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의 <철학입문>(까치글방, 2006)이 출간됐다. 출간일자는 작년말이지만 지난주에 나온 게 아닌가 싶다. 알라딘의 '새로 나온 책'을 둘러보다가 발견하게 됐다. 지난주에 유난히 읽을 만한 책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 탓에(홉스봄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나 다니엘 벨의 <탈산업사회의 도래> 등) 미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는데, "하이데거가 1928~29년 겨울 학기에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수록한 강의록"으로서 지난 1996년 하이데거의 전집 제27권으로 출간되었다는 이 책은 충분히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하다(아직 영역본은 나오지 않은 듯하다). '하이데거의 모든 책'이기도 하지만, 게다가 '철학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 입문' 아닌가?

하이데거  

그런 '입문'이란 단어를 제목에 달고 있는 책으로 나는 <형이상학 입문>(문예출판사, 1994) 정도를 알고 있을 뿐이다. 우연이지만, 내가 하이데거에 매혹당하게끔 한 책이 바로 <형이상학 입문>이었다. 그러니 <철학 입문> 또한 철학 입문이면서 동시에 하이데거 입문으로의 역할을 덩달아 해줄 거란 기대를 갖는 건 억지스럽지 않다. 1928-9년이면 주저인 <존재와 시간>을 발표한 직후이고 갓 마흔이 된 '젊은' 거장의 염력이 거침없을 때이다. 해서, 이 겨울에 딱 3일 정도 바람이라도 쐬러 가면서 들고 가고픈 책이다.

하이데거와 전혀 '안면'이 없는 독자라면 <30분에 읽는 하이데거>에서부터 역자이기도 한 이기상 교수의 <하이데거 철학에의 안내>(서광사, 1993)나 역시나 하이데거 전공자인 박찬국 교수의 <들길의 철학자, 하이데거>(동녘, 2004)를 미리 혹은 같이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내가 감동적으로 읽었던 조지 스타이너의 <하이데거>(지성의샘, 1996)도 지난번에 절판된 듯하다고 적었지만 다시 나왔다). 한데, 하이데거는 가장 기초적인 물음(들)을 던지면서 자신의 사유를 전개하기 때문에 그냥 차근차근 따라가봐도 팍팍하거나 멀미나지 않는다. 아니, 그냥 장서용이면 어떤가. 폼나지 않나. '하이데거' 그리고 '철학입문'.

 

 

 

 

재작년 여름에 데리다의 <정신에 대하여>(동문선, 2005)가 출간되었을 때 책소개를 하면서 몇 자 적어놓은 걸 다시 읽어봤는데, 이왕 하이데거를 펴보았다면 하이데거론도 곁들어 얼마쯤 읽어두면 좋겠다. 나도 아직 다 읽지 못했지만, <정신에 대하여>에서, 이전의 소개를 반복하자면, "데리다는 하이데거와 관련하여 한번도 질문된 적이 없는 '정신(Geist)'의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하이데거의 철학은 해체/구축한다. 이런 '대결' 장면은 며칠전 이종격투기 프라이드 경기에서 표도르('효도르'라는 이름은 러시아어가 일어로 음역된 걸 다시 옮겨오면서 생긴 '괴상한' 이름이다)와 크로캅이 맞붙은 것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볼거리이다. 그런 걸 놓쳐도 좋은 삶은 또한편 나름대로 재미있을지 모르겠으나 내가 부러워하는 삶은 아니다."

앨런 메길의 <극단의 예언자들: 니체, 하이데거, 푸코, 데리다>(새물결, 1996)은 네 철학자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안내서이다. 하이데거 편을 데리다 편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그리고 부르디외의 하이데거 비판서 <나는 철학자다>(이매진, 2005)도 (원제인) '하이데거의 정치적 존재론' 비판으로 읽어봄 직하다. 한데, 번역서는 읽기에 좀 팍팍하다. 그리고 라캉주의자가 되기 이전에 하이데거 전공자였던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도서출판b, 2005). 책의 1장은 '칸트 독자로서의 마르틴 하이데거'를 다루고 있는데, 주로 <존재와 시간>에서의 곤궁을 <칸트와 형이상학의 문제>(한길사, 2001)에서 어떻게 극복/회피하려고 했는가를 다루고 있다. 하이데거에 대한 '상식'을 상당 부분 뒤흔들어놓는다(나는 지젝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도달해 있는/있을 경지가 부럽다).  

 

 

 

 

물론 <철학 입문>을 통해서 하이데거의 사유에 맛을 들이고 매혹을 느낀다면 이후엔 그의 주저들에 도전해볼 수 있겠다. 하이데거만큼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번역/소개된 철학자도 국내엔 많지 않다. 게다가 번역의 수준도 높은 편이다(당장 헤겔과 비교해 보라). <존재와 시간>에서 <이정표>에 이르기까지의 여정? 그렇게만 읽어도 우리의 한해는 다 가고 말 것이다. 맨날 하는 소리이기도 한데, 인생은 행복하기에는 너무 길지만 공부하기에는 너무 짧다...

07. 0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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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80 2007-01-14 12:44   좋아요 0 | URL
얼마전부터 로쟈님 글을 훔쳐보기만 했는데 이제 아예 본격적으로 훔쳐가고 있습니다. 제 페이퍼 폴더에 '그녀에게 얘기해주고 싶은 것들'이라는 제목을 달고 로쟈님의 인상깊은 정보와 글을 퍼담고 있습니다. 항상 발전의 자극이 되어주셔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위의 글도 잘 읽었습니다.

로쟈 2007-01-14 12:48   좋아요 0 | URL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관심을 나눠가질 수 있다면 그만큼 '친구'가 늘어나는 것인데 저로서도 반갑고 고마운 일이지요.^^

에바 2007-01-14 13:00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부러워 하는 경지의 "지젝을 비판하는 사람들"에는 누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또 지젝 비판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도 알려주시면...^^;;

로쟈 2007-01-14 13:03   좋아요 0 | URL
얼치기 비판은 많습니다. '대중적인' 스타들이 안티팬을 거느리는 것처럼. 다만, 제가 궁금한 건 진지한 비판이고, 그 비판의 조건입니다. 그런 '경지'를 저도 좀 보고 싶다는 말씀이었습니다(가령 지젝의 하이데거론에 대한 재비판 같은). 지젝 연구서가 올해만 해도 3권 정도 근간 예정인 걸로 압니다. 그런 '경지'의 가능치/근사치도 조만간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biosculp 2007-01-14 17:16   좋아요 0 | URL
철학입문-23000, 미완의 시대-22500, 탈산업사회의 도래-40000.
나오는 책들은 반가운데 가격이 압박으로 다가오네요.

로쟈 2007-01-14 17:44   좋아요 0 | URL
제게 그 '압박'은 '구박'의 형태로 현시됩니다. '도대체 제 정신이야?', 제가 제일 자주 듣는 소리죠...

2007-09-04 0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주문한 책들 중의 하나는 사회학자 김동춘 교수의 신간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길, 2006)이다. 아마도 작년 연말에 나왔어야 하는 책이 약간 지체된 모양이다. 저자의 전작들 만큼이나 두툼하고 또 듬직하다. 거기다 제목! 그래서 읽어야 할 '의무감' 같은 걸 촉발시킨다(2월달의 '사회적 독서' 목록에 올려야겠다). 미리 리뷰기사 두 개를 참고삼아 읽어둔다. 개인적인 스크랩이지만 출간 소식을 반가워할 분들도 있을지 모르겠다.

한국일보(07. 01. 12) "한국, 10년만에 기업사회로 변했다"

외환 위기를 경험한 지 10년. 세련된 말로 표현을 못해서 그렇지, 국민 대다수는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몸으로 알고 있다. 김동춘(48)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는 최근 출간한 <1997년 이후 한국사회의 성찰>(도서출판 길)에서 “한국이 ‘기업사회’가 됐다”는 말로 지난 10년간의 변화를 표현한다. 일반인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단순화하면 시장 혹은 기업이 사회를 지배하는 상태를 말한다. 사회가 시장의 일부가 되고, 기업이 가장 이상적인 조직으로 부각된 것이다.

김 교수가 말하는 한국의 기업사회화 양상은 이렇다. 초일류, 일등 등 경쟁을 부추기는 용어가 난무하고 CEO 대통령, CEO 총장, CEO 장관, CEO 시장이 유행이다. 경제부처 장관이 교육부 장관에 기용되고, 정부 관료가 대기업에 무더기로 들어간다. 대기업 혹은 그 대기업 총수의 잘못은, 돈을 벌어준다는 이유로 법적 면죄부를 받고, 엄정한 법 집행을 책임지고 있는 법무부 장관은 “기업이 신명 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삼성경제연구소가 2만 달러 시대를 주창하면 정부가 이를 받아 반복한다. 정부는 운영의 법칙과 지향이 기업과 다른데도 여전히 기업 배우기에 열중이다.

김 교수는 이에 대해 “우리 사회가 미국을 닮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게 미국은 돈이 지배하는 사회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기업가의 아들이고, 낸시 페레스 하원의장은 남편이 백만장자다. 기업에 대한 비판이 거의 없고, 그래서 기업이 정치 외교 군사 심지어 사람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하는 사회라는 것이다.

김 교수가 보기에 한국의 기업사회화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돼 있다. 시장도, 국토도 좁아 생존의 압박이 매우 크기 때문에 기업의 신호를 따라간다는 것이다. 교육 의료 복지 등 공공 영역의 임무를 개인이 부담하는 것도 돈에 대한 의존을 높이는 요인이다.

김 교수가 특히 우려하는 것은 기업사회가 반공사회와 닿아있다는 점이다. 과거 안보를 이유로 고문 등 비인도적인 행위가 용인됐듯이, 지금은 돈만 되면 무엇이든 괜찮다는 것이다. 군사형 사회가 총과 칼을 앞세웠다면 기업사회는 국민의 자발적 동의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김 교수는 이 대목에서 “히틀러는 경제 불황을 활용해 나치즘을 일으켰다”고 상기한 뒤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절망감이 우리 사회에 새로운 파시즘을 낳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의 기업사회화 정도가 미국에 달렸다고 말한다. 고삐 풀린 미국의 신자유주의가 견제를 받을 때 우리의 기업사회화도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지배층의 도덕성에 대한 유달리 강한 저항력도, 기업사회화를 억제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

김 교수는 “1970년 전태일이 제 몸을 불살랐을 때는 대학생들이 달려가 그를 끌어안았지만,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사회적 약자가 분신해도 그를 못난 놈이라며 더 소외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당장 먹고 살기 힘들더라도 과도한 기업사회화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박광희 기자)

한겨레(07. 01. 12) 한국사회는 기업의 식민지

시이오 시장, 시이오 총장, 시이오 목사, 시이오 대통령…. 한국에서 시이오(CEO,기업 최고경영자)는 모범이자 모델이고 표준이자 이념이다. 지방자치단체를 운영하는 일에서부터 국가와 정부를 통괄하는 일까지, 학문의 전당을 책임지는 일에서부터 사람의 영혼을 돌보는 일까지 모든 것이 ‘기업경영’을 이상형으로 삼고 있다. ‘전사회의 기업화’ 논리는 기업가 식으로 하는 것이 가장 창조적이고 가장 효율적이며 가장 진취적이라는 가정 위에서 맹렬한 힘으로 사람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반공’만이 살 길이라고 외쳤던 한국사회는 이제 혁신만이 살 길이고 변화만이 살 길이라고 외치고 있다. 요컨대, 기업만이 구세주라고 통성기도하는 형국이다. 이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여기에 함정은 없는가. 혹시라도 기업가의 피리 소리를 따라 사람들이 벼랑 끝으로 내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가 최근 출간한 책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찰>(도서출판 길 펴냄)에서 한국사회에 불어닥친 기업화 광풍을 강력하게 경고하고 나섰다. 지난 10여년 동안 우리 사회 변화를 성찰한 글을 모은 이 책은 서론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김 교수는 이 글에서 1997년 외환위기 이래 한국사회가 ‘기업사회’로 전환했다고 진단하면서, 그 변화의 파국적 본질을 직시할 것으로 촉구하고 있다.

그가 이 책에서 처음 제시한 ‘기업사회’라는 말은 한 마디로 줄이면, 기업이 중심이자 주인이 된 사회다. “기업이 단순히 사회의 일부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기업의 모델과 논리에 따라 재조직되는 사회”가 기업사회다. 경제학자 카를 폴라니의 논리를 빌리면, 기업사회는 “시장이 사회로부터 분리돼 나와 자율적인 것이 되는 데 머물지 않고, 사회를 식민화한 상태”를 말한다. 이 식민화의 가공할 성격은 사람들이 식민지배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과거의 식민화가 총과 칼을 앞세운 것이었다면, 새로운 식민화는 생산성과 효율성을 앞세운다. 사회 전체를 기업의 힘 아래 굴복시킨 기업사회는 강력한 이데올로기 체제다.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동의와 헌신을 끌어내고 그것을 동력으로 삼아 작동하기 때문이다.

삼성공화국, 정책 입맛맞게 조성

자본주의 체제, 시장경제 체제라고 해서 모두 기업사회인 것은 아니다. 기업이 사회의 기준으로 서고 기업가 마인드가 사회적 마인드가 되고, 기업의 사회지배를 불가피할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것으로 인식하는 사회가 기업사회다. 기업은 단순이 이윤을 창출할 뿐만 아니라 고용을 창출한다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이윤은 더 많은 고용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기업사회의 바탕에 깔린 일반적 믿음이다. 기업의 이익이 곧 사회의 이익이 되는 것이다. 이 믿음 위에서 이제 기업 바깥의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 기업가의 손이, 기업가 마인드가 뻗치지 않은 공공 영역은 비효율과 무능력의 온상으로 낙인찍힌다. 그런 인식이 진전되면 “효율성과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이 정부와 정치를 모두 직접 담당하는 게 좋지 않은가”라는 과격한 주장마저 불러들인다. 그리하여 대기업이 국가의 교육과 복지는 물론이고 국가의 최후 보루인 안보와 전쟁까지 담당하는 ‘기업가정부’, ‘기업가국가’가 나타날 가능성이 커진다. 김 교수는 지금 미국이 거기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한다.

신자유주의의 지구적 확산으로 기업사회라는 미국적 모델은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다. 기업사회는 국경을 치고 들어가 점령군처럼 주둔하고서 연일 포고령을 내린다. 모든 것을 기업의 이익에 맞춰 바꾸라. 부패한 것은 참아도 이익을 내지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비효율이야말로 부도덕이다.

기업사회는 수천년 인류를 이끌어온 도덕의 기준마저 바꾸어 놓는다. 그러나 기업사회는 결코 대중의 이익에 복무하는 사회가 아니다. 기업사회는 기업주의 사회이며, 더 좁혀 말하면 대기업 소유주와 경영자의 사회다. 통제받지 않는 기업사회는 대기업의 절대권력화를 낳으며 그것은 기업사회 이데올로기의 주장과는 정반대로 기업부패를 불러온다. 기업가의 이윤 추구와 공공의 이익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빚어진다. 기업의 생산성 향상의 결과는 사회의 특권층에게 집중된다. 공공성은 실종되고 기업의 사익이 공익으로 둔갑해 횡행한다.

약자 보호법 대항 공장이전 위협

김 교수는 지난 10년 사이 기업사회의 이데올로기가 한국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기업은 선과 정의와 올바름의 잣대를 독점하다시피 했다. 기업을 비판하는 것은 곧 공익을 비판하는 것이 됐고 기업가의 잘못을 추궁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사회적 자산을 공격하는 것이 됐다. 김 교수는 여기서 삼성의 경우를 이야기한다. ‘삼성공화국’이라는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기업사회 한국’의 한가운데에 삼성이 버티고 있다.

삼성은 국가경제를 책임지는 견인차와 같은 존재로 칭송받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나서서 자신이 아니라 삼성이 한국의 대표자라고까지 말한 바 있다. 삼성의 경쟁력 강화는 곧 국가 경쟁력 강화로 통한다. 급기야 정부의 주요 정보가 삼성의 정보망을 통해 사유화된다. 삼성의 힘은 관료사회를 움직여 정부의 정책마저 자신의 이익에 맞게 조정할 정도로까지 강력해지고 있다. 국가와 정부가 껍데기 또는 들러리가 되고 삼성이 나라의 핵심을 장악하는 말 그대로 ‘삼성공화국’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공화국 현상은 한국사회가 기업사회로 진입했음을 도드라지게 입증하는 사례다. 기업사회는 사회를 재편하려는 이데올로기 공세도 멈추지 않는다. 기업가 단체들이 ‘중고등학교 경제교과서 반시장·반기업 정서를 부추긴다’며 뜯어고칠 것을 요구하고, 비정규직 노동자 보호 법안을 통과시키면 기업을 국외로 이전해버리겠다는 ‘기업 파업’ 위협도 마다하지 않는다. 국민이 기업을 키운 것이 아니라 기업이 국민을 먹여 살리고 있다는 이데올로기를 공격적으로 구사하는 모습이다.

정치기능 복원·주체적 대중이 해법

기업사회의 이 진군은 사회적 보호장치가 폐기되고 약자가 강자의 힘 앞에 무방비로 서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기업사회에서 처벌은 체포·구금·고문·학살이 아니라 명예퇴직 강요, 분사, 비정규직화, 해고, 비연고지 근무 요구”로 나타나며, 더 끔찍한 것은 그것이 “처벌이 아니라 기업 경영 합리화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포장돼 있다”는 사실이다. 수많은 약자들의 자살행렬이 ‘기업의 처벌’에서 비롯한다.

김 교수는 이렇게 사회 구성원을 식민화하고 지배하는 기업사회에서 벗어나려면 정치의 기능을 복원시켜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기업사회의 하수인이 된 정치를 본디 상태로 정상화해야 한다. 대중이 단순히 기업사회의 지배대상인 ‘소비자’가 아니라 시민으로, 주체로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유권자이며 노동자이며 주민이며 학부모이며 자신의 귀중한 삶의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 존엄한 인간이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과 억울한 죽음에 공감해야 할 신성한 의무가 있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고명섭 기자)

07. 01. 12.

P.S. 한국사회의 단면을 꼬집는 기사 하나를 덧붙여둔다.

경향신문(07. 01. 12) 상상할수록 불쾌한 광고…양극화 부추기는 TV광고 눈총

TV 광고가 도를 넘는 소재와 설정으로 시청자들에게 불쾌감을 주고 있다. 소비자들의 마음은 물론 지갑까지 열어야 하는 광고의 속성상 허영을 부추기고 현실을 과장할 수도 있지만, 요즘 방영되는 광고는 지나치게 계층간 위화감을 조성하는 데다 사람 목숨을 아예 돈으로 환산하는 위험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부럽거나 불쾌하거나

지난해 말 한 보험회사 광고가 논란을 일으켰다. ‘남편이 죽은 뒤 보험설계사의 도움으로 생명보험금 10억원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광고를 본 시청자들은 ‘실제로 10억원을 받으려면 까다로운 조건이 붙는다’는 지적부터 ‘생명을 돈으로 연결시켰다’는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 ‘보험설계사를 남자로 설정해 부적절한 상상까지 가능케 했다’는 반응도 있었다. 광고회사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불쾌감을 안겼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명품 아파트’ 이미지를 남용하고 있는 아파트 광고에서 소형 평수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다. 헬스클럽에 골프장까지 갖춘 대형 아파트에 사는 여성들은 서로 같은 아파트 주민임을 한눈에 알아본다. 때로는 유럽이나 뉴욕의 이미지를 차용하며 집안에서 드레스를 입고 다닌다. 유부남, 유부녀가 아파트에서 첫사랑과 재회하는 분위기를 묘사하는 한 아파트 광고는 ‘불륜 아파트인가’ 하는 냉소까지 유발한다. 아파트 속 모델들은 신형 아파트의 특별한 시설을 통해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고 배우자, 아이와 함께 지나가다 어색하게 마주친다. 집값 폭등과 경제적 양극화,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 등으로 괴로운 소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광고는 끊임없이 ‘돈 들고 돈 되는’ 아파트만 보여준다.

자동차 광고에서는 자동차의 크기나 값을 사회적 ‘성공’과 ‘능력’의 증거로 연결시킨다. 광고 속에 외환위기 시절 절약의 이미지를 대변하기도 했던 소형차나 경차는 온데 간데 없고 대형 외제차를 경쟁 상대로 삼는 대형차들만이 넘쳐난다. 대형차를 타는 아버지를 둔 아이가 친구들에게 인형을 나눠주는 내용이 방영되기도 했다.

이런 광고에 대해 시청자들은 불쾌함을 넘어 화가 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학생 김민석씨(27·한국외대 불어과)는 “아는 분이 광고를 본 아이가 ‘우리는 집이랑 차가 왜 이렇게 작으냐. 언제 저런 데로 이사가느냐’고 물어 가슴이 아팠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트렌디 드라마에 외제차와 최신형 휴대전화가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처럼, TV 광고도 비현실적 상황으로 허영을 조장한다”고 말했다.

#일그러진 현실 더욱 일그러지게

학습지나 학원 광고도 비뚤어진 우리의 교육현실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한 학습지 광고에서는 학부형이 치과에서 이빨을 잘못 뽑히고도 “괜찮다”며 웃는다. “당신은 상위권 엄마의 기쁨을 아느냐”고 묻는 이 엄마는 아이가 상위권이 된 배경에는 학습지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면서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와 함께 학습지 교사에게 머리 숙여 인사한다. 심지어는 ‘학년을 앞서가는 힘’이라며 미리 학습지로 공부한 아이들이 학교 선생님을 떠난다는 내용의 광고도 있다. 광고 속에 등장하는 교사마저 ‘애들은 (학습지)를 좋아해. 자꾸 자꾸 앞서가면 나는 어떡해’라며 노래한다.공교육이 힘을 못 쓰고 사교육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현실이 광고 탓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교육효과를 강조하는 것을 넘어 공교육을 아예 무시하는 듯한 광고를 보는 시청자들은 씁쓸할 수밖에 없다.

문화연대 미디어문화센터 김형진 팀장은 “광고가 부정적인 현실을 더욱 왜곡하며 사회적 양극화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팀장은 “소비층은 다양한데 비해 광고는 상류층 지향으로만 흐르고 있다”며 “잠재되어 있는 욕망을 끌어내기 위해 불쾌감까지 주면서까지 소비자들을 자극한다”고 지적했다.(장은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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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1-12 07:07   좋아요 0 | URL
우리사회는 어딜가나 미국에 대한 담론으로 넘쳐나지요.(미국유학파가 많기 때문인지) 반면 유럽과 우리를 비교해보면 분통터지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지요. 미국과 비교하면 이 사회는 정말 잘 돌아가고 있는거지만 ㅋ

로쟈 2007-01-12 08:15   좋아요 0 | URL
기사내용만으로는 상식의 확인수준이지 '통찰'이란 건 없는데요. 강준만의 '삼성공화국'론에서 더 나아간 내용이 있는지 찾아봐야겠습니다...

아놔키스트 2007-01-12 09:03   좋아요 0 | URL
로쟈님이 낚은 책에 저는 썩 낚이지(^^) 않네요..근데 광고 기사를 보니 속이 부글거립니다. 무엇보다 저런 광고들 보기 싫어 전 TV를 끊었지요...

로쟈 2007-01-12 09:07   좋아요 0 | URL
다행이십니다. 두꺼운 데다 책값도 비싸거든요.^^ 저는 읽어볼 '필요'가 생겨서 부득불 구입을 했습니다...

드팀전 2007-01-12 09:17   좋아요 0 | URL
^^...제가 오늘 아침 본 기사 두 개가 공교롭게 페이퍼로 올라왔군요.한겨레 김동춘 교수 리뷰하고 경향신문 광고....
기사는 기업공화국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듯한데..알라딘에 실린 소제목들을 보니 꼭 그런 것 같지만은 않네요. IMF 이후 한국 사회 전반의 변화를 짚고 있는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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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 | '기업사회'로의 변화를 중심으로

제1부
탈분단 시대 지식인의 역할 | 리영희의 사상과 실천을 생각하며
한국 사회과학의 탈식민 과제
21세기에 돌아보는 1980년대 한국 사회성격 논쟁
한국의 지식인들은 왜 외환위기를 읽지 못했는가

제2부
한국의 우익, 한국의 '자유주의자' | 상처받은 자유주의
한국의 자유주의자
한국의 지식사회와 지식권력

제3부
'민주화'라는 환상? | 교체되는 권력과 교체되지 않는 권력
강요된 지구화와 한국의 국가, 자본, 노동 | IMF체제하의 한국
노동.복지체제를 통해 본 한국 자본주의의 성격 | 냉전 자본주의에서 신자유주의로?
한국 노동자 내부 구성과 상태의 변화 | '계급' 없는 계급사회?
신자유주의와 한국 노동자의 인권 | 외환위기 직후를 중심으로
전환기의 한국사회, 새로운 출발점에 선 사회운동

제4부
한국 민주화의 주도세력
21세기에는 학벌주의가 사라져야 한다 | 대학 서열화 극복을 위한 대학개혁
유교와 한국의 가족주의 | 가족주의는 유교적 가치의 산물인가

제5부
한국인들의 자민족 중심주의
시민운동과 민족, 민족주의
21세기와 한국의 민족주의
일상적 파시즘론에 대한 생각
해방 60년, 한국의 민족주의와 민족문제의 위상

로쟈 2007-01-12 10:25   좋아요 0 | URL
기사는 아마 다들 서론만 읽고 썼나 보죠...
 

필요한 책들이 있어서 여덟 권을 한꺼번에 주문했는데, 그 중 하나는 역사학자 조지 이거스(1926- )의 <20세기 사학사>(푸른역사, 1999)이다. 지난 2005년에 내한한 바 있는 이 저명한 역사학자는 사학사의 거장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국내에는 그의 3부작이 모두 번역/소개돼 있다(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건 <20세기 사학사>뿐이지만). 독일 태생이어서 '게오르그 이거스'라고 표기되기도 하지만, 유태계 독일인으로서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고 이후 미국의 대학에서 오래 봉직했다면 '조지 이거스'라고 불리는 것도 타당하다(그는 독어와 영어로 책을 쓴다). 지난 2002년 신년초에 동아일보에 연재된 '新질서 新문명' 코너에서 다루어진 인터뷰 기사와 소개기사를 자료로 옮겨놓는다(기사가 올려진 게 마침 오늘 날짜이다).

동아일보(02. 01. 11) 뉴욕주립대 명예교수 조지 G 이거스

조지 G 이거스 미국 뉴욕주립대 명예교수(76)는 역사를 바라보는 학자들의 시각을 한 발 뒤에서 관조하는 세계적인 사학사(史學史)학자로 유명하다.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급변하는 세계 질서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들어보았다(*아래는 조지와 윌마 이거스 부처. 조지는 <20세기 사학사>를 아내 '윌마'에게 바치고 있다).

-세계질서의 변동이 진행되고 있는 21세기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20세기역사의 연장선상에서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20세기 역사의 중요한 흐름은 어떤 것이 있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소련 붕괴 이래 지난 10년 동안 세계 질서에 극적인 변화가 있었고 이와 함께 역사 인식도 변했습니다. 이런 변화는 20세기에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1945년 이후 형식적인 의미에서 식민주의시대는 끝이 났고, 이전의 식민 지배국가들 대부분이 1945∼1960년 사이에 피지배국들의 독립을 받아들였습니다. 프랑스는 알제리를 계속 장악하려 했고, 프랑스와 미국이 베트남을 침공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수치스런 패배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소련의 침공도 마찬가지였지요. 인종차별 제도도 미국에서는 1960년대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1990년대에 무너졌습니다. 백인우월주의는 이전의 식민지에서뿐 아니라, 1960년대부터는 서구 국가 내에서도 광범위하게 도전을 받았지요.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의 가치도 여성 운동의 부상과 함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런 역사의 변화는 역사 인식과 역사 서술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습니까?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역사 서술에는 두 개의 매우 다른 흐름이 있습니다. 이 두 흐름은 공식 문서에만 매달리며 사회적 문화적 요소들을무시하는 국가 중심적 역사의 오래된 패러다임을 대치했습니다. 한편에서는 1945년 이후 자본주의의 성과와 함께 컴퓨터 기술을 이용할 수 있게됨에 따라 고도로 계량화된 사회과학 지향적 역사가 일어났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여성을 포함한 평범한 사람들의 역사에 대해 새로운 접근이 시도됐습니다. 사회과학적 역사는 비(非)개인적인 구조와 과정에 초점을 맞췄지만, 매일의 일상에 주목하는 이 새로운 역사는 생생한 인간들과 그들의 느낌들을 양적 측면보다는 질적 측면에서 잡아내고자 했습니다.”

-20세기말에 나타난 포스트모더니즘은 특히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 주목하는 역사 서술 방식에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합니다.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장-프랑스와 리오타르, 헤이든 화이트 같은포스트모던 철학자들은 1960년대에 이미, 계몽주의 이래로 역사 서술의 원천이 됐던 서구의 ‘거대 담론’에 도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추구하는 역사는 목적도 방향도 없었습니다. 실제로 이들에게는 진실한 과거란 없었고, 따라서 과학적 또는 학문적 객관성의 가능성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각각 짜맞춰지거나 혹은 더 낫게 이른바 ‘창안된’, 검증 가능성 없는 많은 역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서는 역사와 문학의 경계가 모호해졌습니다.”

-이거스 교수님께서는 미시사적 접근을 비판하고 거시사적 역사 서술 방법을 주장해 오셨습니다. 하지만 미시사는 거시사에서 간과하기 쉬운 인간 일상의 삶을 드러내 주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대담론의 퇴조와 함께 한국에서도 미시사적 접근이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의 ‘거시사’는 ‘미시사’로 대치되곤 했습니다. 이런 새로운 접근들은 실제로 과거에는 하찮게 여겨져 왔던 삶의 많은 측면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미시사가들은 이런 일상의 삶들이 일어난 큰 맥락을 다루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20세기를 장식했고 지금도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처절한 잔혹 행위들을 충분히 설명해 낼 수 없습니다.”

-21세기에 들어 일어난 9·11 테러와 그에 뒤이은 ‘테러와의 전쟁’ 역시 그런 맥락일 겁니다. 이 사건들을 계기로 세계질서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큰 영향을 주리라고 생각합니다.

“2001년 9월 11일의 사건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시대의 역사와 역사 서술의 방법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무고한 사람들을 수천 명 죽인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지만, 이는 갑자기 생긴 일이 아닙니다. 이들이 겨냥한 것은 바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중심과 미국군사력의 심장부였습니다. 역사가들이 생각해야 하는 질문은 무엇이 이런 공격을 유발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행한 것은 작은 테러리스트 조직일 수 있겠지만, 이들의 반(反)서구적, 특히 반미(反美)적 증오 뒤에는 무슬림이라는 훨씬 넓은 여론층이 있고, 나아가 이런 생각은 전에식민지배를 받았던 지역에 상당히 널리 퍼져있습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성공 스토리를 담은 사회과학 지향적 역사와 소수자들의 경험적 삶에 주목하는 미시사는 모두 이 문제를 놓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분명히 자본주의의 힘에 의한 비서구사회의 식민지화를 탐구하는 거시사적 접근이 있어야 합니다.”

-자본주의와 식민지화에 대한 것이라면 마르크스주의적 접근 방식이 많이 사용돼 오지 않았습니까?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자본주의적 팽창의 역동성과 그로부터 유래하는 착취를 탐구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겁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의부자와 가난한 자,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의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요. 그러나 고전적인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문화와 종교에 뿌리를 둔 비경제적 요소들을 충분히 설명해 내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사회과학적 분석들을 효과적으로 종합하는 데는 반드시 역사의질적 측면을 고려하는 문화인류학적 개념과 방법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9·11테러는 이런 역사 인식 방법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현재 상황에서 비극적인 문제는 전쟁의 상대인 테러리스트뿐 아니라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사람들조차 맹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현 정부와 그 동맹국들은 그들의 정책과 오만함으로 인해 개발도상국 국민들의 삶이 거의 모든 측면에서 피해와 상처를 입고 있다는 점을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과 서방의 적들은 ‘서구’도 ‘비서구’도 모두 획일적이 아니라는 점, 그리고 서구세계에도 고삐풀린 전지구화의 위험을 아는 넓은 여론층이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근대 서구의 유산 중에는 이상적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필수적 긍정적 요소들이 적잖이 있습니다. 이것들은 과거의 역사에서뿐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전세계의 많은 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가난과 자의적 권력으로부터 인간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유산에 주목해야 합니다.”(이메일인터뷰〓김형찬기자)

Picture of Georg G. Iggers

 

 

 

 

 

◇조지 G 이거스는 누구인가=미국 뉴욕주립대(버팔로) 명예교수인 조지G 이거스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사학사(史學史)가이다. 1926년 독일 함부르크에서 유태계 독일인으로 태어나 소년기에 나치를 경험한 그는 나치의 위협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망명자의 처지에 있으면서도 마르크스주의를 공공연히 지지했고, 베트남 참전을 반대하는 반전운동 및 민권운동에 적극 가담해 박해를 받기도 했다. 그의 학문적 관심은 프랑스사에서 독일사로, 지성사에서 역사이론으로 확대되며 역사 연구와 역사 서술의 역사를 국제적 수준에서 조망할 수 있는 우리시대의 유일한 역사가로 평가받고 있다. 세계 역사학계에서 그의 중요성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미 모두 우리말로 번역된 ‘독일 역사주의’(박문각), ‘유럽 역사학의 신경향’(전예원), ‘20세기 사학사’(푸른역사)라는 그의 사학사 3부작이 나오지 않았다면, 사학사라는 분야는 역사학내에서 불필요한 분야로 고사 당했을지 모른다. 사학사란 하나의 역사서술이 나타나는 역사적 맥락, 즉 사회문화적 토대를 연구하는 분야로서 일종의 지성사다. 이거스 교수의 3부작은 바로 레오폴드 폰 랑케 이래 오늘날까지 역사학의역사가 어떤 흐름으로 변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대작이다.

둘째, 역사학을 보는 그의 시야는 그야말로 전지구적이다. 독일 역사주의를 기점으로 해서 성립한 근대 역사학은 역사를 ‘국민국가의 역사’ 곧 국사(國史)로 축소하는 전통을 낳았다. 이런 역사의 ‘국사화’는 한편으로는 국가권력의 비호 아래 역사학을 발전시키는 효과를 가져왔지만,다른 한편으로는 역사학을 정치의 시녀로 전락시킴으로써 역사학의 위기를 초래했다.

오늘날 역사학 위기의 근본원인은, 역사의 중요한 문제들은 전지구적으로 복잡하게 얽혀서 발생하는데 비해 전문 역사학자들은 그 문제에 대한 연구를 국사의 차원으로만 하고 있다는 데 있다. 이런 역사학의 위기에 직면해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역사학 분야는 역사학의 문제를 역사적으로 진단하는 사학사다. 이같은 맥락에서 이거스 교수는 사학사적 관점에서 9·11 테러 이후 앞으로의 역사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말한다.

1960년대이래 서구 지성계의 가장 큰 흐름은 진보를 위한 거대담론으로서의 역사의 종말을 주장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다.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고 나타난 역사학의 새로운 경향이 미시사이다. 이거스 교수는 역사학의 이런 미시사적 경향이 대두하는 배경과 문제의식에 대해서는깊이 공감하지만, 그것이 역사학의 지배담론이 되는 데는 명백히 반대한다. 그는 9·11 테러가 일어난 역사의 거대한 맥락이 미시사적 역사 연구를 통해 해명될 수 있을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9·11 테러의 근본 원인은 분명 미국 패권주의 혹은 서구 자본주의와 같은 역사의 거대한 구조다. 그러나 어떻게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인물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미시사적 연구를 통해서는 이런 역사의 거대한 구조가 해명될 수 없는 것일까?

이거스 교수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사학사적인 메시지는 ‘거시사 대 미시사’라는 이원론적 구도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둘 사이의 새로운 접합을 통해 ‘서구’와 ‘비서구’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해방과 자유의 역사라는 세계사의 보편적 과정 속에서 한국사의 특수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김기봉/경기대 교수·서양사학)

07. 01. 11.

P.S. 국역본의 대본은 독어본 'Geschichtswissenschaft im 20.Jahrhundert'(괴팅겐, 1993)으로 돼 있는데, 목차로 보아 그 증보판인 영어본 'Historiography in the Twentieth Century'(Wesleyan University Press, 1997)도 참조했을 것으로 보인다(저자의 서문에 따르면 영어본과 독어본은 많이 '다르다'. 3년 동안 저자가 책도 더 읽었고 또 염두에 둔 독자층도 각기 다르기 때문). 동료 역사학자인 피터 버크의 추천사가 붙어 있는 영어본은 나대로 의미가 있는 책이다. 러시아에서 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애를 써서 구한 것도 아니고 매일 같이 들르던 구내 헌책방에서 어느날인가 못보던 영어책이 눈에 띄었는데 아주 새책이었다. '이거스'란 저자의 이름도 눈에 익어서 (긴가민가하긴 했지만) 국내에 번역본이 있는 듯했다. 게다가 가격은 50루블(2,000원). 그게 지금 책장에서 빼와 만지작거리고 있는 영어본이다. 내일은 그 국역본을 손에 넣을 수 있겠다...  

P.S.2. 배송된 책을 확인해보니까 국역본은 예상대로 영역본을 대본으로 했다(다만 독어본으로 판권계약을 했다. 영어본이 출간되기 이전에 한 계약이어서일까?). 영어본이 더 최신판이어서 저자가 그렇게 권했던 듯하다. 그리고, 알고 보니 공역자 두 사람이 각각 미국과 독일에서 이거스 교수 문하에 있던 제자들이다. 영어본 원고를 사전에 전해 받아서 동시출간까지 기획했었다고 한다. '한국어판 서문'은 1997년 11월 서울에서 씌어졌는데, 마지막 멘트는 이렇다: "이 두 사람은 내 작업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며, 나 또한 이들의 작업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책 내용의 의미를 잘 전달할 수 있는 충분한 자질을 가진 이 두 사람이 번역을 맡았다는 점을 무척 기쁘게 생각한다." 이제 남은 건 독자들의 기쁨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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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1 21: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인 2007-01-11 21:27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지성사라는 것은 매혹적인 분야인 것 같습니다 ^^

로쟈 2007-01-11 21:50   좋아요 0 | URL
**님/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기인님/ 피터 버크의 책들도 비슷한 분야를 다루고 있는 듯해요. 역사이론 내지는 역사학 자체를 역사적으로 연구하는 것이죠. 헤이든 화이트의 고명한 저작을 포함해서...
 

물만두님의 서재에 갔다가 '신간 서적'으로 띄우신 책들 가운데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랜덤하우스중앙, 2007)이 들어 있는 걸 보았다.

만두님의 설명은 "나치의 치하에서 900여일동안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지킨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림과 인간, 투쟁과 역사를 모두 만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자신이 지키고자 하는 것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진정 용기있는 사람이리라."이다. 장르소설인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지만, 일단 '레닌그라드'와 '에르미타주'란 말에 자동반사적인 흥미를 갖게 되는데, 알라딘의 소개는 턱없이 부족하다(출판사의 성의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작품소개는 전혀 없고, 작가 소개도 달랑 "소설을 쓰기 전까지 10년 가까이 뉴욕 시어터에서 배우 생활을 했다. 2007년 현재 작가이자 교수로 활동 중이다." 두 줄이다. 목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하는 수없이 손품을 팔았다.

먼저, 저자인 데브라 딘의 소설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레닌그라드의 성모마리아>가 그녀의 데뷔작이다. 그러니 미국내에서도 별로 알려진 인사가 아니었는데, 데뷔작으로 '붕' 떠버린 케이스이다(이 작품과 관련한 갖가지 인터뷰와 동영상까지 떠 있을 정도이니까). 그리고 알라딘에는 결정적으로 원작이 2003년에 나온 것으로 표기돼 있는데, 작년 3월에 나온 책이다. 분량은 240쪽이니까 '겸손'한 편이고. 그럼에도 반향을 불러일으킨 걸 보면 잘 씌어진 소설인 듯하다. 아래는 현지의 한 리뷰/서평이다. 그리고 그 아래는 추천사들이 보이는데, 우리가 잘 아는 이사벨 아옌데와 재미작가 이창래씨의 것이다(작가의 지명도를 짐작하게 한다). 모두 찬사 일색이다.  

A wonderfully spare and elegant novel in which the 900-day siege of Leningrad during World War II is echoed by the destructive siege against the mind and memory of an elderly Russian woman suffering from Alzheimer's. The novel shifts between two settings: 1941 Leningrad, when the city was surrounded by German troops, and the present-day, as Marina, who had been a docent at Leningrad's Hermitage Museum during WWII, prepares for the wedding of her granddaughter off the coast of Seattle in the Pacific Northwest. THE MADONNAS OF LENINGRAD is first and foremost an eloquent tribute to the beauty and resilience of memory, especially as contrasted to the incomparable devastation that comes with its loss to Alzheimer's.

The Hermitage houses many of Europe's greatest treasures, from Greek and Roman sculpture to masterpieces from the Renaissance and the Dutch Baroque period, to some of the greatest paintings of the impressionists. In the Fall of 1941, the collection's very existence was threatened by the looming German invasion. As German troops tightened their grip on the city, Marina and her colleagues scrambled to evacuate the hundreds of thousands of priceless pieces of art from the former Tsarist Palace. As they did so, they committed the masterpieces of art to memory, creating for themselves and for future generations what they called a "Memory Palace."

The novel shifts between the present and Marina's past almost seamlessly. In the present, Marina is slowly losing her grip on reality. She has trouble deciphering between what is happening at the wedding, and events that took place decades ago during the siege of Leningrad. Scenes of starvation during the war are juxtaposed with the marriage feast, and with Marina's memories of the empty Hermitage and its absent paintings. As Marina's thoughts focus on the Siege of Leningrad through the prism of the empty Hermitage and its absent art-works, it becomes clear that the skill that once sustained her - her ability to remember what she has lost - is slowing leaving her.

THE MADONNAS OF LENINGRAD is a moving novel of tremendous impact, beautifully told. The concluding scene is both heartbreaking and joyful, and one you will not forget soon.

"An unforgettable story of love, survival and the power of imagination in the most tragic circumstances. Elegant and poetic, the rare kind of book that you want to keep but you have to share."
-- Isabel Allende, author of The House of the Spirits, Daughter of Fortune and My Invented Country

The Madonnas of Leningrad is an extraordinary debut, a deeply lovely novel that evokes with uncommon deftness the terrible, heartbreaking beauty that is life in wartime. Like the glorious ghosts of the paintings in the Hermitage that lie at the heart of the story, Dean's exquisite prose shimmers with a haunting glow, illuminating us to the notion that art itself is perhaps our most necessary nourishment. A superbly graceful novel.
-- Chang-rae Lee, author of A Gesture Life and Native Speaker

 

 

 

 

해서, 결론은 마음놓고 주문해도 좋겠다는 것이다. 더불어 이창래의 소설들에도 눈길이 가게 되는군. 아마도 그는 영어권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 작가일 것이다.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한국인(한국계) 작가는? 그건 퀴즈다(언젠가 페이퍼에서 다루기도 했었다). 이창래보다는 한 세대 연배가 위인 작가이다...

07. 01. 11.

P.S. 한편, 똑같은 '성모마리아'이지만 보다 대중적인 팝가수 마돈나는 레닌그라드가 아닌 모스크바에서 작년 가을에 공연을 가질 예정이었다(잘 진행됐는지는 모르겠다). 세계투어의 일환이었는데, 러시아정교회에서는 그녀가 신성을 모독한다고 하여 콘서트를 보이콧하기도 했다(관련 뉴스동영상은 http://www.youtube.com/watch?v=svEMOtvoHUc 작년 9월 12일의 공연실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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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1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11 14:43   좋아요 0 | URL
**님/ 그런 소스가 있으셨군요.^^

물만두 2007-01-11 15:00   좋아요 0 | URL
아나톨리 김아닌가요? 암튼 퍼갑니다^^

로쟈 2007-01-11 15:19   좋아요 0 | URL
너무 쉬웠나요?^^
 

독일의 역사학자 볼프강 몸젠의 <원치 않은 혁명, 1848>(푸른역사, 2006)이 출간됐다. 작년말이다. '몸젠'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아서 찾아보니까 내가 들어본 몸젠은 다른 '몸젠들'이었다. 그의 조부는 고대 로마사연구로 노벨상까지 수상한 테어도어 몸젠이고, 아버지 역시 <비스마르크>(한길사, 1997) 등의 저서를 갖고 있는 저명한 역사학자 빌헬름 몸젠이다. 내가 이 볼프캉과 혼동했던 역사학자 한스 몸젠은 그의 쌍둥이 형제였다. 이 만한 가계면 적어도 역사학계의 다윈가나 헉슬리가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소개에 따르면 볼프강 몸젠은 "1968년부터 1996년 은퇴할 때까지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에서 근세사 부문 정교수로 재직했다. 주요 전공은 제국주의 시대이지만, 그가 관심을 가졌던 시기는 자유주의에서부터 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다. 막스 베버에 관한 전문가로서 베버 전집 간행 작업을 총괄했으며, 1988년부터 4년간 독일 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이 간략한 이력에 출생과 작고 년도는 빠졌는데, 1930년 11월 5일에 태어나서 2004년 8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형제 한스는 아직 생존해 있다.

일단 독일을 대표하는 역사학자의 저작이란 점에서 눈길을 끌지만, 책은 부제대로 '1830년부터 1849년까지 유럽의 혁명운동'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끈다. 러시아 지성사에서 사실 1789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가 바로 1848년이기 때문이다(얼마전에 관련 기사를 옮겨온 적이 있는 알렉산드르 게르첸 같은 경우도 1848년 혁명에 환멸을 느껴서 서구파에서 중도적인 슬라브파로 '전향'하게 된다). 그간에 이 시기는 홉스봄의 책들 정도로 카바하고 있었는데, 몸젠의 책이 '본진'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책소개에 붙어 있는 역자의 말을 참조해보면 이렇다.

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강조했던 것처럼, 19세기 서양의 역사는 "혁명의 시대"로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부터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 그리고 1871년 파리 코뮌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역사는 정치적 소용돌이와 휴지기가 연속적으로 교차하면서 진행되었다. 이 모든 사건들 가운데서도 역사가들이 1848년 혁명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부르주아지와 더불어 새로운 산업사회의 주축을 이루게 된 노동자들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면서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 바로 이때라는 점이다. 둘째, 1848년을 계기로 유럽이라는 거대한 수레를 움직여 온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양대 바퀴가 엄청난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충돌은 그 후에 닥쳐올 수많은 파란과 비극의 시원이 되었다.

문득 드는 생각은 그 '파란과 비극'의 구도 안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1987년 체제이면서도 세계사적으로는 1848년 체제에 속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1987년 체제 전환을 위한 개헌논의가 한창 벌이질 듯한데 거기에 덧붙여 좀 거시적으로 1848년 체제에 대한 성찰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래는 몸젠의 타계 이후에 나온 가디언지의 추모기사이다. 저자에 대한 유익한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옮겨놓는다.  

Wolfgang Mommsen

A leading German historian, he brought academics together to further the understanding of his country's past

Richard J Evans
Tuesday August 17, 2004

The historian Wolfgang Mommsen, who has died of a heart attack while bathing in the Baltic Sea at the age of 73, was a leading member of a remarkable generation of liberal and left-leaning historians who championed a more critical attitude to the German past from the 1960s onwards.

He came from a famous family of scholars: his great-grandfather was Theodor Mommsen, a leading late 19th-century liberal and winner of the Nobel Prize for Literature for his trilogy on the history of ancient Rome. Visitors to Wolfgang's family home in Düsseldorf, overlooking the Rhine, could not escape noticing the large gallery of photographs of the many eminent professors whom he numbered among his ancestors and relatives. His father, Wilhelm Mommsen, was also a historian.

So, too, was Wolfgang's identical twin brother Hans, whose career matched his with uncanny precision. After studying in Marburg, Wolfgang obtained his doctorate in Cologne in 1958, in the same year as his brother was awarded his PhD in Tübingen. Both were appointed to chairs in the same year, 1968: Hans in Bochum, Wolfgang a stone's throw away in Düsseldorf.

To attend a German historical conference where both were present was an uncanny experience, as each, in true professorial style, flitted from one parallel session to the next, making participants who did not know them wonder why the same historian had to make two different contributions to the same discussion within the space of a few minutes. Hans smoked and drank, while Wolfgang did not; and seeing them together was like seeing the effects of 40 years of alcohol and tobacco on the same body: Wolfgang was undoubtedly the leaner and fitter of the two, though even he perhaps was throwing caution to the winds when he plunged fatally into the cold waters of the Baltic.

While Hans eventually became an important historian of Nazi Germany, Wolfgang specialised in the Imperial period, from the middle of the 19th century to the end of the first world war. His dissertation, on Max Weber and German politics, published in English in 1984, must surely be one of the most brilliant debuts a historian has ever made: it revolutionised our understanding of the 20th century's most influential sociologist by setting him firmly in the context of his times, and showing him to be a liberal nationalist and imperialist, much to the horror of many of his admirers. He went on to demonstrate that a knowledge of Weber's political thought and action was essential if we were to grasp accurately his theory of power. This was an outstanding achievement, and Wolfgang followed it up by playing a leading role in editing a new, comprehensive edition of Weber's works; his dynamism was essential in pushing on towards its completion.

The Mommsens were related to Weber by marriage, so there was something particularly iconoclastic in Wolfgang's book, which caused a huge storm when it first appeared. Building on this, he went on to produce a wide range of studies on German liberalism and on imperialism. But in the central period of his career, it was as an academic politician and administrator that he made his mark. A spell as a British Council scholar in Leeds at the end of the 1950s had made him into something of an Anglophile: it was a mark of his acculturation that the best gift one could take him on a visit to Germany was a packet of plain English tea - Liptons, PG Tips or Brooke Bond, not the fancy concoctions that are all one can obtain in German grocery stores. So it seemed natural that he should take over as director of the recently founded German Historical Institute in London in 1977.

Wolfgang's energy quickly made the institute into the most important centre for British historians working on Germany. He raised large sums of money, building up a well-stocked library and moving the institute into spacious and elegant new premises on the corner of Great Russell Street and Bloomsbury Square. He attracted a brilliant generation of young German historians as research fellows. And above all, perhaps, he organised a string of important conferences, of which the most influential was held in 1979, on state and society in Nazi Germany. The vehemence of the clashes between those who argued that it all came down to Hitler, and those who argued for the primacy of structural forces, took many observers aback, and still reverberates today.

In such a setting, Wolfgang was in his element. His love of controversy found another outlet in his cogent contributions to the debate that raged in Germany in the mid-1980s over whether the time had come to draw a line under the Nazi past: Wolfgang was sharply critical of those, such as the rightwing historian Ernst Nolte, who thought it had. All of this was too much for the conservative government led by Helmut Kohl that came to power in West Germany in 1982, however, and Wolfgang was effectively forced to return to his chair in Düsseldorf in 1985, leaving the institute in less energetic hands.

Wolfgang quickly found another role as president of the Association of German Historians from 1988 to 1992, and in this capacity took a lead in arguing against those who saw German reunification as the opportunity for a more nationalist view of the German past. In the mid-1990s he produced his masterwork, a huge, two-volume history of Germany from 1850 to 1918, elegantly written, comprehensive, and full of stimulating insights and material scarcely known even to specialists. On their simultaneous retirement in 1996, the Mommsen twins spoke jointly at a seminars in London and Cambridge: their mutual competitiveness had not diminished with time, and it was almost impossible for other participants to get a word in edgeways as each launched into a string of criticisms of the other's paper.

Wolfgang was not always an easy character to work with; he could seem arrogant and self-important, though those who knew him well could see through these traditional social attributes of the German professor to the real man underneath. He was particularly kind to younger British historians, and made those of us who knew him feel that we were making an important contribution to explaining his country's past, whether we really were or not. His infectious, braying laughter enlivened many an academic occasion and revealed a lighter side to his nature.

His perpetual restlessness and youthful energy led him, in his 60s, after his children had grown up and left home, to leave his wife for a graduate student. However, the relationship did not last, and Wolfgang spent his final years in a bachelor apartment in Berlin, continuing to work on the Weber edition and to publish books, the most notable of which was a study of Germany's part in the origins of the first world war. He is survived by his wife Sabine and their four children. 

07.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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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1-10 21:22   좋아요 0 | URL
아 퍼갑니다 ^^ 최근에 하비의 "파리, 모더니티의 수도" 읽었는데, 1848과 1871 사이의 파리 모습들을 그리고 있어서 1848과 1871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답니다. 읽으면서 계속 전태일 열사, 광주항쟁(꼬뮌), 87대투쟁 등이 1848-1871 파리와 '동시대'로 읽히는 경험을 했습니다.
맑스 프랑스혁명 3부작과 에릭 홉스봄 다시 읽어보려고요. ^^

로쟈 2007-01-11 00:34   좋아요 0 | URL
공익을 위해서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