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알라딘의 블로거 베스트셀러 1위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현대문학, 2016)다. 하루키의 독자층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겠다. 에세이도 소설 못지 않은 독자를 거느린 작가인지라 어느 정도 반응을 얻을지 궁금하다(오늘 아침 주간 종합순위 2위다. 한권도 읽어보지 못한 혜민 스님의 책이 1위군).

 

 

다른 주제라면 모를까 매주 네댓 권의 소설에 대해서 강의하는 처지인지라 (소설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바로 손에 들 수밖에 없는 책이다. 게다가 하루키에 대해서도 근년에 여러 차례 강의한 경험이 있어서 내가 읽고 이해한 '소설가 하루키'와 맞춰보는 의미도 있다(이번주에 나온 우치다 타츠루의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바다출판사, 2016)도 그런 용도로 읽을 수 있는 책). 그래서 바로 펼쳐보니 이런 대목이 나온다.

"잘 알려진 사례지만, 1922년에 파리의 어느 디너파티에서 마르셀 프루스트와 제임스 조이스가 동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바로 옆자리에 있었는데도 끝까지 거의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습니다. 주위에서는 20세기를 대표하는 두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마른침을 삼키며 지켜봤지만 완전히 허탕을 쳤습니다. 서로 자부심 같은 게 강했던 것이겠지요. 뭐, 흔한 얘기입니다."

흔한 일이고, 흔한 얘기지만, '아무말 않고 앉아있기'라면 나도 자신있는데, 란 생각은 든다. 이것도 소설가의 자격조건이라면, 이제부터라도 소설을 써볼까란 엉뚱한 생각도 들고. 하지만 그보다 확실한 건 이번 여름에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해 강의한다는 점이다(조이스의 작품으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여러 차례 강의했다). 그 정도 소설을 쓸 게 아니라면 읽고 강의하는 걸로 자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름이 한달밖에 남지 않았으니 슬슬 프루스트 강의도 준비해야겠다. 그의 독서론과 함께 장 이브 타디에의 평전도 사전 독서거리다. 시간을 잃어버릴 준비를 단단히...

 

16. 04.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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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출판문화'(604호)에 실린 '이현우의 책읽는 세상'을 옮겨놓는다. 시의성을 고려하여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의 번역 현황을 짚어보았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에 관한 언급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키스'란 제목으로 쓴 페이퍼의 확장판이다. 이번주에 스티븐 그린블랫의 셰익스피어 평전 <세계를 향한 의지>(민음사, 2016)가 출간됐다는 소식은 전했는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새 번역본으로 <라만차의 비범한 이달고 돈키호테>(펭귄클래식, 2016)도 나왔다. 원제를 제목으로 다 살렸는데, 후발 번역서로서 주목을 좀 해달라는 주문으로 봐야겠다. <햄릿>(문학동네, 2016) 새번역까지가 '400주기'의 수확이다.

 

 

출판문화(16년 4월호) 다시 읽는 셰익스피어

 

발렌타인데이만큼 유명하진 않지만 4월 23일은 ‘세계 책의 날’이다. 역사가 오래되진 않았다. 독서와 출판사업을 장려하기 위해 유네스코가 1995년에 지정한 기념일이고 공식명칭은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이다. 이제 갓 스무 해를 넘긴 세계 책의 날의 역사에서 올해는 특별히 더 기념할 만하다. 대문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의 사망일을 기념하여 4월 23일로 정해졌다는데, 올해가 바로 두 사람이 사망한 지 40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특별히 무슨 행사를 준비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모셔두기만 했던 두 문호의 걸작들을 한번 일독해보는 계기로 삼아도 충분한 기념이 되겠다.


그런 생각으로 셰익스피어의 대표 희곡들과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에 관한 강의를 연중으로 진행하고 있다. 자주 강의해온 작품도 있고 처음 강의하게 된 작품도 있다. 딱히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를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이런 강의를 할 수 있는 건 그만큼 많은 종의 번역본과 참고자료가 나와 있기 때문이다. <돈키호테>만 하더라도 축약된 어린이용 도서만 잔뜩 나와 있고 완역본이 희귀했었지만(김현창 교수의 번역본과 1부만 옮긴 박철 교수의 번역본이 거의 전부였다) 2005년에 민용태 교수의 완역본(창비)이 나온 걸 필두로 하여(2012년에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다시 나왔다) 2014년에는 안영옥 교수의 완역본(열린책들), 그리고 지난해에는 2부까지 마저 옮긴 박철 교수의 완역본(시공사)가 출간돼 완역본끼리의 경합이 가능하게 되었다. <돈키호테>의 1, 2부가 각각 1605년과 1615년에 나온 걸 고려하면, 무려 400년 만에 한국에서도 <돈키호테>에 대한 독서 내지 ‘독서 붐’이 가능해진 셈이다. 


셰익스피어도 비슷한 추세다. 김재남 교수의 최초의 한국어판 셰익스피어 전집은 1964년 셰익스피어 탄생 40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됐었으나 절판된 지 오래인 상태에서 신정옥 교수의 문고본 판형의 전집(전예원)이 유일했었다. 그러다 2008년부터 출간되기 시작한 김정환 시인의 셰익스피어 전집(아침이슬)이 완간을 앞두고 있고,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셰익스피어를 전담해서 번역해온 최종철 교수도 2014년부터 셰익스피어 전집(민음사)을 출간중이다. 개인 번역 전집의 상황이 그렇고, 한국셰익스피어학회에서도 전문 연구자들의 번역판으로 작품총서(동인)를 계속 출간하고 있다. 이제 수년 안으로 네댓 종의 셰익스피어 전집을 우리가 만나볼 수 있을 전망이다. 물론 전집판의 경우가 그렇다는 얘기이고, 4대 비극 같은 주요 작품들에 한정하면 독자의 선택지는 훨씬 더 넓어진다.  

 


셰익스피어 강의는 어떻게 구성할 수 있을까. 한 차례의 강의라면 단연 <햄릿>을 다룰 가능성이 높다. 조금 여유가 있다면 4주짜리 강의로 그의 4대 비극을 읽게 된다. 조금 애매한 경우가 5주 강의를 맡았을 때인데, 나의 선택은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4대 비극만큼 유명해서다(<로미오와 줄리엣>을 포함하여 ‘5대 비극’으로 묶은 작품집도 있다). 그 <로미오와 줄리엣> 번역본에 대한 얘기를 잠깐 적는다. 몇 차례 강의를 진행하면서 느낀 것인데, 특이하게도 작품의 명성에 비해 생각만큼 번역본이 많지는 않다. 어린이용이나 청소년판으로 나온 걸 제외하고 하는 말이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것은 최종철판(민음사)이고, 김정환판(아침이슬)과 김재남판(해누리) 등을 곁들인다.


민음사판을 강의에서 자주 이용하는 건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가장 많이 읽히는 판본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반 독자가 셰익스피어를 처음 읽으면서 손에 들 만한 번역본인가에 대해서는 좀 의구심이 든다. 역자가 운문 번역을 표방하면서 시 형식을 맞추는 데 너무 욕심을 내다보니까 의미가 모호하거나 어색한 부분이 많아서다. <로미오와 줄리엣>에 한정하면, 편집상의 실수도 없지 않다. 가령 <로미오와 줄리엣>의 1막 4장의 첫 대사는 로미오의 대사임에도 민음사판에서는 벤볼리오의 대사로 처리되어 있다. 그렇게 밀리다 보니, 벤볼리오의 대사인 두 번째 대사는 머큐쇼의 대사가 되었다. 이건 판본 문제가 아니라 순수하게 착오다. 같은 출판사에서 새로 나온 전집판(2014)에는 바로 잡혀 있기 때문이다. 또 작품해설에서 "이렇게 붙은 하인들끼리의 시비는 캐풀렛의 조카 벤볼리오의 등장에..."라고 되어 있는 것도 좀 무심한 착오다. 로미오의 친구이기도 한 벤볼리오는 몬터규의 조카이기 때문이다. 두 집안이 원수 사이인 걸 생각하면 좀 짓궂은 오류인데,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이런 오류는 교정을 통해 간단히 해결할 수 있지만, 번역 문제는 좀더 복잡하다. 보통은 정답이 없는 해석상의 문제나 뉘앙스상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로미오와 줄리엣>의 관객들을 설레게 했던 로미오와 줄리엣의 키스 장면을 보자. 셰익스피어의 작품에서 둘의 첫 키스 장면은 1막 5장에 나온다. 로미오가 짝사랑하는 여인 로잘린을 보기 위해 캐풀렛 가의 파티에 몰래 잠입해 들어갔다가 줄리엣에게 한눈에 반해서 수작을 거는 장면이기도 하다. 최종철판의 번역은 이렇다.

 

줄리엣: 성자상은 기도는 허락하나 움직이진 못해요.
로미오: 그렇다면 기도하는 동안에 움직이지 말아요.(그녀에게 키스한다) 이렇게 내 죄는 그대의 입술로 씻겼소.
줄리엣: 그렇다면 내 입술로 죄가 옮겨 왔군요.
로미오: 내 입술에서요? 오, 이 달콤한 범법 재촉! 내 죄를 돌려줘요. (그녀에게 다시 키스한다)
줄리엣: 키스를 배웠군요.

확인이 필요한 대목은 줄리엣의 마지막 대사이다. "키스를 배웠군요."란 번역은 일단 주어가 모호하기에 불친절한 번역이다. 로미오가 연거푸 두 번 키스를 했기에 줄리엣이 로미오에게 키스를 배웠다는 말인지, 키스를 능숙하게 하는 걸로 보아 로미오가 어디선가 키스를 배운 것 같다는 말인지 번역만으로는 알 수 없다. 원문은 'You kiss by the book'이다. 그러니 후자 쪽이고 사실 시제는 과거가 아닌 현재여야 맞다. 그런데 뜻은? 일단 별도의 전집판(민음사)에서 역자는 "책에 적힌 키스네요."라고 수정해서 옮겼다. 말하자면 키스를 책에서 배운 대로 한다는 것이다. 줄리엣이 본 책은 어떤 책들일까? 키스 교본? 혹은 소설?


한데 'by the book'이란 표현은 옥스포드판의 주석에 따를 때 'according to the rules'란 뜻이다. 그리고 그게 좀더 말이 된다. 줄리엣에게 키스하면서 로미오는 두 번 다 어떤 이유를 대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은 속죄의 키스. 다른 한번은 그 죄를 다시 돌려받는 키스. 즉 키스하고 싶어서 키스한 게 아니고 특별한 이유에 따라 키스한 것처럼 둘러댄 것이다(이게 노련함인가?). 이것을 김정환판에서는 "입맞춤마다 이유가 있으시군요."라고 옮겼고, 김재남판은 "당신은 키스에도 이유를 붙이는군요."라고 옮겼다. 둘다 대동소이한데, 최종철판과는 다른 해석이다. 김재남판은 이렇게 옮겼다.

줄리엣: 성자들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아요. 비록 기도를 들어주는 일이 있다고 해도 말이에요.
로미오: 그렇다면 내가 기도의 효험을 받는 동안 움직이지 마세요. 이렇게 당신의 입술로 내 입술에서 죄는 씻어지거든요.(키스한다.)
줄리엣: 그러면 나의 입술이 그 죄를 짊어지게 되요.
로미오: 내 입술에서 죄를 넘겨받는다? 오, 달콤한 질책이여! 나의 죄를 되돌려주세요.(키스한다.)
줄리엣: 당신은 키스에도 이유를 붙이는군요.

훨씬 명료하고 이해하기 쉽다. 대화도 더 자연스럽다(아무리 운율을 맞춘다지만 최종철판의 '범법 재촉!'은 부자연스럽다). 로미오가 줄리엣에게 한 키스는 책에서 배운 키스가 아니라 이유를 둘러댄 키스다. 두 주인공의 로맨틱한 키스를 기억하는 독자/관객이라면 최소한 이 장면에서 두 사람이 주고받은 대사가 무엇인지는 확인할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이세돌 기사와 인공지능 알파고의 바둑 대국이 국민적 화제가 됐었다. 이세돌 기사가 알파고에게 힘겹게 1승을 거두긴 했지만 당초 예상과는 달리 1:4로 패했다. 돌이켜보면 그 1승도 또 다시 가능할까 싶을 정도로 알파고는 막강했다. 바둑의 최고수는 이제 인간이 아니라 알사범(알파고)이라고 해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인공지능이 창조성의 영역으로 성큼 진입해온 셈인데, 그와 맞물려 앞으로 상당수의 직업이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의해 대체될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뒤집어서 말하면, 창조적인 일일수록 로봇이나 인공지능과의 관계에서 인간이 비교우위를 유지할 거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당장 좀더 '수학적인' 작곡 분야에서 컴퓨터가 인간 이상의 실력을 발휘할 날이 곧 오지 않을까. 문학은 어떨까. 인공지능이 쓴 시와 소설을 읽게 될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몇 만권의 시집과 소설을 읽어치운 인공지능을 상상해보라!). 인공지능 대문호의 탄생? 인공지능 셰익스피어? 언젠가는 인공지능 셰익스피어가 쓴 <로미오와 줄리엣>을 읽게 될 날이 언젠가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주인공 로미오는 어떤 이유를 대며 줄리엣에게 키스할지 궁금하다.

 

16. 0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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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400주기'를 맞아 고대했던 책이 드디어 출간됐다. 저명한 셰익스피어 연구자 스티븐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민음사, 2016). 내용을 어림하게 해주는 건 부제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다. 그린블랫의 단행본으로는 <1417년, 근대의 탄생>(까치, 2013)에 이어서 두번째 책이다.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수상 작가이자 셰익스피어와 르네상스 영문학 연구로 정평이 나 있는 스티븐 그린블랫의 대표작. 지난 2005년에 출간된 이 책은 베일에 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일생을 새롭게 조명하며 학계로부터 큰 찬사를 이끌어 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2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9주 동안 이름을 올리는 등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저자 스티븐 그린블랫은 <노튼 영문학 개관>과 <노튼 셰익스피어>의 편집을 주간하며 쌓아 온 자신의 역량을 <세계를 향한 의지>에 불어넣으며, '신역사주의 비평'의 실천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워낙에 명망 있는 학자이고 유명한 책이라 나부터도 수년 전에 책을 구해놓았다(다행히 꽂혀 있는 자리를 알고 있다). 번역본은 성석제,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도 수록하고 있는데, 최근 작품집 개정판을 펴낸 김연수의 추천사는 이렇다.

<세계를 향한 의지>는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쓰기 전에 마주했던 그 불가해하고 모순적인 우주를 흥미롭게 재현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 제도적, 문화적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다. 평전이 실증주의적으로 치밀해질 때 낭만주의적 천재는 피를 흘리며 죽는 게 일반적이지만, 오히려 우리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400여 년 전 온갖 관습과 제약 속에서 살았던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읽힌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작가의 재능이란 어떤 시공간에 속하든 변치 않는 하나의 우주를 볼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셈법으로 <세계를 향한 의지>는 '400주기 관련서'로 제임스 샤피로의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글항아리, 2016)에 뒤이은 두번째 책이다(일본의 셰익스피어 연구자 오다시마 유시의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셰익스피어, 인생의 문장들>이 더 나왔지만 너무 '초급용'이어서 제외하면 그렇다). 물론 성에 차지는 않는다. 다섯 손가락을 채워줄 걸로 기대했지만 몇 권이나 더 나올지 궁금하다. 이번주 토요일이 '세계 책의 날'이자 '400주기'가 되는 날이다...

 

16. 0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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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다와다 요코의 <용의자의 야간열차>(문학동네, 2016)를 고른다. 발견감에 해당하는 것은 작품보다 작가다. 이름으로 일본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일본어와 독일어, 두 언어로 작품을 쓴다는 점이 특이하다. 게다가 독일문단에서 인정받는 작가라면 다시 보게 된다. 실제로 앞서 나온 두 작품은 독어본의 번역이고, 이번에 나온 <용의자의 야간열차>가 일어판의 번역이다(먼저 나온 두 작품 <영혼 없는 작가>와 <목욕탕>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다와다는 한 언어에 익숙해져 거기에 안주하려는 이들에게 제동을 걸고, 낯익은 개념에 새로운 언어를 입혀 낯설게 만들고자 하는 작가다. 그는 두 언어로 글을 쓰면서, 우리가 기정사실이나 확실한 대상이라 믿는 것에 의문부호를 찍고 정체성의 경계를 허물어뜨린다. <용의자의 야간열차>는 다와다 요코의 작품 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소설이다. 소설 속에서 '당신'은 야간열차를 타고 유럽과 아시아로 여행을 떠난다. 이 여행은 시기도 배경도 명확하지 않으며 여행자가 누구인지, 목적지가 어디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그저 시간과 공간의 틀을 넘어 영원히 반복될 뿐이다."    

 

 

1960년생 작가니까 나이로는 50대 중반이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만큼 평판도 국제적인데, 러시아 작가 빅토르 펠레빈은 "다와다의 작품은 충돌하는 언어와 뒤얽힌 도시의 세계를 지나는 극적인 여행과도 같다."고 평했고, 오에 겐자부로는 "자기 소설의 문체를 만들어내고 사용하는 다와다의 기량은 최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얇은 분량이지만 세계문학전집에 실릴 만큼 단단한 작품일 거라는 예감이다. 새로운 작가를 (늦게라도) 알게 돼 반갑다...  

 

16. 0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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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의 사후 100주년이기도 해서 현암사에서 나오는 '나쓰메 소세키 소설 전집'도 완간될 예정이다(6월쭘이라고 한다). 이 전집 완간을 계기로 하반기에 소세키 읽기 강의를 기획하고 있는데, 기획에 참고할 만한 책이 나왔다. 오쿠이즈미 히카루의 <가뿐하게 읽는 나쓰메 소세키>(현암사, 2016)다. 저자는 소세키 연구자나 비평가가 아니라 아쿠타가와상 수상 경력의 작가다. 국내에는 수상작 <돌의 내력>(문학동네, 2007)과 <손가락 없는 환상곡>(시공사, 2011)이 번역돼 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책으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살인사건>이 있는데, 제목만으로도 소세키에 대한 오마주로 쓰인 작품이란 걸 알 수 있다. 그가 소세키 가이드북을 펴낸 배경이기도 하겠다. 실제로 책은 "소세키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쓰였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함께 초기작으로 가장 많이 읽히는 소세키의 작품은 <도련님>이다. 지난주에 소세키에 대한 맛보기 강의로 오랜만에 <도련님>을 한 강의에서 다루었는데, <도련님>의 결말과 관련하여 소세키의 근심을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쿠이즈미의 견해도 다르지 않다. 시코쿠의 시골 중학교에서 한바탕 소동을 일으키고 도쿄로 돌아온 도련님은 하녀이자 보호자인 기요와 함께 살지만 기요가 곧 폐렴으로 죽는다. 작품의 결미는 이렇다.

죽기 전날 기요는 나를 불러 말했다.

"도련님, 제가 죽거든 제발 도련님네 묘가 있는 절에 묻어주세요. 무덤 속에서 도련님이 오시는 걸 기다리고 있겠어요."

그래서 기요는 지금 고비나타의 요겐지라는 절에 있다.

이에 대한 오쿠이즈미의 소감. "이렇게 <도련님>은 끝나지만 그 뒤 도련님이 어떻게 될까를 상상해보면 무섭습니다. 그는 너무나 고독하기 때문입니다. 도련님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잘 살아가기 어려울 거라는 걸 작품에서 소세키는 충분히 암시했다.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신하지 않는다면. 그게 말하자면 '도련님의 시대'의 종언이다.  

 

나쓰메 소세키의 전집을 읽고 주요 작품에 대해 강의하면 올해도 저물어 가겠다.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를 다시 읽었다는 것과 함께) 나쓰메 소세키를 읽었다는 게 남겠다...

 

16.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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