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전두환 2 - 인간에 대한 예의
백무현 글.그림 / 시대의창 / 2007년 7월
구판절판


인간 전두환,
그가 육사를 지망한 것은 적의 군화에 짓밟힌
나라를 위하는 길에 내 한 몸 던져 총칼을
들고 싸우는 길밖에 없다는 일념 때문이었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는 천성적인 결단은
그를 군의 지도자가 아니라 온 국민의 지도자상으로
클로즈업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

인간 전두환... 청년 장교의 우국의 울분 속에
이미 개혁과 숙정의 의지는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일보>1980년 8월 23일-27쪽

1981년 2월 25일 장충체육관

총 5217표 중 민정당의 전두환 후보 4755표(90.2%), 민한당의 유치송 후보 404표(7.7%), 국민당의 김종철 후보 81표(1.6%), 민권당의 김의택 후보 26표(0.5%), 무효1표.

제12대 대통령에 현대통령이신 민정당의 전두환 후보가 당선되었음을 선포합니다.-29쪽

"3S가 뭐요?"

"예 각하. 스포츠, 섹스, 스크린... 영문 앞글자인 S를 딴 것인데 국민들 길들이기에는 아주 유용한 수단이라고 합니다. '애마부인'이라는 영화도 그런..."

"하긴...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져서 좋을 게 없지..."

"프로야구는 지역연고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지역주의를 고착화할 수도 있고 정치에 대한 불만의 배수구 역할도 해줄 것입니다, 각하."-39쪽

뉴스입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금융사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지난 4월 공영토건이 어음사기를 당했다는 진정서를 낸 이후
이를 수사해온 검찰은 장영자 이철희 부부가 자금난에 허덕이는 기업에 현금을 빌려주는 대신 받아낸 약속어음이 7111억 원에 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장영자 부부는 이렇게 해서 받아낸 어음을 할인해 또 다른
회사에 빌려주었고 이 가운데에서 6404억 원의 어음을 시중에
유통시켜 1400여 억원을 사취한 혐의입니다.
검찰은 수사를 더욱 확대하기로 하고 은행장 기업체 간부
등 30여 명을 구속하였습니다.

또 이 사건으로 업계 2위인 일신제강과 도급순위 8위였던 공영토건이 부도를 냈습니다.-41쪽

손무덤 (박노해)

올 어린이날만은
안 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 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어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차마 손만은 꺼내주질 못하였다.

......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 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47쪽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동아일보> 김중배 칼럼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
저 죽음을 응시해주기 바란다.
저 죽음을 끝내 지켜주기 바란다.
저 죽음을 다시 죽이지 말아주기 바란다.

태양과 죽음은 차마 마주볼 수
없다는 명언이 있다는 건 나도 안다.
태양은 그 찬란한 눈부심으로,
죽음은 그 참담한 눈물줄기로,
살아있는 자의 눈을 가린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3학년 박종철 군.
스물한 살의 나이에 채 피어나지도
못한 꽃봉오리로 떨어져간 그의 죽음은
우리의 응시를 요구한다.

우리의 엄호와 죽음 뒤에 살아나는
영생의 가꿈을 기대한다.

......

그의 죽음은 이 하늘과 이 땅과
이 사람들의 희생을 호소한다.

정의를 가리지 못하는 하늘은
제 하늘이 아니다.

평화를 심지 못하는 땅은
제 땅이 아니다.

인권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은
제 사람들이 아니다.-114쪽

5공 비리 파문

일해재단 589억 원-강제헌납 종용
새세대심장재단 398억 원
새세대육영회 236억 원
새마을성금 1500억 원 등

이순자 씨도 큰손 "부창부수"-150쪽

<지강헌 사건>

있는 놈들은 수십 억 수백 억씩 해먹어도 길어봐야 빵에서 1~2년 사는데... 나는 500만 원 훔쳤다고 징역 7년에 보호감호 포함 17년형이냐? 어떻게 죄수가 판검사를 돈으로 살 수 있냐? 사람을 죽이고도 나가는 반면에 몇 만 원 훔친 놈은 빵에서 썩고... 이게 법이냐?

돈만 있으면 판검사도 살 수 있고 죄도 없앨 수 있다. 이게 대한민국 법이다. 유전무죄-152-155쪽

광주학살의 진상은 기필코 밝혀져야 합니다.
우리 겨레와 광주민중은 용서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그들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수환 추기경)-190쪽

95년 12월 5일

뉴스입니다.
검찰의 소환 요구에 불응,
고향인 경남 합천까지 내려갔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전구속영장을
갖고 달려간 수사관들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전격 구속되었습니다.

96년 8월 26일

피고 전두환은 불법적 내란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헌정 파괴 과정에
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한 점을 중시하여
사형을 선고한다.

피고 노태우에게 징역 22년 6월을 선고한다.-197쪽

97년 12월 18일

오늘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이
대통령 특사로 석방됩니다.
이번 특사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가
국민화합 차원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특사를 건의, 전격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198쪽

2007년 1월

뉴스입니다. 경남 합천에
전두환 전 대통령의 아호를 딴
일해공원이 생깁니다.
합천군은 새로 조성 중인 공원을
일해공원으로 확정하고...-1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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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8-06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긋기 또 에러났네. 수정도 안 되고..ㅠ.ㅠ

순오기 2007-08-06 0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보고 '홀리데이'의 참담한 심정이 되살아나 잠들지 못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절규하던 배우 이성재...그가 생각나네요!

마노아 2007-08-06 10:54   좋아요 0 | URL
지강헌같은 인물이 오늘날에도 너무 많다는 게 더 참담합니다. 아프고 서럽고 그래요. 에효...ㅜ.ㅜ

JTL 2007-08-06 1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긴 문장 좀 알려주시겠어요? 테스트해보니 짧은거라 그런지 별 문제가 없네요

마노아 2007-08-06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에 이어서 197p에 들어갈 내용이에요.
**
95년 12월 5일

뉴스입니다.
검찰의 소환 요구에 불응,
고향인 경남 합천까지 내려갔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전구속영장을
갖고 달려간 수사관들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 전격 구속되었습니다.

96년 8월 26일

피고 전두환은 불법적 내란 과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헌정 파괴 과정에
수많은 피해자들이 발생한 점을 중시하여
사형을 선고한다.

피고 노태우에게 징역 22년 6월을 선고한다.
 
만화 전두환 1 - 화려한 휴가
백무현 글.그림 / 시대의창 / 2007년 7월
구판절판


나는 이런 우리 광주를 첨 봤다 말이시.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된 대동세상 말이여. 죽어도 잊지 못할 것이네. 모두가 평등하고 압제도 없는 그런 세상을 꼭 한번이라도 보고 싶었는디, 요 며칠 광주는 꼭 그런 시상이었다 이 말이시.(윤상원)-199쪽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김준태)

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죽음과 죽음 사이에
피눈물을 흘리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

우리들의 아버지는 어데로 갔나
우리들의 어머니는 어디서 쓰러졌나
우리들의 아들은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 파묻혔나

우리들의 귀여운 딸은
또 어디에서 입을 벌린 채 누워 있나?
우리들의 혼백은 또 어디에서
찢어져 산산히 조각나버렸나?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죽음으로써 죽음을 물리치고
죽음으로써 삶을 찾으려 했던

아아, 통곡뿐인 남도의
불사조여 불사조여 불사조여.-209쪽

우리는 군의 노고를 잊지 않는다.

"지금 오직 명백한 것은 광주시민 여러분은 이제 아무런 위협도, 공포도, 불안도 느끼지 않아도 될, 여러분의 생명과 재산을 포함한 모든 안전이 확고하게 보장되는 조건과 환경의 보호를 받게 됐고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상계엄군으로서의 군이 자제에 자제를 거듭했던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때문에,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
-<조선일보> 사설-210쪽

선동, 권모술수로 얼룩진 변신의 화신 김대중을 벗긴다.

김대중, 그는 어떤 인물인가. 달변과 간교한 지략을 내세워 한국의 케네디라는 허상 속에 철저히 가려졌던 그의 참모습은 어떤 것일까.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마키아벨리즘의 화신'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중 인격과 위선에 가득 찬......

-<경향신문> 1980년 9월 11일자-220쪽

9월 13일 오전 10시 김대중의 최후 진술

박 대통령의 죽음은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가 다가오는 역사적 계기였습니다. 그러나 5.17 계엄확대로 우리 민주주의는 심상치 않은 시련을 맞게 되었습니다. 나는 10.26 이후 많은 사람들의 낙관론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80년대에는 민주시대가 틀림없이 올 것이나 당장은 연러 가지 시련이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습니다. 나는 나에 대한 관대한 처분보다는 다른 피고들에 대한 관용을 바랍니다. 이분들에 대한 혐의의 책임자는 난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습니다.-222쪽

1980년 8월 6일 롯데호텔
(한경직 목사, 강신명 목사, 김지길 목사, 장성칠 목사, 김인득 벽산그룹 회장)
"다음은 정진경 성결교 증경 총회장이 전두환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한 기도를 올리겠습니다."
"다같이 전두환 위원장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주님. 이 어려운 시기에 전두환 위원장을 우리에게 보내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 위원장이 남북통일과 국가의 번영과 민족의 열망을 이루는 데 큰 일꾼이 되어 그 업적이 후세에 남도록 해주옵소서"-224쪽

8월 27일 장충체육관

-전두환 대통령 후보가 총투표자 2525명, 무효 1표, 2524표 득표로 제11대 대통령에 선출되었음을 선포합니다-227쪽

새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 (조병화)

......
온 국민과 더불어 경축하는
이 새 출발
국운이여 영원하여라
청렴결백한 통치자
참신과감한 통치자
이념투철한 통치자
정의부동한 통치자
인품온화한 통치자
애국애족 사랑의 통치자
......
이 새로운 영토
오, 통치자여-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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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 선조실록 - 조선엔 이순신이 있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
박시백 지음 / 휴머니스트 / 2007년 7월
구판절판


퇴락해가는 조선은 시대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하고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낸 한 인물을 준비했다.
시대는 또한 박순, 성혼, 유성룡, 이산해, 정인홍, 이발 등 뛰어난 인물들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그러나 시대의 병은 치유되지 못했다.
율곡은 냉철함과 뜨거움이 잘 조화된 인물.
젊은 나이에 이미 학문적으로 일가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애정 또한 뜨거워 평생 경장을 외친 경세가였다.
그런데 이황과 조광조를 한 몸에 모아놓은 듯한 그였지만, 유종(儒宗)은 되지 못했다. ......애초부터 조정의 신진 사림 중에 이이의 학문적 동료는 없었다.
"율곡은 누구 밑에서 배웠지?"
"독학했잖아."-39-40쪽

선조 20년 3월, 조광현 등이 올린 상소는 '서인'의 범주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흥미롭게 보여준다.

-처음엔 심의겸의 친구와 그 무리(윤두수, 김계휘 등)를 칭하더니 다음엔 서인을 구언하는 자(정철 등)를 일러 서인이라 하였고 그 뒤엔 중립하여 치우치지 않은 자(이이, 성혼)를, 마침내는 이이와 성혼을 높이는 자(조헌 등 제자들)들을 서인이라 부릅니다.

동서 화합을 위해 뛰었던 이이가 어느덧 서인의 종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67쪽

그러나 문 중심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무에 대한 경시를 가져오게 마련. 건국 초기에는 그래도 무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진법훈련이나 무기 개량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평화가 지속되면서 무는 점차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이런 경향은 사림이 집권하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병법도 모르는 문신들이 비변사 재상, 병조판서, 도원수까지 차지했다. 더욱이 그들은 좋은 장수를 육성하기 위한 제도도, 좋은 장수를 보는 안목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여진족이나 왜구의 소규모 침공에 맞서 전공이라도 세우게 되면 바로 명장으로 받아들였다.
장수들도 해이해지기는 마찬가지. 과거에 급제하면 그뿐, 스스로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변방에 배속되면 다른 무엇보다도 축재에 열성인 그들이었다.
일선 병사들은 양민들 중에서도 가장 약한 처지의 사람들.
이 위험한 삼위일체 체제에 전쟁은 없다는 동인 권력의 상황판단이 더해졌으니......-116-117쪽

반면 일본 군대는 어떤가?
사령관들은 각 지방의 영주이고, 휘하 군대는 그 지방 출신으로 편성되어 있어 단결력이 강했다. "그리고 이미 여러 전투에서 손발을 맞췄기 때문에 조직력이 환상이지." "전군이 정예부대란 말씀"
최신식 조총으로 무장한 그들은 조선 사정에 대해 매우 정통했다. 진작부터 스파이를 풀어 조선 전역을 샅샅이 살피고는 정밀한 지도를 만들어 보유하고 있었다. 납치하여 앞잡이로 삼은 조선인들과 왜관에 거주하여 조선말을 익힌 일본인들까지 다수 확보한 상태.
싸움에 임해서는 먼저 최후를 보내 충분히 정보를 취득하고 그에 기초해 전술을 짜고 움직였다. 지피지기한 최정예 일본군과 적도 아도 모르는 오합지졸 조선군의 싸움이었다.-122-123쪽

"나는 요동으로 가겠노라"
"정 뭐하면 세자를 함경도로 보내면 되지 않겠느냐?"
선조의 상황판단과 대책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비록 그 자신의 안전이 제일의 관심사이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요동 망명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선조의 판단에 호응한 이는 이항복과 이덕형이다.-143쪽

명나라를 정벌하겠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꿈을 그의 과대망상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랜 실전으로 단련된 수십만의 정예부대, 최신식 조총으로 무 장하고 그에 적합한 전법까지 갖추었으며 싸움에 임하는 완강한 기질은 이미 정평이 난 그들 아닌가? 이후 명나라 군대와의 싸움을 봐도 알 수 있듯, 당시 일본군은 막강했다. 몽고군의 말발굽 아래 항복했고, 뒷날 팔기군의 깃발에 두 손 든 중국이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나라 정벌 야망은 허황된 꿈만은 아니었다 하겠다. -148-149쪽

재주와 공로가 있어도 10년 넘게 제자리걸음을 해야 했던 이유는 승진을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력은커녕 찾아오는 기회도 차버리기 일쑤였다. 일찍이 이이가 이조 판서로 있을 때 만나보고 싶어했는데 "이순신이 덕수 이씨라 들었는데...." 거절했고, "대감께서 인사권을 갖고 계신 동안은 찾아뵐 수 없다고 여쭈어라."
또 이런 일도 있었다. 파직되어 쉴 때 활터에 나가 활을 쏘고는 했는데...
"거 전통이 참 근사하구먼. 어떤가 자네. 그 전통을 이 늙은이에게 줄 순 없는가?"
정승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보기 드문 기회. 그러나...
"죄송합니다, 대감. 이까짓 전통 하나로 대감과 저의 이름을 더렵혀서야 되겠습니까?"-153-154쪽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 의무는 적고 권리는 무한했다.
그 많은 걸 누리던 그들은 왜적이 쳐들어왔다는 소문만 듣고는 대거 도망했고, 방어의 책임을 맡은 이들도 적들의 모습만 보고는 도망했다.
벼슬에 있든 없든 대부분의 사대부들이 제 한 몸만 생각하며 도망 다닐 때 사대부들의 명예를 지킨 이들이 있었다.
침략군이 상륙하고 열흘 뒤, 경상도 의령의 선비 곽재우가 처음으로 가산을 털어 의병을 모집했다. 조식의 제자이자 사위로, 조식의 기질을 빼닮은 열혈남아.
그가 일어선 의령은 낙동강과 남강이 만나는 곳으로 적들의 보긃로 상의 중요 지점이었다. -174-175쪽

곽재우의 모범은 곳곳에 의병의 봉기를 촉발시켰다. 이황과 조식의 문하에서 공부했던 김면은 거창과 고령에서, 벼슬에서 물러나 향리에 있었던 조식의 수제자 정인홍은 합천에서 창의의 깃발을 올렸다.
김성일은 이들에게도 적절한 권한과 병력을 더해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로 인해 초기에는 유격전을 주로 했던 이 일대의 의병부대들이 수천 명의 규모를 갖춤과 함께 정규군처럼 변해갔다.
성을 공격하여 탈환에 성공할 만큼 군세가 신장된 이들의 활약에 힘입어 낙동강 서쪽 경상우도 일대는 완전히 수복되었다.
만석꾼인 김면은 가산을 남김없이 의병활동에 쏟아부어 처자들이 문전걸식을 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그러나 처자들을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채 막사에서만 생활하던 그는 이듬해 3월 막사에서 과로로 숨을 거두었다. 다음은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시다.
只知有國 다만 나라가 있는 줄만 알았지
不知有身 이 한 몸이 있음은 알지 못했노라.-179-180쪽

선조는 처음 서울을 뜨면서 왕자들을 곳곳에 파견해 백성들을 위무하고 은광병을 모집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서장자인 임해군은 함경도로 여섯째인 순화군은 강원도로 떠났는데, 강원도가 이미 적의 점령 아래 들어가면서 순화군은 임해군과 합류하여 함경도로 떠났다.
둘은 백성들을 위무하기는커녕 가는 곳마다 평소대로 각종 물품을 요구하여 백성들의 원성을 샀다.
함경도는 태조가 왕업의 기반을 닦은 이른바 흥왕지지.
그러나 조사의의 난, 이시애의 난을 겪으면서 왕실의 분노를 샀고, 특별대우는커녕 괄시받는 지역이 되었다. 때문에 이 지역 백성들의 분노는 이미 폭발 직전이었다.
가토군이 철령을 넘어 함경도로 들어섰다는 소식에 함경 감사 유영립을 비롯한 군현과 진의 수령들은 다투어 산 속으로 숨기에 바빴는데, 나라에 대한 원한이 사무쳤던 이들은 다투어 그들을 붙잡아다 적들에게 넘기곤 했다. 유영립도 그렇게 넘겨졌다가 간신히 탈출했다. 철없는 왕자들인 임해군, 순화군도 그렇게 포로가 되었다. 평양 진격을 고니시에게 뺏긴 가토에게는 뜻밖의 선물.-193-196쪽

전쟁이 발발하고 피난길에 모르면서, 그리고 자신의 안전에만 급급해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군왕으로서의 선조의 위신은 땅에 떨어졌다. 선위를 촉구하는 상소가 여러 차례 있었을 정도였다.(왕조 시대에 하야 요구란 평시라면 반역으로 치부될 일이다.)
처음에 마냥 몰릴 때는 요동으로 갈 수 있다면 선위도 할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던 선조였지만, 구원병이 오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선위 문제를 오히려 자신의 위신을 되세우는 방편으로 활용키로 했다. 신하들의 만류는 태종 시절 이래의 역사적 전통 며칠씩 밀고 당기기가 계속된다.
백성들은 적의 총칼과 굶주림으로 죽어나가는데, 며칠식 선위소동으로 소일하고는 했던 조정이다. 그러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슬며시 뜻을 거둔다. 이후 조금만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여지없이 선위 카드를 들고 나왔다. 잦을 때는 한 달에도 몇 번씩 반복되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모두 마무리되자 선위 이야기는 사라지고, 오히려 세자를 싸늘하게 대했다. -228-229쪽

왕이 일관되게 원균을 추켜세우고 이순신을 폄하하는 태도를 보이자 신하들도 왕의 견해에 부화뇌동하는 경향을 띄어가는데, 그들의 발언에는 원균의 로비가 크게 작용한 흔적들도 보인다. 원균이 전력을 붕괴시키고 도망했던 장수라는 사실은 문제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가 원조를 청했으므로 공이 더 크다는 황당한 논리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음을 보라.(선조는 끝까지 이 논리를 고수했다)
제대로 된 판단과 주장을 하고 있는 이는 이원익 하나였다.-254쪽

가뜩이나 이순신에 대한 근거 없는 불신으로 가득했던 조정은 이제 이순신 제거의 길에 저마다 경쟁하듯 뛰어든다.
이정형 홀로 바른 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고, 이 순신의 추천자인 유성룡까지 모함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
사헌부가 적극 가세하면서 체포령이 떨어졌다............
다행히도 정탁이 나서서 간하면서 고문은 한 번으로 끝나고 삭탈관직되어 백의종군 길에 나선다.-259-262쪽

전쟁의 참화에 책임이 있는 왕과 조정 대신들은 전쟁의 와중에도, 전쟁이 끝난 뒤에도 나라를 지킨 이들의 은공을 모르고 후안무치하게 행동했다. 후안무치의 정점에는 물론 선조가 있다. 전쟁 중에 그는 자신을 호종한 신하들에게 가자는 물론, 뭔가 생기면 선물하기에 바빴지만, 일선장수들과 의병장들에게는 인색하기 그지없었다.

적을 물리친 것은 오직 명나라 군대의 힘이고, 자기 나라 군대는 한 일이 거의 없다는 것. 때문에 싸우다 죽은 일선 장수들보다 자신을 호종하고 명나라에 지원을 청한 이들의 공이 훨씬 크다는 것. 이것이 전쟁과 관련한 선조의 기본인식이었다.
선조의 원균사랑도 계속되었다.-288-290쪽

선조는 피난가는 수모를 겪고 수십 번의 선위 쇼도 선보였지만, 전쟁이 끝나고도 10년 넘게 왕좌를 지켰다. 이때까지의 임금 중 최장인 40년 8개월의 재위 기록을 자랑한다.(중종 38년 2개월, 세종 31년 6개월) 머리 회전이 빨랐고, 현실판단 능력도 뛰어났다. 신하들보다 더 현실적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고는 했다. 신하들의 대책 없는 서울 사수 주장을 무시하고 피난을 강행했고, 윤두수 등이 독자작전을 주장할 때도 냉정한 판단력을 보여주었다. 일본의 재침 결정이 전해졌을 때도 선조의 판단력은 돋보였다. 문제는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 태도였다. 자기 생각을 끝까지 주장하지 않고 꼬리를 뺐다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게 주특기였다. 자기가 개입한 일도 은근슬쩍 빠진다. 원균에게 부산 출전을 명해놓고는 일이 잘못되자 남의 책임으로 돌린다. "원균은 안 된다고 했는데 도원수 권율이 억지로 내몰아서 그렇게 되었다."
끝없는 잔머리, 이 때문에 신하에 대한 신임이나 판단도 자주 바뀌었다. 그런 선조가 죽을 때까지 딱 한 사람에게만은 일관된 신의를 보여주었으니, 바로 원균이다. -292-294쪽

왜 그랬을까?(필자의 추리다)

원균에 대한 일관된 옹호는 이순신의 존재 때문으로 보인다. 왕은 끝까지 이순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자신과는 무척이나 대비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리라. 전쟁 대비도 제대로 못했고, 전쟁이 나자 도망가기에 바빴던 왕이다.
반면 이순신은 일개 변장으로서 완벽하게 전쟁에 대비했고, 다른 장수들이 도망에 급급할 때 함대를 이끌고 나가 기적과도 같은 승리를 일구어냈다.
이후로도 나갔다 하면 최소의 희생으로 경이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육지에서는 국경선까지 몰렸으나 바다의 패자는 조선의 이순신이었다.
그토록 무섭고 강력한 일본군이 이순신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두려움에 떨었다. 거기다 부하들은 물론이고 백성들에게까지 진심으로 존경받았던 무장.
그가 죽자 온 남도 백성들이 곡을 했다. -294-296쪽

왕은 그 많은 승리의 원인도 이순신이 아닌 다른 데서 찾으려 애썼다. 반면 원균은 자기처럼 도망했던 인물 아닌가?
원균을 높여 이순신을 깎아내리고 싶었던 것이다. 왕은 곽재우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켰고 패배를 몰랐다. 처자를 다 잃었지만 끝까지 전장을 지킨 홍의장군 곽재우.
전쟁이 끝난 뒤에는 공을 내세우지 않았고, 벼슬에 나아가기를 싫어했다. 도무지 흠잡을 데 없는 인물 김덕령에 대해서도 처음부터 마뜩치 않아했다.
다른 의병장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빈말이나마 뜨겁게 그들의 의기와 공훈을 고무하는 발언을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호종한 이들에 대한 선조의 사랑은 물론 다들 도망가는데 떠나지 않고 자신을 지켜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리라.
그러나 단지 그뿐이라면 가산을 털어가며 의병을 일으키고 싸우다 죽은 의병장들에 대해서 못지 않은 고마움을 표해야 마땅할 것이다.

호종한 이들은 어찌됐든 함께 피난 다닌 이들 때문에 자신보다 도덕적으로 특별히 나을 게 없다는 동류의식이 작용한 것이 아닐까?
어쨌든 뻔뻔한 왕과 조정 대신들로 인해 구국영웅들은 죽은 뒤에도 걸맞은 대우를 받지 못했다. -296-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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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구판절판


그녀가 FC바르셀로나의 팬이 된 것은 스페인 내전을 다룬 조지 오웰의 소설 <카탈루냐 찬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또 그녀가 앙드레 말로와 어니스트 훼밍웨이와 파블로 네루다와 시몬 베유와 알베르 카뮈를 좋아한 때문이기도 했다.
(그게 왜?)
그들은 모두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에 맞섰던 지식인들이다. 프랑코의 승리로 끝난 결과를 두고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인류는 정의도 패배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폭력이 정신을 꺾을 수 있음을, 그리고 용기가 그에 상응한 보답을 받지 못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스페인에서 배웠다."
(그래서?)-35쪽

어른이란 말은 '얼우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인 '얼운'에서 나왔으며 '얼우다'는 '성교하다'라는 의미. 점잖게 말하자면 어른이란 결혼한 사람을 뜻하고 까놓고 말하자면 이성의 몸을 알게 된 이를 뜻한다. 그런 어른의 사랑에서는 누가 누구를 얼마나 더 사랑하는가의 문제만큼이나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잔인한 문제는 사랑도 의심하게 만든다. -50쪽

'지네딘(Zinedine)'이란 이름은 아랍어로 '신념의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60쪽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행복하게 사는 게 좋잖아. 나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거야. 최대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지.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작은 피해와 내 행복이 부딪치게 된다면 나는 내 행복을 택할 거야. 내 인생을 그 사람이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잖아. 이기적이라고 하겠지만 하는 수 없어. 그 반대로 내 자신의 작은 피해와 다른 사람의 행복이 부딪치면 나도 그 피해를 감수할 거야.-85쪽

그러나 실력 이상의 성과를 내는 것이야말로 독일 축구의 저력이다. 경기 내용에서도 이기고 승부에서도 이기는 것이 브라질 축구라면, 경기 내용에선 우세하지만 승부에서는 지고 마는 것이 스페인 축구이고, 경기 내용에서는 밀리더라도 결국 승부에서 이기는 것이 독일 축구이다.(이탈리아는? 경기 내용과 무관하게 여간해서는 지지 않는 축구를 한다. 단점이라면 여간해서는 끝까지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경기 내용과 무관하게 강한 정신력으로 승리를 추구하는 정신력의 축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축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2002년에 전 세계에 보여줬지만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정신력의 축구로 회귀했다. 이런 축구의 강점은 특정 상대에게는 통한다는 것이다. 한일전이나 1990년대 이전의 남북 대결 같은. 단점이라면 주로 특정 상대에게'만' 통한다는 것이다.)-113쪽

의심이란 그런 것이다. 행동을 의심하게 되고 행동에 꼬투리 잡을 것이 없으면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의도마저도 결백이 입증되면 그다음에는 무의식을 의심하게 된다. 무의식을 의심해서 어쩌겠다고? 뭘 어쩌기 위해 무의식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의심의 메커니즘이 그런 것이다. -226쪽

결손 가정이란 말에는 편견이 숨어 있어. 가령 핵가족이나 확대 가족 같은 용어에는 좋다, 나쁘다 하는 가치 판단은 들어 있지 않아. 핵가족이 일반적인 형태라고 해서 가족 구성원이 그보다 많은 확대 가족이 비정상적인 거라고 생각하진 않잖아. 하지만 결손 가정이란 용어는 그렇지 않거든. 뭔가 결여된 비정상적인 가정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잖아. 왜 꼭 다른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만들어 놓고 자기는 정상이라며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남의 소중한 가정을 결손 가정이라는 말로 모욕하면 안 되지. 구성원이 덜 있건 더 있건 가정이면 그냥 다 가정인 거야.-291쪽

맞은 놈이 두 다리 뻗고 잔다는 옛말은 때린 놈들이 만들어 낸 새빨간 거짓말이다. 다리 뻗고 자는 놈은 때린 쪽이다. 상처가 생겨도 맞은 사람에게 생기는 법이고 고통도 맞은 사람의 몫이다. 그리하여 가해자들이란 뻔뻔할 수밖에 없다. 당장 자기는 멀쩡하니 말이다. 툭하면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만 늘어놓으며 과거를 청산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는 일본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잘 쓰지도 않는 단어를 어렵게 찾아내서는 '통석의 념'을 금할 수 없다며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사과도 하기 전에 조건을 다는 가해자도 있다. 12.12 반란의 주역 중 하나인 허화평은 "광주 피해자들이 먼저 용서할 뜻을 밝히면 사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체 어쩌겠다는 건지.-305쪽

글쎄. 축구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 인생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한 것을 다 같이 나누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그러한 삶을 더 이상 훌륭하다 여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삶을 훌륭하다 생각하는 것은 아무나 그렇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혹은 극히 제한적인 시기에만 그렇게 살 수 있을 뿐이다. -323-324쪽

역시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쿠데타 주역이 대통령이 된 후에 우리나라에도 프로 축구가 생겼다. 아시아 최초로.-331쪽

축구를 싫어하는 남자들이 즐겁게 축구를 보는 방법.
-없다.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남자로서 학창 시절과 군대 시절의 수많은 축구를 경험했고 또 무수한 축구 중계에 노출되었으면서도 축구를 싫어한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새삼스럽게 축구를 좋아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앞으로도 계속 싫어하면서 살면 된다. 축구를 싫어한다 해서 인생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보너스 팁. 싫어하는 인간을 즐겁게 보는 방법.
-없다. 앞으로도 계속 싫어하면서 살면 그만이다.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 줄어든다 해서 갑자기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342쪽

축구공의 진실.
어떤 사람이건 사랑을 하게 마련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게 살고 싶어 한다.
어린아이도, 어른도.
결혼을 한 사람도, 하지 않은 사람도.
노동자도, 자본가도.
좌파도, 우파도.
그리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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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처럼 - 신영복 서화 에세이
신영복 글.그림, 이승혁.장지숙 엮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2월
구판절판


절반 [折半]과 동반 [同伴]

피아노의 건반은 우리에게 반음의 의미를 가르칩니다. 반은 절반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동반을 의미합니다.
모든 관계의 비결은 바로 이 半과 伴의 여백에 있습니다.
'절반의 비탄'은 '절반의 환희'와 같은 것이며,
'절반의 패배'는 '절반의 승리'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절반의 경계에서 스스로를 절제할 수만 있다면,
설령 그것이 환희와 비탄 승리와 패배라는 대적의 언어라 하더라도 얼마든지 동반의 자리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40쪽

가장 먼 여행

The longest journey for anyone lo us is from head to heart.
인생의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냉철한 머리보다 따뜻한 가슴이
그만큼 더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있습니다.
Another longest one is from heart to feet.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발은 실천입니다.
현장이며 숲입니다.-50쪽

태산일출을 기다리며

당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엽서를 끝내고
옆에다 태산일출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한 후에
그림 속의 해를 지웠습니다.
물론 일출을 보지 못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태산에 일출을 그려 넣는 일은
당신에게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곤경에서 배우고, 어둔 밤을 지키며,
새로운 태양을 띄워 올리는 일은
새로운 사람들의 몫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55쪽

콜럼부스의 달걀

콜럼부스의 달걀은 발상전환의 전형적 일화입니다.
발상의 전환 없이는 결코 경쟁에 이길 수 없다는 신자유주의의 메시지로 오늘날도 변함없이 예찬되고 있습니다.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했지만 콜럼부스는 달걀의 모서리를 깨트림으로써 쉽게 세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상전환의 창조성이라고 하기보다는 생명 그 자체를 서슴치 않고 깨트릴 수 있는 비정한 폭력성이라 해야 합니다.
....................
이것은 콜럼부스 개인의 이야기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것을 천재적인 발상전환이라고 예찬하고 있는
우리들이 이야기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콜럼부스가 도착한 이후, 대륙에는 과연 무수한 생명이 깨트려지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생명이 무참하게 파괴되는 소리는
콜럼부스의 달걀에서부터 오늘날의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음이 사실입니다.-69쪽

속도는 가속으로 가속은 질주로 이어집니다.

자동차를 타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1미터의 코스모스 길은 한 개의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
아름다운 꽃길이 됩니다.-77쪽

빈손

물건을 갖고 있는 손은 손이 아닙니다.
더구나 일손은 아닙니다.
갖고 있는 것을 내려 놓을 때
비로소 손이 자유로워집니다.
빈손이 일손입니다. 그리고 돕는 손입니다.-80쪽

No money No problem

갠지스 강에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No money No problem."
나는 그가 던진 만트라에 화답하였습니다.
"No problem No spirit."-83쪽

나무야 나무야

처음으로 쇠가 만들어졌을 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이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그러자 어느 생각하는 나무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우리들이 자루가 되어주지 않는 한
쇠는 결코 우리를 해칠 수 없는 법이다."-106쪽

진선진미

ㅁ고표의 올바름을 善이라 하고
그 목표에 이르는 과정의 올바름을 美라 합니다.
목표와 과정이 함께 올바른 때를 일컬어 진선진미(盡善盡美)라 합니다.
목표가 바르지 않고 그 과정이 바를 수가 없으며,
반대로 그 과정이 바르지 않고 그 목표가 바르지 못합니다.
목표와 과정은 하나입니다.-107쪽

우리를 잠재우는 거대한 콜로세움

콜로세움은 맹수와 맹수, 사람과 맹수, 그리고 사람과 사람이 혈투를 벌이던 로마의 원형 경기장입니다.
이 경기장에서 혈투를 벌이다 죽어간 검투사들의 환영이 마음 아프게 합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우리의 마음을 암울하게 하는 것은 스탠드를 가득 메운 5만 관중의 환호 소리입니다.
인구 100만이던 로마에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의 콜로세움은 과연 그 영향력의 크기를 짐작케 합니다.
빵과 서커스와 혈투에 열광하던 이 거대한 공간을 우리는 무슨 이름으로 불러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리고 더욱 마음을 어둡게 하는 것은 로마 유적에 대한 관광객들의 그치지 않는 탄성입니다. 이러한 탄성이 바로 제국에 대한 예찬과 정복에 대한 동경을 재생산해내는 장치가 되기 때문입니다.
위용을 자랑하는 개선문은 어디엔가 만들어 놓은 초토焦土를 보여줍니다.
개선장군은 모름지기 상례(喪禮)로 맞이해야 한다는 "노자"의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
그리고 생각하게 됩니다.
로마제국은 다만 과거의
고대 제국일 뿐인가?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잠재우는
거대한 콜로세움은 없는가?-149쪽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합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이,
실천보다는 입장이 더욱 중요합니다.
입장의 동일함, 그것은 관계의 최고 형태입니다.-174쪽

북한산의 사랑과 이성

북한산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은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빼곡히 들어찬 빌딩이 너무 무겁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사람의 경우에도 가슴과 이성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합니다.
사랑이 없는 이성은 비정한 것이 되고
이성이 없는 사랑은 몽매와 탐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두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먼저인가를 이야기하다가
가슴이 ㅁ너저라는 당신을 어리석다고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때 "가슴에 두 손을 얹고 조용히 반성하라"는 말을 우스워하였습니다.
인간의 사고가 이루어지는 곳은 심장이 아니라 두뇌라는 사실을 들을 그것을 비웃기까지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성주의의 극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의 오만이 부끄럽습니다.
우리의 이성이란 한갓 땅 위에 서 있는 한 그루 나무인 것을,
그 흙가슴을 떠나면 뿌리가 뽑힌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북한산에서 보는 서울은 거울입니다.
우리를 반성하게 하는 거울입니다.-183쪽

종이비행기

사상은 실천됨으로써 완성되는 것입니다.
생활 속에서 실천된 만큼의 사상만이 자기 것이며,
그 나머지는 아무리 강론하고 공감하더라도
결코 자기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하물며 지붕에서 날리는 종이비행기가
그의 사상이 도리 수는 없습니다. -190쪽

새해의 지혜와 용기

세모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봅니다.-194쪽

태양의 산물

인류의 문명은 태양의 산물입니다.
식량과 에너지는 물론 생명 그 자체가 바로 태양의 산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사의 과정은 태양을 잊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잉카 문명에서 오로지 황금만을 계승하였던 무지한 역사가
오늘날도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들의 부끄러움입니다.-198쪽

평화로 가는 길은 없습니다.
평화가 길입니다.-2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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