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앓는 아이들
문경보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4월
구판절판


선생님. 죄송합니다만 그거 사양하겠슴네다. 기도후원은 제가 감사하게 받겠슴네다. 하지만 돈은 받기 싫슴네다. ........................제가 돈이 많아지면 북에서 온 다른 친구들과 사이가 나빠질 수도 있슴네다. 없을 땐 서로 이해하면서 살지만 누구는 잘 살고, 누구는 없이 살면 괜히 불편해짐네다. 적어도 지금 제 상황에선 그렇단 말임네다.
...........................
선생님도 잘 아시겠지만 배고프면 말입니다. 아무것도 안 보입니다. 자기가 사람인 것도 잊어버리게 된단 말입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사람이오!하고 이야기하고 싶슴네다. 그때 많이 도와주시라요.-40쪽

용서는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을 때 하는 거지. 상대방은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인데 하는 용서는 그저 네 맘이 편해지기 위한 걸지도 몰라. 그렇다면 어머니를 걱정하기보다는 오히려 너 자신의 슬픔을 밖으로 드러내는 게 좋지 않을까? 괴로운 맘을 숨김없이 겉으로 표현하고 답답한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60쪽

제가 오늘 안으로 찾아서 다시 집에 데려다놓을게요. 담임선생은 그런 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요. 어머니 그거 아시죠. 그놈이 아직 어려서 그렇다는 거. 어머니 마음 다 알아주려면 아직도 많이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거. 덩치는 크지만 아직 어린아이란 거. 저보다 어머니가 더 잘 아시죠? 그리고 어머니도 아시다시피 한빈이가 마음이 여린 친구 아닙니까? 그러니까 집에 오면 어머니께서 다 용서해 주세요. 어머니나 학교 선생이나 다 그렇게 손해 보고 이해하고 요서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않습니까? -64쪽

아람아! 실패는 말야, 더 큰 걸 얻기 위해 미리 투자하는 잔돈 같은 거야. 실패는 말야,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일 뿐이야. 실패는 말야. 성공보다 한 수 위에 있는 거야. 그리고 더 중요한 사실은 넌 지금, 마지막 실패를 한 게 아니라, 앞으로 네가 만날 수많은 실패들 중 하나를 미리 한 번 '경험' 해보았을 ㅃ누인라는 거야.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 첫 패를 열어보고 결과를 판단하는 건 너답지 않다. 그리고 내 말 잘 들어라. 미리 도망칠 궁리하지 마라. 그건 네 안에 있는 너에게 정말 큰 죄를 짓는 거야.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데, 상황도 꽤 괜찮은데, 왜 자꾸 쉽고 편한 길로 도망을 가려 하니!
아람아!
네가 메일에 쓴 것처럼 '길이 끊어져' 보이는 건 네가 자꾸 아래를 내려다 봐서 그렇다. 그래! 분명 땅의 길은 끊어졌을지 모른다. 죽음의 강만 자꾸 보이고, 그 강물 위에 네 눈물이 자꾸 떨어지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말야. 하늘을 보아라. 그리고 다시 한 번 네가 선 땅을 보아라. 네가 지금 절벽 위에 서 있는 게 아니라, 도약대 위에 서 있다는 걸 깨닫기 바란다. 나에게는 힘껏 발을 구른, 네 심장에서 저 하늘로 날아갈 날개가 돋아나는 것이 보인단다.-78-79쪽

선생님. 중학교 이후 지금까지 사람들은 제 잘못만 지적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제가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해.... 저는 사실은 졸업 후가 너무 막막했거든요. 그냥 군대에 가버릴 수도 있는데, 그럼 늙은 어머니 혼자서 너무 고생하실 거 같았구요. 선생님 저 물리치료사 될래요. 꼭 될래요. 진태도 돌봐주고 무엇보다 우리 어머니 돌봐드릴래요. 선생님, 고맙습니다.-110쪽

잠자리에 들면서 나는 기도를 했다. 남규와 남규의 어머니가 서로 구속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유를 선물하는 아름다운 존재로 거듭나게 해달라고 진심으로 기도했다. 그들이 서로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하려고 조바심 내는 존재가 아니라,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존재로 거듭나게 해달라고 참마음으로 기도했다.-162쪽

민국아. 사람이 말야. 마음마저 가난해지면 정말 세상 살기 빡빡해진다. 자존심은 참 소중한 거지만, 그것보다 더 소중한 건 너에게 솔직한 사람이 되는 거야. 젊을 때는 도움이 필요하면 떳떳하게 다른 사람에게 요구해도 괜찮아. 나중에 더 많은 걸로 더 많은 사람에게 갚으면 되잖아.-176-178쪽

넌 지금 삶을 즐기는 법을 먼저 배워야 해. 체육 점수를 따기 위해 늦도록 운동장에서 슛 연습만 하는 게 아니라 점심시간에 아이들과 즐겁게 축구를 할 수는 없니? 쉬는시간에 공부만 하지 말고 매점에 가서 아이들과 빵 한 조각이라도 나눠 먹으면서 즐겁게 이야기를 할 수는 없겠니? 너 자신에게 자유를 선물할 수는 없을까?잠깐 멈춰서 심호흡을 해. 그리고 주변을 둘러봐. 그러면 즐거운 일들이 많을 거야. 그런 걸 네 스스로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184쪽

함께하는 존재들은 부족하기에 함께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는 언제나 부족한 존재들이라는 것. 아픔도 내가 함께 안고 가야 하는 것임을 받아들인 순간, 죽음에 이르는 병인 외로움에서도 벗어날 수 있음을 깨달은 재서. 이제 그 아이와 나는 당뇨를 벗 삼아 외로운 삶의 소용돌이 가운데 빠져나가는 법을 연습할 것이다. 함께할 것이다.-195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네꼬 2007-06-25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 저 물리치료사 될래요. 꼭 될래요. 진태도 돌봐주고 무엇보다 우리 어머니 돌봐드릴래요. 선생님, 고맙습니다."

저는 이런 단순한 문장에서 마음이 무너져요. 이 책, 그 때 말씀하신 그 책인가요? 뒷표지에 마노아님...

마노아 2007-06-25 00:25   좋아요 0 | URL
진심이 담겨 있어서 이 투박한 문장에도 마음이 움직여지나봐요. 이 책 맞아요. 제 이름이 실렸던 책^^;;;
 
자고 깨어나면 늘 아침 이철수의 나뭇잎 편지 7
이철수 지음 / 삼인 / 2006년 12월
구판절판


감기가 들어와 지내는지 꽤 여러 날이 되었습니다. 같이 살자는 생각인지 나갈 생각을 않네요.
눈치도 주고 나가라고 약도 쓰고 했는데 뻔뻔한 녀석인지 아직 버티고 있습니다.
내 안으로 들어왔으니 그도 내게 속하는 것이라고 해야겠지요?
건강하면 감기도 뭣도 못 온다니, 결국 내 탓이라 해야지요!
마음에 드는 병도 그렇겠지요?
들어오고 나면 나가라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18쪽

분단보다 더 완강하게 우리를 가르는 장벽은 사회적 신분에 따른 사람대접의 벽인 듯합니다. 제 아이가 아직 어리던 시절 이야기입니다.
"아빠, 나는 더하기는 되는데 빼기가 안 돼!"하더라구요. 그 뒤에는, "곱하기는 되는데 나누기가 안 돼!"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비를 닮아 셈이 서툰가보다 했습니다. 그런 능력으로도 무난히 공부를 마치기는 했으니 다행이지요. 제 둔한 아이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사회도 '나누기'에는 참 서툰 듯했습니다.
별것 아닌 는ㅇ력의 '차이'를 지나치게 과장해서, 기회와 보상의 극단적 '차별'로 몰아가는 교활한 지배의 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면, 세상은 갈수록 지옥의 모습을 닮게 될 테지요? 세상은 나눗셈의 시험을 계속 '과락'하는 중입니다. -20쪽

날씨 차가워서 뜰에 내린 눈이 오래 그 자리에 있다. 마음에 생긴 상처를 보는 듯하다. 한 오십 년씩 살고 나면 마음이 상처투성이겠지?
양지의 눈은 쉬 녹고 음지의 눈은 오래가듯, 마음도 그럴 거라! 집에서는 가장이라고, 직장에서는 상사라고, 속내를 드러내 하소연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인생이 대부분일 거라! 마음의 뜰에서 녹아내리지 않는 눈밭이 만만찮게 넓다고 느끼는 오십대의 송년이다.
겨울 깊어가고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해는 바뀌지만 시린 겨울은 아직 많이 남았다. 인생이 언제나 양지바르기를 바란다면, 그건 ㅇ나직 철이 덜 들었다는 뜻이겠지? 음지 양지에 한눈파느라고 해 떨어지는 것 잊고 살아서도 안 되는 게 인생 아닌가? 기쁘고 슬픈 일, 아프고 보람 있고 행복했던 것 두루 우리 재산이라고 생각해야, 연말 손익계산이나 인생 결산이 허탈해지지 않을 것 같은데?-24쪽

에보 모랄레스라는 사람을 좀 연구해봐야겠다 싶었습니다. 볼리비아의 대통령 당선자, 사상 첫 인디오 출신 대통령. 아직은 그렇게만 알고 있습니다. 당선자 자격으로 외국 순방 길에 올랐는데, 알파카 스웨터 한 벌로 네 나라째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는 가십성 기사를 보고 호기심이 동했습니다.
외교적 결례라는 의견도 있다지만, 그보다는 신선하고 유쾌하다는 느낌이 더 컸습니다. 대통령과 털 스웨터! 재미있어 보입니다.
진골, 성골 출신의 대통령이라면 이렇게 파격적인 발상을 하기는 어려웠을 테지요? 그런 마음가짐으로, 소외된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길을 열어주는 '괜찮은 권력'이 되었다는 소식도 듣게 되면 좋겠네요. -40쪽

운동화 한 켤레 값이 무서워 고민하는 수녀님을 만나면 세상이 문득 밝아 보입니다. 진료비 2만 원이 너무 부담스럽다는 신부님을 봐도 세상이 환해집니다. 먼 길 걸어오시는 스님을 만나면 머리카락 없는 얼굴이 그대로 연꽃등이지요. 값싼 점심을 청하는 저명인사, 다시 보게 됩니다. 이름과 제복이 존재의 밝은 빛을 가려버리지 않아서 밝습니다.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오신 분들께서 자주 하시는 말씀 가운데 제일 가슴 아프게 듣는 이야기는, "한국인들은 친구건 가족이건 모여 앉으면 돈 이야기만 한다"입니다. 영혼의 안부보다 재산의 안부를 더 궁금해하는 사람들의 세상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건가요? 존재의 촛불을 꺼뜨리지 않게 되기를......, 돈이 우리를 삼키게 되지 않기를.-48쪽

-제가 좋아하는 글쟁이는 원고료가 너무 많으면 그렇게 많은 돈은 못 받는다고 사양하신다네요. 원고지 한 장 메우는 값이 양파 한 수레와 같으니 손끝을 까딱여 받는 수고비로는 용납하기 어렵다는 게 이유라고 했답니다.
-받아서, 어려운 데 주지.... 하시는 이도 계십니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정답을 찾기가 어려운 문제인 듯합니다.
-제 손으로 지은 쌀을 어려운 이들을 위한 시설에 보낸 일이 있습니다. 유기농 쌀을 시설에 보내게 된 일을 두고 누군가 물었습니다. "일반 쌀을 사주면 곱절은 보낼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있지요. 터무니 없는 말씀은 아닌 듯도 합니다. 하지만, 제 아내의 대꾸가 좀 더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어려운 사람들은 좋은 쌀 좀 먹으면 안 되나요?" 해답은 없지만, 마음은 통한 셈입니다. 그렇게, 살아보는 거지요, 뭐.-98쪽

손은 쓸데 없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묵묵히 일할 따름.
손은 움켜쥐는 힘이 펼치는 힘보다 셉니다. 움켜쥘 때 이기적이라면, 펼칠 때 이타적입니다. 손은 본질적으로 이기적입니다. 일하는 손은 정직하지만, 얻은 것을 감추는 것도 손이 하는 일입니다. 나눔은 손을 깨끗이 하는 일입니다. 나눔은 부끄러움을 씻는 일이기도 합니다. 두 손 가득 움켜 내게로 당겨오지 않고 들어 이웃에게 드리면 넉넉한 나눔의 손길이 됩니다. 거룩한 데 올리듯 높이 들어 나누는 손길은 나눔의 예배이기도 합니다.-122쪽

나누는 손이 아름답지만, 가난하여 나눌 것이 적은 손은 순정합니다. 가난보다 더 깊은 기도는 없음을 빈손이 알려줍니다. 일하는 손도 아름답지만 ㅁ쉴 때 쉬면서 그 손을 조용히 살피는 성찰의 시간도 소중합니다. 일만 하다 죽으라는 인생 아닌 것을 빈손의 묵묵함을 통해 다시 깨닫습니다. 몸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부지런히 살아가는 손에게 몸이 하는 대답도 있어야 합니다. 존재가 두루 무상해서 하루하루 나이 먹다 보면, 힘없이 앙상해진 손을 가슴에 품어 안고 살아온 날들 되돌아보게 될 테지요. 손이 기억하는 한 평생이-선한 것이건 악한 것이건, 그것만으로 충분했다고 할 수 있을까? 가난을 위해서 쉬지 말고, 맑고 투명한 존재와 마음을 위해 쉬는 손을, 나태해진 손이 아니라 성찰과 기도로 간절해진 손을 꿈꾸어야 합니다. 마음 곳간이 넉넉해지면 손은 가난 속에서 오히려 여유로워집니다. 그것을 일컬어 청빈이라 합니다. 청빈의 서늘한 손끝을!-124쪽

갑자기 쏟아지는 소낙비에 사람들 발걸음이 바쁩니다.
비에 흠뻑 젖은 옷차림으로도 여유작작한 건 어린 학생들뿐입니다.
이미 젖은 몸이다! 오려면 오고, 가려면 가라! 하는 표정으로, 비 젖은 길을 걷는 아이들이 예뻐 보였습니다. 더위도 피해 살고, 햇볕도 피해 살고, 추위도, 눈 비도 피해 삽니다. 불편한 인간관계도 피해 살자고 드는 세태지요? 남는 건 외로움뿐!-134쪽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시설에서 뭘 좀 거들어달라고 연락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각별히 마음 써야 할 소외된 사람들로 손꼽아야 할 상대가 그이들입니다. 우리 눈에도 선 사람들이지만, 그이들 입장에서 우리 사회는 더 할 수 없이 낯설고 물설고 말도 통하지 않는 땅일 테지요? 여기 와서 험한 일하며 뿌리내리고 살자면 겪게 될 아픔과 슬픔 그리고 노여움도 많을 것 짐작이 갑니다. 대단한 도움을 주지 못해도, 마주치면 웃어주는 일이야 못하려고요? 그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될 것 분명합니다. 오래 함께 살아야 할 새 이웃입니다.-210쪽

세상에 밥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있나요? 밥 못 먹고 사는 사람 있나요? 또 다른 가난이 있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갈라놓는 시대이기는 하지만, 밥 한 그릇이 없어 허기졌다는 소식은 드물어졌습니다. 지난 가을 비바람에 드러누워버린 벼 포기를, 긴 막대 끝으로 들어 올려가며 벼 베기 하는 논을 보았습니다. 한 가마에 고작 14만원 하는 쌀값에도 다 익은 벼 이삭을 논바닥에 깔아버릴 수는 없다는 가상한 농심의 발로인가보다 생각했습니다.
배불러지고 보니, 언제고 어디서고 그저 있는 것이 쌀이려니 여기는 분위기가 흔해졌습니다. 자동차 생산 공장 파업이 국가적 관심사가 되고, 전철 운행이 한 이틀만 불편해도 국민들이 아우성이지만, 쌀 수입이 자유로워져 값싼 외국 쌀이 쏟아져 들어온다는데 세상은 나 몰라라!
그 많던 담배 농사는 행방이 묘연해졌지요? 고추 농사도 지어봐야 헛수고지요? 배추 농사도 헛발질이지요? 참깨, 콩, 마늘...... 어느 것 하나 제값 받고 팔 농사가 아닙니다. 농산물 수입 개방 탓입니다. 농약, 방부제 칠갑을 한 정체 모를 먹을거리에 당해도 크게 당할 겁니다. 내 땅의 물, 햇살, 바람은 어디다 쓰려고 농사를 다 버리자 하는 것인지? 기계 팔아 쌀 사다 먹으면 크게 망합니다.-23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의 불빛 (양장)
셸 실버스타인 글.그림,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7년 1월
절판


다락방의 불빛

다락방에 불빛이 켜져 있네.
집은 깜깜하고 덧문은 닫혀 있지만
깜박거리는 불빛이 보이네.
그 불빛이 무얼 얘기하려는 건지 난 알지.
다락방에 불빛이 켜져 있네.
내가 밖에서 그 불빛을 바라보는 동안
네가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다는 것도 난 알지-7쪽

얼마나 많이, 얼마나 크게

얼마나 크게 네 방 문은 쾅쾅거릴 수 있을까?
얼마나 세게 닫느냐에 달려 있지.
얼마나 많이 네 빵은 조각날 수 있을까?
얼마나 잘게 쪼개느냐에 달려 있지.
얼마나 큰 행운이 하루 안에 들어 있을까?
얼마나 열심히 사느냐에 달려 있지.
얼마나 큰 사랑이 친구 마음 속에 들어 있을까?
얼마나 많이 네가 마음을 주느냐에 달려 있지.-8쪽

달 따는 그물

달 따는 그물을 만들었지.
오늘 밤에 달을 따러 갈 테야.
달 따는 그물을 치켜들고 하늘을 휘저으며 달려가
저 커다란 빛 덩어리를 잡고 말 테야.

내일 밤에 하늘을 한번 쳐다보렴.
만일 달이 보이지 않거들랑
마침내 내가 달을 따거 달 따는 그물 속에 꼭꼭 넣어 두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돼.

하지만 달이 여전히 빛나고 있거들랑
그 아래를 찬찬히 살펴보렴.
달 따는 그물이 별에 걸리는 바람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나를 보게 될 거야.-9쪽

내가 만난 괴물들

유령을 만났는데, 내 머리통은 필요 없대.
그저 삼천포 가는 길이 어디냐고만 묻더라.
악마를 만났는데, 내 영혼 따윈 관심 없대.
그저 자전거를 며칠 동안만 빌려 달라고 하더라.
흡혈귀를 만났는데, 내 피를 빨아 먹진 않겠대.
그저 동전을 바꿔 달라고만 하더라.
나는 늘 나무랄 데 없는 사람들만 마주치곤 하는데
글쎄, 번번이 때가 안 좋지 뭐야.-23쪽

누군가 해야만 해

누군가 하늘에 올라가 별들을 닦아야 해.
별들이 좀 침침해 보이잖니.
누군가 하늘에 올라가 별들을 닦아야 해.
독수리와 찌르레기와 갈매기가
빛 바래고 낡아빠진 별들에 불만이 많다잖니.
모두들 새 것을 달아 달라지만
우리에게 통 여유가 있어야 말이지.
그러니까 네가 걸레 조각이랑 광약 한 통이랑
좀 가져오지 않을래.
누군가 하늘에 올라가 별들을 닦아야 해.-28쪽

물그림자

물 속에 거꾸로 뒤집혀 서 있는 사람을
마주볼 때마다
실실 웃음이 나오려고 해.
이러면 안 되는데 말이야.
딴 세상
딴 시대
딴 마을에서는
그가 똑바로 선 사람이고
난 거꾸로 뒤집힌 사람일지도 모르잖아.-29쪽

내가 만지는 것마다

마이더스 왕은 만지는 것마다
모조리 금으로 변했다는군. 참 복도 많지.
내가 만지는 건, 오, 이런
깡그리 산딸기 젤리로 변하지 뭐야.
오늘 부엌 벽을 만졌더니(흐늘흐늘)
동생 폴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더니(철퍽)
지난 주엔 자전거 수리를 하려고 했더니(끈적끈적)
그리고 엄마 볼에 뽀뽀를 했더니(척척)
덧신을 신었더니(찔컥찔컥)
석간신문을 보려고 펼쳤더니(푸작푸작)
안락의자에 앉았더니(껍진껍진)
곱슬머리를 빗으려고 했더니(찐득찐득)
바닷속으로 다이빙을 했더니(질퍼덕질퍼덕)
이봐요, 나랑 악수하지 않을래요?(쩍)-53쪽

하기

우리가 만나 "안녕"하고 말하면,
그건 인사하기야.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그건 배려하기야.
우리가 잠시 멈추어 이야기를 나누면,
그건 대화하기야.
우리가 서로서로 이해하면,
그건 소통하기야.
우리가 따지고 소리지르며 싸우면,
그건 언쟁하기야.
나중에 서로 사과하면,
그건 화해하기야.
우리가 서로 다른 집을 도우면,
그건 협동하기야.
이 모든 하기들을 다 보태면
문명사회를 이루는 거야.

(만일 내가 이걸 멋진 시라고 말하면, 그건 과장하기일까?)-59쪽

음악 경력

그 여자는 피아노를 치고 싶어했지만
손이 건반에 잘 닿지 않았지.
드디어 손이 건반에 닿았을 때는
발이 바닥에 닿지 않았지.
마침내 손도 건반에 닿고
발도 바닥에 닿게 되었을 때는
그 낡아 빠진 피아노 따윈 치고 싶지 않았어.-60쪽

손톱 물어뜯는 사람

어떤 사람은 손토에 매니큐어를 칠하고
어떤 사람은 말끔히 손질을 하고
어떤 사람은 줄로 살살 갈기도 하지만
나는 잘근잘근 물어뜯지.
그래, 나쁜 버릇이란 건 나도 알아.
하지만 네가 나를 흉보기 전에
알아야 할 게 있어. 난 지금껏
누구의 마음도 할퀴어 본 적이 없단다.-99쪽

화살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았지.
화살은 두둥실 떠가는 구름에 맞았어.
구름이 바닷가에 쓰러져 죽어 가네.
다시는 화살을 쏘지 않을 거야.-127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선생님이 좋아요
하이타니 겐지로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양철북 / 2002년 7월
절판


고다니 선생님, 파리를 키운다고 해서 데쓰조가 나쁜 아이는 아닙니다. 산으로 데려가면 데쓰조는 곤충을 기를 겁니다. 강으로 데려가면 물고기를 기르겠지요. 하지만 나는 아무 데도 못 데려갑니다. 이 녀석은 쓰레기가 모이는 여기밖에 모르고, 여기는 구더기나 하루살이, 그리고 기껏해야 파리밖에 없는 뎁니다. -54쪽

파리는 나면서부터 부모한테 버려진 채 평생 친구도 가족도 집도 없이 혼자 산다. 항상 벌, 거미, 참새 등의 위협을 받지만 남을 위협하는 일은 없고, 먹이라고는 사회의 폐기물에 지나지 않는다. 파리의 생태는 전혀 아름답지 않지만, 잔인하지 않으며 극히 조촐한, 말하자면 서민의 생활과 같다. -85쪽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짱꿀라 2007-05-20 2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저도 감명깊게 읽었던 책인데 다시 마노아님이 올려주신 밑줄긋기를 보니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교육자라면 꼭 한번은 보고 넘어가야할 걸작인 책이죠.

마노아 2007-05-2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탄과 부끄러움이 같이 솟아나게 만드는 책이었어요. 모두에게 추천하고픈 그런 책이에요^^

치유 2007-05-21 0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참 좋지요??읽으면서 참 감동스런 장면들이 너무 많았더랍니다..

딸기 2007-05-21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브 시리즈에서 울며 웃으며 봤던 책. :)

비로그인 2007-05-21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사람을 피해 다니는 벌이나 나비 등과 달리, 파리는 가끔씩 사람들에게 다가오려고
하죠,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파리들을 혐오스러워하며 무척 싫어합니다.
의식적으로 남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더러운 곳만 앉았다 일어나다보니 사람들이
기피하는 것 같습니다. 균이란 것은 눈에 보이지도 느껴지지도 않으니까 말이죠.
그래도, 왠지 - 오늘은 그런 찬 대접을 받는 파리에게 측은함이 드는군요. (웃음)

마노아 2007-05-21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배울 게 참 많은 내용이었어요.
딸기 언니~ 오래오래 스테디셀러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겠어요(>_<)
엘신님, 책에서 보니까 집파리가 똥을 먹기 때문에 지저분한데, 그 밖의 파리는 다르더라구요. 파리에도 계보가 명백히 나눠져 있었던 겁니다^^;;;;
뭐, 집파리만도 못한 인간들도 많긴 하지만요..;;;;

비로그인 2007-05-21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집파리만도 못한 인간들은 파리를 싫어 할 자격도 없습니다. ^^

비로그인 2007-05-21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마노님. 이번 주에 이 책 가지고 나오셔서 소리내어 읽어주시면 안될까요?
진짜 선생님이 읽는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웃음)
그럼, 저도 답례로 일본 전래 동화 [모모타로우]를 읽어드리겠습니다. ^^
읽어주실거죠? 참, <낚시하는 물고기의 상상>도 잊으시면 안돼요~ 우헤헷.

마노아 2007-05-21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리를 싫어할 자격도 없는 인간들이라니, 명쾌한 표현이에요.
엄훠나, 근데 무슨 말씀! 그런 남사스런 짓은 못해요ㅠ.ㅠ
근데 모모타로우는 일본어도 읽어주는 건가요? 흑... 못 알아듣잖아요ㅠ.ㅠ
낚시하는 물고기의 상상은 꼭 들고 갈게요^^ㅎㅎㅎ

비로그인 2007-05-21 15: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모모타로우]...일본어로 된 책밖에 없어서...
그러나,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마노님이 먼저 읽어주지 않으시면 저도 안 읽습니다.
(씨익 ㅡ_ㅡ)

마노아 2007-05-21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예요, 모예요. 이건 반칙이야..ㅡ.ㅡ;;;;

비로그인 2007-05-21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떠한 상황에서도 -
"한번은 한번입니다." (훗-)

마노아 2007-05-21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낭독은 힘들어도 이야기 목소리는 실컷 들을 수 있어요. 그걸로 퉁 쳐줘요ㅡ.ㅡ;;;;

비로그인 2007-05-21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야기 목소리가 뭡니까..? (긁적)

마노아 2007-05-21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소 말하는 목소리죠 뭐^^ㅎㅎㅎ

비로그인 2007-05-22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ㅡ_ㅡa (긁적) (아직도 이해 못하고 있음)
 
낚시하는 물고기의 상상 - 오늘을 행복하게 하는 36가지 상상
케스투티스 카스파라비키우스 지음, 원지명 옮김 / 예담 / 2007년 4월
절판


보이는 그대로 믿어버리는 것은 정직함이 아니라 게으름입니다.
보이는 것을 보지 않으려는 것은 소신이 아니라 어리석음입니다.
진리는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지만, 보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보입니다.-35쪽

지식은 소화불량에 걸릴 수 있지만,
지혜는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습니다.-51쪽

세상에서 가장 빠른 것도, 세상에서 가장 느린 것도, 시간만큼 빠르고 시간만큼 느리지는 못합니다.-81쪽

준비하지 않은 서툰 희망은 달걀처럼 쉽게 깨집니다.-93쪽

잘난 사람을 칭찬하기는 쉽지만 못난 사람을 격려하기는 그리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이야말로 격려가 절실히 필요합니다.-123쪽

멀리 떠나보면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지만
너무 멀어지면 돌아오는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139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로그인 2007-05-1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군요. 책 제목도 좋고. 담아갑니다~ ^^

마노아 2007-05-16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이 참 독특해서 인상적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