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신간들에 대한 언론 리뷰들 가운데 가장 그럴 듯했던 건 클로테르 라파이유의 <컬처코드>(리더스북, 2007)에 대한 것이다. 경제경영서로 분류되니까 평소에 내가 관심을 갖는 분야는 전혀 아닌데, 내용상으로 치자면 문화인류학서로 분류해도 되는 게 아닌가 싶다.

Clotaire Rapaille

 

 

 

 

 

저자 자신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이며 마케팅 구루"라고 하지 않는가. 애당초 소르본느대학에서 문화인류학 박사를 받았다고 한다(사진을 보니 호남형의 멋쟁이다). 원서는 랜덤하우스에서 나온 모양인데 아예 홈피(http://www.randomhouse.com/broadway/culturecode/index.html)까지 마련해두고 있다. 저자만큼이나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인가 보다. 하긴 지난주에 나온 책인데 알라딘에만 리뷰가 다섯 편이 올라와 있다. 팔리는 책은 팔리는 것일까, 아니면 특별한 마케팅 기법이 있는 것일까. 나는 리뷰 정도만을 그냥 읽어둔다(책은 나중에 도서관에나 들어오면 빌려봐야겠다).

경향신문(07. 01. 20) 미국이 싫어하는 말 ‘유혹’

왜 미국 사람들은 축구보다 야구에 열광할까? 왜 일본의 이혼율은 그렇게 낮을까? 왜 이탈리아 남자들은 여자들을 쉽게 유혹할까? 세계 제1위 화장품 회사인 로레알은 미국 시장에서 마케팅을 펼치면서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그것은 이제까지 프랑스에서 오랫동안 고수해왔던, 관능적이고 유혹적인 콘셉트의 광고를 포기하기로 한 것이다. 대신 미국에서는 로레알 제품을 쓰는 이유가 남성을 유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감을 갖기 위한 것이란 점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전략은 큰 성공을 거뒀다.

성공의 비결은 ‘컬처코드’에 있었다. 컬처코드란 ‘특정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일정한 대상에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의미’를 뜻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인의 컬처코드는 ‘조종’이다. 개척정신과 반항심리가 강한 미국인들은 조종당한다고 생각하면 이를 매우 불편하게 여긴다. 그리고 이들에게 유혹이란 곧 ‘조종’의 느낌이다. 따라서 로레알은 유혹이란 콘셉트를 포기하고 코드에 부합하는 마케팅을 함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인이 축구보다 야구에 열광하는 이유도 컬처코드에서 찾을 수 있다. 가정은 미국문화에 있어 가장 강력한 원형이다. 미국에서 가장 성스러운 의식인 추수감사절 만찬은 반드시 온 가족이 함께 모인 가운데 어머니의 집에서 치러진다. 따라서 미국의 국민적 오락인 야구가 세 개의 누(壘)와 하나의 홈으로 이뤄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미국에게 가정(홈)은 가장 강력한 이미지이며, 야구에서 점수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홈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이는 미국에서 패밀리 레스토랑이 인기를 끌게 된 것과도 무관치 않다.

저자의 분석에 따르면 부진을 면치 못하던 현대차가 미국에서 극적인 성장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미국인의 ‘개척자’ 코드에 부합하는 판매전략 때문이었다. 그들은 3년마다 새 자동차를 시험해 보기 원하며, 5년마다 새 텔레비전을 구입하려 한다. 따라서 미국인들은 완벽한 제품을 원하지 않는다. 대신 제품이 위기에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해줄 훌륭한 서비스에 더 민감하다. 현대차는 긴급출동 서비스와 대체차량 제공 등 최고의 서비스로 저가제품의 가치를 극적으로 높였다. “우리 자동차는 완벽하거나 특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분의 자동차를 계속 달리게 할 것입니다.” 현대차의 이런 메시지는 미국인의 코드를 만족시켰고, 이후 판매량은 극적으로 성장했다.

컬처코드라는 문화적 무의식은 전 세계 모든 인류의 행동과 삶의 방식을 바라보는 새로운 안경이다. 그리고 동시에 비즈니스의 성공을 위한 결정적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다. 저자는 문화인류학과 정신분석학과 마케팅의 만남이 빚어낸 독특하면서도 혁신적인 방법을 통해 세계를 새로운 방식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해 주고 있다.(정유진 기자)

07. 06. 20.

P.S. 다른 리뷰에서의 들고 있는 사례: "프랑스인들은 우아한 만찬 장소에서도 거침없이 섹스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돈 이야기를 하는 건 천박한 짓으로 여긴다. 미국은 반대다. 미국인들은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 섹스 이야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 그러나 돈에 관한 이야기라면 밤을 새워 해도 괜찮다."(매일경제)

 

 

 

 

이제 나의 관심은 두 가지이다. 한국인의 컬처코드와 러시아인의 컬처코드를 자세하게 다룬 책은 없는가, 하는 점. 그러고 보면, 진중권의 신간 <호모 코레아니쿠스>(웅진지식하우스, 2007)이 이런 류의 책이 아닐까 싶다. 혹은 작년말에 나온 강준만의 <한국 생활문화사전>(인물과사상사, 2006)이 이런 류에 들까. 아쉬운 건 러시아다. 아직도 <굿모닝 러시아>(지호, 2004) 외에, 문화사로서 <나타샤 댄스>(이카루스미디어, 2005) 외에 러시아 문화코드에 관한 '확실한' 책이 눈에 띄지 않는다. 거기에 문화인류학과 문화기호학적 분석까지 가미한 책이 올해는 출간되었으면 좋겠다(그게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된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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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 2007-01-20 20:11   좋아요 0 | URL
<나타샤 댄스>란 어떤 책일까.. 제겐 노래가 있는데 말이지요. 러시아 문화사로서의 <나타샤 댄스>, 제목이 재미있고 흥미롭습니다.

로쟈 2007-01-20 23:58   좋아요 0 | URL
잘 씌어진 러시아 근대 문화사입니다. 아직 품절되지 않았다면 장서용으로 구입하시길.^^

sommer 2007-01-21 16:01   좋아요 0 | URL
'컬쳐코드'를 '오브제 a'를 통한 집단적 주이상스로 옮겨도 무방하겠네요. 여기다 그 구멍들은 다시 자본으로 귀환한다는 것, 이 지점에 '시차적 관점'의 지젝이 잠시 정박해 있는 것 같습니다.

로쟈 2007-01-21 17:14   좋아요 0 | URL
‘특정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일정한 대상에 부여하는 무의식적인 의미’란 설명이 더 쉬운데요.^^
 

오늘 주문한 몇 권의 책들 가운데 하나는 라마찬드란 등의 <두뇌실험실>(바다출판사, 2007)이다. 아직 출간되지 않았는데, 사전 주문을 하면 올리버 색스의 <화성의 인류학자>(바다출판사, 2005)까지 끼워준다고 해서 '막판'에 주문을 넣었다. 그렇기도 하고 전작인 <뇌가 나의 마음을 만든다>(바다출판사, 2006)을 '최근에 나온 책들'에서 한번 다룬 바 있는 데다가 두어 달 전에 구하기도 해서 내친 김에 라마찬드란 컬렉션을 갖추기로 한 것(두 권이니까 컬렉션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저자는 이름에서 알 수 있지만 인도 태생의 뇌과학자이고, <뉴스위크>가 뽑은 21세기 가장 주목해야 할 100인 가운데 한 명으로 뽑히기도 했다고 한다. 출간된 첫해에 <이코노미스트>지의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었다는데, 그 '첫해'란 지난 1999년을 말한다.

사실 뇌과학 내지는 대뇌생리학의 임상자료를 바탕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써내는 저자의 원조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저자 올리버 색스이다. 작년에 한 출판사에서 재출간됐지만, 나는 지난 93년 살림터출판사에 나온 번역본을 갖고 있었다(어디 박스에 들어가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때는 사실 별달리 주목을 받지 못했던 책이다. 그러다가 지난 2005년 <화성의 인류학자>가 인기몰이를 하면서 한국에서도 일약 (준)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들어서게 된 것(국내에서 최근 몇 년간 강세를 보이고 있는 심리학 열풍과 무관하지 않다). 라마찬드란은 그 바톤을 이어받는 저자인데, <두뇌실험실>의 서문 또한 올리버 색스가 쓰고 있다. 그의 말: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은 우리 시대 가장 독창적인 신경학 책이다."

내용 소개를 읽어보면, 다 두뇌의 특정 부위 손상으로 말미암아 이런저런 통증을 호소하는 이들의 임상사례집처럼 보인다. "사고로 한쪽 팔을 읽었지만 계속해서 환상 팔이 움직이는 생생한 감각을 느끼는 아마추어 운동선수, 뇌졸중을 겪은 후 웃음을 통제할 수 없게 된 사서의 이야기. 또 머리에 끔찍한 중상을 입은 후 자신의 부모가 복제인간으로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한 젊은이" 등. 

"뇌과학계의 ‘셜록 홈스’라고 불리는 라마찬드란은 이 책에서 그가 해결한 가장 이상한 사례들과 함께 그것들이 인간의 본성과 마음에 대해 알려주는 통찰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면봉이나 거울과 같은 원시적인 도구를 이용해, 사라진 팔이 실재한다고 느끼는 환자에서부터 자신의 부모가 가짜라고 생각하는 환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경병 환자들을 연구한다. 그럼으로써 지금까지 그 어떤 과학자도 감히 도전하지 않았던 인간 본성의 심오하고 미묘한 질문들에 답한다. 우리는 왜 웃거나 우울해지는가? 우리는 어떻게 의사결정을 하며, 또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기만하거나 꿈을 꾸는가? 우리는 왜 신의 존재를 믿는가? 이 책은 인간의 마음이라는 마지막 남은 의학적 미개척지에 대한 의학적 탐사의 기록이다."

그러니까 흥미로운 지점은 각각의 임상사례로부터 '인간의 마음'에 대한 보다 일반적인 차원에 대한 탐사로 넘어가는 대목이다. 그리고 뇌과학계의 '홈스'와 색스는 그 유력한 길잡이가 되겠다. 노벨상 수상자인 프란시스 크릭은 이렇게 적었다: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고 싶은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다음주면 나도 읽어볼 수 있겠다...

07.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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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7-01-18 23:08   좋아요 0 | URL
이거 교양선데요...

로쟈 2007-01-18 23:31   좋아요 0 | URL
수정했습니다. '형기증'에도 오타가 있네요.^^ 좋은 아침 맞으시길...

비로그인 2007-01-18 23:34   좋아요 0 | URL
로쟈님 뇌과학에도 관심 많으신지요? 교양서 수준의 책들은 거의 범람할 정도인 듯한데 .. ( 읽어봐도 감흥이 오는 책이 별로 없어서..) 다치바나 다카시의 책이 있길래 반색했었는데 품절이더군요;

로쟈 2007-01-18 23:42   좋아요 0 | URL
몇몇 저자들만 읽습니다. 아주 유명한 책이라든가. 정신분석에 관심이 있다보니까 뇌과학이나 인지주의쪽에도 시선이 가게 되네요. 아니 원래는 별개의 관심사였던 것 같습니다. 다치바나의 책은 갖고 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에바 2007-01-19 00:21   좋아요 0 | URL
'아마존'에서 지젝의 <시차적 관점> 뒤에 있는 색인을 보니 조지프 르두의 이름이 보이던데 지젝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신체없는 기관>에선 데닛에 대해 꽤 호의적인 것 같은데요? 물론 어려운 내용이라 이해는 잘 못했습니다. ㅜㅜ

로쟈 2007-01-19 01:33   좋아요 0 | URL
저도 <시차적 관점>을 갖고만 아직 못 읽고 있습니다. 르두에 대해서는 'Synaptic Self'란 책을 인용하면서 두 페이지 정도 할애하고 있네요. 데닛에 관한 대목은 나중에 시간이 나면 올리도록 하지요. 나중이라...

sommer 2007-01-19 01:05   좋아요 0 | URL
에바/제가 지금 기억하기로는 인지과학을 '자유'와 연관지어 수용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대로 거칠게 말씀드리면, 자유를 자기 의식의 환상으로 설명하는 인지과학의 입장을 '자유와 필연성'의 일치로 수용하는 것 같습니다. 운명을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설명에서 운명 자체에 이미 필연적으로 그 길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예로 들고 있더군요...지젝에게 자유는 계속해서 리버럴한 것에 대한 부정으로서 등장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 않을까 싶네요...

머큐리 2007-01-19 09:05   좋아요 0 | URL
저도 사전주문해서 화성의 인류학자를 받고 싶은데... 지금은 안하나여?

이네파벨 2007-01-19 09:21   좋아요 0 | URL
좋은 정보 감사드립니다. 예전에 사이언스올제라고..Scientific American의 한국판 번역에 참여할 때...라마챈드런 박사의 글(공감각에 관한)을 번역한 일이 있습니다. 글을 재미있게 잘 쓰셨던걸로 기억...
(사이언티픽 어메리칸이라는 잡지...정말 멋집니다. 한동안 구독해보다가..자꾸 밀려서 지금은 안보고 있지만...약간의 지적 소양을 갖춘 비과학자 일반 대중이 과학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아주 좋은 매체죠...단...염치없는 이야기지만...국내 번역판보다 영어로된 SA 를 읽는 편이 이해가 빠릅니다. ^^)

사전주문...지금도 유효한지 달려가봐야되겠네요~ 지가 공짜라면 사족을 못써요..호호

이네파벨 2007-01-19 09:23   좋아요 0 | URL
X...벌써 이벤트 끝났나봅니다.
책값도 비싼데...나중에 도서관에서 빌려봐야쥐..흥...

로쟈 2007-01-19 11:16   좋아요 0 | URL
제가 본문에 '막판'이라고 적어드렸는데요.^^;

린(隣) 2007-01-19 12:57   좋아요 0 | URL
저도 하나, 이미 10년도 더 전에 철학동네에서 데넷 등의 인지이론을 통해 자유의 문제를 나름대로 제기한 책이 있지요. 이정원선생님께서 쓰신 <의식과 자유>(동녘)라고. 갠적으론 존경하는 선생님의 사모님이기도 하고, 전공쪽으로도 들뢰즈의 영화철학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가지신 몇 안 되는 분들 중 한 분이죠. 당시로선 아주 앞선 관심을 가지고 계셨고, 더구나 윤리학 차원에서는 거의 전례가 없지만, 스피노자의 행동학적 관점과 통하겠죠. 요즘 철학쪽에서 뇌과학 분야에 관심이 많지만 오래된 책은 잘 모르실거 같아 그냥 소개해요.

로쟈 2007-01-19 13:21   좋아요 0 | URL
책은 알고 있습니다. 얇은 책이어서 그냥 넘어갔더랬는데, 깊이 있는 책이었나 보네요...

moonnight 2007-01-19 14:25   좋아요 0 | URL
앗. 궁금해지는 책입니다! 색스의 책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만 읽었어요. 무지 재미있었는데도 화성의 인류학자. 랑 나는 침대에서.. 는 사놓고 아직 못 읽었어요.; 두뇌실험실도 색스의 것만큼 재밌을까요? 로쟈님의 리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로쟈 2007-01-19 16:19   좋아요 0 | URL
색스가 추천하는 책이니까요. 한데, 제 리뷰를 기다리시면 안되는데요. 1년에 두어 개 쓰는 형편이라.^^;
 

<쿤/포퍼 논쟁>(생각의나무, 2007)이란 책이 출간됐다. 제목이나 주제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닌데, '쿤과 포퍼의 세기의 대결에 대한 도발적 평가서'란 부제가 눈길을 끈다. 재작년에 출간된 원서의 표지에는 그런 부제가 붙어 있지 않으므로 국역본에 새로 붙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도발적'이라니까 흥미는 끈다. 분량도 230여쪽이어서 부담없고(원서는 143쪽이다).

소개에 따르면, "1965년 7월, <과학혁명의 구조>로 명성을 떨친 토머스 쿤과 <열린 사회와 그 적들>로 비판적 지성의 거장으로 주목받던 칼 포퍼가 만나 과학의 본성에 대해 토론했다. 그 한 번의 격돌은 지난 반세기 동안 공적 토론의 중심 주제로 군림해왔으며, 거기서 쿤의 다원론적 시각은 승리한 것처럼 보였다. 지은이 스티브 풀러는 논쟁의 주역들이 풀어놓은 이야기의 맥락이 완전히 오해되었다고 평가하며 쿤에 대한 집중적인 조명과 열광 속에 대중의 집단적인 판단 착오가 녹아있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그들이 대립한 쟁점은 과학철학뿐 아니라 매우 정치적인 문제와 관련을 맺고 있었다고 판단한다."



"풀러에 따르면 쿤은 과학의 개방성을 옹호하기는커녕 냉전의 압력에 맞닥뜨려 과학자들의 자율권을 지켜내려 애쓴 학자에 지나지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포퍼는 '열린 사회'를 옹호했던 그의 철학적 입장에 걸맞게 비판적 합리성의 기수로서의 과학을 옹호하며 나아갔다는 것이다. 독자적으로 MIT의 '쿤 아카이브'를 연구 고찰한 풀러는 쿤의 과학적 변동 이론에서 철학적 감시를 찾아볼 수 없음을 피력하며, 이를 바탕으로 과학자 사회에 지나치게 부여된 독자적 권한을 되찾아오고자 노력한다. 세기의 대결에 대한 이 급진적 평가서 속에는 쿤/포퍼 논쟁의 맥락을 짚어주는 섬세하고도 정교한 지침이 숨어 있다."

그러니까 책은 과학철학사의 이 세기의 논쟁을 일종의 추리소설로 재독해하는 재미를 줄 듯하다. 게다가 마지막 장의 제목은 '토머스 쿤은 미국의 하이데거인가?'이다. 별로 웃을 일이 없던 차에 슬며시 웃음을 머금게 하는 주제이고 구성이다.

 

 

 

 

사실 이 주제/논쟁과 관련하여 참조할 만한 책들은 많이 나와 있다(이전에 소개한 바도 있고). 먼저, <현대과학철학 논쟁>(아르케, 2002)은 이 논쟁의 '원문'을 읽어볼 수 있게 해준다. 물론 스티브 플러가 참조하고 있는 건 '쿤 아카이브'이며 이러한 공식적인 논쟁의 이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를 탐색하는 것이지만. 그리고 지아우딘 사르다르의 <토마스 쿤과 과학전쟁>(이제이북스, 2002)은 쿤의 과학철학과 그 사회학에 관한 가장 읽기 쉬운 소개서이다. 이 주제에 처음 관심을 갖는 독자라면 제일 먼저 손에 들 만하다.

그리고 평전 <토머스 쿤>(사이언스북스, 2005). 소개에 따르면 "토머스 쿤 위에 두껍께 쌓인 오해의 먼지를 날려 버리는 책. 저자들은 토머스 쿤의 저술들을 조심스럽게 독해하여, 쿤이 <과학 혁명의 구조>를 중심으로 하여 과학사와 과학 철학에 대하여 이야기하고자 했던 바를 생생하게 재현해 낸다." 그리고 포퍼의 과학관/세계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 그의 에세이집 <삶은 문제해결의 연속이다>(부글북스, 2006). "눈부신 과학발전, 탐욕과 독선으로 빚어진 두 차례의 세계 대전 등 21세기 격동의 역사를 온몸으로 산 지은이가 인생 마지막 25년 동안 에세이 형식으로 자신의 철학을 간추"린 책이다.

 

 

 

 

쿤과 포퍼와 주요 저작들은 물론 번역/소개돼 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 <과학으로 생각한다>(동아시아, 2006)는 한겨레에 연재됐던 글들을 모은 것인데, '과학 속 사상, 사상 속 과학'에 해당하는 넓은 범위를 다룬다. "뉴턴에서부터 인공지능까지 현대 과학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과학자들의 사상을 다양한 학문 분야로 확장, 통괄하면서 펼치는 유쾌한 지적 파노라마. 과학자들이 세계를 보고 생각했던 다양한 방식을 인문학적, 사회적으로 되짚으며, 일상에서 어떻게 위대한 과학적 아이디어가 출현했는지, 그 과학적 사상이 세계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지 다"루는 책으로 당연히 쿤과 포퍼에 관한 내용도 포함돼 있으며 이 논쟁의 배경이 될 만한 이야기거리들을 읽어볼 수 있다...  

07.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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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1-18 16:52   좋아요 0 | URL
로쟈님 페이퍼만 보면, 관심만 있고, 손 못대고 있는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님을 알게 됩니다. -_- 관심과 욕심만 많아가지고.

로쟈 2007-01-18 16:54   좋아요 0 | URL
저는 손만 댑니다.^^

나비80 2007-01-18 18:37   좋아요 0 | URL
인기 많은 학자들이라 논술시장 들썩이겠네요. 요즘은 그 쪽 업계가 최신경향을 가장 빠르게 반영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랍니다.^^

로쟈 2007-01-18 18:40   좋아요 0 | URL
<과학으로 생각한다> 말씀이시군요. 생각의 폭은 넓혀주는 교양서일 텐데, 구체적으로 논술과는 어떤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대개의 학생들은 생각 이전에 문장도 안되는 형편이어서...

나비80 2007-01-18 19:00   좋아요 0 | URL
그뿐 아니라 '토머스 쿤'이나 '칼 포퍼'란 학자 자체가 워낙 대중적(?)으로도 알려져 있어 깊이 있게 읽히기 보다 다이제스트 식으로 핵심정리되는 것을 줄 곧 보아 와서요. '문장도 안되는 학생들'에게 가라타니 고진이라든지 지젝을 주입하고 어떤 논술문을 기대하는 건지... 사실 대학도 별반 다를 바 없죠. 학부생들 레포트 제대로 자료 정독하고 써냅니까. Ctrl+c, Ctrl+v면 다 되는 세상이니까요.

로쟈 2007-01-18 19:06   좋아요 0 | URL
"데카르트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머릿속에 지식을 가지고 태어난다는 철학을 '이성주의' 또는 '합리주의'라고 합니다."이게 유치원생과 초등학교 1학년을 위한 '철학동화'에 들어 있는 '해설'입니다. 이 '똑똑한' 어린이들이 자라면 좀 달라질까요?..
 

원고 때문에 미적거리고 있다가 맑은 정신도 아니어서 북리뷰들이나 읽어보았다. 그 중에서 지난주에 출간된 홉스봄의 자서전 <미완의 세기>(민음사, 2007)에 관한 리뷰를 하나 옮겨온다.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라 말미에 편집과정에서 빠진 대목들이 지적되고 있어서이다.

동아일보(07. 01. 13)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미완의 시대’

‘오리엔탈리즘’에서 서양의 동양 지배를 정당화하는 담론을 신랄하게 비판한 에드워드 사이드. 그가 펴낸 자서전의 원제는 ‘Out of Place(제자리를 벗어난)’였다(*어느새 품절이군). 사이드는 팔레스타인계이지만 영국식 교육을 받았고 아버지가 조국이라고 가르친 미국에서 대학을 다녔다.

한평생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으로 어디에도 뿌리내릴 수 없는 망명객으로 살았던 이 비범한 문화비평가는 불행한 이방인의 삶을 학문의 원동력으로 삼았다. 아마도 진정한 지식인은 관찰자이자 외부자로서 살아야 하는 고독한 숙명을 타고나는가 보다.

에릭 홉스봄 역시 한평생 어디서나 이방인 취급을 받았다. 홉스봄은 근대 유럽이 걸어온 파란만장한 길을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극단의 시대’ 등 4권의 명저로 담아낸 역사가. 올해 아흔 살의 노(老)역사가는 국경의 울타리를 넘어 역사학에서 보편주의를 일관되게 추구해 온 좌파 지성인이다.

그는 영국계 유대인이면서 이집트에서 태어나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스라엘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최고 마르크스학자였지만 그의 저서는 소련에서 판금됐다. 이 불행한 경험은 홉스봄의 역사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역사는 격정과 감정, 이념으로부터 거리를 둬야 하며 특히 ‘일체감’이란 유혹을 멀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사에 필요한 것은 자신의 뿌리를 넘어설 수 있는 능력이라는 얘기다.

“(이방인의 삶은) 개인으로서는 고달팠지만 역사가로서는 각별한 자산이었다”고 회상한 노역사가의 자서전 ‘미완의 시대’가 번역 출간됐다. 그에게 20세기는 ‘흥미로운 시대’다.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그리더니 자서전에선 흥미로운 시대로 봤다. 역설적이다. 어쩌면 어느 세기보다 끔찍한 침략과 전쟁이 벌어진 20세기를 통째로 살아내며 해석해야 했던 자신의 삶을 은유한 것이리라.

노역사가의 회고는 자신이 왜 공산주의자가 됐는지에 대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어린 홉스봄은 베를린에서 나치의 등장을 지켜봤다. 한편에서는 세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다. 대중시위에 참여하면서 느꼈던 ‘집단 황홀경’과 피억압자에 대한 연민 등이 그를 공산주의로 이끈다. 시간이 흘러 그가 삶을 바쳤던 공산주의 이념은 스탈린주의로 왜곡됐고 20세기가 끝날 무렵 종언을 고한다. ‘공적인’ 역사가 노역사가의 ‘사적인’ 삶과 맞물려 쉼 없이 펼쳐진다. 680여 쪽이나 되는 기나긴 회고 내내 자신의 과거를 바라보는 노역사가의 시선은 윤색이나 자기연민 없이 놀라울 정도로 정직하고 객관적이다.

무엇보다 이 자서전의 백미는 노역사가가 오늘의 역사학에 던지는 준엄한 경고. 이 경고는 21세기 초 논쟁의 지뢰밭이 된 한국 역사학에도 긴요하다. “자기 목적에 부합되는 과거를 원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정되고 날조되는 역사가 늘어난다…오로지 (특정) 집단을 위해서만 씌어진 끼리끼리 역사(일체감의 역사)는 역사로서는 함량 미달이다.” 한국 사회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본 것처럼 뜨끔한 노역사가의 일갈이다.

막강한 대영제국이 졸지에 사라지고 1000년을 갈 것처럼 보였던 독일제국이 무너지는 것을 본 노역사가. 그는 자서전의 끝을 이렇게 맺는다.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의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관찰자이자 이방인이면서도 역사와 시대에 뛰어들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 학자의 거친 숙명임을 웅변하는 듯하다. 그래서 20세기는 그에게 ‘미완의 시대’다. 편집 과정에서 8장 ‘반파시즘과 반전투쟁’부터 11장 ‘냉전’까지의 주석이 빠진 것이 옥에 티. 원제 ‘Interesting Times’(2002년).

07. 01. 16.

P.S. 2002년에 출간된 책임에도 도서관에 원저가 안 들어왔길래 구입신청을 해놓았다. 원저가 464쪽. 번역본은 692쪽이다. 번역본의 경우 대개 30% 정도씩 증면되는 듯하다. 책값? 중고본들은 훨씬 싸지만 새책의 경우에도 원서는 21불, 배송비 포함하면 3만원 정도에 구입할 수 있겠다(새책 수준의 중고본은 2만원대에 구입이 가능하다). 가격이 더 다운되지 않는 건 하드카바이기 때문. 국역본은 25,000원(10% 할인가가 22,500원인데, 요즘 나오는 책들에 비해 특별히 비싼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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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1-16 09:13   좋아요 0 | URL
아니; 편집 과정에서 3장이나 주석이 빠진 것이 '옥의 티'일 수 있는 건가요? 그 정도면 새로 찍어야 되는 중대한 실수일 것 같은데. 모두 내용주가 아니라 인용 문헌을 알려주는 주라고 하더라도, 말이 안 되는 실수 같습니다...
어쨌든 ^^; 퍼갑니다. 에렉 홉스봄 아저씨가 어느새 아흔살 이라니..

로쟈 2007-01-16 13:50   좋아요 0 | URL
실물을 아직 못 봐서 잘 모르겠는데, '흔한' 실수라고 판단한 것이겠죠...
 

중견작가 김영현씨가 신작소설을 냈다. <낯선 사람들>(실천문학사, 2006). 소설집이 아니라 전작 장편소설이다. 300쪽 남짓이니까 분량이 두툼한 건 아니지만. 특이한 건 노골적으로 러시아작가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베끼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작가들은 구원론적인 주제를 탐구하려면 도스토예프스키적인 걸 다뤄야 한다는 강박증을 갖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몇 년전에 읽은 것으로 역시나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주제를 다룬 정찬의 <그림자 영혼>(세계사, 2000)도 아주 실망스러웠다).

아래 인터뷰기사를 보면, 작가 자신이 '문학의 제2기'에 들어선 것 같다고 고백하는데, "당분간은 종교적 탐구를 계속해 보고 싶"다는 그의 마지막 멘트가 기대보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사실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야말로 광신도적인 신앙에도 불구하고 종교적 구원에 대한 회의를 끝까지 밀고간 작가가 아니었나(왜 우리 주변엔 인도로 가거나 수도원으로 가는 작가들만 있는 것인지? '당대적 현실'은 어디로 간 것인지?). 

한국일보(07. 01. 15) '낯선 사람들' 낸 소설가 김영현

소설가 김영현(52)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은 이렇다. 리얼리즘, 낭만, 서정, 민중문학, 민중운동, 학생시위, 긴급조치 위반, 구속, 고문…. 실천문학사 대표라는 현재 직함이나, 낭만적 색채 짙은 그의 리얼리즘이 민중문학의 발전이냐 퇴보냐를 놓고 뜨겁게 벌어졌던 1990년대 초의 ‘김영현 논쟁’을 기억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가 4년 만에 새 장편소설 <낯선 사람들>(실천문학사)을 펴냈다.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저 열거된 단어들의 어떤 기색도 찾아보기 어렵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을 표나게 원용한 그의 이 신작은 욕망과 원죄, 악령과 신성이라는 종교적이고 존재론적인 주제를 탐구한, 말 그대로 도스토예프스키적인 작품이다.

“이제야 비로소 김영현 문학의 제2기에 들어선 것 같습니다. 이제 겨우 패배감의 터널에서 빠져 나와 문학적으로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그는 말했다. 운동을 할 때는 그래도 내 삶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고통도 감내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편안한 것 자체도 감수하기 힘겹다고. “우리처럼 오랫동안 운동권에 있었고, 아직도 몸 속에 그 많은 상처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2000년대로부터 조롱당하는 것 같은 참담함과 좌절감을 느껴왔죠. 지금의 세계는 좋게 말하자면 다원화한 노마디즘의 세계지만, 다른 면에선 일종의 무정부 상태예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 채 내던져진 존재가 돼버린 거죠. 오지 여행도 많이 하고, 러시아 문학도 다시 읽고 하면서 이제야 내가 어떤 문학을 해야 할지 알게 됐습니다.”

피살된 아버지와 그의 아들들의 비밀을 추리소설 기법으로 파헤친 <낯선 사람들>은 이런 회의와 고통의 소산이다. 소설은 파렴치한 수전노 아버지와 그의 걸신들린 욕망이 낳은 배 다른 아들들의 갈등을 축으로 하는데, 이 소설에서 수도원 신학생인 차남 성연이 아버지의 진짜 범인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윤리적, 존재론적 갈등은 오롯이 작가 자신의 것과 겹친다.

“성연이 수도원을 떠나 첫 사랑 안나를 찾아나서는 결말을 통해 이 세상에서 사랑하고 부대끼고 하는 것이 우리들에게 주어진 숙명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수도사처럼 침묵 속에서 생을 완성해가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릴 때가 많아요. 하지만 얄궂은 운명 속에서 관계를 맺었다 해도 이 누추한 삶을 껴안고 살 수밖에 없지 않느냐, 그게 의미 있는 삶 아니냐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인간과 함께 피의 역사가 시작됐지만 사랑의 역사도 시작됐고, 그게 우릴 구원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요.”

김영현의 작품을 김영현적이라 하지 않고 도스토예프스키적이라고 말하는 게 미안하지만, 작가는 <낯선 사람들>이 도스토예프스키를 비롯해 체홉, 투르게네프 등 러시아 작가들의 방법론을 활용해보려는 거대한 구상의 첫 작품이라고 말한다. “소설을 쓰지 않는 동안 고전으로 다시 돌아가봐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침체된 우리 문학을 위해 고전적 주제와 품격, 구도를 가진 문학을 다시 재건해내야겠고 생각했어요. 박완서 이문열 같은 1세대 작가들과 유행에 휩쓸리는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텅 빈 중간세대로서 제가 할 일은 이거다 싶었습니다.”

이제 무엇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화력 강한 위장이 생긴 것 같다는 그는 “저도 제 자신에게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회사에는 한 달에 1주일은 집필실에 들어가있겠다고 선포까지 했다. “작가는 평생 삶의 화두를 찾아 떠도는 자기 시대의 수도사입니다. 저는 삶의 의미라는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 막막한 우주에 영혼이라는 이토록 정교한 장치들이 존재한다는 게 바로 그 증거일 겁니다. 그걸 기독교가 말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당분간은 종교적 탐구를 계속해 보고 싶네요.”(박선영 기자) 

07. 01. 15.

P.S. 미완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서 주인공 알료샤는 수도원을 나와 (창작 메모에 따르면) 나중에 테러리스트가 된다(구원은 그 다음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기 시대의 수도사'가 아니라 '자기 시대의 테러리스트'가 아닐까?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기 전까지는 결코 삶의 의미 따위를 구걸하지 않겠다는 다부진 결의로 무장한. 러시아 작가들의 방법론의 '한국화'에 대해서 우려를 갖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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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1-15 21:55   좋아요 0 | URL
퍼갑니다. 종교적 탐구를 기원으로 타인의 구원으로 나아가는 방향도 있겠지요. ^^ 물론 저는 그 방법에 '동감'하지는 않지만, 전적으로 반대하기도 힘든 것 같습니다.

로쟈 2007-01-15 22:04   좋아요 0 | URL
저는 구도소설 따위를 믿지 않습니다. 소설이 핑계가 되는. 그보다는 종교가 핑계가 되는 소설이 더 윗길이라고 생각해요. 차라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의미라는 환상이 아니라 궁극적 의미의 불가능성 아닐까요?..

나비80 2007-01-16 15:34   좋아요 0 | URL
타인은 겨냥하고 자신은 관조하는 소설들이 낙양의 지가를 올린 때가 있었죠.
어떤 공교로움이나 불가해성의 측면에서 본다면 참 모순되는 행위인데 말이죠. 그나저나 저 역시 로쟈님이 말씀하신 궁극적 의미의 불가능성의 관점에서 삶을 환유하는 입장입니다. 뭐 제 자신의 가치관에 뚜렷한 기준이 서 있는것도 아니지만. 홍상수 식으로 말하자면 "그깟 오해와 편견의 기준"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