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먼저 음악이 먼저
정준호 지음 / 삼우반 / 2006년 11월
품절


동지는 지금은 12월 21일이나 과거 율리우스 달력으로는 12월 25일에 해당했기에, 초기 기독교가 로마에 전도되면서 이 날을 예수의 탄생일로 정해 기리도록 한 것이다.
부활절 역시 소생과 봄을 찬양하는 게르만의 춘분 축제가 유대교 최대의 명절인 유월절 행사와 결합해 시작된 것이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부활절을 춘분이 지난 뒤 첫 보름이 되는 주의 일요일로 정했다. 자연히 그 앞의 금요일이 예수 수난일, 즉 聖금요일이 된다. 그리고 이 부활절 40일 전부터 예수의 고난을 기억하며 육식을 피하는 사순절이 시작된다. 그 직전에 고기와 술을 먹고 즐겁게 노는 일종의 해방구를 갖도록 했으니, 이것이 바로 사육제이다.
'육식을 사절한다'는 뜻의 이 한자어는 바로 '카니발'의 번역어이다.
.................
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쾌락을 넘어서 내 안에 다른 생명을 취함으로써 영성을 얻고자 하는 주술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29-131쪽

'발라드(Ballade)'는 본래 문학에서 쓰는 말로(물론 시와 노래가 엄격히 구분되기 이전에 나온 말이긴 하다), 전설이나 민담을 줄거리로 한 '담시'를 말한다. 낭만주의 시대에 특히 발달하기 시작했고, 영국 시인 워즈워스와 콜리지의 <서정 민요집>(1798),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툴레의 왕' 그리고 '마왕', 하이네의 '로렐라이'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2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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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싫다고 말해요 - 나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키는 책
베티 뵈거홀드 지음, 이향순 옮김, 가와하라 마리코 그림 / 북뱅크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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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성폭행을 당했을 때
1. 아이가 말하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범죄에 관한 한 어린이가 거짓말을 하는 경우는 드무니까요.
2. 침착해야 합니다. 격앙된 반응은 아이를 더욱 혼란스럽게 합니다.
3. 아이에게 이제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고, 또한 아이 자신의 잚소이 아니라고 재확인시킵니다.
4. 자녀를 위해 전문가의 도움을 구합니다.
5. 범죄자를 신고합니다. -30쪽

몸의 소중함을 알게 합니다.

몸의 각 부분의 명칭과 기능을 교육하고 수영복으로 가려지는 부분은 더 중요한 부분임을 알려 줍니다. 따라서 함부로 장난치거나 아무나 만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가르쳐 주고, 내 몸이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몸도 소중하므로 다른 사람의 몸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도 덧붙여야겠지요. -31쪽

'좋은 접촉'과 '나쁜 접촉'의 구별

포옹이나 악수처럼 사랑이나 친밀감을 표현하는 접촉은 좋은 접촉입니다. 그리고 청결이나 진료 등을 위해 꼭 필요한 접촉도 좋은 접촉입니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접촉과 기분이 나빠지는 접촉은 나쁜 접촉입니다. 꼭 성폭력이 아니더라도 원하지 않는 접촉일 경우에는 '거절'할 줄 아는 용기가 필요하겠지요. 또 상대가 원하지 않거나 기분이 나빠지는 접촉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줘야 합니다. 특히, 소중한 부위는 '건강과 안전' 혹은 '청결'을 위해서만 만질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을 알려 주세요. 그래서 부모도 함부로 만질 수 없는 곳이라는 개념을 심어 주세요.-31쪽

두 가지 '용기'에 대해 가르쳐 주세요.

소중한 몸을 누군가 함부로 만지려고 할 때 "싫어요", "안돼요"하고 말할 수 있는 것이 한 가지 '용기'입니다. 더불어 "안돼요", "싫어요" 하도록 배웠지만 때로는 무서워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있음을 알려 주세요. 그럴 때 빨리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이야기하여 도움을 청하는 것도 또 한가지 '용기'임을 가르쳐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성폭력 피해가 있을 때 자신이 거절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성폭력 피해를 입은 건 아이 탓이 아님을 알도록 해 주세요.-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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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지음, 유영미 옮김, 우석훈 해제, 주경복 부록 / 갈라파고스 / 2007년 3월
구판절판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2006년 10월 로마에서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2005년 기아로 인한 희생자 수를 집계했다. 2005년 기준으로 10세 미만의 아동이 5초에 1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으며, 비타민 A 부족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사람이 3분에 1명 꼴이다. 그리고 세계 인구의 1분의 1에 이르는 8억 5천만 명이 심각한 만성적 영양실조 상태에 있다. 기아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이 2000년 이후 1,200만 명이나 증가한 것이다. 블랙 아프리카의 상황은 특히 열악하다. 아프리카에서는 현재 전 인구의 36퍼센트가 굶주림에 무방비 상태로 놓여 있다. -18쪽

그러니까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먹여 살릴 만한 식량은 충분히 있다는 건가요?

-그뿐 아니란다. 지구는 현재보다 두 배나 많은 인구도 먹여 살릴 수 있어. 오늘날 세계 인구는 60억 정도(세계 인구는 2006년 2월 26일 현재 65억 명을 넘어섰다.)되지. 하지만 1984년 FAO의 평가에 따르면, 당시 농업생산력을 기준으로 계산하여 지구는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거였어. -37쪽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세계 어디서나 그런 광경이 연출되고 있지. 기생충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음식 쓰레기로 연명해야 하다니...
카림, 그런데 더욱 비참한 것은 배고픔의 저주가 세대에서 세대로 대물림된다는 거야. 심각한 영양실조에 걸린 수백만의 엄마들이 매년 지구 곳곳에서 수백만의 건강하지 않은 아이들을 낳고 있어.-63쪽

1분에 250명의 아기가 이 지구상에 새로이 태어나는데, 그 중 197명이 이른바 제3세계라 불리는 122개 나라에서 태어난단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곧 이런 '이름도 없는 작은 이들의 묘'에 묻히는 운명을 맞는 거야.
레지 드브레(프랑스의 철학자)는 이들을 가리켜 "나면서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아이들"이라고 표현했어.-65쪽

카림, 너 혹시 전세계에서 수확되는 옥수수의 4분의 1이 부유한 나라의 소들이 먹고 있단든 사실을 알고 있니? 선진국에서는 고기를 너무 많이 먹거나 해서 영양과잉 질병으로 사망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데, 거꾸로 다른 쪽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영양실조로 굶어죽고 있어. -72쪽

정규 수업시간에 전쟁보다 더 많은 목숨을 앗아가는 기아에 대해 가르치는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구나. 기아상황을 파악하고 그 원인을 분석하고 어떤 수단으로 극복할 수 있을지 토론하는 수업 같은 것은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81쪽

그런 내전을 끝낼 수는 없나요?

-누가 그럴 수 있겠니? 다국적 군대의 개입으로? 1990년 쿠웨이트에서처럼? 가능하지. 그러나 쿠웨이트와 그 석유는 서방 강대국의 경제에 대단히 중요하지만, 아프리카 내전은 선진국들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데 문제가 있지.-88-89쪽

영양실조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 매일 0.5리터의 분유를 배급하겠다는 아옌데의 공약은 수포로 돌아갔어. 아옌데가 추진한 개혁정책의 대부분은 엄청난 재정적 어려움에 봉착했지.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중앙정보국(CIA)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군부쿠데타를 도왔어. 아옌데와 그의 동지들은 대통령궁인 모네다궁에서 무력으로 저항했지. 오전 11시, 아옌데 대통령은 라디오를 통해 대국민 연설을 마지막으로 했고, 오후 2시 30분에 살해되었단다. 피노체트의 무차별 탄압으로 많은 대학생, 기독교 성직자, 노동조합 간부, 지식인, 예술가, 그리고 일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었어. 그리고 아옌데 정권이 들어서기 전처럼 수 만 명의 아이들이 다시 영양실조와 배고픔에 시달리게 되었지.-101-102쪽

세네갈의 국민들은 무척 부지런해서 식량을 자급자족할 능력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식량을 수입해야만 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지. 게다가 식량 수입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정부의 허가가 필요해. 그래서 고위 관료들이 식량 수입의 독점권을 가지고 막대한 재산을 모으고 있단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자국의 식량생산 증진에는 관심이 없지.-134-135쪽

국제적인 도움의 손길은 찔끔찔끔 주어지는 정도였어.

-왜요?

부르키나파소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도 아니고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니니까. 이 나라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 그저 타는 듯한 하늘과 돌과 덤불과 낙타, 그리고 사람 외에는...... 무엇보다 상카라의 정치는 프랑스와 그 식민지였던 나라들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거야.-143쪽

상카라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모양이야.......................... 아빠는 그의 숙소인 호텔에서 그와 마주앉아 20년 전 볼리비아의 산중에서 살해된 체 게바라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 했어. 상카라는 "살해될 당시 그는 몇 살이었을까요?"하고 물었고, 아빠는 "39세 8개월"이라고 대답했어. 그러자 생각에 잠겨 있던 상카라는 "나도 그 나이까지 살 수 있을까요?"라고 하더구나. 만일 살아 있었더라면 상카라는 살해된 해 12월에 38세 생일을 맞이했을 텐데 말이야.
상카라의 죽음과 함께 사람들의 커다란 희망도 깨졌지. 콤파오레 치하의 부르키나파소는 다시 보통의 아프리카로 돌아가고 말았어. 만연한 부패, 외국에 대한 극단적인 의존, 북부 지방의 만성적인 기아, 신식민주의적 수탈과 멸시, 방만한 국가 재정, 기생적인 관료들, 그리고 절망하는 농민들.......-150-151쪽

그럼 무슨 일을 해야 하나요?

-무엇보다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하지 못하게 된 살인적인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뒤엎어야 해. 인간의 얼굴을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ㅇ느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153쪽

열매가 풍부하고 경작하기 좋고 기후가 온화하고 가축이 살기 좋은 땅일수록, 그리고 물이나 호수, 강, 비옥한 토양, 숲, 목초지, 해안, 언덕 등의 많은 장점을 가진 땅일수록 그 땅을 탐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세계지도만 보면 된다. 세계지도에서 볼 수 있는 땅들의 모자이크는 현재 지구 영토의 분할 상태를 보여준다.-156쪽

금융자본은 결코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160쪽

1919년에 막스 베버는 "부란 일하는 사람들이 산출한 가치가 이어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말은 오늘날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오늘날 부, 즉 경제력은 다혈질적인 투기꾼들이 벌이는 카지노 게임의 산물이다.-161쪽

세계 225명의 대재산가의 총자산은 1조 달러가 넘는다. 이것은 전세계 가난한 자들의 47퍼센트(25억 명)의 연간수입과 맞먹는 수치이다. 빌 게이츠의 자산은 가난한 미국인 1억 600만 명의 총자산과 맞먹는다. -161-162쪽

이런 숫자의 배후에는 고통과 절망으로 가득 찬 세계가 존재한다. 불평등이라는 부당한 역동성이 현재의 세계질서를 결정하고 있다. 한쪽에는 민족을 초월한 소수의 과두체제에 지배되는 정치적, 경제적, 이념적, 학문적, 군사적 힘의 집중이 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미래가 불투명한 삶, 몇 억 인구의 절망과 기아가 있다. -162쪽

브레히트는 "분노하는 것은 고통이다"고 했다. 제네바의 은행가들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필요로 한다. 이 이데올로기가 바로 신자유주의(시장원리주의)라는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는 특히 위험하다. 중심에 자유라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규범도 가라, 규제도 가라, 국민국가도 가라, 장애만 될 뿐이다. 선거도 가라, 일치도 가라, 정권교체도 가라, 민족주체성도 가라. 자유! 자본을 위한 자유, 서비스를 위한 자유, 특허를 위한 자유만 남아라. 그것은 관료제나 모든 종류의 제한에 반대하는 것이다. 오직 '완전하게 리버럴한 시장'을 추구하는 시장원리주의(신자유주의)일 따름이다. -163쪽

이 모든 조처가 실행되기 위해서는 세계 여론이 동원되어야 하며, 현재의 경제 지배자들의 각성과 연대의식이 있어야 한다. -168쪽

장 자크 루소는 <사회계약론>에서 "약자와 강자 사이에서는 자유가 억압이며 법이 해방이다"라고 썼다. 시장의 완전한 자유는 억압과 착취와 죽음을 의미한다. 법칙은 사회정의를 보장한다. 세계시장은 규범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이것은 민중의 집단적인 의지를 통해 마련되어야 한다.
경제의 유일한 견인차는 이윤지상주의라는 입장, 신의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겨두면 유토피아가 도래할 것이라는 허구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이 시대의 급박한 과제다. -169쪽

소수가 누리는 자유와 복지의 대가로 다수가 절망하고 배고픈 세계는 존속할 희망과 의미가 없는 폭력적이고 불합리한 세계이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정의를 누리고 배고픔을 달랠 수 있기 전에는 지상에 진정한 평화와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서로 책임져 주지 않는 한 인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정의에 대한 인간의 불굴의 의지 속에 존재한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것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그들은 모든 꽃들을 꺾어버릴 수는 있지만
결코 봄을 지배할 수는 없을 것이다."-171쪽

배고픔의 숙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나라라도 말이다. 부족한 것은 연대감이며, 국제 공동체로부터 도움을 받고자 하는 진짜 의지이다. -176쪽

그러나 인도적인 도움은 절대적인 중립, 보편성, 독립성을 요구한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통 받는 인간의 필요를 겨냥한 것이어야지, 결코 한 국가의 필요에 따른 것이어서는 안 된다. -180쪽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이면에는 단점도 매우 많다. 세 가지 정도만 꼽아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자유'의 전제가 잘못되어 그 개념과 현실을 왜곡한다는 것이다. 모든 간섭을 없애고 자유를 줄 테니 알아서 마음껏 하라고 하지만 처음부터 가진 사람과 없는 사람의 할 수 있는 조건이 다른 데 알아서 하라는 것은 불합리한 것이다. 예를 들어, 한 쪽은 무장을 단단히 하고 나서는데 다른 쪽은 맨 손으로 알아서 싸우라거나 헤비급 선수와 라이트급 선수를 구분 없이 섞어 놓고 알아서 싸우라고 한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괴롭힘이자 억압이 되어버린다. (공정거래위원회 같은 기능을 통해 경쟁의 공정성을 관리하는 것이지 경쟁의 전제조건을 관리하지는 않는다.) 그런 뜻에서 신자유주의가 말하는 자유는 개인과 국가의 편차나 특수한 조건을 무시하며 인권, 생존권, 주권 등을 초월하려는 개념이어서 진정한 의미의 인간적 또는 사회적 자유가 아니라는 개념적 비판을 받게 된다.
둘째, 지나친 경쟁주의로 치달으며 약육강식의 냉혹한 질서가 자리잡아서 다수의 약자들이 소외되어버린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시장으로 내몰며 자유롭게 벌어먹으라고 하므로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데 경쟁의 조건이 처음부터 불공평하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낳으며 양극화의 심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또는 세계화를 20:80의 질서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의 혜택 받는 사람들을 위해 80%의 사람들을 소외시키고 희생시킨다는 이야기다. 결국, 신자유주의는 자본가들의 자유를 위한 이데올로기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셋째, 자본의 욕망이 끝없이 확대되어 불필요한 영역들까지 시장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인간의 모든 삶에서 물질만능주의를 부추긴다는 점이다. 시장논리가 만병통치약처럼 통하다보니 문화, 교육, 예술 등 고유한 가치를 지니는 영역들도 시장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며 정책으로 옮기기 때문에 삶의 체계를 건조하게 만들며 인류문화를 황폐화시킨다. -195-1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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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절판


칸은 명의 변방을 어지럽히는 다른 부족장들의 목을 베어 명 황제에게 바쳤고, 명 황제가 상을 내리며 마음을 푼 사이에 발 빠른 군사를 휘몰아 명의 따뜻한 들판을 빼앗았다. 칸은 충성과 배반을 번갈아가며 늙어서 비틀거리는 명의 숨통을 조였다. 칸은 말뜻에 얽매이지 않았다. 본래 충성의 뜻이 없었으므로 명의 변방 요새들을 차례로 무너뜨려도 그것은 배반이 아니었다. 그에게 충성과 배반, 공손과 무례는 다르지 않았다. 칸은 그의 족속들과 더불어 죽이고 부수고 빼앗고 번식하는 일에 거리낌이 없었다. -22쪽

내가 이미 천자의 자리에 올랐으니, 땅 위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 나를 황제로 여김은 천도에 속하는 일이지, 너에게 속하는 일이 아니다. 또 내가 칙으로 명하고 조로 가르치고 스스로 짐을 칭함은 내게 속하는 일이지, 너에게 속하는 일이 아니다.
네가 명을 황제라 칭하면서 너의 신하와 백성들이 나를 황제라 부르지 못하게 하는 까닭을 말하라. 또 너희가 나를 도적이며 오랑캐라고 부른다는데, 네가 한 고을의 임금으로서 비단옷을 걸치고 기와지붕 밑에 앉아서 도적을 잡지 않는 까닭을 듣고자 한다. -25쪽

너희의 두려움을 내 모르지 않거니와, 작은 두려움을 끝내 두려워하면 마침내 큰 두려움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너는 임금이니 두려워할 것을 두려워하라. 너의 아들이 준수하고 총명하며, 대신들의 문장이 곱고 범절이 반듯해서 옥같이 맑다 하니 가까이 두려 한다.
내 어여삐 쓰다듬고 가르쳐서 너희의 충심이 무르익어 아름다운 날에 마땅히 좋은 옷을 입혀서 돌려보내겠다.
대저 천자의 법도는 무위를 가벼이 드러내지 않고, 말먼지와 눈보라는 내 본래 즐기는 바가 아니다. 내가 너희의 궁벽한 강토를 짓밟아 네 백성들의 시체와 울음 속에서 나의 위엄을 드러낸다 하여도 그것을 어찌 상서롭다 하겠느냐.
그러므로 너는 내가 먼 동쪽의 강들이 얼기를 기다려서 군마를 이끌고 건너가야 하는 수고를 끼치지 말라. 너의 좁은 골짜기의 아둔함을 나는 멀리서 근심한다.-26쪽

그해 겨울은 일찍 와서 오래 머물렀다. 강들은 먼 하류까지 옥빛으로 얼어붙었고, 언 강이 터지면서 골짜기가 울렸다. 그해 눈은 메말라서 버스럭거렸다. 겨우내 가루눈이 내렸고, 눈이 걷힌 날 하늘은 찢어질 듯 팽팽했다. 그해 바람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습기가 빠져서 가벼운 바람은 결마다 날이 서 있었고 토막 없이 길게 이어졌다. 칼바람이 능선을 타고 올라가면 눈 덮인 봉우리에서 회오리가 일었다. 긴 바람 속에서 마른 나무들이 길게 울었다. 주린 노루들이 마을로 내려오다가 눈구덩이에 빠져서 얼어 죽었다. 새들은 돌멩이처럼 나무에서 떨어졌고, 물고기들은 강바닥의 뻘 속으로 파고들었다. 사람 피와 말 피가 눈에 스며 얼었고, 그 위에 또 눈이 내렸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31-32쪽

밝음과 어둠이 꿰맨 자리 없이 포개지고 갈라져서 날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었다. 남한산성에서 시간은 서두르지 않았고, 머뭇거리지 않았다. 군량은 시간과 더불어 말라갔으나, 시간은 성과 사소한 관련도 없는 낯선 과객으로 분지 안에 흘러 들어왔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었다. 쌓인 눈이 낮에는 빛을 튕겨 냈고, 밤에는 어둠을 빨아들였다. 동장대 위로 해가 오르면 빛들은 눈 덮인 야산에 부딪쳤다. 빛이 고루 퍼져서 아침의 성 안에는 그림자가 없었다. 오목한 성 안에 낮에는 빛이 들끓었고 밤에는 어둠이 고였다. 짧은 겨울 해가 넘어가면 어둠은 먼 골짜기에서 퍼졌다. 빛이 사위어서 물러서는 저녁의 시간들은 느슨했으나, 어둠은 완강했다. 먼 산들이 먼저 어두워졌고 가까운 들과 민촌과 행궁 앞마당이 차례로 어두워졌다. 가까운 어둠은 기름져서 번들거렸고, 먼 어둠은 헐거워서 산 그림자를 품었다. 어둠 속에서는 가까운 것이 보이지 않았고, 멀어서 닿을 수 없는 것들이 가까워 보였다. 하늘이 팽팽해서 별들이 뚜렷했다. 행궁 마당에서 올려다보면 치솟은 능선을 따라가는 성벽이 밤하늘에 닿아 있었고, 모든 별들이 성벽 안으로 모여서 오목한 성은 별을 담은 그릇처럼 보였다. 별들은 영롱했으나 땅위에 아무런 빛도 보태지 않아서, 별이 뚜렷한 날 성은 모든 별들을 모아 담고 캄캄했다. 어둠 저편 가장자리에 보이지 않는 적들이 자욱했다. 이십만이라고도 했고, 삼십만이라고도 했는데, 자욱해서 헤아릴 수 없었다. 적병은 눈보라나 안개와 같았다. 성을 포위한 적병보다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면서 종적을 감추는 시간의 대열이 더 두렵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아무도 아침과 저녁에서 달아날 수 없었다. 새벽과 저녁나절에 빛과 어둠은 서로 스미면서 갈라섰고, 모두들 그 푸르고 차가운 시간의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임금은 남한산성에 있었다.-179-180쪽

-다녀오겠느냐?
-조정의 막중대사를 대장장이에게 맡기시렵니까?
-민망한 일이다. 하지만 성이 위태로우니 충절에 귀천이 있겠느냐?
-먹고 살며 가두고 때리는 일에는 귀천이 있었소이다.
김상헌이 엉덩이를 밀어서 서날쇠에게 다가갔다.
-이러지 마라. 네 말을 내가 안다. 나중에 네가 사대부들의 죄를 묻더라도 지금은 내 뜻을 따라다오.-227쪽

최명길이 말했다.
-전하, 죽음은 견딜 수 없고 치욕은 견딜 수 있는 것이옵니다. 그러므로 치욕은 죽음보다 가벼운 것이옵니다. 군병들이 기한을 견디듯이 전하께서도 견디고 계시니 종사의 힘이옵니다. 전하, 부디 더 큰 것들도 견디어주소서.-249쪽

임금이 먼저 말을 꺼냈다.
-칸이 오기는 왔다는 것인가?
김상헌이 말했다.
-칸이 여기까지 오기도 어렵거니와 칸이 왔다 한들 아니 온 것과 다르지 않사옵니다.
-다르지 않다니? 같을 리가 있겠는가?
-우리의 길은 매한가지라는 뜻이옵니다.
최명길이 말했다.
-제발 예판은 길, 길 하지 마시오. 길이란 땅바닥에 있는 것이오. 가면 길이고 가지 않으면 땅바닥인 것이오.
김상헌이 목청을 높였다.
-내 말이 그 말이오. 갈 수 없는 길은 길이 아니란 말이오. -269쪽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은 조선이었다. 송파강은 날마다 부풀었다. 물비늘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칸은 답답했다. 저처럼 외지고 오목한 나라에 어여쁘고 단정한 삶의 길이 없지 않을 터인데, 기를 쓰고 스스로 강자의 적이 됨으로써 멀리 있는 황제를 기어이 불러들이는 까닭을 칸은 알 수 없었고 물을 수도 없었다. 스스로 강자의 척이 되는 처연하고 강개한 자리에서 돌연 아무런 적대행위도 하지 않는 그 적막을 칸은 이해할 수 없었다. 압록강을 건너서 송파강에 당도하기까지 행군대열 앞에 조선 군대는 단 한 번도 얼씬거리지 않았다.-280쪽

도성과 강토를 다 비워 놓고 군신이 언 강 위로 수레를 밀고 당기며 산성 속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걸고 내다보지 않으니, 맞겠다는 것인지 돌아서겠다는 것인지, 싸우겠다는 것인지 달아나겠다는 것인지 주저앉겠다는 것인지, 따르겠다는 것인지 거스르겠다는 것인지 칸은 알 수 없었다. -2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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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4-23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벌써 읽으셨군요. 전 받아두고 아직 못 읽었어요.
179쪽의 시간에 대한 긴 글,, 특유의 냄새가 나네요..

마노아 2007-04-23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훈 특유의 필체가 보이죠. 다시 읽다가 오타 수정했어요^^;;;
 
향수 (반양장)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Mr. Know 세계문학 20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강명순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2월
품절


그때부터 그녀는 후각을 상실했고, 그와 더불어 따뜻함이나 냉정함 등 모든 인간적 감정도 잃어버렸다. 그 한번의 매질로 인해 그녀에게는 친절과 혐오가 동시에 낯선 일이 되어 버렸다. 기쁨과 절망 역시 그녀는 느끼지 못했다. -33쪽

갑자기 그는 더 이상 맨바닥에서 잘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를 위해 창고에 나무 침대가 만들어졌고 그 위에 짚이 깔렸으며 이불도 얻었다. 자는 동안 그를 가두어 두는 일도 없어졌다. 먹을 것은 충분히 나왔다. 그리말은 그를 더 이상 짐승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는 아주 유용한 가축이 된 것이다. -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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