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바람구두 > FTA 가족우화

FTA란 것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매우 합리적인 결정입니다.
경쟁력 없는 거 없애고, 경쟁력 있는 산업을 육성해서
그걸로 세계분업에 동참하자는 말이니까요.

그런 말 뒤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건, 결국 농촌은 내버려두어도
저절로 망해 없어질 거란 뉘앙스의 안타까움일 겁니다.

국가경제란 측면을 축소해서 가족경제로 환산해보면
이해가 좀더 쉬울 수도 있단 생각인데...
요즘 같은 핵가족 말고, 예전의 대가족을 떠올려보면 더욱 쉽게 이해가 될 듯 하네요.


대가족을 모두 먹여살리기엔 좀 빠듯하여
'자식들 죄다 대학 보내긴 어려우니 좀 싹수 보이는 자식을 대학에 보내자.'
이렇게 결정한 가족이 있었던 거죠.
만약 그 자식이 성공해서 돈도 잘 벌고, 그렇게 해서 다른 동생들도 먹고 살게끔
뒤도 봐주고, 가족들 부쳐 먹으라고 땅도 좀 사주고 그래서
시골에서 농사짓는 가족들도 먹고 살만 해지면 가장 좋은 거고,
그걸 경제학 용어를 빌자면 '분배'란 겁니다.

이때 정부란 집안 어른쯤 되는 거고 잘된 자식은 재벌쯤 되는 거고요.
그런데 이럴 때 가족 상황에서 잘 안 될 경우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축약될 수 있는데
하나는 그렇게 밀어준 자식이 대처에 나가 성공하는 게 아니라
술과 유흥에 빠져 소 팔고, 땅 팔아서 대준 돈을 다 날려 먹고 쪽박 차는 것이 하나요.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장남이라고 서울 사는 큰 아들놈만 예뻐해서
이 놈이 서울서 장가들고, 시골 본집엔 코빼기도 안 보이는 상황에도
서울 간 큰 아들놈만 찾고
(일단 봉제사해줄 놈인데 다가
잘 되면 나 몰라라 할 놈이 아닌 심성 고운 놈이라고 부모님은 철석같이 믿고 있는 거죠.)

나머지 자식들은 밥 굶든, 학교 못가든 개의치 않는 경우가 하나죠.

그리고 다른 하나는 서울 가서 성공한 큰 아들놈이 정말 못 되어먹은 놈이라
뒤를 봐준 아버지, 어머니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냐' 고 되려 큰 소리 치고
'가족이라면 지긋지긋하니 이제 나 좀 고만 괴롭히라' 고 하는 거죠.

이게 FTA와 무슨 상관인지 모르시겠다는 눈치없는 이라면 차암 하는 수 없지요.
이런 비유 별로 좋아 하지 않지만...

지금 아버지(정부)가 추진하는 FTA가 산업구조 개편과 관련이 있는 거고
그것이 경쟁력있는 사업 분야를 집중적으로 키워서 이것으로 온 가족(국민)이
잘 살게 되는 첩경이라고 그렇게 단순하게 철석같이 믿고 있는 건...
가족 버리고 서울 가버린 장남에게 '용돈(세금) 받아서 나머지 가족들도 잘 살게(분배) 해줄께'
라고 말하는 무책임한 아버지와 똑같아요.

아버지는 점점 더 힘이 빠지는데다가 나머지 가족들도 내가 벌어서 내가 먹고 살고 싶은 거지
서울 간 형님이 옛따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 던져주는 용돈에 목 매고 싶은 가족이 어디있겠어요.

누구는 이걸 무임승차라거나 무노동무임금, 잘 나가는 큰 형님에게 와서
나 옛날 어릴 적에 형 월사금 대느라 나 학교도 못 가고 소꼴 베러 다녔으니
이제라도 장사 밑천하게 한 몫 떼달라고 와서 뗑깡 부리는 동생(노동자) 같다고 욕할지도 모르겠지만...

정말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밍교...

* 이거 좀더 다듬어서 다음달 신문 칼럼에 꼭 실을 겁니다.(짤릴까요? 흐흐)
아무래도 FTA이야기만 연속으로 쓰면 누구처럼 FTA에 올인했다고 욕 먹을 듯 하여...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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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내 마음의 모래바람에게 : 네 번째 편지

내 마음의 모래바람에게 : 네 번째 편지
- 오세영의 시 "나를 지우고"를 읽으며 든 생각들


나를 지우고


오세영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나를 지운다는 것은 곧
너를 지운다는 것,
밤새
그리움을 살라 먹고 피는
초롱꽃처럼
이슬이 이슬을 지우면
안개가 되고,
안개가 안개를 지우면
푸른 하늘이 되듯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


내 마음의 모래바람에게...
이상하게도 당신에게 편지를 쓰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착 가라앉아 버립니다.
마치 내 안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반성문을 쓰고 있는 듯이...

늙은이에게 젊은이는 더이상 아무 것도 배우려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나이 먹은 교수는 그저 나이 먹은 교수일 뿐 그가 평생을 쌓아온 학문적 업적 같은 것은 쇠락해버린 초가에 덩그마니 얹힌 박 같이 허울만 좋은 이름일 뿐 특별한 권위는 바랄 것도 없고, 존경은 더할 말이 없는 시대입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경쟁력이 으뜸인 시대에 고려장 지낼 날이 멀지 않다는 증빙이 되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너희들도 언젠가 늙을 것이란 말은 충고도, 선언도 아닌 악담인 게지요.

내가 아직 '문학은 나의 힘'이라 외치며 술잔을 높이 들던 시절, 아직 고왔고 아름다운 시인이자 나의 은사에게 "시인은 늙기 전에 죽어야 합니다."라며 호기롭게 떠들었습니다. 아름다운 시인이었던 은사는 여전히 살아 제자들을 가르칩니다. 머리가 많이 새었지만 여전히 멋있을 겁니다. 1942년생인 시인 오세영의 시를 읽습니다. 당신의 이 시를 읽노라니 문득 『장자(莊子)』 「달생(達生)」에 나오는 ‘목계지덕(木鸂之德)’의 고사가 떠오릅니다. 다들 잘 아시는 내용이겠지만, 중국의 어느 왕이 투계를 몹시 좋아하여 기성자란 사람에게 최고의 싸움닭을 구해 최고의 투계로 만들도록 합니다. 기성자란 인물은 당시 최고의 투계 사육사였는데, 왕이 맡긴지 십일이 지나 기성자에게 “닭이 싸우기에 충분한가?”라며 묻습니다. 기성자는 단호히 대답하길 “아닙니다. 아직 멀었습니다. 닭이 강하긴 하나 교만하여 아직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있습니다.”라 했습니다.

다시 십일이 지나 왕이 또 기성자를 불러 물었습니다. 그러자 기성자는 “아직 멀었습니다. 교만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의 소리와 그림자에도 너무 쉽게 반응합니다.”라 했습니다. 왕은 다시 십일이 지나 기성자에게 묻습니다. 기성자는 역시 “아직 멀었습니다. 조급함은 버렸으나 상대방을 노려보는 눈초리가 너무 공격적입니다. 그 눈초리를 버려야 합니다.”라 답합니다. 다시 십일이 지나 왕이 또 묻자, 기성자는 그제야 “이제 된 것 같습니다. 이제 상대방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이제 완전히 마음의 평정을 찾았습니다. 나무와 같은 목계가 되었습니다. 어느 닭이라도 이 모습만 봐도 도망갈 것입니다.”라고 답했다는 고사입니다.

얼마 전 케이블 TV에서 해주는 영화 <미션>을 다시 보았습니다. 오래전 문망의 영화 코너에 글을 올린 적도 있었던 영화입니다. 그 사이 내가 늙어 유순해진 것인지 어렸을 적엔 가브리엘(제레미 아이언스) 신부보다 로드리고(로버트 드니로) 신부가 더 좋고, 더 잘 이해되었었는데 이번엔 가브리엘 신부의 마음도 알 것 같더이다. 누군가에 대해 잘 알기 위해선 그 사람이 있는 곳보다 그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그 사람에 대해 들어야 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운명이란 것도 때로는 우리가 바라볼 수 있는 곳보다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이루어질 때가 더 많다는 걸 이제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알듯합니다.

시인 오세영은 늙었고, 나는 아직 젊습니다. 그 말은 내가 더 진보적이란 말이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 배울 것이 더 많다는 뜻이란 걸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산에서/ 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은/ 산이 된다는 것이다.”이란 걸 알 것 같습니다. “나무가 나무를 지우면/ 숲이 되고,”란 구절에서 나는 나무가 홀로 나무일 때는 결코 숲을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자신의 존재를 지울 때만 비로소 숲을 이룰 수 있다는 걸 배웁니다. “숲이 숲을 지우면/ 산이 되고,/ 산에서/ 산과 벗하여 산다는 것은/ 나를 지우는 일이다.”라는 당신의 가르침을 전부 알 수는 없겠으나 내 나름으로 살아가며 더 깨우칠 일이겠지요.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고서야 어찌 밀밭을 이룰 수 있을까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에 나오는 말로 ‘화광동진(和光同塵)’이란 말이 또한 이와 흡사하겠지요. 말 그대로 해석하면 빛을 감추고 티끌 속에 숨어 있다는 뜻이지만 이때의 진(塵)이란 속세를 뜻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 말은 겸손하란 뜻도 되지만 다른 한 편으론 자신이 지닌 능력이 제 아무리 뛰어나도 이를 내세우지 말고, 세상의 속된 사람들에게 눈높이 맞추란 뜻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말은 오늘날 고립되어 가는, 위기에 처한 진보, 좌파를 자임하는 (저 같은)사람들이 귀담아 들을 만한 구절이란 생각이 듭니다. 리저호우(李澤厚)는 『고별혁명(告別革命)』이란 책의 한국어판 서문에서 「개량으로 혁명을 대체한다」는 글을 썼습니다.

지난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나 ‘개량주의자’란 지적을 마음 한 구석에선 치욕처럼 느낍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제 개량주의자였음을 자백하는 고해성사를 하려고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혁명가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사실, 저는 그와 같은 현실이 슬픈 사람입니다. 리저호우는 “1895년, 갑오해전에 패배한 이후로 중국은 줄곧 ‘혁명의 길’과 ‘개량의 길’ 사이의 논쟁에 휘말려 있었다. 전자는 ‘돌변突變’ 즉, 계급투쟁이라는 극단적인 방식(폭력수단)으로 국가기구를 전복시켜 역사의 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고, 후자는 ‘점변漸變’ 즉, 계급협력의 비폭력 수단으로 국가적, 사회적 자아의 경신을 추구하자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좌파와 진보를 단순히 민주노동당이나 참여연대, 민주노총 만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이 그나마 가장 대표적인 집단인 건 사실이겠지요. 이들 중 누구도 ‘혁명의 길’을 가야 한다고 주장하진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서 주류 좌파(진보)는 모두 개량주의자들입니다.

그러나 제가 답답하게 여기는 것은 이들 중 누구도 솔직하게 개량주의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아니, 어쩌면 모두가 그 사실을 암묵적으로 알고 있다 여기기에 말하지 않을 수도 있고, 이미 수차례 말했는데 저만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지요. 그것이 어찌되었든 우리나라의 좌파들, 진보들은 아직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선 개량주의에 대한 혐오와 혁명에 대한 동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듯 보입니다. 이건 남의 이야기라 하기 좋아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저 자신을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도 끝에 나온 말입니다. 그것이 ‘돌변’이든, ‘점변’이든 추구하는 바를 리저호우의 말에서 빌리면 결국 국가적, 사회적 자아의 경신에 있습니다. 대체로 국가적 자아의 경신에 실패하는 경우, 국가와 지배계급이 택하는 손쉬운 해결책은 역사 이래 전쟁이었던 경우가 많았고, 피지배계급이 택하는 해결책은 폭동이나 혁명이었습니다. 전쟁은 자본가들의 혁명, 우파들의 혁명인 셈이지요. 역사가 한 개인이나 집단의 공과를 심판한다는 믿음을 버리고 났을 때, 역사는 그저 냉정하고 잔인한 기술(記述) 방식의 하나일 뿐입니다.

저는 중국식 유물론의 효시를 관자(管子)로 봅니다. 그는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사상가이자 정치가였고, 후세 제갈량이 닮고 싶다고 말했던 관중(管仲:?~BC 645)입니다. 관중하면 우선 “관포지교(管鮑之交)”만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지만 관중은 제나라 민중들이 영웅처럼 떠받들던 재상이기도 했습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을 통해 마치 일종의 제왕론을 펼친 사람으로만 오해되는 것처럼, 관중 역시 그와 흡사한 사람으로 오해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는 『관자(管子)』 「목민편(牧民篇)」에 이르길 “광에 먹을 것이 차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족해야 영욕(榮辱)을 안다(倉凜實則 知禮節, 衣食足則 知榮辱)”는 말을 했습니다. 제가 유물론의 본질을 지극히 천한 것으로 끌어내린다는 오해를 감수하고라도 말하자면, 결국 유물론은 인간이 정신만으로 살 수 없다는 현실주의를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한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예수의 말에 반대하는 주의, 주장은 아닙니다. 도리어 그 반대에 가깝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은 빵만으론 살 수 없지만 빵 없이는 살 수 없다’가 우선인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급진은 명분이 아니라 개량주의자들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일은 아닐런지요. 아니, 명분만 내세운 채 거짓희망을 주느니 차라리 보다 철두철미한 개량의 길로 가는 것이 도리어 급진의 길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비판의 말만 앞세우면서도 실제로는 개량의 길로 질질 끌려갈 것이 아니라 도리어 앞서 성찰하고, 개량하고, 개혁하고, 보수하여 실현가능한 희망, 급진을 실천해내는 것이 좀더 효과적인 전략이 아닐까 고민하게 됩니다.

1987년 이후 20년이 흘렀고, 1997년 이후 10년이 흐르고 있습니다. 프란츠 파농은 “민중에 대한 아첨을 경계하라”고 말했는데, 오늘 이 땅의 지식인들은 무의식적으로, 의식적으로 여전히 민중에 대해 아첨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1980년대를 휘감았던 민중주의는 역사와 민중을 지혜로운 심판자, 추상적인 진리로 추어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 때 말하는 민중이란 언제나 결국 각성한 민중으로서의 소수자였을 뿐임을 이제 인정해야 할 때입니다. 절차적 민주화라고 현재의 민주주의를 폄하하지만,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입니다. 지금 돌변의 방식을 택하자고 외치는 진보도, 좌파도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좌파는 여전히 고립되어 있습니다. 저는 우리 모두가 개량주의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 않으며, 도리어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 더 많은 존경이 돌아가야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토록 많은 이들이 민주노동당과 시민단체들, 민주노총에 등을 돌리고 있을까를, 아니 지지하지 않는 것일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어째서 민중들이 자신의 계급을 배신하는가, 지지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론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데올로기와 체제, 교육, 언론 등 수많은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것이 모두 타당하다는 사실은 아마 아는 이들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일 겁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좀더 솔직하게 고백할 때입니다. 1980년대의 분열을 오늘까지도 그대로 끌고 왔으며, 우리들의 현실을 비판하는 일에 능숙한 반면, 현실적인 대안이나 희망을 제시하는데 있어서는 그간 얼마나 서툰 존재들이었는지 말입니다. 거기에 더해 과거 전대협 의장을 비롯한 학생운동권 중 상당수가 결국 아무런 명분도 없이 현실정치에 투항해버렸고, 민주노총은 도덕성에 상처를 받았으며, 시민단체들은 정권교체 이후 하나둘씩 체제내화 되는 과정에 있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민중에게 아무런 희망도, 비전도 주지 못한 채, 과거와 같은 방식의 운동, 명분이 옳으니까, 정치적으로 올바른 싸움이기 때문에 혹은 우리가 언제는 언론의 지지를 받고 싸운 적이 있냐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교만이고, 자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지우고 나무, 숲, 산이 되는 희생, 싸우지 않고 이기는 나무 닭의 덕, 세상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는 대신 자신을 낮춰 세상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겸손, 관자의 실용주의, 태산과 같은 여유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미FTA 타결 이후 평소 조용하기가 산과 같고, 사람 좋기로 소문난 허세욱 선생이 분신을 하고, 예천에서는 농민 한 분이 평소 친하게 지내던 마을 사람들에게 공기총을 쏘았습니다. 사는 건 앞으로도 힘이 들겠지요. 하긴 우리 네 사는 세상이 한 번이라도 살기 좋았던 적은 없습니다. 오늘 아니면 내일, 내일 아니면 모레가 더 좋은 세상 만들어보자고 다들 고생하시는 거 압니다. 다만 마르크스주의는 고정된 말씀에 얽매이는 종교가 아니라 언제나 변화하는 세상에 가장 적절하게 대응해온 철학이기도 했다는 걸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예전에 제가 썼던 글을 반복하는 것으로 이 지루한 고해성사를 마무리 짓고 싶습니다. 독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눈물을 닦아줄 수 있는데도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방어할 힘도 없는 가엾은 사람을 뭉개버리는 인간들은 누구든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선량하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그저 단순하게 선량하다는 것이야말로 모든 것을 다 아우른다. 이것은 어떤 지성보다도, 옳다고 주장하는 우쭐함보다도 더 우월한 것이다.” 사회주의는 양심의 기억이자, 동시에 패배의 기억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사회주의는 우리들의 양심이 늘 손쉽게 욕망에 굴복할 수도 있음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건 어제도 그러했고, 현재에도 그러하며 불행히 미래에도 그럴 것 같습니다. 비록 우리의 희망이 저 멀리, 지금은 비록 그 길이 보이지 않으며 우리가 향하는 길 양 편으로 무수한 무덤들이 실패를 증명하지만, 그 길이 우리의 양심이 손가락질하는 방향인 이상 그리로 갈 수밖에 없겠지요. 그 길 위에서 외로운 한 명의 친구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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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라미닌 > 요 20:1-18 왜 마리아였을까?

 

요 20:1-18 왜 마리아였을까?


저는 부활절이 될 때마다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왜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었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여자를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셨을 때에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제외하고 성인 남자들만 숫자로 계산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성인 남자들만 사람으로 존중하였습니다. 여자의 말을 미더워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수제자인 베드로에게 알려주었다면 다른 제자들도 믿겠지만 여자인 마리아에게 알려준다면 다른 제자들이 의심할 것이 뻔했습니다. 예수님도 이 사실을 아셨지만 수제자인 베드로가 아니라 여자인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알려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 이유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마리아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부터 살펴볼까요? 누가복음 8장 1절에서 3절을 읽겠습니다. 마리아는 일곱 귀신이 들렸었습니다. 일곱 귀신은 귀신 들린 상태가 아주 심각했다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귀신이 심하게 들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었으나 예수님이 귀신을 쫒아내 주셔서 건강을 회복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여자들에게도 귀신을 쫓아내주거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요안나와 수산나와 다른 여자와 함께 자기들의 소유를 팔아 예수님과 제자들을 섬겼습니다. 누가복음 5장 11절을 보면 예수님의 핵심 제자인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을 따랐지만 8장 3절을 보면 마리아와 요안나와 수산나는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따르는 것은 교회만 다니는 것이라면(무리라면) 섬기는 것은 교회봉사를 하는 것입니다.(제자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여 제자였습니다. 여 제자들 중에서도 이름이 먼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지도자였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베드로가 아니라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알려줄 수밖에 없었던 첫 번째 이유는 마리아가 예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섬겼다고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려주었을까요?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또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44절에서 56절을 읽겠습니다. 예수님에게는 12제자가 있었는데 가룟 유다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철야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어 종교지도자들에게 붙잡혀 가게 하였고, 수제자인 베드로는 칼을 들고 저항하였다가 대제사장의 집에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였고,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면 출세하려 했으나 붙잡혀 가시자 해코지를 당할까봐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여 제자들은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을 채찍으로 때릴 때 자신들도 뼛조각이 살에 박혀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아픔을 느꼈고, 로마 군병들이 가시나무로 면류관을 엮어서 예수님의 머리에 씌울 때 자신들도 머리에 굵은 가시가 박히는 쓰라림을 받았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다 넘어지실 때 자신들도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 넘어져 팔꿈치와 무릎에 시퍼런 멍이 드는 고통을 느꼈고,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에게 망치질을 할 때 자신들도 팔목과 발목에 못이 박히는 끔찍함을 느꼈고, 로마 군병들이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창으로 옆구리를 찌를 때 자신들도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쏟아지는 충격을 겪었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에 자신들도 목숨이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장사지냈을 때에 자신들도 돌무덤에 매장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남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갔지만 여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베드로가 아니라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알려줄 수밖에 없었던 두 번째 이유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임종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섬겼고 예수님의 임종을 지켰다고 해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알려주었을까요? 이것 말고도 또 다른 무언가가 있었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 1절부터 12절까지를 읽겠습니다. 예수님은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3시에 돌아가셨습니다. 금요일 오후 6시부터는 안식일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에는 모든 것이 멈추어집니다. 장례식도 치를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일 장을 치릅니다만 아리마대 요셉은 안식일까지 얼마 안 남았기 때문에 서둘러서 장례를 치렀습니다. 시신을 세마포로 싸고 다른 사람을 장사하지 않은 새 무덤에 매장하였습니다. 여 제자들은 예수님의 세마포(수의) 사이에 향품을 바르지 못해서 안타까웠습니다. 여 제자들은 안식일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새벽같이 무덤으로 향했습니다. 무덤 문(돌문)을 어떻게 굴릴까를 걱정하면서 갔습니다. 이스라엘의 무덤은 산허리에 있는 바위를 깎아서 만들었습니다. 무덤 입구는 큰 돌을 굴려서 막았고 돌을 노끈으로 묶었고 빈 공간은 점토로 봉인했습니다. 여자들이 밀어 가지고는 돌문이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 제자들이 무덤에 도착해보니 육중한 돌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습니다. 여 제자들은 누가 예수님의 시신을 도둑질해 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당시에 무덤을 도굴하는 일은 흔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의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무덤을 파헤치거나 시체를 가져가거나 무덤을 인봉한 돌문을 바꿔 놓거나 하면 사형에 처한다고 칙령을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여 제자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사라졌다고 제자들에게 알렸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절에서 10절을 보면 시신을 쌌던 세마포(수의)는 흩어져 있었고 머리를 쌌던 수건은 개켜져 있었습니다. 누에가 껍데기를 벗고 나비가 되어 날아가듯이 예수님은 세마포를 남기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셨습니다. 만약 도둑이 들어왔다면 시신은 그대로 두고 값비싼 세마포만 벗겨갔을 것입니다. 시신을 훼손하려고 들어왔다면 피로 범벅이 된 세마포를 벗기지 않고 통째로 옮겨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신을 도둑질해 갈 수도 없었습니다. 산허리에 무덤을 만들었기 때문에 입구가 하나였고 그 입구를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경비병들이 굳게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신이 도둑맞지 않은 게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여 제자들이 헛소리를 하였다고 넘겨버렸습니다. 여자들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자들의 말을 미더워하지 않았습니다. 요한복음 20장 11절을 보면 마리아는 무덤을 떠나지 않고 목 놓아 울었습니다. 남자 제자들은 무덤을 들여다보고 돌아갔지만 마리아는 빈 무덤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베드로가 아니라 마리아에게 가장 먼저 알려줄 수밖에 없었던 세 번째 이유는 마리아가 예수님의 빈 무덤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남자 제자들보다 나았습니다. 남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랐지만 마리아는 섬겼고, 남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떠나갔지만 마리아는 임종을 지켰고, 남자 제자들은 무덤을 보고 갔지만 마리아는 빈 무덤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장 4절을 보면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님을 기다리라고 분부하셨습니다. 학자들은 처음에는 500명의 제자가(고전15:6) 성령님을 기다리며 기도했으나 기도해도 성령님이 임하시지 않자 380명이 떠나고 120명만 남았습니다. 성령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을 떠나지 않은 120명에게 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빈 무덤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마리아에게 다시 살아나셨다는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의 건국신화인 단군신화를 보면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태백산으로 내려와 인간세상을 다스렸습니다. 호랑이와 곰이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환웅에게 간청하였습니다. 환웅은 쑥 한 자루와 마늘 스무 톨을 주면서 백일 동안 동굴 안에서 햇빛을 보지 않고 있으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불같은 호랑이는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갔지만 우직한 곰은 끝까지 견디어 여자가 되었습니다. 환웅은 웅녀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분이 단군왕검입니다. 단군왕검은 고조선을 건국하고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였습니다. 곰이 끝까지 견뎠기 때문에 여자가 될 수 있었고 마리아가 끝까지 떠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듯이 우리 교인들도 열악한 환경을 끝까지 인내한다면 우리 창대교회가 부흥하는 날을 가장 먼저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자리에 함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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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4-03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혜국 대우라고라고라....;;;;;;;;;;;;;;;;;;;;;;;;;;;;
 
 전출처 : 라미닌 > 막 11:1-11(3) 주께서 쓰시겠다.

 

막 11:1-11(3) 주께서 쓰시겠다.


신약성경은 로마시대에 기록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을 이해하려면 로마시대를 이해해야 합니다. 로마제국은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고 돌아오는 개선장군을 환영하기 위하여 몇 달 또는 몇 주 전부터 환영 준비를 하였다고 합니다. 개선장군이 화려하게 장식된 백마를 타고, 호위병에 둘러싸여 개선문으로 들어오면 로마시민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주피터 신전까지 바닥에는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고, 주변에는 아름다운 꽃과 화분이 장식되어 있었고, 꽃가루가 하늘에 흩날렸고 각종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습니다. 장군 휘하의 군단병력이 오와 열을 맞추어 씩씩하게 따라 들어왔고, 전쟁터에서 빼앗은 갖가지 진귀한 전리품들이 햇볕에 반짝거렸고, 노예로 사용될 포로들이 힘없이 끌려왔습니다. 로마시민들은 개선장군의 환영행렬을 보며 대 로마제국의 영광을 마음껏 누렸습니다.

  

초라한 입성행렬

개선장군의 환영행렬과 예수님의 입성행렬은 규모가 차이 났습니다. 개선장군의 환영행렬은 화려하기 짝이 없었으나 예수님의 입성행렬은 초라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개선장군의 환영식은 몇 달 또는 몇 주 전부터 준비되었으나, 예수님의 환영식은 즉석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개선장군은 화려하게 장식되고 잘 훈련된 백마를 탔으나, 예수님은 제자들의 겉옷을 안장 삼아 전혀 길들여지지 않은 나귀 그것도 아주 볼품없는 새끼 나귀를 탔습니다./ 개선장군 곁에는 창검으로 무장한 호위병들이 둘러서 있었으나, 예수님 곁에는 지금은 신나 있지만 나중에는 도망칠 겁쟁이 제자들이 둘러서 있었습니다./ 개선장군은 붉은 양탄자 위를 지나갔으나, 예수님은 사람들이 존경의 의미로 펼쳐 놓은 떨어지고 헤어진 겉옷을 밟고 지나갔습니다./ 개선장군 주변에는 아름다운 꽃과 화분이 장식되었고 꽃가루가 하늘에 흩날렸고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으나, 예수님 주변에는 사람들이 귀한 사람을 환영하기 위해 나뭇가지를 꺾어다가 길에 깔기도 하였고 손으로 흔들기도 하였습니다./ 개선장군 뒤에는 진귀한 전리품이 실려 왔고 노예로 사용될 포로들이 끌려왔으나, 예수님 뒤에는 예루살렘에서 명절을 보내려는 시골 사람들이 앞서기도 하였고 뒤따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입성행렬

그러나 개선장군의 환영행렬과 예수님의 입성행렬은 성격이 달랐습니다. 개선장군의 환영행렬은 말을 탄 전쟁영웅을 환영하는 행사였습니다. 개선장군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적군을 무자비하게 학살하였습니다. 로마시민들의 환호 속에는 전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의 피맺힌 절규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전쟁은 승리할 때도 있고 패배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개선장군의 환영행렬은 사람이 사람을 환영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준비된 행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입성행렬은 나귀를 탄 평화의 왕을 환영하는 행사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메시야가 새끼 나귀를 타고 오신다고 예언하셨습니다.(슥9:9) 사람들의 찬송 속에는 메시야를 기다리는 염원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입성행렬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을 환영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예언된 행사였습니다. 개선장군의 환영행렬은 화려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의 피를 묻힌 죽음의 행렬이었다면 예수님의 입성행렬은 초라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을 위해 피를 흘릴 생명의 행렬이었습니다./


입성행렬을 위하여 

예수님의 입성행렬을 위하여 숨은 봉사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입성하기 전에 제자 둘을 보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2-3절)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예수님은 새끼 나귀를 끌고 오라고 제자 둘을 보내셨습니다. 제자들이 베다니 마을에 가 보니 예수님 말씀대로 새끼 나귀가 문 앞에 매여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줄을 풀었더니 어떤 사람이 (누가복음 19장 33절을 보면 나귀 주인이)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주께서 쓰시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주인은 나귀를 가져가라고 허락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나귀가 어디 있었는지 주인이 무슨 말을 할는지 알고 제자들에게 대답할 말까지 알려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아셨습니다. 사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장면이 모두 나옵니다.(마21:1-11;눅19:28-40;요12:12-19) 중요하기 때문에 모두 나오는 겁니다. 그렇지만 나귀를  빌려준 주인의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베다니 마을에는 예수님의 친구인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삼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요11:1)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오실 때마다 베다니 마을에 들리곤 하셨습니다. 나귀 주인은 한번쯤은 예수님의 설교를 들었을 겁니다. 나귀 주인이 예수님을 믿었는지 안 믿었는지는 모르지만 ‘주께서 쓰시겠다.’는 말에 아무도 타 보지 않은 새끼 나귀를 선선히 내주었습니다. 고대시대에는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동물은 신성한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민19:2;신21:3;삼상6:7)


주님은 주인이고 우리는 청지기

우리는 주께서 쓰시겠다는 문장 중에서 ‘주’라는 단어에 주의해야 합니다. 주는 헬라어로 ‘퀴리오스’입니다. 주님은 주인이고 나는 종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은 주인이고 나는 종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 라는 뜻입니다. 나의 시간도 주님의 것이고 나의 물질도 주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하면서도 나를 주인으로 삼고 있습니다. 내가 가진 시간도 내 것이고 내가 가진 물질도 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나귀 주인이 나귀를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어주지 않았다면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나귀를 빌려서 타셨을 겁니다. 우리는 3절 하반 절을 주목해야 합니다. 난외주를 보면 즉시 돌려보내리라고 나와 있습니다. 표준새번역 개정판은 “주님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쓰시고 나면, 지체 없이 이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고 기록하였고 공동번역 개정판은 “주님이 쓰신다 하고 곧 돌려보내실 것이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주님께서 쓰시고 돌려주시겠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시간을 내어 놓으면 주님께서 쓰시고 돌려주시겠답니다. 물질을 내어 놓으면 주님께서 쓰시고 돌려주시겠답니다. 주님은 주인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맡겨 놓으셨다 가 필요하시면 달라고 하시고 쓰시고 나면 다시 돌려주시겠답니다.


예전에 시골에는 수동식 우물펌프가 있었습니다. 물을 한 바가지 퍼 다가 안에 넣고 펌프질을 하면 우물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만약 물이 아까워 한 바가지를 넣지 않는다면 우물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한 바가지의 물을 퍼 넣기를 바라십니다. 그러면 주님은 그것을 가지고 귀하게 사용하시고 돌려주십니다. 나귀 주인이 새끼 나귀를 내주었을 때 주님은 영광스럽게 사용하시고 돌려주셨습니다. 소년이 도시락을 내주었을 때 주님은 성인남자 5천명을 먹이고 12광주리나 거두셨습니다. 성경에는 나귀를 빌려준 주인과 도시락을 제공한 소년의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 빈 공간에 우리들의 이름이 기록되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할 때 ‘여기 있습니다.’ 하고 내어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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