미디어, 2015)도 빠지지 않는다. "소설 <철도원>의 작가 아사다 지로가 일본의 <주간 플레이보이>에 연재했던 유쾌하고 발랄한 인생 상담글을 모은 책. AV부터 경마까지, 방사능 오염부터 독도 문제까지 일본 현대 사회를 관통하는 모든 질문에 대해 명쾌하고 거침없는 독설로 상담을 펼쳐보인다."

 

일단 <주간 플레이보이>에 연재했다는 사실에서 질문의 내용과 수준을 가늠해야 한다. <주간 플레이보이>의 편집자인 27세 청년(다로)이 독자 대표로 '61세 영감' 아사다 지로와 대화를 나누는 형식인데, "빈유보다는 역시 거유가 좋을까요?"라는 (수준 이하의) 질문에 대해 지로는 분격해 하며 이렇게 답한다.

"투고자, 당신이 하는 말은 이중으로 이해가 안 가. 먼저 나는 가슴을 안 좋아해. 그리고 이런 '근거 없는 미학'으로 사람을 사랑하지 않아. '거유니까'라는 이유로 고른 여자가 아무리 사악하더라도 가슴만 크면 괜찮다는 각오가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보통 그렇지 않잖아. 알겠나?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삶은 살면 가까운 장래에 반드시 불행해질 거야. 인간의 본질을 제대로 확인하라고. 하아... 그건 그렇고 심하군. 각양각색의 남자가 있지만, 이 놈은 정말 최악이야."(43-44쪽)

물론 좀 진지한 내용의 상담도 있다. 친구가 세상을 떠난 회사원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상담해오자 지로는 이렇게 답한다.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당신 자신, 자기 자신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자각을 하는 거야. 갑자기든 예측했든,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아주 쉽게 죽어. 당신도 예외는 아니야. 친구를 잊으라는 소리는 아니야. 그래도 그에 집착하며 고민에 빠진 상황에서는 빨리 벗어나게. 젊을 때는 역시 어렵겠지. 나이를 먹고 경험이 쌓이면 할 수 있게 돼."(284쪽)

역시 부코스키만큼이나 쿨하다. 두 사람 모두 노년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작가라서 그런 태도를 갖게 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다(둘다 도박광이라는 공통점은 있군). 여하튼 읽어도 좋고 안 읽어도 그만인 책들이지만, 뭔가 청량감을 느끼게 해주어서(읽다가 킥킥거리게도 만들고) 같이 묶어보았다...

 

15. 08.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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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퍼 리 북토크 행사를 한 차례 더 갖는다. 지난번에는 예스24 독자 초대행사였다면 이번에는 알라딘 단독 초대 행사다. 일시는 8월 26일 저녁 7시 30분, 장소는 상수동 이리까페이며,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파수꾼>(열린책들, 2015)의 번역자 공진호 선생과 같이 진행한다(신청은 http://blog.aladin.co.kr/culture/7696643).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 

 

 

15. 0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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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고전'으로 허먼 멜빌의 <피에르, 혹은 모호함>(시공사, 2015)을 고른다. <모비딕>(1851)을 발표한 이듬해에 펴낸 또다른 야심작으로 <모비딕>과 마찬가지로 당대 독자들에게는 인정받지 못했다. 예전에 <모비딕>을 강의하면서 그 전후의 작품이 궁금했는데, 이번에 번역돼 나와서 반갑다. 국내 초역.

 

경험에 입각한 해양 이야기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고딕 소설과 로맨스의 관습에 대한 재해석 위에 프로이트를 앞서 간 개인의 심리 분석이 더해진 <피에르, 혹은 모호함>은 당시 독자들의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어머니, 배다른 누이, 이상적인 여인, 연적과의 전통적인 관계 설정을 모두 흐트러트리고, 이들 관계에 비이상적인 친밀감과 성적 긴장감을 부여하여 모든 것을 소용돌이 안으로 끌어들이는 ‘피에르’의 광풍은 그의 운명이 그 자신에게 그러했듯이 손에 잡히지 않는 모호함이었다. 하지만 이제 20세기의 독자들은 그 안에서 더 많은 것을 이끌어낸다. 20세기의 마지막 해, <퐁네프의 연인><나쁜 피>의 레오 카락스 감독은 이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겼고 이후 지금까지 연극, 뮤지컬 등으로 다양한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보르헤스의 적절한 평가대로 “삶의 불행과 고독을 관통하는 멜빌의 독특한 상상력”, 시대를 앞서간 시도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필경사 바틀비>를 비롯해 멜빌의 중단편들이 계속 번역되는 틈에 <모비딕> 이외의 장편도 한두 편 더 소개된다면 멜빌의 전모에 좀더 다가갈 수 있을 듯하다. 더불어 '멜빌의 모호함'을 좀 덜어볼 수 있을까...

 

15. 07. 31.

 

 

P.S. 참고로 레오 카락스가 <피에르, 혹은 모호함>을 원작으로 하여 만든 영화는 <폴라 X>(1999)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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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의 작가 하퍼 리의 <파수꾼>(열린책들, 2015) 출간 기념 북토크에 참여하게 됐다. 일시는 7월 27일(월) 저녁 7시 30분이며 장소는 CGV 명동역점의 씨네 라이브러리다(http://blog.naver.com/openbooks21/220422939529 참조). 출판사의 제안에 따른 것이지만, 번역자 공진호 선생과의 안면도 작용했다. 자유로운 방담 형식이 될 듯싶은데, 아무래도 내가 주로 질문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길(<앵무새 죽이기>도 재번역돼 열린책들판으로 다시 나왔다).

 

 

15. 0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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