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츠 카프카가 가족 가운데 가장 절친했던 막내 누이 오틀라에게 보낸 엽서와 편지가 다시 나왔다. <그리고 네게 편지를 쓴다>(솔, 2016). '다시' 나왔다고 한 건 <카프카의 엽서>(솔, 2001)란 제목으로 이미 나왔던 책이기 때문이다. 15년만에 표지와 제목을 바꾸어 재간된 것인데, <카프카의 엽서>는 당초 '카프카 전집'(전10권)의 한 권이었다(전집의 마지막 10권이다).

 

 

약간 어색하게도 <카프카의 엽서>는 아직 품절되지 않았다. 절판시켰지만 재고가 좀 남아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포장만 바뀐 동일한 책이 나란히 진열되게 생겼고 모르는 독자라면 서로 다른 책으로 오인할 수도 있겠다.

 

새 장정으로 출간된 것 자체에 시비를 걸 일은 아니나 여전히 미완인 '카프카 전집'에 대해서는 유감의 말을 적지 않을 수 없다. 10권이 최종권이 아니었고, 결국 이 빠진 전집의 모양새로 방치돼 있는 게 소위 '카프카 전집'이다. 애초에 작품전집만을 기획해서 꾸렸다면 사정이 좀 나았을 것이다. 그건 5권으로 완간됐기 때문이다.

 

 

 

그 5권의 전집이란 1권(단편전집), 2권(잠언, 유고집), 그리고 세 권의 미완성 장편소설(<소송><실종자><성>)을 가리킨다. 1권은 <변신>, 2권은 <꿈 같은 삶의 기록>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문제는 편지와 일기를 묶은 이후의 5권이다. 처음에 예고된 전집 목록에 따르면 6권은 카프카의 일기이고, 7-9권이 카프카의 편지, 그리고 마지막 10권이 누이에게 보낸 카프카의 엽서였다. 편지는 분량이 워낙 많아서 세 권으로 분권한 것.

 

 

그런데 실제로 출간된 건 전집 6권으로 나온 <행복한 불행한 이들에게>(솔, 2004), 9권으로 나온 <카프카의 편지>(솔, 2002), 그리고 10권으로 나온 <카프카의 엽서>, 세 권뿐이다. 일기 한 권과 편지 한 권이 빠진 채 전집이 흐지부지되었다. 가제로 보자면 <카프카의 일기>와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가 마저 출간되어야 하지만, 역자나 출판사 쪽에서는 미완으로 남겨놓는 게 더 '카프카적'이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을 다 구입한 독자로서는 분통 터지는 일이지만.

 

 

그나마 밀레나에게 보낸 편지는 <카프카의 편지: 밀레나에게>(지만지, 2014)와 <밀레나에게 보내는 편지>(범우사, 2003), 두 종으로 번역본이 나와 있다. 일기는 <꿈>(워크룸프레스, 2014) 같은 책에 일부 발췌돼 있는 정도.

 

2010년 완간이 예정돼 있었지만 아직도 미완으로 남아있는 '톨스토이 문학전집'(작가정신)처럼 유사한 사례가 좀 더 있다. 그에 비하면 최근에 14권 전집으로 완간된 '나쓰메 소세키 소설전집'(현암사)은 아주 모범적이다. 카프카나 톨스토이 같은 작가도 번듯한 전집으로 읽을 수 없는 상황이 유감스러워 몇 마디 적었다... 

 

16. 07. 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두 권의 앤솔로지 제목이다. '아시아 베스트 컬렉션'으로 나온 <물결의 비밀>(아시아, 2016)은 계간 <아시아>에 10년간 발표된 작품 가운데 12편을 모은 선집이다. '아시아문학선'의 15번째 책이기도 한데, 이 시리즈는 중국문학도 포함하고 있지만 타이완과 베트남, 인도, 아랍 지역의 문학까지 포괄하고 있다.

 

 

작품의 성취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작가/작품이 대다수다. 세계문학 강의를 계속 진행해오고 있는데, 어느 정도 가늠이 되면 이 '아시아 문학선'에서도 문제적인 작품들을 골라 강의에서 다루고 싶다(2-3년쯤 후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아시아문학선'은 <물결의 비밀>을 제외하고 현재까지 13권이 출간돼 있는데(14권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 가운데 인도 뭄바이 출신의 작가 로힌턴 미스트리의 작품이 세 편이다. 지금은 캐나다에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는데, 인도 출신의 살만 루슈디 작품을 오늘도 강의에서 다룬 터라 미스트리의 작품에도 관심이 간다(루슈디는 '세계문학'이고 미스트리는 '아시아문학'인 것인가? 연배는 큰 차이가 나지 않는데, 루슈디가 1947년생, 미스트리가 1952년생이다). 데뷔작 <그토록 먼 여행>부터 <적절한 균형>, <가족 문제>까지 가족 삼부작이 모두 번역돼 있다.

 

 

또 다른 앤솔로지는 현역 영미 작가들의 단편집이다. 23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편집은 제이디 스미스가 맡았다. 

"우리 시대 대표적인 영미 작가 23인이 한데 모여 획기적인 단편집 프로젝트를 벌였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의 조너선 사프란 포어,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데이비드 미첼, 영국 최고의 이야기꾼 닉 혼비, 영화 [미 앤 유 앤 에브리원]의 감독이자 전방위 예술가인 미란다 줄라이, <브루클린>의 콜럼 토빈 등이 개성 넘치는 단편을 썼다. 미국을 대표하는 두 만화가 대니얼 클로즈와 크리스 웨어가 그래픽 노블을 선보였고, 데뷔작 <하얀 이빨>로 전 세계 문단의 주목을 받은 작가 제이디 스미스가 편집자로 나섰다."

엄밀한 구획은 아니지만 여하튼 지역적으로 '아시아문학'과 '영미문학'의 현단계를 보여주는 단편집들로 읽어봐도 좋겠다. 제이디 스미스의 <하얀 이빨>은 명성이 자자해서 구입은 해놓았는데, 언제쯤 읽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살만 루슈디는 이렇게 평했다. "놀랍도록 보증할 만한 데뷔작이다. 재미있고 진지하며 표현에는 진정한 작가적 특색이 담겨 있다. 나는 너무나 즐겁게 <하얀 이빨>을 읽었고 여러 번 감동받았다. 이 소설에는 통렬함이 있다." 제이디 스미스는 '새로운 살만 루슈디'로도 불린다는데, 어떤 근거에서일까 궁금하다...

 

16. 07. 0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슷한 의미로 보이는데, 제목이 다르니 또 '그런가?' 싶은 책들이다. '삶의 의미(Meaning of Life)' 시리즈로 나온 존 메설리의 <인생의 모든 의미>(필로소픽, 2016)와 우에다 노리유키의 <살아가는 의미>(일토, 2016).

 

 

'삶의 의미' 시리즈는 <빅 퀘스천>과 <카뮈, 침묵하지 않는 삶>, 두 권에 대한 해제를 쓴 인연으로 내게는 친숙하다. 이번에 나온 존 메설리의 책이 가장 두꺼운 듯싶은데, 그게 제목에도 반영돼 있어서 그냥 <인생의 의미>가 아니라 <인생의 모든 의미>다. 부제도 '삶의 의미에 대한 101가지 시선들'이고. "우리 시대의 주요 철학자, 과학자, 문필가, 신학자들이 삶의 의미에 관하여 쓴 100여 가지의 이론과 성찰들을 체계적으로 분류, 요약, 정리한 책이다." 말하자면 '삶의 의미'라는 주제 사전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다.

 

 

찾아보니 우에다 노리유키는 문화인류학 전공이고, 이미 두 권의 책이 소개된 저자다. <종교의 위기>(푸른숲, 1999)와 <한달 뒤에 보자>(정신세계사, 2001)가 그것인데, 15년만에 10년 전에 나온 <살아가는 의미>(2005)가 번역돼 나온 특별한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이건 어떤 검색 시스템이 작동하는 걸까?). 앞서 나온 두 책이 모두 절판된 걸 고려하더라도. 국내 출판사들이 일본의 교양서들을 거의 저인망 수준으로 긁어대는 것일까? 

"우리는 살아가는 의미에 대하여 계속 생각하며 살아 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한 성적과 학교, 직장 이름, 연봉과 같은 숫자에서 그 의미를 찾고 있었는지 모른다. 문학인류학자인 저자 우에다 노리유키는 살아가는 의미의 상실을, 거품경제가 붕괴한 후 일본의 사회 상황과 함께 설명한다. 더불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인생을 창조적으로 설계해 갈 수 있는지를 제안하고 있다."  

하긴 거품경제 붕괴 이후 일본의 상황이 지금의 우리와 닮은 꼴이어서 10년 전 일본사회를 진단한 책들이 의미가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찾아보면 이 분야의 책으로 분류할 수 있는 국내서가 없지 않다. 이외수, 하창수의 대화록 <먼지에서 우주까지>(김영사, 2016) 같은 인생론뿐 아니라, 윤대녕의 <칼과 입술>(마음산책, 2016) 같은 '맛 산문집'도 '살아가는 의미'에 해당할 테니까. 부제가 '우리를 살게 하는 맛의 기억 사전'. <어머니의 수저>를 다시 펴낸 것인데, "이 책은 열 가지 맛의 기억 사전 형식을 빌려 우리나라 음식의 기본이라 할 된장, 간장, 고추장, 김치, 장아찌, 젓갈부터 소, 돼지, 닭 그리고 갖가지 생선, 술, 제주도와 섬진강의 먹을거리 등을 정갈하고도 맛깔나게 써내려간 윤대녕 작가만의 풍미 가득한 산문집이다." 하긴 우리말에서 '맛'과 '의미'는 동의어이므로 <인생의 의미>란 <인생의 맛>이로군...

 

16. 07. 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목이 특이해서 한번 더 보게 되는 주디스 화이트의 소설 <오리의 신비로운 언어학 이론>(현대문학, 2016)을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그렇다고 특이한 제목이 '발견감'이라는 애기는 아니다. 내가 오리 애호가여서도 아니고(오리 고기를 먹은 지 오래 됐다). 눈길이 간 것은 어머니의 죽음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는 점.

 

"어머니를 여의고 실의에 빠진 50대 중년 여성 해나가 새끼 오리를 돌보게 되면서 겪는 내면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치유의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화이트는 한 인터뷰에서 실제로 파킨슨병을 앓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머스커비 오리를 돌보며 슬픔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전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어머니의 죽음을 맞은 중년 여성의 심리를 실감 나게 묘사하고,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삶을 돌아보고 가족 관계를 재정립하는 과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주디스 화이트는 뉴질랜드 작가로 1948년생이다. 좀 뒤늦게 한국 독자들과 만나는 셈이랄까. 첫 단편집은 1991년에 발표했고, 1999년에야 첫 장편 <꿈꾸는 밤을 가로질러>를 발표했다니까 다작의 작가는 아니다. 게다가 14년만에 발표한 게 두번째 장편 <오리의 신비로운 언어학 이론>(2013)이란다.  

 

자연스레 떠올리게 되는 책은 헬렌 맥도널드의 <메이블 이야기>(판미동, 2015)다.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이긴 하지만, "야생 참매 메이블을 길들이며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견뎌 나가는 과정을 정직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그려 낸" 책이란 점에서 어머니를 잃고 오리를 돌보며 슬픔을 이겨내는 이야기라는 주디스 화이트의 소설과 비교된다. 사실 원저를 기준으로 하면 <메이블 이야기>(2014)보다 <오리의 신비로운 언어학 이론>이 한 해 먼저 나온 책이므로 연상의 순서가 반대이긴 하지만.

 

 

사실 아버지나 어머니 등 가족의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막상 떠올리자니 몇 권 되지 않는데, 데이비드 밴의 <자살의 전설>(아르테, 2014)과 제임스 에이지의 <가족의 죽음>(테오리아, 2015) 등이 생각난다. 그렇다고 이 작품들을 완독한 건 아니어서 더 자세한 비교 품평은 곁들이지 못하겠다. 하지만 이런 주제의 작품이 더 쌓이게 되면 따로 모아 강의에서 다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반화하자면, 가족의 상실을 다루는 소설들(혹은 논픽션들)...

 

16. 07. 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온통 책으로 둘러싸인 서재에서 가장 속 터지는 일은('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적으려다가 '속 터지는 일'이라고 적는다. '짜증나는 일'이라고 하는 게 나을지도) 필요한 책을 제때 찾지 못하는 것이다. 불행하면서도 다행한 일은 이제 익숙한 일이라는 것. 매주 한두 권씩은 꼭 필요하지만 찾지 못하곤 한다. 강의에서 다룰 책까지도 그렇다. 갑작스레 찾으려고 하면 더더욱. 우치다 타츠루의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법>(북뱅, 2016)을 펴들었다가 그의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바다출판사, 2016)에까지 관심이 미쳐서 찾았지만 역시나 보이지 않는다. 방안 어딘가에 있다는 것만 알 뿐이다.

 

 

그렇게 갑자기 관심이 뻗친 것은 하루키의 <1Q84>에 대한 우치다 타츠루의 간단한 해명을 읽었기 때문. 제목이 ''아버지'를 벗어나는 방향'이다. 이때 '아버지'가 생물학적 아버지를 넘어서 '세계를 담보하는 자'를 뜻하기에 따옴표가 붙었다. 종교에서는 '신'이라고 부르고, 정신분석에서는 '대타자'라고도 부르는 것. 하루키는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무라마키 월드에는 한 가지 이야기의 원형이 숨어 있다. 그것은 '우주론적으로 사악한 것'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보초' 역할을 맡은 주인공들이 팀을 짜서 막아내는 신화적인 서사 형태다.(...) <1Q84>에는 '사악한 것'에 '리틀 피플'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것과 맞붙는 싸움은 현실의 1984와는 다른 '1Q84년'이라는 신화적인 투기장에서 벌어진다." 

명쾌하다. 하루키의 <1Q84>는 언젠가 읽다가 (재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시간이 없어서) 덮은 적이 있는데, <1Q84>뿐 아니라 하루키 문학 전체를 바라볼 수 있는 틀을 저자는 잘 지적하고 있다(나도 주로 '아버지'와의 관계라는 틀로 하루키에 대한 강의를 하곤 한다). 그래서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를 읽어보려고 찾은 것. 더불어 <사악한 것을 물리치는 법>은 대번에 '읽을 만한 책'으로 승격했다(느낌으론 그의 '가장 좋은 책' 후보다).  

 

 

 

하루키의 <1Q84>는 얼마전 문고본 판형으로 재출간되기도 했는데, 무거워서 들고다니기 어려웠던 걸 고려하면 문고본으로 읽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하루키에 대한 강의는 주로 <노르웨이의 숲>이나 <해변의 카프카><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여자 없는 남자들> 등을 중심을 해왔는데, <직업으로서의 소설가>까지 나온 김에 대표작 강의도 계획해봐야겠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태엽 감는 새><1Q84>를 포함하는 게 목표다. 내년쯤에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로맹 가리의 대표작 읽기와 함께 구상하고 있는 일정이다... 

 

16. 06. 2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