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황실사에 비춰본 '신한사태'] 

후계구도 둘러싼 싸움은 누구 하나 이로울 것 없는 이전투구 

<2인자. 신상훈 신한금융지주 사장은 그렇게 불렸다. 2인자는 한순간에 인생의 멘토를 잃었고 아끼는 후배에게서 공격을 당했다. 신한은행 측은 신 사장이 은행장 시절 부당 대출로 회사에 손해를 기쳤고 이희건 신한은행 명예회장의 자문료를 횡령했다고 주장했다. 신 사장이 혐의를 전면 부인하는 가운데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일부에서는 이번 사건을 라응찬 회장과 신 사장의 권력 다툼으로 해석한다. 강력한 결속력을 자랑하던 신한의 리더 그룹이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넌 이유는 뭘까. 라 회장과 신 사장의 거취는 어떻게 판가름날까. 역사 속에서 실마리를 풀어 봤다.<편집자>> 

-군주정에서는 비록 형제지만 군주가 된 왕자와 되지 못한 왕자 사이에 하늘과 땅 차이라 할 정도로 괴리가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이로 인해 왕자 사이에 왕위 계승을 둘러싼 암투가 벌어진다. 이를 막기 위해 태자 제도가 생겼다. 미래의 임금인 태자는 군주정에서 명실상부한 2인자지만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금지했다. 그래도 태자는 상당한 권력을 행사했다. 

  대개 적장자가 태자가 되지만 군주의 의향에 따라 바뀔 수 있으므로 군주와 태자 사이가 원활하지 못하면 태자 자리를 놓고 아들간 암투가 벌어졌다. 나쁜 소문을 퍼트려 태자를 실각시키려는 음모도 많았다. 이 때문에 부자인 군주와 태자 사이에 불화가 일어나곤 했다.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신한금융지주의 한 중역은 라응찬 회장과 신상훈 사장의 관계가 원만했다고 말했다. 보이지 않는 암투의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온 것은 라 회장이 4연임을 결정하고 장기집권에 들어간 때부터였다고 한다. 물려주는 이도, 물려받는 이도 '후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자 교체 문제로 골머리를 앓은 중국황제가 한둘이 아니지만 이 가운데서도 청나라 강희제(재위1661~1722)와 한나라 무제(재위BC140~87)는 매우 비극적이었다. 

  청의 4대 황제로 남명 정권을 무너뜨리고 중국 전토를 통일해 청조를 반석에 올려놓은 강희제는 아들이 35명이었다. 이 가운데 둘째 아들 윤잉만 황후가 낳은 자식이었다. 강희제는 윤잉을 유독 총애해 이듬해 태자로 지명했다. 당시 강희제는 만21세(1654년생)였으므로 태자 선정을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태자는 한문에 능총하고 기마와 궁술에 뛰어난 청년으로 자랐으나 점차 품행이 걷잡을 수 없이 나빠지고 있다는 소문이 궁중에 떠돌았다. 소문은 강희제의 귀에도 들어갔다. 고리타분한 유학자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자란 태자는 장성하자 패거리를 만들었다. 태자는 유흥비를 마련하려고 비밀리에 청탁을 받아 강희제에게 부탁했다. 자식 사랑에 눈이 먼 강희제가 청탁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태자를 중심으로 당파가 생겼다. 급기야 태자가 정변을 꾀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강희제는 강희 47년(1708)가을 태자를 불러 폐위 선고를 내린다. 폐위 선고를 한 후 강희제는 신하들 앞에서 통곡했다고 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이백순 신한은행장이 거사를 감행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라 회장이 이번 일의 진행 상황을 몰랐을 리 없다고 수군댔다. 라 회장은 묵묵부답이다. 

  강희제는 폐위된 태자가 반성하는 빛을 보이면 복위시킬 생각이었다. 결국 다른 황자들이 태자가 되려고 노골적으로 암투를 벌이자 이듬해인 강희 48년 봄 다시 태자로 책봉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심각한 문제가 일어났다. 

1인자와 2인자 사이의 미요한 간극 

태자의 추종자들이 활개를 쳤고 태자가 쿠데타를 꾀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음모는 처음에 태자의 반대파가 지어낸 것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사실이 됐다. 태자파는 황제가 의심하고 있으므로 다시 폐위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정변 음모를 진행했다. 강희51년(1712)강희제는 다시 태자를 폐위하고 구금했다. 

  강희61년(1722)11월 건강이 악화된 강희제는 북경에 있는 아들을 불렀다. 모은 아들은 3자, 4자, 7자, 8자, 9자, 10자, 12자, 13자로 모두 여덟이었다. 대신으로는 융과다가 유일했다. 강희제는 융과다에게 누구를 후계자로 정했는지 전했다. 후계자는 4자 윤진이었다. 그가 옹정제(재위1722~1735)다. 

  그러나 곧 옹정제가 속임수로 황제가 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강희제가 자신을 닮아 총애하던 12자에게 황위를 물려준다고 쓴 종이를 옹정제가 훔쳐 변조했다는 내용이었다. 지금까지도 명확히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이 음모설은 당시 옹정제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래서 옹정제는 이른바 '태자밀건법'을 곤안했다. 태자를 정하되 발표하지 않고 그 이름을 종이에 써서 상자에 넣어 보관했다. 황제가 임종하면 상자를 여는 방법이다. 이 제도로 청에서 더 이상 태자파는 생기지 않았고 여러 왕자는 늘 수양하고 자제하는 자세를 보였다.  

  라 회장이 태자밀건법을 완수한 데서 이번 일이 일어난 것일까. 어느 시중은행 임원은 "후계구도를 점칠 수 없는 상황에서 2인자, 3인자가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한무제 역시 태자와 갈등으로 일족이 죽음을 맞는 비극을 겪었다. 한 무제 유철에게는 진 황후가 있었으나 아이를 낳지 못했다. 고대하던 아들은 BC128년 손위 누이의 집에서 첫눈에 반해 데려온 가기 위자부가 낳았다. 무제는 아이 이름을 유거라 지었다. 이후 진 황후는 BC130년 폐위되고 위자부는 황후로 책봉됐다. 유거는 만 6세에 태자가 됐다.  

  순행과 대외원정을 자주 했던 무제는 태자가 15세가 되자 자신이 수도를 비운 동안 섭정을 하도록 했다. 온화하고 신하의 말을 경청하는 태자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다 흉노 원정으로 공을 세운 태자의 외삼촌 위청이 BC106년 죽자 태자와 의견 충돌을 빚었던 관료가 그를 폐위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평소 신선술과 미슨을 믿던 무제는 노년이 되자 편집증이 심해 졌다. BC91년 병상에 누운 무제는 자신의 병을 측근들의 무고(주술로 특정인을 해치는 행위)탓이라고 여겼다. 비밀경찰 총수인 강충은 이를 이용해 정적을 제거해 나갔다. 우선 무제의 두 공주와 위청의 아들이 처형됐다. 태자와 사이가 좋지 않은 강충은 태자의 궁전에 주술 인형을 묻어 놓고 무고의 증거를 찾아냈다고 발표했다. 황제를 무고하는 것은 대역죄였다. 

  태자는 스승인 석덕과 대책을 논의했고 석덕은 시황제의 태자 부소가 억울하게 죽은 예를 들며 거병을 권고했다. 태자는 해명하러 별궁에 있는 무제를 찾아가려 했으나 강충의 사자가 이미 별궁으로 갔다는 것을 알고 군사를 일으켜 강충을 죽였다. 그러자 태자가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오해한 무제는 진압을 명령했고 수도 장안에서 5일간 시가전이 벌어졌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태자는 장안을 탈주했고 그의 처자는 모두 죽었다. 

  한 젊은 관리가 목숨을 걸고 태자를 변호해 무제의 노려움은 누그러졌으나 사면령을 내리지는 않았다. 태자 유거는 은신처가 포위되자 목을 매 자살했다. 위 황후도 폐위될 것을 알고 역시 자살했다.  

  이번 일이 사상 초유의 사태라 불리는 이유는 30년을 이어온 '신한'의 이미지 실추를 감수하면서까지 신 사장의 행보를 틀어놓은 라 회장의 결단이다. 검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든 라 회장, 신 사장, 그리고 신한이 모두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게 금융가의 관측이다. 

  2년 후 무제는 태자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깨닫고 강충일족을 처형했다. 유거의 유일한 손자이며 후손인 유순은 훗날 소제(재위BC87~74)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됐고 유거를 복권시켰다. 유거는 여채자(참회하지 않는 태자)라 불린다. 

  "(라회장이 신사장을)미워서 미워한 게 아니다."신한금융지주 고위 관계자는 조직의 권력 구도를 한탄했다. 이 관계자는 "이행장이 지주사 사장이 된다 해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신한은 되돌아올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일까. 

   이윤섭 역사연구가 <천하의 중심 고구려>등 저술         

-<이코노미스트>제1054호p26~27- 

역사의 한 면을 통해서 오늘날의 사건을 이해하려는 태도가 너무 

도 빛난다. 과연 후계구도와 관련된 위의 두가지 일화가 신한사태 

와 맞아떨어지는지는 아직 모를 일이지만, 이해의 단초를 역사에 

서 찾는 자세가 우리에게 많은 시사를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10년 6월이다. 다음달에 연수를 간다. 연수에 앞서 많은 책을 읽었다.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I LOVE COFFEE and CAFE 아이 러브 커피 앤 카페- 친절한 바리스타C 커피를 부탁해
이동진 지음 / 동아일보사 / 2008년 12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0년 10월 22일에 저장
품절

셰익스피어의 시대
프랭크 커모드 지음, 한은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05년 5월
8,000원 → 7,200원(10%할인) / 마일리지 400원(5% 적립)
2010년 10월 16일에 저장
절판
수난이대
하근찬 지음, 정호웅 해설 / (주)하서 / 2008년 6월
6,900원 → 6,210원(10%할인) / 마일리지 340원(5% 적립)
2010년 10월 15일에 저장
품절

링컨 당신을 존경합니다
데일 카네기 지음, 임정재 옮김 / 함께읽는책 / 2003년 3월
12,000원 → 10,800원(10%할인) / 마일리지 600원(5% 적립)
2010년 10월 10일에 저장
절판



7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2 - 우리말로 옮겨진 고전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교수신문 엮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고전은 처음 학문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많이 읽는다. 하지만 결코 좋은 번역을 찾기란 어렵다. 훌륭한 선생님께 묻지 않는 이상,, 혼자 힘으로 좋은 번역 도서를 스스로 찾기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런 책을 원했다. 내가 바라던 책이다.  

이 책은 초학자들에게 망망대해로 출발하는 배를 안내하는 등대와도 같은 존재가 될 것이다. 이런 책이 계속 출판되길 바란다. 간절히 바란다.  

내가 읽은 책이 유명한 고전임에도 너무도 재미없고 부드럽게 읽히지 않는다면, 번역이 깔끔하지 못함을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 그동안 내가 읽었던 고전에 잘못된 번역이 많다는 것을 비판적으로 상기하게 만든다. 

이 책은 2009년 6월 9일부터 동년동월 22일까지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년 6월에 읽은 책이다. 2009년 6월은 너무나 가혹한 무더위의 시작을 알리는 시간이었다. 좋은 책을 많이 읽었다.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2- 우리말로 옮겨진 고전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교수신문 엮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16,000원 → 14,400원(10%할인) / 마일리지 800원(5% 적립)
2010년 09월 26일에 저장
품절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우리말로 옮겨진 고전,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교수신문 엮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7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2010년 09월 25일에 저장
품절


2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최고의 고전 번역을 찾아서 - 우리말로 옮겨진 고전, 무엇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교수신문 엮음 / 생각의나무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나는 이런 책을 원했다. 너무도 아름다운 책이었다.  

나는 책을 읽다가 왜??? 원서는 이토록 유명한데 이렇게 재미없지,,,너무 딱딱한데,,,,너무 거칠다. 등등의 생각을 많이 가졌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수많은 고전번역서가 있다. 그러나 아무 책이나 선택했다가는 큰코 다칠 수 있다. 특히 막 공부에 뜻을 두고 고전을 읽기 시작한 초중고등학생에겐 절대 아무 책이나 선택해 보여주면 안될 것이고, 절대 아무책이나 선택하도록 방관해도 안될 것이다. 

이 책은 고전을 읽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등대와도 같은 책이다. 이 책은 수많은 저명학자들께서 직접 많은 고전번역서를 분석해 보고 가장 적절한 고전을 추천한 책이다. 또 고전을 읽는 방법도 가르쳐 준다.  

이런 책을 원했다. 나는 이런 책이 나오길 기대하였다. 내가 이 책을 읽을 때 마치 망망대해에서 반짝이는 등대를 본 것 같은 기쁨을 느꼈다. 이 글을 써준 많은 학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또 계속 이런 글을 출판해 주길 바란다.  

이 책은 2009년 5월 19일부터 동년 6월 5일까지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