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일이자 모처럼 맞는 주중 휴일이다. 할일은 많아도 평소보다 한 시간 더 자고 일어나니 머리도 개운하다. 투표장에 가기에 앞서 '이주의 고전'을 고른다. 새로 번역된, 다시 번역된 셰익스피어다.

 

 

먼저 이경식 서울대 명예교수의 <햄릿>(문학동네, 2016)이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출간됐다. 문학동네판으로는 <템페스트>와 <베니스의 상인>에 이어 셋째 권인데, 모두 이경식 교수의 번역이다. 서울대에서 오랫동안 셰익스피어에 대해 강의한 권위자다.

 

 

전공서적으로 분류될 테지만 <셰익스피어 연구> 나 <셰익스피어 비평사> 등이 학술적 업적에 해당한다. 하지만 일반 독자로서는 새로운 번역으로 만나는 셰익스피어가 의당 더 반가울 터이다.

 

 

 

더불어 시공사판 세계문학전집('세계문학의 숲')의 셰익스피어 4대 비극도 출간됐다. 720쪽 분량의 15000원대 가격이므로 꽤 실속 있는 판본이라고 해야겠다. 시공사판은 '시공 RSC 셰익스피어 선집'으로 나왔던 다섯 권 가운데 <로미오와 줄리엣>을 제외한 네 작품을 한데 묶은 것으로 보인다(분량상 해설은 제외했겠다). RSC는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의 약칭이다.

"시공 RSC 판 <햄릿>은 제1이절판에 근거한 원 공연에 가장 근접한 텍스트로서의 '햄릿' 뿐만 아니라 사실주의적 연기로 호평 받은 16세기의 리처드 버비지로부터 20세기의 로렌스 올리비에와 존 길구드, 보다 최근의 리처드 버튼, 벤 킹슬리, 대니얼 데이루이스, 케네스 브래너, 이선 호크의 '햄릿'에 이르기까지 무대와 스크린을 수놓은 다양한 햄릿들을 한데 보여준다. 또한 RSC의 연출가들이 직접 들려주는 공연 안팎의 햄릿 이야기도 시공 RSC 판만의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이번 봄에 진행하고 있는 셰익스피어 강의는 주로 민음사판을 이용하고 있는데, 가을에는 문학동네판과 시공사판으로 바꿔볼 생각이다. 그밖에 '한국셰익스피어학회 작품총서'로 나오는 셰익스피어 전집도 전체의 절반 가량 나왔고, 나남출판사의 '나남 셰익스피어'도 다섯 권이 출간돼 있다. 다만 4대 비극과 몇몇 대표작 외에는 강의에서 다루게 되지 않아서 나부터도 '전집 읽기'는 미래의 일로 남겨둔다...

 

16. 0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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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위 인문학자이자 비평가 겸 소설가', 프로필의 소개가 그렇다. 대개는 수전 손택을 떠올리지 않을까. 시리 허스트베트다. 바로 입에 익는 이름은 아니다. 여러번 중얼거려야 한다. 그래도 작가의 이미지가 바로 잡히지는 않는다. 하나 더 얹어야 한다. "시 낭송회에서 작가 폴 오스터와 만나 이듬해 결혼해 뉴욕에서 살고 있다." 아하! 이건 시리 허스트베트를 그제서야 알게 됐다는 감탄사가 아니다. 어떤 경로로 소개되었는지 가늠이 된다는 뜻이다. 설사 그런 경로가 아니더라도 '폴 오스터의 아내'는 속지의 광고문구 정도는 된다.

 

 

파파라치가 불을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종의 스타 커플. 그렇더라도 허스트베트를 내가 알게 된 건 얼마 되지 않는다. 가장 먼저 소개된 <사각형의 신비>(뮤진트리, 2012)를 구입한 게 작년 여름인 걸 보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손에만 들었을 뿐 읽지 않아서(이후엔 또 어디에 두었는지?) 대면했다기보다는 스쳐지나갔다고 해야 맞다. 그러곤 지난 달이다.

 

 

릭 게코스키의 고급한 에세이 <게고스키의 독서편력>(뮤진트리, 2016)이 다시 나와서(품절됐던가?) 손에 들었다가 뒷표지에서 시리 허스트베트의 출간 목록을 보게 되었다. 그러고는 별다른 사전 정보 없이, 폴 오스터의 아내라는 사실도 모르고, 몇 권을 원서와 함께 주문했다(원서가 비싸지 않은 건 제법 독자가 있는 저자란 뜻도 된다). 에세이 <살다, 생각하다, 바라보다>(뮤진트리, 2014)를 며칠 전에 받았고, <불타는 세계>(뮤진트리, 2016)는 어제 받았다. 이 책들의 원서도 엊그제인가.

 

 

다시 한번 혼자 놀란 건 <불타는 세계>가 소설이라는 점. 그럼 뭔줄 알고 주문했단 말인가? <사각형의 신비>나 <살다, 생각하다, 바라보다>가 에세이여서 막연히 그런 줄 알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도. 실제로 <불타는 세계>는 '소설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책이라는 게 책소개다. 그리고 그게 마음에 들었다. 원저까지 구한 건 나대로의 안목이라면서 혼자 부듯해하고. 게다가 더 흡족한 건 국내에선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라는 점. 폴 오스터 독자의 절반의 절반도 안될 듯싶은 소수의 독자가 그녀의 독자다. 시리 허스트베트라는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우리끼리 말하자면 이건 흔한 일이 아니다.   

 

책머리에 붙은 '작품 해설'에서 역자는 이런 소감을 적었다. "번역을 하다보면 아주 가끔은, 허스트베트의 전작 <내가 사랑했던 것>과 이번에 출간되는 <불타는 세계>처럼, 독자들의 지성과 독서 행위에 대한 헌신을 철저히 믿고 지적으로 훈련된 독자들이 투입하는 노력에 감동적으로 보답하는 책들을 만날 때가 있다." 무슨 속뜻이냐면, 이 책은 매우 지적이어서 당신이 읽어내기 힘들지 모르지만(아니 필히 그럴테지만) 그래도 읽어낸다면 독서에 기울인 노력 만큼의 감동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얘기다. 이 또한 만족스럽다. 허스트베트란 작가가 뜰 일은 없다는 얘기니까(영미에서는 사정이 다를까?). 그러니까 시리 허스트베트는 우리끼리 읽는 작가이고, 내내 우리끼리만 읽는 작가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그녀의 전작 <내가 사랑했던 것>(뮤진트리, 2013)을 미처 구입하지 않은 게 후회됐다. 나름 계산은 <불타는 세계>를 먼저 읽어보고 판단하자는 것이었는데, 첫 장을 넘기기도 전에 판단이 종료되어서다. '시리 허스트베트의 모든 책'이라고. 한가지 아쉬운 건 한국어판의 표지들이다. 어쩌면 그렇게, 눈에 안 띄기로 작정한 표지들인지! <내가 사랑했던 것>과 <남자 없는 여름>만 보아도 그렇다. 원서 표지가 부담스러웠던 것일까? 혹은 이 작가를 절대 띄우지 말아야겠다는 편집자의 속내가 반영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만 사랑하는 작가로 남겨두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무의식적으로) 개입한 것인지도.

 

작가는 1955년생이다. 요즘은 나이 인플레를 고려해야 하지만, 그래도 환갑을 넘긴 나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만난 지 얼마 안된 사이니 좀 젊은 시절의 이미지로 시작해보기로 하자.  

 

 

여기, 시리 허스트베트의 유혹적인 세계가 있다...

 

16. 04. 02.

 

P.S. 아침에 페터 바이스의 <저항의 미학>(문학과지성사, 2016)에 대해 적은 페이퍼를 날려먹었다(로그아웃되는 바람에). 다시 적을 기력이 없어서, 허스트베트 이야기로 건너뛴다. '저항의 미학에서 불타는 세계로'가 오늘의 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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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하던 책 가운데 하나가 나왔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해설서. <돈키호테>(열린책들, 2014) 완역본을 새로 출간했던 안영옥 교수가 그 해설서로 <돈키호테를 읽다>(열린책들, 2016)를 펴냈다. 소개는 이렇다.

 

"완역본 <돈키호테>의 번역가이자 연구자인 안영옥(고려대학교 스페인어문학과) 교수가 쓴 가장 종합적인 <돈키호테> 해설서이다. 2014년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저자의 완역본 <돈키호테>(전2권)는 현지답사와 충실한 번역과 각주, 참신한 문장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고, 국내 번역된 <돈키호테> 가운데 가장 많이 애독되고 있다. <돈키호테를 읽다>는 <돈키호테> 완역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저술로, 번역하면서 달은 840개의 각주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돈키호테>의 숨은 메시지를 모두 담았다."

확인해보니 알라딘에서도 판매지수가 가장 높은 번역본이 열린책들판이다(시공사판과 창비판이 뒤를 잇고 있다). 어느덧 대표 판본이 되었다고 할까. 나로선 예전에 창비판으로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이번 해설서를 길잡이 삼아서 열린책들판으로도 강의를 해보고 싶다(기회가 없지는 않아서 세르반테스 서거 400주년도 기념할 겸 올해 몇 곳에서 <돈키호테> 강의 일정을 잡아놓았다. 주로 <아주 사적인 독서>의 돈키호테 꼭지를 강의자료로 쓴다). 셰익스피어 강의와 함께 올해의 과제 중 하나다.

 

 

그간에 <돈키호테> 독서에 참고할 만한 책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귄미선 교수의 <돈키호테>(살림, 2005)가 일종의 가이드북이었고, 민용태 교수의 <돈키호테, 열린소설>(고려대출판부, 2009)도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에 대한 이모저모를 들려주는 책이다. 스페인문학 전공자는 아니지만 박홍규 교수의 <돈키호테처럼 미쳐?>(돋을새김, 2007)도 <돈키호테>에 대한 읽을 만한 독서 기록이다(절판되었다). 그렇더라도 '본격적'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웠는데 <돈키호테를 읽다>가 마침내 그런 갈증을 해소해준다...

 

16. 0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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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서거 400주년을 맞아 관련서들이 여럿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그 첫 주자로 제임스 샤피로의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글항아리, 2016)이 이번주에 나왔다. '셰익스피어 희곡을 두고 벌어진 200년간의 논쟁과 추적'이 부제. "셰익스피어 원저자 논쟁을 정리하는 한편, 셰익스피어가 원저자임을 한층 더 확고히 하는 책"이라는 소개다.

 

 

'원저자 논쟁'의 결정판이란 뜻일까. 그간에 이 주제에 대한 책이 종종 나왔고, 국내서로는 김태원 교수의 <셰익스피어는 가짜인가?>(서강대출판부, 2015)가 제목 그대로, 아주 노골적으로 이 문제를 다룬 바 있다. '음모론 시대의 원저자 논쟁'이 부제다. 더불어 잭 린치의 <셰익스피어는 셰익스피어가 아니다>(추수밭, 2009)도 셰익스피어가 어떻게 해서 천재적인 작가이자 세계적인 대문호로 자리매김되었는가를 추적하는 책. "1616년 셰익스피어의 쓸쓸한 장례식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는 저자는 사후 400년간 그의 작품이 개작되고 이용되는 역사를 매혹적으로 펼쳐 보인다."

 

안 그래도 요즘 셰익스피어 작품들을 강의하면서 관련서들을 모으고 또 열심히 읽고 있는데, 읽을 거리가 추가돼 반갑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부담은 즐거운 부담이라고 해야겠다. 책값까지 덩달아 많이 들어가게 된 건 물론 즐겁다고 할 수 없지만...

 

 

말이 나온 김에 책상맡에 놓은 기본서들 몇 권을 소개한다. <셰익스피어의 책>(지식갤러리, 2015) 말 그대로 '셰익스피어의 모든 것'을 알기 쉽게 정리해놓은 책이다. 셰익스피어의 생애와 작품세계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션 매커보이의 <셰익스피어 깊이 읽기>(작은사람, 2015)는 제목과는 다르게 셰익스피어와 그 작품세계의 '기본' 사항들을 챙겨주는 가이드북이다. 이 정도만 되어도 우리에겐 심층 가이드북으로 읽힐 수 있겠지만. 조금 전문적인 책으로는 존 드라카키스가 엮은 <셰익스피어의 비극>(동인, 2009)이 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대한 여러 문학이론적 접근/독해를 모아놓은 책으로 아마도 관련서 가운데서는 가장 난이도가 높은 책이 아닌가 한다.

 

이밖에도 쌓여 있는 책이 많지만 기회가 닿을 때마다 얘기를 꺼내놓기로 한다. 하긴 오늘만 하더라도 몇 권 또 주문했다. 끝이 없는 셰익스피어 같으니...

 

16. 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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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남미 작가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의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문학동네, 2016)을 고른다. 1973년 콜롬비아 태생 작가의 2011년작. 콜롬비아 작가라면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직계다. "빅토르 위고와 E. M. 포스터, 존 허시 등의 책을 스페인어로 옮긴 번역가이자 기자이기도 한 그는 사회, 역사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담긴 작품들을 흡인력 있게 그려내어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는 소개다.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은 마약과 폭력, 광기와 야만으로 점철된 콜롬비아의 현대사와 그러한 공포의 시대를 살아낸 개인의 운명을 절묘하게 교차시켜 직조한 작품으로, 의문에 휩싸인 한 남자의 죽음과 그의 과거를 되짚어가는 과정을 통해 콜롬비아 암흑기의 잔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평판이 아니더라도, 제목만으로도 관심을 끄는 작품이다. 우리도 이런 소설을 '실감'나게 읽을 수 있는 '추락'을 겪고 있기에. "흥미진진한 이야기 속에 운명과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아낸 작품'(뉴욕타임스)을 비껴가기는 어렵다...

 

16. 03. 04.

 

 

P.S. 추락에 대한 실감을 우리도 겪고 있지 않느냐고 적었는데, 그 실례가 필요하다면 강인규의 <대한민국 몰락사>(오마이북, 2016)를 손에 들 수 있다. 저자의 세번째 책으로 '지옥실험의 기록 2008-2018'이 부제다.

"손쉬운 해고, 공공서비스의 영리화, 추악한 공권력, 치솟은 자살률, 곤두박질친 출산율, 바닥을 기는 행복지수는 '사람'보다 '이윤'과 '경쟁'을 앞세운 한국 사회의 야만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적극적으로 키워왔다는 점에서 이들의 집권 기간을 '대한민국 몰락사'로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의 기간을 잡고, 지나간 8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 다가올 2년을 반드시 '지옥탈출 모색기'로 삼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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